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 사람이 아니네 (1)
최단기간 구독자 10만 달성.
누군가에게는 삶이 뒤바뀔 만한, 이른바 터닝포인트가 되는 시점.
그러나 이경복의 하루는 변함이 없었다.
“후욱, 후욱…….”
그는 턱걸이를 하면서 호흡을 조절했다. 조각처럼 갈라진 그의 등 근육을 따라 땀방울이 흘렀다.
“후.”
직장을 관둔 이후 아침에는 꼭 운동을 했다. 그는 스트리머를 시작한 이후로도 하루의 루틴을 지켰다.
가볍게 샤워를 마친 그는 시간을 확인하고 집을 나섰다.
“어, 왔냐.”
그와는 달리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최병훈은 여전히 피로가 풀리지 않은 듯 퀭한 눈으로 그를 반겼다.
같이 점심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메뉴는 누구나 좋아하는 돈까스였다.
“아직도 믿기지가 않네. 잘 될 줄은 알았는데 이렇게 터질 줄은 몰랐다야.”
최병훈이 실실 웃으며 말했다. 반면 이경복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니, 사실 영상 많이 올린 것도 아니잖아? 이 정도로 10만이 모이나?”
“큐튜브도 양보다 질이 중요하거든. 게다가 상황이 좀 더 좋기도 했고.”
“상황이라니?”
“어어. 너는 자느라 몰랐겠지만 내가 새벽까지 깨어 있었잖냐? 근데 밤에서 새벽 넘어갈 때 방송하는 사람들도 많거든.”
“방송?”
이경복은 여전히 의문스러운 얼굴이었다.
“원래 이쪽 바닥이 뱁새 천지거든. 황새인 네가 히든루트를 딱 보여 줬어. 사람들 열광해. 그럼 어떻게 되느냐? 이때다 싶어서 메인스트림 타려고 하는 인간들이 나오지.”
“아, 그래?”
“야, 네가 방송하고 나서 바크 시청자가 3만대로 뛴 거 모르냐? 네 방송 때문에 거의 4배 넘게 뛰었다고!”
이경복이 방송하기 전까지의 바이오 크라이시스 방송 시청자는 약 7천 명대였다.
그런데 히든 루트가 열리고 이슈를 타기 시작하면서 3만대로 껑충 뛰어올랐다.
그러나 이내 그는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모르겠구나. 내가 방송만 하라고 했었지.”
최병훈은 스스로 말을 주워 담고는 코웃음을 쳤다.
“근데 아직도 황새 된 뱁새들이 없거든. 전부 초반에 경찰 구하려다가 꼬라박는 방송만 하더라. 하기야 그게 쉬웠으면 진즉에 히든 열렸겠지.”
“쉽던데.”
이경복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표정을 짓자 최병훈은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무튼 그렇게 다시금 바크가 상승세 탄 것도 있고 해외 쪽 반응도 좋아.”
“해외?”
“어. 사실 바크는 해외에서 더 인기가 많은 시리즈거든. 해외에서 영화로도 나왔잖냐.”
바이오 크라이시스는 영문판 제목인 ‘드웰러 이블’로 영화화까지 된 작품이었다. 그 정도로 팬덤이 있다는 뜻.
“너도 댓글 봤지? 외국 쪽에는 뭐 한 것도 없는데 찾아와서 보는 거?”
“아아, 봤지.”
“그러니까 10만이 박힌 거지. 하, 근데 난 그게 좀 아쉽긴 해.”
“아쉽다고?”
이경복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하루아침에 10만 큐튜버가 된 그로서는 친구가 탐욕 덩어리로 보였다.
“이거 봐라. 채널에 사람들 모인 건 좋은데, 외국인이 더 많단 말이야.”
최병훈은 스마트 링크로 채널 통계를 전송했다. 그래프와 숫자, 이경복으로서는 봐도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들뿐이었다.
최병훈 역시 그 사실을 알기에 바로 입을 열었다.
“보면 62%가 외국인 계정이지? 이게 큐튜버로서는 괜찮은데 스트리머한테는 허수거든.”
“아…….”
이경복도 대강 ‘아쉬움’의 정체를 알았다.
“그 사람들은 장기 고객님들이 아니거든요. 바크만 보고 온 사람들이기도 하고, 시차랑 언어장벽 때문에 스트리밍도 안 볼 거란 말이지.”
“봐도 문제 아니냐? 나 영어는 잘 모르는데.”
이경복은 살짝 코끝을 찡그렸다.
“그것도 그렇고. 외국인 시청자가 많아지면 오히려 트수들이 떠나. 왜냐? 트수끼리 노는 것도 방송 컨텐츠거든. 근데 모르는 말로 씨부리고 있으면 소외감 들지.”
“그러면 막아야 되나?”
“음…… 아직 그 정도는 아닐 거야. 방송 찾아오는 외국인도 있긴 하겠지만 지금은 트수가 많으니까. 오히려 못 끼고 눈팅만 할걸?”
“그럼 문제 될 거 없겠네. 하던 대로 해야겠다.”
“어차피 네 맘대로 하려고 했잖아?”
“그건 맞지.”
이경복은 대답과 함께 미소를 지었다.
“내 방송이니까.”
* * *
스트리머 퍼플의 3번째 방송.
1일 차와 2일 차의 갭도 컸지만 2일 차와 3일 차의 갭은 그보다 더 컸다.
“트하.”
조금 입에 붙은 인사말.
그와 함께 시작된 시청자 수의 폭발적인 상승과 채팅창이 그 증거였다.
-퍼하!
-퍼렐루야! 퍼렐루야! 퍼렐루야!
-바크의 구세주가 오셨다!
-퍼튜브 구독 10만 축하!
-자고 일어나니 내가 10만 큐튜버?
-실버 언박싱 언제하심?
이른 오후임에도 시청자 숫자는 곧바로 1500을 돌파했다. 그만큼 빠른 채팅에 이경복은 최병훈에게 배운 대로 설정을 바꾸었다.
“네, 축하 감사드립니다. 채팅이 너무 빨라서 슬로우 좀 걸게요.”
슬로우 채팅.
시청자의 채팅 간격을 설정하는 기능이었다. 도배를 방지하는 용도로 자주 쓰이는 설정이었다.
-우리 아가 퍼플이 벌써?
-당신 누구야! 우리 퍼플이 어디 갔어!
-퍼플 하고 싶은 거 다 해!
반감을 가지는 사람은 없었다.
애당초 다른 스트리머들은 기본적으로 해 두는 설정이기 때문이었다.
[‘퍼손실그만’님이 ‘1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지금이 아니면 후원 못 하지ㅋㅋ]
[‘퍼플이최고야!’님이 ‘5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오늘치 친구비 입금했읍니다^^]
[‘방종멈춰!’님이 ‘1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10만 구독추!]
[‘대한건아’님이 ‘5,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제발 한국인이면 퍼튜브 구독합시다!]
이어 쏟아지는 후원들.
그가 게임 몰입을 위해 플레이 도중에는 후원을 받지 않기 때문이었다.
“어우, 후원 감사합니다. 솔직히 저도 좀 얼떨떨해요. 제가 10만 큐튜버라니.”
후원 대부분이 큐튜브 10만 달성 축하 메시지였다. 이경복의 대답에 채팅창이 ‘ㅋㅋㅋ’로 물들었다.
“정말 기적 같은 일인 것 같아요. 저희 시청자님들이 만들어 준 기적이죠.”
이경복은 자만하지 않았다.
최근 그가 누리는 이 모든 것들은 그의 능력을 바탕으로 했지만, 시청자들이 없다면 불가능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스윗퍼플 뭔데!
-뭐지? 인성 논란을 잠재우려는 거신가?
-웃는 얼굴에 속을 성 싶으냐! ㅋㅋ
-우리 아가 퍼플이 다 컸누……
-3일 만에 대기업이 된 아기가 있다?
-ㅋㅋㅋ 걸음마 떼기 전에 날아가자너~
이경복은 다시금 확인했다.
스트리머의 즐거움은 시청자에게도 전염된다.
“아, 그리고 하나 공지드릴 게 있습니다.”
-공지?
-ㅁㅇㅁㅇ
-드디어 대기업답게 팬티 색을 공개하는 건가.
-팬티 ㅇㅈㄹ ㅋㅋㅋㅋ
-오팬무는 국룰 아님?
-무쳤냐고 ㅋㅋㅋㅋ
시청자들이 주접스럽게 노는 사이 이경복은 다시금 설정을 마쳤다.
-채팅 관리 봇이 가동됩니다.
이어 채팅창에 나타난 알림 메시지. 그제야 시청자들도 공지 내용을 눈치챘다.
“최대한 자유롭게 즐기시면 좋겠지만 혹시 모를 문제는 막는 게 맞겠죠. 규칙은 3진 아웃, 3번 경고를 받으시면 밴 처리하겠습니다.”
-이건 맞지.
-사실 첨부터 했어야 했음.
-ㄹㅇㅋㅋ 어제 장문충들 에바였자너
-갓파고님 충성충성^^7
-악질 트수 입마개 ON!
-우리 트수가 달라졌어요^^
시청자들은 당연하게도 그 공지를 받아들였다. 여기서 반발하면 스스로 문젯거리라고 밝히는 셈이 될 터였다.
그리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이경복은 가볍게 손뼉을 쳐서 주의를 돌렸다.
“자, 그럼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큐하!
-아 맏따 이제 큐튜브도 올라오겠네.
-엄마 나 큐튜브 나왔어!
-간다간다 숑간다!
-팬티 색은?
-팬티충 쳐내!
잔망스러운 채팅과 함께 바이오 크라이시스가 시작됐다.
챕터 2 엔딩에 이어지는 컷신.
쓰러진 존의 눈이 파르르 떨리다가 떠졌다.
“……산드라?”
존은 눈을 뜨자마자 산드라를 찾았다. 하지만 보이는 건 그의 곁에 떨어진 손전등 하나.
-챕터 3 예고에서 보면 둘 사이에 뭐가 있던 거 같은데……
-갑자기 산드라 돌변했음.
-뭔지 몰라도 무적권 존이 잘못했음.
-허니단 악재 인가요?
시청자들은 호기심을 숨기지 않았다. 이경복 역시 궁금하던 차였기에 컷신에 집중했다.
“산드라?”
존은 손전등을 잡으며 주변을 훑었다. 그리고 이내 손전등의 빛이 한 곳에 멈춘다.
주변에 다른 말라붙은 핏자국과 달리 선홍색의 핏물.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은 게 분명했다.
-뭐임?
-설마 산드라가?
-ㄴㄴ 예고에서 아울렛 갈 때까지 살아 있었음.
-그냥 다친 거겠지.
시청자들과 마찬가지로 존도 같은 판단을 한 모양이었다.
“회복약, 회복약을 찾아야…….”
존은 다급히 플랫폼으로 올라섰다. 그리고 벽면에 붙은 구급함을 발견했다.
“존?”
그때 들려오는 목소리.
고개를 돌린 존 앞에 산드라가 있었다. 혼자서 응급처치를 했는지 어깨에 붕대를 감고 있었다.
“산드라, 괜찮아요?”
존은 구급함을 붙잡고 그녀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산드라는 흠칫하며 뒤로 물러났다.
“멈춰요!”
“산드라……?”
복잡한 감정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표정의 그녀.
-갑자기 왜 저러는 겨?
-여자의 마음은 알다가도 모르겠다……
-트수 보는 여자 마음은 하나밖에 없지 않슴? ㅋㅋㅋ
-팩력배 OUT!
-갓파고님! 여기에요!
산드라는 이내 아차 싶은 얼굴로 존이 든 구급함을 가리켰다.
“리젠팜 물건은 믿을 수 없어요.”
“아…… 미안해요.”
존은 그제야 구급함에 새겨진 리젠팜 마크를 확인했다.
“좀 쎄하네요.”
드물게 이경복이 말을 꺼냈다.
-갑분쎄……
-쥔공 기절한 사이 뭔가 있었나?
-최초공개라서 스포충도 없누 ㅋㅋㅋ
이경복도 시청자도 그런 이유가 아니라는 걸 충분히 짐작했다.
이윽고 시야가 암전되며 배경이 뒤바뀌었다.
존과 산드라는 지하철역을 빠져나와 지상으로 나왔다.
도심과 달리 탁 트인 하늘 아래 낮은 건물이 즐비했다. 게다가 비교적 좀비 사태의 여파가 적어 보였다.
-오오.
-이곳이 미공개 지역!
-왐마 풍경 지리네.
-이 좋은 걸 개껌들만 알고 있었다 이거지.
-건방진 개껌쉑!
산드라도 그 광경이 마음에 드는지 표정이 밝아졌다.
“이쪽이에요!”
그녀는 표지판을 확인하고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존은 흐뭇한 표정으로 그녀의 뒤를 따랐다.
‘……뭐지?’
그때 이경복은 다시금 기묘한 불길함을 느꼈다. 마치 그 느낌이 착각이 아니라는 듯 존의 표정도 심각해졌다.
“산드라! 숨어요!”
존이 산드라를 데리고 좁은 골목으로 숨었다.
뒤이어 들려오는 발소리.
좀비의 것이 아닌 묵직하면서도 빠른 걸음이었다.
“HQ, 지하철역에 도착했다.”
“클리어.”
“클리어.”
이윽고 나타난 건 리젠팜의 사설 용병들.
-아, 여기 봉쇄지역이랑 가까운 곳 인갑네.
-열차 폭발한 거 듣고 온 듯?
-그거 맏따.
-용병쉑들 참교육 각 나왔누 ㅋㅋ
시청자들은 단번에 상황을 파악했다. 이경복은 그 채팅으로 맥락을 파악할 수 있었다.
용병들은 총기를 잡고 주변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돌아오는 통제권.
이제 이경복이 나설 차례였다. 그가 권총의 손을 대려는 순간이었다.
“안 돼요.”
산드라가 그를 말렸다.
이경복은 이미 이와 비슷한 상황을 겪어 본 적이 있었다.
“……하긴, 총성이 들리면 지원이 오겠죠.”
“네. 하지만 좀비와는 상황이 달라요. 한 놈이라도 소리를 내면 들킬 거예요.”
지성이 없는 좀비와 다르게 이번 상대는 용병이었다. 산드라는 마른 입술을 핥으며 나이프를 꺼냈다.
“제가 처리할게요.”
진압봉은 좀비를 처리하는 데 문제가 없지만 용병은 달랐다. 소리 없이 죽이려면 날붙이가 필요했다.
“혹시 모르니까 엄호만 해 주세요.”
-이번에는 산드라 활약 무대인가?
-컷신에서 쎄한 거 무마하려는 용도 아님?
-지하철 때처럼 산드라한테 나이프 달라고 하면 안 됨?
이경복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이전과 다르게 산드라는 그 요청을 거절했다.
“이건…… 제가 가지고 있을게요.”
-경계하는 거 맞네.
-와…… 갑자기 이런다고?
-산드라짱 왜구랭 ㅠㅠㅠ
-씹덕쉑 눈물 짜는 거 상상하니까 킹받네 ㅋㅋㅋㅋ
-<관리 봇이 삭제한 메시지입니다 (경고 1회)>
이경복은 채팅창에서 눈을 돌렸다. 이대로 가만히 있는 게 맞을까.
‘그러면 재미가 없지.’
그의 눈이 빠르게 용병을 훑었다. 이내 그의 입가에 슬며시 미소가 지어졌다.
“내가 갈게요.”
“존?”
이경복은 기다리지 않았다.
골목에서 빠져나온 그는 신속히 용병에게 접근했다.
-이걸 간다고?
-설마 목조르기?!
-CQC 가나요!
-CQC가 뭔데 쉽덕아!
채팅창은 당연히 물음표가 한가득이었다. 의문은 곧바로 해소되었다.
“응?”
용병이 인기척을 느끼고 돌아보자마자 이경복이 그림자에서 솟아나듯 그를 덮쳤다.
그는 순식간에 용병의 벨트, 허벅지 쪽에 달린 검집에 손을 뻗었다.
용병들도 총성에 좀비들이 이끌리는 걸 대비해 컴뱃 나이프를 착용하고 있었던 것.
순식간에 빼낸 나이프는 곧바로 용병의 목을 관통했다.
“끄륵……!”
피 끓는 소리와 함께 쓰러지는 용병. 그러나 이경복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용병의 벨트를 붙잡아 소음을 줄였다.
-피지컬 뭔데에에에!
-아싸시노!
-다 죽이면 암살이라고 주장하는 유사 어쌔신과는 다르네 ㅋㅋㅋ
-귀큰놈은 각성하라! 각성하라!
-팩트) 목격자가 없으면 암살이다.
시청자들은 그제야 이경복의 속셈을 알아차렸다. 그 뒤로는 일사천리였다.
컴뱃 나이프가 손에 들어온 이상 조금 전과 같은 묘기는 또 부릴 필요가 없었다. 엄폐물에 몸을 숨긴 이경복은 한 번에 하나씩 용병의 멱을 끊었다.
-이것도 원샷 원킬이네……
-또샷또킬은 국룰이지 ㅋㅋㅋ
-기존 루트에서는 용병들 화력 세서 개빡신디
-정보) 이것도 퍼플이 아니면 빡시다.
-정보추
모두가 순조롭게 끝날 것이라 예상한 순간이었다.
“왜 보고가 없…….”
마지막으로 남은 건 용병들 분대장. 그러나 그는 자신의 분대원들이 조용해진 걸 알아차렸다.
그리고 피투성이가 된 컴뱃 나이프를 든 이경복과 시선이 마주쳤다.
그는 질겁하며 무전기로 손을 뻗었다.
-ㅅㅂ 망했누!
-이걸 들키네……
-퍼플 속도로도 못 깬다고?
-개껌 양심 ㅇㄷ?
시청자들이 모두 실패를 직감한 순간. 이경복은 그대로 팔을 휘둘렀다.
쏵하는 파공음과 함께 컴뱃 나이프가 무전기와 분대장의 손을 관통했다.
-WA!
-퍼펙트 펀치! 퍼펙트 펀치! 퍼펙트 펀치!
-어리석은 중생들아 아직도 갓플님을 믿지 못하느냐?
-아직도 퍼플이 사람으로 보여?
그와 함께 채팅창의 분위기가 일변했다. 하지만 아직 분대장은 살아 있는 상태.
그러나 이경복이 괜히 무전기를 노린 건 아니었다.
“크아…… 꺽!”
비명을 지르려던 분대장의 턱 아래로 칼날이 불쑥 들어갔다. 어느새 다가온 산드라가 그를 처리한 것이었다.
“깔끔하네요.”
이경복은 이미 산드라의 접근을 알아차리고 있었다.
-산드라! 산드라! 산드라!
-믿고있었다제!
-퍼플드라 콤비 뭔데 ㅋㅋㅋㅋㅋ
-아아, 이게 ‘커플’이라는 것이다.
-콤비드라 호재인가요?
채팅창은 두 사람의 이름을 연호하며 축제 분위기를 냈다.
그렇게 용병이 모두 쓰러지자 시야가 암전되며 컷신이 진행됐다.
“거의 다 왔어요.”
멀게만 느껴졌던 아울렛이 이제 코앞이었다.
“다행히 무사한 것 같습니다.”
아울렛은 겉보기에도 괜찮아 보였다. 시체도 많이 없었고 파손된 부분도 많지 않았다.
담벼락과 철창문도 있어 생존자들이 거주하기에 좋아 보였다.
산드라는 기뻐하며 더 속도를 올렸다. 하지만 바로 그때 어디선가 차량 엔진 소리가 들렸다.
“설마?”
“숨죠.”
혹시 용병들의 후속분대일지도 몰랐다. 두 사람은 시급히 몸을 숨겼다.
“……생존자?”
그러나 이윽고 나타난 차량은 민간차량이었다. 산드라는 그들을 부르려 했지만 존이 다급히 그를 붙잡았다.
“존?!”
무어라 설명할 틈도 없었다.
존이 산드라를 다시 끌어당기자마자 폭음이 터졌다. 놀란 산드라가 모퉁이로 머리를 내밀었다.
조금 전까지 도로를 달려가던 민간차량이 산산조각이 나서 불타고 있었다.
“드론입니다.”
존이 낮게 속삭이며 위쪽을 가리켰다. 하늘 위에 군사용 드론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산드라는 얼굴을 찌푸리더니 이내 가까운 건물의 옥상으로 달려갔다.
“세상에…….”
이내 옥상에 도착한 두 사람.
낮은 건물에 가려져 있던 지평선 위에 군인들이 가득했다.
-캬……
-다시 봐도 쇼크네.
이미 예고 컷신에서 봤던 터라 시청자들은 크게 놀라지는 않았다.
그때 우웅하는 날갯소리와 함께 드론이 내려왔다. 존과 산드라는 누가 말할 것도 없이 총을 빼들었다.
<폭스 시티 경찰서 소속입니까?>
그때 드론에서 돌아온 말소리. 존과 산드라는 눈을 마주쳤다.
“……지금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존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드론, 그 뒤에 있을 군인이 말을 이었다.
<현재 폭스 시티는 봉쇄 중입니다. 전달받지 못했습니까?>
“전달?”
<저희는 리젠팜사로부터 폭스 시티에 일어난 감염 사태를 보고 받았습니다. 폭스 시티 내 치안기관과는 연락이 닿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어떻게 군대가 자국민을 죽일 수가 있어요!”
산드라가 불쑥 끼어들며 소리쳤다. 드론의 카메라가 돌아갔다.
<도시 내 시민들 모두가 보균자라고 전달받았습니다. 저희는 사태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전부 다 죽여서 없애 버리시겠다?”
<그렇지 않습니다. 현재 리젠팜 사에서 백신을 제조 중이라고 전달받았습니다.>
“백신?”
“헛소리! 이 사태의 배후에는 리젠팜이 있는 게 확실해요! 놈들이 생존자들을 전부 죽이고 있다고요!”
산드라가 언성을 높였다.
-좀비물특) 정부는 아무것도 안함
-ㄹㅇㅋㅋ 발암역이자너
-군대랑 싸우는 전개는 아닌갑네.
-아무리 그래도 개인이랑 군대는 선 넘지.
-하지만 퍼플이라면 가능할지도?
-않이 ㅋㅋㅋ 되겠냐고 ㅋㅋㅋㅋ
드론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물증은 있습니까?>
“증거 말입니까?”
<당신의 말만 믿기에는 사안이 엄중합니다. 당국은 감염 위협 때문에 도시로 진입할 수 없습니다.>
“그럼, 그럼 그냥 잠자코 뒤지라고?”
<아닙니다. 백신이 있다면 봉쇄는 해제됩니다. 리젠팜과 관련한 사항은, 저희 쪽에서 다시 조사해 보겠습니다.>
드론은 더 대화가 어려운 듯 상승하기 시작했다.
<부디 이 사실을 다른 생존자들에게 전달해 주십시오.>
-느그들이 알아서 해 시전
-???: 아, 그건 잘 모르겠고!
-어? 이거 완전 국방…
-그마내!
-자, 잠시 소란이 있었어요.
결국 덩그러니 남겨진 존과 산드라. 둘 사이에 불편한 정적이 흘렀다.
존은 그나마 평정을 되찾은 듯하지만 탈출의 희망이 사라진 산드라는 표정이 좋지 않았다.
“산드라, 일단 돌아…….”
“오지 마!”
존은 그녀를 데려가려 했지만 산드라가 손을 뿌리치며 총을 뽑았다.
-????????
-멘붕드라 ㅎㄷㄷ
-설마 싸우는 거 아니지? 응?
-개껌쉑들 악랄한 거 보소
-이렇게까지 해야 속이 후련했, 냐!
긴장된 분위기.
그러나 산드라의 손이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이제, 이제 어떡하라고…… 나보고 뭘 어떡하라고……!”
“산드라. 진정해요.”
“경고했어! 오지 마!”
“산드라…… 난, 당신을 돕고 싶을 뿐이에요.”
존은 조심스럽게, 아주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가려 했다. 그러나 철컥하는 소리와 함께 안전장치가 풀렸다.
“당신, 당신은 정체가 뭐야?”
“산드라?”
“왜, 왜 당신 몸은 그렇게 멀쩡해? 나를 보호하려다가 다쳤었잖아?”
산드라가 울먹이며 말한다.
그러자 채팅창에 물음표가 가득해진다.
-어?
-잠깐……
-듣고 보니 또 그러네?
이어 산드라가 다른 손으로 나이프를 꺼낸다. 그리고 그녀가 이를 악물고 존의 팔을 베어 냈다.
존은 역정을 내려는 듯 얼굴을 찌푸리지만 이내 눈을 크게 뜬다.
이어 클로즈업 되는 상처.
흘러내린 핏물은 금방 멈추고 천천히 상처가 아물기 시작한다.
-헐?
-않이;;; 겜이라서 자동회복 되는 줄 알았는데
-이것도 떡밥임?
시청자들도 놀란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존…….”
산드라가 눈물을 흘리며 말한다.
“당신, 인간이긴 한 거야?”
이어 암전되는 시야.
-와씨 ㅋㅋ 이러면 기존루트는 진짜 체험판 수준 아니냐 ㅋㅋ
-킹반인들은 이런 스토리 어케 봄?
-이거 소송각이다 ㅅㅂ
채팅창이 폭발하듯 올라왔다.
-개껌쉑 트위티에서 입 터는 이유가 있었네.
-???: 저희가 준비한 이야기를 보여 줄 수 있게 됐습니다.
-기존 루트는 사실 이야기도 아니었던 거임 ㅋㅋㅋ
-아 ㅋㅋㅋ 이거 게임 렉카들 총출동하겠네
-퍼플 아니었음 어쩔 뻔했누 ㅋㅋ
기존 게이머들이 경험한 건 빙산의 일각.
히든 루트야 말로 바이오 크라이시스의 본체라는 걸 직감한 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