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6. 공손실
Essence Loss
공손실功損失은 무인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어서, 언제나 그를 끌어당기는 인력과도 같다.
-알랭-
* * *
“네놈……! 내 혈도에 무슨 짓을 한 거냐……?!”
“알아도 막을 수 있는 초식이 아니니 포기해라.”
“말이 되는 소릴!”
유령권마는 곧바로 공중으로 도약, 온몸으로 전사경을 펼쳐 내 손아귀를 풀어내고는 재빨리 호텔 정문을 박차고 나가 정원 한복판으로 몸을 피했다.
“남의 내공을 좀도둑처럼 훔쳐 가다니. 무인의 긍지는 어디에 팔아먹었나!”
“어쭙잖게 마공이나 배워온 놈이 할 소리인가, 그게.”
이쪽을 자존심도 없는 불한당으로 몰아가는 거로 보아 어지간히 흡성대법이 두려웠나보다.
그래도 가까이 붙는 순간 공력을 강탈당한다는 것을 바로 눈치채고 거리를 벌린 걸 보니 순발력과 판단력은 나쁘지 않은 모양이었다.
<일단은 끼어들지 말아주게. 이번 사건에는 배후가 있는 모양이야. 반드시 놈을 산 채로 연행해야 하네.>
왓슨과 레스트레이드에게 짤막한 전음을 보내자 둘이 고개를 끄덕였다.
포셋 경은 어차피 도와줄 생각이 없는 듯해 굳이 말을 걸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자, 이제 어떻게 한담.”
내가 두 사람에게 대기하도록 부탁한 건 혹시라도 눈먼 탄지공이나 초식이 티모시 영의 급소에 적중할까 걱정이 들어서였다.
유령권마가 죽었다간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없다.
단전을 폐하든 다른 방식으로 내공을 봉인하든 놈을 살려서 돌아가려면 평소 범죄자들을 상대하는 것보다 섬세하게 두들겨 팰 필요가 있었다.
“마인을 살려두는 걸 보면 성산파Zion Clan 수도사修道士들이 가만있지 않겠어.”
마공을 익힌 자를 죽이지 않고 제압하려면 일단은 진부터 빼놓아야 한다.
첫 수로 흡성대법을 선택한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이것이었다.
“미안하지만 네놈 정도의 경지 갖고는 여길 살아서 빠져나갈 수 없을 거다.”
나는 의도적으로 놈을 위협하는 듯한 태도를 고수하며 느긋한 걸음으로 정원으로 향했다.
양손바닥에선 여전히 흡성대법의 구결을 따라 내공이 세맥을 순환하고 있었다.
전부, 놈의 조바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행동이었다.
“크윽…….”
애초에 유령권마를 놓칠 가능성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강호제일경공고수 청익복 헨리 포셋 대협이 나와 유령권마의 승부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으니까.
유령권마 역시 차라리 여기 있는 모두를 죽이고 빠져나가는 게 포셋 경의 추적을 따돌리는 것보단 쉬울 거라 생각한 듯 기수식을 펼치고 있었다.
“비겁한 자식 같으니라고. 잘도 계속 사특한 술수를―”
“어허. 정파 무공이래도.”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짓는 걸 보니 정말로 이 무공의 연원을 알지 못하는 듯했다.
“이 무공으로 마인魔人을 제압했다고 말씀드리면 노사께서도 기뻐하시겠군.”
“노사……?”
뭐지, 이 녀석.
“대학관을 졸업해놓고 뉴턴 경을 모른다고?”
“뉴턴 경? 그럼 설마 이 초식은―”
나는 대답 대신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흡성대법Gravitation은 무려 조폐국장과 제2대 케임브리지 대학관 석좌 사범을 역임했던 뛰어난 연단술사이자 위대한 무학자 아이작 뉴턴 경의 여러 성명절기Signature Move 중 하나였다.
백미은자White-Browed Hermit의 별호로 더욱 익숙한 뉴턴 경은 지금부터 약 160년 전, 주가 상승과 배당 수익을 목적으로 해남파가 운영하는 해남상회의 주식을 대량으로 매수했다.
그 결과 뉴턴 경은 전 재산을 잃었고 이 사건은 해남포말海南泡沫이라고 불리며 대영제국 경제사에 큰 상처를 남겼다.
당시 뉴대인이 심마를 극복하고 창안한 절세의 무학이야말로 바로 만유인력万有引力의 묘리를 일으켜 더욱 큰 내공으로 적은 내공을 끌어당기는 흡성대법이었다.
노사께선 흡성대법을 창안한 후 한동안 유럽을 주유하며 성산파 이단심문관마냥 닥치는 대로 마공을 익힌 무인들을 사냥, 아니, 계도하고 다니셨다고 한다.
“150년도 전에 소천한 위인에게 인사드리고 싶나? 그럼 내 손에 죽어야겠구나!”
“정말 아무것도 모르나 보군.”
용봉지회에도 놀러 오셨던 걸 보니 노사께선 당시 대량의 내공을 흡수한 덕에 천수를 세 배로 누리고 계신 듯했다.
곧 감옥에 처박힐 놈에게 금분세수Golden Retirement를 마친 뉴턴 경이 네 갑자 반의 고령에도 여전히 영락의 세월을 구가하고 계신다는 이야기를 들려줄 필요는 없겠지.
만에 하나 소문이라도 났다간 은원에 민감한 강호인들이 왕립무학회 앞에서 문전성시Street Market를 이룰 게 뻔하니까.
“만유인력이라고 아나, 티모시 영 군? 삼라만상에는 서로를 끌어당기는 보이지 않는 힘이 존재하고 있어 모든 것을 합당한 장소에 묶어두고 있지. 내공 또한 예외가 아니야.”
내공에도 질량은 존재하며, 큰 질량엔 큰 인력이 따른다.
그리고 질량이 클수록, 두 물체의 거리가 가까울수록 인력은 강해진다.
큰 내공이 작은 내공을 끌어당기는 이치를 이용해 상대가 초식에 실은 공력보다 거대한 힘으로 이를 무효화하고 흡수하는 것이야말로 흡성대법의 묘리.
즉, 유령권마는 지닌 내공의 상당량을 한 수에 담아낸 초식을 펼치지 않는 한 나를 상처입힐 수 없다는 뜻이다.
“풍문으로만 들어본 흡성대법을 실제로 보게 줄이야.”
한편 티모시 영은 마침내 초식의 정체를 파악한 사실이 기뻤는지 사나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하지만 그 초식의 정체가 흡성대법인 걸 알아낸 이상 네놈에겐 승산이 없다. 파훼법이 정립된 무공을 사용하면서 잘도 오만방자Pride And Prejudice하게 굴어주었군. 사람을 백치로 알아도 유분수지How Dare You……!”
놈은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다시 한번 진기를 끌어모으기 시작했다.
두 다리는 언제든 내가 거리를 좁히면 보법Step을 펼칠 수 있도록 준비해둔 상태였다.
접근전을 이어가 봤자 흡성대법의 먹이가 될 거란 사실을 깨닫고 자신에게 유리한 싸움을 하기로 마음먹은 듯했다.
“가까이 다가가지만 않으면 내공을 빼앗길 일이 없다는 게 아닌가!”
-파바박!!
놈은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여러 발의 권풍을 쏘아냈다.
새벽이라 대낮보다 권풍의 형태를 눈으로 식별하기 훨씬 어려운 상황.
하지만 나는 두어 번 손을 휘저어 권풍에 실린 공력을 모조리 흡수했다.
“그래 봤자 그 정도 진기 갖고는 흡성대법을 파훼할 수 없다네.”
티모시 영이 권풍을 주로 수련했다는 사실은 이미 그 살인 수법을 통해 확인한 바 있다.
놈이 권풍을 몇 번을 날려봤자 내가 흡성대법을 운용할 때 일으킨 내공보다 적은 양의 진기만 싣는 이상 이쪽의 힘을 북돋을 뿐이다.
그런데, 이를 확인하고도 놈은 여전히 기분 나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조심하게, 홈즈! 놈에게 무언가 꿍꿍이가 있는 모양이야.”
왓슨이 등 뒤에서 소리쳤다.
나 역시 눈치채고 있었다.
티모시 영이 계속해서 기회를 노리고 있다는 사실을.
당연한 얘기다.
애초에 내가 사용한 초식이 흡성대법이라는 걸 알 수 있도록 힌트를 흘린 것 자체가 의도된 상황이었으니까.
“흡성대법. 그래, 분명 위험한 무공이지. 큰 공력을 소모하지 않는 초식을 일방적으로 무력화시킬 수 있으니까.”
이윽고 놈의 몸 주위를 새빨간 아지랑이가 감싸기 시작했다.
일렁이는 기운의 정체는 아까보다 한층 짙어진 마기였다.
-파지직!!!
마공으로 성질이 변화한 뇌정지기.
붉은 벼락이 놈의 오른손을 뱀처럼 휘감고 있는 게 보였다.
아직도 실력을 감춰두었다거나 그에 준하는 세련된 짓을 할 여유 따윈 놈에게는 없을 터.
아무래도 뇌정지기의 구결을 역방향으로 운공해 마공魔功으로 바꾼 것도 모자라 선천진기까지 끌어오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네놈이 흡성대법으로 무력화할 수 없도록 일격에 모든 힘을 쏟아붓도록 하지.”
“목숨을 걸었나. 어리석긴.”
견제 삼아 권풍을 날린 건 최후의 한 수를 준비하기 위함이었나.
유효할 때도 있긴 하나 하수의 발상이다.
“어디 이것도 한번 받아내 보거라. 백보신권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는 천리신권Telephone Punch의 진정한 위력을 보여주마.”
놈은 아무런 예비 동작 없이 나를 향해 주먹을 내지르며 진각을 밟았다.
끌어당겼던 손을 앞으로 밀어내며 비트는 동작.
수천수만 번을 반복해온 매끄러운 발경에 전사경이 더해지자 강맹한 내력이 폭발하듯 전방으로 쏘아져 나왔다.
-콰앙!
정전기로 인해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감각과 함께 유령권마의 권풍이 나를 향해 똑바로 날아오는 게 보였다.
권풍은 지면에서 5피트 위를 날고 있었지만 전사경의 회전력이 더해진 뇌정마기가 정원의 화초와 잔디를 새까맣게 태우고 있었다.
아무리 나라도 저것에 적중당했다간 중상을 면치 못한다.
나는 권풍의 경로에 왓슨이 없는 걸 확인한 다음 재빨리 경신법을 펼쳐 좌측으로 움직였다.
하지만―
“피하게 둘 것 같나?”
놀랍게도 유령권마의 권풍은 내 움직임을 따라 허공에서 궤도를 비스듬히 틀고 있었다.
어떤 원리로 저런 일이 가능한 건진 금방 짐작이 갔다.
“자성Magnetism을 띠고 있었나……!”
“내공에 인력이 존재한다면 자력을 지닐 수도 있겠지!”
유령권마는 흡성대법을 역으로 이용했다.
나는 분명 사자심법을 통해 마공으로 변질한 내공이 지니는 사이한 성질을 전부 배제했다.
하지만 놈의 뇌정지기, 아니, 뇌정마기에 포함된 자성이 내게 해가 될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다.
이를 눈치챈 티모시 영은 내가 흡수한 진기와 정반대의 극성極性을 띤 뇌정마기를 권풍에 불어넣었고, 결과 내 몸은 자석처럼 권풍을 끌어당기게 된 것이다.
“허.”
놈은 짧은 시간 동안 싸움을 통해 약간이나마 성장했다.
위기 앞에서 내가 펼친 초식을 통해 얻은 단초를 그대로 활용할 정도의 무재를 갖추고 있다는 뜻이다.
물론, 이 역시 작은 변수에 지나지 않지만.
“머리는 나쁘지 않게 굴러가는가.”
아까 내린 평가를 약간이지만 상향 조정할 필요가 있었다.
놈은 어디까지나 마공에 한해 수련의 깊이가 얕을 뿐, 무림인으로서는 상당한 경지를 이룩한 모양이었으니까.
타락해 범죄자가 되지 않았더라면 언젠간 더욱 강해졌을지도 모르지.
허나 그는 이번 사건의 배후에게서 기괴한 살초를 배워 스스로의 잠력을 내다 버렸다.
그리고, 만일 잠력을 온전히 개화시킨다 해도 여전히 나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다.
“그래도 격장지계Taunt는 통하나 보군.”
아무리 가소성과 재능이 있어도 정도를 포기하고 편법에 기댄 이상 결국 놈은 하수.
이건 어디까지나 수사 자문가인 내가 악의 길에 떨어진 강호인을 벌하기 위한 싸움이다.
그리고 나는―
“기다리느라 고생이 많았네. 제갈율리Ulrich Zuckerberg.”
하수와 정정당당한 생사결 따위 벌이지 않는다.
“소생의 차례인가!!”
다음 순간, 호텔 옥상에 숨어있던 울리히가 요란하게 쥘부채를 펼치며 일어났다.
“만뢰벽대수萬雷劈大樹! 굉굉술원래轟轟術遠來!”
-촤륵!
-쿵!
“팔진도의 십육Metaverse No.16! 목기인뢰진木氣引雷陣!!”
기합이 실린 진각을 신호로 정원에 설치된 제갈세가의 진법이 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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