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튜토리얼이 너무 쉽다 (1)
부드러운 거품과 함께 톡 쏘는 액체가 식도를 자극한다. 가볍게 500cc 잔을 비운 이경복은 눈앞의 친구를 바라보았다.
“개 같다 이거야.”
죽마고우.
고등학교 때부터 붙어 다녔던 10년 지기, 최병훈은 깊이 숨을 내쉬었다.
“그 새끼는 지 주제도 모른다니까? 까놓고 말하면 그 새끼 구독자 중에 70%는 내 덕으로 모은 거다.”
“지랄 노.”
“……그냥 맞장구나 칠 것이지. 그래도 절반은 솔직히 내 덕이거든. 무튼, 그런 개국공신을 이렇게 뎅겅해도 되냐 이거야!”
최병훈이 손날로 목을 치는 시늉을 하며 미간을 찌푸렸다.
"네가 뭐라 했기에 잘랐는데?"
"아니, 요즘 시청자 수가 줄어들기 시작했단 말이지? 구독자 증가도 주춤하고. 근데 이거 원래 당연한 거거든."
"그래?"
"어. 근데 이 새끼는 그걸 못 참고 겁나 조바심을 내는 거야. 내가 그래서 옆에서 달래주고 별 지랄을 다했어요. 조금만 참고 진득히 스타일 유지하면 터진다고. 그런데 하……"
속이 타는지 최병훈은 맥주를 벌컥 들이켰다.
"결국 네 말은 안 듣고 다른 큐튜버 따라했다?"
"그렇다니까? 내가 그래서 말렸는데 눈 돌아가더니 그럴 거면 꺼지라고 지랄해서 결국 나왔다."
“새 편집자는 누군데?”
“알려 주겠냐? 어디 싼 맛에 듣보잡이나 데려왔겠지. 내 장담하는데, 한 달도 못 채우고 런 할걸?”
“그럼 너 다시 찾겠네? 재취직 가능?”
이경복이 피식하며 묻자 최병훈은 진저리를 쳤다.
“어휴, 안 해. 내가 진즉에 네 말을 듣는 건데.”
“내가 그렇게 불길하다, 급하게 계약하지 말라고 할 때는 씹더니.”
“아, 이제는 안다니까… 그만해라. 지금 주마등 보는 기분으로 후회하고 있으니까.”
“앞으로는 형님 말 잘 들어라. 응?”
이경복의 너스레에 최병훈은 대꾸할 말이 없었다. 그는 대신 소주잔과 맥주잔을 들고 술을 말았다.
“쓰읍, 난 어떻게든 될 줄 알았지. 아무튼 너는 어떻게 된 건데?”
“나?”
자기 술을 준비한 최병훈이 이경복의 빈 잔을 따라 주었다.
맥주가 다 찰 때까지 이경복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말없이 다시 잔을 부딪쳤다.
잔이 비워진 후 최병훈이 슬쩍 눈치를 보았다.
“……심각한 거야?”
“뭐, 나한테 심각한 건 아니지”
이경복은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이어 그의 설명에 최병훈은 대노했다.
“완전 미친 새끼 아냐?!”
“야, 목소리 좀 죽여라.”
“아니, 와. 진짜 그냥 개자식이 아니라 그레이트 개자식이었구만?”
이미 사수가 이상하다는 이야기는 몇 번 들었던 터였다. 하지만 설마하니 누명을 씌울 줄은 몰랐다.
기다렸다는 듯 최병훈이 손을 내저었다.
“야야, 됐어. 까놓고 말하면 좋은 회사도 아니었잖아?”
“그것도 맞지.”
“그리고 내가 늘 말하지만, 너랑 영업은 안 어울린다니까? 아무래도 그…….”
최병훈은 말하다가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누가 듣기라도 할까 조심스럽게 주변을 살폈다.
그러나 시끌벅적한 호프집의 소음 속에서 그들의 말을 엿듣는 이는 없었다.
“뭐냐, 네 ‘그거’랑은 궁합이 안 좋다니까.”
10년이 넘게 우정을 쌓아 왔지만 최병훈은 이경복의 ‘그거’를 대체할 말을 찾지 못했다.
옛날부터 이경복은 가끔 남다른 모습을 보일 때가 있었다.
갑자기 멈춰 서서 멍하니 있거나, 별로 친하지도 않은 사람을 뚫어지게 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보다 신기한 건 사람을 가려내는 능력이었다. 이경복은 해가 될 인물들을 정확히 골라냈다.
‘직감’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부족하고, ‘촉’이라는 표현은 너무 가볍게 느껴졌다.
“회사는 네 노력을 알아주지를 않아요.”
“……설명할 방법이 없으니까 어쩔 수 없지.”
“아니, 내 말이.”
이경복은 영업 상대가 문제가 될 것 같으면 손을 뗐다. 하지만 그 이유를 명확히 설명할 수가 없었다.
최병훈처럼 오랫동안 지내 온 친구라면 받아들이겠지만, 다른 사람이 보기엔 괴팍하게만 보일 터였다.
그런데 회사는 오죽하겠나.
근무 태만 혹은 무능한 직원으로 여겨질 수밖에 없었고, 직장 생활이 순탄치 않은 건 당연지사였다.
“까놓고 말해서 네가 손해냐? 그 회사가 손해지. 인간감별사를 놓쳤으니 그 회사도 오래 못 갈 거다.”
“내가 무슨 병아리 감별사냐?”
이경복이 실소를 흘리자 최병훈도 마주 웃었다.
“말이 그렇다는 거지. 아나, 근데 너나 나나 딱 알아주는 사람이 없네. 이것이 유비를 만나기 전 공명의 심정인가.”
“또 헛소리한다.”
“솔직히 우리는 사람만 잘 만나면 성공한다니까. 응? 딱, 삼고초려 할 정도로 우리의 진가를 알아보는…….”
기본 안주를 으적으적 씹던 최병훈이 말을 멈추었다. 그리고 약간 커다래진 동공으로 이경복을 바라봤다.
“야, 그러고 보니까 너도 게임 좀 했잖아.”
“엉?”
“삼고초려 하니까 생각나네. 우리 고딩 때, 너한테 입단 제의 왔었잖아. 그것도 세 군데나.”
“아 그거…….”
이경복은 씁쓸한 미소와 함께 말끝을 흐렸다.
으레 공부에 뜻이 없는 학생들이 빠지는 길 중 하나가 게임이었고, 이경복도 그런 학생이었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피지컬이 탁월해 프로를 노려 볼 정도였다는 사실.
“야, 너 방송해 볼 생각은 없냐?”
최병훈이 은근슬쩍 물어보자 이경복은 미간을 찌푸렸다.
“뭔 방송?”
“당연히 게임 방송이지. 내가 너한테 남캠하라고 하겠냐?”
이경복은 큭큭거리면서도 손을 내저었다.
“아니, 미친놈인가 진짜. 나 왜 게임 관뒀는지 기억 안 나냐?”
입단 제의를 받았을 때 이경복도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이후로 게임만 하면 그는 원인 모를 고통에 시달렸다.
그게 신기를 사용한 대가라는 건 할머니 말을 듣고 난 후에야 알았다.
당시에는 어떻게든 참아 가며 입단 테스트를 받아 봤지만 당연하게도 결과는 최악이었다.
그 뒤로도 게임만 하려고 하면 앓아누워서 결국 포기했다. 더욱이 안 좋은 일도 겹쳐서 그 이후로 게임은 잊고 살았다.
“그 뭐냐…… 그게 ‘신병’이라는 거지?”
“아마도.”
신병.
보통 무당이 신내림을 받지 않아 생기는 병환을 이야기하는 말이었다.
물론 이경복은 무당이 아니었지만, 달리 대체할 말이 없었다.
이경복은 이만 화제를 전환하려고 했다. 하지만 최병훈은 쉽사리 포기하지 않았다.
“그래도 지금은 괜찮잖아.”
“엉?”
“우리 때랑 다르게 요즘에는 캡슐이 대세 아니냐.”
가상현실 기술의 발전으로 게임의 역사는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했다.
현실과 같은 가상현실 접속 기기인 캡슐의 보급. 이제 컴퓨터는 대부분 업무용이며 그마저도 차츰 사라지는 추세였다.
“몸이 좀 불편하거나 장애가 있어도 게임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그러니까 그 새끼 같은 쌉노잼 스트리머도…… 아오, 갑자기 빡치네.”
최병훈은 과장스럽게 머리를 쓸어 넘기며 슬쩍 이경복의 표정을 살폈다.
“아무튼 몸이 아니라 여길 쓴다는 거지. 어쩌면 너도 이제 괜찮지 않겠어?”
“흐음…….”
제 머리를 두드리는 친구를 보며 이경복은 침음을 흘렸다. 듣고 보니 옳은 말이 아닌가.
‘내가 방송을?’
이경복은 학창 시절을 떠올렸다.
뭣도 모르고 마냥 즐겁기만 했던 시절, 자신의 게임 실력을 보고 놀라는 사람들과 그 반응을 보며 느꼈던 흡족함까지.
이경복은 관심을 받는다고 부끄러워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아, 근데 몸 쓰는 건 좀 다르려나?”
그 사이 최병훈이 피식 웃으며 도발했다. 훤히 보이는 수였지만 이경복은 넘어가 주기로 했다.
“시험해 볼까?”
“시험?”
“오늘은 술 좀 마셨으니까 좀 그렇고, 내일 바로 고?”
“콜?”
“콜.”
두 친구는 웃으며 잔을 들이켰다.
* * *
다음날.
“어서 오세요.”
캡슐방 직원은 사무적인 어투로 손님을 맞이했다. 평일 이른 아침부터 찾아온 두 남자.
직원은 두 사람이 진상이 아니기를 바라며 미소를 지었다.
“여기 계정 등록도 되죠?”
“네, 가능합니다.”
“야, 이경복.”
최병훈이 이경복에게 손짓했다.
처음 캡슐방에 와 본 이경복은 새삼 달라진 시설을 구경하고 있었다.
“여기 와서 신체 인증 좀 해라.”
“이야…… 진짜 좋아지긴 했네. 무슨 캡슐 호텔인 줄.”
“어디 가서 그런 말 하면 척추 서냐는 말 들을걸. 됐고, 얼른 계정 등록이나 해라.”
친구의 재촉에 이경복은 오히려 더 느릿하게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장난도 잠깐.
이경복은 인증기에 손을 집어넣었다. 지문과 정맥 인식을 거치자 신원이 떠올랐다.
“이경복 님, 맞으시죠?”
“남의 손 잘라 붙인 거 아니면 맞겠죠.”
“그 입 좀 다물고 있으면 안 되냐?”
최병훈이 실실거리며 말하자 이경복이 쏘아붙였다. 직원은 표정 관리에 힘쓰다가 스크린에 뜬 정보를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아…… 캡슐 이용 이력이 아예 없으시네요?”
“아, 네.”
“죄송합니다, 잠시만요. 저희 캡슐방 회원 등록이라고 생각해서…….”
직원은 설마하니 성인 중에서 캡슐 계정이 아예 없는 사람이 있으리라 생각지 못한 것이다.
그만큼 이경복은 보기 드문 부류였다.
“네, 등록 되셨습니다. 이용시간은…….”
“일단 후불로 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A-6 캡슐 이용해 주시면 됩니다.”
두 사람은 직원의 안내를 받고 캡슐 앞에 섰다. 간단한 캡슐 사용법을 안내받은 후 이경복이 캡슐을 열었다.
“혹시 모르니까 밖에서 대기하고 있을게.”
최병훈의 표정이 사뭇 진지해졌다. 다시 그 ‘신병’이 도질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었다.
이경복은 고개를 끄덕이고 캡슐 안에 몸을 눕혔다.
이어 안내받은 대로 캡슐을 기동하자 순식간에 시야가 뒤바뀌었다.
“워.”
분명 조금 전까지 자신은 누워 있었건만. 이경복은 어느새 바닥을 딛고 있는 자신의 몸을 느꼈다.
“와 씨…….”
입고 있던 옷까지 달라졌다.
신기하게도 옷의 질감과 촉감, 그리고 섬유에서 느껴지는 희미한 냄새까지 실제 같았다.
직원에게 안내를 받긴 했지만 실감하는 건 또 다른 일이었다.
‘아프지는, 않네.’
짧은 경탄 뒤에 찾아온 걱정.
그러나 다행히도 예전처럼 고통이 느껴지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긴장한 몸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싱크를 위해 가볍게 몸을 움직여 주세요.]
이어 그의 눈앞에 푸른 시스템 메시지가 나타났다. 이경복은 지시에 따라 가볍게 몸을 풀었다.
“와…… 미쳤네.”
이어 다시 나오는 감탄.
머리로는 이 몸이 가짜, 그저 데이터에 불과하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체감은 전혀 달랐다.
발가락 끝부터 머리끝까지 온전히 그의 원래 몸처럼 느껴졌다.
[싱크가 완료되었습니다.]
[마음껏 움직여 보세요.]
친절한 메시지와 함께 백색으로 물든 공간에 인형이 나타났다. 교통사고 실험할 때 쓰는 더미와 유사한 모습이었다.
“……개쩌네.”
이경복은 가볍게 더미에게 펀치와 킥을 날려 보았다. 그리고 점차 강도를 높였다.
‘그래도 이런 점은 진짜가 아니긴 하구나.’
실제 현실이라면 반동에 몸 곳곳이 얼얼할 터였고, 격한 움직임에 땀방울이라도 좀 새어 나와야 했다.
그러나 그런 단점은 제외한 채 찰진 타격감만이 살아 있었고, 땀 한 방울 없이 쾌적한 상태가 유지되었다.
‘그런데…….’
이경복은 뭔가 이질적인 걸 느꼈다.
시각, 청각, 촉각, 후각, 미각 모두 생생히 느껴졌다. 그런데 그 오감(五感)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기이한 느낌이 뇌리를 자극했다.
‘가상현실에서는 원래 이런 건가?’
당장 의문에 답할 사람은 이곳에 없었다. 불편한 건 아니었기에 이경복은 가볍게 넘겼다.
[충분히 익숙해지셨나요?]
이어 나타난 시스템 메시지.
[운동능력 테스트를 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테스트는 필수가 아닙니다. 튜토리얼을 종료하셔도 좋습니다.)
그 메시지 아래에 어떤 종류의 테스트인지 간단한 영상이 나오고 있었다.
[장애물 달리기]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는 장애물들을 피해 골에 도착하세요. 속도도 중요하지만 신중함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영상 속의 사람은 빠르게 달려가다가 갑자기 벽에서 튀어나온 기둥에 균형을 잃었다.
그것만으로 어떤 방식인지 파악하기에는 충분했다.
장애물 달리기는 가상현실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요소로, 게임에서 가장 필요한 판단력, 임기응변, 판의 설계로 표현되는 뇌지컬과 근력, 체력, 속력, 반사신경 등으로 표현되는 피지컬이 포함된 기초 테스트였다.
가상현실에 들어오면 가장 먼저 접하게 되는 튜토리얼로 기록에 따라 구분되는 ‘VR 수저론’은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구기도 했다.
이경복은 잠시 고민하다가 가볍게 몸을 풀었다.
‘잘 나오면 병훈이 기록도 물어봐야겠네.’
친구를 놀릴 생각에 이경복은 웃으며 확인을 눌렀다.
더미가 나타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순식간에 공간이 변화했다.
광활했던 공간에 곧바로 벽이 세워지고 조명이 어두워졌다. 통로 가장자리, 짙은 어둠 속에서 장애물이 나타날 터였다.
“응?”
시작과 함께 타이머가 돌아가기 시작했지만 이경복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그저 눈을 껌뻑이며 이리저리 고개를 돌렸다.
‘뭐지?’
숨겨진 장애물들은 눈으로는 보이지 않고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냄새가 날 리가 없었고 만져 보는 건 어불성설.
그런데 어떻게 된 건지.
‘이상하네.’
어둠 속, 바닥 아래, 천장 등.
장애물들의 존재가 생생하게 느껴졌다.
그제야 이경복은 깨달았다.
아무 고통도 없이 신기가 발현되고 있음을.
‘버근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