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5. 초생달이 검 같아 (2)
Scimitar Of Allah (2)
비급과 신병이기는 위대한 천재가 강호에 남기는 유산이다. 이는 세대를 거쳐 계승되며 아직 태어나지 않은 미래의 후인들에게로 이어진다.
-조지프 애디슨-
* * *
“제발 늦지만 말아다오.”
처음 위화감을 느낀 건 아까 티모시 영의 목을 졸랐을 때였다.
놈의 혈도를 짚은 나는 감지하기조차 힘든 극미량의 진기가 체내를 순환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이를 확인하고도 내가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은 이유는 간단했다.
산공독을 복용해도 하루가 지나면 으레 저 정도 양의 진기가 새어 움직이는 일은 흔하다.
독을 먹어 자결하려는 낌새는 보이지 않았고 기파 역시 거의 느껴지지 않다시피 했다.
모리어티가 살인멸구를 노리고 만리향Hundred Thymes 등 추적에 사용되는 향료를 묻혀두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확인해보았지만 수상한 냄새는 나지 않았다.
무엇보다 나는 놈에게서 필요한 정보를 전부 빼냈다고 생각한 결과 만족하고 있었다.
하지만 인제 와서 생각해보니 나는 세바스천 모런으로 변장해 방에 들어왔을 때 놈이 의기양양한 태도를 보였다는 사실에 의문을 품었어야만 했다.
‘늦었어……!! 대체 여태껏 뭘 하고 있던 건가!!’
유령권마는 분명 그렇게 말했다.
마치 나를 기다리고 있던 것처럼.
처음엔 회사나 지인, 혹은 가족이 변호사를 불러준 거라고 착각한 게 아닐까 싶었지만 실상은 달랐다.
놈은 자신이 어디에 갇혀있든 이번 사건의 배후가 찾아낼 수 있을 거라 믿고 있었다.
즉, 모리어티에겐 언제든 티모시 영을 찾아낼 방법이 있었다는 뜻이다.
내가 감지해낸 극미량의 진기야말로 그 열쇠일 터.
“홈즈 씨? 이번엔 또 무슨 일―”
“당장 거길 비키게! 레스트레이드!!”
나는 천마장의 검집인 지팡이를 분리해 오른손에 쥐었다.
-키이잉!!
진기를 불어넣어 지팡이의 첫 번째 기믹을 작동. 빠르게 휘두르자 그 형태에 변화가 일어났다.
지팡이의 끝부분을 얇은 막처럼 감싸고 있던 형상기억태을합정금形狀記憶太乙合精金이 얇은 사과 껍질처럼 벗겨지더니 순식간에 예리하고 단단한 도끼날의 형태를 갖췄다.
완성된 건 대마두 리처드 1세獅子心王의 애병으로 알려진 외날도끼Dane Axe를 본뜬 천마장의 첫 번째 변형.
이미 모리어티의 살수가 안에 잠입했을지도 모른다.
도끼는 실내에서 싸워야 하는 경우를 대비한 무장.
문을 쪼개고 안으로 뛰어들자 기절한 티모시 영이 보였는데 그 외에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서둘러야겠군.”
최악의 상황은 면했다.
이제 모리어티가 살인멸구를 꾀하기 전에 추적을 막고 놈을 안전한 곳으로 옮겨야만 한다.
재판의 결과 사형을 선고당해 맞이하는 죽음과 증거를 인멸하려는 악인의 시도에 의해 마주하게 되는 죽음 사이엔 천양지차가 있다.
-파파팟!!
재빨리 놈에게 접근해 혈도를 점혈.
잠깐이지만 유령권마를 가사 상태로 만들어 진기의 순환을 멈춘 다음 멱살을 잡고 복도로 끌어내려 한 그때.
“……!!”
모골이 송연해지는 감각이 전신을 엄습했다.
내공의 존재로 인해 확장된 감각이 포착한 흉험한 징조.
취합한 정보가 모여 한없이 미래 예지에 가까운 직감을 형성해냈다.
반응하지 못하면 죽는다.
제때 반응한다 해도 움직이지 않으면 죽는다.
두꺼운 벽 너머에서 빠르게 이쪽을 향해 날아오는 기운.
며칠 전 체신장관을 노리던 티모시 영의 권풍과는 속도도 위력도 비교할 수 없었다.
-휘릭!
사고를 거치지 않고 몸이 움직였다.
티모시 영을 바닥에 던짐과 동시에 몸을 회전.
오른손에 쥔 도끼로 다가오는 죽음과 맞섰다.
-카아앙!!!
소리를 따돌리고 비행한 기운이 도끼날과 충돌.
충격이 좁은 방 안에 퍼져나갔다.
“큭……!!”
안법으로 좇긴커녕 반응하는 것조차 어려운 신속의 살초.
가볍기가 깃털과도 같지만 구 무시무시한 속도로 인해 가공할 살상력을 갖춘 기운을 막아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흡사 고수의 검격을 지척에서 막아내는 것만 같은 감각.
다행히도 내가 쥐고 있는 건 검이 아닌 도끼였다.
도끼날의 작용점에 비력臂力과 내공을 온전히 집중한다면 저 흉맹한 기운을 반으로 가를 수 있다.
다만, 그 예리함만 믿고 기운을 둘로 쪼갰다간 파편이 내 몸을 파고들 터.
‘그렇다면, 흘린다.’
외날 도끼를 쥔 손목을 슬며시 틀어 도끼날과 부닥친 기운을 빗겨냈다.
-퓩
영원 같은 찰나가 지나자, 뒤늦게 따라온 소리와 풍압이 내 머리칼을 흔들고 지나갔다.
고개를 들자 천장에 떠오른 초승달이 보였다.
정확히는, 귀신이 도려낸 것처럼 돌 부스러기 하나 남기지 않고 깔끔하게 뚫린 신월 모양의 구멍이.
다시 시선을 벽으로 돌리자 완벽히 똑같은 크기와 모양의 공혈이 생겨나 있는 게 보였다.
“……잔챙이 하나 죽이겠다고 이 정도까지 할 줄이야.”
그것은 조금의 힘도 흘리지 않고 완벽하게 통제한 무공으로 암살을 시도한 흔적이었다.
“레스트레이드. 유령권마를 맡고 있게.”
경악스러울 정도로 은밀하고 흉포한 초식.
만일 내가 오지 않았더라면 저 예리한 검기가 티모시 영의 심장을 꿰뚫고 지나갔을 터.
“저긴가.”
흉수의 위치는 기운이 날아온 각도로 파악을 끝냈다.
“잠시 다녀오겠네.”
나는 얼빠진 얼굴의 경감이 대답하기 전에 쥔 검으로 벽을 둥글게 도려낸 다음 뛰쳐나갔다.
차가운 밤공기가 얼굴을 할퀴는 새벽 4시.
불길한 오운烏雲이 런던의 신월新月을 뒤덮고 있었다.
* * *
귀가한 체신장관 헨리 포셋이 가장 먼저 한 일은 데이빗大比을 돌보는 것이었다.
신천옹Albatross을 방불케 하는 거대한 몸집의 비둘기는 지붕 위에 앉아 가슴에 머리를 파묻고 곤히 잠들어 있었다.
런던과 바다 건너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곤륜대성당을 고작 하루 만에 왕복하는 건 아무리 영물이라 해도 쉬운 일이 아니다.
“인간의 잘못 때문에 네가 고생이 많았구나.”
포셋은 혈도를 짚어 비둘기의 피로를 풀어준 다음 사료 그릇에 영약을 섞은 먹이를 넉넉히 채워두었다. 평소처럼 등에 모포를 덮어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침실로 돌아가 잠을 청했던 그가 깨어난 건 이른 새벽이었다.
잠이 달아난 김에 운기조식을 마치자 상쾌한 기운이 전신의 혈도를 질주하는 게 느껴졌다.
포셋은 아직 동이 트지 않은 런던의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미지근한 술을 잔에 따랐다.
머릿속엔 지난 밤 해결된 연쇄 살인 사건에 관한 생각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주로, 사건을 해결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해준 수사 자문가와.
“아끼는 제자라며 그렇게 감싸고 돌더니…… .”
그의 스승에 관한 기억이.
-드륵
서랍을 열자 오래된 상자 두 개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중에서 포셋이 집은 건 돌을 가공해 만든 함.
안에 들어있던 물건은 반지였다.
“결국은 이렇게 만나게 되는군.”
이 두 눈이 빛을 잃고 얼마 지나지 않았던 젊은 시절.
무武를 내려놓고 삶을 포기하려 했던 포셋에게 한 줄기 광명을 보여준 사내가 있었다.
인류사에 다신 없을 무재武才를 지니고 있던 그는 진세塵世와 범속凡俗을 넘어 일대종사의 길을 걷는 자였고, 포셋은 기이한 인연에 끌려 그와 우정을 나누게 되었다.
사내가 전수한 방향정위대법은 눈이 보이지 않아도 바른 길을 걸을 수 있음을 포셋에게 알려주었다.
포셋은 대종사의 힘과 뜻에 감화되었고, 어느샌가 그의 열렬한 추종자이자 지지자가 되었다.
그리고 이 반지는, 당시 뜻을 함께 하던 동지들과 나눠가졌던 징표였다.
“……천마의 전인이라. 과연, 명불허전이로군.”
셜록 홈즈를 만나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지만, 그가 대종사의 전인이라는 사실은 진즉에 눈치챘다.
중앙 우체국에서 마주친 후기지수의 특징이 대종사가 제자의 성취에 관해 혁신문Reform Club에서 골백번은 족히 떠들어댔던 것과 완벽하게 일치하고 있었으니까.
포셋은 함께 행동하는 내내 그를 유심히 관찰했다.
‘수사 자문가로 활동 중인 셜록 홈즈입니다. 스승에게서 소천마라는 과분한 외호를 받았습니다.’
‘소천마인가. 정겨운 별호Call Sign로군. 그럼 그쪽 친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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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를 보고 있으면 자꾸 그 남자가 떠오르는군.’
‘혹시 그자가 저와 같은 성씨를 갖고 있습니까?’
‘오. 어떻게 알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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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다니는 동안 옛 추억을 되새기기도 했지만, 대화를 나누고 광배Halo를 꺼내거나, 자신을 노리고 날아오는 암기의 존재를 눈치 채고도 피하지 않은 건 모두 친우의 제자의 됨됨이와 그 성취를 확인하기 위한 행동.
“어려운 약속을 하고 말았지만, 사내로서 응당 지켜야겠지.”
런던을 떠나기 전, 대종사는 반지를 나눠가진 호법護法과 친구들에게 하나씩 유산Heritage을 맡기며 부탁했다.
언젠가 자신의 무맥을 이은 전인이 나타나 자격을 증명했을 때, 그에게 이 선물을 전해달라고.
그리고, 사정이 허락한다면 그에게 힘을 보태달라고.
포셋이 홈즈에게 곤륜대성당에 전해져 내려오는 뇌정지기의 구결을 알려준 것 역시 대종사와의 약속을 떠올린 까닭이었다.
“…….”
대종사가 모습을 감추고 같은 길을 걷던 혁신문도革新門徒들이 뿔뿔이 흩어진 지금은 추억으로 변해 가끔씩 술과 함께 곱씹기만 하는 일이라지만.
천마의 전인이 나타난 지금은 유독 선명하게 머릿속에 떠오르고 있었다.
-구구
그때였다. 창밖에서 데이빗의 울음소리가 들려온 건.
방금 전까지 잠들어 있더니 그새 깨어난 걸까.
불길한 예감에 창문을 연 순간 템즈강이 요동치며 발하는 소음이 날아들었다.
짧지만 날카로운 기파. 화살 같은 기운 한 줄기가 런던의 밤하늘을 가로질렀다.
“흉증凶證이로다.”
템즈강이 역행했다.
천리를 거스르는 현상이 일어나는 건 예로부터 좋은 징조가 아니다.
“천마의 전인이 걷는 길에 창검이 가득하겠구나.”
앞으로 수많은 고난과 마주하게 될 셜록 홈즈에게 천마의 유산을 전해주어야 한다. 그리고, 개인적인 사례 역시도.
헨리 포셋은 그렇게 다짐하며 빈 잔을 하나 더 꺼내 술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는 몇 년이고 소식이 없는 그의 친구를 기리며 그 잔을 창틀 위에 두었다.
오래전에 그랬던 것처럼, 언젠가 그와 다시 잔을 부딪치는 날이 오길 기도하면서.
* * *
스코틀랜드 야드 밖으로 도약한 직후 허공답보Air Walk를 펼쳐 건물 두어 채의 옥상을 차례차례 건너뛰었다.
안법으로 살피자 내가 건너뛴 건물에도 조금 전 경찰청 벽에 생겨난 초승달 모양의 구멍이 똑같이 뚫려 있는 게 보였다.
예상대로 가까운 건물에서 저격한 게 아니다.
살수는 직접 스코틀랜드 야드에 시야가 닿지 않는 더욱 먼 곳에서 기운을 날려 암살을 시도했다.
티모시 영이 있던 방의 벽과 천장을 꿰뚫은 사선射線의 연장선을 머릿속에 떠올리자 범인의 위치가 절로 그려졌다.
그런데.
“맙소사.”
아래를 내려다보자 템즈강이 요동치며 큰 파도가 이는 게 보였다.
방금 내가 잘못 본 건가.
강물이 거꾸로 흐른 것 같은데.
-타탓!
눈을 의심케 만드는 광경을 애써 무시하고 헝거포드 교 앞으로 뛰어내린 나는 빅토리아 엠뱅크망을 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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