소설리스트

천마홈즈 런던앙복-53화 (53/110)

053. 장엄구마 (3)

Magnus Exorcismus (3)

어둠은 없다. 오직 무武를 알지 못하는 우매함이 있을 뿐.

-윌리엄 셰익스피어, <남장여자연애무쌍Twelfth Night>-

* * *

<전화를 걸어서…… 사람을 죽일 수 있다고……?>

왓슨은 여전히 이번 사건의 진상이 믿기지 않는다는 눈치였다.

아무래도 내 설명이 과할 정도로 간결하게 요점만을 추려낸 탓일까, 그녀의 머리가 상황을 받아들이기 위해선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한 듯했다.

<이보게, 홈즈. 내가 자네 말을 제대로 이해한 게 맞는가?>

“걱정되면 자네 입으로 다시 한번 말해보는 건 어떤가.”

왓슨은 헛기침해 목을 가다듬고는 역용술로 얼굴을 바꾸고 다닐 때 사용하는 중성적인 음성으로 말했다.

<그러니까 요약하자면 자네는 범인이 수화기 진동판을 강하게 울려 권풍을 쏘아냈다고 말하고 싶은 거군. 뇌정지기로 전화 음량을 키우고 있는 것과 똑같은 원리로.>

“바로 그거야.”

<허…….>

어처구니가 없다고, 그렇게 말하고 싶어 하는 뉘앙스.

아무래도 좀 더 자세한 설명이 필요한 모양이다.

“잘 듣게, 왓슨. 권격에 실린 힘이 진동판을 거쳐 전기 신호로 변환될 때 뇌정지기를 대량으로 흘려보내면 그 충격량을 멀리 있는 상대의 수화기까지 온전히 실어 나를 수 있다네.”

<거기까진 이해했어.>

“권풍은 결국 공기에 진기를 응축시켜 날리는 기예일세. 즉, 피해자가 쥔 수화기의 진동판을 뇌정지기로 진동시키면―”

<목소리를 재생하듯 주먹질의 충격이 진동판을 울리며 권풍이 쏘아져 나오는 거로군……!>

“바로 그거야. 이래야 내 조수지.”

지금쯤 그녀의 머릿속에선 여태껏 품어왔던 의문이 하나씩 해소되고 있을 것이다.

<이제 납득이 가. 흉기가 전화라면 사건의 수수께끼를 전부 설명할 수 있겠어.>

범인이 15분 동안 런던을 한 바퀴 돌며 불가능한 살인을 네 번이나 저지를 수 있던 이유.

네 번의 밀실 살인의 피해자가 전원 전화를 받다 숨이 끊어진 이유.

그들의 측두부에 뚜렷하게 주먹 자국이 남아있던 이유.

전부, 범인이 전화기를 사용해 초식Trick을 펼쳤다면 앞뒤가 맞는다.

<자네가 우체국에서 전신권사Telegraph Boxer들을 주시하다 범인의 수법을 깨달았다고 말한 이유는 이거였군.>

“맞아. 뇌정지기로 전보를 보내는 광경을 보았을 때 모든 단초가 하나로 합쳐졌지.”

강력한 뇌정지기가 흘렀음에도 전화선이 불타지 않은 이유는 간단하다.

뇌정지기는 어디까지나 벼락의 성질을 닮은 기운이지 전기 그 자체와는 엄연히 다른 힘이다.

진기Essence는 무인이 품는 심상과 구결, 그리고 수련의 깊이에 따라 발현되는 성질의 유형과 강약에 차이가 생겨난다.

범인은 자신의 초식을 완성하기 위해 수련을 반복해온 자.

분명 전화선을 태우지 않으려고 갖은 노력을 다했을 테지.

<과연, 자네의 추리에는 늘 감탄하게 되는군. 그럼 이젠 뇌정지기를 다룰 줄 아는 자 중에서 범인을 추려내면 되겠어.>

왓슨이 사건의 전말을 이해하는 건 기대보다 느렸지만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공식적인 기록만을 토대로 말하자면 이번 사건은 유럽 무림 무공범죄사의 한 페이지를 당당히 장식할 최초의 원거리 살인이니까.

<이렇게 보니 자네가 울리히 저커버그 지사장의 사무실을 찾아간 것도 납득이 되는군. 그의 책상에는 전화가 두 대 있었으니 가설을 실험해보기 마이센맞춤Meissen Bespoke Ceramic이었겠지.>

의학을 전공한 수재답게 왓슨은 내가 설명하지 않아도 이것저것 궁금했던 부분을 하나씩 떠올리며 의문을 해소하고 있었다.

<잠깐. 전화기가 두 대 있는 게 저커버그앤코 잉글랜드 지사장실만은 아니었을 텐데 어째서 굳이…….>

여전히 가장 중요한 부분은 알아차리지 못한 듯했지만.

“저커버그에 관해선 이따 다시 이야기하도록 하지. 지금은 더욱 중요한 화제가 있으니까.”

<내 정신 좀 보게. 유령권마가 지척에 앉아있다는 사실을 잊을 뻔했군.>

“잘 생각했어. 자네는 방심하지 말고 저들을 지켜보고 있게.”

나는 혼자만의 세계에 빠지려 들던 왓슨을 제자리에 돌려놓았다.

범인이 기회를 틈타 도망친다 해도 대책은 있었지만 그래도 정신을 바짝 차린 나의 친구가 범인을 지켜보고 있어야 안심이 된다.

<당연히 그래야지. 포셋 경이 편안하게 눈을 감으려면 살인자를 놓쳐선 안 되니까.>

이 부분에 관해선 할 말이 많았지만 꾹 참았다.

장관 대인이 편안하게 눈을 감고 다니는 건 평소에도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닌가.

“수상한 움직임을 포착할 경우 망설이지 말고 탄지공으로 제압하게.”

<걱정 말게, 홈즈. 아프간에서 장군의 막사를 경계하던 것처럼 매의 눈으로 관계자들을 지켜보는 중이니.>

<저도 현장에 있다는 걸 잊지 마시죠. 이 레스트레이드가 왕림Kingswood 정종 귀영금나수로 유령권마를 붙잡아 보겠습니다.>

범인의 정체가 망자가 아닌 인간이라는 걸 알고 용기백배한 레스트레이드도 소리를 높여 관계자 사이에 숨은 유령권마를 압박했다.

그럼, 계획대로 이젠 사냥감을 더욱 몰아붙일 시간이다.

“그럼, 유령권마가 어떻게 사건을 저질렀는지Howdunit는 설명이 끝났으니 이번엔 놈이 누구인지Whodunit 알아보도록 하지.”

나는 지금쯤 애써 긴장을 숨기고 있을 유령권마의 모습을 상상하며 놈을 옭아매기 위해 언어의 밧줄을 엮어내기 시작했다.

“흔히들 초식은 무인을 비추는 거울이라고 하지 않나. 나는 유령권마의 살인을 통해 그가 어떤 인간인지 파악할 수 있었다네.”

피해자들의 머리에 권풍이 남긴 커다란 주먹 자국을 보고 가장 먼저 떠오른 건 기골이 장대한 거한의 이미지였다.

하지만 놈의 살인 수법을 알아낸 이후부턴 외적인 특징보단 그 내면이 손에 잡힐 것처럼 뚜렷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로비에 모인 신사 여러분 대다수에게 공통되는 이야기겠지만 유령권마는 고학력자일세.”

내가 말을 마치자마자 수화기 너머에서 이따금 들려오던 사람들의 불만 섞인 목소리가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다.

스스로 엘리트를 자부하던 지식인 제형諸兄께선 혹여나 자신이 살인범으로 오해받을까 봐 전전긍긍하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어차피 뇌정지기를 다루지 못하는 이들은 용의선상에서 제외될 텐데 다들 똑똑해서 그런지 쓸데없이 겁이 많은 모양이다.

평소 자신보다 타인이 멍청하다고 생각하며 사니까 저런 걱정을 하는 거겠지.

<흥미로운 이야기로군. 어떻게 추리해낸 건가.>

“무공을 대하는 놈의 접근법이 뉴턴 내력학Newton Qinetics과 무리학Kung-Fu Physics은 물론 전자기공학電磁氣功學의 지식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지.”

유럽 강호의 무림인이 무를 추구하는 방식은 주로 두 가지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직관과 깨달음을 숭상하며 감각적인 것을 추구하는 유형.

다른 하나는 개념과 언어화된 무리武理를 탐구하는 부류다.

두 가지 방식을 모두 어릴 적부터 깨친 나 같은 이들 역시 존재하지만 이는 극히 소수에 지나지 않으니 제외.

그리고, 전화기를 무기로 삼는다는 대담한 발상이 가능했던 점으로 미루어보아 유령권마는 틀림없이 후자에 속하는 유형이었다.

“놈은 곤륜대성당의 순례길에서 무공을 익힌 다음 옥스-브리지 등 체계적으로 무리를 가르치는 대학관에서 수련을 쌓은 엘리트가 틀림없어.”

이쯤 얘기하면 슬슬 반응이 올 텐데.

<잠깐만요!! 이건 부조리합니다!>

예상했던 대로 모여있던 사람 중 누군가가 소리를 지르는 게 들렸다.

<범행에 뇌정지기가 사용되었다면 범인은 누가 생각해도 우체국 관계자가 아닙니까! 저를 비롯한 법조계 종사자와 전화 회사 분들은 무슨 잘못이 있다고 살인자와 갇혀있어야 하는 겁니까?!>

<옳소! 옳소!!>

그래. 죄 없는 이들이 당장 연쇄살인범과 지척에 앉아 있으면 불편해서 견딜 수가 없겠지.

얼핏 보면 지극히 타당한 문제 제기.

다만 내겐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가만히 좀 계십시오. 정신 사납게 굴지 말고. 말했잖습니까, 제가 연이 닿아 곤륜의 가르침을 한 자락 얻게 되었다고. 여러분 중에 비슷한 경우가 없을 거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이쪽의 입장을 확고히 전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불평하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당장 내가 눈앞에 서 있는 게 아니라 전화선 너머에 있다고 생각하니까 다들 하고픈 말을 멋대로 지껄이는 모양이다.

<그, 그래도 저는 보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급히 병원에 가봐야만 합니다. 아까 유령권마의 초식에 당한 자리에서 계속 피가…….>

그때였다.

겁에 질린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온 건.

“흠. 다친 분이 계셨던 모양이군. 왓슨, 자네가 보기엔 어떤가.”

<아아. 티모시 영 씨라면 아까 직접 상처를 보았지. 커다란 주먹 자국이 남아있더군.>

기억하고 있다. 티모시 영.

전화 회사 임원 중에선 가장 젊다고 그랬던가.

“그래서, 자네 소견은?”

<치명상은 아니지만 확실히 병원에 보내는 게 나아 보이네.>

내 주치의이자 조수인 왓슨의 의견이 그렇다면 믿는 수밖에.

“좋습니다. 그럼 몇 가지 궁금한 점만 묻고 보내드리도록 하죠.”

<감사합니다……!>

본래는 하나씩 범인의 특징을 열거하며 숨통을 조일 생각이었지만 영 씨 덕에 몇 가지 과정을 생략할 수 있을 듯하다.

“그럼, 첫 번째 질문입니다.”

<예, 말씀하시죠.>

한결 가벼워진 티모시 영의 목소리.

이제부터 무슨 일이 벌어질지 전혀 예상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그제 저녁, 저는 포셋 경의 도움을 받아 곤륜파의 본산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에 전서구를 보냈습니다.”

<그렇습니까. 전보를 사용하지 않는 지역이니 답장이 오려면 사흘은 족히 기다려야겠군요. 헌데 그걸 어째서 제게 말씀하시는 건지―>

“장관대인은 편도 비행이 아닌 왕복이 가능하고 평범한 전서구보다 두 배 이상 빠르게 움직이는 영물 비둘기를 보냈습니다. 680마일은 족히 떨어진 산티아고까지 하루 만에 멀쩡히 다녀오더군요.”

티모시 영은 아직도 내가 뭘 물어볼 생각인지 갈피가 잡히지 않는 모양이었다.

“전서구에 묶어서 보낸 편지에는 여기 계신 분들의 이름과 직책을 빠짐없이 적어두었습니다. 그중에 곤륜의 순례자가 몇이나 있는지 확인해달라고 부탁했죠.”

내가 왓슨을 스코틀랜드 야드에 두고 저커버그앤코의 사무실에서 잠시 합류하기 전에 혼자 포셋 경을 만나러 간 건 이를 위해서였다.

범인이 뇌정지기를 다룰 줄 안다는 건 기연이 없는 이상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무공을 익혔다는 뜻이니 쉽게 후보를 추릴 수 있겠다고 생각한 까닭이었다.

“결과, 우체국 관계자를 제외한 이들 중 유일하게 영 씨만 곤륜대성당의 무공을 익히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

“그래서 질문입니다만, 어째서 사문을 감추고 있던 겁니까?”

말문이 막힌 티모시 영의 심장 박동이 지척에서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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