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화 - 퍼지데이 (4)
이경복과 지놈은 쓰러진 패키지 트럭으로 다가갔다. 바퀴가 터지면서 무력화로 인정이 됐는지 뒷문이 열려 있었다.
“이야, 이거 보급상자 싱싱한 거 보소.”
그 안에 든 보급상자를 본 지놈이 흥겹게 말하자 채팅창에 웃음이 번졌다.
-진짜 오늘 형 입텐 터진다 ㅋㅋㅋ
-뭔 ㅋㅋㅋㅋ 수산시장이냐고
-몰랐음? 보급상자 바로 회 떠 먹으면 죽이는데 ㅋㅋㅋㅋ
-엌ㅋㅋㅋㅋ 무슨 활보급임?
-마! 함 무바라!
시청자들의 기대대로 이경복과 지놈은 신속히 보급상자를 열었다.
“오, 구상이랑 퀵탄! 스코프도 있습니다!”
“이쪽은 방어구에요.”
각종 총기 부착물과 회복 아이템, 그리고 방어구들이 연이어 나왔다. 지놈은 빠르게 돌격소총의 풀파츠를 맞추었다.
이경복은 산탄총 퀘스트를 받았기에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오?”
그런 그의 눈에 들어온 건 또 다른 산탄총, 총열 중간이 잘린 ‘소드 오프 샷건’이었다.
“큐다리 님, 이걸로 잡아도 퀘스트 조건으로 인정됩니까?”
-엌ㅋㅋㅋ 이것도 샷건이긴 한데
-분류상으로는 권총임 ㅋㅋㅋ
-큐다리 지금 겁나 고민할 듯
-엌ㅋㅋ 빼자니 없어 보이고 넣자니 돈이 더 나갈 상황
-과연 큐다리의 선택은?!
시청자들의 채팅에도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이 악물고 모른 채 해 버렸쥬?
-ㄴㄴ 대답 도네 할 돈도 아끼는 거임
-큐다리쉑 런 한 거 아녀?
-에이 그래도 네임드인데 여기서 빤스런 하겠음?
이경복은 채팅을 확인하고 이내 어깨를 으쓱였다.
“침묵은 긍정이라고 하죠. 일단 되는 걸로 알고 챙기겠습니다.”
그 대답에 다시금 채팅에 웃음이 번진 사이, 지놈이 안쪽에서 커다란 상자를 들고 왔다.
“어우! 이거 딱 보니까 그거네요, 그거!”
“그거요?”
“네. 사이즈 보니까 딱 견적이 나오네요.”
지놈은 싱긋 웃으며 상자를 열었다. 그 안에는 육중한 중화기가 들어 있었다.
-WA! 미니건!
-큰 거 왔다! 큰 거 왔다!
-레알 큰 거 왔누 ㅋㅋㅋㅋㅋ
-무쳤다 ㅋㅋㅋㅋㅋㅋ
-애니마싱가! 땡큐!
-강철달팽이 효과음 뇌내 자동재생 무엇?
-않이 ㅋㅋㅋ 헤비머신건이라고!
반동이 거세지만 그만큼 압도적인 화력을 자랑하는 무기.
“혹시 모르니까 트럭에 실어두겠습니다.”
그렇게 아이템 파밍을 마친 두 사람은 다시 트럭에 올랐다.
* * *
훈련소 도착은 금방이었다.
이경복은 살짝 미간을 좁히며 눈을 돌렸다.
“벌써 파밍이 끝났나?”
멀리 훈련소에서 빠져나오는 플레이어들이 보였다.
-너무 빠른데?
-한창 교전하고 있을 시간인디
-ㄹㅇㅋㅋ 갓플이랑 지놈처럼 순식간에 정리한 것도 아니고.
-저짝에도 개고수가 있나?
시청자들 역시 의문을 표했다. 그러나 이내 이경복은 그 이유를 짐작했다.
‘역시 티밍이 맞았구나.’
그는 훈련소에서 뛰어내린 4명의 저격러들을 떠올렸다. 안 그래도 격전지인 훈련소에서 티밍까지 하면 우위를 점할 수 있었을 터였다.
‘승산이 없다고 생각해서 빼는 거겠지.’
훈련소를 택한 플레이어들은 나름 실력에 자신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만큼 치고 빠질 때를 파악하는 것도 능숙했다.
간단히 기초 파밍만 끝내고 다른 곳에서 정비를 하려는 게 분명했다.
“그냥 보내 줄 수는 없죠?”
그런 속사정이 있다고 해서 봐줄 수는 없었다. 어차피 모두가 적인 배틀로얄 게임이 아니던가.
이경복은 그리 말하며 엑셀을 밟았다.
“지놈 님! 준비하세요!”
“라저 댓!”
이경복의 외침에 지놈이 대답했다. 그러나 그 답은 바로 옆에서 들려오지 않았다. 현재 조수석은 비어 있었다.
“준비하시고…….”
지놈은 트럭의 뒤, 거치해 둔 미니건을 붙잡고 있었다. 그가 방아쇠를 당기자 미니건이 공회전을 시작했다.
-숙청! 숙청! 숙청! 숙청!
-싹쓸이 가즈아!
-야 쓰레기! 폭풍미니건 지놈이 간다!
-콩드립 뭔데 ㅋㅋㅋㅋㅋ
-총알 파티다!
“쏘세요!”
시청자들의 기대와 함께 미니건이 불을 뿜기 시작했다.
[GENOME >>M134HG>> 갈색쥐톰]
[GENOME >>M134HG>> 회색고양이제리]
미친 듯이 쏘아지기 시작하는 탄환에 다른 플레이어들이 갈려 나가기 시작했다.
“으아아아! 힘은 빛을 만든다! 나는 힘찬 기분이 든다!”
지놈이 잊지 않고 오디오를 채우자 채팅창에 웃음이 번졌다.
-무친ㅋㅋㅋㅋㅋㅋ
-내 총은 준나게 크고 아릅답다!
-둠스가이 드립 뭔데 ㅋㅋㅋㅋ
-뿌다다다다닷!
-더러운 효과음 그마내!
-이게…… 배틀로얄?
갈려 나가는 건 플레이어만이 아니었다. 지놈은 훈련소 외곽에 주차된 차량까지 노렸다.
“으랴아아!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아아아!”
벌집이 된 차량은 결국 버티지 못하고 폭발하기 시작했다. 연이은 폭발에 빠져나가려던 플레이어들은 무척이나 당황한 모습이었다.
“뭐, 뭐야 씹……!”
“웬 미친놈들이야!”
사실 그렇게 보여도 이상하지 않을 광경이었다. 트럭 위에서 정장을 입은 채 가면을 쓰고 미니건을 쏘는 남자의 모습이 아니던가.
지놈이 화망을 뿌리는 사이 이경복은 매끄럽게 운전하며 훈련소 외곽을 돌았다.
[GENOME >>M134HG>> 이탈리안마리오]
[GENOME >>M134HG>> 이탈리안루이지]
계속해서 늘어나는 킬 메시지에 지놈은 흡족했다. 그러다가 문득 위화감을 느꼈다.
‘……근데 미니건이 원래 이렇게 잘 맞나?’
아무리 거치를 했다고 한들 이동하는 트럭 위였다. 물론 그가 신경 써서 조준을 하고 있긴 했지만 이렇게 정확한 사격은 처음이었다.
‘아니, 설마?’
순간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 지놈은 슬쩍 낮은 목소리로 시청자들에게 말했다.
“여러분, 이거 에임이 너무 잘 맞는데?”
-아 ㅋㅋㅋ 또 올려치기 시작하쥬?
-혀엉? 그래도 형은 트최입이야!
-ㄹㅇㅋㅋ 갓플 앞에서 괜히 주름잡다가 망신만 당한다.
-점심차려! 점심차려! 점심차려!
시청자들은 그걸 장난이라 여겼다. 하지만 이어지는 지놈의 말에 분위기가 일변했다.
“아니, 아니. 내가 따로 조준하기도 전에 적들이 에임에 딱 와 있다니까?”
채팅창에 물음표가 피어났다. 이에 지놈은 자신의 추론을 꺼냈다.
“우연인 줄 알았는데 이거 혹시 퍼플 님이 맞춰 주고 있는 거 아닐까?”
-그게 뭔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않이;; 운전하면서 에임 보정을 해 준다고?
-아 ㅋㅋ 아무리 갓플이라도 이건 좀 ㅋㅋㅋㅋ
-혀엉? 합방이라고 너무 무리수 던지는 거 아니야?
-예끼! 이 사람아!
시청자들은 당연하게도 믿지 않았다. 어떻게 운전하면서, 그것도 바로 옆도 아니고 보이지도 않는 뒤에 있는 지놈의 조준을 도와준단 말인가.
하지만 지놈은 생각이 달랐다.
그는 가장 처음으로 이경복의 육감을 제시했던 이였다.
“그러면 다음에는 내가 일부러 좀 빗겨 나가게 쏴 볼게. 한번 어떻게 되는지 보자.”
일부러 조준을 틀면 결과를 알 수 있을 터였다. 이에 시청자들도 동조했다.
-근데 이거 진짜 되는 거 아님?
-그러면 참트루 신 맏따 ㅋㅋㅋ
-ㄹㅇㅋㅋ 전설급이 아니라 신화급임
-어씨 나 갑자기 소름 돋는다 ㅋㅋㅋ 왜 될 것 같지?
-진짜? 이게 진짜 된다고?
반신반의, 아니 반신반기대로 물들어가는 채팅창. 이윽고 고대하던 다른 희생양이 등장했다.
지놈은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다시 방아쇠를 당겼다.
“핫하! 죽어라!”
그는 예고했던 대로 일부러 조준을 틀었다. 그러자 덜컹하며 트럭이 흔들렸다.
그 결과 놀랍게도.
[GENOME >>M134HG>> 명탐정왓슨 (HEAD SHOT!)]
[GENOME >>M134HG>> 명조수셜록 (HEAD SHOT!)]
흩뿌려진 탄환들은 정확히 희생양들의 목숨을 앗아 갔다.
“미친……!”
-????
-헐?
-이게 말이 됨?
-운전으로 보정 레알 실화?
-역ㅋㅋㅋㅋ댘ㅋㅋ급ㅋㅋㅋㅋㅋ
-와나 ㅋㅋㅋ 진짜 조금 지린 듯
-그냥 죽인 것도 아니고 헤드샷ㅋㅋㅋㅋㅋㅋ
-이거 ㄹㅇ 신의 가호자너 ㅋㅋ
-몰카지? 맞지? 그치? 다 주작이지?
-사실 녹방이었던 거임 ㅋㅋㅋㅋ
경악한 지놈은 오디오를 비웠고 시청자들은 현실을 부정했다. 그렇다고 벌어진 일이 없어지는 건 아니었다.
마침 미니건 탄약도 소진되었기에 지놈은 어안이 벙벙해진 채로 조수석으로 돌아왔다.
“지놈 님?”
“에임 맞춰 주신 거, 맞죠?”
“아…….”
이경복이 묻자 지놈이 되물었다. 잠시 머뭇거렸던 이경복은 어색하게 웃으며 답했다.
“역시 티가 좀 났죠?”
지놈의 시청자와 이경복의 시청자는 꽤 많이 중복된 바, 이미 그는 무슨 상황인지 알고 있었다.
그의 인정과도 다를 바 없는 대답에 채팅창이 활화산처럼 폭발했다.
-아 ㅋㅋ 총기부착물 왜 파밍하냐고 ㅋㅋㅋ
-ㄹㅇㅋㅋ 갓플 하나만 있으면 다 해결되는데
-1가정 1갓플 보급 청원(1/10000)
-동의! 압도적 동의!
-속보) 청년 요실금 증가, 원인은 한 스트리머로 밝혀져
-니체! 당신은 틀렸어!
-아님 ㅋㅋㅋ 당시에는 갓플이 없어서 니체가 맞음 ㅋㅋㅋ
-니체 : 아, 그때는 신이 죽어 있었다니깐!
시청자들의 놀라움이 뒤섞인 깨방정에 이경복은 멋쩍게 웃었다. 지놈은 잠시 말없이 그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내저었다.
“와, 여러분. 퍼플님이 운전하는 버스가 이 정도입니다. 너무 편안해서 타고 있는 줄도 모른다니까? 이것도 나 정도 되니까 안 거야.”
-쉴 새 없는 올려치기 무엇?
-뭐야! 나도 태워줘요!
-지놈 방송 날로 먹는 거 보소 ㅋㅋㅋㅋ
-이게 나라냐!
프로 방송인답게 그는 금방 충격에서 빠져나왔다. 그의 발언 덕분에 다시금 분위기가 돌아왔다.
한편 한껏 들뜬 분위기와 달리 이경복은 여전히 신경이 날카로웠다.
‘저격러들은 왜 없지?’
훈련소 외곽을 돌면서 꽤 많은 숫자를 처리했지만 그중에는 저격러가 없었다.
‘역시 방플 때문인가.’
게임 시작 전 제보에 따르면 저격러들은 방플을 하고 있는 상황. 어쩌면 이쪽 화력을 경계하고 미리 자리를 이탈한 걸지도 몰랐다.
“흠, 대강 훈련소 쪽도 정리가 된 것 같네요. 패키지 트럭으로 낭낭하게 파밍했으니까 시체 파밍은 생략하는 게 낫겠습니다.”
패키지 트럭에서 얻은 아이템은 트럭 뒤편에 실어 두었다. 구태여 내려서 따로 파밍하는 건 오히려 저격러들에게 여유를 주는 꼴.
그 결정에 지놈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 네네 그러시죠. 어디 보자, 슬슬 자기장도 활성화 됐으니까 다음은…….”
사망자 숫자가 늘어나며 생존자 숫자는 60명 아래로 떨어졌고, 자기장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지놈이 지도를 펼치며 다음 목적지를 찾으려는 찰나였다.
‘음?!’
예민한 육감에 불쾌한 감각이 흙탕물처럼 번져 왔다. 이경복은 곧바로 사이드미러로 뒤편을 확인했다.
우렁찬 엔진 소리는 그다음이었다.
“쿠페?!”
지놈도 한 박자 늦게 눈치채고 뒤를 돌아봤다. 도로를 따라 2대의 2인용 차량이 달려오고 있었다.
성능에 치중한 차량이기에 엔진소리도 우렁차고 속도도 상당히 빨랐다.
“이런 씹어 먹을 것들…….”
-뭐임? 왜 같이 옴?
-ㅅㅂ 티밍이네!
-저격러다! 저격러가 낙타낳다!
-아놔 이 개만도 못한 자슥덜
-찐.따.등.장
-ㅅㅂ 쿠페를 어디서 2대나 구해왔누
지놈은 물론이고 시청자들도 그들의 정체를 단번에 짐작해 냈다. 늘 유들유들하던 지놈의 표정도 단번에 굳었다.
‘이 트럭 속도로는 못 따돌린다.’
이경복도 경직된 표정으로 상황을 가늠했다. 픽업트럭으로 쿠페를 속도로 이기는 건 어불성설.
‘어차피 처리할 생각이긴 했지만 말이지.’
애당초 도망갈 생각이 없기도 했다. 지놈도 마찬가지인 듯 그는 곧바로 조수석 바깥으로 몸을 내밀었다.
“노마이크 빡겜 갑니다.”
스위치를 누르듯 바뀐 지놈의 분위기에 시청자들은 오히려 환영했다.
-혀엉! 혼쭐을 내줘!
-참교육 드가자!
-다 뒤졌다 저격쉑들 ㅋㅋㅋ
-아이디, 아이디를 보자!
-찐따쉑들 박제각 날카롭고 ㅋㅋㅋㅋ
지놈의 사격에 저격러들의 차가 흔들렸다. 하지만 놈들도 단단히 준비를 해왔다.
“조심!”
“큭!”
이경복의 경고와 동시에 쿠페에서 던져진 섬광탄. 지연시간도 맞췄는지 지놈은 미처 대응할 시간도 없었다.
곧바로 이어지는 총격에 지놈이 신음을 뱉으며 자리로 돌아왔다.
“괜찮으세요?”
“어우…… 네! 갑빠 덕분에. 이 자식들 몸샷만 노리네.”
피해를 입긴 했지만 사망에 이를 정도는 아니었다. 이경복은 굳은 표정으로 사이드미러를 보고는 지놈에게 말했다.
“지놈 님, 운전 잘하신다고 했죠?”
“네?”
갑자기 그 이야기가 왜 나올까.
하지만 이경복은 그 이유를 설명하지 않았다.
“운전대 잡으세요.”
그 말과 함께 이경복은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끼익하는 타이어 마찰음과 함께 차체가 덜컥거렸다.
이어 쿠페와 순식간에 줄어든 거리.
지놈은 놀라 당황했지만 이어지는 이경복의 행동에 진정할 수가 없었다.
“퍼, 퍼플 님!?”
이경복이 벌컥 문을 열더니 밖으로 뛰어내렸다. 지놈은 다급히 운전대를 잡고 이경복을 찾았다.
놀랍게도 그는 쿠페의 본네트 위에 올라와 있었다.
“이런 미친……!”
“씹……!”
당연하게도 저격러들은 지놈보다 놀랐다. 그 잠깐의 틈은 이경복에게는 너무나도 여유로운 시간이었다.
한 손에 들린 소드오프 샷건의 방아쇠를 당기기에는 말이다.
“꺽!”
쾅하는 격발음과 함께 유리창이 깨지며 조수석에 있던 저격러가 굴러 떨어졌다.
이경복은 이미 예상했다는 듯 그 자리를 차지했다. 운전수는 다급히 권총을 꺼내려 했지만.
“억!”
이경복의 주먹이 더 빨랐다.
정확히 턱을 가격 당하자 운전수는 ‘기절’ 상태에 빠졌다. 이경복은 아무렇지 않게 운전대를 낚아채며 그의 머리에 남은 산탄을 박아 주었다.
이 모든 상황이 30초도 안 되어 벌어졌다.
-와씨 ㅋㅋㅋㅋㅋㅋㅋㅋ
-순간 영화 보는 줄 ㅋㅋㅋㅋㅋ
-(게말콘)(게말콘)(게말콘)
-이게 사람이 할 수 있는 움직임이라고?
-아 ㅋㅋ 사람이 아니니까 되지!
-누구든 작은 퍼플을 건드리면 다 ㅈ되는 거야 ㅋㅋㅋㅋㅋㅋ
시청자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정작 이경복은 여전히 냉담한 표정이었다.
아직 처리할 저격러가 남아 있기 때문이었다.
“좀 뒤져!”
“이런……!”
이경복이 빠지자 다른 쪽 저격러들이 트럭에 붙었다. 그들의 사격에 지놈은 바짝 몸을 낮추고 권총으로 대응 사격을 하고 있었다.
이경복은 날렵하게 운전대를 잡고 맞은편에 붙었다.
“지놈 님! 조수석 문 열어 둬요!”
“예?!”
지놈도 시청자도 의문을 표했다. 지금 상황에서 조수석 문을 여는 건 자살행위가 아닌가.
하지만 이번에도 설명은 없었다.
“신이 까라면 까야지!”
그럼에도 지놈은 이를 악물고 조수석 문을 박차며 열었다. 그러자 그 너머로 옳다구나하는 표정의 저격러들과 눈이 마주쳤다.
그 징그러운 얼굴, 그리고 그 앞에 있는 총구와 마주한 순간.
끼이이익하며 찢어지는 듯한 타이어 소리에 지놈은 고개를 돌리지 않을 수 없었다.
‘무슨……?’
지놈의 동공이 크게 확장됐다. 이경복이 탄 쿠페가 트럭 앞으로 아슬아슬하게 드리프트를 하고 있었다.
순식간에 돌아선 쿠페는 저격러의 쿠페 앞을 막았다.
지놈처럼 놀란 저격러가 황급히 총구를 돌렸다.
“어?”
그러나 이상하게도 쿠페에는 아무도 없었다.
“착하게 좀 사세요.”
목소리는 옆에서 들려왔다. 어느새 이경복이 쿠페에서 뛰어내려 조수석 문에 매달려 있었던 것.
저격러는 이를 악물며 다시 조준하려 했지만 쿠페가 추돌하며 차체가 흔들렸다.
“퍼플 님?!”
“잠시.”
그리고 이경복이 매끄럽게 조수석에 안착하며 운전대를 꺾은 순간.
쾅하는 폭음과 함께 이경복이 탔던 쿠페가 폭발했다.
“끄아아악!”
충격에 조수석에 몸을 내밀었던 저격러는 튕겨 나갔고 나머지 쿠페도 불길에 휩싸였다.
지놈은 눈을 크게 뜨고 사이드미러를 바라보았다. 이윽고 쾅하는 두 번째 폭발이 일어나며 쿠페가 전소했다.
-않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미쳤다 진짜 ㅋㅋㅋㅋ 수류탄으로 시간차 공격ㅋㅋㅋ
-???: 이것도 너프해 보시지!
-또전드 ㅋㅋㅋㅋ
-킹하게 좀 갓세요 ㅋㅋㅋㅋㅋㅋ
“와…….”
지놈은 픽업 트럭을 세웠다.
이경복이 이루어 낸 결과를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게임하라니까 또 영화 찍네 ㅋㅋㅋ
-네? 여기 영화세트장 아니었어요?
-이게 퍼플이 태워 주는 버스?
-무슨 지드니랜드 어트랙션인줄 ㅋㅋㅋㅋ
-속보) L사 음료 판매 하락, 원인은 스트리머 퍼플!
-ㄹㅇㅋㅋ 사이다 왜 먹음? 갓플방송 보고 말지
-77ㅓ억! 넘나 시원하고!
-저격러들 개꼬시쥬?
아니나 다를까 시청자들의 반응도 연쇄 폭발처럼 일어났다.
“괜찮으세요?”
“네? 아, 네네. 아니, 아니, 근데 진짜 사람 맞으세요?”
지놈은 이경복을 보고 더듬더듬 말했다. 아직도 꿈을 꾸는 듯한 기분이 가시질 않았다.
-아 ㅋㅋ 저 표정 익숙한데?
-그거, 그거네! 매드맥시멈ㅋㅋㅋ
-엌ㅋㅋ 곡예보고 놀란 배우 표정 말하는 거?
-곡예는 애들 장난이지 ㅋㅋㅋ
-기적이 눈앞에서 펼쳐졌는데 당연한 거 아님?
“아니, 님들. 이거 화면으로 보는 거랑 직관이랑 전혀 달라. 와, 나 살면서 이런 건 또 처음이네.”
이경복은 그 반응에 실소를 흘렸다. 하지만 이렇게 계속 있을 수는 없었기에 그는 분위기를 전환할 필요를 느꼈다.
“아, 마지막은 좀 아쉽네요.”
“네?”
“그냥 샷건으로 처리했으면 10만 원 벌었을 텐데.”
그 말에 채팅창이 웃음으로 가득해졌다.
-아 ㅋㅋㅋ 10만원은 못 참지
-아까 소드오프로 쏜 건 적립 됨?
-ㅇㅇ 적립됨 ㅋㅋㅋㅋ
-큐다리쉑 분위기 파악 잘했누 ㅋㅋㅋ
-이번에 보고 레알 갓갓이라는 거 깨달아버린 거자너
-ㄹㅇㅋㅋ 처신 잘하네
“와, 그 10만 원 제가 드릴게요.”
“네?”
지놈의 표정은 진심이었다. 그래도 조금은 정신이 돌아왔는지 방송용 멘트가 나오기 시작했다.
“아니, 여러분. 이거 공짜로 보면 범죄야 범죄. 이런 경험 진짜 돈 주고도 못해.”
“그렇게 말씀하시면 더 받아야겠는데요?”
“앗……! 에누리 안 됩니까?”
-무친ㅋㅋㅋ 에누리 ㅇㅈㄹ
-신한테 무슨 에누리냐고!
-추하다 추놈아……
-이젠 그냥 추놈이누 ㅋㅋㅋㅋㅋ
-현장 네고 실화냐? 가슴이 옹졸해진다.
-이 타이밍에 네고를 하네 ㅋㅋㅋ
-쿨거래 외않되?
지놈의 멘트로 분위기가 다시 돌아왔다. 그는 가볍게 손뼉을 쳐서 주의를 집중시켰다.
“자, 좋습니다. 저격쉑들 단번에 컷! 이제 즐겜만 남았네요! 어디 보자 지네비가 추천하는 다음 목적지는……!”
그는 재빠르게 다시 방송을 진행했다. 그래도 합방의 호스트이자 네비게이션의 역할을 잊지는 않은 모양.
“으흠, 자기장 위치로 보면 ‘리조트’로 가야겠습니다.”
지놈이 다음 목적지를 가리켰다. 그 위치를 확인한 이경복의 눈썹이 살짝 들렸다.
‘여기는 분명…….’
아쉽게도 지놈의 말과 달리 저격러는 남아 있었다.
조금 전 처리한 4명의 저격러와 달리 별개로 움직이던 2명.
리조트는 그들이 낙하한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