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화 - 방송은 돈이 된다 (1)
이른 아침, 동이 틀 시각.
많은 사람들이 기지개를 켤 때, 최병훈도 이에 동참했다.
하지만 그가 다른 점이 있다면.
“끄으으…… 끝났다.”
밤샘 작업에 굳은 몸을 풀기 위한 기지개였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바이오 크라이시스의 마지막, 챕터 5와 엔딩까지 편집한 영상의 업로드를 마쳤다.
짙은 피로가 몸을 눌렀지만 그는 침대로 향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커서를 채널의 ‘커뮤니티’ 항목으로 옮겼다.
[다음에 ‘퍼펙트’하게 할 게임은?]
[안녕하세요! 편집자 겸 채널관리자입니다.
퍼플이 다음에 했으면 하는 게임을 자유롭게 적어주세요!
여러분의 소중한 의견을 전달 드리겠습니다.]
[참여자 – 3,238명]
[결과보기▽]
그가 더 중요시 여기는 건 투표 결과보다 참여자 숫자였다. 새벽 시간대에 올린 투표인 걸 감안하면 참여율이 상당했다.
‘어제 방송 마지막이 대략 2300명, 최고가 2900명 정도였지…….’
방송이 늦게까지 이어지며 시청자가 이탈했으니 감소는 불가피했다.
‘그래도 예상보다 많은 사람들이 끝까지 자리를 지켰어.’
그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그려졌다. 커뮤니티 반응을 포함해 충성 시청자들이 증가했다는 증거가 아닌가.
‘2600명이라. 투표가 끝나면 어떤 게임을 했을 때 신규 유입이 클지 가늠이 되겠지.’
그가 투표를 올린 이유였다.
각 항목의 투표 결과에서 충성시청자 숫자를 제하면 대략적인 수치가 나올 터였다.
‘나머지는 녀석이랑 회의 때 이야기하기로 하고…….’
최병훈은 아직 자고 있을 친구에게 톡을 남긴 후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
“어우…… 죽겠네.”
그는 눈을 붙였다.
수마가 순식간에 그를 덮쳤다.
* * *
이른 오후.
이경복은 자주 가는 카페에서 최병훈과 마주하고 있었다.
“이런 건 또 언제 준비했어?”
“마, 이게 다 짬바라는 거지.”
그는 최병훈이 정리한 자료를 보고 있었다. 큐튜브에서 진행한 투표 결과를 일목요연하게 그래프와 수치로 만든 것이다.
“흠…… 근데 생각보다 참여자 수가 적네? 지금 우리 구독자가 16만이잖아?”
‘퍼펙트 플레이’ 채널의 구독자는 이전보다 3만이나 증가했다. 지난 영상에 다국어 자막을 추가하고 히든 루트의 스토리가 모두 올라온 덕이었다.
“대부분 외국인이라고 해도 만 명도 안 되나?”
그런데 투표에 참여한 사람의 숫자는 약 1만에 못 미쳤다. 한국어로 된 공지였으니 외국인이 참여하지 않았다 해도 좀 적지 않나.
“야, 그게 정상이지.”
“정상이라고?”
“생각해 봐라. 큐튜브 구독자가 원하는 건 ‘퍼플’이 아니라 ‘영상’이잖냐. 커뮤니티까지 확인하는 구독자는 적은 게 당연한 거야.”
“그건 그렇긴 하네.”
“그래, 인마. 난 오히려 생각보다 많아서 놀랬다.”
“이게 생각보다 많은 거라고?”
“당연하지. 백만 큐튜버도 투표 참여비율이 20% 이하야. 근데 우리는 한국 구독자가 4만 명이 채 안 되거든. 근데 비율이 25%에 육박한다고.”
친구의 말에 이경복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 그건 몰랐네. 그만큼 참여해 주실 정도로 좋아해 주시는 분이 많다는 거네.”
“그렇다니까. 근데 그렇다고 너무 좋아하지는 마라.”
“왜?”
“그 사람들이 모두 방송 보러 올 사람들은 아니니까.”
최병훈은 가볍게 스마트 링크를 조정해 홀로그램으로 그래프를 띄웠다.
[1위 – 데바엑 (2,126명)]
[2위 – 엘든 소울 (1,981명)]
[3위 – 거너 그라운드 (1,722명)]
[4위 – 폴링 피플 (1,311명)]
…
그 아래에는 순위별로 집계된 수치가 나왔다.
“보다시피 취향도 갈리지? 투표 상위권도 많아야 2천 명이야. 다음 게임으로 바꾸면 시청자 숫자는 떨어질 거라는 거지.”
“뭐, 그렇긴 하겠지. 다 바크 보러 오신 분들이었으니까.”
“그래. 게다가 이건 큐튜브 구독자 대상이라서 본방사수 인원도 아니에요. 생각보다 시청자가 팍 줄어들 거다.”
최병훈은 그리 말하며 슬쩍 이경복의 표정을 살폈다. 친구는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멘탈갑이라도 실망스럽긴 하겠지.’
최병훈은 그럼에도 현실을 짚어 주어야 할 이유가 있었다.
그는 반짝 뜬 스트리머의 흥망성쇠를 많이 지켜보았고, 그들이 어떻게 망가지는지 잘 알고 있었다.
‘처음보다 중요한 게 2번째 컨텐츠.’
첫 컨텐츠가 잘 풀리면 스트리머도 희망에 부풀어 의욕을 불태운다. 하지만 한 컨텐츠가 끝나면 이탈하는 시청자가 생기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스트리머는 그 사실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시청자가 줄어들면 마음이 조급해지지.’
자신이 뭔가 잘못한 건 아닐까 혹은 시간대가 문제일까. 스트리머는 다방면으로 그 이유를 찾으려 한다.
잘못된 판단은 잘못된 결과를 이끄는 법. 이에 스트리머는 자신의 장점을 잊고 다른 스트리머를 따라하거나 무리수를 던지게 되고, 잦은 방송 시간 변경을 하는 등 무너져 가기 시작한다.
‘그게 악순환의 시작이야.’
당연하게도 자리를 지켰던 시청자들도 그 모습에 이탈하고, 스트리머는 또다시 조급해져 잘못된 선택을 반복한다.
그리고 결국 쓸쓸하게 방송 업계에서 퇴장하는 것이다.
‘경복이 멘탈이라면 그럴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기대치를 낮춰 둘 필요는 있어.’
그런 스트리머는 대부분 초반에 떴기에 주변에 도와줄 사람이 없다. 그러나 이경복에게는 자신이 있었다.
최병훈은 친구이자 편집자로서 서포트하기 위해 데이터를 수집했던 것이다.
“으흠…… 그럼 어쩔 수 없네.”
그 사이 이경복이 고민을 끝내고 입을 열었다.
“그래, 그러니까 오늘 방송은 너무 기대말…….”
“이번 주말은 일단 휴방하자.”
최병훈이 말을 맺기도 전에 불쑥 튀어나온 휴방 선언.
“……뭐라고?”
그는 눈을 껌뻑이며 이경복을 바라보았다. 당연하게도 여유시간이 많은 주말 시간에 시청자가 가장 몰리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방송을 쉬자니?
“일단 다음에 무슨 게임할지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 구독자분들 투표는 감사하지만, 내가 끌리는 걸 찾아봐야겠어.”
이경복은 담담히 정리한 생각을 밝혔다.
“내가 하고 싶은 걸 해야 방송이 재미있을 테니까.”
스트리머가 즐거워야 시청자들도 즐겁다. 이경복은 그 원칙을 어길 생각이 없었다.
“노력해 줬는데 미안하지만, 사람들이 원하는 게임을 내가 하는 건 선후관계가 바뀐 것 같다.”
“아니, 뭐 미안할 건 없는데…….”
“그리고 너도 좀 쉬어야겠다.”
“엉?”
최병훈은 눈을 껌뻑였다. 갑자기 자기 얘기가 왜 나온단 말인가.
“솔직히 나는 영상편집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네가 요즘 너무 빡세게 일하는 것 같거든.”
이경복은 친구의 생활 패턴을 잘 알고 있었다. 방송을 시작한 뒤로 친구가 잠을 줄여 가며 일에 매진하고 있다는 것 역시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우리가 한탕하고 빠질 것도 아니잖아. 나 방송 오래하고 싶으니까, 컨디션 관리하면서 가자. 이거 누가 보면 진짜 내가 블랙기업 사장인줄 알겠네.”
이경복은 채팅창을 떠올리며 실소를 흘렸다.
그 말에 최병훈은 마치 머리를 얻어맞은 듯한 기분이었다.
‘조급했던 건 나였구나.’
이경복이 만들어준 흐름, 그것을 놓치면 안 된다고 생각해 왔다. 그 때문에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면서 영상을 뽑았고 방송이 끝난 후에도 작업에 매진했다.
어디 그뿐인가?
쉬는 시간이랍시고 커뮤니티 반응을 확인하고 최근 일주일은 식사도 대충 때우고 잠도 줄였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
일종의 강박과도 같은 사고였다.
자신이 친구를 이 업계로 끌어들였으니 성과를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보이는 성과에 도취되어 더욱 그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그럴 필요가 없었다.
‘이 자식이라면 언제든 이런 흐름을 끌어올 텐데.’
이경복은 궤를 달리하는 천재였다. 물을 들여오는 게 아니라, 물을 끌어들이는 인재였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자 마음이 무척이나 편안해졌다. 자신을 걱정해준 친구의 마음에 절로 미소가 피어났다.
“마, 내 짬이 얼만데 그 정도 관리를 못 할까?”
“그래? 그럼 원래 얼굴이 그 모양이었나?”
“어허, 나 제대로 관리하면 편집자 못하는데? 확 남캠해 버린다?”
“지랄 함량이 높은 발언인데?”
이경복이 장난스럽게 말하자 최병훈도 장난스럽게 받았다. 그리 가볍게 떠들던 최병훈은 이내 다시 진지한 얼굴로 돌아왔다.
“야, 그럼 휴방 얘기 나와서 말인데 하나 좀 상의할 게 있다.”
“뭔데?”
“너 저번에 채팅창에서 분탕들 봤지?”
“분탕? 아…….”
이경복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오버로드와의 보스전에서 그가 로켓런처 없이 싸우겠다고 선언한 후, 오버로드가 페이즈 2에 돌입했을 때였다.
다른 시청자들이 로켓런처를 찾는 걸 권했을 때, 그의 발언을 걸고 넘어지며 신경을 자극했던 채팅들.
“뭐 직접 봐서 알겠지만, 그 새끼들은 관리 봇에 안 걸리려고 별 지랄을 다 하거든.”
최병훈도 당시의 불쾌감이 떠올랐는지 약간 거친 말이 섞여 나왔다.
“확실히 관리 봇으로는 필터가 안 되긴 했지.”
“그래. 네가 실력으로 압살해서 다행이긴 한데, 그런 분탕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른 트수들 기분도 잡치게 만들거든.”
“그렇긴 하지. 괜히 게임에 집중도 못 하게 하고.”
“맞아. 이게 바크 할 때는 네 실력이 이미 검증돼서 문제가 커지진 않았단 말이지. 트수들도 네가 잘할 거란 걸 아니까.”
“으흠…… 다음 게임 할 때는 그런 분탕들이 더 날뛸 거다?”
“그렇지. 왜냐? 새 게임이니까 트수들도 편을 들 근거가 없어요.”
“그럼 보여 주면 되는 거 아닌가?”
“맞지, 맞는데. 새로 유입되는 시청자들 중에 분탕이 없을 리가 없어요. 그 관종들이 노리는 먹잇감이 뜨기 시작하는 스트리머거든.”
최병훈은 편집자로서 분탕의 습성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이 분쟁을 일으키는 건 결국 스트리머와 다른 시청자들의 관심을 받고자 하는 것.
“이미 팬층 두텁고 자리 잡은 스트리머는 꿈쩍도 안 해. 오히려 역풍이나 맞지. 그렇다고 하꼬들 건드리자니 반응도 밋밋하고 주목도 못 받아요.”
“나처럼 적당히 시청자는 있는데 팬층은 얕은 방송이 놀기 좋다 이거지?”
“그거지. 그러니까 하는 말인데.”
최병훈이 진지한 얼굴로 몸을 앞으로 숙였다.
“전에도 얘기했지만 우리도 이제 매니저가 필요한 시점이야.”
“매니저…….”
매니저의 필요성.
이미 한 번 이야기 했던 주제기도 했다.
최병훈은 스마트 링크를 조작해 홀로그램으로 메일을 띄웠다.
“뭐야 이거?”
“아침에 보니까 MCN에서 메일이 왔더라.”
“MCN에서?”
“물론 큰 곳은 아니야. 찾아보니까 신생이더라고.”
이경복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내저었다.
“음…… 근데 벌써 어디에 얽매이고 싶지는 않은데.”
MCN에 소속되면 매니저가 배정될 터였다. 그 외에도 광고나 협찬 계약 중개, 큐튜브 채널 관리, 팬과 크리에이터 연결, 외부행사 준비 등의 역할을 해 줄 터.
그러나 아직 이경복에게는 그런 도움이 필요치 않았다.
“다행이네, 나도 동감이다.”
“뭐야, 근데 왜 보여 줘?”
“……그럼 이걸 내 선에서 컷하리?”
“아, 맞네.”
“그리고 너 정도면 더 큰 MCN에서 컨택 올 게 뻔한데 이런 신생이랑 계약할 이유가 없지.”
결국 방송 규모가 커지면 MCN과의 계약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최병훈은 지금 이경복이 저평가되어 있는 상황이라 확신했다.
그의 진가를 알게 되면 대형 MCN이 먼저 접근해 올 게 분명했다.
“무튼, 다시 매니저 얘기로 돌아와서.”
“그 계약은 컷한다며? 따로 구하자고?”
“어.”
“……누구 생각해 둔 사람이 있는 것 같다?”
최병훈의 즉답에 이경복이 물었다.
“주호.”
“……박주호?”
“그 자식이라면 믿을 수 있잖냐.”
박주호.
최병훈과 마찬가지로 이경복의 10년 지기였다. 다만 두 사람과 달리 공부에 소질이 있는 친구였다.
“음…… 걔가 잘 다니던 직장 때려치우고 오겠어?”
“올걸? 금마 머리 굴리는 거 하나는 예술이잖냐.”
“온다고?”
“그래. 자세히는 몰라도 지금 월급보다는 많이 벌걸? 게다가 업무 시간도 자유롭지, 스트레스도 적을 거고.”
“더 번다니?”
“……너 지금까지 우리가 번 수익 확인 안 해 봤냐?”
“아.”
최병훈의 물음에 그제야 이경복은 돈 생각을 떠올렸다. 방송의 재미에 푹 빠져 지금까지 확인해 보지도 않았었다.
“얼마나 되는데?”
“나 참…… 직접 봐라.”
최병훈은 헛웃음을 흘리며 스마트 링크로 수익 현황을 공유해 주었다.
이어 이경복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일주일 만에 이 정도라고?”
생각보다 금액이 상당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