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홈즈 런던앙복-64화 (64/110)

064. 초생달이 검 같아 (1)

Scimitar Of Allah (1)

점창파 무인은 달과 같아 타인에게 보이지 않는 어두운 일면에 살초를 감추고 있다.

-마크 트웨인-

* * *

“일 없네. 자네들이 움직여봤자 방해만 될 뿐이야.”

레스트레이드가 다그쳤지만 나는 그의 주머니에 꽂혀있던 펜을 빼돌려 피풍의Coat 소맷자락에 메모를 마쳤다.

“어딜 가시는 겁니까! 홈즈 씨!”

“지금은 바쁘니 나중에 다시 얘기합세!!”

경감이 집요하게 따라오려 했지만 빠른 걸음으로 그를 따돌리고 스코틀랜드 야드의 계단을 내려갔다.

“아버지Father, 인가…….”

티모시 영의 부모는 세상을 떠난 지 오래다.

유령권마가 누군가에게 입양된 기록 역시 존재하지 않고.

그렇다면 놈이 계속 주워섬기던 아버지라는 단어는 가족이 아닌 이를 칭한 것일 테고, 대영제국에서 그런 경우는 지극히 제한되어있다.

일단 떠오르는 건 서너 가지 정도.

첫째가 하나님 아버지Heavenly Father.

둘째가 믿음의 아버지Father Of Faith.

셋째가 이탈리아 무림의 사파 수괴Godfather.

넷째가 교주 혹은 신부Father.

유령권마가 신이나 아브라함에게 직접 무공을 배우진 않았을 테니 첫 번째와 두 번째는 배제.

세 번째 역시 비현실적이다. 티모시 영과 마피아 사이에 어떠한 연결고리도 찾아볼 수 없었으니까.

그럼 남은 건 네 번째.

모리어티가 양지에서 사용하는 신분은 아마도 성산파 신부, 혹은 종교 집단의 교주.

웨스트민스터 교에서 시위를 벌이던 자들의 특징을 고려하면 그들 역시 모리어티를 추종하는 무리가 틀림없다.

“거기 숨어 있었군.”

마침내, 런던 어딘가에 숨은 모리어티의 윤곽이 어렴풋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스코틀랜드 야드를 나서려고 문을 연 순간.

“음?”

어디선가 나타난 수십 마리의 쥐들이 내 발밑을 지나 밖으로 뛰쳐나가는 게 보였다.

무리를 이끄는 건 유독 털이 희고 몸집이 큰 놈이었는데 쥐 주제에 범상치 않은 기운을 품고 있었다.

영물. 그것도 꽤 오래 살아남은 녀석.

만성적인 영약 중독에 시달리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런던 한복판에서 쥐의 배를 갈라 내단을 취할 생각은 들지 않아 가만히 어둠 속으로 사라져가는 쥐떼의 뒷모습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잠깐.”

그러다 문득, 불길한 예감이 니환궁을 스치고 지나갔다.

쥐들이 이렇게 대량으로 탈출하는 건 배가 침몰하거나 건물이 무너지기 전에나 벌어지는 현상이다.

축생들은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기감으로 재앙의 징조를 일찌감치 파악해 도망치는 것으로 유명하다.

하물며 평범한 미물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감각을 지닌 영물이 그중에 섞여 있다면―

“과연……! 그런 거였나……!”

이대로는 유령권마가 모리어티의 손에 살해당하고 만다.

나는 곧바로 몸을 돌려 계단을 뛰어오르기 시작했다.

* * *

셜록 홈즈가 기억 속 세바스천 모런의 얼굴로 변장해 티모시 영을 만나는 동안 진짜 대령은 전혀 다른 곳에 있었다.

“……늦네.”

이곳은 천체무리학天體武理學에 조예가 깊은 건축가 크리스토퍼 렌의 설계를 따라 365피트의 높이로 지어진 세인트 폴 대성당聖保羅大聖堂.

종교 활동과 무공 수련의 인프라를 확충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성공회 성당의 크고 아름다운 돔 위에, 세바스천 모런은 서 있었다.

“이러다 할아버지가 되어버리겠는걸.”

달빛 아래 은은한 광채를 발하는 십자가에 비스듬히 몸을 기댄 전직 군인은 기감을 넓게 퍼뜨리고 있었다.

그는 교주의 명을 따라 런던 곳곳을 돌며 유령권마 티모시 영의 기파를 찾아다니는 중이었다.

모처럼 불려 나왔지만 이런 귀찮은 일은 빠르게 처리한 다음 낚시나 하고 싶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찾았다.”

그때였다.

저격검수의 초월적인 기감이 기파를 포착한 건.

“화이트홀 방면…….”

일반적인 무림인이 절대 감지할 수 없는 특수한 파장이지만 전문적인 훈련을 쌓은 세바스천 모런은 이를 놓치지 않았다.

“구치소 대신 스코틀랜드 야드에 가두었나. 그나마 머릴 좀 썼군.”

세인트 폴 대성당 지붕에서 뛰어내린 모런은 낚싯대를 들고 남서쪽으로 도약, 비범한 경공을 펼쳐 단 두 걸음만에 템즈강을 가로지르는 블랙프라이어스 교橋의 북단에 도착했다.

“이쯤이 좋겠군.”

타겟이 기파를 발하고 있는 곳은 스코틀랜드 야드의 꼭대기 층.

시야를 워털루 교와 다른 건물이 가로막고 있어 사선射線을 확보하는 게 쉽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모런은 천천히 기수식Warming Up을 펼치기 시작했다.

1마일에 달하는 거리도, 시야를 가리는 다리와 건물도 그의 기감 앞에선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환단을 삼킨 타겟의 체내엔 하단전을 모방한 유사 의념 장기가 생성되는데, 이때 생겨난 진기의 기파는 평범한 무인의 것과는 전혀 다른 성질을 지니고 있었다.

기파는 곧 진기의 파도. 그리고 파도의 본질은 물결을 이루어 흔들리는 데에 있다.

유사 의념 장기가 발하는 기파는 그중에서도 초당 3~30만 번 진동하는 초장기파Very Low Qi Frequency로 건물 벽과 바닷물, 구름을 뚫고 멀리까지 전해진다.

모런은 이를 실시간으로 추적하며 출수할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흠.”

티모시 영의 기파를 감시하던 와중 파장이 눈에 띄게 흐트러지는 것이 느껴졌다.

감시 중인 경찰과 마찰이라도 일어난 걸까.

하지만 숙련된 저격검수 세바스천 모런은 동요하지 않았다. 그저 차분히 때를 기다릴 뿐.

잠시 후, 기파가 안정된 것을 확인한 대령이 가늘게 눈을 떴다.

날카로운 눈빛은 달빛 아래를 흐르는 템즈강과 워털루 교, 그리고 시야를 가로막는 건물과 두껍고 단단한 벽 너머에서 갓 몸을 일으킨 타겟을 똑바로 주시하고 있었다.

-챙

줄을 전부 풀어 낭창낭창하게 휘는 낚싯대. 끝부분의 가느다란 대나무 마디를 잡아당기자 손가락 하나 길이의 얇은 날붙이가 드러났다.

대나무를 통째로 가공한 낚싯대의 정체는 모런의 기문병기였다.

아스칼론亮銀殺龍.

혹자는 창이라고, 혹자는 검이라고 부르는 성 게오르기우스聖喬治의 독문병기.

용을 베었다는 전설과는 어울리지 않는 앙증맞은 창날, 혹은 칼날은 우스꽝스럽게 템즈강 위로 부는 바람을 따라 흔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리저리 휘어지던 예리한 날붙이는 모런의 진기에 반응해 낚싯대와 함께 꼿꼿하게 일자로 펴졌다.

날붙이를 이루고 있는 건 천재지보天材地寶라 일컬어지는 신묘한 재료 중에서도 구하기가 하늘의 별을 따는 것보다 어렵다는 형상기억태을합정금形狀記憶太乙合精金.

진기에 반응해 유柔와 강鋼을 자유자재로 오가는 고유의 성질이 아스칼론에게 연병기軟兵器와 경병기硬兵器의 면모를 동시에 부여하고 있었다.

“스으으…….”

고개를 들어 목표의 위치를 확인한 모런이 크게 숨을 들이켜며 공력을 일으켰다.

모용세가의 독문진기가 혈도를 순환하자 내력이 만들어낸 아지랑이가 그의 주위를 감쌌다.

-화악!

다음 순간, 신고 있던 구두의 굽을 감싸고 있던 가죽이 가루로 변하며 흩어졌다.

위장이 벗겨지며 드러난 건 바닥에 날카로운 스파이크가 주조된 검고 무거운 오금烏金제 굽.

저격검수가 도움닫기를 할 때 발이 미끄러지는 걸 막고 제자일 검법을 출수할 때 발생하는 반동을 제어하기 위해 신는 검법 스파이크화였다.

-고오오

기운과 기척을 모두 감추는 최상승의 잠행술을 해제한 모런은 제자일 검법의 구결을 역순으로 운공하기 시작했다.

강호에 존재하는 모든 마공이 공유하는 벽두劈頭, 도행역시Paradox.

무武는 동전의 양면처럼 원융圓融하여 정파 무공의 구결을 역행하고 약간의 변화를 더하기만 해도 마공의 어두운 힘을 끌어낼 수 있는 법이다.

마공이 지니는 패도적인 위력은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이들의 연구를 거쳐 완성된 정파 무공의 균형을 의도적으로 일그러뜨리는 데에서 나온다.

제자일 검법의 구결을 역행해 펼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건 세 가지.

검기의 속도와 관통력, 그리고 비거리의 상승.

모런은 오른손에 모든 진기를 집중하기 위해 혈도를 무시하고 체내를 흐르는 진기의 축을 비스듬히 기울였다.

-콰아아아아!!!!

종방향에 더해 횡방향으로 역류하는 진기의 회전.

느닷없이 템즈강의 흐름이 거세지나 싶더니 강물에 비춘 달그림자가 사정없이 일그러졌다.

모런의 진기가 발하는 간섭력에 블랙프라이어스 교 위의 안개는 물론 다리 밑을 흐르는 강물까지 반시계방향으로 소용돌이치기 시작한 까닭이었다.

-타탓!

제자리에서 두 번 도약한 모런의 신형이 착지와 동시에 전방으로 쏘아져 나갔다.

초고속의 도움닫기. 저격검수는 들이켠 숨을 폐에 가두고 혈도와 세맥을 통제했다.

모런은 사일검법의 진전을 이어 천하제일의 찌르기를 자랑하는 제자일 검법의 초식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동작으로 애병을 내질렀다.

눈에도 보이지 않는 속도로 아스칼론을 휘두르자 전신의 근육과 진기가 협응하며 초식이 손끝에서 물 흐르듯 출수되기 시작했다.

검법보다는 원투낚시를 닮은 투박한 움직임.

팔을 뻗은 찰나, 완벽한 진기 제어로 경화硬化되어 있던 무기에 변화가 일어났다.

-휘릭

선단에 달린 날붙이가 채찍처럼 부드럽게 휘었다.

그 궤적이 그리는 건 작디작은 초승달.

-끼이이익!!

-콰직!

검법 스파이크화의 굽이 블랙프라이어스 교의 단단한 바닥을 미끄러지다 정지한 순간, 검망劍鋩이 머금고 있던 진기가 전방으로 쏘아졌다.

-신월여명검 新月如名劍

-작상산두일 斫上山頭日

-추지각무성 墜地却無聲

-일화역횡로 日華亦橫路

초생달이 검 같아 산마루의 해를 베었는데.

떨어져도 소리 없고 햇빛, 길가에 드리우네.

行施逆倒패러독스

-日華亦橫路 일화역횡로

-墜地却無聲 추지각무성

-斫上山頭日 작상산두일

-新月如名劍 신월여명검

햇빛 길가에 드리우네

떨어져도 소리가 없고

산마루의 해를 가르는

신월은 명검과 같도다

역행한 구결을 따라 펼쳐진 점창파의 비전절기Esoterica, 진주사일眞主射日.

한 줄기 검기가 소리보다 빠르게 런던의 밤하늘을 날았다.

경전에 따르면 달의 신 알라Allah는 태양을 떨어뜨리고 유일한 신眞主이 되었다.

진주사일Allahu Akbar은 그 이적Jihad을 본딴 초식.

드높은 하늘에서 지상을 굽어살피는 달빛은 런던의 구름과 안개가 가릴 수 있다.

하지만 알라의 신월도Scimitar Of Allah라 일컬어지는 그 검기는 삼라만상을 꿰뚫는다.

1760야드의 거리도, 저격검수와 타겟을 잇는 사선射線을 가로막는 다리와 건물도, 제자일 검법이 흩뿌리는 차가운 검광으로부터 유령권마의 목숨을 지켜줄 수는 없다.

이는 곧 초승달의 형상을 띤 죽음이요, 신의 심판.

검기는 의념이 그린 곧게 뻗은 직선을 따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날아갔고, 모런은 결과를 직접 눈으로 확인할 필요가 없었다.

“……파하!”

출수를 마친 모런이 참고 있던 숨을 토해낸 다음 순간, 거대한 충격과 소리가 블랙프라이어스 교를 덮쳤다.

-콰앙!

검기가 적중한 것보다 한참 뒤에 울려 퍼진 파공성.

최신 공법으로 쌓은 다리가 격한 진동에 휩싸였고 그에 이어서―

아주 잠깐이지만.

템즈강이 거꾸로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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