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7.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As It Is In Heaven
깨달음은 뇌명이나 섬전처럼 홀연히 나타나는 것. 정精을 뒤엎고, 기氣를 나뭇잎처럼 떼어내, 신神을 깊은 곳으로 끌고 가는 거대한 용오름이다.
-귀스타브 플로베르, <불륜협려Madame Bovary>-
* * *
제갈율리의 진각을 신호로 팔방으로 뻗어나간 기파가 진법을 기동시켰다.
-파아앗!
정원사로 변장한 제갈세가의 공병무인Kung-Fu Engineer들이 진법을 따라 옮겨 심어둔 정원의 나무가 일제히 환한 빛을 발했다.
오행의 기운 중 나무의 힘을 가리키는 목기는 땅에서 하늘을 향해 수직 방향으로 움직인다.
하늘과 땅을 잇는 벼락 또한 마찬가지.
오래된 고목 나무에 벼락이 떨어지는 건 두 기운의 성질이 더없이 가까워 목기가 뇌기를 끌어들이는 까닭이다.
목기인뢰진은 자연지기에 내공을 더해 위의 현상을 인위적으로 재현하는 진법Civil Engineering.
내가 굳이 제갈율리의 사무실에서 전화기 두 개를 사용해 유령권마의 권풍을 재현해본 건, 정보가 새어가지 않는 범위 내에서 실험을 마치고 제갈세가의 협조를 구하기 위함이었다.
-콰앙!!
나를 향해 날아오던 권풍은 순식간에 조각조각 찢겨나가 진법의 매개인 여덟 그루의 나무를 향해 날아가 폭발을 일으켰다.
다만, 내게 아예 피해가 없는 건 아니었다.
제갈율리는 계획대로 유령권마를 방심시키기 위해 아슬아슬한 시점을 노려 진법을 발동시켰다.
하지만 그 탓에 권풍이 쪼개지며 발한 충격파가 지근거리에서 나를 덮쳤고, 그 결과―
“……아끼는 옷이었는데.”
변장용으로 적당히 구해온 코트는 물론이고 안에 입고 있던 셔츠와 조끼, 그리고 바지가 군데군데 찢어져 넝마가 되고 말았다.
신사된 자로써 옷이 찢어지는 건 몸에 생채기가 나는 것보다 수치스러운 일이다.
심지어 오늘 입고 있던 옷가지는 내가 몹시 아끼는 것이었다.
코트를 제외하고 깨끗하게 세탁해 버킹엄 어전 무도회와 왕립무학회 정회원 심사에 입고 나갈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된 이상 큰맘 먹고 한 벌 값이 나가는 옷을 새로 장만하는 수밖에.
“이게…… 무슨…….”
한편, 선천진기의 일부에 더해 내공의 대부분을 소모한 유령권마는 허탈감에 말도 잇지 못하는 중이었다.
“백보신권을 넘어섰다 했나. 재밌군.”
편법에 기댄 마인 나부랭이가 감히 왕림의 절학을 비웃다니.
무지란 이토록 무서운 것이다.
자신의 무지를 알지 못하는 자는 남들에게 비웃음을 사는 것은 물론이요 자기 명까지 재촉하게 된다.
“본디 그 오만을 왕림Kingswood의 무학으로 다스리고 싶었으나 네놈에겐 그조차 과분하겠군.”
나는 느긋하게 천마장을 들고 숨을 헐떡이는 티모시 영에게 다가갔다.
“오지 마!!!”
놈은 얼마 남지 않은 공력을 담아 마구잡이로 권풍을 쏘아냈지만 그중 단 한 발도 내게 적중하지 못했다.
“오지 말란 말이다!!!”
유령권마는 이를 악물고 쥐어 짜낸 뇌정지기를 손날에 둘러 지척까지 다가온 나의 목을 노렸다.
-쐐애액!!
섬전수가 공기를 태우며 쇄도했다.
나는 고개를 틀어 이를 피하고 놈을 향해 웃었다.
“그래. 네 사문의 무공으로 벌하는 게 좋겠군.”
나는 조용히 뇌정요결雷霆要訣을 속으로 되뇌었다.
-문군뇌우하소강 問君雷雨何所降
-뇌우운대치정우 雷雨雲大致停于
-서반아평원천제 西斑牙平原天際
묻노니, 하늘의 자비는 어딜 적시는가
스페인의 먹구름은 들판에 머문다
Now, Once Again Where Does It Rain?
The Rain In Spain Stays Mainly In The Plain.
뇌운이 언급되고 있지만 벼락이 내리치는 심상을 그리기엔 부족해 보이는 구결.
하지만 이 짧은 구결에는 필요한 모든 것이 담겨 있었다.
뇌정요결에 벼락이 내리치는 찰나의 광경이 묘사되지 않은 이유는 간단했다.
서로 가까워지는 일 없이 영겁의 시간 동안 평행선을 그리는 구름과 들판Heaven And Earth.
그 사이를 수직으로 관통하는 한 줄기 섬광은 강렬하지만 지나간 자리에 어떠한 흔적도 남기지 않는 허무함 역시 지니고 있다.
이를 한낱 인간이 눈과 귀로 받아들여봤자 그 정보는 현상의 표면에 지나지 않는 법.
벼락은 의념을 일으키는 것보다 빠르게 내려친다.
낙뢰의 형상이 망막에 낙인처럼 새겨지는 찰나의 순간을, 그 힘을, 속도를, 어찌 언설과 글자로 나타낼 수 있을까.
그야말로 불립문자Unspeakable Enlightment.
곤륜의 노사들이 뇌전을 직접 글귀에 담지 않은 건 구체적인 상像을 제시하는 것이 도리어 대오각성Eureka을 막는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까닭이었다.
하여, 그들은 자전紫電 대신 그것을 일으키는 천지를 품도록 후인들을 가르쳤다.
-승행어지 여어천언 承行於地 如於天焉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Thy Will Be Done, As It Is In Heaven, So On Earth.
오래된 기도문이 가리키는 뇌화雷火의 본질.
뇌정요결은 눈으로 본 번개를 심상에 옮겨 담기 위한 것이 아니다.
마음에 그리는 건 끝없이 펼쳐진 구름과 들판.
그리고 당겨진 활시위와 같은 의념을 놓아주는 순간.
양에서 음으로.
하늘의 화살은, 날아간다.
“섬전수Thunder Clap.”
-파직!
가속된 신체의 반응과 동작.
벼락처럼 움직인 양손이 귓바퀴를 단단히 움켜쥔 순간 뇌정지기Brain Stopper가 놈의 머릿속을 헤집어놓았다.
그 이름이 가리키는 대로, 뇌의 기능을 정지시키는 흉포한 기운이.
-털썩
“구마 완료Case Closed.”
기절한 티모시 영의 입에서 녹진한 핏물이 흘러나왔다.
* * *
잠시 후.
“……죽진 않았군.”
왓슨이 바닥에 드러누운 영의 맥을 짚었다.
흰자를 까뒤집고 입에 게거품을 물고 있는 모습은 측은지심Sympathy마저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이어서 레스트레이드가 놈의 손목에 수갑을 채우고는 주머니에서 꺼낸 가루약을 기절한 유령권마의 콧구멍에 조심스럽게 흘려보냈다.
“쿨럭.”
기절한 유령권마는 작게 기침하고는 그대로 미동도 없이 잠들었다.
“소문으로만 듣던 추포산追捕散인가.”
“예.”
왓슨이 묻자 레스트레이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추포산은 이레 동안 내공을 봉인하는 강력한 산공독으로 악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당가Tanne Family가 각국 경찰에게 독점적으로 공급하고 있었다.
공력의 수발을 막음으로써 재판을 거쳐 단전 파괴형에 처하기 전 범죄자가 탈출을 시도할 수 없도록 잡아두는 것이 그 용도였다.
악용을 막기 위해 코나 입 등의 점막에 정량을 흡수시켜야 효능이 나타나는바, 범인을 완전히 제압하기 전까진 사용하기 어려운 게 난점이지만 실로 탐나는 물건이었다.
“리버풀당가의 독이라니. 스코틀랜드 야드도 재밌는 물건을 쓰는군.”
“리버풀이 아니라 작센당가Tanne Clan Of Sachsen에서 직접 조달했을 걸세. 리버풀당가는 방계니까Liverpool Are Not A Big Club.”
내가 말하자 왓슨이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리버풀당가는 당가 중에선 딱 중위권이지. 그보다, 직계인 작센당가에서 유통된 수제독이라면 효능이 확실하겠는걸?”
“범죄자가 재판 전에 탈옥이라도 했다간 큰일이니까.”
왓슨이 감탄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갔다.
작센당가는 독과 약의 명문.
그곳의 수제독은 부르는 게 값이다.
그중에서도 산공독Qi Disperser은 최고급으로 취급되진 않더라도 꽤 값이 나가는 고급품으로 제작단가가 높고 품이 많이 든다.
맨체스터에 공장을 두고 독을 대량으로 생산하는 리버풀 당가에선 높은 생산 단가를 고려해 제작하지 않는 물건인지라 비싼 돈을 주고 독일에서 수입하는 것 외에 입수법은 없다시피 하다.
그런데도 스코틀랜드 야드가 경감들에게 추포산을 나눠준 건 유령권마처럼 위험한 범죄자를 놓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겠지.
레스트레이드보단 내가 훨씬 유용하게 쓸 자신이 있으니 런던에 돌아가면 내무장관에게 부탁해 한두 통 정도 받아두어야겠다.
“홈즈. 자네의 심계가 이리도 깊은 줄은 내 차마 알지 못했네.”
“음?
레스트레이드가 유령권마의 발목을 질질 끌고 호텔로 돌아가는 것을 지켜보며 다시 곰방대를 물었는데 왓슨이 말을 걸었다.
“열차 선로를 끊은 건 나보다 먼저 도착하려 한 거고, 정원사로 변장해 땅을 판 건 전화선을 끊으려 한 거였군. 호텔에 들어올 때 나무를 옮겨 심던 것도 진법을 펼치기 위함이었을 테고.”
“정확하네.”
“레스트레이드에게도 미리 지시를 내렸고 말이야. 포셋 경이 살아있는 걸 내가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하게끔.”
“자네 말대로야.”
“…….”
왓슨은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쳐다보는 중이었다
어째 보이지 않는 위압감에 숨이 막힐 것만 같은 기분.
“너무 섭섭해하진 말게. 반대로 자네에게 준 쪽지에 무엇이 적혀 있었는진 레스트레이드 또한 모르고 있었으니. 이게 다 자네가 다치는 일 없이 유령권마를 추포하기 위한 계획―”
마차 안에서 체신장관이 광배Halo를 꺼냈을 때 이상으로 모골이 송연해지는 듯해 나도 모르게 궁색한 변명을 주워섬기고 말았다.
“생각대로 잘 풀려서 다행이로군.”
그녀는 산뜻하게 웃고 있었다.
“……왓슨.”
의외였다.
대뜸 화부터 낼 줄 알았는데.
“열차에 탈 때 말했지 않나. 이번만은 자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몰라도 믿고 따르겠다고.”
“…….”
입이 찢어져도 말할 수 없었다.
왓슨에게 자세한 계획을 알리지 않은 데에 범인을 방심케 만들어 그녀의 안전을 확보하는 것 외에도 다른 목적이 있었다는걸.
런던에 있는 내가 갑자기 호텔 바닥을 뚫고 케임브리지에 나타나면 왓슨이 놀랄 테고, 그쪽이 재밌을 거라 생각해서 저질렀다고는 절대 말할 수 없다.
“이해해줘서 고맙네.”
“단, 다음에도 내게 무언가를 감추려 든다면 그땐 이 지팡이가 가만히 있지 않을 걸세.”
“대체 어떻게 할 생각이길래.”
“원활한 사건 해결을 위해서라도 그건 비밀로 남겨둘 생각이야. 자네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지.”
나는 쓰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말주변이 많이 늘었군.”
“이것도 전부 자네 덕이라네.”
돌아서자 호텔 옥상에서 내려온 제갈율리와 안에서 기다리던 포셋 경이 레스트레이드가 끌고 간 유령권마를 둘러싸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게 보였다.
“……끝났군.”
런던을 위협하던 불가사의한 밀실 연쇄 살인 사건은 마침내 막을 내렸다.
다만, 내 귓가에는 여전히 요란한 전화벨 소리가 달라붙어 떨어지질 않고 있었다.
내겐 그것이 머지않아 찾아올 악마의 문안 인사와도 같이 느껴졌다.
“……아니. 이제 시작인가.”
직감이 속삭였다.
유령권마 티모시 영에게 전화기를 사용한 살초와 마공을 전수한 이번 사건의 배후자야말로, 사상 최악의 범죄 설계자라 일컬음 받는 자일 거라고.
“조만간 보게 될지도 모르겠군.”
상대는 유럽의 어둠을 지배하는 죄악의 절대의념Absoluter Geist.
감히 단언할 수 있다.
존 왓슨이 강호 어딘가에서 살아 숨 쉬고 있는 것처럼, 그자 역시 런던의 어둠 속에 숨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제임스 모리어티…….”
나는 잊을 수 없는 숙적의 이름을 되뇌며 곰방대를 물었다.
캠강에서 불어오는 밤바람이 어지럽게 연기를 흐트러뜨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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