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의 신들린 게임방송-30화 (30/491)

30화 - 솔플도 가능 (1)

스트리머에게 시청자 숫자는 입지를 나타내는 척도였다. 그중에서도 자릿수의 변화는 직관적인 지표가 아닌가.

이경복은 앞자리 숫자가 바뀌었다는 사실에 만족감을 느꼈고, 더욱 열의를 불태웠다.

“자, 이제 대망의 3번째 게임. 퀘스트 성공이 눈앞이네요!”

그의 열의가 전해진 걸까.

채팅창도 더욱 활기를 띄었다.

-옼ㅋㅋ 텐션 좋고좋고!

-퀘스트?

-엌ㅋㅋㅋ 큐요원 퀘스트있었네.

-야미 3연승? 여전히 양심 없누 ㅋㅋㅋ

-퍼플방에서는 큐다리임 ㅋㅋ

-와 근데 벌써 야미로 2연승인 거임?

-큐다리 쉑 지금 벌벌 떨고 있쥬?

-아 ㅋㅋ 아무도 퍼플을 막을 수 없으셈.

그 사이 게임이 잡혔다.

로비에 들어서자마자 너나할 거 없이 챔피언을 선택했다.

-왐마 픽 속도 보소 ㅎㄷㄷ

-플래에서 MMR 또 올랐으니까 아마 준 다이아 급일 듯?

-아 그르겠네

-와씨 ㅋㅋㅋ 이런 MMR에서 야미가 나온다고?

-ㅁㅊㄷㅁㅊㅇ

쉽게 볼 수 없는 광경에 시청자들은 기대를 숨기지 않았다. 이경복은 그 기대를 충족해 줄 생각이었다.

[>뭐임?]

[>아씹……]

[>아나 진짜]

[>이 레이팅에 트롤이라고?]

팀원들의 반응 역시 예상한 바였다. 이전 판에 겪어 봤던 일이 아닌가.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처음과 달리 플래티넘 랭크 유저들과 게임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나.

그걸 확인하면 팀원들의 거부감도 줄어들 거라 생각했다.

“트롤 아니에요. 제 전적…….”

하지만 이경복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그렇게 살면 재밌냐?]

[>진짜 징하다 징해.]

[>인생 패배자가 다 그렇지 뭐.]

[>남들 발목 잡으면서 쪼개는 꼴 보면 뻔하지.]

채팅창은 모욕적인 언사로 채워졌다.

-뭐임?

-이거 미친놈들 아냐

-사실 이런 반응이 맞긴 함 ㅋㅋ

-ㄹㅇㅋㅋ 당연히 트롤러라고 생각하지.

-실력과 인성은 비례하지 않는다……

-하나도 아니고 넷 다 쓰레기누 ㄷㄷ

-지로보 센세? 말이 틀리잖아요? 하나라며?

-갓직히 배치에 야미 픽하면 빡치는 게 맞긴하다.

시청자들은 즉각 반응했다.

일부 시청자들은 그들의 처지를 이해하는 듯했다.

때문에 이경복 역시 기분이 나빴지만 시청자들의 채팅에 오히려 중재에 나섰다.

“전 괜찮습니다. 아시잖아요? 실력으로 증명하면 되죠. 역시 고랭크 올라오니까 신경이 날카롭네요.”

MMR이 높아지면 당연히 게임에 사활을 거는 사람들을 만날 확률이 높아진다. 더욱이 그 배치 평가라면 예민함의 수준이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갈 터였다.

여기서 승리하면 수많은 시간을 녹여내야 달성할 수 있는 다이아 랭크에 더 가까워지지 않나.

-인성 뭔데!

-이런 인간들도 버스를 태워 주려는 거신가……

-참트루 버스기사 퍼플좌ㅠㅠ

-나였으면 빡쳐서 닷지 했을 텐데

-퍼펙트 야미 보고 깜놀하는 거 보고 싶누 ㅋㅋㅋㅋ

당사자인 이경복이 그렇게 말하니 시청자들도 화를 자제했다.

하지만 팀원들은 그 잠깐의 틈도 기다리지 않았다.

[>그냥 무시하죠.]

[>괜히 욕해 봤자 먹이만 주는 꼴임.]

[>그러네요. 배치고사에서 야미 박을 정도면 진성인데.]

[>진짜 보통 관종이 아니네.]

이미 경험이 풍부한 이들이기 때문에 트롤러를 어떻게 대하는지 잘 알고 있는 이들이기 때문이었다.

[>일단 차단 박는다.]

[>진짜 한심하다 한심해……]

[>끝나고 리폿하죠.]

[>우리끼리 잘 해 봅시다.]

그것이 그들의 마지막 채팅이었다. 이경복은 설마하니 설명 한 마디 할 틈이 없을 줄은 예상치 못했다.

-칼차단 보소 ㅎㄷㄷ

-사실 평범한 경우는 이게 정상이긴 해.

-사람 말 다 무시하는 게 정상?

-으윽, 이게 미스틱 평균?

-미스틱에 인생 갈아 넣어서 그런 거임 ㅋㅋㅋㅋ

-이것들도 퍼펙트 야미 보면 바로 도게자 할 거임 ㅋㅋㅋ

채팅창을 확인한 이경복은 살짝 눈가를 찌푸렸다.

“이것 참…… 다음 판에는 전적 공개부터 하고 픽하도록 하겠습니다.”

직접 보여 주면 믿을 것이다. 이전 판도 그렇지 않았나.

그 사이 카운트가 끝나고 게임이 시작됐다. 주변 배경이 뒤바뀌며 본진에 도착한 플레이어들.

같이 도착한 팀원들은 그를 향해 조롱과 경멸 어린 시선을 보내고는 각자의 라인으로 흩어졌다.

-아따 눈깔 살벌하누.

-야! 눈 좀 이쁘게 뜨고 다녀!

-서로 처음 보는데 원수 보는 줄 ㅋㅋㅋㅋ

-아 ㅋㅋ 메모장 켰다.

-새 텍스트 문서.txt(7GB)

-대체 뭘 얼마나 쓴 거여 ㅋㅋㅋ

그럼에도 채팅창의 분위기는 밝았다. 시청자들은 이경복의 실력을 알고 있었고, 그것이 증명될 거라 의심치 않았다.

“그럼 가 볼게요.”

이경복도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상황은 그리 순탄케 흘러가지는 않았다.

-아니, 저기서 왜 빼누?

-지금이 딱 갱 타이밍이었는데?

-뭐임? 얘네들 플래 맞음?

-MMR이 어케 된 거냐구!

이경복도 시청자도 처음에는 우연이라 생각했다. 생각보다 팀원들의 판단이 미숙한 것이라고, 그래서 야미가 끼어들 틈이 쉽게 나오지 않았던 것이라고.

‘……아니, 이건 일부러 그러는 거다.’

먼저 사실을 깨달은 건 이경복 쪽이었다. 정확히는 그의 육감이 발현됐다.

날카롭고 섬뜩한 위협 사이로 질척하고 끈적거리는 불쾌한 감각이 전달됐다.

그 감각은 적이 아닌 아군 챔피언으로부터 흘러 나왔다.

-이쉑들 지금 일부러 그러는 거 같은데?

-ㅇㅇ 퍼플이 갱 오면 일부러 압박해서 타워로 보내버림

-와씨 ㅋㅋㅋ 겁나 치졸하누,

-지금 킬뎃 안 넘겨 주려고 ㅈㄹ하는거네 ㅋㅋㅋㅋㅋ

-이건 골딱인 내가 봐도 의도가 뻔히 보임 ㅋㅋㅋㅋ

시청자들 역시 그들의 의도를 금방 눈치챘다. MMR은 승패로만 결정되지 않기에 팀원들이 작당해서 이경복을 따돌리는 것이 분명했다.

그 뒤로도 다른 라인에서 갱킹을 시도했지만 아군의 협조는 없었다.

“허, 이거 솔로 다이브 하면 오히려 방해받을 각이네요.”

이경복은 불쾌함을 숨기지 않았다. 저들에게서 느껴지는 육감은 줄어들지 않고 갈수록 강해졌으니 그러고도 남을 상황이었다.

-이쉑들 지금 퍼플 MMR 떨구려고 ㅈㄹ하는 듯

-ㅅㅂ 게임 이기는 게 중요한 거 아님?

-아예 활약할 틈을 안주려고 저 ㅈㄹ이네.

-개답답하누.

시청자들의 반응에 그는 가볍게 숨을 내뱉고는 고개를 내저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냥 모욕을 받은 거라면 화를 내거나 분풀이를 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이경복은 방송 중이었고, 수많은 사람이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이에 그가 먼저 내린 결론은 하나였다.

“하지만 여기서 관두면 제가 닉값을 못 하죠.”

시청자들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는 것.

-???

-어쩌려고?

-뭐지? 무엇을 암시하는 것이지?

-이걸 탈주 안함?

이경복은 ‘탈주’라는 키워드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에이, 탈주라니. 제가 어떻게 등을 보일 수가 있습니까. 그건 전혀 ‘퍼펙트’하지 않은데.”

그 발언에 시청자들은 두 패로 나누어졌다.

-않이;; 이건 진짜 그냥 탈주해도 아무도 뭐라 안함.

-맞말추.

-이건 저쉑들이 리폿해도 오히려 역으로 처벌받아야 됨.

-퍼플 실력이면 3연승 다시 금방이지.

-틀린 말이 하나도 없누.

먼저 아직 그를 완전히 믿지 못하는 신규 유입 시청자들. 그들이 본 건 이경복이 팀원들을 이끌고 승리를 쟁취한 모습뿐이었다.

때문에 팀의 지지를 못 받는 이상, 그들은 이경복이 이번 게임은 관둘 거라 예상하고 있었다.

-아 ㅋㅋㅋ 퍼자감 나와부렸쥬?

-퍼플이면 아무튼 함 ㅋㅋㅋ

-끝났다 끝났어.

-편-안

-불신자들 갓리둥절하누 ㅋㅋㅋ

반면 이미 그의 업적을 아는 기존 시청자들은 달랐다. 그들은 ‘퍼플’ 그 자체가 남다르다는 걸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저 혼자서도 이길 방법이 있습니다.”

이경복은 자신 있게 말했다.

그 말에 채팅창이 다시금 물음표로 채워졌다.

-혼자? 혼자라니?

-시간 낭비, 체력 낭비임. 걍 탈주 ㄱㄱ

-실력 보여 줘도 저딴 인성이면 인정 안함.

-이거 맏따.

-퍼플 활약 못 하믄 4대5라서 그냥 질 건디;;

아쉽게도 말만으로는 신규 시청자들의 걱정을 무마하긴 어려웠다. 이에 기존 시청자들은 그저 웃을 따름이었지만.

그 가운데 뭔가 이상한 채팅도 섞여 있었다.

-자신 있으면 페널티 한 번 걸지

-ㄹㅇㅋㅋ 말만 하면 다 되냐고

-여기서 탈주하면 퀘스트 실패 ㅇㅈ?

-빡대가리 선언 가나요?

언뜻 기존 시청자들과 뜻을 같이하는 것 같아 보였지만 미묘하게 다른 뉘앙스.

숨어 있던 분탕들이 고개를 든 것이다.

-이건 또 미친 소리야.

-<매니저가 해당 시청자를 퇴장시켰습니다.>

-신경 ㄴㄴ

-먹이 주면 더 좋아함.

-<매니저가 해당 시청자를 퇴장시켰습니다.>

-매니저님 칼춤 추신다!

-분탕쉑들 꼴 좋누 ㅋㅋㅋㅋ

하지만 그들의 채팅은 이내 매니저의 철퇴를 맞았다.

“협력 안 해도 이길 방법이 있습니다. 이번에는 제가 템 세팅을 좀 맞출까 해서요.”

-템?

-아!

-생각해 보니 지금까지 퍼플이 노템으로만 했네 ㅋㅋㅋㅋ

-와 ㅋㅋㅋㅋ 맞네.

-풀템 야미를 하겠다는 거?

-미쳤다 ㅋㅋㅋ

시청자들은 그 말에 새삼 이경복이 아이템을 맞추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부터는 파밍 가겠습니다. 크립들 씨를 말려 보죠.”

이경복은 마지막 채팅을 읽으며 다시 미소를 지었다.

-살인미소 떴다.

-이건 진짜임…… ㅎㄷㄷ

-다 죽여버리겠다는 의지……!

-이 스트리머, ‘진심’이다.

-살의의 파동에 눈을 뜬 퍼플!

-아 ㅋㅋㅋ 이건 못 참지

시청자들 역시 화면 너머로 그를 따라 미소를 지었다.

* * *

한편, 지놈은 예정된 광고 방송에 한창이었다.

“아잇! 얘네들 멘탈이 왜 이렇게 약해!?”

그는 버럭 소리를 내지르며 얼굴을 쓸어내렸다.

-지놈도 못 버티는 운빨겜ㅋㅋㅋ

-혼자 피지컬 좋으면 무하냐구웃!

-어서와, 다키스트 루인은 처음이지?

-적 : 아! 싱귤러 스트라잌!

-피격감 오졌쥬? 고티쥬?

-혀엉? 이거 숙제야! 숙제!

-야! 우냐?

시청자들은 그가 괴로워 하는 모습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후우, 얘들아. 나 잠깐 화장실 좀 갔다 올게.”

지놈은 씩씩거리면서 그렇게 말하고 캡슐에서 나왔다. 그러나 그가 급하게 찾은 건 화장실이 아니었다.

“어떻게 됐어?”

그는 곧바로 매니저에게 물었다. 생략된 물음이었지만 매니저는 그가 원하는 답을 알고 있었다.

“퍼플님이 친추 받았습니다.”

“그래? 와, 다행이다.”

지놈은 안도와 함께 가슴을 쓸어내렸다. 광고 방송 내내 계속 신경 쓰이던 문제가 드디어 해결된 것이다.

“형, 그렇게 신경 쓰여요?”

“야, 당연하지. 너 모니터링 안 했어? 그렇게 잘하는 사람 진짜 몇 없, 아니 없어. 그냥 없어.”

지놈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그는 진심으로 스트리머 퍼플의 실력에 경탄했다.

“솔직히 당장 프로에서 뛰어도 좋을 실력이야. 이런 실력이면 진짜 금방 뜬다.”

“뜨긴 떴던데요?”

“뭐?”

“찾아보니까 바크 쪽에서 유명하신 분이에요. 그쪽 커뮤에서는 바통령이라고 부를 정도로.”

“아, 그래?”

“네.”

“오, 그럼 합방 제의도 편하겠는데?”

지놈은 미소와 함께 눈을 빛냈다. 스트리머 간의 합방도 어느 정도 체급이 맞아야 한다.

그가 사람을 가리는 게 아니라 시청자들의 인식 때문이었다. 체급 차이가 너무 크면 비교적 소규모인 스트리머가 대규모 스트리머에게 빌붙는 모양새처럼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자칫 업계 은어로 소위 ‘빨대’를 꽂는 형국이 될 수 있었다.

“뭐, 어떤 사람인지는 몰라도 조금씩 알아보면 되겠지.”

지놈은 퍼플이 그런 취급을 받을 걱정이 없다는 사실이 기뻤다.

이제 남은 건 실제 스트리머의 인성뿐. 그러나 만약 문제가 됐다면 매니저가 먼저 말을 꺼냈을 터였다.

“형, 근데 합방은 좀 신중히 생각해야 할 것 같은데…….”

“응? 왜? 뭐 이슈 있는 분이야?”

때문에 매니저의 표정이 이상해지자 지놈의 얼굴도 덩달아 심각해졌다.

“아니, 형이 보라고 해서 퍼플님 방송 보는데 아무래도 합방하면…….”

매니저는 슬쩍 지놈의 눈치를 살폈다. 지놈은 코를 찡그리며 그를 다그쳤다.

“아, 뭔데. 그냥 편히 말해. 트수들이 나 변비인줄 알겠다.”

“……형이 메인이 아니라 사이드가 될 것 같아.”

“뭐?”

매니저는 설명 대신 스마트 링크로 홀로그램 스크린을 띄웠다.

스크린에는 퍼플의 방송이 중계되고 있었다.

이윽고 스크린을 바라보던 지놈의 눈이 크게 확장됐다.

“아니…… 이게 가능해?”

* * *

이경복의 팀은 고전을 면치 못했다. 이 게임의 속한 플레이어들은 모두가 준 다이아 랭크에 걸맞은 실력을 보유한 이들.

그 와중에 그들은 ‘야미’를 제외시켰으니 이미 시작부터 밸런스가 무너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라인은 물론이고 한타가 벌어질 때마다 4대 5로 싸워야 했고, 매번 밀리게 되자 골드 수급도 마땅치 않았다.

결국 아이템 세팅에서도 차이가 벌어지며 그 간극은 점점 심하게 벌어졌다.

이런 상황에 그들은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고 있었을까?

아니, 그렇지 않았다.

“아, 미친 트롤 새끼 하나 때문에.”

“픽할 때 추방하는 기능 같은 게 있어야 한다니까요.”

“아…… 진짜 이거 이기면 다이아인데.”

“그 새끼 하나 때문에 조졌네.”

그들은 소위 ‘정치질’이라는 행위에 돌입했다. 패배의 원인을 냉철히 분석하는 게 아니라 남 탓으로 돌려서 알량한 자존심을 지키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뜻이 모였는지 그들은 서로 보이스까지 켜고 험담을 했다. 그 험담의 대상은 너무나도 명확했다.

“그러니까요. 일반 랭겜도 아니고 배치고사에 야미가 뭐야.”

“하…… 진짜 미친 새끼 하나 때문에 다들 고생입니다.”

“지금 하는 것도 봐요. 크립만 겁나 잡으면서 파밍만 하잖아요?”

“저래 놓고 정글러라고 할 생각인가. 미친 또라이 새끼.”

문제는 그들이 아무런 근거 없이 험담을 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실제로 이경복은 정글러의 본분인 갱킹을 단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다.

물론 그들은 자신들이 이경복의 채팅을 차단했다는 사실과 일부러 협조하지 않았다는 점은 가뿐히 무시했다.

“뭐, 왕귀라도 하겠다는 건가?”

“왕귀챔 골랐으면 이해라도 하지. 무슨 야미로 왕귀에요?”

“그냥 작정하고 트롤하려고 온 게 분명하죠.”

“이쪽은 장례식인데 저쪽은 아주 축제겠네요.”

‘왕의 귀환’의 준말, ‘왕귀’,

몸을 사리면서 끈기 있게 골드를 수급해 아이템을 맞추고 후반에 활약하는 플레이를 일컫는 말이었다.

실제로 아이템 세팅을 통해 몰라보게 달라지는 챔피언도 많다. 그러나 그 전까지 다른 팀원들이 뒷받침을 해 주어야 한다는 조건이 따라 붙는다.

그런데 지금 상황에서 야미는 둘 다 아니었다.

팀의 지지는 말할 것도 없고 트롤 챔피언인 야미는 운 좋으면 갱킹이나 한두 번 성공할 정도지, 게임의 흐름을 뒤바꿀 수 있는 챔피언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아쉽지만 이번 판은 가망이 없네요.”

“하…… 다시 생각해도 빡치네.”

“동감입니다. 킬뎃관리나 잘 하죠.”

“본진 타워 끼고 최대한 한타에서 킬이나 올립시다. 트롤 리폿은 끝나고 하고.”

수비에 전념하면서 MMR의 하락을 막겠다는 결론. 그들은 ‘정치질’을 수월히 마치고 합의를 보았다.

“옵니다!”

이윽고 미니언이 나오는 타이밍에 맞추어 적 챔피언들이 몰려왔다. 적 팀은 이번에 게임을 끝내려는 듯 하나도 빠짐없이 몰려왔다.

다시 시작되는 4대5의 한타. 그들은 약속한 대로 타워를 보호하며 상대를 견제했다.

그렇게 모든 신경이 쏠린 와중이었다.

<템플의 타워가 파괴되었습니다!>

귓가를 울리는 시스템 음성에 모두가 눈을 돌렸다. 결국 이대로 끝인가 싶었는데.

“어! 우리 거 아닙니다!”

그들의 타워는 굳건히 서 있었다.

일순간 멍했던 그들은 이내 미니맵에서 점멸하는 붉은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적 본진이라고?’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야?’

미니맵에 표기된 위치는 바로 적 본진이었다. 그러나 지금 모두가 수비를 위해 모여 있지 않나.

그렇다면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건 하나뿐이었다. 하지만 그 사실을 그들은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오히려 그 사실을 더 빠르게 받아들인 쪽은.

“뭐야?!”

“어떻게 된 거야!?”

직접 피해를 입은 당사자들인 적 팀이었다.

<템플의 타워가 파괴되었습니다!>

이어 또다시 들려오는 시스템 음성에 적들의 표정은 더욱 일그러졌다.

덕분에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미친……!”

“야미로 백도어라고!?”

이경복의 노림수가 바로 빈집털이, ‘백도어’라는 사실이었다.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