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 스트리머 퍼플 데뷔 (2)
이경복은 시청자들의 반응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아, 이건 기존 루트에 없던 선택지네.’
아무래도 기존 루트에서는 로건이 가짜라는 건 조금 더 시간이 지난 뒤에 밝혀지는 것이라.
그러나 지금 이경복에게는 바로 기회가 왔다.
[‘로건’의 정체를 밝히겠습니까?]
[1. Yes - “당신 경찰복, 제 거랑은 좀 다르군요.” (안주머니에 있던 로건의 수배 전단을 발견한다)]
[2. No - ‘그는 생존자들의 리더야. 분명 이유가 있겠지’]
이경복은 싱긋 웃으며 선택지를 바라보았다.
“수배 전단이라니, 범죄자인 모양이네요.”
그가 운을 떼자 채팅창이 우르르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 새끼 순 나쁜 새끼에요!
-순도 100% 나쁜 놈임
-ㄹㅇㅋㅋ 후까시만 잡으면서 졸라 부려 먹음
-근데 범죄자인 줄은 몰랐네.
-그냥 ㅅㅂ놈인줄 알았는데 그레이트 ㅅㅂ놈이네?
이경복은 혀를 차며 손가락을 올렸다.
“자, 그럼 닥전갑니다!”
이경복이 1번을 선택하자 채팅창의 ‘ㅋㅋㅋ’가 연달아 올라왔다. 이어 선택지가 사라지고 다시금 컷신이 진행됐다.
“당신 경찰복, 제 거랑은 좀 다르군요.”
존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그 지적에 로건은 흠칫하며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뭐? 무, 무슨…….”
“잘 보시면 여기 경찰 엠블렘이…….”
존이 제 가슴팍을 툭툭 가리키다가 말끝을 흐렸다. 그리고 이내 단추 하나를 풀더니 안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이어 그 안쪽에서 웬 종이 하나가 나왔다.
“……존?”
옆에 있던 산드라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존은 아주 심각한 표정으로 로건을 힐끗 바라보더니 종이를 그녀에게 넘겼다.
“직접 보시는 게 낫겠네요.”
“그게 뭔…….”
종이를 받아 든 산드라의 표정이 일변했다. 이윽고 그녀가 아득 이를 물었다.
“사, 산드라?”
뭔가 일이 잘못되고 있다는 걸 느낀 걸까. 로건이 떨리는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그의 기대와는 달랐다.
“로건 마이어스. 사기 전과 8범. 수배 중.”
그녀가 씹어뱉듯 말했다. 로건은 움찔하며 책상 밑으로 손을 넣었지만.
“나라면 그렇게 안 하겠어.”
존이 순식간에 권총을 겨누었다. 이어 로건이 입을 벌리기도 전에.
“뒤져!”
산드라가 날았다.
책상을 넘어 날아간 드롭킥이 정확히 로건의 안면에 직격했다.
“크악!”
“이 빌어먹을 사기꾼 새끼! 네가 우리 뒤통수를 쳐!?”
나자빠진 로건을 능숙하게 마운트 포지션으로 올라탄 산드라.
“쌔빠닥을 뽑아서 목매달 새끼! 어쩐지 경찰치고 눈깔에 기름이 꼈다 했다. 이 개씹새가 진짜!”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걸쭉한 입담에 존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ㅗㅜㅑㅗㅜㅑ!
-우리가 알던 산드라가 돌아왔다!
-아 ㅋㅋㅋ 이게 산드라짱이지.
-편-안
-시원하게 패버리누 ㅋㅋ
-ㄹㅇ 사이다자너~
-77ㅓ억!
시청자들은 환호했지만 이경복은 존과 비슷한 심정이었다.
“와…… 진짜 욕 잘하네요.”
캐릭터 대사가 작아지면서 들려온 이경복의 목소리. 컷신이 진행되는 동안 이입을 위해 그간 말을 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산드라가 험한 욕지거리를 하며 로건을 묵사발 내는 중이었으니까.
-퍼플 깜놀 ㅋㅋㅋㅋㅋ
-마! 이게 산드라다!
-유사 산드라, 서윗드라에 주의하세요!
-존이랑 퍼플이랑 싱크 무냐고 ㅋㅋㅋㅋ
-아아, 이게 바로 ‘과몰입’이라는 것이다.
-와, 근데 그럼 산드라가 진짜 이미지 메이킹 한 거 아님?
-본성 어디 안 간다 이 말이야.
그 사이 존이 다급히 산드라의 어깨를 잡았다.
“산드라! 진정해요! 그러다 죽습니다!”
“놔요! 놔! 이 새끼, 이 새끼 때문에……!”
“사람들도 알아야죠!”
존의 말에 산드라가 저항을 멈췄다. 피떡이 된 로건이 가느다란 숨을 뱉었다.
이윽고 암전과 함께 장면이 전환됐다. 생존자들 앞에 속박당한 로건, 그리고 존과 산드라가 그 뒤에 있었다.
-오 ㅋㅋㅋ
-공개처형으로 바꾼 건가?
-사이다 아직 더 남았누 ㅋㅋㅋ
-그래서 안 마실 거?
-당연 마셔야지!
시청자들은 희희낙락했다.
반면 생존자들의 표정은 암울함 그 자체였다.
“로건, 로건이 가짜라고요……?”
“산드라, 그게 대체……!”
생존자들은 믿기 싫다는 듯 말했다. 그러나 산드라가 수배 전단을 내밀자 생존자들이 그것을 돌려 보았다.
-캬……
-바뀌는 표정들 보소 ㅋㅋ
-나였으면 진즉 혀 깨물 듯 ㄷㄷ
산드라는 감정을 절제하려는 듯 깊이 심호흡했다. 그리고 마지막 생존자가 부들부들 떨며 수배 전단을 구겨 버리자 그녀의 입이 열렸다.
“설명은 더 필요 없겠죠. 여기, 존이 없었다면 우리는 계속 속고 있었을 겁니다.”
시청자들의 시선이 일제히 존에게 쏠렸다. 독기어린 표정이 잠깐 누그러졌다.
“……고맙습니다.”
“하마터면 사기꾼에게 계속 놀아날 뻔했잖아.”
“괜히 저 사기꾼을 위해 개죽음 당할 뻔했어.”
“감사해요!”
생존자들의 감사에 존은 담담히 입을 열었다.
“사실, 저도 경찰이 아닐지 모릅니다.”
“……네?”
“무슨?”
“이유는 몰라도 기억이 불분명합니다. 저를 구해 준 경찰의 도움으로 이 옷을 구한 것뿐입니다.”
존은 솔직하게 말했다.
그러자 생존자들의 표정이 다시금 어두워졌다.
“그, 그럼 구조대는?”
“경찰 무선은 못 쓰는 건가……?!”
“구조대도 로건의 거짓말에 불과해요. 이제 아시잖아요? 이 새끼는 경찰도 뭣도 아닌 사기꾼에 불과하다고요.”
그들이 혼란스러워하자 산드라가 다시 앞으로 나섰다.
-야, 이거 찐 루트 맞네.
-ㄹㅇㅋㅋ 이미 1회차 했다는 걸 전제로 한 듯
-맥락으로만 알려 주는 거 보면 다회차 콘텐츠 맏따.
-정보) 로건은 구조대와 경찰무선으로 연락한다며 구라를 쳐 왔다.
-하긴 초반 경찰 구하려면 웬만큼 경험으로는 부족할 듯.
-???: 경험이요? 첫트면 되는데?
-아 ㅋㅋ 그냥 하면 된다고 ㅋㅋ
약간 부실한 설명이 담긴 컷신.
채팅창에는 바이오 크라이시스를 적어도 한 차례 클리어했음을 전제로 한 컷신이라는 의견이 대다수였다.
“그럼, 그럼 우리는…… 이제부터 어떻게 되는 겁니까?”
“구조대가 없다는 거예요?”
“맙소사…….”
리더의 부재, 밝혀진 거짓, 사라진 희망. 생존자들이 혼란에 빠진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아뇨!”
그런 그들을 향해 산드라가 낮지만 강한 어조로 말했다.
“제가 대신 리더를 맡을 겁니다.”
“산드라가?”
“하긴 산드라라면…….”
“가장 위험한 일을 도맡아 왔으니까.”
그녀가 나서자 생존자들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구조대는 없습니다. 우리는 자력으로 이 엿 같은 도시를 떠날 겁니다.”
“우, 우리만으로요?”
“시체들이랑 같이 눕겠다면 말리지는 않겠어요. 하지만 적어도 저는, 그리고 저를 따라오는 사람들은 그딴 X같은 상황은 없을 겁니다.”
삐-처리 되는 효과음에 채팅창이 더 활발해졌다.
-산드라! 산드라! 산드라!
-카리스마 산드라 짜응!
-우리 산드라는 위에서 내려보는 게 어울령
-X 검열 무냐구!
-X를 눌러 JOY를 표하십시오
-산드라가 말한 주옥같은 발언, 무척 귀하네요.
생존자들은 잠시 서로 눈치를 살피지만 이내 결연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리더! 그럼 로건은 어떡할 겁니까?”
“죽여 버려야지!”
“저 사기꾼이 처먹은 음식이 얼만데……!
“잘라서 좀비견들 유인할 때 쓰자고!
누군가 로건의 처우에 대해 묻자 생존자들은 분노를 터트렸다.
-아, 쥔공 손으로 처리 안하나?
-이건 이것대로 사이다지 ㅋㅋ
-거열형 추
-자 참교육 드갑니다잉?
히든루트에서 달라지는 로건의 최후. 채팅창에서는 기대가 고조되는 게 느껴졌다.
그러나 산드라는 고개를 내저었다. 순간, 채팅창의 ‘?’로 도배가 되었다.
-뭐지? 발암을 암시하는 거신가?
-우리 산드라가 고구마를 준다고?
-눈나, 걔 죽여!
-아임니다! 우리 산드라 그런 사람 아임니다!
산드라는 이내 싸늘한 눈초리로 결박당한 로건을 깔아 보았다.
“그냥 죽이는 걸로는 부족해요.”
그 말과 동시에 다시금 전환되는 장면. 어느덧 밤이 되고 존이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어 그 아래로 보이는 풍경.
로건은 팬티 바람이었고 오른팔이 없었다. 그는 넝마 같은 붕대를 칭칭 감은 채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더 이상 피를 머금지 못하는 붕대 아래로 핏방울이 후두둑 떨어졌다.
-산드라! 산드라! 산드라! 산드라!
-아 ㅋㅋㅋ 이게 산드라지!
-좀비 밭에 피 뿌리기 ㅋㅋㅋㅋ
-???: 새벽배송은 마켓 산드라.
-산드라 좋아하는 사람 개추 ㅋㅋ 일단 나부터!
시청자들의 반응은 그야말로 대만족. 이어 달빛에 비친 그림자들이 나타났다.
“으, 으아아아……!”
로건이 미친 사람처럼 울부짖었다. 존은 그제야 시선을 돌렸다.
산드라는 원래 로건이 있던 자리, 지도가 있는 책상에 앉아 머리를 짚었다.
“산드라.”
“……미안해요. 생각보다 힘드네요.”
존의 부름에 그녀가 양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그는 천천히 다가가 그녀의 뒤에 서서 어깨 위에 손을 올렸다.
-ㅁㅇㅁㅇ
-분위기 뭐야?
-야수, 야수의 감이 느껴진다.
채팅창을 쉴 틈이 없었다.
“홧김에 말하기는 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앞길이 너무 막막해요.”
손을 치우며 고개를 돌린 그녀의 눈가에는 약간의 물기가 어려 있었다.
산드라가 보여 준 약한 모습.
언제나 억세고 당당했던 그녀였기에 그 차이는 시청자들에게 확연히 다가왔다.
-나, 욕데레 아니어도 산드라 좋아하네.
-이게 보호본능……?
-산드라짜아아앙!
-여자의 눈물은 무기라더니……
-트수들 어머님도 자주 우시지 않음?
-채팅 선 넘네?
-학생 글 내려^^
시청자들의 감탄과 드립이 어떻든 컷신은 계속 진행됐다.
“걱정마요. 내가 도와줄 테니까.”
존, 이경복의 목소리가 입혀진 그 대사에 다시금 채팅창이 폭발했다.
-와앀ㅋㅋㅋㅋㅋㅋ
-몰랐는데 이 목소리 찰떡이누 ㅋㅋㅋㅋ
-오빠 나 주거! (턱수염을 깎으며)
-내 목소리로 이딴 대사치면 바로 거절각ㅋㅋㅋ
-팩트) 목소리 좋아도 어차피 얼굴에서 커트다.
이어 순간 홱 돌아가는 산드라. 그녀의 귓불이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일단, 거처를 옮겨야겠어요. 리젠팜에서도 이쪽으로 사람을 보냈으니 언제 발각될지 몰라요.”
이어 빨라진 목소리.
그녀가 어떤 상태인지 누구라도 짐작할 수 있었다.
-산드라가 부끄러워해?
-부끄드라 라고? 이건 못 참지!
-서윗드라에 부끄드라까지…… 죽어도 여한이 없다.
-아 ㅋㅋㅋ 바크 히든 루트 무적권 뚫는다.
-바크 히든이요? 영감님 계속 그 소리 하시네. 얼른 약 드세요!
시청자들이 잔망스럽게 떠드는 동안 존이 몸을 숙여 지도를 살폈다. 둘의 얼굴이 더욱 가까워졌다.
“……아울렛?”
“네. 도시 외곽 쪽이라 나가기도 쉬울 것 같고 자원도 꽤 남아 있을 거예요.”
산드라는 의식적으로 지도에 시선을 고정했다. 그녀는 이어 두 가지 루트를 보여 주었다.
“지하철과 고가도로 중에 하나를 택하면 될 것 같은데, 어디로 가야 할지…….”
산드라가 잘근 입술을 깨물더니 고개를 돌렸다. 존과 산드라의 얼굴이 말 그대로 지척이었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해요?”
그리고 시간이 멈추었다.
[어떤 길을 택하시겠습니까?]
[1. 지하철 - “최단 경로인 지하철을 이용하는 게 좋겠죠.”]
[2. 고가도로 - “엄폐물이 많은 고가도로가 안전할 겁니다.”]
컷신이 멈추고 선택지가 나왔다.
-오오오오오! 완전 미공개루트!
-WA! WA! WA!
-아 ㅋㅋㅋㅋ 이건 닥전이지
-뭔 닥전이야 ㅅㅂ 닥후지!
-바알못들 많네 ㅋㅋ 무적권 지하철가야지
-플탐 200시간 이하로는 아닥하자.
-200시간 ㅇㅈㄹ ㅋㅋㅋㅋ
-하여간 인싸쉑들 ㅋㅋㅋ 현실 사느라 바크도 못 하쥬?
-ㄹㅇㅋㅋ 기본 500시간은 넘어야지.
-트수님들! 제발 현실을 살아 주세요……!
채팅창은 폭발 직전이었다. 얼마나 채팅이 빠르게 올라가는지 이경복이 보는 채팅창이 버벅일 정도였다.
‘미공개면 아무래도 시청자들도 다 모르는 모양인데.’
이경복은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여기서는 무엇을 선택해도 미지수인 상황.
그 때문인지 채팅창의 열기는 빠르게 과열되고 있었다. 이대로 놔두다가는 시청자들이 패를 갈라 싸움이라도 할 지경.
“자, 지금 의견이 팽팽하네요. 이거 어느 쪽을 선택해도 제가 욕먹게 생겼습니다.”
이경복의 목소리가 송출되자 잠깐 채팅창이 멈칫했지만, 양상은 그리 나아지지 않았다. 이에 그는 곧바로 말을 이어 나갔다.
“아무 정보도 없으니까 민주적으로 해결하죠. 투표, 한번 해 보겠습니다!”
바로 플랫폼 ‘트라이’에서 지원하는 기능 중 하나인 투표였다.
[어디로 갈까요?]
[1. 지하철]
[2. 고가도로]
이경복이 빠르게 투표 설정을 마치며 말했다.
“막간을 이용해서 후원도 열어 두겠습니다. 투표는 흐름 끊기지 않게 딱 5분만! 그사이에 혹시 하실 말씀 있으시면 하시…….”
그가 채 말을 끝내기도 전이었다.
[‘바알못OUT’ 님이 ‘1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닥전! 좀비물에 지하철이 빠지는 게 말이 됨?]
[‘부끄드라승천’ 님이 ‘5,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잘못하면 산드라 죽는 거 아님? 그나마 안전한 후자가 낫지.]
[‘오빠나주거’ 님이 ‘5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난 퍼플이 좋아하면 다 좋아!]
마치 선거 유세라도 하듯 후원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에 질세라 채팅창도 팽팽히 의견이 갈렸다.
-1111111111111111111
-외쳐 22! 외쳐 EE! 외쳐 콩콩!
-콩까지마! 콩까지마!
-지하철이 어둡고 좁으니까 더 어려움 ㅋㅋㅋ 1번 가야지
-산드라랑 같이 갈 각 2222
-ㄹㅇ 퍼플이면 당연 어려운 쟈철 가야지
-와 ㅋㅋㅋ 이 와중에 투표 팔로우 시청자 전용인 거 실화?
-아직도 팔로우 안 박음? 님 도르신?
채팅을 읽은 이경복이 가볍게 손뼉을 치며 말했다.
“아, 말씀을 안 드렸네. 팔로워분들 전용 투표입니다.”
대부분 그의 방송을 기다리며 팔로우한 사람들이지만 의외로 방송을 보면서 팔로우를 안 하는 시청자가 많았다.
이후 링크를 통해 들어온 사람들은 방송 보기에 바빠서 팔로우를 생각도 못 했기 때문이었다.
보통 방송이 끝나면 팔로우를 하곤 하지만 그냥 나가는 사람도 있을 터.
그 전에 방송 중에 팔로우를 유도할 수 있다면 놓치지 않는 게 좋았다. 이경복에게 최병훈이 해 준 조언이었다.
-아 맞네 ㅋㅋㅋ
-생각해 보니 팔로우 안 했었음ㅋ
-왜 투표가 안 되나 했네 ㅋㅋ
-아 구독도 얼른 열어달라고옷!
-친구비…… 준다고……
아니나 다를까 시청자들의 팔로우 인증 채팅이 올라왔다. 그와 함께 폭증하는 투표수.
현재 시청자 숫자는 약 1900이었고 그들 대부분이 투표에 참여하고 있었다.
무난히 방송 끝날 즈음에는 2천 고지를 넘을 것 같았다.
[투표가 종료되었습니다!]
그렇게 전쟁 같은 5분이 지나고 투표 결과가 발표됐다.
[어디로 갈까?]
[1. 지하철 – 1174표]
[2. 고가도로 – 781표]
결과는 1번, 지하철의 승이었다.
그렇게 결과가 정해진 이유.
[‘피지컬매지컬’님이 ‘3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퍼플이면 당연한 결과지 ㅋㅋ]
이경복, 퍼플이 유명해진 것과 연관이 있었다.
시청자들 대부분이 그의 놀라운 피지컬과 게임 실력에 이끌려 온 이들이었으니 더 어려워 보이는 루트를 골라야 한다는 논리.
“네, 투표 끝났습니다. 후원은 게임 집중을 위해 다시 닫아 둘게요.”
이경복이 웃으며 다시금 설정을 마쳤다.
“어려우니까 지하철이라…… 저도 꽤 마음에 드는 이유네요.”
그럴 가능성은 없지만 만약에라도 투표가 50대 50이 된다면 이경복도 지하철에 갈 생각이었다.
그 말에 채팅창이 ‘ㅋㅋㅋ’로 도배되었다.
-이것이 퍼플의 근자감 ㅋㅋㅋㅋ
-근자감이라니 무엇?
-근거 있는 자신감이란 뜻임^^
-맞말추.
-당연한 말인데 왜 어색하지?
이어 2번을 선택한 시청자들은 아쉬움을 내비쳤지만.
-산드라 데려가도 퍼플이 옆에 있음 괜춘 ㅋㅋㅋㅋ
-우리 산드라 짜응은 강하거등요?
-산드라면 어딜 데려가도 살아남지.
대부분 가볍게 넘겼다. 하지만 극히 일부 남다른 이들이 있었다.
-그래도 좀 너무 성급한 결정 아닌가요? 이런 귀중한 결정을 투표 같은 걸로 결정하다니 도저히 이해가 안 갑니다.
-이거 세계최초공개인데 안전한 걸로 가야지 생각이 없네 진짜. 너무 자극적인 것만 생각하는 것 같아서 아쉽네요.
그러나 이경복은 가뿐히 소수의견은 무시했다. 애당초 그가 나설 필요도 없었다.
-엄근진 장문충들 무엇?
-아 꼬우면 직접 히든 루트 뚫어서 가든지 ㅋㅋㅋ
-불편하면 자리를 고쳐 앉으세여
-방송 2일 차에 이딴 놈들 꼬이는 걸 보면 퍼플 크게 될 듯 ㅋㅋㅋ
-웃긴 건 결과 나오고 저 ㅈㄹ한다는 거 ㅋㅋㅋ
다른 시청자들의 폭격에 압살 당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뭐라 말하든 채팅창이 단결이라도 한 듯 올려 버리니 더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자, 그럼 다시 진행하겠습니다.”
이에 이경복은 가뿐히 선택지를 눌렀다. 존의 대답을 들은 산드라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확실히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어요.”
“생각이 같아서 다행입니다.”
존이 웃으며 대답하자 산드라가 지긋이 그를 바라본다. 약간 상기된 얼굴과 그 눈빛 그리고 이어지는 잠깐의 정적.
-헐!
-ㅗㅜㅑ ㅗㅜㅑ!
-큰 거 온다! 큰 거 온다! 큰 거 온다! 큰 거 온다!
시청자의 기대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채팅창.
“……지금도 저랑 같은 생각이면 좋겠어요.”
“산드라……?”
이어 산드라가 눈을 감으며 가볍게 입술이 닿았다. 이경복은 그 부드러운 촉감에 자기도 모르게 탄성을 냈다.
“와.”
하지만 컷신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아닌가요?”
수줍어하는 산드라의 물음. 존은 대답 대신 행동으로 답했다.
다시금 포개지는 입술.
생생하게 전해지는 감각에 이경복은 당황했다.
“어 잠깐. 여기까지 구현될 줄은…… 원래 이래요?”
그 물음은 기폭버튼과도 같았다.
-야!!!!!!!
-구현? 지금 산드라랑 키스하고 있다는 거임?
-엄마! 난 퍼플이 될래요! 엄마! 난 퍼플이 될래요!
-히든 루트 공략 좀! 히든 루트 공략 좀! 히든 루트 공략 좀!
-나도! 나도 키스할 거야!
광기가 느껴지는 채팅창.
그러나 이경복은 그 광기를 잠재울 생각이 없었다.
“혹시…… 이거 베드씬?”
그도 사뭇 궁금해졌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