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의 신들린 게임방송-35화 (35/491)

35화 - 장인해부학 (2)

지놈은 잠시 머리가 멍해졌다.

긴 방송 경력도 이번에는 잠시 고장이 난 것처럼 작동하지 않았다.

‘뭐지? 드립인가? 아니면 진심인가?’

드립이라 생각하기엔 이경복의 표정에 장난기가 없었고, 진짜라고 받아들이기에는 쉽지 않은 말이 아닌가.

‘근데 진짜면 사전 미팅 때 이야기 했을 것 같은데?’

그러나 이내 지놈은 그 생각이 틀렸음을 깨달았다.

사전 미팅 때는 방송 흐름에 대한 개략적인 설명, 그리고 인터뷰 질문 중 프라이버시와 관련된 금지 사항 정도만 정해 두지 않았나.

한편 시청자들 역시 그와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세계 1위라고?

-않이 ㅋㅋㅋ 이건 좀 무리수 아니냐고

-합방은 처음이라 긴장한 듯?

-일단 세계 순위가 있긴 함?

-ㅇㅇ 검색하니까 사이트 나온다.

-1st. Lee*** - ‘00:42:18’

-퍼플 성씨가 이 씨임?

정적을 지운 건 이경복이었다.

“아, 네. 그거 맞습니다. 저 이 씨에요.”

그 대답에 지놈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40초대라고요!?”

“네, 채팅 보니까 생각나네요. 아, 맞아. 제 스마트 링크에 스샷 찍어둔 것도 있어요.”

이경복은 태연하게 스마트 링크를 활성화했다. 가상현실이었지만 미리 동기화를 해 둔 덕에 당시 찍어 둔 사진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최병훈에게 보여 주려고 준비했던 사진이 두 사람 앞에 나타났다.

-와씨 ㅋㅋㅋㅋㅋ

-이왜진? 이왜진? 이왜진?

-시작부터 무쳤었네 ㅋㅋㅋㅋㅋ

-난 1분대 끊는 것도 5트였는데 ㅋㅋㅋㅋㅋ

-와… 진짜 퍼지컬은 수준이 다르네.

-영상은 없음?

-ㄹㅇㅋㅋ 어떻게 했는지 궁금

명확한 증거에 시청자들은 감탄을 터트렸다. 지놈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았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그는 방송 진행자라는 사실.

“여러분 보셨습니까? 제가 뭐라고 했어요? 장인 오브 장인! 장오장은 바로 이분이다! 제가 이렇게 엄청난 분을 모셨습니다!”

잠시 정체된 방송 텐션을 끌어올리는 속사포. 그 말에 채팅창이 웃음으로 가득해졌다.

-마지막에 자화자찬 무엇?

-근데 맞말이긴 함 ㅋㅋㅋ

-장오장ㅋㅋㅋㅋㅋㅋ

-와 겁나 기대된다!

-세계 1위 직관 실화냐?

시청자들은 기대를 숨기지 않았다. 지놈은 웃으며 가볍게 손뼉을 쳤다.

“좋습니다. 그럼 바로 월드 넘버 원 장인! 그 심오한 피지컬 검증을 시작해 보겠습니다. 그전에 먼저 제가 시범을 보일 건데요. 아, 세계 1위시라니까 더 긴장되네.”

그는 짐짓 긴장을 풀겠다는 듯 심호흡을 하며 시작점에 섰다. 밝았던 하늘이 어두워지며 주변이 한밤중의 숲속처럼 변했다.

-예전보다 어두워진 것 같은데 ㅎㄷㄷ

-직접 해 보면 장난 아님

-직접 할 수도 있음?

-지놈 팬카페에 가면 유유 프로그램 받을 수 있음 ㅋㅋㅋ

-엌ㅋㅋ 유유 챌린지 그립누

“갑니다!”

지놈은 시작 선언과 함께 앞으로 달려 나갔다. 그는 이전의 가벼운 태도와 달리 온 신경을 바짝 끌어올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어둠 속에서 통나무가 불쑥 튀어나왔다. 지놈은 슬라이딩으로 회피하며 속도를 유지했다.

-캬 ㅋㅋㅋㅋ 반응속도보소

-우리 형 아직 안 죽었구나 ㅠㅠ

-혀엉! 그러다 관절 나가!

-이 형 진심인데?

평소라면 채팅에 반응도 해 주며 적당히 여유를 부렸겠지만 지놈은 그러지 않았다.

그는 낙엽 사이에 숨겨진 부비트랩을 피하며 속력을 더욱 높였다. 앞으로 나아갈수록 숲이 그를 조여 오는 듯했다.

점점 더 길이 좁아지도록, 피할 공간이 줄어들도록 설계했기 때문이었다.

‘슬슬 나올 때가 됐는데.’

발목을 휘감는 올가미를 가까스로 빠져나온 그는 더욱 신경을 곤두세웠다.

이윽고 쉭하는 파공성과 함께 전방에서 화살들이 날아들었다. 지놈의 눈이 빠르게 주위를 살폈다.

겨우 몸을 숨길 정도의 나무에 그는 정확히 엄폐했다. 콰콱하는 소리와 함께 화살들이 나무에 박혔다.

-우리 형 자란다 자란다!

-휴, 실패했음 게놈될 뻔^^

-난 무적권 여기서 실패했는디 ㅋㅋ

-이 구간이 진짜 개 빡심 ㅠ

-조금이라도 몸이 삐져나오면 실패임 ㅋㅋㅋ

-ㄹㅇㅋㅋ 바로 욕 나온다.

시청자들은 그의 무사를 기뻐했다. 이후 지놈은 빠르게 결승점에 도착했다.

[GOAL!]

[당신의 기록은…]

[‘01:27:33’입니다!]

[랭킹에 등록하시겠습니까?]

[유유챌린지 RANK]

[1. ‘GENOME’ - ‘01:34:56’]

[2. ‘GENOME’ - ‘01:39:44’]

이윽고 나타난 시스템 메시지.

“예쓰!”

지놈은 곧바로 양팔을 들며 환호했다.

-WA! 신기록!

-나는 나를 이겨냈다!

-어이, 게놈! 너의 패배다!

-우리 지놈에게는 안 되지!

-엌ㅋㅋㅋ 형 진짜 빡세게 했네!

-퍼플이 세계 1위라고 진심 승부해 버렸누 ㅋㅋㅋ

-이 정도로 여유 없는 거 처음 아님? ㅋㅋㅋ

시청자들은 장난스러운 환호와 칭찬을 보냈다. 이경복 역시 손뼉을 치며 말했다.

“와, 확실히 튜토리얼 구성이랑은 차원이 다르네요.”

지놈은 가볍게 숨을 돌리고 손가락을 튕겼다. 동시에 그의 위치가 이경복의 옆으로 순간이동했다. 가상현실이기에 가능한 방법이었다.

“후아, 겨우 체면치레는 했네요. 어떻습니까? 해 볼 만하신가요?”

지놈의 물음에 이경복은 스스럼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재미있겠는데요?”

“재미?”

“튜토리얼 함정들은 뭐랄까, 좀 조잡하게 느껴졌었거든요. 그래서 약간 긴장감이 좀 부족했던 느낌?”

이경복은 솔직히 감상을 말했다. 애당초 미팅 때 꾸며 낸 모습보다는 자연스러운 방송이 낫다고 서로 합의를 본 덕이었다.

-설렁설렁했는데 세계 1위 했다는 거?

-않이;;; 기만의 생활화 무엇?

-워링! 워링! 기만 수치가 포화상태입니다!

-숨결에 산소나 이산화탄소보다 기만 함량이 더 많은 거 아님? ㅋㅋㅋㅋㅋ

지놈은 그 당돌함에 헛웃음을 흘렸다. 그러나 이내 진행자답게 오디오를 채웠다.

“사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튜토리얼의 함정은 둥글둥글하고 푹신해 보이니까요. 그만큼 경계가 안일해지고 신체 반응이 조금 더 더딘 감이 있죠. 그래서 유유의 스테이지는 한 방만 맞아도 죽을 것 같은 비주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지놈은 그리 말하며 슬쩍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경복이 자연스럽게 그 자리에 올라서자 숲이 우르르 떨렸다.

스테이지가 무작위로 리셋된 것이다.

“자, 튜토리얼과는 격이 다른, 그 저력을 끌어내는 유유 스테이지! 지금부터 장인 오브 장인 퍼플 님의 ‘진짜’ 피지컬을 측정해 보겠습니다!”

-과연 이것조차 ‘퍼펙트’해버릴 것인가?

-갓직히 우리 형 이기긴 힘들 듯 ㅋㅋㅋ

-ㄹㅇㅋㅋ 아무리 그래도 짬이 있는데

-경험 차이 무시할 수 없음 ㅋㅋ

-그래도 퍼지컬이라면 3위권 일 듯?

-아 ㅋㅋㅋ 기대되누

시청자들의 기대가 한껏 고조된 걸 확인한 지놈은 이경복에게 눈짓했다. 시작하라는 신호.

이경복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호흡을 골랐다.

“후.”

짧게 숨을 내쉰 그는 쏜살처럼 앞으로 뛰쳐나갔다. 지놈은 즉시 중계를 시작했다.

“오! 스타트 속도가 엄청납니다! 전혀 주저하는 기색이 없어요!”

-속도 무냐고!

-역시 지구최강 제로백 버스 기사!

-우사인 볼터 뺨 때리는 솜씨!

-우사인: 갑자기 왜 때려요?!

-이제 종로가서 한풀이하면 되겠누 ㅋㅋㅋ

-무근본 드립 뭔데 ㅋㅋㅋㅋ

흥겨운 채팅창이었지만 이경복은 그 내역을 알지 못했다.

예민해진 오감과 함께 전개된 육감이 주변의 모든 정보를 끌어모았다.

숨겨진 함정의 위치는 물론 함정이 작동되었을 때의 상황이 머릿속에 선명히 그려졌다.

“어? 이게 어떻게 된 거죠?! 함정이, 함정이 아직 하나도 작동하질 않습니다!”

지놈은 진심으로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현재 그는 관리자 시점으로 이경복의 주변 함정들 위치를 파악하고 있었다.

“이건…… 이건 마치 함정의 위치를 미리 눈치챈 것 같습니다!”

지놈은 그 시점을 곧바로 화면으로 띄웠다. 시청자들도 봐야 믿지 않겠나.

-????

-뭐임? 어떻게 된 거임?

-저렇게 어두운데 함정이 보인다고?

-않이;; 스텝 밟는 거 보면 진짠데?

지놈의 시청자들은 그 상황을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퍼플의 시청자들은 달랐다.

-갓플님! 눈 돌아가신다!

-??? : 함정의 작동? 퍼펙트 하지 않아.

-아 ㅋㅋㅋ 이게 ‘퍼펙트’지

-매번 느끼지만 진짜 미친 피지컬이다.

-무슨 고양이 눈인가 ㅋㅋㅋㅋ 어두운데 다 보누 ㅋㅋㅋㅋ

믿을 수 없는 상황이지만 그 상황을 발생한 사람이 다름 아닌 ‘퍼플’이기에.

이경복은 엄청난 속도로 함정 구간을 주파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단거리 달리기 도중 방향만 전환한 것으로 보일 정도.

“미쳤습니다! 이건 정말 미쳤습니다! 그러나 이 구간은 다릅니다! 서로 다른 높이와 간격으로 날아드는 화살들!”

지놈은 경탄하면서도 중계를 잊지 않았다. 그가 멈추어 엄폐물에 숨었던 구간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화살을 날아오는 걸 감지하는 인지능력, 엄폐물을 파악하는 공간지각능력 그리고 완벽한 엄폐를 위한 순발력까지 필요합니다! 과연 퍼플은……`.”

말을 이어 가던 지놈은 덜컥 멈추었다. 스트리머의 의무 중 하나인 오디오를 채우는 것도 잊을 만한 광경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경복은 단 한 걸음도 멈추지 않고 오히려 더 속도를 높였다.

“아니, 이게 지금 무슨……!?”

그 뒤로 이어지는 장면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스, 슬라이딩! 하지만 아래에서도……! 아, 바로 몸을 튕겼어요! 이런 미친! 이 탄력 대체 뭡니까!?”

-헐 ㅋㅋㅋㅋㅋ

-진짜 닌자였어?

-닌자 ㅇㅈㄹ ㅋㅋㅋㅋ

-아크로바틱 선수 출신 아님?

-몸이 무슨 고무줄인가?

-아 ㅋㅋㅋ 악마의 열매 능력자였누

이경복은 엄폐물에 숨지 않았다. 날아드는 화살들을 보고 그냥 통과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은 덕이었다.

“하지만 아직……! 와! 옆, 옆으로 돌았습니다! 저 모르게 화살이랑 짰나요!? 어떻게 이걸 다 압니까!?”

-무친ㅋㅋㅋㅋㅋㅋ

-아 ㅋㅋㅋ 화살이랑 미리 짠 거네

-지놈 드립 욕심 미쳤고 ㅋㅋㅋ

-화살 매수 해명해!

흥분과 열광의 도가니에 빠진 다른 사람들과 달리 이경복은 차분하게 결승점을 통과했다.

[GOAL!]

[당신의 기록은…]

[‘0:51:47’입니다!]

[랭킹에 등록하시겠습니까?]

[유유챌린지 RANK]

[1. ‘GENOME’ - ‘01:27:33’]

[2. ‘GENOME’ - ‘01:34:56’]

이경복은 가볍게 기록을 등록했다. 그와 함께 곧바로 랭킹이 갱신되었다.

[유유챌린지 RANK]

[1. ‘퍼펙트플레이’ - ‘00:51:47’]

[2. ‘GENOME’ - ‘01:27:33’]

그와 함께 섬광이 터지며 그는 다시금 지놈의 곁에 서 있었다.

“아니, 퍼플님. 이거 너무하신 거 아니에요?!”

“네?”

지놈은 그가 돌아오자마자 짐짓 우는 척을 하며 말했다.

“신이면 인간을 위해 아량을 좀 베풀어 주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누가 이 기록 보고 도전을 하겠어요?”

-엌ㅋㅋㅋㅋㅋㅋㅋㅋ

-피지컬 밀리니까 바로 드립으로 승부하쥬?

-우리 형이 그래도 입담은 있다 이거야!

-유전자 레벨의 입지컬ㅋㅋㅋㅋ

-입지컬 뭔데 ㅋㅋㅋㅋ

-갓플은 신이 맏따

-퍼멘! 퍼멘! 퍼멘! 퍼멘!

이경복은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해맑게 미소 지었다.

“신이요? 아, 감사합니다. 근데 별로 어렵지 않았는데요.”

“으헉, 이러다 제가 기만에 질식하겠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완벽한 증명이 됐습니다. 이제 아시겠죠 여러분들!?”

지놈은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이경복이 보여 주었던 사진이 다시금 화면에 나타났다.

“퍼플 님이 세계 1위가 아니면 누가 세계 1위겠습니까? 아니, 다른 세계 1위가 나타나면 오히려 그 사람이 더 의심스러울 지경입니다. 너무나도 완벽한 증명!”

지놈의 결론에 채팅창은 폭발했다.

-지금부터 트최피는 퍼플뿐이야!

-그럼 트최입은 지놈으로 하자 ㅋㅋㅋㅋ

-야미 솔로 백도어는 너무 당연하거였고 ㅋㅋㅋㅋ

-아 ㅋㅋㅋ 이런 사람을 어케 잡누

-보고 있나 트롤들? 야미 하려면 이 정도는 하라고!

-속보) 청와대, 피지컬 ‘명장’은 ‘퍼플’ 뿐이라고 밝혀.

시청자들의 방정맞은 채팅에 이경복은 웃음이 절로 나왔다. 그리고 그를 기쁘게 하는 사실이 하나 더 있었다.

‘벌써 1만 명이 넘다니.’

오프닝 때 8천대를 기록했던 시청자들이 어느덧 1만을 넘어섰다.

비록 그들 모두가 자신의 팬이 아니라 대부분 지놈의 팬이겠지만, 그럼에도 자신 덕분에 즐거워하고 있지 않나.

‘나도 꼭……!’

그는 새삼 스트리머로서의 성공을 다짐했다. 지놈은 잠시 시청자들의 흥분이 가라앉기를 기다린 후에 다시 입을 열었다.

“자,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죠. 놀랍게도, 아직 기초 피지컬밖에 검증하지 않았다는 사실! 그럼 바로 다음 단계로 가보겠습니다!”

지놈은 가볍게 손뼉을 두 번 쳤다. 그러자 풍경이 뒤바뀌며 장소가 변했다.

한쪽은 연무장, 다른 한쪽은 사격장이었다.

“기초가 끝나면 응용을 해 봐야겠죠? 이번 스테이지는 게임 능력 테스트! ‘근딜’과 ‘원딜’ 능력 측정입니다!”

-어? 이번에는 둘 다 나왔네?

-원래 하나만 나오지 않나?

-퍼플은 둘 다 잘하니까 이게 맏따 ㅋㅋㅋ

-아 ㅋㅋㅋ 고걸 몰랐네

-헐ㅋㅋㅋ 둘 다 하는 거?

시청자들의 반응대로 이전에는 둘 중 하나의 스테이지만 나왔다. 초대한 장인의 능력은 둘 중 하나에 치중되는 게 보통이었다.

이에 지놈 역시 미팅 때 둘 중 하나를 선택하길 권했지만 이경복은 둘 다 하기로 했다.

“퍼플 님 어느 쪽 먼저?”

“음, 상관없습니다. 가까운 데부터 하죠.”

“좋습니다! 그럼 ‘근딜’능력 테스트를 먼저 설명 드리겠습니다.”

이경복은 각 테스트에 대해 이미 설명을 들었다. 그럼에도 지놈이 설명을 하는 건 새로운 유입 시청자, 퍼플의 팬들을 위한 것이었다.

“백문이 불여일견! 장인의 상대는 바로 이 더미!”

지놈이 가볍게 손가락을 움직이자 연무장에 인체 모형의 더미가 나타났다.

“겉으로 보기엔 별거 아닌 더미처럼 보이시죠? 그러나 이 더미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바로 여기, 특정한 약점을 노려야 합니다.”

지놈은 더미의 어깨에 생겨난 작고 붉은 점을 가리켰다.

“지금 설정한 약점의 직경은 7mm! 연필의 직경입니다. 근딜 능력 측정 포인트 중 하나인 정확도의 1위 기록입니다! 그리고 이 기록을 달성한 사람은 다름 아닌 지놈이라는 분!”

-셀프 3인칭 무엇;;

-혀엉? 자신이 부끄러워?

-이 형 지금 입지컬로 노선 확실히 탔네 ㅋㅋㅋㅋ

-근데 저것도 대단한 거임 ㅋㅋ

지놈은 채팅창의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그리고 더불어 측정하는 기준은 바로 더미의 개수! 현재 동시에 가장 많이 상대한 더미는 12개입니다!”

그의 말과 함께 연무장에 12개의 더미가 형성됐다. 더미들은 저마다 다른 무기를 들고 있었다.

“이 기록은 아쉽게도 제가 아니라 엘든 시리즈 전문 스트리머, ‘이클립스’님의 기록입니다! 단 한 번이라도 공격을 허용하면 실패하는 테스트니 만큼 그 난이도가 실감이 되시죠?”

극악한 난이도로 유명한 엘든 시리즈. 등장하는 잡몹이 타 게임의 보스와 비슷할 수준으로 여겨질 정도였다.

지놈은 가볍게 설명을 마치고 이경복을 돌아봤다.

“자, 이제 장오장, 퍼플 님의 선택이 남았습니다! 원하시는 약점의 크기 그리고 상대할 더미의 개수를 골라 주세요!”

그와 함께 이경복의 앞에 설정창이 나타났다. 그는 잠시 눈을 굴리더니 설정을 조작했다.

-아 왜 안 보여 줌!

-지놈은 방송을 너무 잘해서 문제임 ㅋㅋㅋㅋ

-형? 우리 사이에 이러기야?

-트수쉑들 ㅋㅋㅋ 그 잠깐도 못 참누

-트수의 알권리를 보장하라! 보장하라!

채팅창이 아우성으로 가득 차는 사이 옆에서 설정을 본 지놈의 눈이 크게 뜨였다.

“아니, 정말 이렇게 하실 겁니까?”

“아, 이러면 안 되나요?”

“아뇨, 아뇨! 여러분, 또 새로운 경지를 볼 기회가 왔습니다.”

지놈의 말에 채팅창에 물음표가 무수히 올라왔다.

“아니, 이게 제가 보통 말문이 막히는 경우가 잘 없거든요? 아는 분은 다 아실 거야. 근데 이건 진짜… 와…….”

지놈은 고개를 내저으며 한 걸음 물러섰다.

-형? 이러기야? 정말 이러기야?

-아 ㅋㅋ 이 형 진짜 큐튭각 제대로 뽑으려고 하네

-알려 줄 때까지 숨 참습니다 흡!

-지리는 거 맞지? 나 기저귀 차고 온다?

-이럴 줄 알고 요강을 준비해뒀지.

-ㅉㅉ 나처럼 미리 변기에 앉아서 봐야지.

-아 ㅋㅋㅋ 지놈방 채팅 맵다 매워

-ㄹㅇㅋㅋ 톤앤매너 어디갔냐구!

안달이 난 시청자들은 곧바로 채팅으로 기분을 표현했다. 지놈은 실소를 흘리며 손가락을 튕겼다.

[더미 설정]

[약점 직경 – 0.5mm]

[출현 개체 수 – 15개]

그와 함께 이경복이 정한 설정이 튀어나왔다.

-?????

-5가 아니고 0.5라고?

-0.5mm면 얼마나 작은 거임;;

-ㅁㅊ 샤프심 크기임 ㅋㅋㅋㅋ

-않이;;; 이게 말이 됨?

-그 작은 약점에 더미가 15개라고?

무수히 떠오르는 물음표.

시청자들은 지놈의 반응이 방송을 위한 과장이 아니라는 걸 직감했다.

어느 한쪽의 기록만 도전해도 어려운데 양쪽 모두 동시에 신기록을 도전한다?

장인해부학 컨텐츠 사상 전례가 없던 일이었다.

지놈은 그 반응에 흡족해하며 이경복에게 시선을 돌렸다.

“잠깐 시작하기에 앞서서 퍼플 님 말씀을 들어 보겠습니다. 퍼플 님, 이렇게 설정하신 이유가 있을까요?”

“어, 별거 없습니다. 신기록에 도전하고 싶은데 약점은 너무 컸고, 더미 개수는 5로 끝나는 게 깔끔하니까요.”

이경복은 대수롭지 않다는 투로 대답했다.

기초 피지컬 테스트의 결과가 없었다면 허세, 또는 컨셉을 잡았다고 생각했을 터였다.

하지만 이미 보여 준 것이 있기에 그 모습이 연출이 아닌 진짜라는 건 누가 봐도 알 수 있었다.

때문에 지놈도 시청자도 그저 웃을 따름이었다.

“여러분, 나 너무 기대되는 데 나만 그래?”

-ㄴㄴ 우리도 그럼 ㅋㅋㅋ

-이게 퍼며든다는 건가?

-7mm가 너뭌ㅋㅋㅋ 컼ㅋㅋㅋㅋ

-이게… 신의 관점?

-어디 감히 인간의 눈으로 보려 하느냐!

-아 ㅋㅋㅋ 5로 안 끊어지면 불편한 건 맞지.

-논리적으로 반박할 수가 읍따 ㅋㅋㅋ

지놈은 이내 아차 싶었다는 듯 급히 입을 열었다.

“아, 이걸 안 물어봤네요. 무기는 뭐로 하실 겁니까?”

“무기는 이걸로 할 겁니다.”

이경복은 미리 정해 둔 무기를 잡았다. 덕분에 지놈은 다시금 머리를 얻어맞은 기분을 느꼈다.

“……건틀릿이요!?”

수많은 무기가 준비되어 있건만, 사실상 무기를 선택하지 않은 것과 다름없는 무기라니.

시청자들은 다시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않이;;;

-이클립스도 검방으로 겨우 깼는데?

-ㄹㅇㅋㅋ 진짜 멋이고 뭐고 다 때려 치우고 필사적이었음.

-바닥 구르고 방패로 맞으면서 깼었지 ㅋㅋㅋ

-건틀릿이면 맨주먹이나 다를 바 없는디 ㅎㄷㄷ

-나는 이해를 포기했다!

-아ㅋㅋ 신의 뜻을 인간이 어찌 아누

-퍼플이라면 가능할지도?

-또 하나의 ‘퍼펙트’ 나오나요?

이경복은 채팅창을 보며 미소 지었다.

“그럼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구차하게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직접 보여 주는 게 간편한 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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