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 없었는데요? 있었습니다 (2)
이경복의 선언은 즉각적인 호응을 불러왔다.
-아 ㅋㅋㅋ 이래서 퍼플 방송 못 끊지!
-ㄹㅇㅋㅋ 퍼손실 못 참지!
-피지컬도 쩌는데 마인드는 더 쩔엇!
-피지컬 내세우는 스머들도 좀 보고 배웠으면……
-어허! 분탕질 치지 마라.
-ㄹㅇㅋㅋ 갑자기 타스언급을 왜 함?
-슬슬 분탕들 꼬이누
약간의 잡음이 섞이긴 했지만 모두가 그의 선언을 환영했다.
[‘CapCompany_kor’님이 ‘5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어, 지금 부수면 안 됩니다. 오버로드 구속구 풀면 바로 페이즈 2에요. 그 전에 장비부터 파밍하시고 시작하셔야 되는데요. 어 잠깐.]
그때 들어온 장문의 후원.
개발사 직원의 말에 채팅창은 물음표로 물들었다.
-헐? 페이즈 2라고?
-않이;; 이걸 왜 이제 알려 줌;;;
-이미 부쉈는데요?
-엌ㅋㅋㅋㅋㅋㅋ 직원 시말서각
-방송사고 아님? ㅋㅋㅋㅋ
-그 와중에 5만 원 룰 지키는 거 보소 ㅋㅋ
[‘CapCompany_kor’님이 ‘1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헐…… 늦었다. 흑흑, 팀장님 죄송합니다.]
곧바로 이어지는 후원에 채팅창은 숙연해졌다.
-진짜 사고인가 보네 ㄷㄷ
-직원 돈 못 받는 거 아니누……
-에이 그래도 개껌이 좋소도 아닌데.
-퍼플한테 불이익 있음?
-ㄴㄴ 직원실수인 듯
-그럼 X를 눌러 JOY를 표하십시오.
-너어는 진짜…….
그사이 후원 메시지대로 오버로드의 변화가 진행됐다. 짐승 같은 울음을 뱉은 오버로드는 이내 몸을 들썩였다.
살갗을 뚫고 튀어나온 뼈가 증식하며 갑옷 형태를 갖추어 핵을 보호했다. 등에서는 날카로운 갈고리 형태의 기관이 돋아나 넘실거렸다.
“오우…….”
이경복은 자기도 모르게 탄사를 뱉었다. 오버로드에게서 느껴지는 불길함이 강해졌기 때문이었다.
‘이건 좀 위험한 느낌이 들긴 하네.’
오버로드의 변이가 끝나자마자 다시 돌아온 통제권. 이경복은 즉시 산탄총을 들고 방아쇠를 당겼다.
천둥 같은 격발음과 함께 산탄이 쏟아졌다. 그러나 오버로드는 가뿐하게 한 팔로 핵을 보호했다.
산탄은 팔을 뚫긴 했지만 뼈 갑옷에 손상을 주지 못했다.
-ㅅㅂ 이걸 어케 이기누.
-누구인가? 누가 샷건 소리를 내었어?
-얼른 파밍! 파밍하러 갑시다!
-로켓런처, 로켓런처가 필요하다!
시청자들은 개발사가 말한 무기가 뭔지 바로 눈치챘다. 시리즈 대대로 최종보스인 다양한 오버로드가 등장했지만, 그 끝은 대부분 로켓런처로 마무리했기 때문이었다.
-???: 도망도 파밍도 필요 없습니다.
-또또 분탕충들 머리 내미네?
-뭐래 ㅋㅋㅋ 퍼플이 직접 한 말 아님?
이때다 싶었던 걸까.
시청자들에 숨어 있던 악질들이 은근슬쩍 분탕질을 시도했다.
-무시가 답임 신경 ㄴㄴ
-ㄹㅇㅋㅋ 먹이 안 주는 게 맏따
-자기가 한 말은 지켜야 되는 거 아님?
-없는 말한 것도 아닌데 간신들 역겹누 ㅋㅋ
이런 부류는 그저 관심을 끄는 게 목적이었고, 교묘하게 관리 봇의 검열을 피하는 법을 잘 알고 있었다.
오히려 화를 내는 시청자가 경고를 먹는 경우도 많았다.
“파밍은 안 할 겁니다.”
채팅창을 확인한 이경복의 선언.
선량한 시청자들은 걱정했지만 분탕들은 오히려 약이 오른 모양이었다.
-개발자피셜인데 걍 파밍하죠?
-그냥 죄송하다 하면 되는 거 아님? ㅋㅋ
-엌ㅋㅋㅋ 가오 지키려다 나락가겠누.
-리트하겠다는데 뭘 ㅋㅋㅋ
어떻게든 이경복의 멘탈을 뒤흔들려는 의도가 뻔히 보였다. 이경복은 오히려 미소를 지어 보였다.
“보면 알게 될 거예요.”
그 말과 동시에 팔의 상처를 회복한 오버로드가 그를 덮쳤다. 날카롭게 변한 팔과 갈고리가 그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훙, 훙훙하며 공기 가르는 소리가 귓가를 스쳤다. 그러나 이경복은 믿기지 않을 정도의 근소한 차이로 그 공격들을 모두 피했다.
-무쳤다 무쳤어……!
-분탕러들 바로 아닥하네 ㅋㅋㅋ
-마! 이게 퍼플이다!
아쉽게도 이경복은 채팅을 볼 틈까지는 없었다. 그의 집중력은 점점 더 높아졌고, 마치 세계가 좁아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내 오버로드와 자신, 단둘만이 남아 있는 기분. 그리고 그만큼 모든 감각은 둘에게 집중되었다.
‘지금이다.’
빠르게 날아드는 틈 사이로 경로가 보였다. 이경복은 놓치지 않고 방아쇠를 당겼다.
퍽하는 소리와 함께 산탄이 뼈 갑옷에 박혔다.
‘부족했나.’
근거리 사격에도 불구하고 뼈 갑옷에는 균열만이 생겼다. 그마저도 회복되며 탄환이 빠지는 게 보였다.
이경복은 호흡을 가다듬으며 거리를 벌렸다.
-봤음? 지금 반격까지 한 거?
-어떻게 되먹은 몸이누 ㅎㄷㄷ
-아깝다…… 역시 안 먹히네.
-오버로드가 넘 쎄다 ㅠ
시청자들은 경이로워하면서도 안타까움을 표출했다. 그러나 정작 이경복의 표정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의 시선은 오버로드 너머 벽면에 닿았다. 놈이 지속적으로 쏜 파편에 당장에라도 무너질 것 같은 상태.
그리고 그 벌어진 틈 너머는 존과 산드라가 처음 도착한 방과 유사한 구조였다.
그 사이 오버로드는 회복을 마치고 도약했다. 놈은 그대로 이경복을 깔아뭉개려는 듯 강하했다.
이경복은 신속히 바닥을 구르며 벽을 등졌다. 그리고 곧장 자세를 갖추며 산탄총을 격발했다.
-아 ㅋㅋ 안 통한다니까.
-학습능력 ㅇㄷ?
-능지처참하누 ㅋㅋㅋㅋ
분탕들은 그것을 최후의 발악이라 여겼다. 다른 시청자들이 무어라 했지만 그들로서는 오히려 더 흥이 날 따름이었다.
오버로드는 처음처럼 한 팔로 핵을 보호하며 이경복에게 돌진했다.
‘할 수 있어.’
이경복은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오버로드를 마주 본 채 달려갔다.
칼날로 변한 팔이 그의 몸을 양분하려는 듯 크게 휘둘러졌다.
그는 그때를 놓치지 않고 아래로 슬라이딩했다. 그러나 위기는 끝나지 않았다.
등에서 솟아난 갈고리가 그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거기까지 예상한바, 이경복은 산탄총을 들어 막았다.
-와씨 ㅋㅋㅋㅋ 피지컬 뭔데!
-게임하라니까 영화 찍고 있네 ㅋㅋㅋ
-저게 된다고?
시청자들이 놀라는 사이.
관성을 이기지 못하고 벽에 부딪친 오버로드는 벽과 함께 무너졌다.
이경복은 즉시 일어서서 천장을 향해 총구를 들었다.
“여러분, 여기가 어딘지 아시죠?”
그는 싱긋 웃으며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답은 기다리지 않았다.
애써 몰아넣은 놈을 빠져나가게 놔둘 수는 없었다. 격발과 동시에 쏟아져 나온 산탄이 천장에 있던 배관을 찢었다.
“동물 시체 폐기하는 곳이라는 거.”
제시카가 말한 것처럼 이곳은 실험에 사용된 동물을 처리하는 곳, 그러나 이상하게도 따로 설치된 처리장치가 없었다.
그 이유는 하나.
‘그냥 녹여서 버리는 거니까.’
이경복의 말과 동시에 배관에서 쏟아져 나온 투명한 용액이 오버로드를 덮쳤다.
용액에 닿은 오버로드의 몸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아 맞네!
-캬! 판단력 무쳤고!
-와 ㅋㅋㅋㅋ 이걸 이렇게 쓰네.
-그걸 다 안 놓치고 있었누 ㅋㅋ
-피지컬만 좋으면 됐지! 뇌지컬 무냐고!
시청자들의 감탄이 쏟아졌다.
그러나 이경복은 안심하지 않았다.
몸이 녹아내리고 있긴 하지만 오버로드의 재생력도 만만치 않았다. 산화와 재생이 반복되면서도 놈은 몸을 일으켰다.
“어허, 버릇없게.”
가만히 보고 있을 이경복이 아니었다. 그는 일어서는 오버로드의 무릎을 쏴서 넘어뜨렸다.
-엌ㅋㅋㅋㅋㅋㅋ버릇ㅋㅋㅋㅋ
-여기가 어디라고 고개를 드느냐!
-이 아우가 무릎을 꿇습니다!
-예의 교육(물리)
이경복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오버로드는 원거리 공격도 할 수 있는바, 곧바로 총구는 어깨로 향했다.
이어지는 격발과 함께 산성용액에 너덜너덜해진 어깨가 찢겨 나갔다.
이경복은 곧바로 탄피를 배출하고 탄환을 장전했다.
“이제 좀 높이가 맞네요.”
시청자들은 그게 무슨 소린가 싶었지만, 오버로드가 갈고리 기관으로 바닥을 짚으며 일어서자 이해할 수 있었다.
오버로드의 핵이 딱 좋은 높이에 보였기 때문이었다.
산성 용액에 뼈 갑옷도 숭숭 구멍이 뚫린 상황. 이경복은 가볍게 방아쇠를 당겼다.
파삭하는 소리와 함께 비산하는 뼛조각들, 그리고 그 안에 있던 핵이 찢어지며 검붉은 피를 토했다.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넘어간 오버로드. 찢겨 나간 핵에 산성용액이 스며들자 바람 빠진 풍선처럼 쭈그러들었다.
결국 더 이상 회복하지 못하고 녹아내리는 오버로드.
-또또또전듴ㅋㅋㅋ
-와…… 이건 진짜 역대급이네.
-매번 래전드 갱신 미쳤고 ㅋㅋ
-않이;;; 이정도면 퍼문철 TV아님?
-차문철이 왜 나오누 ㅋㅋㅋ
-속보) 조 바이슨 대통령, ‘퍼펙트’는 사실 한국말.
-퍼펙트 펀치! 퍼펙트 펀치! 퍼펙트 펀치!
시청자들은 열광하지 않을 수 없었다. 퍼플을 찾는 것처럼 그들이 찾는 이들은 또 있었다.
-못 깬다는 분탕들 ㅇㄷ?
-가오? 이게 가오로 보이냐?
-입 털던 분탕들 왜 말이 없누?
-쥐구멍에 들감
-분탕쉑들 ㄹㅇ 그 좀비쥐 같네
-좋다고 뭉칠 때는 언제고 바로 빤스런 했자너~
-탈착형 분탕ㅋㅋㅋㅋㅋ
이경복이 성공하자 귀신같이 사라진 분탕들. 남은 시청자들은 마음 편히 그들을 놀릴 수 있었다.
‘내가 굳이 언급할 필요는 없겠네.’
자신을 대신해서 화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런 부분은 최병훈이 알아서 잘 편집해 주겠지만 구태여 말을 더해 힘들게 만들 이유가 없었다.
이윽고 컷신이 진행됐다.
“리젠팜은…… 이런 걸 연구하고 있던 건가.”
존은 죽은 오버로드를 내려 봤다. 그런데 이상한 게 있었다.
-점마 왜 로켓런처 들고 있누?
-뭐임? 언제 얻음?
-어케 된 겨?
-몰?루
바로 존의 손에 로켓런처가 들려 있었기 때문.
이경복도 황당했다.
“어? 버근가?”
혹시 몰라 잠시 일시정지를 눌러 컷신을 멈추었다. 그냥 방송이라면 일단 진행하겠지만 개발사가 보고 있지 않나.
아니나 다를까 곧바로 해명 후원이 나타났다.
[‘CapCompany_kor’님이 ‘5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해당 컷신은 개발진의 실수입니다. 로켓런처 없이 구속구를 해제하는 경우는 상정하지 않아서 생긴 문제입니다. 해당 컷신은 차후 업데이트를 통해 바로 수정할 방침입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장문의 후원 메시지와 달라진 문체.
-ㄴㅇㄱ 상상도 못 한 클리어!
-개발진 화들짝!
-이건 찐이다 ㅋㅋㅋㅋ
-컷신에 박아 넣을 정도로 확정적인 거였는데 ㅋㅋㅋ
-로켓 런처 없었는데요?
-있었습니다.
-퍼플은 진짜 전설이네……
-개껌이 퍼플한테 숙제 준거 신의 한수임ㅋㅋㅋ
-ㄹㅇㅋㅋ 퍼플 아니었음 버그라고 난리 났을 듯
-근데 퍼플 말고 오버로드 잡을 수 있긴 함?
-씁! 눈치 챙겨!
-원래 직원은 시말서 쓰러 감? ㅋㅋㅋ
시청자들은 말 그대로 축제 분위기였다. 이경복은 옅은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아, 이것 참…… 권총으로 될 것 같아서 해 본 건데. 그냥 로켓런처 찾아볼 걸 그랬네요.”
-이걸 멕이네 ㅋㅋㅋㅋ
-또또 나왔네 저 살인미소.
-레알 사람 죽이누 ㅋㅋㅋㅋ
-시말서가 늘어나 버려엇!
-갓직히 이건 퍼플이 잘못했네 ㅋㅋㅋ
-아 ㅋㅋ 누가 권총으로 그걸 해내냐고!
-트수보다 당신이 더 나빠!
-트수쉑들 이런 식으로 물타기하쥬?
-지는ㅋㅋㅋㅋ
이경복의 말에 다시금 분위기가 바뀌었다. 마치 자신을 탓하는 것처럼 들렸지만 이조차 시청자들이 방송을 즐기는 방식이라는 건 잘 알고 있었다.
진짜 악질은 이미 보지 않았나.
“자, 그럼 맥 끊어지기 전에 다시 갈게요.”
이경복의 말에 시청자들은 ‘착석’을 외치며 다시금 컷신에 집중했다.
로켓런처를 든 존은 무너진 계단 입구 쪽을 돌아봤다. 이어 그가 로켓런처를 발사하자 입구를 막은 잔해가 부서졌다.
존은 곧바로 계단을 내려가며 소리쳤다.
“산드라! 제시카!? 괜찮습니까?!”
계단을 따라 웅웅거리는 그의 목소리. 그러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더 깊숙이 들어간 건가?”
안전한 곳에 도착해서 목소리가 닿지 않은 것일까. 존은 복잡한 표정으로 계단을 내려갔다.
이윽고 시야는 조감도처럼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본다. 나선형의 계단을 돌고 도는 존의 모습.
서서히 그 광경이 멀어져 가며 시야가 암전된다.
[Chapter 4. ‘Elixir’ End]
그와 함께 떠오른 챕터 종료 문구. 이윽고 바로 챕터 5의 예고 컷신이 재생됐다.
계단 끝에 도착한 존이 벌컥 문을 연다.
“산드라?”
실험실은 무척이나 넓었다.
벽 하나 없이 층 하나를 통째로 쓰는 듯한 느낌. 그 안에 각종 실험 기재들이 가득했다.
-와…… 이런 곳이 있었누 ㄷㄷ
-기존 루트에서는 지하로 아예 가질 않으니까.
-실험실…… 뭔가 불안하다.
시청자들도 꽤 인상이 깊었던 모양. 이윽고 존이 홱 고개를 돌린다.
“산드라?”
그러나 모습을 드러낸 건 제시카였다. 그녀는 약간 위축된 모습이었다가 존을 발견하고 달려왔다.
“존! 무사해서 다행이에요!”
“제시카? 산드라는…….”
“당신을 돕겠다고 올라갔는데, 못 만났나요?”
“저를? 하지만…….”
“길이 엇갈린 걸지도 몰라요. 이쪽 계단은 막혀 있었잖아요?”
제시카의 말에 존은 얼굴을 찌푸렸다. 그가 곧장 움직이려 하자 제시카가 그를 붙들었다.
“일단 백신이 우선이에요. 존.”
“아니, 산드라부터 찾아야겠습니다.”
존은 완강히 거절하며 돌아섰다.
-크…… 멋지누.
-이게 순애지.
-아주 쥬시해.
-일부다처 말하던 트수들 태세전환 보소 ㅋㅋㅋ
-쉿! 지금 분위기 파악 안 돼?
그때 제시카가 뒤에서 그를 와락 껴안았다.
“존, 당신은 달라요.”
“제시카?”
“이제, 놓치지 않을 거야.”
존이 더욱 얼굴을 구겼다. 그가 제시카의 손을 뿌리치며 돌아선 순간이었다.
웅하는 진동과 함께 실험실의 벽면이 열리기 시작했다. 이윽고 시야는 존의 얼굴을 클로즈업한다.
대체 무엇을 본 것일까.
존의 표정에 당혹스러움이 가득해졌다.
“이게 대체…….”
그 말과 함께 팍하며 예고가 끝났다.
-무슨 짓?
-여기서 끊어?
-지금 무쳤어? 무쳤냐고!?
-아 ㅋㅋㅋ 어질어질하다 그죠?
-산드라 짱 어디 갔어?
-설마……
-다음 편 갖고 와! 아니, 다 가져와!
-와…… 제시카 딱 봐도 악역 아니냐?
-허미…… 뒤통수 씨게 맞누.
-오늘 부로 시카단은 해체됩니다.
-시나리오 작가님? 문 좀 열어 보시라니까? 아니, 얘기만 좀 하자고!
기존 루트와는 완전히 다른 전개.
당연하게도 시청자들 반응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바로 고! 바로 고! 바로 고!
-산드라 짱 기다려! 구하러 갈게!
-형? 얼른 시작해야지?
-엔딩각 보인다! 가즈아!!!
시청자들은 플레이 속행을 원했지만 그 수는 적었다.
-트수야, 헛된 꿈을 꾸었구나……
-아 ㅋㅋㅋ 아직 안 썰려 본 퍼린이들 많누.
-칼방종 맛 좀 볼래?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하, 내일까지 어떻게 기다리누.
-흑흑… 그립읍니다…… (눈물콘)
줄곧 방송을 봐 왔던 시청자들은 이경복이 무슨 말을 해도 방송을 끝낸다는 걸 경험했기 때문이었다.
[‘CapCompany_kor’님이 ‘5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늦은 시간까지 방송 봐주신 시청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저희 캡 컴퍼니, 그리고 퍼플님의 방송 많이 사랑해주세요!]
게다가 이어지는 개발사의 후원.
시청자들은 결국 마음을 놓았다.
-아 ㅋㅋㅋ 시말서 쓰고 오셨나 보네.
-앞으로도 이런 숙제는 환영이야!
-호되게 당해서 각 잡고 올 듯 ㅋㅋㅋ
-‘피지컬’의 차이가 느껴지십니까?
-직원님도 고생하셨습니다!
그리 훈훈하게 마무리하는 사이였다.
‘음…… 이거 방종해야 되는 건가?’
정작 이경복은 평소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는 힐끗 시간과 시청자 숫자를 확인했다.
어느덧 밤 12시를 향해 달려가는 시간, 그리고 이 시간까지 함께해 준 시청자의 숫자는 약 2800명에 달한다.
‘루틴대로라면 잠을 잘 시간이긴 하지만…….’
방송시간 변경과 더불어 쳇바퀴 같았던 루틴에서 벗어난 그는 새로운 자극에 열려 있었다.
이경복은 가슴 속에 꿈틀거리는 감정을 느꼈다.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강렬한 욕구.
‘엔딩 보고 싶다.’
그 역시 게임의 끝을 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수단.
‘시청자들이랑 같이.’
이 즐거움을 공유하고 싶다.
그게 진짜 이유였다.
늦은 시간까지 자신과 함께해 준 사람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
모두가 행복한 마음으로 자신과 헤어지기를, 그리고 그 기분 그대로 다시 만나기를.
그것은 ‘이경복’이 아닌 스트리머, ‘퍼플’로서의 욕망이었다.
‘그게 더 재미있을 것 같아.’
이경복은 미소를 지었다.
-트바! 트바!
-큐바~
-근데 퍼플이 왜 말이 없지?
-HOXY……?
-희망고문 그마내!
-아 ㅋㅋㅋ 살인미소 나왔쥬?
시청자들은 인사가 늦어지자 혹시나 하는 기대를 내비쳤다.
이경복이 마음을 정한 것도 그즈음이었다.
[방송 제목이 변경되었습니다.]
[바크 히든루트 켠왕갑니다]
그와 함께 바뀐 방송 제목.
-헐?!
-켠왕! 켠왕 선언이다아아아!
-우리 퍼플이 달라졌어요!
-엌ㅋㅋㅋㅋ 기다리길 잘했쥬?
-미리 나간 트수들 통한의 1패
-ㄴㄴ 다른 방송 보려다가 방제 바뀐 거 보고 바로 들어옴
채팅창이 미친 듯이 올라왔다.
이경복은 그 반응을 보며 가슴 깊이 차오르는 만족감을 느꼈다.
“뇌피셜이긴 한데 다음 챕터가 아무래도 마지막인 것 같아서요. 질질 끄느니 깔끔하게 끝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이거지! 이게 퍼플이지!
-이게 ‘퍼펙트’다!
-감사…! 압도적 감사……!
-<관리 봇이 삭제한 메시지입니다 (경고 1회)>
-아니 ㅋㅋㅋ 욕 쓴 건 맞는데 좋아서 그런 거라구웃!
채팅창은 환호일색이었다.
그리고.
[‘주모오오오!’님이 ‘1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샤따 내려! 나 오늘 집에 안가!]
[‘후원열렸다!’님이 ‘3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아 ㅋㅋ 야근 수당은 챙기셔야지!]
[‘퍼플뜻알겠음’님이 ‘5,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퍼플=보라 ㅋㅋㅋ 방송 계속 보라는 거임 ㅋㅋ]
갑자기 개인 후원이 열렸다.
이경복은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상황을 추측할 수 있었다.
‘병훈이가 열었네.’
아직 정식 매니저가 없어 편집자인 최병훈이 매니저를 겸하고 있었다.
물론 빠른 큐튜브 업로드를 위해 영상편집에 힘쓰고 있지만 모니터링도 틈틈이 하는바.
‘편집자 짬이 어딜 안 가다니까.’
후원이 터질 기회라는 걸 알아차리고 방송 설정을 바꾼 게 분명했다.
물꼬가 터지자 둑이 무너지듯 후원이 밀려들었다. 이경복은 기뻐하며 감사를 표했다.
[‘CapCompany_kor’님이 ‘1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앗! 켠왕까지 해 주시다니! 저도 끝까지 라방 사수하겠습니다! 퍼플님 감사합니다! 충성충성^^7]
그 가운데에는 개발사의 후원도 끼어 있었다.
-엌ㅋㅋㅋㅋ 의문의 야근 추가
-ㅎㄷㄷ 편집자님에 이어 광고주도 부려먹누
-블랙기업 퍼플…… 실화냐?
-왜 웃는데 눈물이 나지?
-아 ㅋㅋㅋ 갈 테면 가 보시든지
-라방사수(강제)
이때다 싶어 개발사를 놀리는 시청자들. 이경복은 같이 웃으며 가볍게 손뼉을 쳤다.
“자, 템포 떨어지기 전에 정리할게요. 후원해 주신 분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착석! 곧 방송이 시작됩니다!
-연장방송에 야식 주문해 버렸자너~
-아, 왜 치킨 안 옴?
-아 ㅋㅋ 냉동만두 다 뒤졌다.
-치맥과 함께하는 퍼플 방송? 이게 야스지 ㅋㅋㅋ
-그냥 과식입니다 선생님.
-학생 눈치챙겨^^
-어허, 정숙! 정숙!
채팅창도 흥겨움이 넘쳐났다.
이경복은 그 분위기가 좋았다.
“그럼, 챕터 5 시작하겠습니다.”
그는 진심 어린 미소와 함께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