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홈즈 런던앙복-104화 (104/110)

104. 땅 짚고 헤엄치기 (1)

The Art Of The Deal (1)

검으로 치는 대신 미소로 겁박하라.

-윌리엄 셰익스피어, <급고독장자고독사Timon Of Athens>-

* * *

-콰아아아아!!!

인간의 감정과 성질을 도려내 완성된 백합진기百合眞氣가 시체의 안과 밖에 뿌리를 박고 사이한 기운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구결에 의해 통제된 힘은 마치 살아있는 식물처럼 상반되는 성질의 마기를 양분 삼아 뚜렷한 형상을 취하기 시작했다.

반복되는 노랫말 가운데 흐드러지게 피어난 백합의 환영.

그것이 시체를 뒤덮는 섬뜩한 광경을 지켜보며 무인들은 경외와 공포를 동시에 느끼고 있었다.

-화악!

궁전을 가득 채운 성가결.

노래의 장식하는 사중창의 아멘阿門과 함께 백합꽃의 환영이 한 줄기 연기로 화해 사라졌다.

고요해진 실내.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누운 남작의 시체에선 사이한 기운은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저건…….”

성산파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소천마가 약식으로 거행한 구마의식Exorcism.

이를 목격한 사람들은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놀라움이 가라앉은 자리에는.

“고작 면죄부적 한 장으로 잔류마기를 지우다니.”

“구마전례는 백합검수 수십 명과 성물을 필요로 하는 의식이 아니었던가.”

의문이 싹을 틔웠다.

“이런 게 처음부터 가능했다면…….”

“여태껏 사도좌가 받아갔던 헌금의 액수는 대체?”

그리고.

“정리하자면 부적 한 장이면 충분한 일 갖고.”

마공을 익힌 자들이 유럽 각국에서 피바람을 몰고 다닌 지난 수백 년 동안.

“수십 배 바가지를 씌웠다는 뜻이군.”

거창한 속임수로 돈을 쓸어 담아온 성산파에 대한 분노 역시도.

“사기꾼 놈들!!”

“당장 본국에 전신을 보내 보고하게! 사도좌에 항의 서신을 보내야 하네!”

“상단주에게 전해라. 구마의식의 대가로 지불한 어음을 돌려받고 즉시 성산파와 거래를 중지하도록.”

종교개혁이 일어나던 시절을 방불케 하는 열기가 무도회장을 휩쓸기 시작했다.

먼 옛날 마틴 루터가 제창했던 대의와 명분과는 거리가 있을진 몰라도, 그 칼끝은 똑같이 로마 사도좌를 향하고 있었다.

살아서는 혈겁을 일으키고 죽어서는 땅을 오염시키는 마인과 마녀.

그 흔적을 지우는 데에 굳이 비싼 돈을 지불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 밝혀진 지금, 바티칸의 거만한 태도를 참아줄 이유는 존재하지 않았다.

“……저질러 주었구나.”

들불처럼 퍼져가는 혼란과 노성.

이를 목도한 백합검수는 이번 사태의 원흉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쪽을 얕보고 있던 건 인정하지. 어디까지 알고 있나 시험해보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이렇게 될 줄이야.”

“성직자라 그런가 도박이 서툴군. 확실하지 않으면 승부를 걸지 말았어야지.”

홈즈가 대꾸했지만 부제는 동요하는 일 없이 말을 이었다.

“어찌 됐든 지닌 패를 전부 보인 이상 각오는 되어 있을 거라 믿는다.”

담담한 목소리에 실린 살기는 외견으로 확인 가능한 나이에선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메말라 있었다.

셜록 홈즈가 아까 마주한 노신부의 충동과 격정과는 다르다.

추수철의 들판에 피어오른 불길을 멀리 번지게 하는, 낮게 불고 은밀한 바람을 닮은 감정.

사제의 얼굴에 드러나 있는 것은 죄인을 고발하는 자가 아닌 심판을 선고하는 자의 태도.

그건 겉모습만 보아선 절대로 알 수 없는 진실, 곧 사제가 바티칸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를 짐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귀중한 단초였고 런던의 유일한 자문탐정은 이를 놓치지 않았다.

계속 갈심褐心 신부의 뒤에 숨어 있었지만 이 자는 상당한 능력과 지위를 가진 자.

소식이 본산에 전해진 순간, 성산파는 반드시 보복을 개시할 것이다.

그런 확신이 들었으나, 소천마는 도발을 멈추지 않았다.

“각오인가. 그게 필요한 건 내가 아닌 그쪽 사문 같은데.”

지독한 백합향을 견디기 위해 손수건으로 코와 입을 가리고 있던 홈즈가 손을 내리고 사제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내가 패牌를 전부 보여주었다고? 그게 무슨 소린가.”

“벌써 다 떠든 마당에 네가 뭘 더 할 수 있다고―”

“대영제국 여왕의 이름으로 명한다.”

사제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청아한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돌아선 백합검수의 시선 끝에는, 검후 빅토리아 여왕의 모습이 있었다.

“대영의 충성스러운 신서臣庶 셜록 홈즈는 속히 면죄부적의 사용법을 상세히 적어 진상하고 체중을 고하라!”

그제야 사제는 깨달았다.

자신이 놓치고 있던, 상대의 마지막 카드가 무엇인지를.

“여余는 그 몸과 같은 무게의 황금을 하사해 그대의 우국충정憂國衷情을 치하하겠노라.”

“……흠.”

“아니! 역시 두 배로 하자꾸나!”

절대로 죽일 수 없는 여인,

대Versus,

장사 밑천 동나게 생긴 문파.

셜록 홈즈가 품은 비밀을 사이에 두고 사상 최악의 경매가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 * *

빅토리아 여왕 폐하와 이름조차 밝히지 않은 정체불명의 성산파 무인의 시선이 허공에서 충돌했다.

화경의 무인이란 무릇 사람의 형상을 취하고 있되 그 살가죽을 한 꺼풀 걷어내면 안에 별개의 생물이 웅크리고 있는 존재.

연약한 몸으로 태어난 천형天刑의 형틀을 부수고 끝내는 인류라는 종이 지닌 태생적 한계를 뛰어넘은 초월자다.

아무리 기세를 드러내지 않았다 해도 그 눈빛에는 의념이 깃드는 법.

하지만 바티칸의 부제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검후를 똑바로 노려보고 있었다.

장담컨대 저건 절대 장삼이사Average John Or Richard에게 가능한 일이 아니다.

당장 나만 해도 스승이나 폐하의 눈을 한 번에 5초 이상 바라보는 건 정신적으로 피로해서 견디기 힘들 정도였으니까.

‘결국은 꼬리를 드러냈나.’

머릿속에선 이번 상황에서 내게 제일 유리한 결과를 도출하기 위한 방법들이 춤을 추고 있었다.

한 번의 폭로로 많은 대가를 얻었다.

부제의 정체에 관해 어느 정도 확신을 얻은 건 물론 앞으로 마주칠지도 모르는 성산파 본산의 위협을 배제할 수단 역시 획득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전화위복Divine Comedy 정도가 아니라 복의 근원Fount Of Blessing이 강림했다 해도 좋을 정도야.’

이단심문관이 난동을 부려준 덕에 나는 일말의 아쉬움도 없이 면죄부적의 비밀을 가장 효과적인 무대에서 드러낼 수 있었다.

진한 잔류마기를 흘리는 마인의 시체와 검후에게 칼을 겨눈 성산파의 배분 높은 고수.

구실은 충분하다 못해 넘친다.

대의도 명분도 내게 있으니 마음껏 저질러도 아무도 나를 건드릴 수 없다.

‘여기까진 예상한 대로인가.’

일단은 가장 중요한 첫 번째 이정표를 달성했다는 사실이 나를 안도케 했다.

여왕 폐하는 기대했던 타이밍에 미끼를 물어주셨다.

대영의 국익을 무엇보다 우선하는 폐하라면 분명 저렇게 나올 거라고 믿고 있었다.

성산파와의 마찰을 대비해 준비해둔 패를 예상보다 일찍 꺼냈지만 이건 애초에 언제 꺼내도 반드시 이득을 볼 수 있는 카드.

방금 상황은 천지인이 모두 합치하는 흔치 않은 기회였으니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수련이 깊은 자들도 동요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는 건 긍정적인 신호겠지.’

슬며시 주위를 살피자 이따금 신문 기사에 사진과 이름이 올라오는 이들의 익숙한 얼굴이 나를 향하고 있는 게 보였다.

그 외에도, 여러 대문파와 세가의 실세로 추측되는 단단한 기운을 지닌 자들 역시도.

그렇다.

성산파와 척을 진 자는 이 자리에 차고 넘친다.

그들 중 상당수는 사도좌의 비밀을 알아내기 위해 기꺼이 억만펜스를 지불하려 할 터.

물론 그들은 쉽게 나를 믿지 못할 것이다.

비밀이라는 상품에는 무게가 없고 판매한 흔적 역시 남지 않는 법이니.

한 번 내게서 대가를 치르고 면죄부적에 관한 비밀을 사들인다 해도 내가 다른 이에게도 비밀을 넘겼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잠 못 이루다 끝내 오스카 와일드의 희곡처럼 성산파의 비밀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값진 내 머리를 자신의 소장품에 추가하려 들지도 모르지.

그러고 보니 살로메는 이쪽 세상에선 아직 초연初演도 시작하지 않은 작품인가.

어쨌든, 지금 중요한 건 비밀을 원하는 자가 누구든 성산파의 말학末學 정도 되는 척 계속 연기해온 음침한 작자가 조바심을 내게 만들기 충분하다는 사실이다.

“속세의 돈으로 성산파의 비급을 사들이겠다니, 사도좌의 허락도 없이 감히?”

나이도 강호의 배분도, 모두 자신보다 아득히 위일 검후를 향해 사자후를 터뜨리는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아니 될 말씀이올시다! 절대 용납할 수 없소!”

“나의 백성의 충성을 치하하는 데에 교황의 허락이 필요하다고? 늙은 낚시꾼의 반지에 입을 맞춘 건 너희 백합검수지 여余가 아니지 않느냐.”

“무어라?!”

폐하의 모욕적인 언사에도 불구하고 이단심문관은 더 무어라 반론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역시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지금 자신이 따지고 나섰다간 검후를 더욱 자극하는 꼴밖에 되지 않을 거란 사실을.

“그리고 이 모든 사태가 성산파의 기만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오양칠주五洋七洲에서 모인 협의지사Chivalrous Ladies And Gentlemen가 목도하였음이라.”

“큭……!”

“여의 말에 거짓이 있다고 여기는 자가 있다면 앞으로 나오라. 참斬하겠다.”

여왕 폐하가 말을 마치자마자 구서관 1층이 정적에 휩싸였다.

그 누구도 감히 나서서 성산파의 변호인을 자처하려 들지 않았다.

이는 비단 그들이 폐하를 두려워해서가 아니었다.

무도회 참석을 위해 모인 강호의 명숙들이 정치적이든, 금전적이든, 감정적이든, 혹은 강호의 도리를 따른 것이든, 폐하의 손을 들어주고 있는 것이다.

제아무리 이탈리아와 남유럽 전체에 거대한 영향력을 끼치며 가장 많은 마인과 마녀를 죽인 공로를 자랑하는 문파라 해도.

수백 년 동안 거래 상대를 기만하고 부정한 이득을 취해온 사실이 드러난 지금, 그 존재는 모두의 눈에 무림공적과 다를 바 없이 비추고 있을 테니까.

“이런 억지가 통한다면 강호의 도리는 대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오! 동도들은 사문의 비급이 얼마 안 되는 푼돈에 팔려나가도 상관이 없는가 보오?”

결국, 이단심문관은 분을 이기지 못하고 쓰고 있던 안경을 벗어 한 손으로 찌그러뜨렸다.

-파삭!

부서진 유리조각이 사방으로 흩어진 걸 확인한 예절단속특무궁녀대가 사방에서 살기를 쏘아댔지만 폐하가 오른손을 들자 순식간에 날카로운 기운이 자취를 감추었다.

“인정하노라.”

“……?”

“그대가 말한대로 사람 몸무게의 두 배에 달하는 황금이 푼돈이라는 건 사실이라는 뜻이다. 바티칸이 여태껏 전 유럽을 속이고 벌어들인 돈에 비하면, 그야 티끌같아 보일 만도 하지.”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소!”

고함치는 무인을 바라보며 빅토리아 폐하가 느긋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래. 진산절기나 중요한 비급이 문파 밖에서 나도는 건 분명 좋지 않은 일이지. 여는 성산파의 입장에 십분 공감하노라.”

이 자리에 모인 사람 중 나 말고는 진의를 꿰뚫어 보지 못할 한 마디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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