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홈즈 런던앙복-60화 (60/110)

060. 통화를 마치고 (2)

When The Call Ends (2)

죄악 위에 영광의 제국을 건설할 수 있는 것처럼, 거짓 위에서 고귀한 대종사가 설법할 수도 있다.

-샤를 보들레르, <나심경裸心經>-

* * *

종교인이 검과 여러 무기로 스스로를 무장하는 건 세계 각지에서 오래전부터 이어져 내려온 전통이었다.

유럽인은 이교도에게서 영토와 순례자를 지키고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기사수도회를 창립, 무장수도사를 배출했다.

이러한 풍조를 따르던 건 중원인Midfielder 역시 마찬가지였다.

우화등선을 꿈꾸는 도가든, 아니면 불법승佛法僧의 삼보三寶에 귀의한 승가든.

신선과 부처가 되기 위해, 혹은 세상에 뜻을 펼치고 협을 행하기 위해 주먹을 쥐고 무기를 드는 건 마찬가지였으니까.

그 전통은 1세대 무림인Asian Kung-Fu Generation들의 한족대이동Chinese Exodus이 끝난 지 어언 200년이 지난 작금의 유럽에서도 여전히 계승되고 있었다.

스코틀랜드의 장로교도는 교인에게 종북파의 중검술을 가르쳤으며.

성산파의 본산인 바티칸은 이십사수백합검법을 익힌 구마사제를 양성하는 데 주력했고.

해검지DMZ의 존재와 영세중립문의 별명으로 유명한 무당수도회 역시 오래전부터 속가 용병단을 통해 유럽무림의 분쟁에 사사건건 개입하는 중이었다.

이러한 수도가修道家 문파의 가장 큰 특징은 교리와 무리武理를 함께 강조한다는 점이었다.

이는 기사수도회와 중원 출신 명문 정파의 성격을 고루 이어받은 결과.

무공은 과거 과학이 그랬던 것처럼 종교와 보폭을 맞춰 눈부신 발전을 이루고 있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사해를 주름잡는 대영제국이 이러한 시대의 흐름을 비껴가는 일은 없었다.

런던무림 시대가 열린 이래 무공 수련을 국가 차원에서 장려해온 결과 사람들은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내공과 외공을 단련하기 시작했다.

이와 같은 대대적인 사회적 변화를 주도하고 가속한 건 한 권의 책이었다.

1837년, 도널드 워커는 자신의 저서 <영무전본英武殿本>을 통해 신과 사회에 대한 진정한 헌신은 무공 수련을 통해 시작된다고 역설했다.

영무전본British Manly Exercise은 토납법과 운공 등 수련의 기초를 정리한 무공서로 인간의 몸이 영보성령을 모시는 거룩한 사당임을 강조하고 있었다.

협을 펼치고 주께서 그 자녀들에게 내린 사명을 따라 새로운 땅을 정복하기 위해, 기독교인은 강인해져야만 한다.

무공 기독교Kung-Fu Christianity라 불리는 이러한 철학 사조는 귀족과 중산층을 중심으로 널리 퍼져나갔고, 어느샌가 연합왕국 전체를 뒤덮어 하나의 시대정신으로 화했다.

사람들은 모든 장소에서 무武를 논하기 시작했고 사회의 밑바닥을 기는 이들에게도 이 거대한 담론에 참여할 기회가 주어졌다.

존 웨슬리의 무흥운동武興運動과 함께 시작된 소외 계층을 대상으로 한 전법은 주일무학교 운동Sunday Kung-Fu School Movement을 촉발.

성직자들은 성서의 가르침과 함께 주님의 어린양들에게 스스로를 무장하는 법을 알려주기 시작했다.

전국의 교회와 성당은 매주 일요일마다 비정한 강호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무공을 수련하는 아이들로 붐비게 되었다.

목사와 신부, 수도사가 무공을 가르치는 건 당연한 상식.

그런 인식이 모두의 머릿속에 자리 잡을 즈음, 한 남자가 나타났다.

작은 교회를 섬기는 젊고 자상한 신부로 알려진 그는 아무런 대가도 받지 않고 아이들에게 무공을 가르쳤다.

다른 곳에서 배울 수 있는 기초적인 정파 심법이나 초식과는 궤를 달리하는 전위적인 마공을.

* * *

런던 도심을 고고하게 흐르는 템즈강은 예로부터 대영제국 무림의 상징이자 이를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단어로 사랑받아왔다.

신진기예Young And Strong의 후기지수가 세대교체를 이뤄내는 걸 템즈강의 뒷물결이 앞물결을 밀어낸다泰姆後浪推前浪고 은유하거나.

가없이 반복되는 강호의 은원을 마르는 일 없이 도도히 북해로 흘러가는 템즈강不盡泰姆滾滾來에 빗대는 등.

그 외에도, 사람들은 한 데 섞이지 않는 정파와 사파를 두고 템즈강 이남과 이북에 비유하곤 했다.

130년 전까진 런던 교가 강북과 강남을 잇는 유일한 육로였고 다리가 막히면 사람들이 나루터지기의 도움을 받거나 등평도수Jesus Walk를 펼쳐야만 강을 건널 수 있던 까닭이다.

물론, 이는 템즈강에 수십 개의 다리가 놓이고 녹림도Merry Men가 무림맹에 거액의 기부금을 납부하는 요즘 시대엔 옛말이 된 이야기다.

무엇보다 비유와 달리 사파는 강북과 강남을 가리지 않고 활동하는 법.

또한, 런던의 어둠 속에는 흔히 사파나 흑도라고 불리는 자들보다 훨씬 사악한 무언가가 도사리고 있었다.

누구도 쉽게 그 존재를 알아차릴 수 없도록, 은밀하게.

런던무림맹과 왕립무학회의 눈이 미처 살피지 못한 곳에서.

-부오오오!!

안개가 자욱한 금요일.

오가는 배들에게 방향을 알리는 무적霧笛 소리가 울려 퍼지는 템즈강.

한 명의 사내가 런던 교 한가운데에 서서 강물에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었다.

통행량이 상당한 다리였지만 낚시를 시도하는 사람은 그가 유일.

사내가 사용하고 있는 것은 무려 15피트 길이의 기다란 낚싯대, 심지어 접이식도 아닌 대나무를 통째로 가공한 것으로 뭇사람의 이목을 끌 만한 물건이었다.

“거긴 낚시하기 좋은 자리가 아닌데.”

그런데도 어째서인지 사내에게 관심을 보이는 이는 건 지나가던 개방도 노인 하나뿐이었다.

“…….”

사내는 뜻밖이라는 듯 고개를 돌려 노인의 옷차림을 살폈다.

지긋한 나이에도 불구하고 옷에 매듭 하나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수습 개방도의 신분.

골프백을 메고 있는 것 외엔 이렇다 할 특징이 없다.

“노신老身의 말이 들리지 않나. 거긴 낚을 고기가 없대도, 이눔아. 저어기 강북 둔치로 가면 절호의 포인트가―”

“시간을 낚는 중입니다. 노인장께선 갈 길 가시지요.”

사내가 정중하게 대답하자 개방 노인이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자리를 떠났다.

직후, 낚싯대를 쥐고 있던 그의 손에 묵직한 감각이 느껴졌다.

“오.”

무려 네 시간 만에 한 마리를 낚는 데 성공했다.

사내는 싱글벙글 미소를 지으며 릴을 말았지만 낚싯바늘 끝에 걸려있던 건 유리병이었다.

정확히는, 고리 달린 코르크 마개로 봉해둔 병.

마치 낚시에 열중하는 사내를 위해 준비된 것처럼 보이는 물건이었고, 실제로 그러했다.

“하아…….”

병 안에 두 번 접은 쪽지가 들어있는 걸 확인한 사내가 노골적으로 실망한 기색을 드러냈다.

“……호출인가. 1년 만이군.”

사내가 진기를 끌어올리자 쥐고 있던 유리병이 소리 없이 미세한 가루로 변해 강바람에 흩어졌다.

“모처럼 푹 쉬나 싶었더니.”

손바닥에 남은 쪽지를 펼쳐 내용을 확인한 그는 곧바로 강남江南 방면으로 걷기 시작했다.

런던 교를 빠져나온 사내는 다리의 남쪽 끝에 세워진 비석 앞에 잠시 멈춰 서서 오염된 강물을 내려다보았다.

<템즈강泰姆江>

기일수풍북해유 幾日隨風北海遊

회종템즈대강두 回從泰姆大江頭

심심일편자침석 臣心一片磁鍼石

부지런던불긍휴 不指倫敦不肯休

바람 따라 북해를 주유하다

템즈강 기슭으로 돌아왔노라

마음속 나침반은 한 시도

런던을 향하지 않은 적 없도다

.

.

.

비석에는 템즈강에 놓인 최초의 다리를 기념하는 시구가 적혀 있었다.

바깥세상을 아무리 돌아다녀도 런던만큼 좋은 곳은 없다고 부르짖는 도시의 찬가.

이를 보고, 감은 건지 뜨고 있는 건지 알 수 없는 두 눈과 입매가 매끄러운 호를 그렸다.

사내가 품은 생각과 정확히 일치하는 시.

그동안 아프가니스탄과 남만Africa을 비롯해 다양한 지역을 누벼왔지만 개중 으뜸은 누가 뭐라 해도 런던이었다.

그가 생각하기에 이곳보다 악당이 살기 좋은 도시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늦진 않겠어.”

회중시계를 확인한 신사는 느긋한 걸음으로 서더크 대성당을 지나 버러 마켓博羅市場 입구에 도달했다.

900년 가까이 런던 시민들의 식재료 공급을 책임져온 최고最古 최대最大의 장터는 오늘도 사람으로 붐비고 있었다.

“고기 사시오! 신선한 고기!!”

시끄러운 시장바닥, 곳곳에서 들려오는 종소리와 고함 사이를 휘파람과 상인의 호객 문구가 비집고 튀어나온다.

푸줏간 주인, 채소를 파는 노점상, 행상인과 개방도, 그리고 부랑자까지.

다양한 인간군상이 오가는 시장은 악취와 소음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사내는 눈썹 하나 까딱이지 않고 유유히 걸었다.

큰 키에 준수한 외모, 심지어는 키의 두 배는 되는 길이의 낚싯대를 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놀라우리만치 그 누구도 사내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뿐만이 아니다.

비좁은 통로에 들어찬 사람들은 사내의 존재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그들의 몸은 자연스레 사람 하나가 지나갈 수 있을 너비로 길을 열어주고 있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힘이 사내와 주위 사람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을 만들어 그를 세상에서 격리하고 있는 것만 같은 광경이었다.

세상에서 동떨어져 사는 초월자가 인세를 거니는 듯한 신비로운 광경.

그렇게 사내는 그 누구의 이목도 사는 일 없이 버러 마켓을 통과해 목적지에 도착했다.

일월성신교회Church Of Asteroid.

오래된 현판이 걸린 교회 앞에 도착함과 동시에 강북江北의 거대한 시계탑에서 종소리가 울렸다.

오후 한 시. 정확히 약속한 시각에 도착한 사실에 만족스럽게 미소 지은 사내가 묵직한 나무문을 열어젖혔다.

-끼이익

교회 안에선 성직자와 기다란 나무 의자 위에서 가부좌를 틀고 공중에 부양 중인 아이들의 모습이 보였다.

“제때 왔구나Just In Time, 아해야.”

어린아이들을 바라보던 젊은 사제의 시선이 사내에게 향했다.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호칭으로 불린 남자는 낚싯대를 교회 벽에 기대두고 신부Father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바닥에 천천히 무릎을 꿇고 절했다.

“제자, 모용새파Sebastian Moran가 세존Lord께 문안드립니다.”

두꺼운 경전을 든 사제는 신묘한 보법으로 한 걸음 만에 지척까지 다가왔다.

지그시 감았다가 뜬 그의 눈은 흰자가 사라지고 칠흑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 위에 맺힌 건, 셀 수 없는 별빛을 물감 삼아 그려진 은하수.

“인자Son Of Man가 명한다―”

우주를 담은 기이한 두 눈.

목소리에는 거역할 수 없는 무게가 실려 있다.

“광명우사Right Hand Of The Throne 세바스천 모런慕容塞巴은 고개를 들라.”

중압감을 견디며 세바스천 모런은 스승이자 주인 되는 자의 존안을 올려다보았다.

마치, 지상의 인간이 빛나는 밤하늘을 앙망仰望하는 것처럼.

“잘 돌아와 주었다, 대령Colonel.”

신부는 고개를 든 사내에게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별의 이름으로 그대를 환영하노라.”

일월성신교Church Of Asteroid 교주.

별의 아버지Father Of Star.

죄악의 절대의념Absoluter Geist

제임스 모리어티가 오랜 침묵을 벗어나 런던출도倫敦出道를 논하려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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