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홈즈 런던앙복-62화 (62/110)

062. 일월성신교 (1)

Church Of Asteroid (1)

범죄의 성스러움을 축성하는 이 글귀에 별호를 적고 싶지 않은 그대여, 나는 그대의 관용이 강호처럼 광대했음을 알고 있다.

하지만 나.

나는, 아직도 존재하고 있다.

-로트레아몽, <말도로르의 가결歌訣>-

* * *

유령권마 티모시 영이 깨어난 곳은 감옥이 아니었다.

감옥은 아직 정식 재판을 거치지 않은 범죄자가 가는 장소가 아니었으므로.

그래서 판결을 앞둔 죄인을 어디에 가두어야만 하는가 하면, 구치소에 수감하는 것이 올바른 절차였다.

런던에는 수많은 구치소가 있었는데 그중 대다수는 철창으로 공터를 둘러싸 찬바람이 그대로 들어오는 구조를 띠고 있었다.

최고의 시대는 곧 최악의 시대.

연합왕국은 유례없는 영광을 누리고 있었지만 런던이 품은 어둠은 빛보다 짙었다.

그늘에서 숙성된 풍요의 향기는 수많은 범죄자를 끌어들였다.

경중을 막론하고 계산한 범죄의 발생 빈도는 대도시의 발전에 비례해 늘어나는 일변도.

하여, 런던의 구치소는 벽돌로 지은 좁은 공간에 사람 하나를 잠가두는 한적한 시골 마을의 미풍양속과 달리 재판을 앞둔 다수의 죄인을 철창에 가두어둘 필요가 있었다.

런던광역경찰청이 정상적으로 일을 처리했다면 티모시 영 역시 추포산으로 내공을 봉인당한 채 야외 구치소에서 다른 수감자와 함께 밤바람을 쐬고 있었을 것이다.

허나 지금, 그는 건물 6층 구석의 비교적 아늑하고 따스한 방에서 외풍을 피해 앉아있는 중이었다.

일반적인 범죄자보다 훨씬 나아 보이는 대우.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티모시 영이 불운이라 여길만한 구석은 끽해봤자 네 가지밖에 없었다.

이 건물이 스코틀랜드 야드라고 불리고, 방에 창문이 없으며, 복도와 건물 밖을 여러 명의 경찰이 지키고 있는 데에다, 변호사를 부를 수 없다는 것 정도.

티모시 영은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셜록 홈즈라는 사내, 용봉지회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을 해결했다길래 그저 머리가 나쁘지 않게 돌아가는 탐정 나부랭이인 줄 알았는데.

설마 그가 무공의 성취까지 자신보다 뛰어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빌어먹을.”

탐정이 케임브리지에 나타나지만 않았더라면 체신장관을 죽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성공했다면 계획대로 전화기와 다섯 건의 불가사의한 죽음에 관한 소문이 시민들을 불안에 떨게 했을 것이다.

전화 사용을 반대하는 시위대가 덩치를 불리고 공포를 조성하면 전화회사의 주가가 떨어지고 투자자가 사라질 터.

그다음은 쉽다.

그분께선 저평가된 전화회사를 차례차례 집어삼키셨을 테고 입김이 닿는 자를 새로운 체신장관으로 세워 소송을 취하하게 만드셨으리라.

전화는 전보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편의성을 갖추고 있었고 새로운 전음傳音 시장을 열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 발명품이다.

감히 그 가치를 존중하지 않고 전화회사를 강제로 우체국의 깃발 아래 무릎 꿇리려 한 탐욕스러운 정부를 용서할 수는 없다.

전화와 관련된 이권은 일월성신교가 차지해야만 한다.

악한 이들의 손에서 이를 되찾아 세계를 별자리가 인도하는 바른길로 이끄는 것이야말로 별의 아이가 지닌 사명이었으니까.

‘하늘의 뜻이 땅에서 이루어진 날, 너는 내 우편에서 왕 노릇 하리라.’

별의 아버지Father Of Star가 속삭이던 목소리가 지금도 티모시 영의 귓가를 맴돌고 있었다.

그리고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그가 알려준 구명지책 역시도 생생하게 머릿속에 떠오르는 중이었다.

‘계획이 어그러지더라도 걱정할 것 없느니라. 다 방법이 있으니.’

티모시 영은 문에 달린 자그마한 창으로 이쪽을 감시하는 경찰관의 시선을 피해 혀끝으로 왼쪽 어금니를 밀었다.

그러자 특수한 가공을 거친 이빨 뿌리가 뽑혀 나오며 아래에 감춰져 있던 구슬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정체는 교주의 곁에 있던 어린 복사Acolyte의 도움을 받아 숨겨둔 환약.

-까득

고통을 참아내고 반대쪽 어금니로 환약 표면을 얇게 감싼 밀랍을 깨뜨리자 입에 머금은 피에 닿은 환약이 순식간에 녹아내렸다.

“으윽…….”

다음 순간, 티모시 영의 전신을 격통이 엄습했다.

그의 몸은 비록 한 줄뿐이긴 해도 마공의 구결을 익히고 사용한 탓에 혈도가 만신창이가 된 상태.

거기에 환약의 부작용까지 더해지니 말 그대로 죽을 맛이었다.

하지만 티모시 영은 이를 악물고 이를 견뎌냈다.

만에 하나 경찰에게 붙잡힌다 해도 탈출할 방법이 있다는 교주의 말을 굳게 믿고 있던 까닭이었다.

-두근

심장 박동이 거세지며 미량의 진기가 몸을 순환하기 시작했다.

경찰이 투여한 산공독에 당해 내공을 사용할 수 없는 상황임을 고려하면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

이는 전부 방금 삼킨 환약의 효능이 일으킨 현상이었다.

“쿨럭……!”

기침과 함께 눅진한 핏물이 입에서 쏟아지는 것을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아 감췄다.

만에 하나 감시 중인 경찰이 보았다간 혀를 깨물어 자결한 거로 오해받아 일이 꼬일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유령권마가 삼킨 환약은 강한 독성을 지니고 있어 단전과 내장에 반영구적인 손상을 일으킨다.

그리고 이를 대가로 단전을 모방한 작은 의념 장기Imaginary Organ를 중단전 아래에 생성, 혈도가 뒤틀리거나 산공독에 당하는 등 위급한 상황에서도 공력을 운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

다만 인간의 힘으로 섭리를 거스르는 시도가 순조로울 리 만무하다.

그 공력은 미약하기 그지없어 갇혀있는 취조실의 벽을 부수거나 밖에서 감시하는 경찰들을 쓰러뜨리기엔 한참 모자란 것이었다.

티모시 영 역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무공을 펼쳐 탈출한다는 무식한 선택지는 처음부터 고를 생각이 없었다.

의념 장기가 강제로 선천지기를 쥐어짜 가공한 진기는 특이한 파장을 지니고 있었다.

특수한 훈련을 받은 무인이라면, 멀리서도 이를 감지할 수 있을 정도로.

‘어서…… 어서 나를 데리러 오란 말이다……!’

힘겹게 핏물을 삼키며 유령권마는 기다렸다.

머지않아 그를 찾아올 구원의 손길을.

* * *

일월성신교가 언제 어디에서 나타난 집단인지 아는 자는 교단 내에서도 그리 많지 않았다.

대스승의 가르침을 받아 경지를 이룬 진산제자Apostle들 역시 교주의 나이나 그 배경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을 정도였으니.

교주의 수제자인 세바스천 모런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광명우사, 그러니까 교주의 오른팔로 인정받고 나서야 그의 출생지가 독일의 슈바르츠발트黑木崖라는 이야기를 접한 게 전부.

모런이 느끼기에 일월성신교의 대스승 모리어티 교주는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특별한 인간이었다.

등선Ascension을 목전에 둔 존재를 자신 같은 하계의 미물을 칭할 때 사용하는 명칭으로 부르는 것이 옳은지는 언제나 의문이었으나.

교주는 늘 자신을 인자Son Of Man라 칭했고 깨우친 인간은 신보다 위대하다는 것이 그의 말버릇이었으니, 모용새파Sebastian Moran 또한 그를 인간으로 대하려고 노력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는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모리어티 교주가 모든 제자와 신도들이 우러러보는 초월적인 존재라는 사실은 그가 아무리 인간을 자칭해도 달라지지 않았기에.

모용세가Moran Family의 장자로 태어나 강호의 수많은 고수들을 보고 자란 모런이었지만 그가 살면서 마주친 무인 중 교주와 비할 수 있는 자는 없었다.

종교 집단이자 그 이상의 비밀스러운 정체성을 감춘 일월성신교의 대스승은 무공과 술법에 능하고 인세를 움직이는 도道에도 통달한 기인이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교주는 수비학Numerology과 천체무리학Astro-Qi-sics에 조예가 깊었고 별의 움직임을 읽어 불완전하게나마 가까운 미래를 예지하는 신묘막측한Miraculous&Unpredictabe 재주를 부렸다.

그야말로, 별의 아버지Father Of Star라는 칭호와 같이 종잡을 수 없는 존재.

다만, 오랫동안 그의 밑에서 임무를 수행해온 모런은 몇 가지 근거를 토대로 지금 그의 기분이 조금이나마 들떠있다는 사실을 추측할 수 있었다.

“……시위대를 물리셨더군요.”

두 사람은 교회 구석의 고해실에 숨겨진 계단을 지나 널찍한 지하 서재에서 마주 보고 앉아있었다.

“뜻밖의 방해가 있어서 말이지.”

교주가 미소 띤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모런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1년의 공백 기간 동안 런던에 머무르며 한가한 나날을 보냈으나 그동안 마냥 눈과 귀를 닫고 살았던 건 아니다.

런던을 나들이하며 낚시를 즐기는 건 모런의 취미였다.

몇 달 동안 웨스트민스터 교에서 시위를 벌이는 종교 집단의 모습도 낚시를 하는 틈틈이 지켜보던 참이었다.

시위대가 전원 일월성신교의 신도로 교주의 명령을 따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보는 건 어렵지 않았다.

독자적인 경전을 제작하며 거기에 악마 대신 천마라는 단어를 적어넣는 종교인은 모리어티를 포함해 몇 명 없었고, 시위대는 매일 밤 일월성신교회가 있는 서더크로 돌아갔으니까.

“…….”

아무것도 모르는 일월성신교 교인들이 몇 달 전부터 전화 사용을 반대하는 시위를 시작한 건 교주의 명령을 따른 결과일 것이다.

일월성신교는 교주 제임스 모리어티 개인을 위해 존재하는 집단이며 일반적인 종교와 달리 그가 지배하는 범죄 제국이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도록 돕는 위장막Camouflage이었다.

즉, 종교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전화의 사용을 반대하는 시위를 진행한 데엔 교주의 이권이 엮여있었다는 뜻.

예상대로 얼마 지나지 않아 모런은 전화와 연관된 연쇄 살인사건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접했다.

전화에 관한 공포를 퍼뜨려 전화 회사의 가치를 박살 낸 다음 집어삼키려는 것이 교주의 속셈이었을 터.

그런데, 사건은 미궁 속으로 빠지는 대신 깔끔하게 해결되었고 신도들은 시위를 그만두었다.

이는 미래의 이권을 노린 교주의 계획이 어그러졌다는 소리다.

그렇다면, 교주는 어째서 저리도 유쾌한 얼굴로 웃고 있는 걸까.

“……일이 꼬인 모양이군요.”

모용새파는 이곳에 오기 전 다리 위에서 낚은 유리병을 떠올렸다.

이미 이런 기이한 일에는 익숙해졌기에 놀라진 않았지만 여전히 교주가 무슨 술수를 부린 건진 짐작도 가지 않았다.

누군가가 템즈강에 잠수해 유리병을 바늘에 걸어둔 건 아니었다. 만일 그랬다면 넓게 펼친 기감이 이를 포착했을 터.

물에 띄운 유리병이 강물 위를 떠다니다 자신이 드리운 낚싯바늘에 걸렸다. 단지 그뿐이다.

바로 그렇기에 이는 더욱 불가해하게 느껴졌다. 교회에 머무르고 있던 교주가 템즈강의 흐름에 간섭할 수 있는 게 아닌 이상 유리병에 달린 고리가 정확히 낚싯바늘에 걸릴 이유는 없었으니까.

문제는, 안에 든 쪽지에 적힌 내용이었다.

별을 읽어 가까운 미래를 예지하는 교주는 대령을 부를 때 호출 지령에 더해 짧은 예언을 적어두곤 했다.

교주가 이번에 기록한 예언은 다음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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