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화 - 장인해부학 (4)
좋아하는 퍼플의 시청자들을 보며 지놈은 의아했다.
‘왜 저렇게 좋아하지?’
아쉽게도 지놈은 이경복의 황금 산탄총 뽑기 영상을 보지 못했다. 비교적 급하게 섭외를 한 탓에 장인으로서의 피지컬 자료만 찾아봤기 때문이었다.
“좋습니다!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다! 마지막 승자를 결정하는 건 바로 이것!”
지놈의 말과 함께 전방에 있던 대리석 벽이 좌우로 열렸다. 둔중한 울림과 함께 열린 벽 너머에는 거대한 슬롯머신이 놓여 있었다.
“명령조합 슬롯머신입니다!”
-엌ㅋㅋㅋ 완전 피지컬 배제네
-지하다 추놈아!
-ㄹㅇㅋㅋ 주사위도 있고 룰렛도 있는데
-근데 갓플이면 손기술로 조작도 가능할 듯 ㅋㅋㅋ
-그마내! 지놈은 이미 딸피라굿!
이경복은 채팅창의 반응을 보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거 말고도 다른 방식을 더 준비해 둔 건가. 하긴 같은 것만 하면 또 쉽게 질리겠지. 준비를 정말 많이 하시는구나.’
그는 단순히 인지도나 높이자고 나온 게 아니었다. 스트리머로서 배울 점을 잊어서는 안 됐다.
지놈은 이경복의 놀란 표정을 다른 의미로 해석하고 미소 지으며 말했다.
“아, 놀라실 거 없습니까. 저 큰 걸 직접 당기실 수는 없죠. 저건 시청자들을 위한 모형이고, 퍼플님은 이걸 돌려 주시면 됩니다.”
그 말과 함께 가볍게 손가락을 튕기자 바닥이 열리며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협탁이 올라왔다.
그 위에는 거대 슬롯머신과 똑같은 일반 슬롯머신이 놓여 있었다.
-엌ㅋㅋ 저거 당기려고 한 거? -커엽누ㅋㅋㅋㅋ
-근데 퍼플이면 저것도 당길 듯?
-ㄹㅇㅋㅋ 파쿠르로 올라가 버릴 듯
-닌자니까 킹능성이따
시청자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에 이경복은 굳이 그 오해를 풀지 않았다.
“승부는 아주 간단합니다. 각 슬롯에는 문장을 만드는 단어가 있죠. 직접 보시는 편이 이해가 빠르실 겁니다!”
지놈은 그리 말하며 가볍게 슬롯을 당겼다. 4개의 슬롯 중 가장 왼쪽에 있던 슬롯이 맹렬히 회전하다가 멈추었다.
[지놈은]
그리 멈춘 단어. 지놈은 곧바로 레버를 더 당겼다. 차례대로 남은 3개의 슬롯이 맹렬히 회전하다가 멈추었다.
[지놈에게][구독권16장을][선물한다]
그리하여 완성된 문장.
“아, 제가 저에게 구독권 16장을 선물하라는 명령이 완성됐네요!”
-엌ㅋㅋ 개꾸르
-혀엉? 약속 지켜야지?
-ㄹㅇㅋㅋ 인생은 실전임!
-나 뽑아줘잉!
그 결과에 지놈의 시청자들이 득달같이 일어섰다. 지놈은 짐짓 과장되게 얼굴을 찌푸렸다.
“에헤이, 이 사람들 정말. 손님 앞에서 자꾸 이렇게 나올 거야? 우리 고급스럽게 가기로 했잖아. 그것도 다름 아닌 장오장, 퍼플 님 앞인데 톤앤매너 지켜 줘야지!”
-적반하장 지렸쥬?
-자기 돈 나갈 때 되니까 정색하는 거 보소 ㅋㅋㅋㅋㅋ
-히익! 자낳괴! 우리 방송에서 나가!
-아 ㅋㅋ 만약 퍼플이 내는 거였으면 바로 내라고 했을 거면서
-어이, 늙은 친구. 신사답게 행동해.
-형이 이런 식으로 나오면, 우리도 게놈이 되는 거야!
-어디 내놔도 창피한 우리 형ㅠ
시청자들의 반응에 이경복은 웃음이 나왔다. 겉으로 보기엔 마치 싸우는 것처럼 보였지만.
‘진짜 시청자들이랑 친하구나.’
스트리머도 시청자도 서로 어느 정도 받아 줄지 알기에 즐길 수 있다는 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하, 나참. 퍼플 님 봐서 내가 쏜다. 알았지? 제대로 감사드려라?”
지놈은 그렇게 말하며 손가락을 움직였다.
[‘GENOME’님이 구독권 16장을 선물했습니다!]
이윽고 채팅창에 올라온 시스템 메시지.
-충성충성^^7
-역시 형이야! 이런 대인배 같으니!
-왜 지놈이 대인배임? 갓플님 덕인데 ㅋㅋ
-ㄹㅇㅋㅋ 지놈은 중인배 정도 랄까?
-중인배 ㅇㅈㄹ ㅋㅋㅋㅋ
-갓플님께서 나누어주신 구독권 잊지 않겠습니다(눈물콘)(눈물콘)
-킹플!갓플!빛플!
지놈은 싱긋 웃고는 다시 이경복에게 고개를 돌렸다.
“보다시피 이런 방식입니다. 승부는 퍼플 님과 제가 번갈아 슬롯을 돌려서 문장을 완성하면 됩니다! 자, 퍼플 님! 선공과 후공, 어느 쪽을 고르시겠습니까?”
실상 확률로 문장이 완성되는 것이기에 누가 먼저 레버를 당기든 크게 상관은 없었다.
하지만 이경복은 잠시 고민하다가 후공을 하기로 했다.
“제가 오늘은 계속 앞서 갔으니까, 이번에는 뒤에 따라가겠습니다.”
-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시종일관 한결 같은 패기……!
-기만 농도가 치사량을 넘었습니다……!
-아 ㅋㅋ 제발 환기 좀 시켜달라고
-기만(사실임)
-캬! 이러니까 트수들이 뻑이 가지!
시청자들의 발작에 가까운 채팅을 뒤로하고 지놈은 레버를 잡았다.
“좋습니다. 그럼 바로 저의 선공! 첫 단어는 과연 누구일지!”
덜컹하는 소리와 함께 레버가 내려갔다. 쿠르르르 소리를 내며 슬롯이 빠르게 회전했다.
이윽고 멈춘 첫 단어.
[퍼플이]
지놈은 이에 주먹을 불끈 쥐며 리액션을 했다.
“예압!”
-엌ㅋㅋㅋㅋㅋㅋ
-않이;;; 형? 본심 좀 숨겨!
-자와자와~ 자와자와~
-아모른직다!
-ㄹㅇㅋㅋ 벌써 설레발치긴 이르지
채팅창의 반응에 지놈은 가볍게 어깨를 들썩이며 물러났다.
“자, 퍼플 님의 차례입니다! 과연 어떤 단어가 나올 것인가!?”
“뭘로 해 드릴까요?”
이경복이 웃으며 묻자 채팅창이 ‘?’와 ‘ㅋㅋㅋ’로 도배가 됐다.
-뭐지? 무엇을 암시하는 것이지?
-이것이… 자기과시……?
-이게 2주차 스트리머의 도발?
-아 ㅋㅋㅋ 퍼플이면 고를 수 있다고
-엌ㅋㅋ 방송 좀 치누.
-트최입의 자리도 위태로워지나요?
“와, 진짜 순간 머리가 띵했습니다. 여러분, 장오장 앞에서는 나대면 안 된다는 거 명심하세요.”
지놈은 과장스럽게 진저리를 치며 웃었다.
-혀엉? 형 잘못을 왜 우리한테 떠넘겨?
-지놈이요? 그런 사람 모릅니다.
-게놈 말하는 거 아님?
-아 ㅋㅋㅋ 중인배 게놈은 알지
이경복은 계속 방송의 분위기를 주도하는 지놈에게 감탄하며 레버를 잡았다.
그와 함께 이전처럼 서로 다른 느낌이 빠르게 전해져 왔다.
-왜 안 당김?
-슬마 쫄?
-엌ㅋㅋㅋ 나왔다!
-쫄? 그런 건 갓플에게 없음ㅋㅋ
-ㄹㅇ 이번에도 된다고?
-저번에도 한참 뜸들인거같은데?
-큰거온다… 큰거한방온다……
-정보) 퍼플은 1트로 바크에서 골든 샷건을 뽑았다.
지놈의 시청자들은 의문, 퍼플의 시청자들은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잠깐, 1트라고요?”
지놈은 진심으로 놀랐다.
그 역시 바이오 크라이시스를 플레이 했던 바, 황금 산탄총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퍼플이 황금 산탄총을 얻은 건 알았지만 한 번에 얻었다는 건 전혀 몰랐다.
이에 그의 주의가 잠깐 채팅창에 쏠린 순간.
이경복이 레버를 확 잡아당겼다.
“엑?!”
화들짝 놀란 지놈의 입에서 다시금 삑사리가 나오자 채팅창에 웃음이 번졌다.
-ᅟᅦᆨ?
-엒!?
-엑?!
-오오오!
-555555!
이내 모두의 주의는 슬롯으로 쏠렸다. 덜컹하고 멈춘 단어는 다름 아닌.
[지놈에게]
-ㅏ
-헐 ㅋㅋㅋ
-아, 이게 뭔가요!
-아 ㅋㅋㅋ 장오장도 사람이라굿!
-신도 못 이기는 운빨……!
-트수들은 누가 이겨도 이득임 ㅋㅋ
앞의 두 단어에 채팅창은 이미 승부가 결정 난 것처럼 술렁였다. 지놈 역시 여유로운 표정을 보였다.
“아, 이거 제가 져 드리고 싶어도 어떻게 해 드릴 수가 없네요.”
-얄밉누 ㅋㅋㅋㅋ
-신 앞에서 티배깅? 이건 못 참지 ㅋㅋㅋ
-ㄹㅇㅋㅋ 피지컬로는 못 하자너
-게하다 추놈아!
-줄여서 게추? 아 ㅋㅋ 나부터!
-그 와중에 퍼플 담담한 거 무엇?
-신이라 멘탈도 딴딴함ㅋㅋㅋ
시청자들은 모르겠지만 어차피 이경복은 손해 볼 게 없었다. 그러니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그는 차분하게 있을 수 있었다.
“에헤이, 제가 손님 모셔 놓고 뜯어먹는 그런 몰상식한 사람은 아닙니다. 아직 역전의 기회는 남아 있다는 거! 그럼 판돈이 얼마나 될지, 한번 봅시다!”
지놈은 그렇게 말하며 레버를 잡아당겼다.
‘이왕이면 크게 나오면 좋긴 한데.’
설정해 둔 구독권의 숫자는 10부터 100까지. 하나당 가격이 1만 원이었으니 최소 10만 원부터 100만 원의 지출이 발생할 터였다.
하지만 지놈은 그 지출이 아깝지 않았다. 오히려 금액이 커질수록 입소문을 타기에 좋을 터.
마케팅 비용이라 생각하면 오히려 저렴한 편이었다.
그 사이 돌아가던 슬롯이 멈추었다.
“와.”
이경복은 그 결과를 보고 자기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구독권 100장을]
가장 큰 수치가 나와 버렸다.
하지만 지놈은 크게 놀라지 않았다.
‘예상대로네.’
애당초 금액이 높은 순으로 확률이 크게 설정해 두었기 때문이었다.
“이야, 이게 대체 얼마입니까!? 무려 백만! 백만 원이 걸린 승부가 됐습니다!”
지놈의 멘트에 채팅창이 환호와 열광하는 이모티콘으로 가득해졌다. 누가 이기든 혜택은 자신들에게 돌아오니 당연한 일이었다.
“이제 마지막! 운명을 결정지을 마지막 단어! 그 승패는 이제 퍼플 님에게로 넘어갔습니다! 과연 그의 운마저도 장인 오브 장인, 신의 영역일 것인가!”
지놈은 그렇게 말하며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동시에 낮은 북소리가 울리고 핀포인트 조명이 퍼플에게로 모였다.
‘무대의 주인공은 게스트여야 한다.’
사실 지놈은 선공이든 후공이든 마지막은 퍼플에게로 넘기기로 할 작정이었다. 만약 퍼플이 선공을 택했다면 겁쟁이 흉내를 내서라도 선택을 넘길 생각이었다.
“아직 승패는 모릅니다! 마지막 슬롯에 있는 역전 단어는 오직 하나!”
-않이;;;
-하나면 너무 적은 거 아니냐굿!
-게스트 삥을 뜯는 호스트가 이따!?
-예림이! 그 슬롯 까봐!
-사쿠라네? 사쿠라여?
-싸늘하다. 가슴에 구독권이 날아와 꽂힌다. 개꿀.
-ㅁㅊ ㅋㅋㅋ 명대사 틀기 무냐고!
-개꿀 ㅇㅈㄹ ㅋㅋㅋㅋ
시청자들 대부분이 이미 승패가 결정 났다고 생각했다. 느리게 회전하는 슬롯에는 ‘선물한다’, ‘보내준다’, ‘던져준다’ 등등 지놈의 승리만을 암시하는 단어만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내가 비용을 댄다고 해도 좀 이상하네.’
지놈은 채팅창에서 이경복에게 시선을 주고 의아함을 느꼈다.
스트리머의 특성상 보이는 이미지를 신경 쓰기 마련이고, 보너스라도 승부는 승부. 패배를 직감한 스트리머는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게 마땅하다.
그러나 주변의 호들갑에도 이경복은 차분히 레버를 잡고 있었다.
‘……설마 진짜 역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그 의문이 드는 순간, 이경복이 힘껏 레버를 당겼다. 그와 동시에 모두의 시선이 회전하는 슬롯으로 향했다.
일순간 찾아온 정적.
모두가 숨을 죽인 가운데 이경복은 혼자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는 이미 결과를 알고 있었다.
[빼앗는다]
이윽고 멈춘 슬롯의 단어.
“야잇……!”
지놈은 발작하듯 소리를 냈다.
-헐? 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역전이 나온다고?
-퍼멘! 퍼멘! 퍼멘!
-내가 큰거 온다고했지!!!
-아 ㅋㅋㅋ 갓플 팔로우 안 박은 흑우 읍제?
-리플? 아니 나는 퍼플!!
-엌ㅋㅋㅋㅋ 퍼플코인 바로 풀매수 각이죠?
-지금이야! 얼른 팔로우 박아!
-아 ㅋㅋㅋ 공짜는 못 참지!
-배교자들 OUT! 배교자들 OUT!
-신께서 구독권을 원하신다!
-태ㅇ… 아니 퍼플 만세!!!
-Deus Vult! Deus Vult! Deus Vult!
채팅창은 열광에 휩싸였다.
지놈은 연출이 아니라 진심으로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아니, 이걸 지네? 실화야? 진짜 다큐야? 몰카 아냐? 퍼플 님 어떻게 한 거예요!?”
“그냥 당겼죠.”
-앜ㅋㅋㅋㅋ
-ㄹㅇㅋㅋ 슬롯머신인데 당기는 거 밖에 더 있냐굿!
-마지막까지 퍼-펙
-현실부정한다고 바뀌누 ㅋㅋㅋ
-???: 무승부로 하지 않을래?
-그런 거 없다 지놈아 ㅋㅋㅋㅋ
-절대! 안 바꿔준다! ㅋㅋㅋㅋ
-다큐? 완전 예능인데? 엌ㅋㅋ
-꿀잼각 오졌고 ㅋㅋㅋㅋㅋ
-장오장은 역시 다르누 ㅋㅋㅋ
채팅창의 반응에 지놈은 이내 머리를 감싸 쥐며 침울한 얼굴을 지어냈다.
“와, 백만 원……! 여러분 저 혼자 있고 싶어요. 다 나가 주세요.”
-엌ㅋㅋ 나가려면 님이 나가시든가.
-지놈은 집에 가! 우리는 갓플 님이랑 놀 거야!
-자기 방송에서 쫓겨나는 수듄 ㅋㅋㅋ
이경복은 웃으며 시청자들을 돌아봤다.
“오늘 정말 귀한 경험 했습니다. 초대해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않이;;; 님은 왜 갈려고 함
-제발 날 떠나지 마!
-좀 더 놀다가!
-지놈아 얼른 썩 꺼지지 못할까!
-ㄹㅇㅋㅋ 방송 넘기고 구독권이나 충전하라고
무수한 시청자들의 요청에도 이경복은 그저 미소 지을 따름이었다.
“그래도 휴방일은 휴방일이라 게임은 안 할 거예요. 저희 편집자님이랑 매니저님도 쉬셔야죠.”
-휴방일(근무)
-휴식(출근)
-이게 블랙기업 퍼플의 복지……?
-휴방일 조기 퇴근?
-이 무슨 비인간적인 조합……!
-아 ㅋㅋ 이거 인질이 너무 센데?
이경복은 가볍게 손뼉을 치며 주의를 환기시켰다.
“오늘 찾아와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다음 방송도 기대해 주시고 제 채널도 자주 놀러 오세요! 트바!”
-퍼바 ㅠㅠ
-벌써 그립읍니다(눈물콘)
-어? 근데 이거 지놈 방송 아님?
-엌ㅋㅋㅋ 왜케 자연스럽누
-퍼플 방송인줄ㅋㅋㅋ
그 채팅을 마지막으로 방송이 종료되었다.
* * *
늦은 밤, 번화가의 한 술집.
“고생하셨습니다!”
“짠!”
스트리머 퍼플 팀과 지놈 팀은 성공적인 합방을 축하하며 회식자리를 가졌다.
“먹고 싶은 거 다 시키세요. 전부 저희가 냅니다!”
“그렇게 말하시면 저 진짜 시킵니다?”
“알아서 자제 좀 해라.”
지놈의 말에 최병훈이 장난스럽게 말하자 박주호가 눈치를 주었다.
지놈은 그 모습에 웃음을 흘렸다.
“괜찮습니다. 세 분이서 드시면 뭐 얼마나 드신다고. 걱정 마시고 많이 드세요.”
“감사합니다.”
“괜찮으시대잖냐!”
“어휴…….”
세 친구는 각기 다른 반응을 보이며 배를 채웠다. 그렇게 잡담을 나누며 어느 정도 배가 채워질 즈음.
“야, 나 저쪽 편집팀이랑 잠깐 얘기 좀 하고 올게.”
“아, 나도 매니저님이랑 체크 좀 하고 온다.
최병훈과 박주호가 자리를 잠깐 비웠다. 덕분에 이경복은 지놈과 독대를 하게 됐다.
“덕분에 방송 잘 뽑혔어요. 다시 감사드리겠습니다.”
“아닙니다. 저도 덕을 많이 봤는데요.”
지놈이 먼저 말꼬를 텄다. 이경복은 그와 가볍게 잔을 나누었다.
‘괜찮은 사람이다.’
사전 미팅 때도 느꼈지만 지놈에게는 특유의 불쾌한 느낌이 들지 않았다. 실제로 그는 인성이 괜찮았고 스트리머로서 배울 점도 많은 사람이었다.
물론 그의 곁에 있는 친구들 정도는 아니지만 구태여 거리를 둘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다음에 합방도 괜찮아요? 그, 거너 그라운드 이야기요.”
“아, 네네. 근데 일정은 확정을 못 드리겠네요.”
“아, 일정은 괜찮습니다. 이게 사실 시청자들 중에 합방하기로 안 해 놓으면 또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같이 하기로 했다는 것만 확실하면 상관없습니다.”
지놈은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이경복은 고개를 끄덕이고 슬쩍 질문을 던졌다.
“근데 지놈 님은 방송할 때랑은 약간 다르신 것 같네요.”
“네? 아아. 매번 하이텐션으로 살면 피곤하니까요. 방송 외적으로는 원래 모습이 나오는 거죠.”
방송에서는 말도 많고 호탕한 모습을 보였지만 지금은 차분하고 잔잔한 느낌이었다.
그는 어깨를 으쓱이고는 말을 이었다.
“이쪽 업계가 남다르지 않으면 살기가 퍽퍽한 곳이라서 컨셉이 중요합니다. 시청자들이, 세상이 원하는 모습에 저를 끼워 맞추는 거죠.”
“아…….”
“근데 퍼플 님은 안 그러셔도 됩니다.”
“네?”
“천재시잖아요. 그것도 그냥 천재가 아니라 진짜 역대급입니다. 제가 방송이랑 좀 모습이 다르다고 해서 방송에서 말한 게 다 가식이란 뜻은 아니에요.”
진심이 담긴 말이었다.
이경복은 지놈이 생각한 수준을 월등히 넘었다.
“퍼플 님 정도면 세상에 맞출 필요가 없습니다. 아니, 오히려 세상이 퍼플 님에게 맞춰지죠.”
이경복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무어라 대답하기도 전이었다. 자리를 비웠던 최병훈과 박주호가 돌아왔다.
“야, 우리 파트너 신청해야겠다.”
“음, 나도 마침 그 이야기를 듣고 온 참이다.”
두 사람의 말에 이번에는 지놈이 눈을 껌뻑였다.
“어? 아직 트라이 파트너 아니었어요?”
“아, 네네. 저희가 예상한 것보다 채널 성장이 좀 빨라서요.”
“트라이 파트너?”
이경복의 물음에 최병훈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트라이 파트너 프로그램이라고 있어. 여기에 가입해야 채널 구독이랑 구독 이모티콘이 활성화되거든.”
“그리고 방송 중에 광고가 송출된다. 후원이 없더라도 고정 수입이 생기는 거지.”
박주호가 설명을 보충했다. 이경복은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방송 중에 광고가 나온다고?”
수입이 생기는 건 나쁘지 않다.
하지만 방송 도중 나오는 광고는 시청자들의 몰입감을 해칠 수 있지 않나.
‘……그래도 나 혼자 하는 일은 아니니까.’
만약 혼자 하는 방송이었다면 좀 더 고려해 볼 사항이었을 터였다. 하지만 그의 곁에는 자신을 믿고 함께해 주는 친구들이 있었다.
그들의 입장 역시 배려해 주어야 하지 않겠나.
“시청자에게도 나쁜 이야기는 아닙니다. 오히려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아요.”
그때 지놈이 불쑥 말을 꺼냈다. 세 사람의 시선이 그에게 돌아갔다.
“구독을 하면 구독 월수가 매번 표기가 됩니다. 1개월, 2개월 쌓여 가죠. 그 시간이 길어질수록 시청자와 스트리머의 결속은 더 강해집니다. 저는 6년 넘게 구독해 주시는 분도 계세요.”
“6년이나요?”
이경복은 눈을 크게 떴다.
6년 동안 계속 방송을 찾아 주는 시청자, 그것도 매월 구독료를 내면서 도움을 주는 사람이 있다니 상상만 해도 행복하지 않나.
“네. 그리고 스트리머만 좋은 게 아닙니다. 구독자들은 구독 이모티콘으로 다른 시청자와 자신을 구분해요. 채팅창에서 더 돋보이고, 스트리머 눈에 잘 띄게 되죠.”
“단순한 돈 문제가 아니라는 거네요.”
이경복은 그제야 구독의 메리트를 이해했다.
자신이 사람들의 관심을 원하는 것처럼, 시청자들 역시 스트리머의 관심을 원한다.
‘아직 배울 게 많네.’
이내 그는 미소를 지었다.
“바로 할 수 있는 거야?”
“기준은 이미 충족했지.”
“신청만 하면 될 거다.”
친구들의 말에 그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혼자라면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도와주는 이들이 있었다.
* * *
다음날, 이른 오후.
퍼플의 팬페이지는 새로운 소식에 들떴다.
[퍼플이 트라이 파트너가 됐습니다!](NEW)
새로운 공지에 팬들은 너나할 거 없이 기뻐했다.
[드디어 친구비 낼 수 있겠네]
[안 그래도 방송 후원 랜덤으로 열려서 근질근질했는데 잘 됐닼ㅋㅋ
않이;; 다른 스머 중에는 후원달라고 ㅈㄹ하는 놈도 많은데 우리 갓플은 왜 돈 욕심이 읍냐구!
아 ㅋㅋ 방송 시작하자마자 바로 구독간다 ㅋㅋㅋ]
[-이거 맏따 ㅋㅋㅋㅋ]
[-갓플은 돈쭐 좀 내주는 게 맞다]
[-ㄹㅇㅋㅋ 후원 막아둔 거 어이없음]
[-공짜로 보기 너무 아깝자너]
[-아 ㅋㅋ 돈 주고 방송 오래 시킬 거라고]
그들이 두려워하는 건 언젠가 퍼플이 방송계를 떠나는 것. 업계를 떠나는 스트리머들의 이유는 각양각색이지만 그중에서도 단연코 비중이 높은 건 수입 문제가 아니겠는가.
[님들 몇 티어 구독할 거?]
[난 바로 3티어 박을 생각임
갓직히 1티어로 누구 코에 붙이겠음?
트라이쉑들 수수료 겁나 처먹는 거 뻔히 다 아는 사실인데 ㅋㅋ
[-ㄹㅇㅋㅋ 수수료 찾아보고 놀랐다.]
[-트라이가 50% ㅋㅋㅋ]
[-학식이나 급식이들 아니면 최소 2티어는 가야 되는 거 아님?]
[-2티어가 3만 원, 3티어가 5만 원인디. 좀 세다잉.]
[-아직 임티가 없어스 좀 고민 중]
[-걍 각자 알아서 하면 됨 ㅋㅋ]
채널 구독에도 종류가 있었다.
구독권의 티어(Tier)가 높을수록 혜택을 많이 받는다.
보통 티어에 따라 사용할 수 있는 이모티콘의 제한을 두곤 하는데, 아직 퍼플에게는 이모티콘이 없지 않나.
그리 팬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와중 새로운 공지가 올라왔다.
[구독 이모티콘 업데이트](NEW)
[안녕하세요!
퍼펙트플레이 편집자입니다!
이번 트라이 파트너 등록과 더불어 구독 이모티콘이 업데이트 되었습니다.
<1티어>
[퍼][펙][트][플][레][이]
<2티어>
[블][랙][기][업] [완][벽]
<3티어>
[장오장][퍼멘][퍼렐루야][퍼자감]
아쉽게도 제 실력이 부족해서 글자 이모티콘뿐입니다.
앞으로 외주나 디자이너분을 모셔서 지속적인 업데이트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편집자, 최병훈이 비교적 쉽게 만들 수 있는 ‘큰글자콘’을 완성해서 등록했다는 소식이었다.
[-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블랙기업 공식인증 무냐구!]
[-고통 받는 편집자니뮤ㅠ]
[-아 ㅋㅋㅋ 3티어 인질 너무 센데?]
[-무적권 3티어 가야겠누 ㅋㅋ]
[-나 이번달 치킨 안 먹어!]
팬들이 채팅창에 이모티콘 쓸 생각에 싱글벙글하는 사이였다.
[지놈 방송 한다!]
뜬금없이 지놈 방송을 알리는 게시글이 올라왔다. 팬들로서는 어리둥절한 상황이었다.
팬페이지를 착각한 것일까. 하지만 지놈은 따로 팬카페를 운영하고 있기에 그럴 이유는 없었다.
[장인해부학 후속 방송 시작함!
갓플이 왜 갓플인지 설명해준다니까 놓치지 말고 ㄱㄱ]
내용을 확인한 팬들은 그제야 이해했다.
[-아, 이거 후속 방송도 있음?]
[-옼ㅋㅋㅋㅋㅋㅋㅋ]
[-방송 시작 전까지 보면 되겠누]
[-땡큐 헤임달!]
장인해부학이라는 이름답게 ‘해부’라는 과정이 남아 있었다. 팬들은 곧바로 링크를 타고 지놈의 방송을 시청했다.
“자, 어느 정도 사람들 모인 거 같으니까 해부 시작할게.”
지놈은 말끔한 백색 가운에 안경까지 쓰고 있었다. 의사라는 컨셉에 충실한 복장이었다.
“알다시피 우리가 쓰는 캡슐은 두뇌를 이용한 기계지. 사실 피지컬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뇌지컬인 거야. 근데 뇌지컬이라고 하면 또 혼동하니까 그냥 피지컬이라고 할게.”
지놈은 캡슐의 이미지를 띄웠다가 옆으로 치웠다.
“먼저 이게 어제 모신 퍼플님의 두뇌야. 아, 혹시라도 오해하는 애들 있을까 말하는데 장인분들 모시면 다 협의하고 스캐닝한 거야. 이번 컨텐츠 오랜만에 해서 까먹었을까 봐 이야기하는 거다? 근데 다 알지?”
그가 그리 말하며 손가락을 움직이자 3D로 구현된 두뇌 이미지가 화면에 나타났다.
-아 ㅋㅋㅋ 해부 한두 번하나(몰랐음)
-이것이 신의 뇌인가!
-퍼플 : 뭐야, 내 뇌 돌려줘요!
-이상하게 뇌도 잘나 보이누.
지놈은 슬쩍 채팅창을 확인하고 다시 말을 이어갔다.
“자, 이걸 보면 기초 피지컬, 그리고 근딜과 원딜 테스트 도중에 활성화된 두뇌 영역이 표시가 돼요. 나 같은 경우는 이렇게 나오거든.”
그가 손을 돌리자 또 하나의 두뇌 이미지가 나타났다.
-이것이 입지컬의 뇌인가!
-형한테 뇌가 있었다고?
-이상하게 뇌가 못나 보이누.
-온도 차이 무엇 ㅋㅋㅋㅋ
“아는 사람은 다 알겠지만 우리의 오감은 두뇌에 각기 해당하는 영역이 있거든. 예를 들어서 뭔가를 보면 여기, 시각피질이 활성화되는 거지.”
지놈은 채팅창의 드립을 무시하고 다시 진행했다. 그 말과 함께 두뇌 이미지에 특정 부분이 밝게 빛을 발했다.
“그렇게 상황에 따라서 특정한 영역이 활성화 되는 게 일반적이지. 일반적인데…….”
-인데?
-ㅁㅇㅁㅇ
-설마 퍼플은 뭔가 다른가?
-큰 거 온다! 큰 거 온다!
-그 반응속도 보면 시냅스 간 교류가 미친 듯이 빠를 듯
-ㄹㅇㅋㅋ 신의 영역이자너.
지놈이 잠시 뜸을 들이자 시청자들은 각자 이어질 말을 추론했다.
“아니, 나 진짜 놀란 게. 퍼플 님은 그런 수준이 아니야.”
하지만 그 어느 것도 지놈의 결론을 맞추지 못했다. 채팅창에 무수한 물음표가 떠오르자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시각, 청각, 후각, 촉각, 미각 그 외에 모든 감각, 모든 영역이 활성화 되어 있어.”
그는 퍼플의 두뇌 스캔 결과를 공개했다. 마치 전구처럼 두뇌 전체가 빛을 발했다.
“그것도 계속, 상시 활성화되어 있는 상태. 불필요한 상황에서도! 와, 퍼플 님은 진짜 우리 같은 일반인이랑은 완전히 달라. 이거 보고 나서 난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
지놈은 무척이나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새로운 인류, 신인류라고 말해도 좋을 정도라고.”
스트리머 퍼플, 이경복은 완전히 궤가 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