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의 신들린 게임방송-14화 (14/491)

14화 - 사람이 아니네 (2)

채팅창은 혼란스러웠다.

-뒤통수 얼얼하누 ㄷㄷ

-존이 인간이 아니면 뭔데에!

-쥔공, 백퍼 리젠팜이랑 뭐 있음.

-기억 상실인 것도 뭔가 이따

-갑자기 추리물로 장르전환 ㅋㅋ

재생하는 몸을 지닌 주인공의 정체에 대한 추측이 난무했다.

“다회차였으면 더 놀랐겠네요. 설마 인간이 아닐 줄이야…….”

이경복도 입을 열었다. 그에게도 충격적인 전개였던 것.

그러나 채팅창에는 ‘ㅋㅋㅋ’가 퍼지기 시작했다.

-님도 인간 아니잖슴!

-존이랑 퍼플 싱크 무쳤고 ㅋㅋ

-낫닝겐도 다른 낫닝겐 보면 놀란다구웃!

-갓직히 퍼플은 피가 1도 안 깎였으니까 더 놀랐을 듯

-생각해 보니 그르네;;;

-노데미지 실화?

-ㄹㅇㅋㅋ 자동회복 되는 건 줄도 몰랐자너

다른 의미로 이경복 역시 인간의 범주를 넘어섰기 때문이었다.

“……나도 내가 뭔지 모릅니다.”

존이 심각한 표정으로 정적을 깨고 입을 열었다. 그는 이내 결심한 듯 확고한 표정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뭐…….”

“하지만 하나는 확실해요.”

산드라가 흠칫하며 물러났지만 존은 오히려 더 성큼 다가가 총구를 잡았다.

“산드라, 당신을 돕고 싶습니다.”

존은 총구를 제 이마에 대었다. 그리고 또렷한 눈으로 산드라를 직시했다.

“절 믿지 못하겠다면 방아쇠를 당기세요.”

-상남자 냄새 킁카킁카

-???: 쫄리면 뒈지시던지!

-러시안 룰렛이냐고 ㅋㅋㅋㅋ

방아쇠울에 들어간 산드라의 손가락이 떨렸다. 하지만 그녀는 존을 쏘지 못했다.

“미안해요…….”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떨구는 산드라.

-산드라짱은 잘못 없어!

-ㄹㅇ팩트자너 ㅋㅋㅋ

-멘붕하는 게 당연하지 ㅅㅂ

-하지만 존이 아니라 트수였다면?

-???: 나… (탕!)

-바로 쏘냐고 ㅋㅋㅋㅋ

존은 그런 그녀를 이해한다는 듯 품에 안았다. 그리고 바라보는 두 사람, 존은 산드라의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닦아 내며 자연스럽게 턱을 잡는다.

이어지는 키스신과 함께 시야가 암전된다.

-저 자연스러운 손길 보소……

-점마 선수네 선수!

-산드라짱! 속지 마!

“아니, 이걸 이렇게 또 넘기네…….”

이경복이 다시 아쉽다는 듯 말하자 채팅창은 웃음이 가득해졌다.

-존은 대체 뭘 본 거지? 나한테도 보여 줘라!

-화해ㅇㅅ가 그렇게 쩐다는데……

-미친 ㅋㅋㅋㅋ 도르신?

-화해의 악수 말한 건데요?

-악숰ㅋㅋㅋㅋㅋㅋ 하긴 손을 맞잡긴 하겠지.

-싯구드립 그마내!

-머릿속에 마구니가 가득하구나!

시청자들은 아슬아슬하게 선을 타며 채팅을 쳤다. 그 사이 다시 컷신이 시작됐다.

“아, 다시 돌아왔나 보네요. 집중하죠.”

존과 산드라가 지하철 계단을 나왔다. 철로를 통해 다시 도심으로 돌아온 것이다.

하지만 출발할 때와 다르게 하늘에는 짙은 먹구름이 끼어 있었다.

“비가 올 것 같네요.”

“얼른 돌아가죠.”

“네.”

두 사람의 관계는 예전처럼 돌아간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여전히 산드라의 표정은 어두웠다.

“이 사실을 어떻게 전해야 할지…….”

“괜찮아요. 내가 옆에 있을 테니까.”

“고마워요.”

호텔 앞.

산드라는 가볍게 뺨을 두들기고는 표정을 관리했다.

“빌리, 로이드. 나 왔…….”

산드라는 짐짓 밝은 목소리로 인사를 건네며 들어섰다. 하지만 그녀는 말을 맺지 못했다.

보초를 서야 할 생존자들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산드라?”

“뭔가 이상해요.”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산드라와 존은 곧바로 권총을 뽑았다.

-헐……?

-뭐야?

-에이, 아니지?

시청자들도 덩달아 불안해했다.

“빌리? 로이드? 헬렌?”

그녀는 생존자들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마치 모두가 떠난 것처럼 고요한 호텔.

그때 존이 홀린 것처럼 한쪽으로 달려갔다.

“존?”

산드라가 놀라 그 뒤를 따라간다. 바닥에 웅크린 존, 그리고 어깨너머로 보이는 건.

찢어진 곰 인형이었다.

-아……

-맵다…… 스토리 맵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시청자들은 이미 상황을 직감했다.

산드라와 존이 호텔을 떠나기 전, 아이가 부적이라며 건네주려던 존이라는 이름의 인형.

개발사는 다시금 상기시켜 주겠다는 듯 회상 씬을 끼워 주었다.

“안 돼…….”

낮게 중얼거리는 존, 그의 손에 핏물이 묻어 나왔다. 두 사람은 누가 뭐라 할 것도 없이 위층으로 달려갔다.

“빌리!”

바리케이드로 쌓은 가구의 흔적들, 벽에 남은 검은 총알 자국과 핏자국, 그리고 그 아래 쓰러진 시체.

산드라는 혼이 나간 사람처럼 몸을 떨다가 달리기 시작했다.

“산드라!”

존이 바로 그 뒤를 쫓았다.

이내 두 사람은 최상층, 스위트룸에 도착했다.

“아, 아니야… 이러, 이러면 안 되잖아…….”

산드라는 넋이 나간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박살 난 문 너머, 조각난 가구들 너머로 커다란 커튼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커튼 아래 솟아난 무언가와 그 주위를 뒤덮은 핏자국.

커튼에 가려진 것이 무엇인지는 쉽게 짐작이 갔다.

“허…….”

이경복은 자기도 모르게 탄식했다.

-와씹

-기존 루트에서도 죽긴 죽지만 이렇게 몰살은 아닌데……

-난이도만 매운 줄 알았더니 전개가 더 맵누

-스코빌 지수 너무 높자너 ㅠㅠ

시청자들도 비슷한 감정을 공유했다. 그러나 컷신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쏴아아아하는 소리와 함께 깨진 창문 너머로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불어온 바람이 커튼을 살짝 들추었다.

바깥쪽은 어른의, 그리고 가장 안쪽은 작은 아이의 다리가 보였다.

마지막까지 아이들을 보호하려 했던 흔적.

-<관리 봇이 삭제한 메시지입니다 (경고 1회)>

-야! 건드릴 게 따로 있지!

-리젠팜 새끼들 돌았나.

-선 씨게 넘네 ㅅㅂ

-<관리 봇이 삭제한 메시지입니다 (경고 1회)>

그와 함께 채팅창은 폭발했다.

꽤 수위가 높은 욕설을 썼는지 관리 봇의 제제를 당한 채팅이 과반수였다.

그만큼 그의 방송이 몰입도가 높았기 때문이었다.

대부분의 스트리머와 달리 이경복은 캡슐의 몰입감을 최고로 설정해 두었다.

때문에 HUD와 같이 ‘게임’이라는 걸 수시로 자각할 요소가 없었다. 더욱이 이경복도 몰입을 위해 컷신 중에는 말을 자제했으니 그 시너지가 상당했던 것.

“……진짜 선 넘네.”

시청자뿐만 아니라 이경복도 비슷했다. 비록 게임이었지만 분노가 치밀었다.

“내가, 내가 모두를 데려가기만 했어도…….”

“산드라…….”

“어떡해요? 존… 어떡해요…….”

산드라가 흐느꼈다.

겨우 마음을 추스르고 왔건만 같이 동고동락하던 이웃이 모두 죽어 버렸다.

당장 실신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대단한 상황이었다. 존은 그런 그녀를 보며 이를 아득 물었다.

“리젠팜이 어떻게 이렇게 빨리…….”

존이 채 말을 끝내기도 전이었다.

“크아아아악!”

절규에 가까운 비명 소리가 아래쪽에서 들려왔다. 산드라와 존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를 바라보고 방 밖으로 나섰다.

-생존자 왔다!

-제발!

-개껌도 양심 있으면 진짜 전멸은 아닐 듯

-뭔가 싸한데……

두 사람의 속을 대변하는 듯한 채팅이 빠르게 채워졌다.

그러나 이경복은 생각이 달랐다.

‘이 감각…….’

비명과 함께 전신을 찌르르 울리는 육감. 클러스터와 거대 자라크네와 비슷한 불길함이었다.

‘보스다!’

존과 산드라는 로비로 내려왔다. 그리고 그들은 비명을 지르는 인물을 발견했다.

하지만 그들이 원하던 사람은 아니었다.

“……저, 저건?”

그곳에는 기괴하게 몸이 비대한 괴물이 등을 돌리고 있었다. 그 비대한 몸 대부분이 뒤틀린 근육으로 구성된 괴물이었다.

-보스전 인갑네 ㄷㄷ

-ㅅㅂ 자이간트가 나와버리누

-정보) 자이간트는 기존루트에서 거의 끝판왕급이다.

-이놈한테는 무조건 한방 컷인데;;

-ㄹㅇ 체력 의미가 없음.

-약점 아니면 총알도 안 박힘……

-그렇다고 도망만 다니면 재생해 버리자너.

-이건 퍼플도 좀 빡시겠누

시청자들은 그 괴물의 정체를 알아보았다. 하지만 그들도 모르는 게 있었다.

“이런 부작용… 끄아악… 듣지 못했는데…….”

자이간트에게서 목소리가 나왔기 때문이었다.

-?????

-뭐임?

-설마 지성 있는 자이간트라고?

-개껌쉑들 줄넘기하나 ㅅㅂ 자꾸 선 넘네.

-레벨 디자인 이따구로 할래?

-개발진들도 클리어 해야 출시할 수 있는 법이 필요하다.

-이거 맏따.

악의마저 느껴지는 구성.

하지만 진정한 악의는 따로 있었다.

자이간트가 몸을 돌리자 존과 산드라의 눈이 크게 뜨였다. 비대해진 근육에 파묻혀 있는 작은 얼굴.

모두가 아는 얼굴이었다.

“……로건!?”

“어떻게!?”

시청자들의 반응도 캐릭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네가 거기서 왜 나와?

-어케 살았누? ㅅㅂ색햐!

-리젠팜이랑 결탁한 거네 ㅅㅂ

-잘린 팔도 재생했누.

-저쉑이 까발렸네 아오……

-<관리 봇이 삭제한 메시지입니다 (경고 2회)>

-그레이트 쉽쉑인줄 알았더니 얼티밋 십쉑이네?

로건의 얼굴은 검푸른 핏줄로 뒤덮여 있었다. 그는 존과 산드라를 보며 히죽 웃었다.

“아아…… 상관없나. 네년놈들을 전부 쳐 죽일 수 있으니까 말이야!”

로건은 곧장 그들을 향해 돌진했다.

“산드라!”

두 사람은 놀라 황급히 몸을 던졌다. 아슬아슬하게 피했지만 서로 다른 방향으로 갈라진 두 사람.

굉음과 함께 벽과 격돌한 로건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거대한 주먹으로 벽을 후려쳤다.

“전부 박살내 주마!”

로건이 짐승처럼 포효하며 벽을 계속 두들기자 천장이 무너져 내렸다.

“존!”

무너진 잔해가 떨어지며 사방을 포위했다. 존은 로건과 함께 안쪽, 그리고 산드라는 바깥쪽으로 떨어지게 됐다.

이윽고 이경복에게 통제권이 돌아왔다.

보스전의 시작이었다.

“자이간트 로건이라. 좀 어려운 보스인가 보네요.”

그저 마주한 것만으로도 육감이 계속 경종을 울렸다. 한 방에 끝난다는 채팅이 거짓이 아닌 게 분명했다.

-ㅇㅇ 진짜 빡시긴 함……

-나는 얘 때문에 접었는디.

-무적권 회피해야 함.

-그나마 기존 루트는 개방된 장소인데 링매치 무엇?

-아 근데 지성까지 있으면 어케 깸?

아무리 퍼플이라지만 고전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게 시청자들 대부분의 감상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퍼플이기에.

[‘복수단모집’님이 퀘스트를 제안합니다!]

[조건 – 로건 최대한 말려 죽이기]

[성공 – 10,000원]

누군가는 믿음을 보였다.

-말려 죽이기?

-갑툭퀘 뭐임?

-왠지 퍼플이라면 원샷원킬할 것 같긴 함.

-아 ㅋㅋㅋ ㅅㅂ 동참한다.

[‘어벤저스어셈블’님이 퀘스트 보상금을 추가합니다.]

[누적 보상금 – 60,000원]

이전의 퀘스트처럼 한 사람이 단독으로 보상금을 정할 수도 있지만, 시청자들이 모금하여 액수가 정해지는 단체 퀘스트도 있었다.

지금이 바로 그런 경우였다.

-퍼플 형 가능?

-갓직히 로건 곱게 못 죽임 ㅋㅋ

-ㄹㅇ 이건 못 참지.

마침 후원도 줄곧 막혀 있었기 때문일까.

[‘참교육드가자’님이 퀘스트 보상금을 추가합니다.]

[누적 보상금 – 90,000원]

[‘퍼플이다해줄거야’님이 퀘스트 보상금을 추가합니다.]

[누적 보상금 – 110,000원]

[‘잼민이ㅠㅠ’님이 퀘스트 보상금을 추가합니다.]

[누적 보상금 – 150,000원]

시청자들의 참여가 빠르게 이어졌다. 십시일반으로 쌓인 금액은 가파르게 상승했다.

-근데 너무 어렵지 않음?

-ㄹㅇ 괜히 무리하다가 죽으면 어캄.

-리트하면 되는 거 아님?

-노데스 기록도 날아가잖슴;;

-아, 퍼플이 알아서 할 거라고욧!

몇몇 시청자들이 걱정했지만 대세는 이미 한쪽으로 기울었다.

[‘퍼펙트하게가자’님이 퀘스트 보상금을 추가합니다.]

[누적 보상금 – 1,197,000원]

금액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이경복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마침 저도 이 색…… 아니, 이 캐릭터 혼쭐 좀 내줘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어렵게 느껴지긴 했지만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아니었다.

더욱이 시청자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싶지 않았다.

-ㅋㅋㅋㅋㅋㅋ 색까지 나왔쥬?

-갓직히 쌍욕 박아도 인정ㅋㅋ

-퍼플이 갓파고한테 걸릴 뻔했자너~

-혼내주러 가즈아!

-아 ㅋㅋ 이게 퍼플이지.

시청자들은 즐거움을 숨기지 않았다. 이경복이 퀘스트를 수락하자 멈췄던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존!”

바깥쪽에 있던 산드라가 로건을 향해 권총을 쐈다.

총성과 함께 날아간 총알이 로건의 몸에 박혔지만 그것뿐이었다. 근육에 박힌 총알은 아무런 피해를 주지 못했다.

로건은 징그러운 미소를 지으며 웃음을 흘렸다.

“아, 정말 끝내주는 몸이야. 산드라, 네 년은 사지를 찢어 줄 테니 기다려라!”

이경복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진짜 권총은 안 통하나 보네요. 그렇다면…….”

그는 한 손에는 용병에게 빼앗은 컴뱃 나이프를, 다른 한 손으로는 황금 산탄총을 잡았다.

-캬! 그림 미쳤고 ㅋㅋㅋ

-권총이 안 되면 샷건이지 ㅋㅋㅋ

-총이 필요하다, 준나게 큰 총이!

-근데 한 손으로 쏠 수 있누ㄷㄷ

-나이프는 왜 들은 겨?

산탄총까지야 이해하지만 나이프는 뭐하러 든 것일까.

그 의문에 이경복은 설명하지 않았다.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 주는 편이 확실했으니.

‘온다.’

경종을 울리던 육감이 순간 멈추었다. 이어 마치 데자뷰처럼 생생한 오감이 전신을 휩쓸었다.

이경복은 그 ‘예지’를 따랐다.

“뒤져라!”

로건은 무시무시한 속도로 돌진했다.

그러나 이경복은 한발 앞서 놈의 돌진 경로를 벗어난 건 물론, 능숙한 몸놀림으로 미끄러지듯 달려오는 놈의 발목을 베어냈다.

하지만 그의 공세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이어 교차하는 그의 양팔. 산탄총의 총구가 갈라진 살점을 겨누었다.

‘근거리 사격은 세밀한 조준이 필요 없지.’

그가 산탄총을 한 손으로 든 이유였다.

쾅하는 굉음과 함께 쏟아진 탄환이 갈라진 상처를 파고들었다.

“끄아아아악!”

비명과 함께 바닥을 나뒹구는 로건. 그제야 시청자도 번쩍 정신을 차렸다.

-방금 뭐임?

-자이간트한테 정면 돌진을 한다고?

-까딱하면 끝인디 ㅁㅊㄷ ㅁㅊㅇ

-아 ㅋㅋ 이거 다 간이 큰 덕분임.

-ㄹㅇ 강심장이자너~

-리빙포인트) 총알이 안 박히면 안에다 쏘면 된다.

묘기와도 가까운 시작에 채팅창은 열광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이건 시작에 불과.

“좀비도 과다출혈로 죽나 실험해 볼게요.”

이경복은 칼날에 묻은 피를 떨어내며 담담히 말했다.

-퍼플은 과다간지네 ㅋㅋㅋㅋ

-그냥 휙휙 하는 것 같은데 왜케 멋있누 ㅋㅋㅋㅋ

-목소리 빨도 있다 ㅇㅈ?

-팩트) 다.

그 사이 로건이 절뚝이며 일어났다.

“이 빌어먹을 새끼가!”

흉측하게 일그러진 로건이 다시금 달려들었다. 발목의 상처는 어느새 아물었다.

그러나 상처 안에 든 이물질까지 적출할 수는 없었기 때문인지 절뚝거렸다.

“뒤져!”

그래도 학습 능력은 있는지 로건은 무작정 달려들지 않았다. 오히려 거리를 유지하며 자신의 비대한 신체의 이점을 이용했다.

로건이 주먹을 내지르자 팡하고 공기 터지는 소리가 났다. 커다란 근육에서 나오는 힘이 속도와 위력을 배가시킨 덕이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것도 맞아야 의미가 있었다.

-와 ㅋㅋㅋㅋㅋㅋㅋ

-그게 보임?

-리겜, 격겜, 슈팅겜 공통대사 나왔누 ㅋㅋㅋㅋ

-퍼플은 지금 그 세 가지 다 하는 거 아니냐?

기관총처럼 빠르게 쏟아지는 주먹. 그러나 이경복은 단 한 번의 공격도 허용하지 않았다.

‘전부 보인다.’

게임에 몰입하며 느꼈던 분노, 그리고 높은 난이도에 대한 경각심으로 만들어 낸 결과였다.

그는 공격을 회피할 뿐만 아니라 컴뱃 나이프로 틈을 노려 반격까지 했다.

“크아아아아아!”

로건은 양팔이 난자당해 피를 줄줄 흘리며 울부짖었다.

-77ㅓ억!

-아 ㅋㅋ 속 시원하네.

-로건쉑 퍼플 맛 제대로 봤쥬?

-아니 근데 저 근육에 칼이 박힘?

-잘 보면 힘줄 쪽만 노린 듯.

-읭……? 그게 가능?

-이거 맞는 듯? 팔을 잘 못 드는데?

채팅대로 로건은 팔을 부들부들 떨며 축 늘이고 있었다.

‘결국 인체를 베이스로 한 모델이지.’

평소 운동을 즐겨하는 이경복으로서는 근육에 대한 이해도가 꽤 쌓여 있었다.

아무리 근육이 크더라도 근육과 근육을 이어주는 힘줄이 손상되면 무용지물인 법이었다.

“네놈, 네놈만 없었어도오오오오오!”

로건은 재차 격분했다.

자이간트 특유의 재생력 때문인지 늘어졌던 팔도 다시금 올라갔다.

하지만 흘러내린 피는 다시 보충되지 않았고, 로건도 근접전은 오히려 불리하다는 걸 학습했다.

“깔아뭉개 주마!”

이에 로건은 다른 방식을 택했다. 놈은 경계를 이루던 잔해를 잡고는 위쪽으로 내던졌다.

일부 무너졌던 천장에 다시금 균열이 일어났다.

“크아아아아아!”

거기서 멈추지 않고 로건은 가까운 벽에 제 몸을 부딪쳤다. 쿵하는 둔중한 울림과 함께 호텔 건물 전체가 떨렸다.

-헐?

-이거 2페이즈 각인데 ㅅㅂ

-다른 패턴도 만들어 뒀다고?

-개껌쉑들 아예 선이 없누 ㅋㅋㅋ

시청자들의 예상대로였다.

쿠르르하는 울림과 함께 위쪽에서 잔해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죽어어어어어!”

로건이 닥치는 대로 손에 잡히는 걸 던지기 시작한 것이다.

위에서 떨어지는 잔해와 앞쪽에서 날아드는 투척 공격까지 피해야 하는 상황.

-ㄹㅇ 슈팅겜됐누 ㄷㄷ

-아까 말한 트수 누구냐!

-않이;;; 이왜진?

-이걸 어케 깨라고!?

-퍼플 최초 리트각인가 ㅠ

그 아찔한 광경에 시청자들은 게임 오버를 직감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이경복은 그들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각 나왔네요.”

그 한마디와 함께 이경복은 바닥을 박찼다. 그와 동시에 컴뱃 나이프를 검집에 넣고 진압봉을 쥐었다.

-각?

-뭔솔?

-끔살각 밖에 안 보이는디?

-진압봉은 왜 든겨?

-하나 둘 셋, 퍼플 파이팅!

채팅창에는 물음표가 가득했다.

이윽고 이경복은 마치 그것이 당연하다는 듯 날아드는 투척물을 회피했다.

이어 잠시 멈칫하자 앞에 떨어지는 잔해가 투척물과 충돌했다. 이경복은 곧장 잔해를 밟고 도약했다.

‘이 정도면 퀘스트는 성공한 거로 되겠지.’

이경복은 허리를 크게 돌리며 떨어지는 작은 잔해들을 진압봉으로 후려쳤다.

쐑하고 날아간 잔해가 로건의 얼굴을 정확히 강타했다.

“크악!”

그와 함께 주춤하는 투사체들.

이경복은 착지와 더불어 내달렸다. 이어 떨어지는 잔해를 밟고 도약하며 기둥을 박찼다.

순식간에 좁혀진 거리.

이경복은 벌어진 로건의 입안에 진압봉을 박았다.

“아 해라.”

눈을 부릅뜨며 경악하는 로건.

이경복은 벌어진 입에 산탄총을 겨누었다.

달칵하는 방아쇠 소리.

그와 동시에 퍽하며 로건이 눈을 까뒤집었다. 근육이 너무 두터워 산탄이 밖으로 튀어나오지 못한 것이다.

쿵하는 육중한 울림과 함께 쓰러지는 로건.

-자, 아 하세요^^

-치과의사냐고 ㅋㅋ

-샷건 임플란트 ㅋㅋㅋㅋ

-레전드각 또 나왔누 ㅋㅋㅋ

-큐하! 큐하! 큐하! 큐하!

-우리는 퍼플의 시대에 살고 있다.

-퍼플은 신이야! 퍼플은 신이야! 퍼플은 신이야!

-신 : 아뇨, 제가 ‘퍼플’입니다.

-속보) 국립국어원 ‘레전드’를 ‘퍼플’로 변경.

-ㅁㅊ 둘 다 영어잖아 ㅋㅋㅋㅋ

채팅창이 미친 듯이 올라갔다.

[퀘스트 성공!]

[‘복수단모집’ 외 131 명이 ‘1,27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그와 더불어 나타난 퀘스트 성공 메시지. 전투 도중에도 틈틈이 금액이 누적된 것이다.

“성공처리 감사합니다. 너무 쉽게 죽인 거 아닌가 했는데…….”

이경복이 어색하게 웃으며 감사하자 채팅창은 다시금 일변했다.

-다리 작살내고 힘줄 끊은 게 쉽다?

-퍼플 씨 그렇게 안 봤는데 무서운 사람이네.

-ㄹㅇ 살인미소자너 ㄷㄷ

-로건쉑은 인간이 아니니까 괜춘^^

장난스럽게 올라오는 채팅들.

그 사이 통제권이 사라지면서 다시 컷신이 진행됐다.

“존! 괜찮아요!?”

“네. 하지만 건물이 무너질 것 같아요. 얼른…….”

“하지만!”

로건이 뒤흔든 건물은 당장에라도 붕괴될 것처럼 위태로웠다. 산드라는 참담한 표정으로 위쪽을 바라보았다.

시신조차 거두지 못한 생존자들을 떠올린 게 분명했다.

“산드라!”

“……알았어요!”

하지만 시간이 없었다.

존의 재촉에 그녀는 질끈 눈을 감고 존과 함께 밖으로 빠졌다.

그와 동시에 건물이 우르르 무너지기 시작했다.

거세게 쏟아지는 빗줄기가 두 사람을 덮쳤다.

“……리젠팜.”

산드라가 이를 아득 물었다. 눈물과 빗물이 뒤섞였다.

“기회가 올 겁니다.”

존이 무너진 건물을 바라보며 주먹을 굳게 쥐었다. 이어 시야가 서서히 암전됐다.

-리젠팜 참교육 가즈아!

-개껌도 생각 있으면 몰살루트를 만들어야 된다.

-ㄹㅇㅋㅋ 무쌍모드도 만들어 줘야 됨

시청자들도 복수를 부르짖는 사이 시야가 뒤바뀌었다.

“그 뒤로 며칠이 지났다.”

도시를 전경으로 나온 목소리에 채팅창이 물음표로 도배됐다.

-뭐임?

-퍼플이 말한 거?

-ㄴㄴ 나레이션이듯.

-전문 성우같누 ㅋㅋㅋㅋ

“저 가만히 있었어요.”

이경복의 짧게 한마디 했다.

-아 ㅋㅋㅋ 헷갈린다고욧!

-갓직히 퍼플 목소리가 더 좋음

-ㄹㅇㅋㅋ 음성합성은 약간 티가 남

-내 목소리로 나레이션 들으면 꿀밤 마려울 듯 ㅋㅋㅋㅋ

이경복은 시청자들 반응에 실소를 흘렸다.

“너무나 많은 게 변했다. 산드라도 나도 휴식이 필요했다.”

컷신이 전환되면서 산드라와 존의 모습이 나왔다. 새로운 은신처를 구하고 식량과 자원을 구하는 둘의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이어졌다.

“슬픔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우리도 그것을 지울 생각이 없었다.”

존의 어투가 조금씩 강해졌다.

“이 끔찍한 현실에서 살아야 하는 이유는 하나뿐이다. 우리가 느낀 슬픔은 그것을 위해 마음속에 새겨 두어야 했다.”

산드라와 존은 도심을 헤쳐 나갔다. 그리고 이내 보이는 거대한 건물.

무너진 도시와는 다르게 멀쩡한 건물, 그 겉에는 이제는 익숙해진 엠블렘이 달려 있었다.

“리젠팜은 죗값을 치러야 한다.”

존의 말과 함께 시야가 점점 어두워진다.

-암! 아아아아아암!

-ㄹㅇ 리젠팜은 암이자너 ㅋㅋㅋ

-캬, 바로 리젠팜 조지러 가뿌리누.

-아 ㅋㅋ 암은 빨리 적출해야지.

이어 어두워진 시야에 나타난 문구.

[Chapter 3. ‘No way out’ End]

챕터 3이 끝난 것이다.

-오 ㅋㅋㅋ 예고편 나오겠누

-전원 착석!

-팝콘 가져와!

-아 머리 좀 치우라고

-스마트 링크 좀 집어넣어라 쫌!

시청자들의 기대대로 바로 챕터 4 예고 컷신이 시작됐다.

존과 산드라가 건물 옥상에 엎드려 리젠팜 본사 주위를 살피고 있었다.

“……용병들이 너무 많아요.”

“경호라고 하기엔 무장 수준이 상당하네요.”

중화기는 물론이고 장갑차까지 갖춘 용병들. 아무리 봐도 일반 제약회사에서 동원할 수 있는 물건들이 아니었다.

-용병들 진짜 빡셈.

-기존 루트에서 이 정도까지는 아니지 않음?

-ㄹㅇㅋㅋ 장갑차 어디서 나왔누

산드라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내저었다.

“정면 승부는 자살행위에요.”

“틈이 있으면 좋을 텐데…….”

존이 눈을 가늘게 뜨며 주변을 살피려 할 때였다.

<……세요?>

지직거리는 소리와 함께 미약한 목소리가 들렸다. 존과 산드라가 놀라 시선을 마주쳤다.

“존, 무전기에요.”

<여보세요?>

소리는 경찰무전에서 들려왔다.

-뭐임?

-아…!

-HOXY?

-아 ㅋㅋㅋ 그거네

-쉿! 갓파고가 보고 이따

시청자들 중 몇몇은 뭔가 아는 듯한 반응이었다.

그 사이 존은 무전에 응답하려다가 멈칫했다. 하지만 이내 산드라에게 고개를 끄덕이고 무전을 받았다.

“……당신, 누굽니까?”

<아, 다행이다. 연락이 됐네요.>

“대답부터.”

<저는 제시카, 리젠팜의 연구원이에요.>

리젠팜이라는 말에 두 사람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왘ㅋㅋㅋㅋ

-제시카가 여기서 나온다고?

-산드라가 살아 있는데?

-ㅁㅊㄷㅁㅊㅇ

-쉽덕들 지들만 아는 걸로 신났쥬?

-스포는 아닌가? 갓파고가 가만있누.

-정보) 제시카는 2번째 히로인이다.

-퍼플이 새장가를 간다고?

-ㅁㅊ 무슨 새장가야 ㅋㅋㅋㅋ

채팅창은 새로운 캐릭터의 등장에 혼란스러워졌다.

컷신은 그 와중에도 착실히 진행됐다.

<잠깐! 오해 마세요! 저는 내부고발을 준비하고 있어요!>

이어 튀어나온 제시카의 다급한 목소리.

“내부고발……?”

<리젠팜의 악행에 대한 자료를 모으고 있었어요. 혹시 도와줄 사람이 있을까 주기적으로 무전을 보내고 있었고요. 경찰이신 거죠?>

제시카의 물음에 존은 잠시 미간을 찌푸렸다.

<다행이다. 도저히 연락을 받는 사람이 없어서 어떡할까 고민했거든요…… 아무튼, 저를 좀 도와주시겠어요?>

“도와달라니 뭘 말입니까?”

<고발자료와 백신, 그걸 외부에 전해야 돼요. 그것만 전하면 군대가 들어와 이 문제를 모두 해결할 테니까요.>

“하지만 들어갈 방법이 없는데…….”

<아뇨, 있어요.>

제시카의 확신어린 말에 두 사람은 더욱 귀를 기울였다.

<연구실과 연결된 하수도가 있어요. 거기는 아무도 없을 거예요.>

그 말과 함께 컷신이 뚝하고 끊겼다.

-캬! 이걸 또 이렇게 살리누.

-다회차 컨텐츠 맞다니까 ㅋㅋ

-산드라랑 제시카랑 존 두고 싸우겠누 ㅋㅋㅋ

-난 산드라 짱 뿐임!

-킹직히 제시카 짱도 커엽다구!

시청자들은 흥겹게 떠들며 다음 챕터 진행을 기다렸다.

하지만 이경복은 시작을 누르지 않았다.

-어…… 이거 뭔가 익숙한데?

-아 설마……

-아니지? 우리 퍼플이가 그럴 리가 없어.

불안해하는 채팅창.

이경복은 가볍게 손뼉을 쳤다.

“오늘도 재밌었네요. 여러모로 충격적인 전개였습니다. 이래서 바크가 인기 있나 봐요.”

-멘트 멈춰!

-아 더 해 줘잉!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

-자네가… 채팅만 치는 건…… 되고?

-근데 자이간트 보스전은 좀 피곤하긴 할 듯 ㅋㅋㅋㅋ

-고건 맞지 ㅋㅋ

시청자들은 대부분 애원했지만 일부는 이해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그만큼 보스전이 힘들어 보였던 덕이었다.

“그럼 오늘도 시청 감사했습니다. 저는 다음 방송으로 돌아올게요!”

물론 그러거나 말거나 이경복의 뜻은 달라지지 않았다.

-칼방종 ㅋㅋㅋ 트수들 바로 썰리쥬?

-퍼플이 잘 썰긴 해 ㅋㅋ

-그립읍니다 ㅠㅠㅠㅠ

-흑흑, 오늘 밥은 맛있었다.

-퍼바!

-빠잇!

결국 포기하는 시청자들.

“트바!”

이경복은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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