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0. 예궐 (3)
Gate of Buckingham (3)
피를 나눈 형제간에 벌어지는 생사결만큼 끔찍한 건 없다.
-아리스토텔레스-
* * *
“……쉽지 않겠어.”
문이 열리기 전 미리 기감을 펼쳐 문 너머 건물 안을 돌아다니는 이들의 기파를 살폈다.
먼저 도착해 1층 로비에 모여 있는 건 하나같이 잘 다듬어진 고수들뿐.
그래도, 오늘은 누군가와 검을 맞댈 일이 없으니 너무 부담을 가질 필요는 없겠지.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는 데에다 성지를 노린 도둑의 배후 역시 머지않아 마주치게 될 테니 여전히 방심은 금물이지만.
“왓슨. 마음의 준비는?”
“완벽하네.”
우린 서로를 마주 보고 고개를 끄덕인 다음 천천히 현관을 지키는 병사들 사이로 걸어갔다.
“소천마 셜록 홈즈 님. 군필의희 제인 왓슨 님. 초대장을 확인하였습니다. 안으로 드시지요.”
적의위 병사가 육중한 문을 열자 낯익은 자의 얼굴이 멀리서 이쪽을 향하는 것이 보였다.
음침한 성격답게 기파를 숨기고 있던 사내는 내가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진기를 끌어올렸다.
[견정혈肩井穴을 노리고 독룡출동Viper Entry.]
귀를 거치지 않고 머릿속에 직접 울려 퍼지는 목소리.
[제한시간은 15초. 네 차례다. 셜록.]
“마이크로프트……!”
나의 빌어먹을 형제가 육합전성으로 논검 승부를 걸어왔다.
* * *
~20년 전~
새빌 로 14번지, 1층.
올해로 열네 살이 된 마이크로프트 홈즈는 곁에 쓰러진 일곱 살 터울의 동생 셜록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0.824초인가. 오래도 버텼군. 마냥 아비가 팔불출인 건 아니었던 모양이야.”
형제를 지켜보고 있는 건 천마를 자칭하는 사내였다.
아버지의 말을 따르면, 이 자가 앞으로 형제를 가르칠 새로운 사부가 될 예정이었다.
“헌데, 고작 일곱 해 살아놓고 이만큼 오만한 녀석은 또 처음이로구나. 그만한 재능도 갖추고 있으니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지만.”
스승은 형제를 제자로 받아들일지 고민하던 와중 다짜고짜 권풍을 날렸다.
당연하지만 둘이 어찌 반응하는지 시험하기 위한 행동이었다.
다만, 죽지 않을 정도로 내력을 조절했다곤 해도 일곱 살의 아이가 버티기는 버거운 힘.
셜록은 갓 깨친 엉성한 기막을 펼쳐 막아냈지만 그게 끝이었다.
한편, 마이크로프트는 더욱 거친 세례 앞에서도 혼절하지 않고 기어이 이를 버텨냈다.
심지어는 힘의 일부를 주위로 흘려보내기까지 했다.
“……뛰어난 무재를 지니고 있구나. 어쩌면 네 동생보다 더.”
평소 가족에게도 수련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게으른 척 뒹굴대던 탓에 아버지조차 눈치채지 못했던 마이크로프트의 재능은 닥쳐온 생명의 위기 앞에서 가감없이 발휘되었다.
“아쉽구나. 정파의 세가나 사파 고수 밑에서 태어났다면 일찍이 그릇을 쌓아 더욱 높은 경지를 이룰 수 있었을 텐데…… 아니, 그랬다면 나를 만나지 못했으려나.”
시골의 작은 학관에서 썩고 있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 형제의 재능.
천마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새겨졌다.
“다섯 해만 일찍 왔다면 너를 전인傳人으로 삼았을지도 모르지.”
“…….”
아쉽다는 듯이 쓴웃음을 짓는 천마와 동생에게 한 번씩 시선을 던진 마이크로프트의 눈이 다시 허공을 주시했다.
“과찬입니다. 무학을 익혀 강호에서 제 몸 하나 보살필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습니다.”
천마는 놓치지 않았다.
조금 전 어린 셜록을 내려다볼 때 마이크로프트의 눈에 다양한 감정이 소용돌이치고 있던 것을.
“정말, 그것으로 족하느냐. 더 원하는 건 없고?”
잠시 망설이던 어린 날의 마이크로프트가 다시 입을 열었다.
“……가능하다면 딱 하나만 더.”
“호오.”
이어진 마이크로프트의 이야기에 천마가 흡족한 웃음을 지었다.
“그래, 좋다. 예를 갖춰라.”
“감사합니다.”
마이크로프트는 기절한 셜록의 얼굴에 찬물을 뿌렸다.
그리고는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동생과 함께 새로운 스승에게 계수배稽首拜를 올렸다.
“오늘부터, 내가 너희의 스승이다.”
천마와 홈즈 가의 어린 형제.
세 사람을 잇는 사제의 연이 시작된 날이었다.
* * *
내 이럴 줄 알았다.
만난 지 5초 만에 논검이라니, 누가 봐도 마이크로프트 같은 중도의 인성파탄자만이 벌일 수 있는 만행이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려 하는 건가……? 홈즈. 갑자기 창법의 초식명이 들려왔는데…….”
20년 넘게 계속되어온 지긋지긋한 놀이.
무시하고 싶어도 마이크로프트가 왓슨에게도 육합전성으로 똑같이 말을 건 탓에 물러설 수도 없다.
“신경 쓰지 말게. 우리 형제가 만날 때마다 벌어지는 연례행사 같은 것이니.”
“형제? 잠깐. 그럼 설마―”
“잠시 다녀오겠네.”
마이크로프트와 잠깐 눈이 마주친 왓슨이 무어라 질문하려 했지만 답할 여유는 없었다.
-일사견세계 一沙見世界
-일화규천당 一花窺天堂
-수심악무한 手心握無限
-수유납영항 須臾納永恒
천진예조Auguries of Innocence의 구결을 외움과 동시에 파우스트 모먼트一念卽是無量劫에 진입.
니환궁에 진기가 순환하자 의념이 극한까지 가속되기 시작했다.
-틱……
-탁……
모든 소음이 자취를 감추며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괘종시계의 바늘이 발하던 소리가 끊어졌다.
사고가 속도를 더한 것과 반대로 더디게 흐르는 시간.
그 속에서 나와 마이크로프트는 서로를 똑바로 쳐다보며 한 걸음씩 거리를 좁혔다.
‘첫수가 독룡출동이라는 건 융가창법Jung-Family Spear인가. 상성이 좋은 마가창법Mark Spear으로 맞서면 편하겠지만 마이크로프트의 비웃음을 사겠지.’
늘 그래왔듯이 마이크로프트와의 논검은 독문무공을 배제하고 기본기만을 응용해 펼치는 것이 규칙, 내공은 일갑자로 제한된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융가창에는 융가창.
15초도 필요 없다.
이딴 재미없는 촌극 따윈 눈 깜짝할 사이에 결판이 날 것이다.
‘독룡출동Viper Entry……. 창끝을 돌리다 가슴께를 노리는 초식으로 어깨肩井穴를 노렸다. 마이크로프트의 노림수가 숨겨져 있군.’
출수를 선언했을 때 좌우를 지정하지 않은 것이야말로 마이크로프트의 치졸한 속임수가 틀림없다.
평범한 양민의 찰나Frame가 0.1666초인 데에 비해 일갑자의 내공을 지닌 무인의 표준 찰나Frame는 0.013초.
그리고 독룡출동은 운공 5찰나, 출수 10찰나로 도합 15찰나로 계산되는 초식이지만 선발제인先發制人으로 운공에 든 5찰나를 계산에서 제외하면 그 빈틈은 출수에 든 10찰나 말고는 없다.
아무 생각 없이 이를 방어했다간 6찰나의 이득이 발생, 나보다 먼저 자세를 고쳐 잡은 마이크로프트가 우위를 점하게 된다.
그다음은 17찰나로 펼치는 횡소천군Side Swing Thousand Troops이 6찰나의 이득으로 인해 11찰나로 날아올 게 뻔하다.
방어하며 선운공이 가능하다 해도 융가창법에는 독룡출동을 막은 다음 11찰나 출수가 가능한 초식이 존재하지 않는다.
즉, 내 순서Turn에 초식을 출수해도 속수무책으로 당하게 된다는 뜻이다.
공방일체의 란나찰攔拿扎로 반격을 선언하려 해도 문제다.
란나찰을 시도하는 순간 마이크로프트는 6찰나Frame의 이득을 토대로 빠르게 국왕마기國王磨旗를 펼쳐 창을 쳐낼 터.
그리고는 면면부절한 육합창의 연계식Combo을 이어가겠지.
요약하자면 마이크로프트가 펼친 변칙적인 독룡출동은 패배를 강요하는 양자택일50/50이라고 할 수 있다.
후발선지Delay Catch로 논검메이트를 노리는 상투적 수법Same Old Trick.
그러니까 나는 제삼의 선택지를 골라야만 한다.
[나려타곤Lazy Donkey Roll을 펼쳐 피한다.]
[……!]
여기까지 걸린 시간은 왓슨과 대화한 시간을 제외하면 대략 0.8초.
육합전성으로 대답하자 이쪽을 향해 걸어오던 마이크로프트의 얼굴에 즐거워하는 기색이 번졌다.
[나려타곤으로 몸을 던진 셜록을 향해 비웃으며 철소추Iron Broom를 펼친다.]
[그놈의 쓸데없는 사족 좀 그만 붙이면 어디 덧나기라도 하는가.]
다리를 노리고 펼치는 초식으로 바닥을 구른 사람의 목숨을 노리다니, 흑도가 들으면 새파랗게 질릴 잔학무도한 짓이 아닌가.
[나려타곤.]
나는 한 번 더 마이크로프트의 의표를 찌르기로 했다.
[……창을 휘두른 기세를 실어 리어포Carp Splash로 내려친다. 논검체크論劍將軍.]
아까보단 조금 더 놀란 기색을 보이는 마이크로프트를 노려보며 한 걸음 더 나아갔다.
빠르게 좁혀지는 간극.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이 논검은 나와 마이크로프트가 손을 뻗으면 닿는 거리까지 다가가기 전에 끝날 거라고.
‘세 수 안에 끝낸다.’
내 머릿속엔 이미 논검메이트로 이어지는 엔드게임終局의 구상이 떠오르고 있었다.
[다시 한번 나려타곤.]
[방향은?]
[마이크로프트를 지나쳐가는 쪽으로.]
[허.]
마이크로프트가 참지 못하고 전음을 발했다.
세 번을 연달아 나려타곤懶驢打滾을 펼쳐 초식을 회피.
논검은 물론 현실에서 벌어지는 비무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진기한 공방이었지만 그는 아무런 이의도 제기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려타곤은 운공 없이 가장 빨리 몸을 날릴 수 있는 한 수다.
고작 7찰나를 투자해 적의 공격에서부터 상단전, 중단전, 하단전을 보호할 수 신법은 이것이 유일할 것이다.
[셜록이 볼품없이 몸을 날린 방향으로 반 바퀴 회전, 자비를 담아 빈틈투성이의 영대혈靈臺穴에 한 점 흐트러짐 없는 도예우미倒曳牛尾를 출수한다. 메이트Mate.]
승리를 확신한 마이크로프트가 미소 지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조금 전 난 마이크로프트와 스쳐 지나가듯 나려타곤을 펼쳤다고 선언했다.
그러니까, 만일 이것이 현실에서 펼쳐지는 비무였다면 나는 지금 무방비한 등을 적에게 내보이고 있다는 뜻이다.
도예우미는 소의 꼬리를 거꾸로 잡아당긴다는 것처럼 보이는 모습에서 따온 이름답게 창날이 아래를 향하도록 찌르는 초식.
왕립무학회와 전영국논검협회가 발간한 공식 규정집에 따르면 한 번의 논검에서 나려타곤은 최대 3회까지밖에 펼치지 못하니 내게 이를 피할 방법은 남아있지 않았다.
[나의 차례군My Turn. 출수하겠다.]
하지만 나는 꿋꿋하게 나의 순서를 진행했다.
[무슨 헛소리를 하고 있는 거지. 귀가 먹어도 전음은 들릴 텐데.]
마이크로프트의 말을 무시하고 규정에 따른 정당한 출수를 마쳤다.
[제자리에서 일어나 회마창回馬槍.]
-또각
전음을 발한 직후 파우스트 모먼트一念卽是無量劫에서 벗어났다.
느리게 흐르던 시간은 제 속도를 되찾았고 서로의 지척까지 걸어온 우린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동시에 걸음을 멈췄다.
회마창En Passant Thrust은 상대의 곁을 지나가거나 도망 중에 펼치는 험중구승險中求勝의 탈명창奪命槍이자 예상치 못한 순간에 출수되어 목을 꿰뚫는 융가창법의 절초絶招. 출수에 걸리는 시간은 고작 6찰나Frame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니까.
아무리 마이크로프트라 해도 이걸 피하거나 받아칠 수는 없다.
“논검메이트.”
서로의 숨소리마저 들을 수 있는 거리. 승리를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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