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의 신들린 게임방송-36화 (36/491)

36화 - 장인해부학 (3)

이경복의 시작 선언에 지놈이 빠르게 멘트를 쳤다.

“아, 네네! 퍼플 님의 근딜 능력! 과연 이번에도 상상도 못 한 피지컬이 나올 것인가!”

이경복은 연무장 안에 표시된 시작점에 섰다.

그와 동시에 형성된 15개의 더미들. 그것들이 곧장 이경복을 향해 쇄도해 왔다.

‘역시나.’

이경복이 반응한 것도 동시였다.

“아! 지금 퍼플 님, 웃고 있습니다! 여유만만 그 자체!”

지놈이 큰소리로 중계를 시작했다. 그러나 이경복에게는 그 목소리가 마치 멀어져 가는 메아리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사라진 감각의 공백은 다른 소리로 채워졌다.

철컥거리는 더미의 관절, 흙바닥을 딛자 팍하고 튀어 오르며 흩어지는 알갱이들, 공기를 가르며 짓쳐들어오는 무기의 소리까지.

그의 시야는 정면으로 한정되었지만 그에게 사각(死角)은 없었다.

‘포위만 되지 않으면 할 수 있어.’

더미의 숫자가 아무리 많아도 더미가 덤벼드는 방향은 한계가 있다. 이경복은 정면에서 날아오는 검격을 피하며 약점을 찾았다.

“바로 약점을 발견했습니다! 저 작은 점이 보이기라도 한 걸까요!?”

예리하게 곤두선 육감은 이미 약점의 위치가 어디인지 그의 머릿속에 그려 주고 있었다.

그의 주먹이 정확히 더미의 어깨 아래를 강타했다. 퍽하는 둔탁한 소음과 함께 더미가 입자로 변하며 사라졌다.

“일격! 일격입니다! 소름 돋을 정도로 날카로운 공격!”

-아 ㅋㅋㅋ 이게 말이 되냐고!

-존재 자체가 밸붕 ㅎㄷㄷ

-신의 편애를 받은 자…

-뭔솔? 퍼플이 신인데 ㅋㅋㅋ

-인간적으로 차이가 너무 심하네 ㅋㅋㅋ

-신적으로는 괜차늠^^

다른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건 이경복은 자신의 세계에 빠져 있었다.

그는 순식간에 날아드는 공격을 피하며 주먹을 날렸다.

“아, 이거……! 풋워크, 복싱의 풋워크입니다! 지금 위빙도 그렇고 잽과 훅, 보디 블로까지 자세가 아주 익숙해요! 퍼플 님 혹시 복싱하셨나요!?”

이경복을 관찰하던 지놈의 물음에 채팅창은 물음표로 가득해졌다.

-않이;; 그건 님이 아셔야지

-ㄹㅇㅋㅋ 조사 안 했냐고!

-지사장 이런 식으로 할 거야!?

-정보) 갓플은 학창시절 운동 좀 했다.

-아 ㅋㅋㅋ 그게 복싱이었누

-어쩐지 몸놀림이 남다르다했다.

-그럼 건틀릿 고른 거 ㅇㅈ이지 ㅋㅋ

그 사이에도 더미는 착실히 줄어 나갔다. 수적 우위가 무색하게 이경복은 포위될 틈을 주지 않았다.

그렇게 결국 숫자마저 줄어들기 시작하자 더미의 소멸 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후.”

이내 마지막 더미까지 처리한 이경복은 짧게 숨을 뱉었다.

“서, 성공! 성공입니다! 그것도 엄청난 속도로 성공해 버렸습니다!”

지놈의 말과 동시에 시청자들의 반응도 격렬해졌다.

-퍼렐루야! 퍼렐루야! 퍼렐루야!

-당신 대체 어디 있다 왔어! 당신 대체 어디 있다 왔어!

-퍼플은 신이다! 나는 무적이고! 퍼플은 신이다! 나는 무적이고!

-아 ㅋㅋㅋ 무기 왜 씀?

-무기(퍼플)

-사실 퍼플이 대단한 게 아니라 우리가 하찮은 거 아닐까?

-피지컬도르! 피지컬도르! 피지컬도르!

이경복은 채팅창의 반응에 그저 미소 지으며 지놈의 곁으로 돌아왔다.

“더미들 움직임이 괜찮네요.”

“아하하, 그렇죠? 진짜 무기술 대가들의 모션 캡처 소스거든요. 이거 비싸게 주고 산 겁니다? 이게 또 기업용으로 파는 거거든요.”

-노잼컷!

-형? 그거 안물안궁이야!

-또 생색내기 시작하쥬?

-라따라따 아라따

-투자 자랑 그마내!

-그 와중에 무기술 대가를 ‘괜찮다’라고 평가하는 것 무엇?

-아 ㅋㅋ 신의 눈으로 보면 괜찮을 수도 있지.

시청자들의 장난스러운 반응에 지놈은 입을 다물고 바로 화제를 전환했다.

“자자, 테스트를 정말 훌륭히, 솔직히 제 짧은 어휘로는 더 표현할 도리가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끝내셨는데요. 그 비결을 묻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따로 알려 주실 팁 같은 게 있을까요?”

“팁이요?”

이경복은 슬쩍 눈을 굴렸다.

“네. 아주 간단한 것도 됩니다.”

“음…… 보고 치고, 보고 피하면 되는 건데.”

이경복은 지놈의 말을 따랐다.

육감을 설명할 수 없으니 정말로 간단히 말이다.

-아 ㅋㅋㅋ 맞말추

-ㄹㅇㅋㅋ 이걸 몰랐네

-하여간 이래서 천재들은……!

-제발 그마내… 이러면 기만에 질식해서…… 다 죽어!

-선생님! 급성 기만 중독입니다!

“자, 여러분. 퍼플 님이 장오장이라는 거 잊지 마세요! 장인들 눈에는 다 이렇거든. 아니, 이걸 왜 못하나 싶은 거야. 나도 가끔 그렇게밖에 설명할 수 없을 때가 있다니까?”

지놈의 말에 채팅창 분위기가 전환됐다.

-엌ㅋㅋㅋ 은근슬쩍 묻어가기

-입지컬은 인정 못 하지 ㅋㅋㅋ

-형? 신 옆에 있다고 신이 되는 거 아니다?

-점심차려! 점심차려! 점심차려!

-퍼플 옆에서 그런 말 하면 너무 없어 보이자너

“아니, 님들. 나 체면 좀 세워 주면 어디가 덧납니까? 우리 사이가 이것밖에 안 돼?”

지놈은 짐짓 화난 척 목소리를 높였다. 이경복은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런 식으로 게스트한테 화살 돌아가는 걸 막는 거구나.’

대부분은 장난식이지만 일부는 진심으로 ‘기만’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그럴 조짐이 보이면 지놈이 앞으로 나서서 논란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이경복은 틈틈이 지놈의 방송방식을 머릿속에 새겨 두었다.

“진짜 야미 때부터 알아보긴 했지만 엄청난 실력이었습니다. 이러니까 내가 5대1로 덤벼들어도 지는 게 당연했다는 거! 하지만 아직 퍼플 님의 능력은 끝이 아닙니다! 바로바로 바크에서 증명했던 사격실력! 지금 당장 보러 가시죠!”

그 사이 잠시 분위기를 환기시킨 지놈이 방송을 이어 나갔다. 두 사람은 곧바로 사격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자, 대부분 익숙한 사격장이실 겁니다. 그도 그럴 게 거너 그라운드의 훈련시설을 참고해서 만든 거니까요. 퍼플 님도 아시죠?”

“아, 저는 거너 그라운드를 아직 안 해 봐서요.”

이경복의 대답에 채팅창이 ‘?’로 물들기 시작했다.

-헐?

-ㄹㅇ임?

-스트리머인데 거너를 안 해 봤다고?

-아 ㅋㅋㅋ 퍼린이들 뭘 모르누

-정보) 퍼플은 이제 방송 2주 차다

-바크가 완전 첫 게임이었음 ㅋㅋㅋ

-헐 ㅋㅋㅋ 그럼 더 개쩌는 분이셨네 ㅋㅋㅋㅋ

지놈의 시청자들도 조금씩 퍼플에 대해 알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알아갈수록 경이로운 스트리머였다.

“그래요? 거너 그라운드 꽤 재미있는데 나중에 저랑 듀오 한번 해 보시면 되겠네요!”

“아, 네네.”

-엌ㅋㅋㅋ 자연스럽게 다음 합방 약속 잡아버리고

-않이 ㅋㅋㅋ 이거 우리 형이 빨대 꼽는 것 같자너!

-혀엉? 톤앤매너 ㅇㄷ?

-빨대역전세계냐구!

시청자들이 장난스레 반응하자 지놈은 오히려 뻔뻔하게 나섰다.

“아니, 님들. 저도 버스는 한번 타 봐야 되는 거 아니에요? 우리 미스틱 한 거 봤잖아? 내가 퍼플 버스에 치여서 전치 10주는 나왔다니까.”

-아 ㅋㅋㅋ 버스예약은 킹정이지.

-머쓱타드ㅎㅎ;

-퍼플의 거너 그라운드? 오히려 좋아.

-아 ㅋㅋ 생각만 해도 군침이 싹도네

-군침이 왜 돌아 ㅅㅂ ㅋㅋㅋㅋ

채팅창을 본 이경복은 미소와 함께 답했다.

“거너 그라운드도 나중에 해 볼 게임 중에 하나긴 해요. 그때 한 번 더 연락드리겠습니다.”

“오! 진짜죠!? 감사, 압도적 감사……! 매니저! 클립, 클립 얼른 따!”

지놈의 과장스러운 행동에 채팅창이 ‘ㅋㅋㅋ’로 가득해졌다. 하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이야기.

“자, 다시 돌아와서. 원딜 능력은 너무나 간단합니다. 쏴서 맞힌다. 하지만 ‘유유’가 그렇게 쉽지만은 않겠죠?”

그는 집중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다시금 손뼉을 쳤다.

“표적은 무작위 위치에 생성되고, 개중에는 쏘지 말아야 할 함정이 섞여 있습니다! 함정을 쏘게 되면 그 즉시 테스트는 종료! 테스트 시간은 총 5분, 300초! 준비된 표적의 개수는 100개니까 3초당 하나꼴로 나타날 겁니다.”

지놈은 그리 설명한 후에 기록을 화면에 띄웠다.

[최고 사격 기록]

[평균 정확도 – 96%]

[평균 체류시간 – 0.894초]

“보다시피 측정 기록은 정확도와 표적의 체류시간! 그리고 100개의 표적을 시간 내에 모두 쓰러뜨리는 건 기본 중에 기본이죠! 놀랍게도 최고기록은 무려 ‘지놈’이라는 스트리머의 기록입니다! 나름 피지컬이 뛰어난 스트리머네요”

-ㄴㅇㄱ 상상한 정체!

-또 또 자랑나온다 ㅋㅋㅋㅋ

-제발 셀프 3인칭 그마내!

-낯짝도 두껍누 ㅋㅋㅋ

-입지컬에 이은 낯지컬 최강자!

-엌ㅋㅋㅋㅋ낯지컬 ㅁㅊ

지놈은 시청자들 반응에 굴하지 않았다.

“자, 이건 따로 설정이 없습니다. 사용하실 총기만 선택하시고 시작하면 됩니다!”

“지놈 님은 어떤 걸 쓰셨나요?”

이경복의 물음에 채팅창이 술렁였다.

-옼ㅋㅋㅋㅋㅋㅋ

-같은 총기를 쓰겠다는 패기!

-퍼자감 ON!

-동일한 조건에서 눌러버리겠다!

-장인은 도구를 탓하지 않는다더니……

-아 ㅋㅋ 변명할 거리도 안 준다고

-퍼플이면 손가락으로 가리켜도 맞는 거 아니냐?

-퍼플 자체가 무기니까 킹능성 있다.

-손가락 총 뭔데 ㅋㅋㅋㅋ

지놈은 당황하지 않았다.

이 정도는 이미 사전에 결정해 둔 사항.

“아, 그분은 이 총, 글록 17 기본형을 선택했죠. 아무래도 표적을 파괴하는 게 목적도 아니기도 하고, 17발들이라서 탄창 교체 시간도 아낄 수 있으니까요.”

-지금 질까 봐 거리감 두는 거 맞지?

-아ㅋㅋ 진행자 지놈이랑 기록에 나온 지놈은 다른 사람이라구욧!

-이미 패배는 기정사실인 것인가……

-근데 퍼플이면 이해는 된다 ㅋㅋ

이경복은 가볍게 권총을 잡았다. 그 자세를 본 몇몇 시청자들은 깨달았다.

-어? 이거 바크에서 쓰던 총 아님?

-엌ㅋㅋㅋㅋ 오히려 익숙한 총이누

-아 ㅋㅋㅋ 표적 다뒤졌다.

-이건 끝났다 ㅋㅋㅋ

-헐 ㄹㅇ? 기대되누 ㅋㅋㅋㅋ

공교롭게도 이미 그에게 익숙한 총기 모델이라는 점. 이경복은 가볍게 권총을 살펴보고 미소 지었다.

“좋습니다. 그럼 시작할게요.”

“네! 자, 근딜에서는 이미 신의 경지를 보여 준 퍼플 님! 과연 사격에서는 어떤 모습을 보여 줄지! 딱 5분만 보여 드리겠습니다!”

-않이 ㅋㅋㅋ 여기서 그게 왜 나와!

-혀엉!? 톤앤매너!

-5분만 보여드리면 믿겠습니까!?

-믿습니다! 믿습니다! 믿습니다!

-아아, 윅씨 가문의 존이 나설 때인가.

삑하는 알림음과 함께 타이머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동시에 이경복의 눈이 빠르게 돌아갔다. 그는 주저 없이 조준과 함께 방아쇠를 당겼다.

“아… 이, 이건……!”

지놈은 미리 준비했던 멘트도 잊을 정도로 놀랐다. 그동안 또박또박했던 발음 역시 더듬을 정도.

하지만 아무도 그 사실을 지적하지 않았다.

-뭐, 뭐야 이거?

-지금 막 난사하는 거 아님?

-정확도 무엇?

-아니, 뭘 보고 쏘긴 하는 거?

이경복의 사격이 쉴 틈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는 테스트의 시스템으로 발생한 현상이었다.

“표, 표적을 쏘자마자 바로 다른 표적으로 넘어가고 있습니다. 아니, 근데 이거 무작위인데? 도저히 믿기지가 않습니다!”

하나의 표적을 쏘면 다른 표적이 곧바로 나온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그사이에 표적을 찾아야 할 시간이 필요할 터였다.

그런데 이경복에게는 그런 시간이 거의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는 육감으로 이미 표적의 생성 위치를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잠시 그가 멈춘 건 오로지 탄창을 교체하는 시간뿐이었다.

“아! 지금 재장전! 벌써 탄창이 비었습니다! 대체 이 속도 뭔가요!? 장전마저 순식간!”

그마저도 1초가 채 걸리지 않았다. 아주 능숙한 동작으로 탄창을 갈아 끼운 이경복은 다시금 방아쇠를 당겼다.

-아! 하나 놓쳤다!

-ㄴㄴ 저거 함정임

-아니 ㅅㅂ 저 속도에 구별까지 한다고?

-진짜 사람 맞음? 프로그램 아님?

-아 ㅋㅋ 사실 AI였던 거임!

-이 모든 게 릭트쇼였다?

-엌ㅋㅋ 차라리 그게 킹능성있다.

타이머가 떨어지는 속도보다 맞춘 표적 개수의 카운트가 올라가는 속도가 더 빨랐다.

그렇게 2분이 채 지나기도 전에.

[Congratulation!]

[모든 표적이 적중되었습니다.]

[결과를 산출합니다.]

사격 테스트가 끝을 고했다.

“아! 테스트가 종료됐습니다! 결과느으으으은!?”

준비한 멘트의 절반조차 뱉지 못한 지놈이 말을 길게 늘였다. 허공에 뜬 결과창의 숫자가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지놈이 아래에서 손가락을 튕기자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북소리가 들려왔다.

채팅창 역시 이모티콘으로 도배된 상황.

모두가 흥분한 가운데 이경복만이 담담히 서 있었다.

그 이유는 하나.

‘전부 정확히 맞췄네. 표적이 움직일 시간 정도는 줬어야 했나?’

그는 이미 결과를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최고 사격 기록]

[평균 정확도 – 99.9%]

[평균 체류시간 – 0.291초]

이어 돌아가는 숫자가 멈추었다.

일순간 정적이 찾아왔다.

지놈은 진행도 잊고 그저 입을 크게 벌린 채 눈만 껌뻑였다.

“……엑?”

그리고 끝내 새어 나온 삑사리. 이후에 지놈의 새로운 시그니처 밈이자 합성 영상의 주요 소스로 활용될 장면이기도 했다.

-엑……?

-엑?

-ᅟᅦᆨ?

채팅창의 반응 역시 그와 비슷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 속도로 99.9%? 이 속도로 99.9%?

-미친 ㅋㅋㅋ 체류시간이 0.3초도ㅋㅋㅋ 안 됨ㅋㅋㅋㅋ

-이 정도면 나타나기 전에 총알이 날아간 거 아님?

-아 알겠다! 사실 표적이 퍼플 눈치 본 거임!

-표적이 처신 잘했누 ㅋㅋㅋㅋ

-엄마! 난 퍼플이 못 돼요! 엄마! 난 퍼플이 못 돼요!

-신 : 아, 이건 저도 좀 어렵.

-또 ‘퍼펙트’했다 그죠? 또 ‘퍼펙트’했다 그죠? 또 ‘퍼펙트’했다 그죠?

1만여 명이 넘는 시청자들이 열광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작 이경복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하네, 100%여야 하는데?’

그의 감각으로 보아 모든 탄환은 표적의 정중앙을 관통했다. 실제로도 그러했다.

그럼에도 99.9%로 표기가 된 것은 프로그램의 한계였다.

“와…… 나 진짜 소름 돋았어. 여러분도 그렇죠? 아니, 퍼플 님이 나와 같은 종족이라는 게 상상이 안 가. 진짜 같은 사람 맞나?”

지놈은 여전히 충격 받은 표정으로 말했다. 약간의 연출이 섞여 있긴 했지만 진심이 다분히 드러나는 말이었다.

채팅창에는 동의한다는 말로 가득해졌다.

“와, 이 정도면 무형문화재, 국보급으로 모셔야 할 수준 아냐? 진짜 미쳤다 미쳤어.”

“아유, 너무 띄워 주시네요. 직접 해 보면 쉬운데.”

이경복이 멋쩍게 웃자 지놈이 게슴츠레 눈을 뜨며 물었다.

“아, 어떻게 해야 할지 알 것 같아요. 그냥 보고 쏘면 되죠?”

“어? 잘 아시네요.”

천연덕스러운 이경복의 대답에 지놈은 그저 실소를 흘렸다. 채팅창도 ‘ㅋㅋㅋ’로 채워졌다.

“햐, 여러분이 날 볼 때 이런 기분이었구나. 인정합니다! 그동안 제가 잘못했습니다! 천외천이 있다는 걸 비로소 알았습니다!”

-또또 은근슬쩍 자기 올려치죠?

-아 ㅋㅋ 형은 이제 그냥 입지컬만 밀라니깐?

-피지컬하면 퍼플밖에 떠올릴 수 없는 몸이 되어 버렷!

-피지잇!

-않이 ㅋㅋㅋ 미쳤냐곸ㅋㅋㅋ

-앜ㅋㅋㅋ 제발 톤 앤 매너!

이경복은 눈을 껌뻑였다.

채팅창에서는 종종 알아먹기 힘든 드립이 나오곤 했다. 하지만 그래도 칭찬이라는 것 정도는 쉽게 눈치챌 수 있었다.

“자! 여기서 끝을 낼 수는 없죠! 이대로는 퍼플 님은 그저 범접할 수 없는 경지! 그러나 그런 장인들에게도 인간적인 면모는 있는 법!”

그 사이 지놈이 빠르게 손뼉을 쳤다. 다시 한번 무대가 뒤바뀌었다.

갑자기 솟아난 벽과 뒤바뀐 바닥은 고풍스러운 대리석이었고, 발아래에는 부드러운 레드 카펫이 깔렸다.

동시에 지놈은 턱시도와 높은 중절모를 쓴 신사의 모습이 되었다.

-엌ㅋㅋㅋㅋ 이게 빠질 수 없지.

-갑자기 뭐임?

-카지노?

-이건 본방사수 특전임 ㅋㅋㅋ

-아무리 장인이라도 이건 못 당하지!

시청자들은 양쪽으로 나누어졌다. 갑작스러운 변화에 당황하는 쪽과 기대하는 쪽.

전자를 위해 지놈은 빠르게 설명을 이어 나갔다.

“오늘 장인해부학 본방을 사수해 주신 분들을 위한 독점 컨텐츠! ‘장인도 사람이야 사람!’ 시간입니다! 지금부터 진행하는 컨텐츠는 다시보기에서도 삭제가 될 예정이며, 녹화는 상관없지만 허가 없이 배포하시면 법원 팬미팅을 하실 수 있습니다!”

실시간으로 시청하는 메리트를 주기 위해 지놈이 고안한 컨텐츠. 큐튜브는 물론 트라이의 다시보기에서도 제공되지 않는 장면이었다.

‘과연 이런 컨텐츠를 만들어 두면 본방 보는 분들이 더 많아지겠네.’

사전 미팅 때는 3번째 테스트가 있다고만 들었고 그 내용이 뭔지는 듣지 못했다. 이경복은 놀란 표정으로 이런 방법도 있다는 걸 머리에 새겨 두었다.

“오늘은 특히나 이 테스트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아무리 피지컬이 뛰어난다고 한들, ‘확률’ 앞에서는 모두 똑같은 사람! 마지막 장인 테스트는 바로 ‘운’입니다!”

그는 이경복을 돌아보며 말했다.

“이번 테스트의 결과에 따라 저 혹은 퍼플 님께서는 시청자들에게 구독권을 선물해야 합니다! 과연 이번 테스트의 승자는 누가 될 것인가!”

갑작스러운 제안에도 이경복은 당황하지 않았다.

‘아, 이래서 비용 얘기를 하신 거구나.’

이미 사전 미팅 때 방송 중 발생하는 모든 비용은 지놈 측에서 처리하겠다는 말을 들은 덕이었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지금 상황이 되니 이해가 갔다.

승부는 어디까지나 연출, 누가 승리해도 구독권 구매 비용은 지놈이 내겠다는 뜻.

“아무리 피지컬이 좋아도 운으로 승부하면 제게도 가능성이 있는 법! 도전하시겠습니까!?”

“재미있겠네요. 받아들이겠습니다.”

이경복이 웃으며 대답했다.

지놈도 마주 웃으며 채팅창을 살폈다. 퍼플의 팬들은 아마 이 상황에 적잖이 당황할 수밖에 없을 터.

‘……응?’

그런데 기묘하게도 채팅창의 반응은 달랐다.

-뽑기인가? 오히려 좋아!

-운? 운이라고 하였는가?

-마무리까지 깔끔하누 ㅋㅋㅋ

-혹시 이번에도 레전드?

-오늘 흐름 보면 무적권 각이다!

-구독권 꽁으로 얻겠누 ㅋㅋㅋ

퍼플의 시청자들은 이미 한 차례 겪어 본 적이 있었다.

퍼플, 그는 뽑기마저 ‘퍼펙트’했다.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