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화 - 벌써 합방하자고?
지놈은 가볍게 기지개를 켰다.
“아나, 이 엿 같은 게임 드디어 깼네. 아니, 이런 건 PC시절에만 나올 줄 알았는데 가상현실 시대에도 이런 게 나오냐?”
그는 뻐근해진 어깨를 주무르며 쇠스랑을 내던지고 장독대에서 빠져나왔다.
-엌ㅋㅋㅋㅋ 보는 우리는 개꿀잼인디
-태초마을 한 번만 더 가주지
-이거 하다가 눈물 터진 스머들도 엄청 많음 ㅋㅋㅋㅋㅋ
-PC때는 그래도 키마로만 했는데 더 괴로워졌쥬?
-게놈들 연령대 무엇?
-ㄹㅇㅋㅋ 아재들 집합소냐구!
플레이어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게임은 스트리머에게는 좋은 컨텐츠 소재였다.
지놈은 고개를 내저으며 짐짓 질색했다.
“진짜 이런 게임들은 개발자가 켠왕 인증해야 발매하도록 법을 만들어야 된다니까. 아, 일단 좀 쉬자 쉬어.”
그는 그리 푸념하며 게임을 종료하고 스튜디오로 돌아왔다. 하지만 말이 쉬는 시간이지 진짜로 쉴 수는 없었다.
“간식이나 좀 먹을까. 아나, 다이어트 좀 해야 되는데.”
-혀엉? 생색을 왜 여기서 내?
-그래봤자 진짜로 먹는 것도 아니자너!
-ㄹㅇㅋㅋ 여기선 뭘 먹어도 상관없는데.
가상현실에서도 음식물 섭취가 가능했다. 정확히는 미각을 자극시키는 것이니 다이어트와는 연관이 없었다.
“얘들아, 그래도 제한이 있잖냐. 응? 가상현실이라도 먹는 건 신중히 골라야 된다 이 말이야.”
지놈은 메뉴판을 훑으며 말했다.
가상현실에서 음식 섭취를 무한정 허가하게 되면 현실의 식사를 잊게 될 수 있었다. 실제로 제한이 없었던 초기에는 식사를 깜빡해서 응급실로 간 환자도 많았다.
“하, 킹뚜껑이나 하나 먹어야겠다.”
지놈은 컵라면 하나를 불러 오고 자리를 잡았다.
-혀엉…… 요즘 어려워?
-트최피 자리 내주고 일자리가 많이 없어졌지?
-입지컬이라도 잘 지켜야 할 텐데……
-안쓰럽누 ㅠㅠ
-게놈들 ㅋㅋㅋ 후원은 안 하고 걱정만 하는 거 킹받네
그리 떠들썩한 와중 누군가 영상 후원을 넣었다.
[‘왜합방안함?’님이 ‘5,000’원의 영상을 후원하셨습니다.]
알람 소리에 눈을 돌린 지놈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응? 뭐야, 퍼플 님이시네? 아, 얘들아. 늦게 온 애들은 모르겠지만 나 약속 지켰다? 구독권 100장 드렸어.”
-약속? 패배자의 상납품이 아니었나?
-ㄹㅇㅋㅋ 포장하는 거 오졌고
-깐족거리다가 호되게 당했쥬?
-신에게 바쳤으니까 공물이라고 해야 맏따.
채팅창을 보며 실소를 흘린 지놈은 영상을 재생하며 컵라면을 들이켰다.
뜨뜻한 국물이 목을 넘어가려는 순간.
<이전 지놈 님과 거너 그라운드 합방 얘기를 했었잖아요? 근데 제가 아무것도 모르고 합방을 하면 실례가 될 것 같아서 오늘은 연습을 좀 해 보려고 합니다.>
“푸흡!”
들려오는 이경복의 목소리에 지놈은 사레가 걸렸다.
-아! 지노미 형!
-나이 들면 뭘 자꾸 흘리더라.
-늙고 병든 우리 지노뮤ㅠ
-먹지마세요! 피부에 양보하세요^^
-아 이거 구독권 선물하고 난 뒤네 ㅋㅋㅋㅋ
-엌ㅋㅋㅋ합방ㅋㅋㅋㅋㅋ
처음부터 방송을 본 시청자들은 그가 왜 그러는지 금방 유추해 냈다.
“아니, 아니…! 바로 거그를 하셨다고?”
지놈은 구독권을 선물하고 퍼플의 방송을 나왔었다. 그에게도 방송 일정이 있었고, 구독인사가 꽤 길게 이어졌기 때문이었다.
“아…… 이럴 줄 알았으면 기다렸다가 일정 잡을 걸.”
그가 진심으로 아쉬워하자 채팅창에 웃음이 번졌다.
-그냥 기다렸다가 합방하기로 하면 됐쥬?
-ㄹㅇㅋㅋ 괜히 또 돌고 도네
-버스 지나갔습니다^^
-제로백 버스라 그런지 역시 잡기가 힘드누 ㅋㅋㅋㅋ
-그걸 못 참고 ㅉㅉ
시청자들이 장난스럽게 놀리자 지놈은 손사래를 쳤다.
“야야, 그래도 방송 일정을 막 바꾸는 건 안 되지. 그럼 내가 공지하는 이유가 없잖냐. 너희들 오늘 나 장독대 게임 하는 거 보러 온 거잖아? 안 그래?”
시청자들은 방송 일정과 내용을 보고 기대를 품고 온다. 그런데 갑자기 방송을 바꿔 버리는 건 큰 실례가 될 수 있었다.
“이건 너희들과 나의 약속 아니냐. 내가 또 의리 하나는 끝내주잖니. 게다가 이런 즉흥적인 합방은 퍼플 님께도 실례가 될 수 있어요.”
-여기서 갓플 방패를 꺼낸다?
-아 ㅋㅋ 킹받게 맞말만 하누
-역시 형은 입지컬이야.
-ㄹㅇㅋㅋ 짜장면 먹으러 왔는데 파스타 꺼내면 빡치지.
-하지만 갓플과의 합방은 한우 랍스타 트러플 파스타인걸?
-그러네? 절.대.합.방.해!
-아 ㅋㅋ 지놈 솔플보다 갓플 합방이 무적권 낫지.
시청자들의 반응에 지놈은 헛웃음을 흘렸다.
“이것들은 생각해 줘도 뭐라 그러네. 아무튼 일정은 조만간 딱 잡아 볼 테니까 기다려 봐. 매니저 님? 알죠?”
-결국 일하는 건 매니저니뮤ㅠ
-아 ㅋㅋㅋ 형은 입만 놀린다고.
-여기도 블랙기업이야?
시청자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고 지놈은 웃으며 2부 방송을 시작했다.
* * *
이경복은 1일차임에도 5게임 모두 1위로 끝냈다. 방송이 끝나자마자 큐튜브에 영상이 올라왔다.
최병훈이 가장 먼저 작업한 첫 게임의 하이라이트 영상이었다.
[-아놔 ㅋㅋ 티밍하는 쓰렉들이 아직도 있누.]
[ㄴ갓플 참교육 미쳤고 ㅋㅋㅋ]
[-와… 장인 해부학 때도 봤지만 몸놀림이 장난 없네]
[ㄴHe is Korean Hokake]
[ㄴ이건 또 뭔 미친소리야 ㅅㅂ ㅋㅋㅋ]
[-(1:21) 에너미 쉴드 뭔데 ㅋㅋ]
[ㄴ바로 총 뺏고 반격 개지림]
[ㄴ탈인간 급 반사신경 ㄷㄷ]
[-(1:43) ㅂㅅ인가? 총 든 둘이 당했는데 도끼 믿고 덤비는 능지 무엇?]
[ㄴ주먹으로 헤드샷 당함 ㅋㅋ]
[ㄴ복싱했다더니 ㄹㅇ인 듯]
[-와! 첫 파밍부터 풀파츠 엠포라고?]
[ㄴ신의 편애를 받는 자……]
[ㄴ자기애가 강하다는 뜻?]
[ㄴ엌ㅋㅋㅋ 좀 치누 ㅋㅋㅋ]
[ㄴ신은 퍼플이야!]
솔로게임에서 팀을 꾸리는 어뷰징 행위는 누구나 싫어했다.
때문에 이경복이 초반 군사기지에서 세 플레이어를 처리하는 구간에서는 속 시원하다는 반응이 대다수였다.
[아 ㅅㅂ 본방을 봤어야 됐는데]
[ㄴ킹시보기로 보면 되지 ㅋㅋ]
[ㄴ채팅을 못 치잖슴!]
[예로부터 또샷또킬은 바크 때부터 인정된 진리였다.]
[ㄴ않이;;; 바크랑은 차원이 다름]
[ㄴ갓플이 스나 플레이하면 어케 죽는지도 모를 듯ㅋㅋㅋ]
[(3:01)탕! (3:03)탕! (3:23)탕!]
[ㄴ시간으로 보니까 더 미쳤누 ㅋㅋㅋ]
[ㄴ그나마 마지막은 조금 현명했음ㅋㅋ]
[ㄴㄹㅇ 바로 숨어서 좀 더 오래 살았다.]
[ㄴ오래(20초)]
[이런 플레이가 가능함? 진짜 거그임?]
[ㄴ아 ㅋㅋㅋ 퍼린이 어서 오고]
[ㄴ가능함 ㅋㅋㅋ.]
[ㄴ(퍼플만)됩니다.]
알고리즘이나 검색으로 유입된 새로운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도저히 이경복의 플레이가 진짜라고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 뒤로도 댓글이 계속 달리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댓글이 달린 구간이 있었다.
[-이건 진짜 미쳤다.]
[ㄴ쌉인정]
[ㄴㄹㅇㅋㅋ 앞에서 봤던 게 머릿속에서 다 날아감]
[ㄴ그건 쵸큼;;]
[-저 정도 거리에서 수류탄 핀을 총알로 맞췄다고?]
[ㄴ글만 보니까 미친 소리 같누 ㅋㅋㅋㅋ]
[ㄴ글이 아니라 말로만 해도 미친 것 같음 ㅋㅋㅋㅋ]
[ㄴ영상 없었으면 바로 차단했다 ㅋㅋㅋ]
[-와… 뭔가 싶었는데 탄환 카메라로 보니까 정확하네]
[ㄴ편집도 잘했음 ㅋㅋㅋㅋ]
[ㄴㄹㅇㅋㅋ 탄환카메라로 바뀌면서 슬로우 걸리는 거 존멋]
[ㄴ이거 진짜 ㅋㅋㅋ 탄환이랑 핀이랑 부딪칠 때 소리 다 죽이고 팅하는 소리만 살린 거 소름]
[ㄴ와 ㅋㅋㅋ 나만 그런 거 아니였네]
[ㄴ스머도 개 쩔긴 한데 편집자가 뭘 좀 아네 ㅋㅋ]
바로 마지막, 이경복이 나무 뒤에 숨은 상대의 수류탄 핀을 맞춘 장면이었다.
[-이게 되긴 하나 보네?]
[ㄴ아 ㅋㅋ 사격장에서 해봐야겠다.]
[ㄴ멈춰 있다고 쉬울 거라 생각하는 거?]
[ㄴ갓직히 움직이는 건 못쏨 ㅋㅋ]
[-아 ㅋㅋ 불렛핀 챌린지 간다]
[ㄴ않이;; 야미 챌린지도 못 끝냈는데]
[ㄴ미친ㅋㅋㅋㅋ 챌린지 제조기냐구!]
[ㄴ???: 이걸 왜 못하지?]
[ㄴ???: 챌린지는 도전이라는 뜻 아닌가요? 이게 도전?]
[ㄴ아 ㅋㅋㅋ 진짜 그렇게 생각할 것 같누]
좋아하면 따라하게 되는 법.
퍼플의 팬들은 야미 챌린지에 이어 이것 역시 따라 해 보고 싶었다. 덕분에 이경복의 의사와는 다르게 그가 원작인 챌린지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영상의 조회수가 빠르게 상승하며 20만 고지를 돌파했다. 그 기세 때문일까.
[오늘의 인기 급상승 동영상#4]
영상 하단에 큐튜브가 태그를 붙여 주었다. 이른바 ‘알고리즘의 선택’을 받게 된 것이다.
그와 더불어 상승세는 더 탄력을 받았고 수많은 사람들이 댓글을 달았다.
그리고 그 수많은 댓글 중에서도 순식간에 추천을 받으며 상승한 댓글이 하나 있었다.
[(4:31) 와…… 이분 사격 자세 너무 완벽하시네요. 근육 밸런스는 물론이고 호흡 조절까지 정말 퍼펙트입니다. 3대 500은 가뿐하게 치실 것 같네요.]
최고 인기 구간인 수류탄 안전핀 샷이 아니라 이경복의 리드샷에 달린 댓글이었다.
그 내용의 어투가 너무 담담했고 내용 자체도 ‘어그로’가 끌릴 만한 부분이 없었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추천을 누른 이유는 하나였다.
[머슬 갤러리]
바로 그 댓글의 게시자 때문이었다.
[ㄴ????????]
[ㄴ찐이시다!]
[ㄴ올려! 올려!]
[ㄴ아조씨 왜 여기 있어요!?]
[ㄴ와우~ 친구들! 민머리 아저씨야!]
[ㄴ엌ㅋㅋㅋㅋㅋ 대기업 오브 대기업 강림]
[ㄴ민둥산 아조씨?]
머슬 갤러리는 특전사 출신 건강 정보 큐튜버, ‘민둥산’이 운영하는 채널의 이름이었다.
정확하고 유용한 정보를 유머러스하게 전달하고 덧붙여 다른 스트리머 및 방송인들과 합방 및 컨텐츠 제작으로 인기를 얻었다.
그 구독자가 벌써 300만을 넘었으니 거물 중에 거물이 나타난 셈이었다.
[ㄴ와 ㅋㅋㅋ 민둥산이 극찬할 정도면 진짜 개쩌는 거네]
[ㄴ이 아조씨도 미친 괴물인데 ㅋㅋㅋㅋㅋ]
[ㄴ괴물은 괴물을 알아보는 법!]
[ㄴ괴괴알 무엇?]
[ㄴ이거 혹시 섭외 떡밥 아님?]
[ㄴ오 ㅋㅋㅋ 그럴 수도]
몇몇 이들은 민둥산이 퍼플과 같이 컨텐츠를 만들려는 게 아닐까 의심했다.
실제로 그는 다른 큐튜버와 합방하기 전에 해당 채널 영상에 응원차 댓글을 남기곤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뒤로는 머슬 갤러리의 댓글이 달리지 않았기에 진위여부는 알 수 없었다.
* * *
다음날, 팀 퍼펙트는 회의를 진행했다.
하지만 평소와 달리 장소는 카페가 아니라 최병훈의 오피스텔이었다.
“어우… 미안하다야. 내가 분명 알람을 맞춰 놨는데…….”
늦게까지 영상 편집에 매진하다가 최병훈이 시간을 맞추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우리는 15분을 허비했지. 시간 약속은 사회생활의 기본이다.”
박주호는 비몽사몽인 친구를 흘겨보며 말했다. 하지만 단순히 책망하는 건 아니었다.
“그런 기본조차 못 지킬 정도면 라이프패턴이 무너진 거다. 몸은 스스로 챙겨야지.”
“그래, 열심히 해 주는 거야 고마운데 너무 무리하는 거 아냐?”
걱정이 담긴 말에 이경복도 한 마디 거들었다. 그는 이내 분위기 전환을 위해 웃음기를 띠고 말을 이었다.
“내가 너 보험 들어 준다는 게 몸 축내라는 거 아니잖냐.”
“진짜 미안하게 됐다야. 아니, 근데 이게 영상 업로드는 또 시간이 생명이라서.”
최병훈은 머리를 긁적이며 사과했다.
“그건 인정하지. 이번 영상은 특히 반응이 괜찮았다. 게다가 인기 급상승 영상 3위까지 오르기도 했고.”
“그래, 그렇다니까? 야, 그리고 솔직히 이건 내 탓만 있는 게 아니야. 너도 책임이 있어 인마.”
“내가?”
이경복은 갑자기 자신이 지목되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래. 자식아. 와나, 내가 편집일 하면서 이렇게 고르기 어려운 건 처음이라니까? 다 넣자니 너무 많고, 골라내자니 아깝고. 편집보다 고민하는 시간이 더 길었어.”
편집자로서의 경력과 숙련도는 자신 있었다. 중요한 건 그 영상의 선택이었다.
요리사가 아무리 솜씨가 좋아도 재료가 엉망이면 요리를 망치듯, 영상 소스를 선택하는 건 편집자에게 가장 중요한 과정이었다.
그런데 이경복의 플레이 영상에서 뽑아내는 소스는 부족한 게 아니라 너무 많아서 문제였다.
“그것도 맞긴 한데 지금 업무량이 너한테 몰려 있는 건 사실이다.”
“아니 뭘, 너도 바쁘면서.”
“빈말이나 듣자고 한 얘기가 아니야. 안 그래도 필요한 게 아닌가 싶었는데, 보조편집자 하나 더 구하는 게 어떨까?”
박주호의 제안에 멋쩍어 하던 최병훈이 눈살을 찌푸렸다.
“뭐? 아니 보조가 왜 필요해? 내가 전부 소화 못할 것 같아서?”
“그런 의미가 아니다. 네 실력이야 충분히 검증됐어. 문제는 네 체력이지.”
“야, 그건 오늘만 그런 거야. 이것도 익숙해지면 금방 적응 된다니까?”
“그 전에 탈이 날 가능성은 부정 못하겠지. 너 혼자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위한 거다.”
두 친구가 서로 목소리를 높이려 하자 이경복이 중간에 끼어들었다.
“그럼 이렇게 하자.”
“……음?”
“어떻게?”
“내 생각에도 보조편집자 구하는 거 맞는 것 같다.”
이경복의 말에 최병훈의 눈매가 꿈틀거렸다. 하지만 박주호에게 했듯 바로 반박하지는 않았다.
비록 친구라도 이경복이 최종결정권자였기 때문이었다.
“대신 프리랜서로 건당 계약으로 하고, 결정은 최병훈 네가 하는 걸로.”
“엉? 내가?”
그러나 이어지는 말에 최병훈의 눈이 크게 뜨였다.
“그래. 솔직히 우리가 편집에 대해 얼마나 알겠냐? 나는 네가 잘할 거라고 생각해서 다 맡긴 거야. 그러니까 보조편집자를 쓸지 말지도 네가 결정하면 좋겠다.”
“흠…… 네가 그렇다면야. 적어도 옵션이 늘어났다는 걸 인지하면 최악의 선택은 안 하겠지.”
박주호도 그 결정에 동의했다. 이에 최병훈도 조금 누그러진 태도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럼 다음 안건으로 넘어가자. 근데 뭐가 있었지?”
“내가 먼저 말하지. 어제 머슬 갤러리에서 메일이 왔어.”
박주호의 말에 두 친구가 입을 크게 벌렸다.
“머슬 갤러리?!”
“민둥산이라고?”
머슬 갤러리는 이경복도 잘 알고 있는 채널이었다. 어릴 적부터 꾸준히 운동해 온 그에게 민둥산은 올바른 운동법을 배우는 데 큰 도움이 되었던 큐튜버였다.
“아니, 날 왜?”
“섭외 요청이긴 한데 어디까지나 의사만 물어본 거야. 아무래도 머슬 갤러리는 가상현실이 아니라 현실 방송이니까.”
“아…….”
이경복은 그제야 짧게 탄식했다.
“프라이버시 없이 방송에 나가야 한다는 거네.”
가상현실 기기인 캡슐은 기본적으로 ‘프라이버시’기능을 제공하고 있었다.
프라이버시는 사용자의 얼굴을 보정해 실제 얼굴과는 다르게 표현한다.
체형이야 드러내도 상관없지만 온라인 세계에 얼굴을 드러내는 건 꽤 리스크가 있기 때문이었다. 일반사용자는 물론 스트리머들 역시 대부분 ‘프라이버시’ 기능을 애용하고 있었다.
‘언젠가는 얼굴을 공개해야 하긴 하겠지만…….’
정말 크게 성공한 스트리머들은 개인방송만이 아니라 케이블이나 지상파 방송에도 출현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경복 역시 막연하게나마 성공하게 되면 얼굴을 공개할 거라고 예상은 했었다.
‘하지만 그게 지금이어야 할까.’
단순히 얼굴이 공개되는 게 문제가 아니었다. 뒤에서 신상을 캔다거나 외모를 지적하는 등의 인신공격도 감당해야 했다.
“뭐, 너 정도면 솔직히 공개해도 되긴 하지.”
최병훈의 말에 다른 친구들이 그에게 시선을 돌렸다.
“왜, 기억 안 나냐? 이 자식 학교 다닐 때는 괴짜취급 받았어도 발렌타인데이 때는 사물함에 초콜릿 겁나 많았잖아.”
“……뭐, 급한 건 아니니까 일단 생각만 해 둬라. 그쪽도 이런 사정에 익숙해 보였다.”
“무시하냐!?”
“다음은 지놈 쪽에서 온 합방 요청이다.”
박주호는 발끈하는 최병훈을 또 무시한 채 바로 다음 안건을 꺼냈다.
“합방? 벌써?”
“……어제 보여 준 실력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한 거겠지.”
“레알, 그거 보고 부족하다 그러면 사람이냐?”
다른 두 친구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이경복을 돌아봤다.
“아니, 그래도 합방이면 랭겜으로 할 거 아냐? 나 아직 언랭인데?”
이경복은 일단 게임에 익숙해질 목적으로 랭크 게임은 시작하지 않았다. 덕분에 그의 랭크는 아직 미정, 언랭크(Unrank)였다.
“아, 그건 상관없어. 솔랭이랑 듀오랭, 그리고 스쿼드랭은 별개거든.”
“이 자식 말이 맞다. 지놈 쪽도 다 조사하고 메일을 준 거거든.”
“그래? 그러면 상관없겠네.”
“하나, 생각해야 하는 건 있다.”
안심한 이경복에게 박주호가 안경을 고쳐 쓰며 말했다.
“알다시피 지놈 님은 꽤 방송을 오래하셨다. 팬덤도 단단하지만 그만큼 안티들도 많아.”
“아…… 맞네. 저번에도 거그 하다가 저격 들어오셨던 것 같은데.”
“아마 합방할 때도 저격이 올 거다. 그건 괜찮겠어?”
그 물음에 이경복은 도통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
“뭐가 괜찮다는 거야?”
“안티들이 노리는 건 지놈만이 아니라 너도 포함된다는 거다.”
“아니, 그거야 나도 알지. 근데 그게 뭐가 문제야?”
이경복은 실소를 흘리며 어깨를 으쓱였다.
“어차피 배틀로얄이니까 다 죽여야 되는 거 아닌가?”
그 대답에 박주호는 입을 다물었고 최병훈은 큭큭거리며 웃음을 흘렸다.
“이게 천재의 발상이라는 거다. 걱정은 우리 같은 킹반인들이나 하는 거야.”
애당초 이경복은 패배 같은 건 상상도 하고 있지 않다는 뜻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