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 스트리머 퍼플 데뷔 (4)
최병훈은 머리가 저릿저릿했다.
‘이경복 이 자슥이 진짜…….’
그는 방송 중인 이경복을 보며 생각했다.
‘천천히 키우자면서 이렇게 레전드만 내놓으면 어쩌라고!’
올라간 광대가 도통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는 방송을 모니터링하면서 편집자의 감각으로 영상각을 살펴보고 있었다.
하지만 도통 그럴 필요가 없었다.
“와씨…… 이러다가 모가지 되겠네.”
누가 봐도, 따로 편집을 하지 않아도 되겠다 싶은 영상이 계속 나왔기 때문이었다.
무술 영화 같았던 이경복의 활약은 오히려 사소했다. 메인은 산드라의 변화였다.
‘바크 해 본 사람이면 안 볼 수가 없는 영상이지.’
드세고 억센 미인, 통칭 ‘욕데레’로만 여겨졌던 캐릭터 산드라의 또 다른 면모.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오직 하나뿐인 영상이었다.
“씨바, 근데 뽑기는 대체 어떻게 한 거야…….”
또 하나의 진국인 자판기 뽑기 영상.
편집자 이전에 바이오 크라이시스의 플레이어였던 최병훈은 헛웃음이 나왔다.
‘역시 그거겠지?’
생각할 수 있는 건 이경복의 ‘그거’뿐. 하지만 그렇다고 친구가 꺼려지거나 하지 않았다.
문제는 따로 있었다.
이경복의 활약이 너무 두드러지니 오히려 편집자로서의 영역이 줄어드는 기분이 든다는 사실.
‘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해야 할 일이 있지.’
그러나 최병훈은 기죽지 않았다. 친구를 위해 자신이 할 일은 단순히 편집자로서의 역할만이 아니었다.
‘이거 큐튜브 바로 만들어야 할 각이야.’
가장 먼저 그가 방송을 보고 떠올린 건 큐튜브 채널의 신설이었다.
현재 바이오 크라이시스의 히든 루트는 이경복, 퍼플이 세계 최초로 공개하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 히든루트의 해금조건이 이미 밝혀졌다는 것.
‘실시간 스트리밍 위주인 트라이에서는 당연 경복이가 최초지만, 큐튜브는 달라.’
히든 루트를 가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세상은 넓은 법이니 누군가는 해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누군가가 먼저 영상을 큐튜브에 올린다면?
‘스트리밍 시장이 크다지만 사람들은 큐튜브를 더 많이 본다 이 말이지.’
실시간으로 소통하는 게 스트리밍의 매력이지만, 그런 매력을 느끼기에는 너무 바쁜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재미있는 부분만 편집된 편집본을 선호하고, 그마저도 안 되면 커뮤니티에 돌아다니는 캡쳐, 속칭 ‘짤’만 보는 사람도 많다.
괜히 스트리머들이 큐튜브 채널을 만들어 두는 게 아니었다.
‘그렇게 놔둘 수는 없지.’
최병훈의 손가락이 바삐 움직였고, 그보다 빠르게 눈이 움직였다.
모니터링은 기본이고 영상편집, 그리고 큐튜브 채널 설정까지 준비해야 했다.
‘그나마 이름 정할 때 이미지 예시를 준비해 둬서 다행이네.’
다행히 후보군을 정하면서 채널 배경과 아이콘의 구상안도 같이 간략히 정리해 두었다.
‘하지만 역시 여기서 끝나지 않겠지.’
최병훈은 이경복의 방송을 보며 직감했다.
아직 이번 방송에서 뽑아낼 하이라이트는 이게 끝이 아님을. 그 무엇보다도 화제가 될 영상은 지금.
‘지금까지 공개되지 않은 루트니까.’
진정한 히든 루트가 시작되기 때문이었다.
* * *
이경복이 산드라에게 말을 걸자 곧바로 컷신이 진행됐다.
두 사람은 생존자들의 배웅을 받으며 호텔을 나서려 했다.
“존!”
그때 생존자들 틈으로 코인을 주었던 아이가 그에게 다가왔다.
-잼민이 귀엽누 ㅋㅋㅋ
-커엽커엽
-레알루 활력소자너~
이경복은 채팅창 너머로 아빠 미소를 지을 것 같은 사람들을 떠올렸다.
그 사이 아이는 작은 인형을 내밀며 말했다.
“이거, 가져가세요.”
“이건……?”
“존이에요.”
아이는 당당하게 말했다.
-잼민이가 코인 말고 다른 걸 준다구?
-뭐지? 히든템임?
-근데 왜 존임?
-아 ㅋㅋ 이거 그거네(모름)
-조잡한거 보소 ㅋㅋㅋ 잼민이가 멕이는 거 아님?
시청자들도 이경복도, 그리고 존도 어리둥절했다.
“엄마가 만들어 준 인형이에요. 존이랑 있으면 괴물들이 못 올 거라고. 숨바꼭질이니까 꼭꼭 숨으라고…….”
그러나 이어지는 아이의 말에 채팅창은 숙연해졌다.
-여기서 탈룰라가?
-앗…… 아아……
-조잡하다고 말한 트수는 인간맞음?
-대가리 박겠습니다!
존은 그 말을 듣고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인형을 다시 아이의 품에 안겼다.
“정말 고맙지만 나는 괜찮다. 내가 존이니까.”
“아…….”
“걱정하지 마라. 무사히 돌아올 거니까.”
존은 그렇게 말하며 일어섰다. 이윽고 시야가 암전되고 배경이 뒤바뀌었다.
“여기에요.”
이미 죽은 시신들과 피로 범벅된 계단. 산드라와 존은 손전등과 권총을 잡고 경계하며 아래로 내려갔다.
간헐적으로 깜빡이는 조명과 곳곳에 흉측하게 튀어나와 스파크가 튀는 배선, 그리고 박살난 채 희미하게 빛을 발산하는 광고판까지.
을씨년스럽고 불길한 지하철의 모습에 두 사람 모두 표정이 굳었다.
-왐마…… 분위기 작살나네.
-지하철은 프리플레이로도 못 오는 곳인데.
-알고 보니 스테이지가 구현되어 있었누.
시청자들도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그 사이 존과 산드라는 그보다 더 아래, 지하 플랫폼으로 향했다.
“이쪽이에요.”
손전등으로 역 방향을 확인한 산드라가 철로에 내려섰다. 나서려는 그녀 앞에 존이 착지했다.
“내가 먼저 갈게요.”
“……알았어요.”
존의 말에 부드럽게 미소 짓는 산드라.
-나대지 말라고 하는 산드라 ㅇㄷ?
-아아, 모르는가? 이건 ‘허니드라’라고 한다.
-아 ㅋㅋ 이제부터 무적권 나도 앞에 서야지
-새치기범 검거 완료.
시청자들이 잔망스럽게 떠드는 사이 이경복은 통제권이 돌아오는 걸 느꼈다.
플랫폼과는 다르게 조명 하나 없는 철로. 칠흑 같은 어둠은 마치 실체를 가진 듯 존재감을 과시했다.
손전등의 빛은 그 밀도 높은 어둠을 찌르는 작은 가시에 불과했다.
“여기서부터 시작이네요.”
이경복이 작게 속삭이며 성큼 발을 내디뎠다.
-ㅎㄷㄷ 겁도 없누.
-그렇게 막 가도 됨?
-아무리 봐도 갑툭튀 각인디요
-여기 다 쫄보 밖에 없음? ㅋㅋㅋ (성인 기저귀를 챙기며)
걱정하는 채팅과 다르게 이경복은 담담했다. 왜냐하면 그의 육감이 아무런 경고를 보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제가 예전부터 간이 좀 커서요.”
오히려 가볍게 채팅에 응수할 정도로 여유를 부렸다.
-간 때문이야~ 간 때문이야~ 쫄보는 간 때문이야~
-크윽 분하다…… 타고난 간이 작다니!
-아 ㅋㅋ 나였으면 망부석 쌉가능인디
그렇게 나아가기를 잠깐.
이경복이 천천히 속도를 줄이기 시작했다. 전방에서 미묘한 불길함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뭐가 있네요.”
-뭐가 뭔디유?
-몰?루
-벌써 노안이 왔나……
-퍼플 눈은 명도가 다른가?
-명도란다 ㅅㅂ ㅋㅋㅋ
하지만 이윽고 시청자들도 그 정체를 알 수 있었다. 희미한 손전등 빛 사이로 부풀은 머리가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팝헤드……!”
산드라가 낮게 소리쳤다.
일반 좀비와 다르게 머리가 비대해진 좀비들이 철로를 막고 서성이고 있었다.
-와씨 ㅋㅋㅋ
-난이도 상승 미쳤고 ㄷㄷ
-팝헤드가 벌써 나와?
-개껌이 또 선넘었누.
이경복은 힐끗 반응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자식들이 그렇게 위험합니까?”
시청자에게 물어본 것이지만 설명은 산드라에게서 돌아왔다.
“조심해요. 머리를 터트리면 폭발과 함께 독성가스를 분출하니까요.”
-???: 내가 네 선생이냐? 멍청아!
-여기 있는 건 허니드라입니다 선생님.
-정보) 그 가스는 다른 좀비를 불러온다.
-다리를 노리는 게 가장 좋다는 설이 학계의 점심.
-정보추.
이경복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럼 미리 길을 청소해야겠네요.”
“……네?”
“물러나요.”
이경복은 그리 말하고 주저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퍽하는 소리와 동시에 폭음이 터졌다.
녹색 가스가 새어 나오며 팝헤드 무리가 일제히 눈을 돌렸다.
-않이;;;
-이걸 왜 쏴!?
-무쳤냐고!
시청자들은 황당했다.
그러나 이경복은 설명 대신 행동으로 보여 주었다.
한 발에 하나씩 달려드는 팝헤드가 스위치를 누른 폭죽처럼 터져 나갔다.
하지만 그런 그를 당황시킨 건 따로 있었다.
“……내 아이를 아빠 없는 아이로 키우고 싶지는 않네요.”
“뭐라고요?”
“농담이에요.”
물러서지 않고 싱긋 웃으며 옆에 서는 산드라. 이경복은 어처구니가 없어 실소를 흘렸다.
-ㅗㅜㅑ ㅗㅜㅑ
-산드라 짜응!
-와씨 ㅋㅋㅋㅋ 패기보소
-아 ㅋㅋ 이게 산드라지.
-쾌락 없는 책임 무냐고!
-논란일자 ‘농담’
-산드라짱 그렇게 안 봤는데 무서운 사람이네!
산드라도 이내 합류하자 팝헤드의 숫자는 순식간에 줄어들었다.
그렇게 모든 팝헤드가 고꾸라지고 오직 녹색 안개만이 자욱해졌다.
“휴…… 겨우 다 처리했네요.”
하지만 이경복은 여전히 총구를 내려놓지 않았다.
아직 불길함은 해소되지 않았다.
“……또 옵니다.”
“네? 또라뇨?”
시야가 어두웠던 탓일까.
가장 먼저 느껴진 건 소리였다.
마치 송곳으로 철판을 긁는 듯한 불쾌한 소음. 그러한 소음이 점점 더 커져 갔다.
“존……?”
“이번에는 물러나는 게 좋겠어요.”
이경복은 찌릿찌릿한 육감에 권총을 집어넣었다. 대신 그는 등에 메고 있던 산탄총을 잡았다.
-뭐임? 대체 뭐임?
-팝헤드에 이끌려 온 좀비겠지.
-근데 일반 좀비는 아닌 듯?
-여기서 또 특수 좀비가 나온다고?
-그 와중에 샷건 시강 어쩔 ㅋㅋㅋ
산드라는 잠시 멈칫했다. 이경복의 말을 따를까 고민했던 모양.
그리고 그 찰나의 순간, 이경복이 그녀의 허리를 휘감고 뒤로 물러났다.
이윽고 그들이 있던 자리에 팟하며 떨어진 찐득한 거미줄들.
산드라의 안색이 파리해지며 그녀가 손전등을 위로 올렸다.
“……자, 자라크네!”
손전등이 겨우 비친 천장은 거미로 가득했다. 하지만 일반적인 거미는 아니었다.
보통 거미에 사람 얼굴이 붙어 있지는 않으니까.
-자라크네도 나와? 난이도 무엇?
-진심 소름 돋네 ㄷㄷ
-왜 떼거지로 나오는데에!
-다리 많은 거 진짜 싫다…
-깨라고 만든 거 맞누?
-ㅈㄹ말고 세스코 불러!
시청자들도 기겁했다.
그만큼 나타난 거미좀비, 자라크네의 숫자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어디 성능 좀 볼까요.”
이경복은 살짝 미간을 찡그리며 손전등을 입에 물었다. 그리고 양손으로 잡은 산탄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우레와 같은 폭음과 함께 자라크네들이 걸레짝이 되어 떨어졌다.
-역시 최고템이야 성능 확실하구먼ㅋㅋ
-아 ㅋㅋ 처신 잘하라고
-자라크네가 다 뭐냐! 우리에게는 골-든 샷건이 있다!
-입에 손전등 문 거 왜케 멋있음?
-ㄹㅇㅋㅋ 무슨 시거 문 것 같네
아닌 게 아니라 산탄총의 위력은 엄청났다. 보통 산탄총은 거리가 멀수록 집탄력이 낮아지지만 황금 산탄총은 달랐다.
‘오호라.’
이경복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첫 발만으로도 감이 잡혔기 때문이었다.
“존!”
산드라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는 앞으로 뛰어나갔다. 자라크네의 주의를 끌어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여기서 닥돌한다고? 도르신?
-이거 탱있는 겜 아닌디유!
-시야 확보는 어쩌려고?
하지만 시청자들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들에게는 이경복이 자살을 시도하는 것처럼 보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생각은 곧바로 달라졌다.
‘이건 뭐 어딜 쏴도 다 맞겠네.’
사방에서 날아드는 거미줄을 피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의 육감이 ‘먼저’ 경고를 해 주었으니까.
그는 마치 춤을 추듯 거미줄을 피하며 방아쇠를 연달아 당겼다. 빛이 번쩍일 때마다 자라크네들이 무더기로 떨어졌다.
-않이 ㅋㅋㅋㅋㅋㅋㅋ
-이거 깨라고 만들었냐!? > 아아, 그렇다!
-힘은 빛을 만든다! 그리고 난 힘찬 기분이 든다!
-어허, 아직도 믿음이 부족한 이들이 있었는가! 금부장!
-예이! (철퇴로 뚝딱뚝딱)
단순히 피지컬이라고는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의 퍼포먼스. 시청자들은 그 신묘한 움직임에 열광했다.
그렇게 자라크네마저도 전멸 당하자.
“후우, 솔직히 이건 템빨도 좀 있었네요.”
이경복은 가볍게 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샷건이 없었다면 꽤 고전했을 만한 전투였다.
-아냐 형…… 우리한테는 로켓 런처를 줘도 못 깨
-ㄹㅇㅋㅋ 이건 템이 사람빨을 받은 거임.
-이거 맏따. 샷건이 퍼플빨 받은 거임
-킹플! 갓플! 빛플!
-퍼렐루야! 퍼렐루야! 퍼렐루야!
오히려 시청자들이 인정하지 않았다. 같은 조건에서는 도저히 따라 할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경복이 웃으며 다시 말하려 했지만 이내 통제권이 사라졌다.
전투가 끝나고 컷신이 시작된 것이다.
“자라크네가 지하에 둥지를 틀고 있었던 거군요…….”
시체를 본 산드라가 불쾌함을 숨기지 않았다. 그녀는 심각한 표정으로 철로 너머를 바라보았다.
“존, 이게 과연 옳은 선택일까요?”
그녀의 물음에 존은 잠시 어둠 너머를 바라봤다.
“지금은 무엇이 옳은 선택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이어 그는 다시 한 걸음, 어둠으로 나서며 말을 이었다.
“우리가 옳게 만드는 거죠.”
“존…….”
“제가 도와준다고 했잖아요.”
존이 돌아서며 산드라의 손을 잡았다. 어둠 속 유일한 조명 속에서 서로를 바라보는 두 사람.
그리고 다시 시야가 암전되자 채팅창이 빠르게 올라왔다.
-캬……!
-진짜 다른 지구의 존이네 ㅅㅂ
-나는 산드라한테 구박만 받았는디……
-고갱님, 기체가 좋아도 파일럿이 다르면 당연한 겁니다.
-개껌쉑들 왜 이런 루트를 숨기냐고!
시청자가 무슨 투정을 부리든 컷신은 진행됐다.
-오?
-열차다!
-설마 열차 탈 수 있는 거?
존과 산드라는 철로를 걷다 멈춰 선 열차를 발견했다.
“존.”
“어쩌면 이용할 수 있겠네요.”
“네, 아직 운행이 된다면 다른 생존자들도 쉽게 이주시킬 수 있을 거예요.”
두 사람은 열차의 맨 뒤 칸으로 접근했다. 전기가 끊긴 건 터널의 조명 쪽뿐이었는지, 지하철 내부 조명은 아직 켜져 있었다.
그렇기에 그 안쪽의 참상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좌석과 창문은 물론, 사방이 말라붙은 피로 가득했고 시체와 검붉은 살덩어리가 바닥을 굴러다녔다.
‘뭔가 꺼림칙한데.’
이경복은 콕콕 쑤시는 불쾌함을 느꼈다. 하지만 컷신에서는 그도 손쓸 도리가 없었다.
“운전실은 맨 앞일 거예요.”
“바짝 붙어요.”
존과 산드라는 빠르게 객실을 돌파했다. 두 사람 모두 쓰러진 시체가 다시 움직일까 경계했지만 이경복은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밖이야. 뭔가…… 외부에 있다.’
컷신이 진행될수록 불쾌함이 강해졌다. 이경복은 비슷한 느낌을 이전에 느낀 적이 있었다.
“운전실이에요.”
“작동법은 압니까?”
“……움직이기만 하면 되죠.”
산드라는 어깨를 으쓱이고는 가장 큰 핸들을 잡았다. 그녀가 앞으로 밀자 열차가 서서히 나아가기 시작했다.
-아 그건 맞지 ㅋㅋㅋ
-안내방송 할 것도 아니고 ㅋㅋ
-아아, 머리를 잃어버리신 승객 여러분은 지금 하차해주시기 바랍니다.
-무쳤냐고 ㅋㅋㅋ
시청자들이 희희낙락하는 사이, 이경복은 육감의 정체를 짐작했다.
‘클러스터 때랑 비슷해. 아니, 더 강하다……!’
불길함이 급속도로 강해지기 시작했다. 경종을 울리는 육감.
그와 동시에 컷신 속 상황도 순식간에 일변했다.
“됐어요!”
“산드라!‘
전진과 함께 켜진 열차의 헤드라이트. 그리고 그 너머로 보이는 거대한 형체.
존은 곧바로 산드라를 붙잡고 뒤로 넘어졌다. 이어 운전실 대부분이 희멀건 점액질로 뒤덮였다.
“이건!?”
“저게 무슨……!”
터널 위에 객차 하나 크기의 거대한 자라크네가 붙어 있었다.
그것은 기괴한 울음을 뱉으며 접근해 왔다. 하지만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존! 핸들이!”
“이런……!”
거대 자라크네의 거미줄이 운전실은 완전히 고정시켜 버렸다. 열차의 속도는 점점 올라가는 상황.
이대로라면 열차는 어딘가 있을 앞차와 충돌할 게 뻔했다.
-무친……!
-타임 어택이냐구웃!
-난이도 어질어질하다 그죠?
-야! 이걸 깨라고 만든 거냐!
-아까 전에도 한 말 아님? ㅋㅋ
-트수들도 오락가락 하누ㅋㅋㅋ
시청자들이 개발자를 욕하는 사이 쿵하는 소리와 함께 열차가 진동했다.
“설마……?”
“서둘러요!”
거대 자라크네가 객차 위에 올라탄 게 분명했다. 그와 동시에 이경복은 통제권을 되찾았다.
“어우, 크니까 더 징그럽네요.”
보스전에 돌입한 이경복의 첫마디였다. 그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가볍게 손을 풀고 양손에 권총을 잡았다.
“이번에는 쌍권총으로 가 볼게요.”
그 발언에 채팅창은 ‘?’로 가득했다.
-이 여유 무엇?
-아아, 이건 간이 큰 것이다.
-근데 이건 깨라고 만든 게 아닌 듯 ㅋㅋㅋ
-보스 처리 보다는 시간 내에 탈출하는 게 맞는 덧?
-ㅇㅇ 그게 맞는 듯.
-하긴 기존 루트에서도 그런 경우도 있었제.
시청자들은 이번 보스전이 탈출이 목표라고 판단했다. 기존 루트에서도 보스를 제거하는 게 꼭 클리어 조건은 아니기 때문.
하지만 이경복은 고개를 갸웃했다.
“탈출이요? 아닌 것 같은데…….”
이경복은 그렇게 말하고 창밖을 겨누며 바로 방아쇠를 당겼다. 총성과 함께 머리를 들이민 거대 자라크네가 팍하고 튕겨 나갔다.
“쏘면 죽겠죠.”
이경복은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 주었다. 그는 산드라와 함께 뒤 칸으로 향하며 거대 아라크네가 나타날 지점을 정확히 예측하고 권총으로 피해를 입혔다.
시청자들은 어리둥절할 따름이었다.
-아니, 그냥 쏘면 다 맞음?
-어디로 올 줄 어케 알았누?
-이거 원래 산드라랑 등 맞대야 하는 거 같은데?
-ㄹㅇㅋㅋ 산드라 등 돌리려다가 너무 빠르니까 회전하는 것 보소 ㅋㅋㅋ
-개발자: 아, 그거 그렇게 깨는 거 아닌데…… 산드라랑 협력 플레이 해야 되는데……
-???: 혼자해도 되는 데요?
-아 ㅋㅋㅋ 너무 쉽게 클리어 하잖슴~
마치 조깅이라도 하듯 멈추지 않는 속도. 결국 두 사람은 가장 뒤 칸까지 도착했다.
그러나 보스전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래, 이렇게 나와야지.”
이경복은 저릿저릿한 불길함에 입꼬리를 비틀었다. 이윽고 콰드득하는 굉음과 함께 열차 후미가 뒤틀리며 떨어져 나갔다.
그 너머에서 천장에 붙은 거대 자라크네가 무서운 속도로 뒤따라오고 있었다.
-헐?
-페이즈 2네 ㅎㄷㄷ
-퍼플이라면 잡을 듯 ㅋㅋㅋ
-거미쉑 도망칠 기회 놓쳤쥬?
시청자들은 비로소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되리라 짐작했다. 하지만 이어지는 전개는 그들이 기대한 양상과는 달랐다.
“존!”
“아무거나 붙잡아요!”
자라크네가 거미줄을 뿜어 열차를 뒤덮었다. 그리고 이리저리 흔드는 게 아니라.
그에 따라 열차는 지진이라도 만난 것처럼 흔들리기 시작했다.
-거미쉑 반칙 보소;;;
-않이; 조준은 하게 해줘야지 ㅅㅂ
-ㄹㅇ 이러면 에임을 어케 잡누
-사실 지하철이 배드 엔딩 루트 아님?
이경복의 눈동자가 빠르게 움직였다. 이대로 놔두면 열차는 탈선할 터, 당연히 게임 오버가 분명했다.
‘저거다.’
웬만한 게이머라면 돌발상황에 혼이 나가겠지만 그는 달랐다.
날카롭게 선 오감과 그의 육감이 돌파구를 감지해 냈다. 그리고 그는 주저 없이 그 느낌을 따랐다.
이어 울리는 한 발의 총성.
총구를 떠난 탄환이 자라크네와 열차를 이어 주는 거미줄을 관통했다.
‘좋아.’
갑자기 끊어진 거미줄에 거대 자라크네의 몸이 크게 비틀렸다. 그와 함께 틀어진 등 쪽으로 튀어나온 머리가 보였다.
이경복은 다른 한 손에 있는 권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곧바로 이어지는 총성, 그리고 어둠을 뚫고 나아가는 탄환.
퍽하는 소리와 함께 거대 자라크네의 등에서 피가 터졌다.
그리고.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거대 자라크네는 바닥을 나뒹굴며 쓰러졌다.
-내가 지금 뭘 본 거야?
-ㅅㅂ ㅋㅋㅋㅋㅋㅋ
-괴물보다 더한 괴물이 있었네……
-이게…… ‘퍼펙트’라는 건가?
-또샷또킬 ㅋㅋㅋㅋㅋㅋㅋㅋ
-뭐야! 나 못 봤어!
-킹직히 이건 자라크네 입장도 들어봐야 됨 ㅋㅋ
-진짜 ㅋㅋㅋ 개억울할 듯 ㅋㅋ
시청자들은 말 그대로 축제 분위기. 하지만 이경복은 그리 웃을 수가 없었다.
“여러분, 아직 안 끝났어요.”
보스를 쓰러뜨렸음에도 컷신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그 말인 즉,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았다는 것이었다.
-아 맞네.
-열차 어캄?
-지금 속도 너무 빠른데?
-그나마 아까 자라크네가 잡아서 줄긴 줄었음.
열차는 여전히 폭주하고 있었다. 겨우 몸을 가눈 산드라가 그에게 다가왔다.
“존……!”
이경복의 눈동자가 빠르게 돌아갔다. 이윽고 그는 산드라를 돌아보며 말했다.
“산드라, 나이프!”
“네? 아, 네네!”
산드라는 화들짝 놀라면서도 곧바로 나이프를 건넸다. 이경복은 곧바로 구겨진 열차에 붙어 있던 거미줄을 잘라냈다.
-오오오오?
-뭔가, 뭔가 일어나고 있음……
-판단력 뭔데! 행동력 뭔데!
-이러니까 산드라가 반하지 ㅋㅋ
-나였으면 세이브하고 공략 보러 감 ㅋㅋㅋ
-최초공개인데 공략이 어딨누 ㅋㅋ
그 사이 이경복은 거미줄을 엮었다.
‘역시 접착성이 살아 있다.’
운전실이 묶였던 걸 보고 떠올린 방법이었다. 그는 모은 거미줄을 밧줄처럼 엮고 허리에 묶었다.
“나 믿죠?”
“……네!”
산드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고작 세 글자인데 뭔 간지가 철철 흐르누 ㅋㅋㅋㅋㅋ
-나도 형 믿어!
-나믿퍼믿!
-믿습니다!
-퍼렐루야! 퍼렐루야! 퍼렐루야!
산드라가 이경복의 품에 안겼다. 거센 그녀의 심장박동이 전해져 왔다.
이경복은 새삼 세밀한 구현에 감탄하면서도 온 신경을 바깥에 집중했다.
‘게임인데 죽기야 하겠어.’
그는 힘껏 거미줄을 던졌다. 기둥에 척하고 붙은 거미줄이 팽팽해지며 그와 산드라를 끌어당겼다.
이경복은 반사적으로 그녀를 굳게 안았다.
“큭!”
의외로 충격이 전해져 왔다. 순간 숨이 턱하고 막힐 정도.
하지만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곧바로 통제권이 사라지고 컷신으로 넘어갔기 때문이었다.
-오, 컷신이다.
-휴, 끝났네.
-와…… 그럼 ㄹㅇ 클리어네.
-ㅁㅊㄷ ㅁㅊㅇ
시청자들도 그제야 안심한 모양이었다. 바로 그때 어둠 속으로 달려가던 열차가 굉음을 내며 탈선했다.
-아씨! 깜짝이야!
-ㅅㅂ 10초만 늦어도 끔살이었누.
-에이 연출이겠지. 맞지……?
그 사이 산드라가 비틀거리며 존의 품에서 빠져나왔다.
“살았어…… 살았어요! 존!”
그녀는 기뻐하며 존을 돌아본다. 그런데 이내 표정이 무척이나 심각해졌다.
“존……?”
놀란 그녀의 얼굴이 클로즈업 됐다. 그리고 갑자기 암전되는 장면.
-?????????????
-뭐야ㅅㅂ? 어떻게 된 거야?
-설마 배드엔딩?
-않이;;;;
-개껌 나와! 개껌 나와! 개껌 나와!
‘설마 진짜 배드 엔딩은 아니겠지?’
당장에라도 개발사를 찾아갈 기세. 이경복도 당황했지만 이내 그 앞에 문구가 나타났다.
[Chapter 2. ‘Survivors’ End]
배드 엔딩이 아닌 챕터 2의 끝을 알리는 문구.
-휴.
-아 ㅋㅋ 난 또 뭐라고.
-한 번만 넘어가드리는 겁니다?
진정된 채팅창과 함께 챕터 3의 예고 컷신이 시작됐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산드라?”
“존, 당신은…… 아니, 미안해요.”
산드라가 존과 거리를 두는 모습. 그녀는 무척이나 혼란스러운 듯한 표정이었다.
채팅창은 ‘?’로 도배가 됐다.
-갑분싸
-뭔데? ㅅㅂ 뭔데?
-산드라짱……?
-시벌 ㅋㅋㅋ 개껌쉑들 장사 잘하누 ㅋㅋ
컷신은 빠르게 이어졌다.
“다행히 멀쩡하네요.”
“네, 이 정도면…… 잠깐, 저건?”
두 사람은 목적지인 아울렛에 도착했다. 다행히 아울렛은 무사해 보였다. 하지만 문제는 그 너머에 있었다.
“군인?”
“이게 어떻게 된 거지?”
바로 도시 외곽을 포위하고 있는 군인들의 모습이었다.
-군인이 왜 나와?
-엉? 도시 봉쇄하는 거 리젠팜 아님?
-스포충 아웃, 칼밴좀.
-ㅈㄹㄴ 이게 무슨 스포냐
-아! 지하철로 플레이 불가 지역 뚫은 거네!
-이거 맏따! 아예 도시 바깥쪽임!
-슈밬ㅋㅋㅋ 게임 볼륨이 기존 루트보다 더 크다고?
-와…… 이 방송 여러모로 레전드네 진짜
그것은 기존 바이오 크라이시스 유저에게도 생소한 장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