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의 신들린 게임방송-4화 (4/491)

4화 - 튜토리얼이 너무 쉽다 (2)

멀뚱히 서 있던 이경복은 삑하는 신호음에 눈을 돌렸다.

어느덧 타이머가 5초를 지났다.

‘일단 해 보자.’

난생처음 느껴 보는 생경한 감각, 과연 이게 진짜일지 한번 확인해 보고 싶었다.

이경복은 곧바로 바닥을 박차고 달렸다.

이경복은 느껴지는 장애물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가장 처음은 벽에서 튀어나오는 기둥.

“와.”

정확하다.

이경복이 느꼈던 그 형태 그대로 어둠 속에서 기둥이 튀어나왔다.

이미 알고 있었기에 맞을 걱정은 없었다.

‘이것도?’

다음은 1초 정도 버티다가 무너지는 바닥이었다. 이경복은 일부러 느껴지는 바닥을 밟고 곧바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후두둑하며 바닥이 쪼개지지 않나.

‘그렇다면.’

이경복의 입가에 슬며시 호선이 그려졌다. 반신반의였던 심정이 확신으로 굳어졌다.

시스템 메시지는 ‘신중’을 요구했지만 이경복은 오히려 더욱 힘을 실어 속도를 높였다.

‘이렇게 가면……!’

숨겨진 장애물의 위치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당연하게도 그 장애물들을 피할 수 있는 최적의 경로를 그리는 건 너무나 쉬운 일.

이경복은 단 한 순간도 멈추지 않고 코스를 주파했다.

“후아.”

현실이라면 숨이 차서 곧바로 바닥에 널브러졌을 것이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다르다.

이경복은 기분 좋게 숨을 뱉으며 웃었다.

[무사히 통과하셨습니다!]

[00:53:21]

이윽고 테스트 결과 창이 눈앞에 나타났다. 튜토리얼용 테스트인 만큼 코스는 그리 길지 않았다.

‘랭킹도 있네?’

결과 창 아래에 보이는 트로피 아이콘. 이경복은 가볍게 랭킹을 열어 보았다.

[‘이경복’님의 운동능력 테스트 결과는 현재 ‘3위’입니다.]

[Amazing!]

[혹시 현실에서는 국가대표이신가요? 정말 놀라운 능력입니다!]

‘……내가 3위라고?’

이경복은 눈을 껌뻑이며 전체 순위를 확인했다.

[1위 김** 님 – ‘00:52:12’]

[2위 정** 님 - ‘00:52:37’]

[3위 이경복 님 - ‘00:53:21’]

프라이버시 때문인지 다른 랭킹의 사람들은 성씨만 공개 되었다. 그러나 이경복에게는 그런 게 문제가 아니었다.

‘아니, 사실 3위가 아니잖아?’

테스트를 시작하면서 곧바로 뛰어나간 것도 아니었다. 생경한 감각 때문에 약 5초를 소요했다.

만약 그가 바로 출발했다면?

‘내가 1위라고?’

대한민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만 꼽혀도 놀라울 텐데, 최정상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경복이 얼떨떨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별로 어렵지도 않던데?’

그가 순위를 노리고 아득바득 노력한 것도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 * *

한편, 최병훈은 다른 의미로 얼떨떨함을 느끼고 있었다.

“……미친.”

이경복에게 뭔가 문제가 생길까, 그는 밖에서 휴대기기인 스마트링크로 모니터링을 하고 있었다.

다행히 이경복은 괜찮아 보였고, 가상현실에 매우 흥미를 보였다. 이대로라면 방송 제안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것 같았다.

그런데 장애물 달리기부터 뭔가 이상했다.

처음에는 고등학교 시절 때의 증상이 다시 나온 줄 알았다. 테스트가 시작했음에도 우두커니 서서 멍 때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혹시 ‘신병’이 다시 도지는 게 아닐까 걱정했지만 이경복이 발을 뗀 이후부터는 완전히 상황이 달라졌다.

“찢었네.”

1분도 채 안 되는 짧은 시간. 그럼에도 충격을 느끼기에는 충분한 시간이기도 했다.

‘어떻게 단 한 번도 걸리지를 않지?’

이경복은 마치 폭주기관차 같았다. 달리는 속도가 빨랐던 만큼 작동하는 장애물도 짧은 간격으로 사방에서 튀어나왔다.

그런데 이경복은 그 모든 걸 물 흐르듯 넘기며 달려갔다.

그렇다고 추하게 피한 것도 아니었다. 자신만만한 표정, 행동에서 느껴지는 여유로움은 누가 봐도 처음 가상현실을 접한 사람이 아니었다.

이경복의 기록이 얼마나 대단한지 이 바닥에 있던 최병훈은 잘 알고 있었다.

다른 업계 종사자가 봤다면 눈이 뒤집어졌을지도 모른다.

지금 자신도 그랬으니까.

“아씨, 녹화할걸…….”

최병훈은 이마를 짚었다.

편집자의 시선으로 보면 버릴 장면이 하나도 없었다. 문제는 너무 놀라 녹화할 생각도 하지 못했다는 사실. 자신의 멍청한 선택이 한심해서 이마를 탁탁 쳤다.

그 사이 캡슐이 열리고 이경복이 나왔다.

“후아.”

아직 여운이 가시지 않은 얼굴이었다. 가상현실의 신체가 쾌적했던 만큼 현실의 몸과는 괴리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역시 사라졌네.’

이경복은 특히 더 그러했다.

오감을 초월하는 듯한 그 생경한 감각이 현실에서는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처음부터 몰랐다면 모를까, 있다가 없으니 약간의 답답함도 느껴졌다.

‘그건 역시 신력의 영향인가? 가상현실이라 반동은 없었던 거고?’

이 생경한 감각의 출처로 가장 먼저 떠오른 건 하나뿐이었다. 하지만 깊게 고민할 틈은 없었다.

“야, 너 뭐야?”

“엉?”

최병훈이 이경복에게 따지듯 물었다.

“아니, 너 진짜 캡슐 처음 써 보냐?”

“뭐래, 옆에서 계정 생성하는 거 봤으면서.”

“근데 대체 어떻게…… 와 씨, 돌겠네.”

최병훈은 말문이 막힌 듯 헛웃음을 흘렸다.

게임 센스가 좋을 거라곤 생각했지만, 피지컬이 이렇게 뛰어날 줄은 예상치 못했기 때문이었다.

황당했지만 무척이나 흡족한 황당함이었다.

“야.”

최병훈은 가볍게 이경복의 어깨를 붙잡았다.

“아무래도 넌 천재인가 보다.”

“……뭐?”

천재(天才).

하늘이 내려 준 타고난 재능.

최병훈은 반은 우스갯소리로, 그리고 반은 진심으로 말했다.

‘이 자식, 잘하면 대박 난다.’

편집자로서의 경험으로 내린 판단이었다.

* * *

“야! 야! 진짜, 너 잘 생각해라! 너 성공한다니까! 이런 재능 낭비하는 건 범죄야 범죄!”

“아, 알았다니까. 다시 연락할게.”

이경복은 호들갑을 떠는 최병훈을 보내고 걸음을 옮겼다.

‘내가 천재라고?’

최병훈은 친구라서가 아니라 객관적으로 봐도 편집자로서 유능했다. 그가 만든 영상은 가상현실에 대해 잘 모르는 이경복이 봐도 눈길이 혹했으니까.

그런 친구가 괜히 띄워 주겠다고 한 말은 아닐 터였다. 애당초 서로 알랑방귀 뀔 사이도 아니기도 했고.

‘하여간 성미가 급하다니까.’

좋게 말하면 행동력이 좋다는 뜻이었지만, 지금은 나쁜 뜻에 가깝다.

이경복은 걷던 걸음을 멈추고 문득 주위를 둘러보았다.

평일 점심의 번화가, 점심 식사를 위해 나선 사람들이 많았다.

‘이 사람들도 캡슐을 이용하겠지.’

드물게 이경복처럼 캡슐이 없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캡슐은 이전의 컴퓨터와 같이 집집마다 하나씩은 구비해 두는 게 기본이었다.

‘대한민국 1위.’

그는 다시금 테스트 결과를 곱씹어 보았다.

물론 테스트가 귀찮아서 생략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상황을 감안해도 1위라는 타이틀의 무게는 가볍지 않다.

그러니 최병훈도 그렇게 나섰던 것이라.

이경복은 걸음을 돌렸다.

‘한 번 더…….’

그가 다시 도착한 곳은 캡슐방이었다.

‘시험해 보자.’

이번에는 전력으로 도전해 볼 생각이었다. 그리하면 진짜 자신이 친구가 말했던 것처럼 천재인지 알 수 있을 터였다.

* * *

최병훈은 집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컴퓨터를 켰다.

‘분명 53초 21이었지.’

머릿속에 박힌 친구의 기록.

게다가 시작 전 낭비한 시간을 감안하면 약 48초였다.

‘분명 테스트 기록 모아 두는 사이트가 있었는데.’

캡슐의 첫 튜토리얼에서 진행되는 테스트.

애당초 결과를 중점으로 경쟁하는 용도도 아니었다. 그 결과 값은 그리 중요시 여겨지지 않았다.

말 그대로 운동능력을 측정하려는 용도가 아닌가. 그렇다고 전문적이며 세밀한 측정도 아니었다.

나쁜 평가를 받고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사용자의 첫 가상현실 경험을 부정적으로 만드는 건 어리석은 일이었다.

‘어디 보자. 평균 기록은 1분 20초 정도네.’

그러니 테스트의 난이도는 평이하게 설정됐다.

웬만한 성인이라면 최소 1분 30초 내에서 클리어가 가능한 수준이었고, 2분을 초과하면 적합한 데이터가 아니라는 결과로 수집된다.

“월드 레코드…… 이거네.”

최병훈은 눈을 희번덕거리며 페이지를 열었다. 이윽고 세계 순위를 확인한 그는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World Record.]

[1st. Rob*** - ‘00:47:53’]

[2nd. Ota*** - ‘00:48:22’]

[3rd. Jac*** - ‘00:50:45’]

이경복의 기록은 약 48초.

‘세계 3위!’

지체한 시간을 정확히 측정하지 못했지만 적어도 3위, 혹은 2위까지 노려볼 만한 수치였다.

세계에서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사람이 친구라니?

“쓰읍, 이런 능력을 놔두고 영업이나 뛰고 있었으니……!”

단순히 성공이 욕심이 나서가 아니었다.

최병훈은 진심으로 재능의 빛을 보지 못한 친구가 안타까웠다.

조금이라도 더 일찍 권했더라면 어땠을까. 이쪽 업계에 일하면서도 권유 한번 안 했던 자신에게도 책임이 느껴졌다.

‘이걸 어떻게 설득한다…….’

망설이는 이유는 충분히 공감했다.

개인방송업계는 연예계와 비슷하다. 스트리머는 사람들의 관심과 애정으로 먹고 사는 직업이니까.

다만 조금 더 제약이 없고 자유로운 분위기와 소통이 원활하다는 점이 다를 뿐.

그만큼 자신을 대중에게 공개해야 하는 부담이 있긴 했다.

‘그래도 그만큼 보상이 크다.’

앞서 말했듯, 연예계와 비슷한 원리로 스트리머의 몸값은 천장이 없다.

인지도만 있다면 웬만한 연예인보다 더 윤택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

실시간 방송과 후원만으로 네 자릿수 수익은 물론이고 협찬과 홍보, 이쪽 업계용어로 ‘숙제’로 인한 수입, 그리고 자신이 편집할 큐튜브 영상의 수익까지 합치면 억대도 노려볼 수 있었다.

‘하지만 확실히 리스크도 있긴 하지.’

물론 장밋빛 미래만이 가득한 건 아니었다. 반대로 이쪽 업계에는 바닥도 없다.

최병훈은 한순간의 실수로 미끄러지는 건 물론, 수직 강하하는 스트리머를 많이 봐 왔다.

그러나 그런 위험은 대처할 자신이 있었다.

‘이 자식이 오케이만 하면 되는데…….’

최병훈은 머리를 벅벅 긁었다. 그는 깊이 호흡하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래, 아직 거절한 것도 아니니까. 녀석도 시간이 필요할 거야. 가상현실이 처음이기도 했고.’

그리 생각하던 최병훈은 새삼 헛숨을 삼켰다. 처음 해보는데 세계 3위라니 누가 들으면 미친 소리라고 할 게 뻔했다.

‘일단 간소하게나마 전략을 짜 보는 게…….’

이경복을 섭외(?)할 계획을 구상하려던 순간이었다. 손목에 찬 스마트링크가 가볍게 진동했다.

섭외 대상의 연락이었다.

“어어! 뭔 일이냐?”

<문 좀 열어라.>

“문?”

<너네 집 앞이다.>

최병훈은 벌떡 일어섰다.

생각에 빠져 몰랐는데 인터폰 스크린에 이경복의 모습이 보이는 게 아닌가.

그는 부리나케 일어나 문을 열어 주었다.

“어어, 들어와, 들어와.”

“혹시 내가 방해했냐?”

친구의 얼떨떨한 얼굴을 본 이경복이 다 안다는 듯 물었다.

“방해?”

“아무리 그래도 대낮부터 하면 뼈 삭는다.”

“뭔 개소리야!”

“아님 말고.”

이경복은 큭큭거리며 마치 제집처럼 소파에 몸을 던졌다.

최병훈은 눈가를 찌푸렸다가 이내 이경복이 컴퓨터 쪽으로 시선을 돌리는 걸 보고 아차 싶었다.

“월드 레코드? 이거 뭐야?”

“어? 아, 그 오늘 네가 한 거 세계 기록 좀 찾아봤다.”

숨길 이유는 없었다.

켕기는 일을 한 것도 아니었으니 최병훈은 당당히 나서기로 했다.

“이게…… 세계기록이라고?”

이경복의 미간이 좁혀졌다.

눈치를 살피던 최병훈이 빠르게 다가왔다.

“그렇다니까? 야야, 마침 잘 됐다. 한번 봐 봐. 네가 대한민국 1등, 그리고 세계 3등이라니까? 아니 2등. 넘버 투야 넘버 투!”

네가 대단하다는 걸 좀 자각해라. 최병훈은 간절한 바람을 담아 말을 쏟아 냈다.

“진짜 나 믿고 딱 반년, 아니다 3개월만. 너무 긴가? 그래! 한 달, 더도 말고 한 달만 방송 해 보자! 응? 진짜 너 성공한다니까!”

“야.”

이경복은 단 한 음절로 그의 말을 끊었다. 최병훈이 찔끔한 표정으로 물러서자 이경복이 스마트 링크를 조작했다.

띵하는 신호음과 함께 웬 사진이 도착했다.

“……뭔데?”

“봐 봐.”

최병훈은 의아한 얼굴로 이경복의 표정을 살폈다. 이상하게도 기분이 나쁜 것 같지는 않았다.

대체 무슨 사진이기에 그런 걸까.

최병훈은 그가 보낸 사진을 확인하고 그대로 굳어 버렸다.

“사, 사사사사….”

“캡처하는 방법을 몰라서 애 좀 먹었다.”

그것은 기록이었다.

[무사히 통과하셨습니다!]

[00:42:18]

[‘이경복’님의 운동능력 테스트 결과는 현재 ‘1위’입니다.]

이경복이 전력을 다한 결과, 그의 ‘진짜’ 기록이었다. 그는 여유롭게 미소 지으며 페이지를 새로고침 했다.

[World Record.]

[1st. Lee*** - ‘00:42:18’]

갱신된 기록.

“네 말대로 나 천재 맞나 보다.”

이경복은 확신이 생겼다.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