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화 - 메타게이머 라이브 인터뷰 (2)
메타게이머 인플루언서 팀.
그곳에 소속된 신혜림 기자는 당연하게도 ‘인플루언서’에 대한 관심이 많다.
단순히 업무 때문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게 아니라 기자로 취직하기 전부터 큐튜버나 스트리머의 방송을 챙겨 봤었다.
이른바 ‘덕업일치’인 셈.
‘이 사람은 진짜야.’
그런 그녀에게도 퍼플은 색달랐다.
애당초 자신감은 방송인에게는 기본이었다. 수많은 사람들 앞에 자신을 내보이려면 필수불가결인 덕목이 아닌가.
하지만 그 ‘자신감’에도 결이라는 게 있다.
‘대부분은 뻔뻔한 건데…….’
처음에는 허세를 부리고 실패해도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으로 시청자들의 놀림을 산다. 그것을 주력 컨텐츠로 하는 스트리머도 많다.
실패 후에 다시 도전하는 끈기, 그리고 시청자들의 응원에 힘입어 결국 성공하는 드라마를 컨텐츠로 삼는 스트리머도 있다.
그러나 퍼플은 그런 부류가 아니다. 그의 방송을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허세가 아니라 진짜로 할 수 있으니까.’
그 이름 그대로 ‘퍼펙트’를 추구하고 증명한다.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을 너무나 쉽게 해낸다.
신혜림은 그런 사람들을 부르는 명칭을 알고 있었다.
‘진짜 천재구나.’
그리 생각하니 가슴이 두근거렸다. 퍼플에게 이성적으로 끌린 것인가?
아니, 그런 감정이 아니었다.
‘그런 사람을 내가 가장 처음 인터뷰한다니……!’
그냥 인터뷰도 아니고 ‘단독’ 인터뷰. 기자에게 ‘최초’와 ‘단독’은 일종의 훈장과도 같았다.
‘팀장님 감사해요!’
그녀는 이 귀중한 기회를 제공해 준 팀장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인터뷰를 시작했다.
그리고 스트리머 퍼플은.
“앞으로 몇 번을 만나든 제가 이길 테니까요.”
그녀의 예상보다 더 패기 넘치는 인물이었다.
“저, 저! 퍼플 님?”
“네?”
“이거…… 라이브라 저희가 기사에는 그대로 실을 수밖에 없다는 거 아시는 거죠?”
일반적인 인터뷰라면 편집을 거쳐서 기사로 게재된다. 덕분에 양측 모두 무슨 ‘실수’라도 한다면 수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라이브 스트리밍으로 진행하는 인터뷰니 기사에서 토씨 하나 달라져도 문제가 생길 여지가 있었다. 조금 전 발언 역시 기사에 그대로 올라갈 것이다.
응원하는 팬심으로, 신혜림은 퍼플이 신중하길 바랐다.
이에 스트리머 퍼플, 이경복은 미소로 화답했다.
“그럼요. 그래서 라이브로 하는 건데요.”
“네?”
“괜히 서로 오해가 없도록 깔끔하게 라이브. 좋잖아요?”
이경복의 발언에 채팅창이 다시금 달아올랐다.
-아 ㅋㅋ 말실수 따위는 [퍼][펙][트]하지 않다고
-무수정 원본은 못 참지!
-악마의 편집 방지 미쳤고 ㅋㅋ
-메타게이머는 그래도 그런 짓은 안 하자너 ㅋㅋㅋ
-기레기들이랑 사이버렉카들이 잘함^^
-???: 어서와, [퍼][펙][트] 인터뷰는 처음이지?
신혜림은 잠시 멍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영상으로만 접했던 그 자신감이 눈앞에서 펼쳐지니 순간 어안이 벙벙해진 것이다.
그러나 그녀도 프로였다.
“역시! 이번 인터뷰를 계기로 다른 인플루언서 분들께서도 라이브로 하면 좋겠네요. 그럼 본격적으로 질문 시작하겠습니다!”
금방 정신을 추스른 그녀는 미소와 함께 인터뷰를 이어 나갔다.
“아마 대부분의 시청자분들이 궁금해하실 사항인 것 같은데요. 방송을 시작하기 전, 퍼플 님은 과연 어떤 사람이었는가? 간단히 소개 부탁드리겠습니다!”
-오오오오오오오!
-55555555!
-이거 진짜 궁금ㅋㅋㅋㅋㅋ
-갓직히 피지컬 보면 국정원 요원임
-국정원이 왜 나왘ㅋㅋㅋㅋ
-복싱했다는데 선수 출신 아님?
-아시아의 불닭 주먹 퍼플!
-불닭은 또 뭔데 ㅋㅋㅋㅋㅋ
-??? : 다시는 불닭의 나라를 무시하지 마라.
-아 뭘 모르네ㅋㅋㅋ 당연히 호카게지
-왠지 PMC에서 일했을 듯
질문과 함께 무수히 쏟아지는 추측들. 그러나 단 하나도 맞는 게 없었다.
이경복은 그리 상상하는 시청자들이 귀엽게만 보였다.
“다들 기대를 많이 해 주시는데 아쉽게도 저는 그냥 평범한 직장인이었습니다.”
그 대답에 채팅창에 물음표가 솟구쳤다.
-평범이요?
-5252! 직장인 평균 무냐고!
-트수들은 직장 안 다녀서 몰라!
-평범한 직장인 퍼플은 뭐임? 군필여고생 같은 거임?
-정보) 여고생 전투력 = 2특수부대원은 이미 검증된 사실이다.
-아 ㅋㅋㅋ 신분 위장한 국정원이네
-복싱 관두고 취직한 거네 ㅋㅋ
-요즘 투잡시대라 호카게도 직장 다님^^
-트수들 단체 가불기 뭐냐곸ㅋㅋㅋㅋㅋㅋ
다들 믿지 않는 분위기였다. 신혜림 역시 그중 하나였다.
“네? 그냥 회사만 다니셨다는 말씀이신가요?”
“예. 그 이상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아무래도 회사 쪽에도 알려질 테니 말을 아끼겠습니다.”
이경복은 그리 말하고 잠시 눈을 굴리다가 한 마디를 덧붙였다.
“사실 다니던 직장에서는 끝이 그리 좋지는 않아서요. 괜히 특정되면 서로 피해가 될 것 같습니다.”
-ㅁㅇㅁㅇ?
-갓플이 설마 짤린 거?
-설마 갓플이 짤렸겠음? 무적권 회사 쪽에 문제가 있었겠지 ㅋㅋㅋ
-ㄹㅇㅋㅋ 회사에서 뭐 덤터기 씌우려다가 역으로 당한 거 아님?
-인재 보는 눈이 없누 ㅋㅋㅋ
-그 회사 곧 망할 듯ㅋㅋㅋ
-ㄹㅇㅋㅋ 신의 직장이었는디.
-아 ㅋㅋㅋ 신이 일한다고 신의 직장이누.
-갓플이 방송 시작하게 해줬으니 감사하다.
신혜림은 힐끔 채팅창을 확인했다. 그대로 놔두면 근거 없는 추측으로 과열될 우려가 있었기에 그녀는 빠르게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회사를 관두시고 스트리머로 전향하게 되신 계기가 있으실까요?”
“방송은 지금 편집자인 친구의 추천으로 시작했습니다. 방송에도 한 번 말씀드린 적이 있는데, 제가 고등학교 때는 프로게이머를 준비했었거든요.”
-프로 준비했다고? ㄹㅇ임?
-퍼피셜로 리얼임 ㅋㅋㅋ
-하나도 아니고 세 곳에서 왔었다구웃!
-헐 ㅋㅋㅋㅋ 역시 싹부터 남달랐누
-편집자님 싸랑해요!
-정작 편집자님은 블랙기업의 착취를 ㅠㅠㅠ
-???: 내가 그때 추천만 안 했어도!
-???: STAY! STAY!
이미 아는 팬들은 많았지만 신규 유입된 시청자들도 많았기에 다들 흥미로워했다.
“아, 네네! 저도 봤습니다. 티어원, 댄디 그리고 기원 다이아까지. 지금도 쟁쟁한 팀들이었죠!”
“네, 하지만 아쉽게도 입단은 못 했습니다. 제가 당시에는 몸이 좀 허약해서 그런지 자주 아팠거든요. 테스트 도중에도 몸이 안 좋아서 통과를 못 했습니다.”
실제로는 신기의 반동 때문으로 인한 증상이었지만 그것까지 설명해 줄 수는 없었다.
-허약?
-갓플과 허약 너무 안 어울리는 조합인디
-아프지망 ㅠㅠ
-방송 오래해 줘잉 ㅠㅠㅠ
-수염 덥수룩한 트수들이 걱정하는 모습 상상하니 어지럽누
-지금은 그냥 건강한 수준이 아니자너 ㅋㅋㅋㅋ
채팅창을 바라본 이경복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운동도 그런 이유로 계속해 왔었습니다. 덕분에 지금은 괜찮습니다.”
“정말 다행이네요. 약간 분위기가 처졌는데 다른 질문 드리겠습니다. 게임 취향은 어떠신가요? 역시 FPS류를 주로 좋아하시는 걸까요?”
신혜림의 시기적절한 질문 변경에 채팅창 분위기도 일변했다.
-그래도 역시 MOBA아니겠음?
-ㄹㅇㅋㅋ 프로 준비까지 했는데
-ㄴㄴ 그건 모름. 좋아하는 거랑 잘하는 건 또 다름
-갓플은 다 잘하는데?
-아 맞네 ㅎㅎ ㅋㅋ ㅈㅅ;;
-제발 RPG도 좋아해 줬으면 ㅠ
-혹시 레이싱은 해 볼 생각 없습니깟!
-의외로 리겜러일 수도?
-듀얼 중독자일 킹능성도 이따
-트수들 추측하는 척하면서 다 자기 취향 내세워 버리누 ㅋㅋㅋㅋ
이경복은 빠르게 손사래를 내저었다.
“아뇨, 꼭 그런 건 아닙니다. 제 계정 이력을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가상현실 게임에 입문한 지 얼마 안 됐거든요.”
“아, 네네. 그렇죠. 방송 시작과 함께 처음 접하셨다고.”
“네. 그래서 제 경험은 PC와 콘솔 시기에 멈춰 있는 수준입니다. 덕분에 지금 가상현실 게임이라면 모두 다 신기하고 재미있게만 느껴져요.”
-ㄹㅇㅋㅋ 처음 캡슐에 들어갔을 때 충격 오졌는데
-아 ㅋㅋㅋ 그게 진짜 특이점이지
-프로토타입에 비하면 진짜 많이 나아진 거임
-프로토타입 ㅋㅋㅋㅋ 아재 티 너무 나자너
-퍼플이 가상현실 뉴비라는 게 믿기지가 않는다.
-와 ㅋㅋㅋ 또 인지부조화 오네
-이게 만렙뉴비인가 그거냐?
시청자들은 새삼 자신의 첫 경험을 되새기며 공감했다. 이경복은 그 반응에 웃으며 한 마디를 덧붙였다.
“그래서 지금은 특정 장르에만 집중하기보다는 다양한 경험을 해 보고 싶습니다. 그러니 재미있는 게임 있으시면 추천해 주시길 바랄게요.”
그 답변에 채팅창이 다시금 달아올랐다.
-그럼 로아 찍먹 한 번 해 보쉴?!
-로아 재미있어유!
-로아저씨들 급히 오다!
-갓플 피지컬이면 모터 호라이즌도 씹어먹을 듯 ㅋㅋㅋ
-ㄹㅇㅋㅋ 거그에서도 운전 개 쩔었는데
-킹스스톤 아십니까? 겁나 재미있습니다.
-그거 전장 에뮬레이터 아니냐?
-돌크리트들 잠복해 있었누 ㅋㅋ
-무슨 게임을 할지 듀얼로 결정하자!
-듀얼중독자 쳐내!
-일단 고티 겜부터 훑고 가야 된다는 게 학계의 점심.
폭발하듯 올라오는 채팅에 신혜림은 난처하게 웃으며 손사래를 내저었다.
“아니, 추천은 일단 나중에 해 주세요. 질문! 시청자분들 질문을 해 주셔야죠!”
“네, 추천은 나중에 따로 해 주시고요. 이왕이면 어려운 게임으로 추천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경복도 한 마디 덧붙이자 효과가 있었다. 대신 채팅창에 물음표가 연달아 올라왔다
“지금까지 한 게임들은 좀 쉬웠으니까요. 도전 정신을 자극하는 게임이 좀 필요하지 않나…….”
-님한테만 쉬운 거잖슴!
-않이;; 바크는 어렵다고 개발사에서 패치까지 한다는데!
-퍼플/인성/논란
-또또 기만브레스 나왔쥬?
-또만브레슼ㅋㅋㅋㅋㅋ
-무친ㅋㅋㅋㅋ 이거 기사에 다 실리는 거 아님?
-엌ㅋㅋㅋ 광범위 기만브레스 무냐고!
-늘 새로워! 짜릿해! 퍼기만이 최고야!
-퍼카인이네 퍼카인이야
-퍼카인은ㅋㅋㅋ또 뭔뎈ㅋㅋㅋㅋ
-속보) 경찰청, 마약신고 증가에 우려 표명. ‘퍼카인’은 대처법 없다고 밝혀.
-미친ㅋㅋㅋㅋ트수 순발력 뭔데!
틈틈이 채팅을 살피던 신혜림도 참지 못하고 웃음을 흘렸다.
“푸흡…….”
“우리 퍼청자들 드립이 좀 찰지죠?”
이경복이 자랑스럽다는 듯 말했다. 그 발언에 다시금 채팅창이 열광했다.
-퍼청자!?
-갓플이 우릴 부르셨어!
-5252! 우리도 [퍼][펙][트]였던 거냐구웃!
-우리? 우리이? 서윗한 거 뭔데!
-아 ㅋㅋㅋ 바로 퍼며 들었쥬?
-우리가 게임은 못 해도 드립은 가차 없지!
-아주 요물이야 요물! 작정하고 우릴 빠지게 만들려고!
-않이 ㅋㅋㅋ 그냥 트수들이 쉬운 거 아님?
-학생 눈치 챙겨^^
-말 한마디로 마음을 빼앗는 스트리머가 있다?
-무슨 퍼사노바냐고 ㅋㅋㅋㅋㅋ
-퍼사노바는 또 뭔데 ㅋㅋㅋㅋㅋ
-트수들 드립 욕심 미쳤누 ㅋㅋ
애정을 넘어 광기를 보이는 채팅창에 신혜림은 황급히 다음 질문을 던졌다.
“크흠, 자 그러면 다음 질문. 혹시 방송 중에서 이런 점이 힘들었다 하시는 게 있으실까요?”
“힘든 점이라.”
이경복의 눈썹이 살짝 들렸다. 그러나 이내 표정은 여유로운 미소로 돌아왔다.
“저는 운이 좋은 편이라서요.”
“운이요?”
“네. 편집자도 그렇고 지금 매니저를 담당해 주는 친구도 그렇고 좋은 친구들 덕분에 큰 어려움은 없습니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경복은 불길한 인물들과는 거리를 멀리했으니, 비록 그 수는 적더라도 주변에는 좋은 사람들밖에 남지 않았다.
“가끔 방송에서 물 흐리는 사람들도 오곤 하는데요. 친구들 도움은 물론 퍼청자들 덕분에 곤란한 적은 없었네요.”
그의 멘트에 채팅창이 훈훈해졌다.
-눈팅하는 사과단들 보고 있나?
-분탕들은 썩 꺼져!
-ㄹㅇㅋㅋ 우리 퍼플은 우리가 지켜야지 ㅋㅋ
-작은 퍼플을 건드리면 아주 주옥 되는 거야!
-이게 [퍼][펙][트]지 ㅋㅋㅋㅋ
-아 ㅋㅋ 오늘 인터뷰 작정하고 [퍼][펙][트]할 셈이냐고!
-응애 퍼플은 아가야. 우리가 지켜줄 거야!
-아가가 너무 큰데요?
-아무튼 신생 스트리머임^^
-제발 후원 좀 열어줘… 못 참겠어……!
-내 지갑에서 돈이 나가고 싶어한다고!
-이 트수가 후원하는 기쁨을 알까요?
-그럼 메타게이머 채널서 하쉴?
-않이 ㅋㅋㅋ 갓플한테 보여 줘야 의미가 있지 ㅋㅋㅋ
애정 가득한 채팅창에 신혜림도 마음이 흐뭇해졌다. 계속 보고 싶은 마음도 컸지만 인터뷰 시간이 한정적이기에 진행을 이어 나가야 했다.
“역시 퍼플 님이 사랑받는 이유가 있는 것 같습니다. 자, 그럼 이쯤에서 잠시 그 애정 어린 질문 확인해 볼까요?”
그녀의 요청에 스튜디오의 스크린 화면이 바뀌었다.
[1위 ??? - 2468회]
가려진 질문 옆에 공개된 숫자. 신혜림은 바로 설명을 붙였다.
“질문 순서는 가장 많은 시청자분들이 궁금해 하시는, 중복된 질문부터 공개해 보겠습니다. 보여주세요!”
그녀의 외침과 함께 테이프를 뜯어내는 듯한 효과와 함께 감춰진 질문이 공개됐다.
[오늘의 팬티는 무슨 색깔?]
순간 잠시 정적이 흘렀다.
-않잌ㅋㅋㅋㅋㅋㅋ
-팬티충들 왜케 많냐굿!
-내가 다 부끄럽누 ㅋㅋㅋㅋㅋ
-야! 인터뷰가 장난이야?!
-차라리 악마의 편집을 해!
-헐ㅋㅋㅋ 당연히 필터링 될 줄 알았는데 ㅋㅋㅋ
-진짜 ㅋㅋㅋㅋ 완전 리얼로 가네 ㅋㅋㅋ
-아아, 모르는가? 이게 바로 [퍼][펙][트]류 진심 질문이다!
-퍼청자라면 이 정도는 기본이지
-자랑스러워 하지마! 이 미친놈들앜ㅋㅋㅋ
질문을 한 시청자들도 부끄러워 헀지만 이경복은 담담했다.
“오늘은 무난하게 네이비입니다. 빨간 걸 입고 올 걸 그랬나?”
채팅창이 ‘ㅗㅜㅑ’로 가득해지자 이경복은 피식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당연히 농담이죠.”
“아, 네. 그럼 다, 다음 질문!”
오히려 당황한 신혜림이 빠르게 질문을 넘겼다. 다른 시청자 질문은 무엇일지 그녀는 상상하기가 어려웠다.
‘방송사고만 없었으면……!’
그녀는 간절히 기도했다.
* * *
순위가 높은 질문들은 대개 가벼운 종류였다. 이경복은 마치 스피드 퀴즈를 하는 것처럼 막힘없이 답변을 이어 나갔다.
[여자친구 있나요?]
“없습니다.”
[짜장? 짬뽕?]
“굳이 고른다면 짜장이요.”
[부먹? 찍먹?]
“혼자 먹으면 부먹, 같이 먹으면 찍먹.”
[민트초코 호불호?]
“치약은 양치할 때만 맛봐도 충분하지 않나요?”
조금 진지한 질문은 그 이후에 나왔다.
[실물 공개해 주실 수 있나요?]
이경복이 처음으로 즉답 대신 눈을 굴렸다.
‘역시 있네.’
예상치 못한 질문은 아니었다. 인터뷰를 승낙했을 때부터, 그리고 라이브로 진행하기로 결정했을 때부터 나올 질문이라 생각했다.
“아, 혹시 대답이 어려우시다면 다른 질문을…….”
잠시 주저한 걸 곤란이라 생각한 걸까. 신혜림의 말에 이경복은 웃으며 손사래 쳤다.
“아뇨, 아닙니다. 중요한 질문이네요. 이 자리에 필요한 질문이기도 하고요.”
이경복은 다시 시선을 카메라 쪽으로 돌렸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얼굴은 공개할 겁니다.”
-헐!
-참트루?
-머박!
-설마 지금 하는 거!?
-ㅁㅊㄷ ㅁㅊㅇ
폭증하는 시청자들 반응에 이경복은 고개를 내저었다.
“당장 하겠다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스트리머로서 언젠가는 얼굴을 공개해야죠. 나중에는 야외방송도 하고 현실에서 우리 퍼청자도 만나 보고 싶기도 하고요.”
-아 난 또 지금 하는 줄……
-아쉽누 ㅠㅠㅠㅠ
-아 ㅋㅋㅋ 이제 한 달도 안 됐는데 트수들 왜케 급하냐굿!
-야방이랑 팬미팅은 해 준대자너
-난 그냥 방송만 오래 해 주면 좋겠음
-갓플 하고 싶은 대로 다 해!
채팅창의 반응은 각양각색이었다. 하지만 다들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건 알았는지 수긍하는 흐름이었다.
“아시다시피 외모라는 게 선입견의 주요한 부분이니까요. 아직은 좀 더 스트리머 ‘퍼플’로서 여러분에게 다가가고 싶습니다.”
-고건 맞지.
-외모도 능력이야 능력!
-킹쩔수 없는 팩트 ㅠ
-누구보다 선입견에 시달리는 트수들……
-지는 아닌 척 ㅋㅋㅋㅋ
-얼굴 얘기 그마내!
시청자들은 구태여 더 길게 이야기를 끌지 않았다. 다른 스트리머들 중에서도 외모에 콤플렉스가 있어 실물을 공개하지 않는 이들이 흔했던 터였다.
때문에 그들은 잠정적으로 퍼플에게도 콤플렉스가 있을 거라 판단했다.
‘외모만 보고 좋아해 주면 관계가 오래가지 못하니까.’
사실 이경복은 학창시절, 자신의 얼굴만 보고 다가왔던 반 친구들의 경험을 토대로 한 것이었지만 말이다.
자신도 모르게 또 기만질을 해 버린 이경복이었지만, 그도 시청자도 그 사실을 아직 알지 못했다.
“네, 그럼 다음 질문 보여 주세요.”
그 사이 신혜림은 빠르게 진행했다. 시청자 질문을 끝내고 남은 인터뷰를 진행해야 했다.
[민둥산님이랑 합방하시나요?]
“아, 이건 조금 전 대답이랑 통하는 게 있네요. 아직은 현실 컨텐츠를 진행할 생각이 없어서 거절했습니다.”
-헐ㅋㅋㅋㅋ 진짜 섭외 왔었누
-퍼튜브에 머리 들이밀 때부터 눈치챘음 ㅋㅋ
-아 ㅋㅋ 너무 빛나서 모른척할 수가 없자너
-민둥산 아조씨 그만 놀려!
-너 그거 대머리 혐이야
약간 진지했던 분위기는 다시 가볍게 돌아왔다. 이경복은 웃으며 남은 질문들의 답변을 이어 나갔다.
그렇게 질문 중복 횟수가 두 자리로 접어들 즈음.
“아, 지금 인터뷰 시간상 한 자리 숫자 질문들은 넘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이 점 양해 부탁드릴게요!”
신혜림이 적절하게 시청자 질문 코너의 종착점을 찍었다.
-ㄹㅇㅋㅋ 한 자리 숫자면 별 이상한 질문 다 나올 듯
-한 자리면 질문 개수도 많을 거 아녀 ㅋㅋㅋ
-팬티 색 알려 준 것만으로도 충분함
-팬티충 성불 뭔데 ㅋㅋㅋㅋ
-기자님도 퇴근 하셔야 한다구웃!
-[블랙기업]에 그런 건 없다
-않이;; 기자님도 갓플 산하로 취직시켜 버림?
-아 ㅋㅋ 방송 출현하면 [블랙기업] 손아귀라고
채팅창의 반응도 나쁘지 않았다. 그렇게 남은 질문의 수가 착실하게 줄어 가는 와중.
[대리 계정 아니라는 거 밝혀 주세요!]
모두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질문이 나왔다.
-이건 또 뭔 ㅎㄷㄷ
-눈팅하던 사과단 놈들 아녀?
-질문한 트수들 부검 가나요?
-ㄴㄴ 놈들이면 이 정도 숫자밖에 안 될 리가 없음.
-저거 나도 했음. 이 자리에서 제대로 털고 가야 될 거 같아스
-아 ㅋㅋ 그런 거면 인정이지.
-ㄹㅇㅋㅋ 딱 박제해 두면 사과단 놈들 딴말 못 함.
시청자들 반응에 이경복은 신혜림을 돌아봤다.
“예상했던 질문이네요. 기자님?”
“네. 아무래도 이슈가 이슈였던 터라 해당 사항은 저희 쪽에서 먼저 조사를 끝내 뒀습니다.”
그 대답에 채팅창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이윽고 스크린 위로 계정정보 인증 자료가 나타났다.
“보시는 자료대로 퍼플 님이 쓰시는 계정은 ‘일반’계정입니다. 멀티 아이디를 제공하는 ‘VIP’계정이 아니라요.”
검증방법이야 간단했다.
애당초 ‘대리’를 사용하려면 멀티 아이디가 필요하고, 현재 해당 기능을 제공하는 등급은 ‘VIP’등급뿐이었다.
-메타 억제기 발동!
-아 ㅋㅋ 주작무새들 다 아닥해 버리쥬?
-ㄹㅇㅋㅋ 갓플이 혼자 제시했으면 무적권 주작이라고 ㅈㄹ함
-추과단아 사하다!
시청자들에게는 해당 자료보다 메타게이머에서 ‘공증’했다는 사실이 더 중요했다.
스트리머 혼자 제시한 자료는 얼마든지 트집을 잡을 수 있는 여지가 있지만 메타게이머가 검증을 거쳤다면 이야기가 달랐다.
-예전에도 멀티아이디 터졌을 때 메타게이머에서 검증했자너 ㅋㅋ
-리얼리티까지 쳐들어가서 다 기사 따오고 그랬지
-괜히 메타게이머가 1위인 게 아님
-게임사가 배포하는 보도자료만 퍼먹는 기레기들이랑은 차원이 다르제
처음 뉴턴좌가 ‘대리’의혹을 터트리고 그 실체를 파헤친 게 메타게이머였기 때문. 덕분에 게임 웹진 사이에서 공신력이 가장 높았다.
“이 부분은 인터뷰 사전에 퍼플님의 협조를 받아 ‘리얼리티’사 측으로부터 확인을 받은 사실입니다. 저희 메타게이머는 아무나 인터뷰하지 않는다는 사실, 꼭 기억해 주세요!”
“애당초 대리 쓸 거면 게임을 왜 하죠? 재미가 없는데.”
이어 신혜림이 쐐기를 꽂았고, 이경복이 그 쐐기를 강하게 박아 넣었다. 시청자들은 그 상황에 흡족함을 숨기지 않았다.
-혹시 퍼자감도 옮나요?
-뭐예요? 나도 퍼자감 줘요!
-나도 갓플처럼 당당하게 살겠어!
-트수는 이미 방구석에서 당당하지 않음?
-언어폭력 너무 심한 거 아니냐고!
-맞말추 ㅋㅋㅋㅋㅋ
-대리충들 진짜 게임 왜 함?
-할 말은 한다! 퍼펙콜라!
-77ㅓ억! 이거 탄산음료 인터뷰였나요?
그리 즐거운 분위기 속 나머지 질문이 모두 끝났다.
“자, 여기까지 시청자 질문을 받아봤습니다. 그리고 이제…….”
신혜림이 남은 진행을 이어 나가려던 차였다. 그녀가 약간 눈을 크게 뜨며 시선을 돌렸다.
이경복이 뭔가 싶어 바라보자 신혜림이 난처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아, 퍼플님. 저희 쪽 채널에서 후원이 왔는데요.”
“후원이요?”
“네. 이게 꽤 고액이라 그냥 넘어가면 혹시 문제가 될까 해서요. 그리고…….”
현재 인터뷰는 트라이 플랫폼의 ‘연계’ 기능을 통해 퍼플 채널과 메타게이머 채널에 동시 송출되고 있었다.
인터뷰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퍼플은 후원을 막아 둔 반면, 메타게이머 채널은 후원을 열어 둔 상태.
“그, 진짜인지는 모르겠지만 상대 계정명이 뉴턴좌입니다.”
“뉴턴좌요?”
이경복은 놀라면서도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알림음과 함께 후원이 전달됐다.
[‘뉴턴좌’님이 ‘1,00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퍼플 채널은 후원 막았는데 여기다 하면 되는 거지?]
[‘뉴턴좌’님이 ‘1,00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아무리 복기를 해 봐도 이해가 안 가는 게 있어서 말이야.]
[‘뉴턴좌’님이 ‘1,00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본인 입으로 답을 듣고 싶거든. 이것도 질문이라고 봐도 되지 않나?]
[‘뉴턴좌’님이 ‘1,00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물론 공짜로 해달라는 건 아니야.]
[‘뉴턴좌’님이 ‘1,00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500만 원. 질문은 영상 후원으로 하지.]
연달아 나타난 후원 메시지에 채팅창은 난리 통을 방불케 했다.
-레알 뉴턴좌?
-ㅁㅊ 이거 실화냐
-질문에 오백을 태워!?
-이 정도면 찐인데 ㅎㄷㄷ
-5백이면 가짜여도 진짜임
-뭔 개소리냐곸ㅋㅋㅋㅋㅋ
-계속 인터뷰 보고 있던 거? ㅋㅋㅋㅋㅋㅋ
-약점 찾으려고 감시한 거 분명함!
-집념 보소;;;
채팅창 반응에 이경복은 미소를 지었다.
‘알아서 컨텐츠를 만들어 주네.’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