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 없었는데요? 있었습니다 (1)
이경복이 하수도에서 만난 좀비는 쥐 떼 외에도 여러 가지였다. 제시카의 말과는 달리 처분되지 않고 살아남은 실험체들일까.
여러 동물이 융합된 형태의 좀비들이 그의 앞길을 막았다.
그러나 끝까지 막지는 못했다.
-시원시원하누 ㅋㅋㅋ
-초갈원숭이 아웃!
-리빙포인트) 머리가 2개면 두 발을 쏘면 된다.
-이럴 거면 차라리 동물원을 하지.
원숭이 몸에 캥거루 다리가 달린 좀비가 쓰러졌다. 놈이 마지막이었는지 이경복은 통제권이 사라지는 걸 느꼈다.
“존!”
컷신 돌입과 함께 산드라가 한 방향을 가리켰다. 손전등에 비춰진 곳에는 사다리가 놓여 있었다.
존은 곧바로 무전기를 켰다.
“제시카, 거기 있습니까?”
<네, 네네! 있어요!>
“L-21이라 쓰인 통로에서 사다리를 발견했습니다. 여기가 맞습니까?”
<아! 네네! 잠시만요, 금방 열어드릴게요!>
무전이 뚝하고 끊겼다.
그러나 존과 산드라는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이내 덜컹하는 소리와 함께 사다리 위쪽에서 빛이 내려왔다.
“존!”
“먼저 올라가세요. 뒤따라갈게요.”
혹여나 좀비가 나타날지도 몰랐다. 존은 산드라를 먼저 올려 보냈다.
-옼ㅋㅋㅋㅋ 드디엌ㅋㅋ
-킹쁜 제시카 나오나요!
-갓직히 보면 흔들릴 수밖에 엄따
-아 ㅋㅋ 시카단 설레발 오졌쥬?
-화해의 악수까지 나눈 두 사람인데 끼어들 틈이 있겠냐고ㅋㅋ
-악수 ㅇㅈㄹ ㅋㅋㅋ
-산드라랑 제시카가 만나는 건 첨이네 ㅋㅋ
-기싸움 오질 듯
시청자들은 두 히로인의 만남을 기대했다. 이내 산드라가 사다리를 전부 올라갔을 때였다.
“꺅!”
들려오는 짧은 비명에 존의 시선이 홱 돌아갔다.
“산드라?!”
그는 신속히 사다리를 올라갔다.
-ㅁㅇㅁㅇ?
-역시 함정이었나?
-ㅈㄹㄴ
-제시카가 오다가 들킨 거 아님?
그 짧은 시간 동안 채팅창은 추측과 의문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존이 사다리를 오르고 본 광경은 시청자들 누구도 예상치 못한 모습이었다.
“……산드라?”
사방이 새하얀 격리실.
그 중앙에 산드라가 흰 가운을 입은 여성을 제압해 엎드린 채 몸을 더듬고 있었다.
한 손에는 총을 든 채로.
-ㅗㅜㅑㅗㅜㅑ
-아 ㅋㅋㅋ 이게 산드라지.
-기선제압 확실하누 ㅋㅋㅋ
-이 조합 나쁘지 않을지도……?
-조합 ㅇㅈㄹ 하고 있누 ㅋㅋㅋ
몸수색을 하던 산드라는 못마땅한 얼굴로 제시카의 뒤통수를 노려보고는 일어섰다.
“위험한 물건은 없는 것 같네요. 실례했어요.”
“으…… 말로 하셔도 되는데…….”
이내 기진맥진한 목소리와 함께 제시카가 몸을 돌렸다. 이내 시야로 들어온 제시카의 얼굴.
산드라가 고양이상이라면 제시카는 강아지상에 가까웠다.
약간 푸른 기가 감도는 긴 머리, 큰 눈망울과 백옥처럼 새하얀 피부. 그리고 그 눈보다 더 큰 안경은 시청자들의 뇌리에 그녀의 순진무구한 인상을 더욱 깊게 남겼다.
-어……? 나 제시카 좋아하네?
-베이글 ㅎㄷㄷ
-개껌쉑들 캐잘알 ㅇㅈ한다.
-그래도 허니단은 흔들리지 않는다!
-허니 코인 악재! 모두 돔황챠!
-나약한 트수들 ㅉㅉ 왜 하나만 팜?
-일부다처 가자고 ㅋㅋㅋ
-유교드래곤도 ㅇㅈ하는 부분이구연
그리 시청자들은 새로운 히로인을 적극 환영했지만, 정작 플레이어인 이경복은 그러지 못했다.
‘뭐야 이거?’
제시카를 마주했을 때부터 느껴지는 께름칙한 감각.
‘로건을 처음 봤을 때랑 비슷하다.’
다만 그 정도가 달랐다.
로건은 하수구 악취 정도의 불쾌함이었다면 제시카는 그 이상.
‘……마치 동물의 시체를 봤을 때의 그 느낌이야.’
이경복은 어릴 적 로드킬을 당한 고양이를 본 적이 있었다. 사고를 낸 차주가 치우지도 않고 그냥 가 버렸는지 방치된 시체.
그때 느꼈던 불쾌함과 소름이 다시금 떠올랐다.
‘로건처럼 선한 인물인 척하는 악역이었던 건가.’
이경복은 일단 함구하기로 했다.
채팅창의 반응으로 보아 기존 루트에서는 밝혀지지 않은 모양. 스스로 스포일러를 할 수는 없으니 일단 지켜볼 따름이었다.
“으, 정식으로 인사드릴게요. 저는 제시카…….”
“상황이 급박하니 자세한 건 생략하죠.”
제시카가 옷매무새를 다듬으며 인사하려 하자 산드라가 불쑥 끼어들었다.
-산드라 슨수! 압박 들어갑니다!
-우리 산드라가 또 한 성질 하그등요~
-민망하겠누 ㅋㅋㅋ
-하나둘셋! 시카짱 파이팅!
-이미 기에 눌렸다 이말이야~
제시카는 입을 어물쩍거리다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하하…… 그것도 맞는 말씀이네요. 그래도 설명은 드려야겠죠.”
그녀는 목에 걸고 있던 펜던트를 열었다. 이내 그 안에서 작은 USB가 나왔다.
“그건?”
“증거자료에요. 리젠팜의 불법실험이랑 생체병기 개발 자료가 담겨 있죠.”
“……생체병기?!”
존과 산드라가 눈을 크게 떴다. 제시카는 안경을 고쳐 쓰며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네. 이걸 외부에 전달하려면 최상층, 연구원장실로 가야 해요. 지금 외부와 연락할 수단은 거기밖에 없어요.”
“하지만 여기는 지하가 아닙니까?”
“네. 일반 엘리베이터는 눈이 너무 많아요. 그러니까 화물용 엘리베이터를 써야 해요. 저도 그쪽을 이용했고요.”
“화물? 그게 최상층까지 간다고요?”
산드라가 미심쩍은 눈으로 노려보았다. 제시카는 고개를 내저었다.
“아뇨. 그래도 차상층, 연구개발실까지는 갈 수 있어요. 거기서부터는 직접 올라가야 하죠.”
“……듣자 하니 별로 어려운 일은 아닌데 왜 혼자서 하지 않는 거죠?”
날이 선 대화에 시청자들은 오히려 신이 났다.
-아~ 산드라 슨수! 도저히 놔주질 않습니다!
-날카로워요! 베이겠어요!
-시카슨수 힘내야 합니다!
-기존 루트에서는 골키퍼가 없었거든요?
-그렇습니다! 지금은 쉽지 않아요!
-그래도 일단 슈팅을 해야 합니다!
-트수들 컨셉질 무쳤냐고 ㅋㅋㅋ
제시카는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설명할 참이었어요. 제 말을 끝까지 들어주셨으면 좋겠는데요?”
“그렇다면야. 계속하시죠.”
“원장실과 약품개발실은 보안등급이 높아요. 저로서도 접근하기가 불가능해요.”
“우리는 가능하다는 건가요?”
“두 분이 먼저 올라가시면 제가 제어실로 갈 거예요. 그리고 일시적으로 전기를 끊어서 보안을 무력화시키면 두 분이 진입하시면 돼요.”
그리 설명한 제시카는 USB를 존에게 건넸다.
-장소만 다르지 기존 루트랑 똑같누.
-히든이라도 결말은 비슷하게 가는 건가?
-마지막에 제시카랑 산드라 둘 중에 하나 선택하는 거 아니겠음?
-스포충들 아슬아슬하다?
-갓파고님이 보고 계시다는 걸 잊지 말라구!
몇몇 시청자들은 기존 루트와 비슷하다며 불평했지만, 아직 컷신이 끝난 건 아니었다.
“알겠습니다.”
“네, 그럼 서두르죠.”
“제시카.”
돌아가려던 제시카를 존이 불러 세웠다.
-어?
-좀 다르네?
-쉿!
존은 나이프를 들었다. 그리고 제시카가 보는 앞에서 제 손을 그었다.
이내 회복되는 상처.
그 모습을 본 제시카의 동공이 크게 확장되었다.
“혹시…….”
“이거, 언제부터 이랬어요?”
존이 뭘 묻기도 전에 제시카가 그의 손을 덥석 잡았다.
“잠깐!”
놀란 산드라가 그녀를 붙잡으려 했지만 제시카가 팍하고 그녀의 손을 뿌리쳤다.
이내 표독스러운 눈길로 산드라를 노려본 그녀는 다시금 존을 돌아봤다.
“혹시 회복약을 먹은 적 있어요? 좀비한테 물린 적은?”
“제시카?”
“아! 기억, 기억은 어때요? 불분명하거나 하지 않나요?”
“그걸 어떻게……?”
놀라는 존의 표정처럼 채팅창도 분위기가 일변했다.
-뭐임? 갑자기 뭐임?
-시카짱……?
-어…… 뭔가 싸하다?
-내가 알던 시카가 아닌데?
-않이;;; 이렇게 탈압박 하란 건 아닌데
제시카를 처음 본 시청자는 물론 기존의 제시카 팬들도 의문을 느낀 듯했다.
“뭔가 좀 이상하긴 하네요.”
이경복도 슬쩍 한 마디를 덧붙였다.
그 사이 제시카가 화들짝 놀라며 손을 떼었다.
“아! 죄, 죄송해요. 제가 가끔 몰두하면 주변을 잘 못 봐서…….”
처음 만났을 때와 비슷해 보이는 모습. 그러나 존과 산드라는 경계의 눈빛을 보냈다.
“뭘 알고 있는 겁니까? 대체 리젠팜은 제게 뭘…….”
“엘릭서.”
제시카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존을 직시했다.
“당신은 엘릭서의 임상 실험 대상이 분명해요.”
“……엘릭서?”
“리젠팜이 연구하는 궁극의 치료제에요. 어떤 손상을 입어도 회복할 수 있는, 나아가 영생까지 누릴 수 있는.”
그녀는 뭔가에 홀린 것처럼 존을 위아래로 훑었다.
“지금 사태도 엘릭서의 부작용 때문에 벌어진 일이죠. 그보다, 지금 이럴 때가 아니에요. 당신이 있다면 상황이 달라요.”
“달라지다니? 뭐가 말입니까?”
“우리는 더 아래, 실험실로 가야 해요. 당신이 있다면 완벽한 백신을 만들 수 있어요!”
그녀가 빠르게 존을 붙잡으려 했지만 그 사이를 산드라가 가로막았다.
“지랄하지 마.”
그녀는 눈을 부라리며 제시카에게 총을 겨누었다.
“그런 수상한 실험에 존을 보내 줄 것 같아?”
산드라의 개입에 채팅창이 다시금 불붙었다.
-역시 우리 산드라짱 밖에 없다니까!
-산드라짱 믿고 있었다굿!
-할 말은 한다! 산카콜라!
-제시카 왜케 싸하누.
-눈 돌아간 거 ㅎㄷㄷ 하네.
-시카단 탈퇴합니다.
그러나 제시카는 물러서지 않았다.
“이럴 시간이 없어요. 결국 백신이 있어야 여길 나갈 수 있다는 거, 아시잖아요? 안 그래요? 존!?”
그렇게 클로즈업된 두 여성의 얼굴. 그때 갑자기 시야가 돌아가며 경고등을 비추었다.
훙하는 소리와 함께 불이 꺼지며 경고등이 붉게 빛났다. 이내 우렁찬 사이렌 소리가 귀를 때렸다.
<비상! 비상! 격리실험체 탈주!>
<건물 내 모든 인원은 즉시 대피하십시오!>
<연구동 폐쇄조치를 진행합니다!>
이어 스피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그 사이에는 고함과 총성이 섞여 있었다.
“맙소사…….”
제시카는 다급히 시선을 돌렸다.
“이러면 엘리베이터도 운행하지 않아요.”
“뭐?”
“못 믿겠으면 직접 확인해 보겠어요? 하지만 그때는 이미 늦었을 거라고요!”
그녀는 산드라를 흘겨보고는 존에게 말했다.
“이제 남은 방법은 백신을 가지고 여길 탈출하는 것뿐이에요. 제발, 저를 믿어 줘요.”
존은 심각한 표정으로 산드라의 손을 잡았다.
“존…….”
“산드라, 괜찮아요. 난 당신과 함께 꼭 여길 벗어날 겁니다.”
“서둘러요!”
제시카가 먼저 앞장섰다.
그 뒤를 존과 산드라가 뒤따르며 시야가 암전됐다.
-크으! 이게 사나이지.
-존드라 커플 확정!
-아닠ㅋㅋ 존드라 어감 뭔데
-제시카 코인 상폐각 ㅋㅋㅋㅋ
-아직도 못 나온 흑우 없제?
-붐시카 제는 온다……
-붐이 아니라 그냥 폭발했는데?
이내 시야가 다시 돌아왔다.
세 사람은 녹색 비상등을 따라 계단으로 향했다. 제시카가 먼저 들어가고 뒤따라 산드라가 들어가려는 순간.
“산드라!”
존이 황급히 그녀를 밀치며 몸을 날렸다. 이윽고 쾅하는 굉음과 함께 계단 입구가 무너졌다.
-ㅁㅇㅁㅇ?
-탈주한 실험체인 듯?
-이거 맏따.
이경복도 그렇게 생각했다.
장면이 바뀌자마자 저릿저릿한 육감이 온몸을 자극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존!?”
“나는 괜찮아요! 먼저 가 있어요!”
이내 시야가 돌아가 습격자를 비추었다. 붉게 점멸하는 사이렌 사이로 나타난 검은 형체.
쿵, 쿵하는 육중한 발소리와 함께 그 모습이 드러났다. 잿빛 피부에 강철로 된 구속구를 걸친 거구의 괴인.
-오버로드!
-왘ㅋㅋㅋㅋㅋㅋㅋㅋ
-이게 여기서 나오누 ㅋㅋㅋ
-와낰ㅋㅋ 팬서비스 확실하자너~
-기존 루트에서는 거지같은 핏덩어리가 나왔는데 ㅋㅋㅋ
-개껌쉑들이 그래도 게임은 잘 만든다니까.
-킹버로드는 쌉인정이지!
그와 함께 시청자들의 반응이 터졌다. 이전과 달리 그 정도가 예사롭지 않았다.
대체 이 보스가 뭐기에?
이경복은 처음으로 게임을 잠시 멈추었다.
“유명한 캐릭터인가요?”
시청자들이 이렇게 반가이 여길 정도면 자신도 알아둬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그 물음에 채팅창에 다시금 격류가 일었다.
-킹버로드를 모른다고?
-아재요, 요즘 애들은 콘솔 같은 거 모르거등요?
-앗… 아아……
-아, 이제 킹버로드를 모르는 세대구나……
-트수들 의문의 아재 인증 ㅋㅋ
-아니야, 내가 아재일 리가 없어!
-킹버로드가 뭐임?
-아재들 이제 와서 이 악물고 모른척 ㅋㅋㅋㅋ
-정보) 오버로드는 콘솔판 바이오 크라이시스의 대대로 최종 보스를 맡아 온 좀비다.
-아재추.
가상현실이 아닌 PC와 콘솔로 게임을 하던 시절의 이야기.
엄밀히 따지면 이경복도 콘솔 세대 끝물에 속하긴 했지만 게임을 안 해 왔기에 몰랐던 것이다.
-아ㅋㅋ 난 아재 아님, 아무튼 아님!
-킹버로드 공… 중절모와 코트는 어디다 두시고……
-여기 있었구만, 라이언킴.
-좀비 할 거야 안 할 거야!?
-백신, 백신 좀 갖다 주시오……!
-이러다가, 다 죽는다구요!
-아재 아니라면서 밈 자동으로 나오쥬?
콘솔판 오버로드는 그 차림새 때문에 한 드라마의 인물로 비유가 되면서 밈이 되었다.
시청자들이 우후죽순 그 밈의 대사를 쏟아 냈다.
“아, 그거구나. 친절한 설명 감사드립니다. 그럼 다시 갈게요.”
이경복도 그 드라마 밈은 알았기에 웃음을 흘리고 다시 게임을 시작했다.
다시 시작된 컷신 속 오버로드가 양팔을 뻗었다. 그저 근육질로만 보였던 팔은 이내 꿈틀거리며 날카로운 칼날 형태로 변했다.
그리고 오버로드는 다른 한 팔로 벽을 움켜쥐어 뜯더니 곧 핸드 캐논과 같은 형태로 변이했다.
-그럼 이게 최종보스인가?
-그런 듯?
-헐ㅋㅋㅋㅋ 근데 어케 이김?
-와씨 ㅋㅋㅋ 또 업그레이드 됐누.
-개껌쉑들 심하다 심해.
-이래서 시리즈가 길면 파워인플레가 빡세진다니까.
-권총이랑 샷건만으로 못 잡을 것 같은데……
시청자들은 기존 시리즈처럼 오버로드가 마지막 보스라 판단했다. 하지만 이경복은 생각이 달랐다.
‘아직 제시카가 악역인 게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어. 조금 더 남았겠지.’
이경복은 빠르게 처리하고 산드라를 쫓아가기로 했다. 컷신의 종료와 더불어 통제권이 돌아오는 게 느껴졌다.
“갑니다.”
쿵쿵하는 소리와 함께 돌진해 오는 오버로드. 이경복은 신속히 달리기 시작했다.
간발의 차로 오버로드의 손에 움켜진 파편들이 산탄처럼 그 자리를 덮쳤다.
-헐, 시작하자마자 죽을 뻔.
-퍼플 반응속도 뭔데!
-왠지 퍼플이면 그냥 이길지도?
-아 무적권이지 ㅋㅋㅋ
퍼플의 실력을 아는 시청자들은 승리를 예상했다. 하지만 그 수는 그리 많지 않았다.
시청자들 대부분이 바이오 크라이시스의 팬이었던 만큼, 콘솔판도 전부 즐겼기 때문이었다.
-ㄴㄴ 오버로드는 약점 아님 데미지 안 들감.
-바린이들 커엽누ㅋㅋㅋ
-아 ㅋㅋ 오버로드 처리하려면 그게 있어야 되는디.
-생각해보니 그게 없네?
-그게 대체 뭔데 ㅇㅈㄹ임?
-갓파고한테 걸릴 까봐 말도 못하겠누 ㅋㅋㅋ
-킹직히 퍼플이라도 이건 빡셈.
-권총이랑 샷건으로 잡히면 최종보스겠냐구!
시청자들 말대로였다.
이경복은 달리면서 몇 차례 방아쇠를 당겼지만 오버로드에게는 상처 하나 나지 않았다.
엄밀히 말하면 오버로드가 스스로 탄환을 ‘관통’시켰다.
‘신체 변형 능력으로 탄환을 빼내는 건가. 까다롭긴 하네.’
이경복은 바닥을 구르며 신속히 탄창을 갈아 끼웠다. 놈을 제거하려면 역시 약점을 노릴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그 약점이 저 구속구 안에 있다는 건데.’
약점의 소재는 마주쳤을 때부터 파악했다. 지금도 절절하게 느껴지는 육감 덕분이었다.
-개발진들 뿌듯해할 듯 ㅋㅋㅋ
-처음으로 퍼플 고전하자너~
-퍼플님 일단 무기부터 찾아요!
-도와달라고도 안 했는데 훈수 무엇?
-최초 리트각 나왔나?
슬쩍 지나가는 채팅창 내용을 본 이경복이 입꼬리를 비틀었다. 지금 이런 모습은 ‘퍼펙트’하지 않아 보이지 않나.
“약점이 어디 있는지는 알 거 같네요. 저 구속구를 벗기는 게 먼저죠.”
쾅하는 폭음과 함께 쏟아진 파편들을 피하며 던진 멘트. 그 설명에 시청자들도 동감했다.
-ㄹㅇㅋㅋ 이건 모르는 게 이상함.
-딱 봐도 수상하자너~
-근데 저걸 어케 벗김?
-막내야, 공구통 좀 갖고 온나!
-빠루… 겁나 큰 빠루가 필요하다.
-빠루가 왜 나오누 ㅅㅂ ㅋㅋㅋ
-일단 ㅌㅌ하면서 템 파밍 하는 게 맞는 듯.
채팅창은 농담과 추측으로 번잡해졌다. 그러나 이경복은 그 어느 것도 참고할 생각이 없었다.
“일단 벗기겠습니다.”
그 멘트에 채팅창을 가득 메운 물음표. 이경복은 늘 그렇듯 설명 대신 행동으로 보여 주었다.
그는 온 신경을 집중했다.
예리해진 감각과 더불어 곤두선 육감이 그의 의지를 따르듯 한 점으로 집중되었다.
‘지금이다.’
이경복은 마땅히 그래야 하는 것처럼 방아쇠를 당겼다. 이어 결과도 확인하지 않고 손을 움직이며 연달아 방아쇠를 당겼다.
곧바로 캉하는 쇳소리와 동시에 불똥이 튀었다. 연달아 탄환에 부딪친 구속구의 결합 부분이 팍하고 떨어졌다.
쿵하는 둔중한 울림과 함께 추락한 구속구 그리고 그 위, 오버로드의 명치에서 맥동하는 검붉은 핵의 모습.
바로 오버로드의 약점이었다.
-????????????
-즈기요?
-이게 뭔데?
-지금 같은 데 또 맞춘 거?
채팅창 너머로도 얼빠진 표정이 보였다.
-약점 떴다!
-않이 ㅋㅋㅋ 밸런스 패치 좀 하라고!
-오버로드 : 게임 X같이 하네!
-퍼플이 또 ‘퍼플’ 한 건데 무슨 문제라도?
-속보) 영국왕립학회, ‘피지컬’의 올바른 표기는 ‘퍼플’이라 밝혀.
환호는 그다음이었다.
오버로드의 약점이 드러나자 대번에 분위기가 뒤바뀌었다.
“도망도 파밍도 필요 없습니다.”
이경복은 싱긋 웃으며 말했다.
“그 정도로 센 놈은 아니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