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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의 신들린 게임방송-21화 (21/491)

21화 - 뒤통수 크라이시스 (2)

자신들이 고생 끝에 본 엔딩이 실상은 꿈도 희망도 없다는 걸 깨달은 시청자들.

-내 플탐 200시간은 대체 무엇을 위해?

-어라…… 왜 나 눈물이?

-고인물 자처한 바붕이들 통한의 1패 ㅋㅋㅋㅋ

-어이, 진짜는 퍼플이 보여 줄 거라구웃?

-통수에 통수에 통수에 통수였던거임!

-이 정도면 뒤통수 크라이시스 아니냐?

-뒤킄ㅋㅋㅋㅋㅋㅋㅋㅋ

당연하게도 채팅창은 충격의 도가니였다.

“아…… 이러면 기존 루트를 한 번 해 보고 보는 게 좋았을 텐데.”

채팅창을 본 이경복은 아쉬움을 숨기지 않았다. 먼저 엔딩을 봤다면 그 역시 시청자들처럼 더 큰 충격을 맛볼 수 있지 않았겠나.

-역시 다회차 루트 맞다니깐!

-???: 1회차로 왔는데요?

-???: 내가 너무 잘해서 그만…… ㅎㅎ ㅋㅋ ㅈㅅ;;

-퍼플한테는 이게 기존루트라고 ㅋㅋ

-새삼 다른 세상인 게 실감나누 ㅋㅋㅋ

시청자들은 그 발언을 기만으로 받아들였다. 이경복은 약간 억울했지만 굳이 해명할 필요성은 느끼지 못했다.

영상이 끝나고 방을 조금 더 뒤져 봤지만 나오는 건 없었다.

“아무래도 이 영상이 전부인 것 같습니다. 그럼 마저 진행할게요.”

이경복은 작게 속삭이고 산드라를 따라 계단을 올랐다.

곧바로 이어지는 컷신.

옥상으로 나온 존과 산드라.

“존! 저기에요!”

산드라의 손을 따라가자 멀리 날아오는 군용헬기가 보였다.

-이번에는 리젠팜 아니제?

-군인쉑들 이제야 왔누

-이대로 탈출엔딩?

-근데 그럼 산드라 어캄? 백신은?

-리젠팜만 추출할 수 있다는 것도 릭트쇼일 수 있음.

-구라시카면 가능.

-엌ㅋㅋㅋ 구라시캌ㅋㅋ

시청자들이 저마다 엔딩을 추측하는 와중이었다. 이경복은 밑바닥에서 느껴지는 불길함을 느꼈다.

‘오버로드보다 더 섬찟한 걸 보면…… 진짜 최종보스겠네.’

그 생각과 동시에 아래에서 뭔가가 쏘아졌다. 쾅하는 굉음과 함께 군용헬기를 돌파한 투사체.

연기와 함께 빙글빙글 돌기 시작한 군용헬기는 다른 건물에 부딪쳐 폭발해 버리고 말았다.

-뭐, 뭐임?

-엉?

-갑자기 뭐여 ㅅㅂ

-라스트 보스인가?

“세상에……!”

“이게 무슨!?”

시청자는 물론 존과 산드라도 경악을 숨기지 않았다. 이어 피어오르는 흑색 연기 앞으로 검붉은 형체가 솟아올랐다.

그것은 가뿐하게 두 사람 앞에 착지했다. 정체를 확인한 두 사람의 동공이 크게 확장됐다.

“……제시카!?”

그건 피투성이 가운을 입은 제시카였다.

“대체 어떻게? 분명히 죽었는데……!?”

직접 총을 쏜 산드라가 믿기지 않는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제시카는 뒤틀린 미소를 지으며 입안에 우물거리던 걸 뱉었다.

바닥에 떨어지는 우그러진 탄환.

-어쩐지 너무 쉽게 끝난다 했다

-제시카도 엘릭서 먹었네.

-와씨 ㅋㅋㅋ 최종보스였누

시청자들은 곧바로 제시카의 정체를 눈치챌 수 있었다.

“아둔한 것들, 결국 어려운 길을 택하는구나.”

제시카는 사뭇 달라진 어투로 두 사람을 내려다봤다. 두 사람보다 키가 작았던 그녀였지만 몸이 변이를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옷이 찢어지며 그 내부가 드러났다. 잿빛으로 물드는 피부와 겉으로 튀어나온 골격, 그리고 등에서 돋아난 갈고리 기관.

그녀의 모습은 최종보스, 오버로드와 유사했다.

-오버로드 여성체냐고!

-아 ㅋㅋㅋ 전통 엎나 했더니 바로 나와 버리쥬?

-역시 바크 시리즈 최종보스는 오버로드다 이 말이야.

-ㅗㅜㅑㅗㅜㅑ 변이해도 베이글이누

-트수 취향 수듄;;;

-시카단 호재인가요?

-ㅈㄹㄴ

제시카는 붉게 변한 눈으로 두 사람을 노려보며 말했다.

“적합 인자는 직접 가져가겠다.”

“닥쳐, 이 미친년아!”

산드라의 일갈과 함께 컷신이 끝나며 통제권이 돌아왔다.

-엌ㅋㅋㅋㅋㅋ 바로 욕박쥬?

-속 시원하누 ㅋㅋㅋ

-77ㅓ억!

-산드라님… 트름이 멈추질 않아요……

이경복은 순간 당황했지만 시청자들은 기뻐했다. 그는 곧바로 사격을 개시하며 제시카의 주의를 끌었다.

“아무래도 산드라를 지키면서 처치해야 하나 봅니다.”

-ㅇㅇ 그런 듯

-퍼플이라면 할 수 이따!

-산드라와 해피엔딩 가즈아!

-않이;;; 인간적으로 너무 어렵자너

-퍼플적으로는 쉬울지도?

-퍼플적이 뭔데 ㅋㅋㅋㅋㅋ

여타 보스전과 달리 산드라와 격리되지 않았다. 물론 산드라 역시 사격으로 보조하고 있지만 큰 효용은 없을 터.

그만큼 난이도가 상승했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약점이 계속 움직이고 있어.’

이경복은 미간을 찌푸렸다.

이전에 처리한 오버로드와는 달리 제시카의 몸속에 있는 핵은 불규칙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신체 변형을 이용한 게 분명했다.

“뒤져!”

그 사이 산드라가 소리 지르며 제시카의 머리를 노렸다. 총성과 함께 머리에 구멍이 났지만 제시카는 잠시 덜컥였을 뿐,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산드라!”

이경복은 신속히 달려가는 제시카의 무릎을 겨냥했다. 순간 제시카가 비틀거리는 사이 산드라가 황급히 몸을 빼냈다.

-어우;;; 아슬아슬하네

-위험할 뻔했누 ㅎㄷㄷ

-이것도 로켓런처 있어야 하는 거 아님?

-핵을 꼭꼭 숨겨놨네;;

-로켓런처 있어도 빡신 난이도인데

시청자들은 고전하는 두 캐릭터를 보며 걱정을 표했다. 실제로 기존과 달리 이경복도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아직 답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핀포인트만 노려서 뚫어도 약점이 움직이면 소용이 없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대신 현 상황을 냉철하게 되짚어 보았다.

‘지금 가진 무기로는 저지가 최선이야. 더 강한 화력이 필요해.’

이경복은 제시카의 움직임을 묶으면서도 주변을 살폈다. 탁 트인 헬리포트였기에 별다른 구조물도 없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눈에 띄는 게 있었다.

[Jet Fuel]

붉은 색 드럼통에 붙은 라벨, 그리고 그 옆에 붙어있는 불꽃 모양의 인화성 경고 심볼.

헬리콥터에 사용되는 항공연료가 담긴 드럼통이었다.

‘저거다!’

이경복은 눈을 빛냈다.

하지만 비상용인지 개수는 고작 하나에 불과했다. 그마저도 내용물이 얼마나 될지는 알 수 없는 상황.

하지만 가능성이 있다면 확인해야 했다. 그는 산탄총으로 재차 제시카의 머리를 날린 후 바닥을 박찼다.

“산드라!”

“아……!”

산드라는 놀란 눈으로 그가 던진 물건을 받았다. 양손에 들린 묵직한 물건은 다름 아닌 황금 산탄총.

채팅창에는 물음표가 가득해졌다.

“잠깐만 버텨요!”

-이걸 산드라한테 떠넘긴다고?

-퍼플 인성 수듄;;;

-여기서 블랙기업 퍼플이?

산탄총을 주면 제시카의 주의가 산드라에게 쏠리지 않겠나.

마치 그녀를 미끼로 쓰는 듯한 행태. 당연하게도 시청자들은 그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저지력은 충분합니다. 제가 옆에서 보조할 거고요.”

이경복은 아랑곳하지 않고 미소를 내비쳤다. 하지만 시청자들은 안심하지 않았다.

-살인미소 나왔다 ㅎㄷㄷ

-필요하면 히로인도 써먹는다는 건가……

-이 무슨 비인간적인 공략법!

-퍼플씨 그렇게 안 봤는데 무서운 사람이네.

-난 퍼플 믿어! 퍼플이 다 해 줄거야!

-퍼렐루야! 퍼렐루야!

만약 다른 스트리머였다면 비난과 함께 시청자들이 탈주했을 터. 그나마 지금까지 보여 준 게 있었으니 시청자들도 그를 믿었다.

이윽고 그들은 이경복이 뭘 노리는지 알 수 있었다.

-오 ㅋㅋㅋ 저기에 연료통이?

-내 이랄 줄 알았다 ㅋㅋ

-시야가 너무 빨리 돌아가서 못 봤음 ㅋㅋㅋ

-퍼플은 봤는데?

-저걸로 시밤쾅!

시청자들은 기대를 숨기지 않았다.

그런데.

“어?”

이경복은 드럼통을 잡고 눈을 휘둥그레 떴다.

-어? 금지~

-개발실이냐고 ㅋㅋㅋㅋ

-아 ㅋㅋ 장난치지 말라고.

-이집 방송 잘하누 ㅋㅋ

-우리 퍼플이 마이 컸네. 으이? 연출도 다 하고.

채팅창과 달리 이경복의 표정은 더없이 진지했다.

그는 번쩍 드럼통을 들었다. 그것만으로 내용물이 얼마 없다는 사실이 전달됐다.

-연료담당 누구얏!

-비상용이면 꽉 채워 둬야지!

-리젠팜 쉑들 일 안하나!

-이제 어캄? 이제 어캄? 이제 어캄?

-제발 산드라 살려 주세요 ㅠㅠㅠ

-점심차려, 점심차려! 점심차려, 점심차려!

채팅창은 난리가 났다.

이경복의 눈이 빠르게 돌아갔다. 그는 곧바로 드럼통을 눕혀 안에 든 연료를 바닥에 흩뿌렸다.

그리고 빈 드럼통을 바깥으로 굴리며 아래를 확인했다.

‘탈주한 생체병기, 그리고 좀비가 된 용병들.’

까마득한 높이, 그 아래에는 지옥도가 펼쳐져 있었다.

‘되겠어.’

이경복은 신속히 나머지 작업을 마치고 일어섰다.

-지금 뭐한 거?

-아모른직다!

-도망치지 마! 맞서 싸워!

-왜 그러지? 휘청거리고 있지 않나. 왜 그러지? 휘청거리고 있지 않나.

-혼란하다 혼란해! 혼란하다 혼란해!

-퍼플식 공략법 간다!

시청자들 몇몇은 아직 희망을 품었지만, 대다수는 이미 패배를 예상했다.

그런 시청자들이 보란 듯 이경복은 권총을 잡았다. 이어 산드라를 압박해 가는 제시카의 뒤통수에 박힌 총탄.

“제시카!”

이경복의 외침에 제시카와 산드라 모두 순간 눈을 돌렸다. 옥상 가장자리에 선 이경복은 누가 봐도 위태로워 보였다.

“서두르지 않으면 적합 인자가 사라질 거다!”

“존, 아악!”

제시카는 몸을 돌리며 놀란 산드라를 갈고리로 후려쳤다. 그리고 무서운 속도로 이경복에게 돌진해 왔다.

‘조금만 더…….’

이경복은 타이밍을 가늠했다. 그리고 제시카가 바닥에 뿌려 둔 연료 위를 지나칠 때 방아쇠를 당겼다.

불똥이 튀자 급격이 치솟는 불길. 그러나 제시카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불길을 뚫고 그를 향해 손을 뻗었다.

이경복은 그대로 뒤로 떨어졌다.

-살자를 거꾸로 하면? 살자를 거꾸로 하면?

-빠른리? 빠른리? 빠른리? 빠른리?

-이거 되면 진짜 레전드 ㅋㅋㅋ

-꽉 잡아! 떨어진다!

-형? 게임이 장난이야? 형? 게임이 장난이야?

-와 ㅋㅋㅋ 이걸 노리네

채팅창은 그야말로 혼돈.

아주 일부의 시청자만이 이경복이 준비한 방법을 알고 감탄했다.

“잘 가시고.”

이경복은 더 추락하지 않았다.

그는 사전에 벽 틈에 박아 둔 컴뱃 나이프를 잡고 있었다. 그리고 그를 뒤따라 떨어진 제시카의 머리를 향해 총구를 겨누었다.

퍽하는 소리와 함께 머리가 터졌다.

‘머리가 박살나면 제시카는 잠시 행동을 멈춘다.’

멀쩡했다면 등의 갈고리 기관을 이용해 추락을 막을 수 있었겠지만, 그가 만든 찰나의 순간이 결과를 바꿨다.

관성을 이기지 못한 제시카는 그대로 추락했다. 이경복은 이내 컴뱃나이프가 부러지기 전에 벽을 박차며 난간을 붙잡았다.

시청자들은 그 믿기지 않는 상황을 이해하려 노력했다.

-헐? 뭐야? 어케 된 거임?

-저거 언제 박았음?

-아까 아래 내려다볼 때 박았음ㅋㅋㅋㅋ

-와 ㅋㅋㅋ 왜 불질렀나 했더니 시야 가린 거?

-그 짧은 시간에 다 계산했다고?

-리빙포인트) 로켓런처가 없으면 낙뎀을 쓰면 된다.

-릭트쇼는 사실 퍼플이 했구연

[‘CapCompany_kor’님이 ‘10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와…… 이건 순수하게 제가 감탄해서 드리는 겁니다. 솔직히 로켓런처 없이 클리어 할 수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레전드라는 말이 부족하네요.]

그리고 후원과 함께 채팅창은 열광의 도가니가 됐다.

-개발자피셜 레전드 실화? ㅋㅋㅋㅋ

-퍼플이 또 퍼플 했다!

-이게 사람…? 그럼 나는?

-속보) 특허청 긴급발표, ‘피지컬’ 표현은 퍼플만 사용할 수 있어.

-퍼플은 그냥ㅋㅋㅋㅋ 다 잘함ㅋ

-이 세상 플레이가 아니다! 이 세상 플레이가 아니다!

-속보) 조니 레전드, ‘조니 퍼플’로 개명 신청해.

그 사이 이경복은 가볍게 숨을 고르며 아래를 내려 보았다. 피떡이 된 제시카는 부들부들거리며 몸을 회복하려 했지만.

“본인 말대로네요. 좀비들은 적합 인자를 좋아한다더니.”

제시카는 불완전하더라도 적합 인자를 지닌 몸. 주변에 몰려든 생체병기 실험체들과 좀비들이 제시카를 갈가리 찢기 시작했다.

그 모습도 잠시 시야가 암전했다. 제시카가 사망으로 판정된 게 분명했다.

“아, 이제 엔딩인가 봅니다.”

바이오 크라이시스의 히든 루트, 그 마지막만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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