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화 - GGG 미팅 (2)
이경복과 박주호가 탄 차량은 부드럽게 도로를 내달렸다.
“단순히 유입을 끌어 오려던 게 대어가 낚였네.”
이경복은 다시금 GGG에서 보내온 메일을 확인하며 말했다. 박주호는 동의하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미끼의 질이 달랐던 거지. 도저히 그냥 놔두고 지나칠 수 없을 정도로.”
“근데 좀 급한 느낌이 들지 않아? 보통 광고 계약이 하루 만에 컨펌이 떨어지나 싶은데.”
“내 예상에는 두 가지 경우 중 하나다.”
“그게 뭔데?”
박주호는 가볍게 안경을 고쳐 쓰며 대답했다.
“이미 ‘GGG’ 쪽에서 준비한 섭외 목록에 네가 올라와 있었을 수도 있지. 그쪽에서도 커뮤니티 동향파악을 하고 있었을 테니까. 지놈이랑 합방 이야기도 자주 올라왔으니 모르지는 않을 거다.”
“으흠, 그럼 두 번째는?”
“GGG에서 힘깨나 있는 사람이 널 주시하고 있었던 거지.”
“엉? 나를?”
“그래. 일 처리 속도로 보면 나는 후자가 더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어쩌면 둘 다일 수도 있고.”
박주호는 운전하면서도 한 손으로 능숙하게 홀로그램을 띄웠다.
“메일 보면 대외비 이벤트 관련 제안인데 단순 홍보는 아니라고 쓰여 있다. 아마 직접 본사로 오라는 이유도 관련이 있을 거다.”
“바크 때랑은 또 다르다는 건가…….”
바이오 크라이시스와 같은 경우라면 직원이 방문해도 충분할 터였다. 그러나 GGG측은 이경복의 본사 방문을 요청했다.
“뭐, 가 보면 알겠지.”
“전혀 긴장감이 없네.”
“긴장할 이유가 뭐 있나?”
“하긴 너는 원래 그랬지.”
박주호는 실소를 흘렸다.
이경복은 새로운 일을 할 때 걱정하거나 긴장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오히려 흥미를 보이거나 의욕을 내비칠 때가 더 많았다.
‘그런 면에서 스트리머는 이 녀석의 천직일지도.’
스트리머는 트렌드에 민감한 직업,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면 도태될 터였다.
* * *
본사에 도착한 두 사람은 곧바로 미팅룸으로 안내를 받았다.
“이쪽입니다.”
“감사합니다.”
직원의 친절에 감사를 표한 두 사람이 안으로 들어서자 미리 기다리고 있던 세 사람이 동시에 일어났다.
“아, 스트리머 퍼플 님?”
“네, 맞습니다. 이쪽은 제 매니저고요.”
“갑작스러운 요청에도 방문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아, 일단 앉으시죠.”
두 사람이 자리를 잡자 세 사람이 각자 자신의 소개를 했다.
“반갑습니다. 저는 기획팀의 팀장인…….”
“저는 개발 팀장을 맡고 있는…….”
“생각보다 미남이셔서 놀랐어요. 저는 마케팅 팀장…….”
그들은 기획팀, 개발팀, 그리고 마케팅팀의 팀장들이었다. 그 소개에 박주호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팀장급 인사가 셋이나 왔다고?’
외모로 보아 어느 정도 직급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팀장이라고는 생각도 못 했던 터였다.
그는 약간 긴장하며 친구를 돌아봤다.
하지만 정작 이경복은 평소처럼 생글생글 여유롭게 미소만 짓고 있을 따름이었다.
“원래 저희가 찾아가서 계약 제안을 드리는 게 맞는데, 오늘은 불가피하게 본사로 모시게 됐습니다. 다시 한번 양해해 주셔서 감사드려요.”
마케팅 팀장의 말에 이경복은 손사래를 쳤다.
“아뇨, 덕분에 바깥 구경도 하고 좋았습니다. 방송만 하다 보니 동네에서 나갈 일이 없었거든요.”
“아, 방송 정말 대단하시던데요. 그렇죠?”
“네, 퍼튜브 영상 보고 진짜 놀랐습니다.”
“개발하는 입장에서도 이런 움직임이 가능한가 싶었을 정도니까요.”
퍼튜브에 관한 이야기와 함께 분위기가 부드러워졌다. 그렇게 잠깐 이야기를 나누고 슬슬 본론이 나왔다.
“그래서 퍼플 님을 모시게 된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저희가 홍보차 사전체험 방송을 기획 중인데 인플루언서 분들을 섭외하려고 합니다.”
“사전체험이요?”
“네, 메일에 대외비라고 말씀드린 부분인데요. 이번에 새로운 이벤트 모드를 개발 중에 있습니다.”
거너그라운드는 주기적으로 특별한 룰을 적용한 ‘이벤트’ 모드를 선보여 왔었다.
다른 둘의 시선에 기획 팀장이 설명을 이어받았다.
“이번 이벤트 모드는 ‘타임 워페어’라고 합니다. 기존 현대전 위주의 플레이에 변화를 주려는 시도를 했습니다.”
개발팀장이 곧바로 홀로그램 프레젠테이션을 띄웠다. 3차원으로 구축된 이미지 영상이 테이블 중앙에 나타났다.
“로봇……?”
박주호가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눈앞에 나타난 건 인간 형태의 기계였다.
“네, 맞습니다. ‘킬러노이드’라고 이름을 붙인 NPC죠. 이번 이벤트 모드는 기존 플레이어 간 전투에 제3의 적인 킬러노이드를 투입시킬 겁니다.”
본래 거너그라운드는 플레이어 대 플레이어, ‘PvP’였지만 이벤트 모드는 적대적 환경요소를 추가해 ‘PvPvE’를 기획했다는 것이었다.
“설정상 구시대 인류를 제거하기 위해 미래에서 온 살인 기계인데요.”
“아, ‘엘리미네이터’ 같은 거네요.”
이경복이 비슷한 설정의 영화를 언급하지 기획팀장이 웃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네, 거기서 모티브를 따왔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액체금속으로 변하거나 그러지는 않고요. 대신 미래 병기를 사용합니다.”
기획팀장이 손가락을 움직이자 이미지가 교체되었다. 겉보기에도 SF같은 스타일의 무기가 나열되었다.
“펄스라이플, 레일건, 레이저소드…….”
“킬러노이드를 제거하면 드랍 되는 아이템들입니다. 물론 위력이 강한 만큼 쉽게 얻을 수 없죠. 킬러노이드는 기계답게 쉽게 죽지도 않고, 여러 플레이어들이 합세해서 제거할 수 있는 적으로 기획했습니다.”
“이야, 이거 진짜 색다르네요.”
이경복이 눈을 빛내며 말하자 기획팀장과 개발팀장의 입꼬리가 실룩였다.
비록 월급 받고 일하는 직장인이지만 그들은 창작자이기도 했다. 자신의 창작물이 관심을 받는데 즐겁지 않은 창작자는 없었다.
“네. 그래서 이벤트 모드 공개 사전에 체험 방송을 진행할 예정이고 퍼플 님을 그 자리에 섭외하고자 연락을 드린 거예요.”
반면 마케팅 팀장은 그런 부류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녀는 긍정정인 분위기를 타서 바로 계약서를 내밀었다.
‘이벤트 모드 정보가 유출될 수 있으니 본사로 오라고 했던 건가. 하지만 이게 구태여 팀장급이 나설 사안인가?’
박주호가 의아해하며 그 계약서를 살펴보려는 순간.
“그리고 하나 더, 퍼플 님에게만 제안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마케팅 팀장이 다른 계약서를 하나 더 꺼내 띄웠다.
“저한테만?”
“네. 개발팀장님?”
“아, 네네.”
개발팀장은 짧게 헛기침을 하고 새로운 홀로그램을 띄웠다. 복잡한 그래프가 외곽에 있었고 중앙에는 삼각형이 하나 놓여 있었다.
[신체제어]
[색적능력]
[반응시간]
각 삼각형의 꼭지점에 표기된 글자.
“방금 말씀드렸듯, 킬러노이드는 다른 플레이어보다 실력이 월등해야 합니다. 지금 보시는 건 저희 거너 그라운드 플레이어의 데이터를 평균치로 환산한 것입니다.”
“혹시 오해하실까 미리 말씀드리면, 플레이어 분들의 데이터 수집은 약관에도 명시되어 있습니다. 저희는 이 자료를 토대로 밸런스 패치를 진행하거든요.”
기획팀장의 첨언에 이경복과 박주호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수십 장이나 되는 회원가입 약관을 모두 읽고 기억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나.
“그리고 이건 상위 5%, 마스터 랭크의 플레이어들의 평균 데이터입니다.”
개발팀장은 그 옆에 또 다른, 더욱 큰 삼각형을 띄웠다. 처음 띄웠던 삼각형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전체 평균과 마스터 랭커의 데이터는 대략 3배 이상의 차이를 보입니다.”
“저희는 이 데이터를 토대로 킬러노이드는 마스터 랭커라고 해도 혼자 잡기 힘들 수준으로 설정하려 합니다. 마스터도 쉽게 잡을 수 있는 수준이 되어 버리면 오히려 마스터 랭커가 이벤트 아이템을 독점해 버릴 테니까요.”
이벤트 모드인 만큼 MMR이 새로이 적용되고 한 게임에는 여러 등급의 플레이어들이 혼재될 터였다. 거기서 마스터 랭커들이 아이템을 쓸어 간다면 다른 플레이어들의 불만이 터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원래는 상위 1%의 실력자들 데이터로 킬러노이드의 행동 패턴을 구축하려고 했는데…….”
“그때 퍼플 님께서 등장하신 거죠!”
기획팀장과 개발팀장은 진심 어린 눈빛으로 이경복을 바라보았다.
“저요?”
“네. 정말, 처음 이걸 보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약간 목소리가 빨라진 개발팀장이 3번째 삼각형을 띄웠다.
[ID – 퍼펙트플레이]
[백분위 – 0.00001%]
세 꼭지점을 가득 채울 정도로 커다란 삼각형, 그 위에는 이경복의 아이디와 백분위가 표기되어 있었다.
“처음에는 드디어 가상현실에도 핵이 나온 건가 싶었습니다.”
“혹은 데이터 수집 소프트웨어의 오류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네, 정말로. 그래서 어젯밤에 퇴근하던 도중에 다시 돌아올 뻔했다니까요.”
제 딴에는 농담이었는지 두 팀장은 웃음을 흘렸다. 하지만 자신들만 웃고 있다는 걸 알아차린 그들은 이내 헛기침으로 분위기를 전환시켰다.
“그런데 어제 공개된 영상을 보니 전혀 오류가 아니더라고요.”
“네. 뭐, 저는 그냥 게임을 한 거니까요. 그런데 이 데이터는 왜 보여 주시는지?”
이경복이 웃으며 물었다.
잠자코 있던 마케팅 팀장이 이때다 싶어 나섰다.
“퍼플 님 데이터를 저희 쪽에서 구매해서 이용하고 싶습니다.”
“구매요?”
“네. 이번 이벤트 모드의 최종보스 그리고 킬러노이드에 퍼플 님의 행동 패턴을 이식시키면 좋을 것 같아서요.”
이경복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행동패턴을 사고판다는 개념이 그에게는 익숙지 않았던 탓이었다. 이후 팀장들의 상세한 설명이 끝나자 이경복은 친구를 돌아봤다.
“잠시만 따로 이야기를 좀 하고 돌아오겠습니다.”
“아, 네네.”
이경복은 박주호를 데리고 방을 빠져나왔다.
“어때?”
“쉽게 말하면 네 경험을 사겠다는 거야.”
“경험?”
그런 그에게 박주호가 낮은 목소리로 설명했다.
“장인해부학 기억나지? 그때 지놈이 더미들의 무기술을 사서 썼다고 했잖아.”
“아, 맞네.”
이경복의 머릿속에 지놈의 말이 스쳐 지나갔다.
‘진짜 무기술 대가들의 모션 캡처 소스거든요.’
가상현실 도입과 더불어 개인의 경험 역시 재산으로 여겨진다. 경험이라는 추상적 개념이 데이터라는 물질적 개념으로 치환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경복의 천재적인 실력도 상품이 될 수 있다는 의미였다.
“금액은 1천만 원이고 사용기한은 이벤트 모드 종료 후 30일까지야.”
박주호는 이경복이 설명을 듣는 사이 계약서의 검토를 끝냈다.
“……천만 원이라고?”
“그래. 생각보다 큰 거래였어. 사전체험 방송 계약은 500만 원, 큐튜브 구독자 기준으로 계산한 모양이야. 나쁘지 않다.”
총합 1500만 원의 계약이었다.
박주호는 혹했지만 더 권하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결정은 이경복이 내려야 하기 때문이었다.
‘뭔가 미묘한데.’
이경복은 다시금 세 팀장을 살폈다.
기획팀장과 개발팀장에게서는 긍정적인 기운이 느껴졌다. 하지만 마케팅 팀장에게서 감지되는 느낌은 애매했다.
나쁜 건 아닌데 같이하기에는 좀 거부감이 드는 기분.
그는 잠시 고민하다가 다시 방으로 들어섰다. 이윽고 세 사람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제안 감사드립니다.”
이경복의 대답에 세 사람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났다. 하지만 이내 그 표정은 일변했다.
“아무래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서요. 좀 더 생각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다른 적임자가 있다면 먼저 계약하셔도 좋습니다.”
“네? 아니…….”
“예?”
그 대답에 팀장들 얼굴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하지만 이경복은 아랑곳하지 않고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제안 감사드립니다. 그럼, 다음에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아, 네네.”
“살펴 들어가세요.”
“답변 기다리겠습니다!”
완고한 작별인사에 세 팀장은 그들을 배웅했다. 이윽고 두 사람이 사라지고 난 뒤 기획팀장과 개발팀장이 눈을 돌렸다.
“하, 이것 참…….”
“……가시죠.”
그들의 말에 마케팅 팀장은 얼굴을 굳히며 걸음을 옮겼다. 세 사람이 도착한 곳은 개발실장의 사무실이었다.
실장은 노크와 함께 들어선 세 사람을 반갑게 맞이했다.
“오, 그래. 어떻게 됐어?”
“저, 그게…….”
말로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그는 팀장들의 표정을 보고 결과를 짐작했다.
“허, 뭐가 문제였는데? 이벤트 모드가 별로라고 하든?”
“아뇨, 아닙니다. 무척 긍정적이었습니다.”
“그래? 그럼 뭐, 부담스럽다거나 그런 거 때문에?”
“그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저희 칭찬에도 쑥스러워 하거나 그런 것도 없이 당당했습니다.”
“하긴, 그 친구 방송 보니까 그런 성격이드만.”
개발실장은 고개를 주억거리더니 이내 코끝을 찡그리며 마케팅 팀장을 돌아봤다.
“남은 건 돈 문제네? 최 팀장만 남고 나가 봐.”
그 말에 마케팅 팀장만 자리에 남게 되었다. 문이 닫히자 개발실장이 한쪽 턱을 괸 채 입을 열었다.
“내가 최 팀장 마음 모르는 거 아냐. 내가 견적 낸 거 사업실에서 컷한 거야 다 이해해. 아, 비용 줄이면 좋지. 내가 괜히 회사 돈 쓰고 싶어서 그런 거겠어?”
“……죄송합니다.”
“아니, 뭐가 죄송해? 죄송하면 그 친구가 돌아와서 다시 계약해 주나?”
마케팅 팀장은 입을 꾹 다물었다. 그 모습에 코웃음을 친 개발실장이 가볍게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렸다.
“이게 참 그래. 게임 만드는데 필요한 리소스 값은 개발자들 의견을 들어줬으면 좋겠는데, 이게 또 그렇게 잘 안 되잖아. 응? 보는 눈이 다르니까. 우리는 그 스트리머가 가진 경험을 보는데, 사업실은 숫자만 본다고.”
말투는 나긋나긋했지만 마케팅 팀장은 마른침만 삼켰다.
“그런데 이게 데이터를 양도 못 받으면 개발 일정에 차질이 생기거든? 그 손해는 누가 메꾸나? 욕은 또 누가 먹고? 응?”
“죄송…….”
“아니, 왜 자꾸 사과를 하고 그래? 물어봤으면 답을 해야지. 응? 그 친구 데이터 없으면 킬러노이드는 걍 맷집만 센 플레이어에 불과한데? 내가 대체불가라고 분명히 말했잖아. 혼자서 그렇게 많은 플레이어 상대한 데이터가 흔치 않다고, 그러니까 각별히 신경 좀 쓰라고. 응?”
개발실장이 스트리머 퍼플을 선택한 이유였다. 그간 혼자서 다수를 상대한 스트리머나 플레이어들은 있었다.
하지만 많은 적들을 상대로 완승을 거둔 사람은 퍼플이 유일했다.
“이제 어쩔까? 대충 평균 데이터로 만들어서 낼까? 아, 아니지. 외부 리소스 사다 쓰면 되겠네. 이왕 이렇게 된 거 아웃로 유니버스 거 사다 쓰자고. 그쪽이 그건 잘하잖아. 이거 그러면 로열티는 얼마나 내야 하나?”
개발실장은 비꼬듯 물었다.
이번 이벤트 모드는 경쟁작인 ‘아웃로 유니버스’의 유저를 끌어올 목적도 있었다.
그리고 거너그라운드도 마음만 먹으면 SF감성을 표현할 수 있다는 걸 보여 주기 위한, 그리고 차기작으로서의 확장 가능성도 가늠하기 위한 기획이기도 했다.
그런데 비용을 좀 아끼겠답시고 귀중한 데이터를 놓쳐 버렸다. 소탐대실은 이런 상황을 두고 하는 말일 터였다.
“제가 직접 다시 방문을…….”
“허이구, 됐네 됐어. 쯧, 위쪽에는 내가 말해 둘 테니까 계약금 3천만 원으로 올려서 다시 전달만 해 둬.”
개발실장은 혀를 차며 말했다.
마케팅 팀장을 쪼아 대는 건 해결책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분풀이에 불과했다.
“……네, 알겠습니다.”
* * *
한편 돌아가는 길에 박주호는 의문이 들었다.
‘나름 괜찮은 제안이었는데 뭐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거지?’
그로서는 친구가 거절한 이유를 쉬이 짐작하기 어려웠다. 이경복 역시 굳이 설명하지 않았다.
GGG로부터 새로 메일이 온 것도 그때였다.
“응?”
박주호는 홀로그램 계약서를 띄웠다. 이경복은 수정된 계약서를 보고 생긋 웃었다.
“이야, 3천만 원이나 주네? 그럼 해야지.”
“허…… 갑자기 뭔?”
박주호는 이내 친구에게 눈을 돌렸다.
“대체 뭘 어떻게 한 거야?”
“뭘 하기는. 너도 옆에서 다 봤잖아?”
이경복은 이내 실소를 흘리며 말했다.
“뭐 불길한 쪽에서 한 걸음 물러나긴 했지.”
“……그게 길한 쪽으로 가는 걸음이었다?”
박주호는 헛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거 생각보다 좀 일찍 세무사 상담을 받아야겠다.”
“세무사?”
“그래. 돈이 너무 잘 벌리니까. 잘못하면 세금 폭탄 맞는다.”
“그럼 한번 지놈 님 한테 물어봐야겠네.”
“음, 그것도 나쁘지 않겠어. 세무사도 차이가 있을 테니 추천 받는 것도 좋지.”
박주호의 말에 이경복은 웃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번 합방 잘해야 할 이유가 늘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