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신입 스트리머가 너무 잘함 (1)
최병훈은 털썩 의자에 앉았다.
“와씨…… 어떻게 세계 1위, 그것도 차이가 어마어마하네.”
아직도 충격의 여운이 가시지 않았다.
“그건 나도 좀 놀랐네.”
이경복은 미소를 지었다.
대한민국 1위와 격차가 크다는 점에서 자신감이 좀 붙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세계에서 1위일 줄이야 누가 알았겠나.
“스트리밍, 할 거지?”
“해야지.”
“예쓰! 예쓰! 좋아쓰!”
이경복의 대답에 최병훈이 벌떡 일어나 양 주먹을 꽉 쥐었다. 그리 흥분한 친구를 바라보며 이경복이 손을 들었다.
“근데 하나 얘기할 게 있다.”
“뭔데? 뭐? 야, 다 말해. 응? 다 들어준다 내가!”
“지랄 말고 좀.”
“아나 거, 사람 무안하게시리.”
최병훈은 멋쩍은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귀를 기울였다.
“일단 각 잡고 시작하는 건 좀 별로인 것 같아.”
이경복은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뭐, 처음부터 큐튜브 채널 파고 영상 올리고 그러는 건 좀 아닌 것 같다.”
이제 막 방송을 시작하려는 참이었다. 그렇다면 최병훈은 그의 편집자가 될 터였다.
하지만 아무리 친구라도 무보수로 부려 먹을 수는 없지 않나.
적어도 수익이 날 수준은 된 이후에 협업을 하는 게 도리에 맞았다.
“하씨…….”
최병훈은 착 소리가 나도록 이마를 짚었다. 눈은 가려졌지만 그 아래 드러난 입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딱 내가 하려던 말인데.”
“엉?”
“아무래도 넌 스트리머가 천직인 모양이다.”
천직(天職)
하늘이 내려 준 타고난 직업.
최병훈은 시시덕거리며 입을 열었다.
“오히려 내가 각 잡자고 하면 말리려고 했는데.”
“그래?”
“어. 요즘 이쪽 업계가 아주 유혈이 낭자하거든. 레드오션이 아니라 블러드 오션이야.”
최병훈은 편집자였던 만큼 업계 생리에 밝았다. 그는 표정을 가다듬으며 진지하게 말했다.
“방송 돈 된다고 덤벼드는 인간들이 한둘이겠냐? 아예 기업적으로 움직이는 사람들도 많거든.”
“하긴 우리 고딩 때도 좀 그랬지.”
“그래. 근데 이게 내가 보니까 그러면 안 되는 거거든. 왜? 시청자들이 왜 방송을 보겠냐?”
“그냥 재미있으니까 보지.”
“그래, 근데 이게 좀 더 니즈를 파악해 보면 또 달라요. 길게 말해 봐야 듣지도 않을 거고, 요약하면 가볍고 즐거운 방송을 보고 싶다는 거거든.”
최병훈은 이내 자세를 고쳐 앉았다. 마치 이등병처럼 각이 잡힌 자세.
“근데 스트리머가 이렇게 힘 빡 주고 뻣뻣해 봐라. ‘나 방송에 인생 올인했습니다.’ 티를 내 보라고. 시청자가 그걸 즐거워 하겠어?”
“아니.”
“어. 겁나 부담스럽거든. 방송 들어왔다가 나가면 이 사람 인생 꼬라박을 거라는 게 느껴지거든. 아니, 난 쉬러 왔는데 인생의 무게를 나눠 받게 생겼다 이거야.”
“그 짤 생각나네. ‘축제인가요? 아니 장례식입니다.’하는 거.”
이경복의 말에 최병훈이 큭큭거렸다.
“그래, 바로 그거야. 와나, 진짜 넌 방송 감각도 좀 있는 것 같다야. 아무튼 시작은 편하게, 즐길 거 즐기면서 가자고. 스트리머가 즐거우면 시청자도 좋아하는 법이거든.”
“그럼 됐네.”
최병훈의 대답에 이경복은 흡족하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떻게 이야기를 정리할까 했는데 양쪽 모두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 문제가 없었다.
그렇다면 남은 건 실전.
“처음 할 게임은 생각했냐?”
최병훈이 가볍게 모니터를 돌렸다. 모니터에는 가장 규모가 큰 스트리밍 사이트, ‘트라이’의 메인페이지가 나타나 있었다.
“어, 오면서 좀 둘러봤지. 그리고 하나 사 뒀다.”
캡슐방에서 오피스텔로 오면서 방송 소재를 생각해 왔던 참이었다.
“바이오 크라이시스.”
“아, 그거 괜찮지.”
최병훈은 가볍게 손가락을 튕기며 검색창에 게임 이름을 입력했다.
[바이오 크라이시스]
[시청자 7,773명]
예전 PC와 콘솔 시장에서 유명했던, 좀비 아포칼립스를 배경으로 하는 게임이었다.
제한된 탄약과 회복물품, 절묘한 카메라와 적의 배치로 긴장과 공포를 살려 대표작으로 자리매김했던 작품.
얼마나 인기가 많았는지 영문판 제목인 ‘드웰러 이블’로 영화까지 제작되었다. 그쪽도 나름 인기를 끌어 후속작도 여섯 편이나 나왔을 정도.
그 작품을 가상현실 버전으로 리메이크해서 한창 스트리머들이 활발히 했던 게임이기도 했다.
“지금은 좀 단물이 빠지긴 했는데, 우리 같은 하꼬한테는 적당해.”
사람이 많이 몰리는 게임은 그만큼 스트리머의 숫자도 많았다. 그런 곳에서 막 시작하는 스트리머가 관심을 받는 건 모래 속에서 사금을 찾는 것과 마찬가지.
시청자 수는 적더라도 경쟁이 덜한 곳이 더 나았다.
“그리고 네 피지컬 보면 이쪽 장르도 잘 맞고.”
“장르?”
“그래, 원래 게임방송이 크게 매운맛 방송이랑 순한 맛 방송이 있잖냐.”
준수한 게임 실력을 자랑해서 시청자들이 마음 편히 즐기는 ‘순한 맛’, 그리고 스트리머가 실력이 부족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즐기는 ‘매운맛 방송’.
후자의 경우에는 시청자도 괴로워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근데 넌 순한 걸 넘어서 딱 탄산각이다.”
최병훈은 빠르게 셈을 마쳤다. 이경복 정도의 피지컬이면 탄산음료처럼 속이 다 시원해질 게 분명했다.
“네가 하고 싶기도 하다니 잘됐네.”
만약 이경복이 결정을 못 했다면 추천해 줄 게임 후보 중의 하나기도 했다.
“됐네, 그럼 언제부터 시작할까?”
“일단 캡슐부터 사야지.”
“아, 맞네. 캡슐방에서 방송하는 건 좀 그렇지.”
“캡슐은 내가 알아볼게. 아는 업자한테 말하면 좀 싸게 구할 수 있을 것 같다. 비용은 일단 반반으로 부담하자.”
“엉? 네가 왜?”
“자슥아. 이것도 다 투자야. 내가 제안했는데 부담은 같이 안고 가야지.”
최병훈은 마음 같아서는 전액 지원할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이경복이 그렇게 날름 받아먹는 성격은 아니었기에 오히려 더 부담이 생길 터였다.
절반 정도면 자신의 각오를 보여 주기에도 충분할 터였다.
“뭐…… 그래라 그럼.”
이경복은 흔쾌히 수락했다.
* * *
며칠 후.
캡슐의 설치와 설정을 마친 이경복은 바로 게임을 해 보기로 했다.
‘오.’
게임을 실행한 이경복은 속으로 탄성을 흘렸다. 제작사와 로고가 영화 상영관처럼 지나간 후 곧바로 컷신이 진행됐다.
‘병원이네.’
오프닝이라 그런지 몸은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꿈을 꾸는 기분에 가까웠다.
“대체 무슨 일이야?”
“모르겠습니다! 응급환자가 너무 많아요!”
“서둘러!”
병원은 혼란했다.
백의를 입은 사람들이 너나 할 거 없이 분주히 뛰어다니고 있었다. 특이한 점은 경찰들도 많이 보인다는 사실이었다.
“무전이 먹통이야……!”
“어, 어떡하죠?”
“오, 하느님…….”
이윽고 시야가 한 간호사의 뒤를 쫓았다. 드르륵거리는 소음과 함께 그녀가 잡고 있는 침상이 병실로 들어선다.
“어, 이 환자 이름이…….”
간호사는 다급히 펜과 차트를 든다. 이어 덜컥 세상이 멈추었다.
그리고 차트 위에 희미하게 글자가 보였다.
‘아, 캐릭터 이름 정하는 건가?’
아무래도 플레이어가 직접 이름을 쓸 수 있는 것 같았다. 이경복은 잠시 고민했지만 이내 기본 설정을 따르기로 했다.
[Name : John]
그와 함께 팟하며 시야가 어두워졌다. 오프닝 컷신이 끝난 것이다.
‘아, 시작이구나.’
이경복은 신체를 느꼈다.
그가 몇 번 눈을 깜빡이고 일어났다.
-오, 바크 늅늅이?
절묘하게도 그 순간 시청자 하나가 채팅을 쳤다. 시청자의 채팅창은 시야 한쪽 귀퉁이, 반투명한 형태로 떠올랐다.
“아, 안녕하세요.”
이경복이 가볍게 몸을 풀며 인사를 건넸다.
-엌ㅋㅋ 아예 첫방이구나.
“어? 어떻게 아셨지?”
그는 진심으로 놀랐다. 이제 막 게임 시작했는데 티가 난 걸까.
-와ㅋㅋㅋ 야한냄새!
-이력 공개 설정도 모르는 생뉴비라니!
이력공개.
스트리밍 플랫폼 ‘트라이’에서는 스트리머의 게임 이력을 시청자가 쉽게 확인할 수 있는 기능을 제공했다.
‘……일단 대화는 진행하면서 하자.’
시청자랑 그냥 노닥거릴 거라면 게임을 실행한 의미가 없었다. 이경복은 몸을 가다듬으며 주의를 기울였다.
“이상하게 조용하네요. 분명 오프닝에서는 완전 난리였는데.”
처음 긴박했던 병원 상황과 다르게 아무런 소음도 들리지 않았다.
-스포될 수 있으니까 채팅 자제함.
-킁킁 뉴비 냄새가 난다.
-뉴하!
그때 새로운 시청자가 또 들어왔다. 처음, 속된 말로 ‘하꼬’시절에는 시청자수 0과 1의 차이가 크기 때문이었다.
0명인 방송에는 들어가기가 부담스럽지만 한 명이라도 보고 있는 방송은 나가기도 쉽기 때문이었다.
“네, 안녕하세요.”
이경복은 누가 듣기라도 할 것처럼 속삭이듯 인사를 건넸다.
-엌ㅋㅋㅋ 벌써 쫄?
-바크가 좀 무섭긴 하지.
-이분 레알 처음이래요.
-헐, 맞네?
-그러면 좀 어려울 것인디.
-오히려 좋아.
대화할 사람이 생겨서 그런지 채팅이 더 활발해졌다. 이경복으로서도 부담이 적어진 상황.
바로 그때.
‘……또다.’
육감이 다시금 곤두섰다.
병실 바깥에 뭔가 불길한 것이 느껴졌다.
이경복은 반사적으로 침대 옆에 있는 링거대를 붙잡았다.
-오 ㅋㅋㅋ
-마우스피스 해야 하나 싶었는데 아니네?
-아 ㅋㅋ좀비겜이면 무기는 상식이지
이경복이 채팅을 보고 입을 떼려는 순간이었다.
“끄아아아악!”
바깥에서 들려온 비명.
이경복은 곧장 문에 몸을 붙였다.
‘몰입감 지리네.’
게임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생생한 비명이었다.
-오오, 왔다 왔어.
-스포 ㄴㄴ.
-스포 칼밴 좀.
-매니저도 없는데 누가 밴?
-그럼 이제 누가 밴 해 주냐.
이경복은 마른 침을 삼키며 문을 비스듬히 열었다. 그와 함께 훅하고 비릿한 혈향이 후각을 자극했다.
찐득하게 말라붙은 피가 복도 곳곳에 가득했고, 조명은 간헐적으로 깜빡거리고 있었다.
“후욱, 후욱……!”
예민해진 청각에 거친 숨소리가 들렸다. 복도 끝, 깜빡이는 조명에 누군가 달려오는 그림자가 보였다.
그리고 그 뒤를 쫓는 또 다른 그림자들까지.
“누가 쫓기고 있나 보네요.”
좀비 사태가 벌어진 건 명백했다. 이경복은 채팅을 기다리지 않고 문을 열었다.
-이 용기 칭찬해.
-역시 남자다잉.
-시원해서 좋네.
이경복이 복도에 나옴과 동시에 그림자의 주인이 나타났다. 건장한 흑인 경찰이 잔뜩 얼굴을 찌푸린 채 모퉁이를 돈 것이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친 순간.
“도망쳐!”
그의 외침에 뒤이어 동물의 울음소리 같은 게 들렸다.
이어 흰색 가운, 아니 이제는 붉은 가운을 걸친 시체들이 그를 쫓았다.
-돔황챠!
-좀비 두둥등장!
-으앙 쥬금
올라오는 채팅창.
“어서!”
그러나 시청자들의 말과 다르게 경찰은 아직 살아 있었다. 그는 권총으로 좀비를 사살하며 시간을 벌어 주었다.
“총이네요.”
이경복의 눈이 빛났다.
시청자들의 반응으로 보아 여기서는 도망치는 게 평범한 상황인 것 같지만 그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저거 들고 가면 좀 편하겠죠.”
그는 곧바로 복도를 내달렸다.
-???
-엌ㅋㅋㅋㅋ
-이래서 늅늅이 방송을 못 끊는다니까.
-바로 리트각 ㅋㅋ
어느덧 시청자는 4명으로 늘어났다. 그들은 모두 이경복의 죽음을 예상했다.
-아 모르면 죽어야지 ㅋㅋ
-좀비 : 로켓배송 정말 빠르네요^^
-고기가 친절하고 사장님이 맛있어요!
조롱하는류의 채팅에도 불구하고 이경복은 미소를 지었다.
‘이미 다.’
조명이 꺼져 있는 십자형 복도의 중앙, 양쪽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좀비들.
그와 같은 생각을 한 사람이 이제껏 한 명도 없었겠는가. 제작사도 플레이어가 이런 선택을 할 거라는 걸 감안하고 있었다.
이에 제작사는 조명이 꺼진 복도에 급습용 좀비를 배치해 두었다.
‘알고 있거든.’
그러나 이경복은 그 존재를 이미 알고 있었다. 그리고 미리 알고 있다면 대응이란 더욱 쉬워지는 법이었다.
“흡!”
짧게 숨을 멈추며 휘두른 링거대의 끝이 갈고리처럼 좀비의 목을 휘감았다.
이경복은 그대로 놈을 잡아당기고 허리를 틀며 반대쪽 좀비의 머리를 링거대로 강타했다.
-어?
-???
-뭐임?
물 흐르듯 이어지는 움직임은 무협영화에서나 볼 법한 무예에 가까웠다. 두 좀비는 속수무책으로 순식간에 바닥을 나뒹굴었다.
한 놈은 머리가 함몰됐고 다른 하나는 살아 있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이경복이 바로 찍어 눌러 처리했다.
링거대를 타고 찐득한 핏물이 질척하게 흘러내렸다.
이경복은 히죽 웃었다.
“이 겜 재밌네요.”
진심이었다.
생각한 대로 몸이 움직였다.
-이걸 뉴비가 뚫는다고?
-지놈도 이건 10트 했는데?
-당신 누구야! 뉴비 아니지!
시청자들의 격한 반응.
그리고 또 하나 격하게 반응하는 이들이 있었다.
“크르륵!”
“끄륵!”
바로 경찰의 탄환에 쓰러지는 좀비들이었다. 이경복은 가볍게 호흡을 고르고 다시 움직였다.
‘남은 좀비는 다섯.’
경찰의 사격 솜씨가 썩 나쁘지는 않았던 모양이었다. 선두에 있던 좀비들이 쓰러져 길을 막아 준 덕분에 이경복은 늦지 않았다.
“당신……!”
경찰이 불쑥 튀어나온 그를 보고 놀라 말했다.
-경찰 왜 살아 있음?
-마사카……!
-이거 대사가 다른데?
-설마 루트가 또 있다고?
-이거 최초 공개 각 아님?
-클립, 클립을 따자……!
어느새 들어왔는지 시청자가 6명으로 늘어나 있었다. 텍스트임에도 시청자의 열기와 흥분이 느껴졌다.
이경복은 미소를 지었다.
마치 순풍에 닻을 올린 것처럼 좋은 흐름이라는 걸 직감했다.
“잠깐! 위험……!”
경찰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이경복의 동공이 움직였다. 귀퉁이에 있던 채팅창을 바라보던 그의 눈동자는 흉측한 좀비에게로 향했다.
‘과연.’
현실보다 더 예민해진 오감에 덧붙여 생경한 육감이 뒤섞였다. 이어 그는 숨 쉬듯 자연스럽게, 홍수처럼 밀어닥치는 정보의 물결을 순식간에 구분했다.
그리 정돈된 정보는 이 위기를 헤쳐 나갈 최적의 방법으로 승화되었다.
“하나.”
이경복이 링거대를 풀 스윙으로 후려쳤다. 먼저 다가오던 좀비의 다리가 꺾이며 쓰러진다.
그 뒤를 따라오던 좀비는 갑작스러운 장애물에 균형이 흐트러졌다.
“둘.”
이경복은 그대로 힘을 거스르지 않고 몸을 돌리며 숙인 뒤통수를 찍어 눌렀다.
퍼석하는 소리와 함께 박살 난 좀비가 먼저 쓰러진 놈을 깔아뭉개며 봉쇄한다.
“셋.”
링거대의 내구도는 그리 좋지 않았다. 끝이 휘어져 무기로 쓰기는 곤란한 형색이 되었다.
그러나 이경복에게는 별 상관이 없었다.
그는 갈고리처럼 휘어진 링거대로 좀비를 잡아채 넘어뜨렸다.
“젠장!”
그 사이 경찰도 가만있지는 않았다. 짧게 욕지거리를 내뱉고 그가 방아쇠를 당겼다.
이경복이 앞을 가로막았기에 쉽사리 조준하지 못했지만 쓰러진 놈이라면 다르다.
‘역시나.’
이경복의 계산대로였다.
“위험해!”
경찰이 다급히 소리쳤다.
일련의 동료(?)들이 당하는 사이 남은 좀비들이 근접했다. 링거대의 길이 때문에 오히려 불리해진 상황.
하지만 이마저도 문제는 아니었다.
“넷.”
이경복은 링거대를 가로로 잡고 좀비의 입에 물린 채 벽으로 밀어붙였다.
강한 압력에 썩어 문드러진 살점은 버티지 못했다. 턱이 끊어진 시체는 벽을 타고 스르륵 미끄러졌다.
“안 돼……!”
그러나 마지막 하나.
남은 하나가 이경복의 등을 덮쳤다. 경찰은 다급히 방아쇠를 당겼지만.
달칵.
탄환이 떨어졌다는 절망적인 소리만이 들려왔다. 그는 질끈 눈을 감아 버렸다.
그런데.
“다섯.”
이윽고 들려오는 건 비명이 아닌 조용한 목소리였다. 바들바들 떠는 좀비 앞에 검붉은 피가 튀긴 이경복의 얼굴이 있었다.
그리고 그의 손에는 피투성이가 된 볼펜이 들려 있었다.
-내가 지금 뭘 본 거야?
-ㄹㅈㄷ……
-기본 이름이 존인 이유가 있었네 ㅋㅋㅋㅋ
-혹시 윅씨 가문의 존이신가요?
-이 정도면 피지컬이 아니라 매지컬인데?
조금 전 쓰러뜨렸던 좀비의 가운 주머니에 있던 볼펜이었다. 이경복은 곧바로 돌아서며 볼펜으로 안구를 관통해 뇌까지 파괴한 것이다.
“튜토리얼이라 그런지 쉽네요.”
이어지는 이경복의 말에 채팅창은 ‘?’로 도배되었다. 겨우 6명이었지만 따로 도배 제한을 두지 않은 탓인지 시야 한쪽이 가득 메워질 정도였다.
-일단 팔로우 박겠습니다.
-이게 왜 뉴비?
-대체 무냐고!
그 반응에 화답하고 싶었지만 이경복은 그럴 수 없었다.
갑자기 몸이 뻣뻣해지는가 싶더니 저절로 몸이 움직였기 때문이었다.
바로 컷신의 시작을 뜻했다.
“괜찮으십니까?”
기분 좋게 울리는 중저음.
놀랍게도 존의 목소리는 이경복의 것과 같았다. 음성합성 기술의 발달로 인한 덕분이었다.
“더, 덕분에 살았습니다. 대체 어떻게……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죠.”
경찰은 이를 악물며 권총과 탄창을 하나 넘겼다.
“지하에 입원한 경찰들의 물품보관소가 있습니다. 아마 아직 남은 장비가 있을 겁니다. 이건 출입을 위한 카드키입니다.”
이어 건네진 플라스틱 카드.
경찰의 말에 채팅창은 더욱 난리가 났다.
-히든! 히든 루트다!
-야생의 히든이 낙타낳다!
-이게 왜 뉴비? 이게 왜 뉴비? 이게 왜 뉴비?
-도네열어. 도네열어. 도네열어. 도네열어. 도네열어.
-살아 님이 경찰 계신다!
이경복은 갑작스러운 채팅창의 광기에 당황했다.
‘뭐, 뭐야……?’
뉴비를 찾아다니는 시청자는 뉴비가 아닌 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