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화 - 퍼지데이 (2)
지놈은 이경복을 보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역시 천재라니까.’
처음 만났을 때부터 느꼈지만, 이 당당한 태도와 자신감은 컨셉으로 꾸며 낸 게 아니었다.
‘오늘 방송, 나만 정신 바짝 차리면 된다.’
저격이 붙었다는 걸 알았을 때는 불안한 마음이 있었다. 자신이 피해를 입으면 그냥 욕하고 말면 되는 일이지만 게스트가 있다면 부담이 가중되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그가 섭외한 게스트는 고작 저격 따위에 굴할 인재가 아니었다.
그는 흡족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크, 역시 갓플. 이게 신의 가호라는 걸까요? 아니, 마음이 너무 편하네 진짜.”
-뭐야 ㅅㅂ 나도 가호 줘요!
-혀엉? 혼자만 즐길 거야?
-아 ㅋㅋ 됐고 얼른 네비나 하시라고!
-갓플이 아군인 기분? 국밥보다 든든하자너 ㅋㅋㅋ
-국밥으로 비교하면 대체 몇 그릇이냐고 ㅋㅋㅋㅋㅋㅋ
지놈은 가볍게 웃으며 제 역할을 다시금 자각했다.
“자, 각설하고 네비 들어갑니다. 퍼플 님, 쿠나스 파밍 핵심 장소는 두 곳입니다. 유적지와 훈련소인데요. 유적지는 좁은 미로의 거대사원이고 훈련소는 레안젤의 군사기지 생각하시면 됩니다.”
속사포처럼 뱉은 말이었지만 발음 하나 흐트러지지 않았다. 덕분에 이경복은 곧바로 어떤 느낌인지 파악했다.
“처음이니까 색다른 곳에 가 보고 싶네요. 유적지로 가시죠.”
“오케이! 좋습니다. 처음이시니까 낙하 시점은 제가 정할게요.”
-아 ㅋㅋ 고급 네비 답누
-지놈이 네비는 참 잘해
-설명 깔끔한 거 보소 ㅋㅋㅋㅋ
-캬! 이 정도는 해야 신을 보좌하는 구나
-오늘부터 간장공장공장장 연습한다
-공장장이 왜 나와 ㅋㅋㅋㅋㅋ
-ㄹㅇㅋㅋ 내가그린기린그림이 더 낫지
-무슨 아나운서 준비냐고!
시청자들이 흥겹게 채팅을 치는 사이 다른 플레이어들이 낙하를 시작했다.
이경복은 그중에서도 저격러들의 감각에 집중했다.
‘총 6명인가.’
유독 강렬한 적의를 띄는 플레이어들의 숫자는 여섯이었다. 그중 둘은 먼저 뛰어내렸고, 나머지 넷은 훈련소 즈음에 도착하자 함께 뛰어내렸다.
‘4명은 티밍일지도 모르겠네.’
이미 팀을 이룬 듀오 게임이지만 듀오끼리 또 티밍을 하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이경복은 동시에 넷을 상대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었다.
“자! 슬슬 일어나시죠.”
지놈의 말에 이경복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말처럼 핵심 파밍 장소이기 때문인지 열댓 명의 플레이어들이 같이 일어났다.
“비바 퍼지데이!”
지놈이 흥겹게 소리치며 뛰어내리고 이경복이 바로 그 뒤를 따랐다.
드넓게 펼쳐진 하늘 아래 에메랄드 빛 바다와 야자수가 자라나는 섬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나 여유롭게 풍경을 감상할 시간은 없었다.
‘나름 실력에 자신 있는 사람들만 오는 곳이긴 하네.’
낙하를 시작한 플레이어들 모두가 수직으로 강하를 했다. 순식간에 고도가 줄어들며 지면과의 거리가 가까워졌다.
“퍼플 님?! 언제까지 갑니까!?”
“조금만 더요!”
시스템이 경고하는 임계점에서 모두가 약속한 듯 낙하산을 펼쳤다. 그러나 이경복은 더 나아갔고 지놈도 뒤를 따랐다.
“으아! 안 되겠다! 뒤따라갑니다!”
결국 지놈이 먼저 낙하산을 펼쳤다. 괜히 섣불리 따라 했다가 추락사하면 방송이 어그러질 수도 있었다.
그 대가로 채팅창에는 ‘ㅋㅋㅋ’가 가득해졌다.
-벌써부터 클라스 차이 보이쥬?
-쫄? 쫄?
-쫄놈 뭔데!
-갓직히 지놈도 많이 따라오긴 했다 ㅋㅋㅋㅋ
-ㄹㅇㅋㅋ 뱁새가 가랑이 찢어지기 전에 오므렸자너
이경복은 조금 뒤에 낙하산을 펼쳤고 완벽하게 착지를 마쳤다.
“일단 숫자 좀 줄이고 시작할게요!”
그는 곧바로 육감을 따라 권총 하나를 습득했다. 순식간에 장전을 마친 그는 지놈의 뒤를 따라 내려오는 다른 플레이어에게 총구를 겨누었다.
곧이어 터진 총성과 함께 두 명의 플레이어가 실 끊어진 인형처럼 늘어졌다.
[퍼펙트플레이 >>G18C>> 마장동총잡이 (HEAD SHOT!)]
[퍼펙트플레이 >>G18C>> 마장동칼잡이 (HEAD SHOT!)]
총격에 놀란 다른 플레이어들이 재빨리 방향을 돌렸다. 그 사이 지놈은 빠르게 착지했다.
“아니, 벌써?!”
-킹니 갓써?!
-마장동 거너는 운도 없누 ㅋㅋ
-미쳤다 ㅋㅋㅋㅋㅋㅋ
-권총으로 저 거리에서 헤드샷이 나온다고?
-아 ㅋㅋㅋ 낙하산 줄도 끊는데 헤드샷이 뭐 어렵다고
-지놈 옆에 있다고 좀 살살 하는 듯?
-진심 사격 나오면 지놈 쩌리인 게 너무 티나자너 ㅋㅋㅋㅋ
채팅창 반응에 이경복이 가볍게 웃었다.
“이걸로 파밍 시간은 좀 벌었네요. 가시죠.”
“캬, 역시 제로백 버스입니다. 진행이 아주 시원시원하네요!”
지놈도 웃으며 빠르게 움직였다. 두 사람은 중앙에 위치한 사원 건물로 직행했다.
‘가장 좋은 것보다는 적당히 가까운 것부터.’
구독자 이벤트 때의 경험을 살린 이경복은 육감을 따라 지놈을 인도했다.
“오오, 바로 에케 찾아 버리기! 그리고 옆에는…… 떱배네.”
방으로 들어선 지놈은 돌격소총을 보고 활짝 웃었다가 옆에 있는 산탄총을 보고 코끝을 찡그렸다.
그 외에 구석에는 붕대와 수류탄, 그리고 탄약상자가 있었다.
“제가 떱배 잡겠습니다. 에케는 퍼플님이 드시죠.”
-순간 판단력 무엇?
-사실상 교전은 갓플 몫이다 이말이야
-떠넘기기 너무 자연스럽쥬?
-근데 이게 맏찌 ㅋㅋㅋㅋ
-하긴 떱배로는 킬 따기 힘들지
-아 ㅋㅋㅋ 네비가 에케를 왜 들겠냐굿!
지놈의 양보에 시청자들은 흡족해했다.
바로 그때.
[‘Agent Q’님이 퀘스트를 제안합니다.]
[조건 – 이번 판 샷건 킬당 적립 5만원]
눈앞에 나타난 퀘스트 제안에 이경복은 환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이야, 큐다리 님! 오랜만이시네요!”
“응? 큐다리?”
지놈이 눈을 동그랗게 뜨자 채팅창이 빠르게 올라왔다.
-엌ㅋㅋㅋㅋㅋㅋㅋ 큐다리 살아 있었누
-않이;; 저격러 있는 거 뻔히 알면서 이런 퀘스트를 하누?
-와 ㅋㅋㅋ 여전히 지독하다 지독해
-이건 그냥 거절하는 게 맏따
-큐다리쉑 사실 저격러 멤버인 거 아님?
-킹리적 갓심!
이경복은 험악해지려는 채팅창을 확인하고 빠르게 말했다.
“퀘스트 수락하겠습니다. 마침 제가 샷건 가지려고 했거든요.”
“네?”
지놈의 물음과 더불어 채팅창도 물음표로 가득해졌다.
‘나야 저격러들 위협을 미리 알아차릴 수 있지만 지놈 님은 그럴 수가 없지.’
저격러가 낀 마당에 지놈이 산탄총을 가지면 원거리 대응이 어려워질 터였다.
하지만 그 사정을 설명할 수는 없는 노릇. 이에 이경복은 간단히 답했다.
“저는 샷건으로도 죽일 수 있으니까요.”
“아…….”
-ㅏ…
-엌ㅋㅋㅋ 지놈 표정 보소 ㅋㅋㅋㅋ
-상태이상(기만)
-퍼펙트플레이 >>기만숨결>> GENOME
-기만으로 팀킬 뭔데 ㅋㅋㅋㅋ
-기만숨결에 직격 당해 버렸음ㅋㅋㅋ
-같은 편마저 기만해 버리는 그는 도대체!?
이경복은 이내 산탄총을 잡고 장전을 마쳤다. 그 모습에 정신을 차린 지놈이 돌격소총을 잡았다.
“아니, 정말 떱배로 가신다고요? 그거 두 발밖에 안 되는데?”
이경복이 잡은 산탄총은 총열이 두 개인 더블배럴, 그래서 준말로 ‘떱배’라고 불렀다. 그러니 한 번 장전할 때 최대 2발밖에 쏠 수가 없었다.
“그럼 듀오 잡기에는 딱이네요.”
-???: 장전 한 번 할 때마다 듀오 팀 제거할 것.
-절대 빗나가지 않는다는 퍼자감……!
-아 ㅋㅋ 근데 진짜 그럴 것 같다는 게 함정
-ㄹㅇㅋㅋ 갓플이면 또샷또킬이지
-지놈 몫은 없는 게 이미 전제임ㅋㅋㅋㅋㅋㅋ
-한 마디 한 마디가 [퍼][펙][트]해 버렸다
지놈은 이래도 되나 싶었지만 이경복의 표정이 굳는 걸 보고 입을 다물었다.
“마침 한 팀 오네요.”
“……예?”
이경복이 낮게 속삭이자 지놈은 자기도 모르게 되물었다.
‘아무것도 안 들렸는데?’
지놈은 귀를 기울였다.
사운드 플레이는 색적(索敵)의 기본, 그러나 그로서는 적의 접근이라 추측할 근거가 없었다.
하지만 이내 한 박자 늦게 발소리가 들려왔다.
“헐.”
지놈은 순간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대체 어떻게 알았을까?
“먼저 칩시다.”
이경복은 말과 함께 방을 뛰쳐나갔다. 지놈이 놀라 다급히 그 뒤를 따랐다.
‘소리가 너무 큰데!?’
잠자코 있다가 적을 급습하는 게 정석이었다. 그런데 이경복은 과감히 돌진하며 소리까지 냈다.
이래서야 적에게 발각되는 건 당연한 일.
지놈이 문밖으로 고개를 내밀었을 때 상대와 마주친 것도 그 때문이었다.
“헙!”
자신을 향하는 총구에 지놈은 헛숨을 삼켰다. 하지만 상대가 방아쇠를 당기는 일은 없었다.
쾅하는 굉음과 함께 상대 중 하나가 철퍼덕 쓰러졌다.
“뭐……!?”
나머지 상대가 기겁하며 고개를 올렸다. 지놈의 시선도 그를 따라 올라갔다.
그곳에는 돌벽을 잡은 상태로 샷건을 겨누는 이경복이 있었다. 이어서 다시 총구가 번쩍이자 남은 한 명도 쓰러졌다.
방탄복도 없이 근거리에서 산탄을 맞고 살아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음, 역시 한 손으로 쏘니까 뻐근하네요.”
가볍게 착지한 이경복은 능숙하게 총열을 쳤다. 철컥하는 소리와 함께 탄피가 튀어 오르며 떨어졌다.
-와씨 ㅋㅋㅋ 순삭이네
-개간지 미쳤누 ㅋㅋㅋㅋㅋ
-떱배를 한 손으로 쏴? 팔 힘 무엇?
-뭔 ㅋㅋㅋ 킬 따는 게 마실 갔다온 느낌이누.
-아 ㅋㅋ 이게 상남자지
-상남…… 뭐요?
-미친놈앜ㅋㅋ 그런 캐치 그마내!
-지금부터 숙청을! 시자아아아악 하겠습니다아아아아!
-캐스터님 등판 뭔데 ㅋㅋㅋㅋㅋ
여유만만한 이경복의 모습에 채팅창에는 불이 붙었다. 지놈은 그저 허허롭게 웃으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와, 얘들아. 이 버스 승차감 대박이야.”
이경복은 그런 지놈의 멘트에 미소를 짓다가 아차 싶은 얼굴로 말했다.
“아, 이걸로 10만 원 적립인가요? 큐다리 님, 항상 즐거운 퀘스트 감사합니다.”
-엌ㅋㅋㅋㅋㅋㅋㅋㅋ 능욕잼
-큐다리 물려 버렸쥬?
-아 ㅋㅋㅋ 퍼플코인 탑승 안 하고 뭐했누
-ㅉㅉ 이래서 인버스 타면 망하는 거임
-엌ㅋㅋ 이정도면 그냥 인번스도 아니고 곱버스임 ㅋㅋㅋ
-???: 무승부로 하지 않을래?
-???: 주가 떡락했는데 환불 되나요?
-???: 돈이 삭제가 된다고!
-큐다리 차지 마라, 너는 퍼플에게 한 번이라도 퀘스트를 줬느냐
-시인 트수 무냐고 ㅋㅋㅋㅋㅋㅋ
-아아, 모르는 가? 돌릴 때는 진심인 게 진짜 트수인 법이다.
이경복의 말에 기다렸다는 듯 달려드는 시청자들.
[상금 – 100,000원]
큐다리는 그저 묵묵히 상금을 적립할 따름이었다.
이경복과 지놈은 죽은 플레이어에게서 필요한 아이템을 뒤졌다.
그 사이 밖에서는 총성이 들리기 시작했다.
“아, 교전 시작했나 보네요.”
“네, 다들 적당히 파밍을 끝낸 모양입니다. 이제부터는 조심…… 퍼플 님?”
“파밍 끝났죠? 빨리 갑시다!”
“네?”
“돈이 삭제가 되고 있잖아요……!”
이경복이 장난스럽게 재촉하자 채팅창에 웃음이 가득해졌다.
-큰일났다……!
-자본주의 파동에 눈을 뜬 퍼플!
-제2차 이남진어사태!
-이남진어가 뭐임?
-이남자진심이면어떨까의 준말임 ㅋㅋㅋ
-ㄹㅇㅋㅋ 갓플한테 처음 킬 퀘스트 건 트수임
-이번에는 무려 이남진어보다 5배 비싼 5만 원!
-아! 너무 무섭다!
-퍼지데이니까 괜차늠^^
-맞네 ㅋㅋㅋㅋㅋ 다 허용해 줌ㅋㅋㅋ
돈은 언제나 훌륭한 동기부여 수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