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홈즈 런던앙복-68화 (68/110)

068. 영탄가 (1)

Ayre (1)

심마가 왕에게 이를 때에 소년이 하프를 취하여 탄즉 심마가 떠나더라.

-구약 성경-

* * *

모리어티는 유럽 전역에 자신의 눈과 귀가 되어주는 간자를 배치하고 있다.

반면 내가 움직일 수 있는 건 끽해봤자 어린 개방도 몇 명과 스코틀랜드 야드가 전부.

전자는 조사할 수 있는 범위가 제한되어있고 후자는 조건을 만족하지 못하면 내가 원하는 대로 일해주지 않는다.

만일 하오문이 나의 눈과 귀가 되어 필요한 정보를 모으는 데에 협조해준다면 유용한 도구가 하나 늘어나는 셈이다.

오래전부터 회색지대에서 값진 정보를 거래해온 그들의 힘을 빌릴 수 있다면 모든 일이 수월해질 것이다.

물론, 그들이 이미 모리어티의 지배를 받고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으니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겠지만.

“이런. 또 부작용이―”

그때였다. 예고 없이 날카로운 두통이 관자놀이를 찌르기 시작했다.

다시금 귓가에 맴돌기 시작한 환청.

침대로 돌아가 가부좌를 틀고 짧게 운기조식을 시작했다.

영약의 기운이 단전으로 흡수되며 부작용을 어느 정도 억누르는 데엔 성공했지만 아직 심각한 문제가 하나 남아있었다.

심상세계 속으로 들어가 기억의 궁전을 관조하자 저번엔 보지 못했던 크고 검은 책의 첫 번째 페이지가 펼쳐져 있는 게 보였다.

“……결국 시작되고 말았나.”

내가 겪은 환청은 예상했던 대로 스승이 예고했던 징조였다.

세바스천 모런의 마기에 노출된 탓에 사자심법의 두 번째 부작용이 본격적으로 일어나려 하고 있었다.

언젠가 벌어질 일이라곤 알고 있었지만 썩 달갑지는 않은 상황.

다행히도, 미리 스승의 언질을 들어둔 덕에 나는 오래전부터 대비책을 마련해두었다.

-팟!

모처럼 기억의 궁전에 들어선 김에 몇 권인가 새로운 책을 정리해 내공의 금제를 푼 다음 운기조식을 마쳤다.

“약속을 지킬 때가 왔군.”

시곗바늘은 오전 6시 2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나는 현실로 돌아오자마자 침대 밑에서 기다란 케이스를 꺼냈다.

먼지 쌓인 케이스를 열자 빛바랜 옛 친구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것은 심마를 다스리기 위해 준비한 나의 비장의 무기.

“허드슨 부인에게 미리 양해를 구해두길 정말 잘했어.”

나는 분연히 떨치고 일어나 거울을 노려보았다.

그리고는 거울 속에 비춘 셜록 홈즈에게, 머릿속에서 속삭이는 검은 그림자에게 말을 걸었다.

“각오해라. 최악의 이웃. 층간소음의 무서움을 보여주마.”

이젠, 왕의 망령Hamlet과 맞설 시간이다.

* * *

왓슨은 꿈을 꾸었다.

꿈의 시작은 언제나 같았다.

그녀의 둘째 오라버니 존 왓슨이 아직 가족과 함께 있던 시절.

함께 무공서를 탐독하고, 얻은 깨달음을 공유하는 나날의 추억.

존은 게으르고 악한 첫째 헨리를 대신해 부모의 기대와 관심을 한몸에 받는 차남이었다.

뛰어난 무재와 성실함을 두루 갖춘 존은 당시부터 구음절맥의 증상에 시달리던 동생을 위해 무학 외에도 밤을 새며 의학과 약학을 비롯해 다양한 방면의 지식을 습득하기 위해 노력했다.

채 아홉 살도 되지 않는 나이를 고려하면 무척이나 어른스러운 마음가짐.

그런 형제의 상냥함에 제인은 언제나 고마움과 미안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제인은 존의 얼굴에서 이따금 엿보이는 그림자를 두려워했다.

자신을 바라보는 오라버니의 얼굴에는 언제나 옅은 슬픔이나 처연함이 깃들어 있었다.

마치 쌍둥이 동생이 절맥증이란 저주받은 체질을 타고난 것이 남들처럼 아무 탈 없이 건강한 몸을 지닌 본인의 탓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그런 근거 없는 부채의식이 오라버니를 짓누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린 동생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기껏해봤자 하루빨리 아픈 몸이 낫길 기도하며, 몇 분 먼저 태어난 형제에게 자신은 괜찮으니 무리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는 것 정도.

허나 그런 시도 역시 중압감에 시달리던 존 왓슨이 무너지는 것을 막진 못했다.

언제부터인가, 존은 표정을 잃었다.

상냥했던 형제는 낯선 타인을 보는 듯한 눈으로 가족을 대하며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공허한 얼굴로 멍하니 허공을 주시하며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대는 모습은 그야말로 한 명의 광인.

유명한 의원에게 데려가봤지만 교수는 존의 두개골을 여는 데에만 흥미를 보일 뿐이었다.

섬망 증상이 일어난 날 왓슨이 대단히 흥미로운 이야기를 지껄였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불행 중 다행인 건 그 후 존이 서서히 제정신을 차리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행복했던 가정은 이미 천천히 무너지기 시작하고 있었다.

제인의 체질을 고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던 부모는 사채에 손을 댔다.

장남인 헨리는 술과 도박으로 허송세월을 보내다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우여곡절 끝에 어떻게든 동생과 대학을 졸업하고 군 입대를 준비하던 왓슨 역시 가족의 곁을 떠나갔다.

그는 형의 유일한 유품인 시계를 전당포에서 찾아온 다음 날 홀연히 모습을 감췄는데 텅 빈 방엔 어떠한 흔적도 남아있지 않았다.

마치 처음부터 그곳에 아무도 살지 않았던 것처럼.

존이 그곳에 존재했던 것을 알리는 유일한 증거는 헨리의 회중시계 뒷면을 직접 은침으로 긁어 새긴 자신의 이름뿐.

삼남매 중 둘을 잃은 부모는 유일하게 남은 막내딸을 잃고 싶지 않았지만 그들에겐 이미 절맥증을 치료하는 데 필요한 비용도 기력도 남아있지 않았다.

제인에게 실종된 존의 호적을 주고 대신 군에 입대시킨 건 그들이 고심 끝에 생각해낸 궁여지책이었다.

양기가 충만한 집단에 오래 머물면 절맥증의 발작을 조금이라도 늦출 수 있을 거란 조언을 따른 결과였다.

‘……오늘도 시작인가.’

마치 환등으로 비춘 사진이 연달아 눈앞을 지나가는 듯한 감각.

이미 수십 번은 더 보아온 꿈이었기에 왓슨은 자신이 잠들어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있었다.

행복했던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건 그녀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왓슨은 손가락 틈으로 흐르는 강물을 못내 아쉬워하듯이 마지막 순간을 향해 달려가는 꿈을 지켜보는 중이었다.

그 끝이 언제나 검기에 다리가 꿰뚫리는 악몽이라고 해도 그녀는 자발적으로 잠에서 깨어나려 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 없었다.

한 번 꿈을 꾸기 시작한 이상 마지막 장면에 다다르기 전 깨어나는 건 불가능하다.

구음절맥의 증상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왓슨을 괴롭혔다.

꿈을 꾸지 않는 밤에는 격통이 그녀의 잠을 방해했고, 악몽에 갇힌 날엔 음기로 인해 신체 대사가 저하된 탓에 쉽게 잠에서 깨어나지 못했다.

홈즈의 치료로 인해 증상이 완화된 건 사실이다.

운 좋게 오랫동안 악몽을 꾸지 않았던 것도.

다만, 왓슨은 알고 있었다.

머지않아 아프가니스탄에서 겪은 고통스러운 순간을 다시 경험하게 될 거란 사실을.

그리고 자신이 볼품없는 비명을 지르며 침대에서 굴러떨어진 다음에야 꿈에서 깨어날 수 있다는 것 역시도.

어느샌가 왓슨은 군복을 입고 오와 열을 맞춰 마이완드의 황야를 걸어가고 있었다.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갈 때마다 몇 번을 반복해도 익숙해질 기색이 보이지 않는 아픔 또한 그녀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저 멀리, 저격검수의 검기에 토막이 난 아군 병사들이 보였다.

자신이 저 사이에 쓰러져 피를 흘릴 때까지 이 악몽은 끝이 나지 않는다.

왓슨은 오래 전부터 체념하고 있었다.

구음절맥이라는 저주받은 체질이, 서서히 수명을 갉아먹는 악마가 사라지지 않는 한 악몽에서 벗어날 방법은 존재하지 않으니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

뿌연 흙먼지가 이는 아프가니스탄의 메마른 대지로 무대를 옮긴 왓슨의 악몽 속.

탄지공과 제자일 검법이 발하는 요란한 소음 사이로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음악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귓가를 맴도는 흐릿한 선율.

바람을 타고 날아든 건 소제금Violin의 음색이었다.

‘이 소리는 대체―’

누군가가 바이올린을 켜고 있었다.

출병식 때 들었던 군악대의 웅장한 연주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희미한 음량.

하지만 구슬프게 흐느끼는 현악기의 소리는 점점 그 크기를 더해가며 왓슨을 가둔 황량한 모래언덕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인간이 영어를 구사하기 훨씬 이전부터 사용해온 소통 수단은, 인도산 목화처럼 부드럽지만 동시에 랭커스터의 장미에 돋은 가시보다 날카로운 울림으로 왓슨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울컥

체내의 진기가 진탕하나 싶더니 저절로 혈도를 순환하기 시작했다.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음기에 무겁게 짓눌려있던 왓슨의 몸이 서서히 열기를 띠며 잠에서 깨어나기 시작했다.

“이건―”

꿈속에 갇혀 무력하게 다가올 고통을 기다리고만 있던 왓슨의 눈에 익숙한 침실의 풍경이 비췄다.

닫힌 문 너머에서, 그녀의 잠을 깨운 선율이 들려오고 있었다.

단순한 선율. 이따금 더블 스탑으로 섞여드는 화음.

“아…….”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왓슨은 문을 열고 거실로 걸어갔다.

흐릿한 동틀녘의 햇살. 역광 속에서 익숙한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다음 순간, 그의 입에서 예고 없이 흘러나온 투박한 목소리가 악기의 선율과 함께 유니존을 이루기 시작했다.

-오 세존이여, 은덕이 북명같은 세존이시여

-천하에 세존의 묘리가 가득하나이다

-날마다 사람이 강호의 도리를 범할지라도

-세존의 인내는 면면부절하나이다

-그의 업이 중하지 않을지라도

-심마가 수시로 전횡발호하니

-다가올 주화입마가 아직 멀 때에

-그의 상한 혈도를 추궁과혈하시도다

-O Lord, whose mercies numberless

-O'er all thy works prevail:

-Though daily man Thy law transgress,

-Thy patience cannot fail.

-If yet his sin be not too great,

-The busy fiend control;

-Yet longer for repentance wait,

-And heal his wounded soul.

.

.

.

눈을 감고 창가에 앉은 홈즈의 몸에선 은은한 기파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는 일반적인 연주자와는 달리 무릎 위에 바이올린을 두고 연주를 이어가고 있었는데, 활에 실린 내력이 바이올린의 현과 마찰을 일으킬 때마다 왓슨은 자신의 단전이 공명하며 요동치는 것을 느꼈다.

구슬픈 가락과 하늘에서 내려오는 치유의 힘을 찬양하는 노랫말.

가느다란 손가락과 목소리가 자아내는 소리는 잔잔하게 흐르는 바닷물처럼 방을 가득 채운 채 하나의 커다란 흐름을 만들어냈다.

잠에서 갓 깨어난 탓일까, 아니면 음공의 묘리가 그렇게 만든 걸까.

수면 위를 부유하는 듯한 몽롱한 감각에 사로잡힌 왓슨은 거실 중앙으로 걸어가 음악에 귀를 기울였다.

진기가 전신을 순환하며 차갑게 식어있던 손발이 온기를 되찾았다.

조금 전까지 악몽 속에서 맛보던 고통이 서서히 옅어져가는 것이 느껴졌다.

끊임없이 과거의 기억을 되새기며 잠든 동안에도 내내 굳어있던 근육이 이완되었다.

호흡이 깊어지고, 충분한 산소를 공급받은 머리가 안식을 되찾았다.

고개를 들자 연주를 마친 홈즈가 그녀를 향해 부드럽게 미소 짓고 있는 게 보였다.

이쪽을 주시하는 맑은 잿빛 눈동자는 묘하게 사람을 안심시키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헨델, 작품 번호 53번. 오라토리오 사울 1막, 다윗의 아리아詠嘆歌. 주적은덕무량대수O Lord, Whose Mercies Numberless.”

시선이 맞닿은 직후, 낯선 감각에 놀란 왓슨이 얼굴을 매만졌다.

“악마를 쫓는 노래일세.”

어째서일까.

뜨거운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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