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3. 일월성신교 (2)
Church Of Asteroid (2)
부호의 잘못은 돈으로 덮고, 의사의 잘못은 흙으로 덮지만, 무림인의 잘못은 오직 피로만 덮을 수 있다.
-영국 격언-
* * *
<강적출현Archenemy Spotted>
강적.
오랫동안 교주를 섬겨온 모런조차 단 한 번밖에 본 적 없는 단어였다.
교주의 계획은 실패하는 법이 없었다.
그는 최고의 무공 범죄 컨설턴트였고, 자신을 찾아온 범죄자 중 심약한 이들에게 섭혼대법Hypnosis을 펼쳐 장기말로 삼곤 했다.
교주는 매번 사건의 배후에서 암약하며 원하는 것을 얻어냈으며, 그 과정에서 걸림돌이 될 만한 자를 발견했을 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를 제거했다.
그렇기에 모런은 궁금해 견딜 수가 없었다.
교주의 계획을 망친 자가 어떻게 아직도 살아있을 수 있는 건지.
“저를 부르신 건, 처리할 자가 나타난 건지요.”
모런은 내심 기대하며 물었다.
대스승이 무려 강적이라는 표현까지 사용한 상대다.
만일 자신이 직접 그자를 죽일 수 있다면 그 이상의 영예는 없을 것이다.
“아니.”
하지만 모리어티 교주의 반응은 원하던 것과 달랐다.
“즐거워진 참인데 설레발을 쳐 흥을 깰 필요는 없겠지.”
대스승은 허공섭물로 찻주전자를 움직여 홍차를 따르며 말을 이었다.
“주제에 맞지 않는 걸 탐하는 아해가 가엾어 심법과 초식을 만들어 가르침을 내렸을 뿐이다. 소일거리에 누가 훼방을 놓았다고 화를 낼 필요는 없지.”
“원하시던 게 따로 있던 게 아니셨나요.”
“전화 회사의 주식이라면 다른 국가의 것이 있으니 됐다. 인자가 그대를 부름은 믿음의 형제 중 시련을 겪고 있는 자를 돕기 위함이다.”
도움. 그 두 글자를 듣고 나서야 세바스천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런 일이라면 언제든 환영이죠.”
서류철 하나가 저절로 대령의 코앞까지 날아와 멈췄다.
모런은 그것을 집어 펼쳤다. 서류에는 티모시 영이라는 이름과 용모파기, 그리고 그가 현재 구속된 장소가 적혀 있었다.
“믿음이 약한 아해는 자각 없이 입으로 화를 불러들이곤 하지.”
“가벼이 혀를 놀리지 못하도록 제가 도와야겠군요.”
교주는 침묵했지만 모런은 이미 그가 원하는 바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그럼, 다녀오도록 하죠.”
인사를 마친 세바스천 모런은 지상으로 올라가 교회 제단에 향을 피우고 합장했다.
머지않아 하늘의 별이 될, 가엾은 어린양의 죽음을 기리기 위해서.
“모든 것은 세존의 뜻대로As You Wish, My Lord.”
오늘 밤 흐르게 될 피는 감히 교주를 대적하려 드는 어리석은 자에게 보내는 편지와도 같다.
경고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다음은 그의 차례가 될 테니까.
* * *
심장이 터질 것만 같은 고통 속에서도 티모시 영은 자신이 오른팔인 자신을 교주가 버리지 않을 거라 믿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간절한 소망은 얼마 지나지 않아 기적을 일으켰다.
“티모시 영, 변호사 접견이다!”
잠시 후, 문밖에서 대기하던 형사가 유령권마의 이름을 불렀다.
변호인을 선임한 적은 없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
지금 문밖에 서 있는 건 교주가 보낸 사람이 틀림없다.
유령권마는 상기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경찰이 들여보낸 사내의 실루엣은 낯설었지만 이곳을 빠져나갈 생각에 들뜬 티모시 영의 입꼬리는 자꾸만 귀에 걸리려 하고 있었다.
“날이 쌀쌀한데 실내에 계셔서 다행이군요.”
그는 핏물로 붉게 물든 앞니가 드러나는 걸 필사적으로 감추며 능글맞게 웃는 변호인의 얼굴을 살폈다.
키가 헌칠하고 팔다리가 긴 사내.
지그시 감긴 눈매는 유려한 곡선을 그리고 있다.
마치 속세의 근심 걱정 따윈 모르고 살아가는 신선Saints을 방불케 하는 그의 여유로운 미소에 티모시 영은 저도 모르게 모든 경계심을 내려놓고 말았다.
“야외 구치소에 계셨다면 추위를 핑계로 술이라도 가져왔을 텐데, 급히 오느라 코담배 말곤 챙겨온 게 없군요. 미안하게 되었습니다―”
“늦었어……!! 대체 여태껏 뭘 하고 있던 건가!!”
“…….”
티모시 영은 대뜸 변호사를 하대하며 윽박지르기 시작했다.
객관적으로 생각했을 때 경찰을 설득해 네 건의 무공 살인과 한 건의 무공 살인 미수로 기소당하게 된 자신을 어렵사리 찾아온 자에게 보이는 태도로선 썩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었다.
“……수갑에 족쇄까지 차고 계시니 예민해지는 것도 이해하지만 상호간의 존중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존중은 네놈이 날 여기서 꺼낸 다음에 표하도록 하지. 이딴 답답한 놈을 보내다니, 아버지께선 대체 무슨 생각이신지…….”
그런데, 티모시 영이 말을 맺기도 전에 변호인의 낯빛이 변했다.
조금 전까지 보이던 온화한 미소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섬뜩한 노기가 대신했다.
-콰악!
남자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티모시 영의 목을 붙잡고 일어났다.
유령권마는 그의 가공할 만한 악력을 떨쳐내지 못하고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케, 케흑……!”
비명을 지르고 싶어도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경동맥이 졸리고 있어 니환궁에 산소가 공급되지 않아 의식이 자꾸만 멀어져 간다.
“어리석긴.”
변호인은 영의 얼굴이 람매Blueberry를 방불케 하는 색깔로 물든 다음에야 손아귀 힘을 풀어주었다.
“쿨럭!!”
티모시 영은 꼴사납게 바닥을 굴렀다.
기침과 함께 토사물이 섞인 핏물을 한 차례 쏟아내고 나서야 그는 상황이 묘하게 흘러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변호사가 자신을 상대로 폭력을 행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복도를 지키는 경찰은 아무런 반응이 없다.
이만큼 소란을 피웠으니 동정을 살피려 들만도 한데 이상하리만치 조용하다.
평범한 변호사 접견이라면 있을 수 없는 상황.
“개자식…… 아버지의 총애를 받는 내게 이런 굴욕을―.”
되는대로 주워섬기던 참에 불길한 상상이 티모시 영의 머릿속에서 떠오르기 시작했다.
죽음의 공포가 뇌에 각인된 순간 섭혼대법의 주박이 느슨해지며 이성적인 사고 능력이 약간이나마 돌아온 덕이었다.
경찰이 매수당해 이쪽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 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수단이야 어떻든 경찰을 끌어들이지 않았다면 변호인 접견을 핑계로 여기까지 올 수 없었을 테니까.
하지만, 만일 상대의 정체가 변호사가 아니라 살인멸구를 위해 파견된 살수라면?
제대로 내공을 수발할 수 없는 지금, 죽음을 피해갈 방법은 없다.
“네놈의 실수가 그분께 얼마나 누를 끼쳤는지 알고 있느냐. 죽음으로 사죄해도 모자랄 판에 감히 그분의 안배를 의심하다니!”
“사, 살려주십시오!! 다시는 아버지를 의심하지 않겠습니다! 여기서 꺼내주시기만 한다면 견마지로Humble Service를 다하겠으니 제발……!”
뒤늦게 상대와 자신의 역학 관계를 깨달은 티모시 영이 재빨리 무릎을 꿇고 바짓가랑이에 매달렸다.
비정한 살인자가 바닥에 머리를 찧으며 연신 사죄하는 모습에선 애잔함마저 느껴졌지만 이곳은 런던강호.
호수에 돌을 던지면 가라앉는 것처럼, 고수의 손짓 한 번에 하수의 혼이 저승으로 내려가는 곳이다.
그리고―
“……세 시군.”
템즈강에 던진 돌멩이가 다시 떠오르지 않듯이, 단말마를 뱃노래 삼아 삼도Styx를 건넌 혼백은 돌아오지 않는 법.
“겸손해지긴 너무 늦은 시간이지Too Late To Be Humble.”
사나운 미소와 함께 남자가 유령권마의 목을 향해 진기가 실린 손가락을 뻗었다.
* * *
“죽였습니까?”
내가 문을 닫고 복도로 나서자 풍채가 좋은 경감이 다가와 물었다.
“내가 뭣 하러? 기절시켰을 뿐일세.”
나는 꾸며냈던 음성이 아닌 평소의 목소리로 대답하고 면구Mask를 벗었다.
“현행범으로 홈즈 씨를 체포할 기회였는데 아쉽게 되었습니다.”
“헛소리가 늘었군.”
“그나저나 여전히 징그러운 변장 솜씨로군요. 아까 미리 면구를 보여주지 않았다면 누군지 알아보지 못했을 겁니다.”
“부탁이니까 헛소리와 비슷한 수준까지만 안법을 연마해줄 순 없겠나.”
“새겨듣도록 하죠. 그래서, 수확은 있으셨는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중요한 실마리를 하나 얻었네.”
티모시 영을 배후에서 조종한 흑막은 단초를 남기려 하지 않았지만 사소한 흔적으로부터 진실을 알아내는 건 나의 전문분야다.
“아쉽게도, 유령권마는 예상대로 허파에 바람만 든 잔챙이였다네.”
내가 착용하고 온 면구는 회귀 전 모리어티의 오른팔로 암약하던 세바스천 모런 대령의 얼굴을 모방한 것이었다.
모리어티는 모런 대령을 중요한 암살 임무를 수행할 때에만 파견했고 평소엔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조심하고 있었다.
이런 까닭에 나는 세바스천 모런이 티모시 영과 마주친 적이 없을 거라고 거진 확신하는 중이었다.
만에 하나 티모시 영이 변장한 내 얼굴을 보고 아는 척을 한다면 생각보다 유용한 정보를 지니고 있다는 뜻일 터.
그래서 시험 삼아 가짜 얼굴을 보여주었지만 놈은 모런의 이목구비를 알아보지 못했다.
물론 그렇다고 모리어티에 관한 정보를 아예 얻지 못한 건 아니었지만.
“예상대로 배후가 따로 존재하고 있는 모양이야.”
멀쩡히 돌아다닐 땐 몰랐는데 뇌정지기로 머리를 지지고 죽음을 각오하게 만드는 등 극한의 상황까지 몰아가니 놈이 모종의 방법으로 조종당해왔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티모시 영은 내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자신이 그동안 ‘아버지’를 위해 어떻게 자발적으로 헌신해 왔는지 설명했다.
아무래도 특정한 대상의 뜻을 따라 모든 것을 바치게 만드는 사이한 무공에 당한 게 틀림없었다.
세뇌당한 놈이 배후자에게 불리한 정보를 순순히 토해낼 리는 만무하다.
정신에 걸린 금제를 푼다 해도 이렇다 할 정보를 캐낼 수도 없었을 테지만.
“아쉽게 되었군요.”
경감은 내가 목적을 이루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듯했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었기에 나는 들뜬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그만 웃고 말았다.
“배후세력까지 일망타진할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말입니다.”
“…….”
다만, 이어진 레스트레이드의 말에는 침묵으로 응했다.
일망타진이라. 지금 스코틀랜드 야드와 내가 힘을 합쳐도 모리어티 일당을 제압하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
적어도, 내가 지금보다 훨씬 강해지지 않으면 어림도 없겠지.
“배후가 누군진 명백하네. 단지, 우리가 놈을 당장 찾아내 족칠 방도가 없다는 게 아쉬울 뿐이지.”
“정말입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사건의 흑막은 유령권마를 버리는 말로밖에 생각하지 않던 모양이지만 덕분에 놈의 정체에 한 걸음 가까워졌다네.”
“바로 공유해주시죠!! 스코틀랜드 야드의 수사망을 총동원하겠습니다!!”
높은 경지를 이룬 무인은 말린 육포에서도 육즙을 짜낼 수 있는 법.
모리어티는 티모시 영에게 중요한 정보를 무엇 하나 알려주지 않았지만 나는 기어코 중대한 실마리를 찾아내는 데에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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