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3. 의인의 삯 (3)
Good Shall Be Repaid (3)
도리가 협객을 만든다Manner Maketh Man
-오래된 금언-
* * *
예상컨대 왓슨에게 독각화망의 뿔을 포함한 부산물을 먹이면 전반적인 양기의 양이 소폭 늘어나 컨디션을 가다듬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뿔은 특히나 다른 독각화망의 부산물보다 훨씬 거친 기운을 품고 있다.
사전에 왓슨이 미리 내단을 복용하지 않은 채로 저걸 복용한다면 쇠약해진 혈도가 터져나가겠지만 지금은 다르다.
만일 예상치 못한 시점에 절맥증의 발작이 일어났을 때 저걸 섭취하면 음양의 균형을 맞추어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 터.
극약처방이니 두 번은 사용할 수 없겠지만 한 번이라도 기회가 주어지는 게 어딘가.
이걸 사용할 일이 없는 게 가장 이상적이겠지만 용도를 정하기 전 소량을 가루로 만들어 나와 왓슨이 상시 휴대해두면 만일의 상황에도 대비할 수 있으리라.
‘왓슨에게 먹일 가루를 뿌리 부분에서 조금 깎아낸 다음 남은 뿔은 천천히 용도를 생각해도 되겠지.’
나는 사자심법을 익혔으니 저걸 다 먹어도 내포된 기운을 온전히 진기로 받아들일 수 있다.
다만, 공력을 늘리는 건 다른 영약으로도 가능한 일이니 독각화망의 뿔로만 가능한 기발한 활용법을 떠올리지 못했을 때 고려해도 늦지 않다.
그나저나 천년소양타Ancient Vicuna의 털로 만든 원단에 독각화망의 뿔까지, 이런 귀한 물건을 한 번에 두 개씩이나 얻게 된다니.
세 개의 사건을 해결한 보상치고는 과한 감이 없지 않았다.
“홈아무개는 대인의 배려에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장관대인의 은혜, 실로 백골난망Long-Term Memory입니다.”
정중히 포권례Fist Palm Salute를 취하자 하커트 경이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답했다.
“여왕 폐하께서 유령권마의 건에 관해선 따로 하사품을 내리신다고 말씀하셨다. 세 번째 선물은 버킹엄에서 직접 받아가도록.”
장관이 폐하를 언급하며 버킹엄 궁전百禁城의 방향으로 손을 내밀어 공수례를 취하는 걸 보는 동안 내 안에서 서서히 빅토리아 여왕 폐하를 향한 존경심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성은이 망극하군요.”
설마 폐하께서 직접 선물을 챙겨주시려 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대영제국의 신민으로 태어나 이만한 영예를 누리게 될 줄이야.
아무래도 폐하께서 전화기의 보급에 상당한 관심을 보이고 계신 게 틀림없었다.
이는 그녀가 자나 깨나 국가의 발전만을 생각하는 성군이라는 방증.
폐하의 치세가 이어지는 한 영국의 미래는 밝을 것이다.
“어전 무도회에 참석하려면 자리에 어울리는 옷이 필요할 거다. 한 달 남았으니 제때 완성하려면 못해도 내일까진 재봉사Tailor를 찾아가는 게 좋겠지.”
“……!”
내무장관의 말을 듣자마자 어쩌다 내게 이런 호사스러운 원단이 주어진 건지 깨달았다.
아무리 하커트 경이 내각의 한 축을 짊어진 장관이라고 해도 이만큼 귀중한 원단을 대량으로 구해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이건 무조건 무도회에 이 원단으로 만든 옷을 입고 나오라는 폐하의 안배가 틀림없다.
직접 하사품까지 내리려는 자가 평범한 옷을 입고 어전 무도회에 나타났다간 왕실의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될 테니까.
만일 제때 정장이 완성되지 않는 등의 불상사로 인해 다른 옷을 몸에 걸치고 참석한다면 어찌 될까.
그런 일이 일어났다간 지존의 고념Victoria Care을 업신여겼다고 오해를 살지도 모른다.
“……반드시 제때 의관정제衣冠整齊를 마치겠습니다.”
“잘 알아들은 모양이군.”
미리 폐하를 언급한 건 이것 때문이었나.
경고 아닌 경고. 무시했다간 무사히 궁궐에서 나올 수 없을 테지.
“추가로, 일월성신교의 교주를 클라크가 직접 보았으니 용모파기 제작을 맡기기로 했다. 완성되면 가장 먼저 자네에게 한 장 보내도록 하지.”
“듣던 중 반가운 말씀이군요.”
이쪽 세상의 모리어티가 회귀 전에 본 것과 다르게 생겼을 가능성이 있다는 건 인지하고 있었다.
장관의 시종 클라크가 얼마나 그림에 능한진 모르겠으나 추가적인 단초를 확보할 수 있다면 마다할 이유는 없다.
다만, 하나 의문스러운 점이 있었다.
조금 전 하커트 경은 일월성신교를 이끄는 자가 ‘젊은 신부’라고 말했다.
하지만 내 기억 속 모리어티는 장년을 넘어 노년을 바라보고 있었다.
일월성신교의 신부라는 자가 모리어티의 하수인에 지나지 않는다면 큰 문제는 없다.
하지만 만일 놈이 반로환동을 마친 모리어티 본인이라면 최악의 사태를 각오해야 하겠지.
‘쉽지 않겠군.’
이야기를 마친 장관은 넌지시 벽걸이 시계로 시선을 던져 시간을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내무부 회의 시간이 되었군. 오늘은 이쯤에서 마무리하도록 하지. 마차를 준비해두었으니 타고 가게.”
“벌써 몇 번 같은 말씀을 드리는 건진 모르겠지만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따로 원하는 게 있다면 말해도 좋다.”
여전히 표정에 이렇다 할 변화는 보이지 않지만 장관은 뭔가 더 챙겨줄 게 없는지 못내 아쉬워하는 눈치였다.
그에게서 호감을 살 수 있어서 정말로 다행이라고 느낌과 동시에 호화로운 포상에 놀라 꺼낼 타이밍을 놓치고 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뻔뻔하다고 생각하시겠지만 두어 가지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긴 합니다.”
“무엇을 원하는가. 재량이 허락하는 한에서 지급하도록 하겠다.”
“하나는 추포산입니다.”
“……항아리 하나 정도는 가능하겠군. 나머지는? 영약을 원하는가?”
“그것도 있으면 감사히 받아가겠습니다. 다만, 장관께 빌리고 싶은 물건이 있어서 말입니다.”
빌리고 싶은 물건.
그 단어에 하커트 경이 노골적으로 불쾌함을 드러냈다.
아무래도 내 의도를 알아챈 모양이었다.
“……조수라는 자가 생각보다 입이 싼 모양이었군.”
“왓슨을 탓하지는 말아주십시오. 저는 그저 관계자들의 얼굴에 남은 안대 자국과 습기를 머금은 바지 밑단을 보고 진실을 추리해냈을 뿐입니다.”
나는 하커트 경의 눈을 똑바로 주시하며 그의 집무실을 찾아온 진짜 목적을 밝혔다.
“스코틀랜드 야드의 지하 통로를 여는 열쇠를 빌리고 싶습니다.”
“지하에 무엇이 잠들어 있는지 알고 하는 소리인가.”
“예.”
한껏 눈썹을 찡그리고 나를 노려보는 내무장관에게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대답했다.
“그야 서역소림사Shao-Lin Monastery Western Branch가 아니겠습니까?”
장관대인의 얼굴이 눈을 부릅뜬 표정 그대로 굳었다.
마치 아르누보 스타일로 제작된 달마대사의 그림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누구에게 들었나.”
한참 동안 침묵을 지키던 내무장관이 입을 열었다.
아직 충격이 가시지 않은 듯 그는 여전히 눈을 부릅뜨고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지하에 무엇이 잠들어있는지 알고 있냐는 질문은 내가 대답하지 못할 것을 전제로 던진 거였군.’
아까부터 단 한 번도 눈을 깜빡이는 일 없이 저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데, 예상은 했지만 상당히 민감한 화제를 건드린 모양이었다.
“진정하시죠. 그렇게 노골적으로 살기를 발하시니 이 홈모 긴장으로 몸이 굳어 대답드리기가 어렵습니다.”
“그곳에 관한 이야기를 누구에게 들었는지 물었다.”
“스승입니다.”
“…….”
내 답을 듣고 장관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쪽 스승은 대체 뭘 하는 사람이길래…….”
하커트 경은 망언자실한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제 사부는 평범한 영국 신사였습니다.”
“퍽이나 그렇겠군.”
“실은 저도 그가 뭘 하는 사람인지 자세히 모르다보니.”
나는 충분히 그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세상에 그런 사람이 어딨냐고 따지고 싶어지는 말도 안 되는 무용담을 한 자리에 모아 살가죽과 옷을 입히면 내 스승이 된다.
존재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엉터리 인간.
그자의 밑에서 수련을 마친 나는 객관적으로 생각해도 인품과 재능을 두루 갖춘 기재임이 틀림없다.
“모른다, 인가. 자네 입에서 절대 나오지 않을 법한 단어였는데.”
“괜찮습니다. 금방 알아낼 거니까요.”
유럽무림 전체를 통틀어도 숭산 소림사의 진전을 직접 이은 문파는 왕림Kingswood 외엔 없다고 알려져 있다.
왕림王林의 숲지기Verderers는 먼 옛날 영국으로 건너온 소림의 파계승 여럿이 왕실의 허락을 받고 정착해 얻은 신분이다.
레스트레이드를 비롯한 스코틀랜드 야드 소속 무인이 왕림의 비급을 일부 전수받은 것 역시 그들이 숲지기의 후손이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소림사의 무공을 탐내는 사람은 유럽에 차고 넘치지.’
천하공부출소림天下功夫出少林.
강호에 알려진 무공의 상당수는 소림사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림의 진산절기인 칠십이절예가 유럽에 널리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단 하나.
무림대이동Kung-Fu Exodus을 촉발한 청나라 조정의 명령, 머리카락을 변발로 땋도록 강요하는 치발령Edict of Pigtail이 승려에게 적용되지 않았던 까닭이다.
구파일방과 무림세가는 물론 녹림도를 비롯한 사파 무인까지 모두가 국외로 거처를 옮긴 이후, 청淸에선 소림사가 명실상부 중원 무림의 태산북두로 군림하게 되었다.
결과, 불교를 숭상하는 청나라 황실은 소림 무공의 유출을 금지하고 승려들의 추가적인 출국을 법으로 막았다.
이는 모두 소림이 지켜온 무학의 정수가 국외로 새어나가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아아…….”
하커트 경이 느닷없이 눈을 질끈 감고 깍지 낀 두 손 위에 이마를 얹었다.
“어디 아프기라도 하십니까.”
“기도하고 있다네.”
“기도라 하심은 대체……?”
“자네의 스승이 그 이야기를 불특정 다수에게 하지 않았길 빌고 있다는 소리지.”
하긴, 그의 입장에선 충분히 걱정할 만한 사안이었다.
왕림은 왕실 사냥터로 지정된 숲 깊숙한 곳에 숨어 지내는 신비로운 문파였다.
그리고 사람들은 연합왕국 전체를 통틀어 족히 수십 곳은 존재하는 왕실 사냥터 숲 중 어디가 그들의 본산인진 알지 못한다.
즉, 타국의 고수가 소림의 진전을 이은 숲지기들의 무학을 탐내더라도 모든 숲을 뒤져보지 않는 이상 접근할 방법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런데 만일.
파계승이 주축이 되어 개파한 왕림 이상의 정통성을 지닌 소림의 무승들이 스코틀랜드 야드의 지하에 숨어있다는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난다면.
그리고, 그곳으로 통하는 지하통로의 출입구가 광역경찰청만이 아니라 런던 곳곳에 존재한다는 게 알려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영국 내부의 대형 문파와 세가의 고수는 물론 사해에서 모여든 자들이 소림의 비급을 노리고 런던의 지하를 파헤치기 시작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론디니움의 유적이라도 발굴되면 대영박물관을 살찌우게 될 테지만 그 외에는 영국에 어떠한 긍정적인 영향도 끼치지 않을 거라는 게 나의 예상이다.
강호인은 절대적으로 힘을 신봉하는 자들이다.
백도든 흑도든 탐욕에 눈이 먼 자들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혈안이 되어 발굴 작업에 돌입할 터.
‘장관이 우려하는 건 발견 이후에 벌어질 혼란이었군.’
비밀이 누설되면 어떤 대참사가 벌어질지, 나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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