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화 - 흐릿한 마녀 (1)
이경복은 집에 도착하자마자 박주호가 보내 준 메일을 확인했다.
[퍼플 경에게 보내는 친서]
제목부터 심상치 않았다.
내용을 읽기 시작한 이경복은 왜 박주호가 ‘도전장’이라고 표현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안녕하시오!
본인은 ‘이클립스’라고 하외다.
최근 가신들로부터 훌륭한 기사가 등장하였다 하여 이를 살펴본 바, 퍼플 경의 위용을 보게 되었소.
그리고 엄청난 감격을 느꼈소이다.
경의 유려한 동작과 절도 있는 솜씨는 말 그대로 전무후무할 정도!
대체 얼마나 수많은 수련을 쌓았는지 도통 짐작도 할 수 없구려.
하지만 내가 그대에게 친서를 보낸 이유는 그것이 아니오.
묘지기여!
내 수없이 그를 만났으나 나의 눈은 그 진면목을 알아보지 못했소이다.
부끄럽게도 본인은 기사도를 추구하면서 그가 나와 같은 기사였음을 눈치채지 못했구려.
생각해 보면 그의 말투와 행동거지에서 품격이 배어나 왔거늘, 나는 아둔하게도 그를 꺾을 생각에 사로잡혀 있던 게요.
이런 부족한 내게 깨달음을 전해 준 그대를 직접 만나보고 싶소.
가신들이 말하기를 경께서는 누구의 결투라도 거절하지 않는다 선언했으니, 이 또한 훌륭한 기사의 귀감이라!
허나 무턱대고 찾아가는 일 역시 기사도에 위배되는 만큼 이에 친서를 보내오.
부디 퍼플 경과의 명예로운 결투를 허락해 주길 바라며 이만 글을 줄이겠소.]
마치 편지를 쓴 듯한 내용에 이경복은 자신도 모르게 실소를 흘렸다. 비유적인 의미가 아니라 실제 도전장과 비슷했다.
박주호가 전해 준 것은 그 메일뿐만이 아니었다.
[이클립스 자료]
밤사이 그가 찾아낸 이클립스에 대한 정보를 정리한 문서가 따로 첨부되어 있었다.
[아래 자료를 보면 알겠지만 이클립스는 소위 말하는 ‘혼모노’다. 그것도 프롬 스튜디오 전문이지.]
혼모노.
진성 오타쿠를 뜻하는 은어였다.
[가상현실 이전, PC와 콘솔 때부터 ‘다크 링’시리즈를 시작했다. 하지만 게임만 했다면 혼모노가 아니지.
메일을 보면 알겠지만, 시청자들은 가신이라 부르고 말투도 중세 기사처럼 할 정도다.
게임 방송과 더불어 게임 속 캐릭터들의 모션을 토대로 현실의 검술까지 연마하는 컨텐츠를 제작했어.]
첨부된 영상에는 갑옷과 헬멧을 걸친 채 검을 휘두르는 한 남자가 있었다.
그가 바로 이클립스였다.
이클립스는 게임 속 기사처럼 되고 싶었다. 그 의지만으로 운동과 검술을 병행했고 스스로를 단련해 나갔다.
일식이라는 뜻의 ‘이클립스’를 이름으로 선택한 이유도 다크 링에 나오는 문양과 비슷하기 때문이었다.
[가상현실이 나오기 전부터 이렇게 훈련을 해 왔다. 결국 가상현실과 함께 엘든 시리즈 첫 작품 ‘엘든 나이츠’가 나오게 되고 그는 바라던 기사가 됐어.
그 완벽한 컨셉 플레이에 사람들이 관심을 가진 건 당연했지. 그 뒤로는 성공궤도에 올랐다.]
전작인 ‘다크 링’ 시리즈로 단련된 게임 감각과 혹독한 수련을 거쳐 갖춘 피지컬, 그리고 시청자의 몰입감을 극대화하는 컨셉까지.
이클립스는 프롬 스튜디오 작품의 팬들로부터 인정을 받았다.
그리고 이는 한국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었다.
[일본은 물론이고 영미권에서도 꽤 알려진 스트리머더라고. 덕분인지 현재 채널 구독자는 60만 초반대다.
한 장르만 파고드는 스트리머 치고는 상당한 규모지.
게다가 프롬 스튜디오도 그를 꽤 인정해 주고 있어. 엘든 시리즈 2번째 작품인 ‘엘든 킹덤’에 이클립스를 오마주한 캐릭터를 NPC로 넣었거든.]
첨부된 사진 속에는 중무장 한 기사 캐릭터가 있었다.
[일식의 기사]
갑옷에는 이름에 어울리는 일식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이런 사람이다 보니 문제될 논란도 없다. 메일도 보면 알겠지만 빨대를 꼽으려는 것보다는 진짜 실력을 겨루고 싶은 모양인데.
비즈니스 메일에도 저렇게 쓸 정도면 진짜는 진짜다.
물론 결정은 네 몫이지만.]
이경복은 나머지 자료를 살핀 후에 옅은 미소를 지었다.
‘즐길 줄 아네.’
보통 스트리머와 달리 돈 보다 게임과 방송에 진심이라는 게 느껴졌다.
잠시 고민하던 이경복은 스마트 링크로 통화를 걸었다.
<어…… 여보세요.>
“아, 형 자고 있었어?”
<아니, 아니…… 조금 전에 깼었어. 무슨 일이냐?>
통화 너머로 들려오는 잠긴 목소리, 그는 바로 지놈이었다.
“아, 그게 다름이 아니라…….”
지놈은 장인해부학 방송을 진행하면서 이미 이클립스를 만나 본 적이 있었다. 이경복은 간단히 상황을 설명했다.
지놈은 설명을 듣고 웃음을 흘렸다.
<아, 진짜? 네 메일에도 그렇게 썼어? 이클립스 님답다 정말.>
“형한테도 그랬어?”
<어어, 그랬지.>
“어떤 사람인데?”
<음…… 뭐, 너처럼 말 편하게 지낼 정도는 아닌데. 특이하긴 해도 문제될 사람은 아니야. 그 ‘기사도’라는 것 때문인지 예의도 엄청 바르고.>
지놈은 기억을 더듬듯 느릿하게 말을 이었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이클립스랑 결투하면 주목 받고 괜찮을 것 같은데? 뭐, 어차피 엘든 소울 PVP는 3번째 스테이지 끝나야 열리니까 차근차근 생각해 봐.>
“그래? 알았어. 자다 깨워서 좀 미안하네.”
<으으으! 사람 되려면 일어나야지. 아, 근데 너 이미 방송에서 PVP 다 환영이라고 하지 않았냐?>
한껏 기지개를 켜는 소리와 함께 지놈이 아차 싶다는 투로 말했다.
“아, 그건 그렇지.”
<그러면 오히려 좋지. 야, 이클립스 님처럼 미리 양해 구하는 건 양반이야. 지금 저격러들이랑 빨대 꼽으려는 하꼬들이 벼르고 있을걸? 걔네들이 지금처럼 양해 구하고 오겠냐.>
“맞네. 그런 사람들한테 자리 주는 것보다는 낫겠어.”
<그래, 그래. 야, 내 방송에서도 PVP하라고 난리다. 근데 난 안 할 거야.>
“왜?”
<이미 질 거 뻔히 아는데 뭐 하러 끼냐? 형도 가오 좀 챙겨야지.>
지놈의 대답에 이경복은 웃음을 흘렸다.
“하긴, 형이라고 안 봐주지.”
<어휴, 독한 놈. 빈말이라도 좀 져 준다고 하지. 아무튼 수고해라.>
“어, 다음에 봐.”
* * *
그날 저녁.
스트리머 퍼플의 엘든 소울 2번째 방송이 시작됐다.
“트하!”
이경복이 반갑게 인사를 건네자 대기하던 시청자들이 채팅을 쏟아냈다.
-퍼하!
-오늘은 오래 해줄 거지? 그치? 맞지?
-내가, 내가 개가 될게! 월월!
-당신 같은 방송을 오랫동안 기다렸다우
-어제 같은 비인간적인 방종은 제네바 협약에 위배됩니다!
폭발하듯이 올라가는 채팅들.
‘7천 명 되니까 슬로우 채팅이어도 엄청나네.’
시청자 숫자는 7천을 웃돌은 와중에도 계속 증가하고 있었다.
[‘선입금후시청’님이 ‘5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미리 돈 넣어 두면 방송시간 늘어나는 거 맏찌?]
[‘엘든방송기금처’님이 ‘1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엘붕이들 뭐하는 거냐구! 어서 돈 넣으라구!]
[‘절대계속해’님이 ‘10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아 ㅋㅋ 내 신장이 2개인 이유를 이제 알아버렸고]
[‘무지성후원’님이 ‘2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후원하면 방송이 복사가 된다고!]
이윽고 쏟아지는 후원들.
이경복의 방종에 매콤한 맛을 본 시청자들이 선입금을 택한 것이었다.
-아 ㅋㅋㅋㅋ 아직도 유입들 정신을 못 차렸누
-방종각을 이런 푼돈으로 막겠다?
-그래도 혹시 모름 ㅋㅋㅋ
-ㄹㅇㅋㅋ 자본주의 파동 계속 밀어 넣으면 해 줄지두?
-신장 드립은 뭔데 ㅅㅂㅋㅋㅋㅋ
이경복은 쏟아지는 후원에 감사를 표하다가 가볍게 손뼉을 치며 주의를 환기시켰다.
“자, 오늘은 방송에 앞서 잠깐 공지드릴 게 있습니다.”
그 말에 물음표가 번지는 채팅창. 이경복은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오늘 1차로 이모티콘이 완성됐습니다! 구독해 주신 분들은 새로고침 하시면 쓸 수 있을 거예요.”
박주호가 의뢰했던 이모티콘이 완성되어 업데이트가 됐다.
‘게말콘’과 유사한 디자인으로 만든 간단한 인사용 이모티콘인 ‘퍼하콘’과 ‘퍼바콘’, 그리고 참 잘했어요 도장을 패러디한 ‘퍼도장’ 콘이었다.
-오오오오오!
-(퍼하콘)(퍼하콘)(퍼하콘)
-(퍼도장콘) 엌ㅋㅋㅋㅋ
-도장에 ‘퍼펙트했어요’ ㅋㅋㅋ
-아 ㅋㅋㅋ 바로 구독간다
-글자티콘은 참아도 이건 못 참지
곧바로 채팅창에 새로운 이모티콘이 도배되었다.
[‘미지의구독자’님이 ‘1’개월 구독중입니다!]
[갓플은 구독자를 획득했다.]
[‘방송연장의꿈’님이 ‘1’개월 구독중입니다!]
[구독하면 방송 오래해 주는 거 맏찌?]
[‘엘든방송기금처’님이 ‘1’개월 구독중입니다!]
[엘붕이들 구독 안하고 뭐하냐구!]
동시에 쏟아지는 구독 메시지.
이경복은 이에 재차 감사를 표하며 말을 이었다.
“아, 구독 감사드립니다. 아쉽지만 이거 다 읽으면 방송이 더 늦어지니까 양해 부탁드릴게요.”
-아 그럼 읽지 말아야지ㅋㅋㅋ
-ㄹㅇㅋㅋ 그럴 시간에 얼른 게임 해!
-오히려 트수들이 감사를 거부하누 ㅋㅋㅋㅋ
-이런 방송 나쁘지 않을지도?
시청자들의 반발은 없었다. 그들은 조금이라도 빨리 이경복의 활약을 보고 싶어 했다.
이경복은 재차 손가락을 튕겼다.
이모티콘 이미지가 사라지고 큐튜브 채널이 나왔다.
[퍼펙트FULL레이]
기존 채널은 아니었다.
“마지막 공지로, 큐튜브에 풀 영상 채널이 신설됐습니다. 다시보기가 불편하다는 분들이 많아서요. 이쪽도 많은 사랑 부탁드립니다.”
-WA! 분점 개설!
-드디어 풀영상 채널이 나왔누ㅋㅋ
-이건 한국인이라면 바로 구독이지 ㅋㅋㅋ
-무친 ㅋㅋㅋ 한 달도 안 돼서 분점 여는 거 뭔데!
-속보) 아인슈타인, ‘시간의 상대성 증거를 한 스트리머에게서 찾아’. 과학계 경악!
-미친 ㅋㅋㅋ 상대성 ㅇㅈㄹㅋㅋㅋ
흥겨워진 채팅창에 이경복도 미소를 지었다. 그 사이 시청자 숫자는 9천까지 올라왔다.
이경복은 가볍게 손뼉을 치며 주의를 모았다.
“자, 그럼 공지는 끝났고 바로 게임 들어가겠습니다!”
게임이 실행되자 삽시간에 시야가 뒤바뀌었다. 이경복은 천천히 눈을 떴다.
안개로 뒤덮인 어두운 숲.
-다시 봐도 ㅎㄷㄷ하다
-안개가 무슨 벽 같음
-뭐가 튀어나올지 모른다 이 말이야
-진짜 찔끔찔끔 나가게 됨ㅋㅋㅋㅋㅋ
-너무 게임 잘 만든 거 아니냐구웃!
우려하는 시청자들과 달리 이경복은 성큼 발을 내디뎠다. 심지어 무기조차 들지 않고 산책이라도 나온 것처럼 유유히 걸었다.
-???????
-이 패기 무엇?
-여길 저렇게 걸어 간다고?
-아 ㅋㅋㅋ 벌써부터 시작됐누
-아아, 이게 바로 ‘퍼자감’이라는 것이다.
-(퍼도장콘)
-??? : 간이 크거든요.
채팅창은 놀람과 웃음으로 뒤섞였다. 그러나 아무런 이유 없이 자신감을 내비친 건 아니었다.
‘초입이라 뭐 없나 보네.’
비록 시야가 제한되긴 했어도 이경복에게는 육감이 있었다. 발달된 오감이 안개를 뚫고 주변 지형을 머릿속에 그려 주었다.
그렇게 걸음이 빠른 덕일까.
얼마 지나지 않아 이경복은 콕콕 쑤시는 불쾌함을 맛볼 수 있었다.
‘망자는…… 아니네.’
묘지에서 만난 망자와는 결이 달랐다. 이경복은 천천히 호흡을 고르며 동강난 장검을 잡았다.
-뭐지? 무엇을 암시하는 것이지?
-적인가!?
-않이;;; 보이는 게 없는디?
-갓플이 반응했으니까 뭐 있는 게 맏따
-ㄹㅇㅋㅋ 트수는 몰라도 갓플은 안다굿!
그 행동에 채팅창이 술렁였다.
이윽고 이경복이 속으로 주문을 외자 무기가 붉게 달아올랐다. 이에 더욱 술렁임이 커지려는 그때.
“시시싯-”
고요를 뚫고 기묘한 소리가 들려왔다. 어디선가 바람이 새는 것 같기도 했지만 이상하게 긁히는 듯한 소리가 뒤섞였다.
-어씨!
-큰 거 온다 ㅎㄷㄷ
-ㅅㅂ 아는데도 떨리누
-스포는 ㄴㄴ
-갓파고가 보고 계시다구!
시청자들도 즉각 반응했다.
안개 때문에 보이는 건 없었다. 그럼에도 이경복은 곧바로 몸을 돌렸다.
사락거리는 나뭇잎 소리가 그 뒤를 따라 들려왔다. 그리고 안개 너머 어슴프레한 실루엣이 보였다.
-뭐임?
-사람인가?
-머리? 머리 같은데?
-않이;;; 머리가 왜 저렇게 흔들리냐고
안개 사이로 움직이는 건 사람의 머리처럼 보였다. 그러나 평범한 사람이라면 저렇게 머리가 좌우로 흔들릴 턱이 없었다.
“사람은 아니네요.”
이경복이 한 마디를 뱉은 순간.
사락사락사락, 소리가 급격히 빨라졌다. 안개 속 머리가 순식간에 다가오며 그것의 정체가 드러났다.
흔들리는 인간의 머리, 그 아래로 비대해진 목뼈가 몸을 뚫고 뿌리처럼 자라났다.
마치 몸속에서 뼈가 폭발한 듯한 모습, 그 정체는 바로 골각(骨角)지네였다.
-으헐얼어헝허!
-진짜 프롬의 몬스터 디자인은 레전드다
-골각지네는 언제 봐도 ㅎㄷㄷ 하누
-이거 첨 봤을 때 개놀라서 강제 종료해 버렸는데 ㅋㅋㅋㅋ
-아놬ㅋㅋㅋ 엄마가 뭐냐고 들어오심
-엄마호출 뭔뎈ㅋㅋㅋㅋㅋㅋㅋ
-갓플은 왜 안 놀라냐구웃!
시청자들이 놀람을 표출하는 와중에도 이경복은 차분했다.
오히려 약간의 실망이 어렸다.
‘묘지기만큼 센 놈도 아니네.’
느껴지는 위협 수준이 망자보다는 강했지만 각성한 묘지기 정도는 아니었다.
그는 곧바로 골각지네를 향해 쇄도해 나갔다.
“시시싯-!”
기묘한 소리의 출처는 골각지네의 머리였다. 정확히 말하면 골각지네가 움직이면서 목뼈 사이로 공기가 긁히는 소리였다.
날카롭게 솟아난 뼈들이 그를 향해 쏜살처럼 날아들었다.
‘까다롭긴 하겠어.’
시간 차를 두고 날아드는 뼈들이 시야를 가득 메웠다. 보통 사람이라면 도저히 뚫고 갈 엄두가 나지 않았을 터였다.
하지만 이경복에게는 완벽한 길이 보였다.
-와 ㅋㅋㅋ 이걸 다 피한다고!?
-왜! 바닥을! 안 구르냐고!
-정보) 구르기는 엘든소울 대표 회피기다(안씀)
-아 ㅋㅋ 그냥 요리조리 피하면 되는데 왜 구름?
-저게 요리조리로 표현할 수준이냐고 ㅋㅋㅋㅋ
단번에 돌파를 성공한 이경복은 놈을 향해 무기를 휘둘렀다. 둔탁한 타격음과 함께 뼈에 균열이 일어났다.
-엌ㅋㅋ 소리 겁나 시원하누
-이게 그 추나인가 그거냐?
-타골장인 갓플 ㅋㅋㅋㅋ
-???: 아아! 잠깐 뼈 맞았어 뼈!
-골각지네 바로 찐따행ㅋㅋㅋㅋ
-추각지네야 골하다!
-와 ㅋㅋㅋ 진짜 튜토 겨우 깨고 이쉑한테 몇 번을 죽었는데
-77ㅓ억! 사이다 너무 맛나고
-(퍼도장콘) 받을 만하다ㅋㅋㅋ
이경복이 일방적으로 유린하자 시청자들은 흡족함을 감추지 않았다.
골각지네는 제 긴 몸을 휘두르며 육탄전을 감행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이경복은 집요하게 약점인 목을 연달아 타격해 결국 부러뜨렸다. 쿵하는 소리와 함께 골각지네의 거체가 쓰러지며 먼지처럼 흩어졌다.
“괴물이라고 좀 기대했는데 역시 잡몹이네요.”
이경복의 단평에 채팅창이 물음표로 가득해졌다.
-않이;; 잡몹이 맞긴 한데
-그렇게 말하면 잡몹한테 죽는 우리가 뭐가 되냐굿!
-잡몹 > 트수
-외모 얘기하는 거임?
-골각지네는 위압적이기라도 하지ㅋㅋㅋㅋ
-???: 어우, 몹 인줄 알았네
-너 나 우리의 이야기……
-야! 실력만 가지고 놀려!
-기만브레스에 혼란 효과가 추가됐나?
시청자들이 아우성치는 사이 흩어진 골각지네의 잔해 위로 빛무리가 어렸다.
이경복은 눈을 크게 뜨며 손을 뻗었다.
[소울(25)을 획득했다.]
이어 나타난 메시지와 함께 빛무리가 퍼지더니 금빛 형체로 변했다.
마치 이경복의 테두리를 따다 만든 것과 같은 형태.
[머리 – 지력/집중력 (50)]
[팔 – 근력/생명력 (50)]
[몸통 – 지구력/생명력 (50)]
[다리 – 근력/지구력 (50)]
[소울 – 한계치 (50)]
5개로 나누어진 부위에는 각기 다른 설명이 쓰여 있었다.
“아, 이게 성장 기능이네요. 오른쪽 숫자는 필요한 소울의 양인 것 같고.”
이경복은 바로 이해했다.
-아 맞네 ㅋㅋㅋㅋ 이미 해금됐지
-엌ㅋㅋㅋ 개꿀이구연
-근데 업글 필요 수치가 좀 다른데?
-다회차 컨텐츠라서 난이도가 높아졌나 봄 ㅎㄷㄷ
-ㄹㅇㅋㅋ 1회 차는 10인가 그런데
-1회 차 맞는데요?
-1회 차지만 다회차…… 으윽 머리가!
-게슈탈트 붕괴 온다!
시청자들 반응에 이경복은 웃으며 몸을 돌렸다. 어차피 소울이 부족하니 오래 붙들고 있을 필요가 없었다.
“지금까지 한 거 보면 굳이 올려야 되나 싶기도 하네요.”
-????????
-않이;;;
-숨이 턱! 막혔는데 할 말이 없다 ㅋㅋㅋ
-ㄹㅇㅋㅋ 진짜 그냥 깨버렸자너
-갓플은 이미 기존 스탯이 높은 듯ㅋㅋㅋ
-엌ㅋㅋㅋ 현실 스탯이 너무 높다굿!
-으음! 이 기만이야! 이게 본고장의 맛이지!
-본고장 ㅇㅈㄹ ㅋㅋㅋㅋㅋ
이경복은 다시 길을 재촉했다.
안개 속 격한 전투에도 길을 헤맬 걱정은 없었다.
‘이쪽에서 뭔가 좋은 기운이 느껴지는데.’
그의 신기가 방향을 인도해 주었다. 덕분에 오래 걸리지 않아 기이한 장소를 발견할 수 있었다.
“여기는…….”
약간 흩어진 안개 속에 독특한 형태의 구조물들이 보였다.
기이한 문양처럼 꺾인 나뭇가지들이 나무에 매달려 있었고, 인위적인 손길이 느껴지는 토템이 여럿 세워져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건 그 중심에 세워진 제단.
-헐?
-뭐야? 왜 이렇게 빨라?
-않이;;; 보통 3시간은 헤매는 게 정상 아님?
-대체 뭔데!
-아 ㅋㅋㅋ 주수리는 운이 없지만 갓플은 운이 만땅이라굿!
안개 속에서 전투를 치르게 되면 당연히 방향감각이 어그러진다. 때문에 일반 플레이어들은 안개숲에서 헤매면서 전투를 거듭하는 게 정상이었다.
“그러게요. 운이 좋았습니다.”
이경복은 가볍게 멘트를 치며 제단을 향해 다가갔다.
이윽고 통제권이 사라지는 게 느껴졌다.
“여기는…….”
주인공이 의아해 하는 순간.
어디선가 불어온 바람에 나뭇잎이 일렁였다. 이윽고 바람은 소용돌이처럼 안개를 끌어당겼다.
신기하게도 잿빛 안개는 흩어지지 않고 그대로 뭉쳐지며 마치 여인의 형상을 갖추었다.
“당신은…… 부서진 자로군요.”
그 모습에 걸맞게 흘러나온 감미로운 목소리.
-눈나!
-크 ㅋㅋㅋ 귀가 녹는다.
-우리 누님 어서 오고 ㅋㅋㅋ
-안개 형태만 봐도 미모가 뿜어져 나온다굿!
“조력자인 모양이네요.”
시청자들의 호의적인 반응에 이경복도 동의했다. 그녀로부터 전혀 위협이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당신은 누구지?”
그러나 컷신 속 주인공은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그 물음에 안개가 일렁였다.
“이름도 육신도 시간 앞에 사라졌어요. 지금은 그저 ‘흐릿한 마녀’라고 불릴 뿐.”
“흐릿한 마녀……?”
“이름은 그저 존재의 편린에 불과해요. 그것이 나를 나타내지는 않죠. 당신도 그렇지 않나요? 부서진 자여.”
흐릿한 마녀는 마치 주인공을 살피듯 천천히 주위를 맴돌았다.
“나와 당신은 크게 다르지 않아요. 우리 모두 망자가 되지 않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죠. 다만 저는 정신보다 육체를 버렸을 뿐.”
“그래서 안개의 형상인 것인가?”
“네. 하지만…… 육신이 없다는 건 꽤 불편한 일이죠. 괜찮다면 거래를 하지 않겠어요?”
“거래?”
“당신이 가진 묘지기의 소울을 넘겨주세요. 소울만 있다면 육신은 만들면 그만이라. 물론 보답은 확실히 해 드릴게요.”
마녀가 그리 말하자 채팅창에 술렁였다.
-어? 근데 이미 소울 기능은 해금 됐잖슴?
-생각해 보니 그르네?
-아 원래 소울 기능이 여기서 해금됨?
-ㅇㅇ 눈나가 영혼각인 알려 주면서 열림
-휴, 이제 스포 아니네
원래대로라면 마녀와의 만남을 통해 소울 기능이 해금될 터였다. 때문에 기존의 컷신은 여기서 끝이 나야 했다.
하지만 통제권은 돌아오지 않았다.
“내게 뭘 주겠다는 거지?”
주인공의 물음에 마녀가 다시금 그 주위를 맴돌았다.
“당신, 영혼에 각인하는 법을 알고 있군요? 흐음…… 쉽게 알아내기 힘들었을 텐데 몇 번이나 부서진 걸까…….”
-???: 네? 처음인데요?
-???: 부서져요? 그런 적이 없는데?
-엌ㅋㅋㅋㅋㅋㅋ 생각해 보니 그르네
-ㄹㅇㅋㅋ 갓플은 유다희도 안 만났자너
떠들썩해진 채팅창도 잠시.
“과연, 당신 주술사였군요? 그렇다면 이야기가 다르겠어요. 소울을 주면 제가 아는 주술을 알려 드릴게요.”
이어지는 마녀의 한 마디에 분위기가 일변했다.
-헐?????
-마녀 눈나가 주술을?!
-마녀 주술을 알려 준다고?
-않이;;; 주술 여기서 배우는 거 아닌데?
-큰 거 왔다! 큰 거 왔다! 큰 거 왔다!
-눈나가 주술을 알려 줬음?
-헐ㅋㅋㅋ 주술사 짚어 주는 거 보니까 배경마다 보상 다른가 봄
-히든 장인 갓플! 히든 장인 갓플! 히든 장인 갓플!
-(퍼도장콘)(퍼도장콘)(퍼도장콘)(퍼도장콘)
-엌ㅋㅋㅋㅋ또전드 나와버렸고
폭풍처럼 채팅이 휘몰아쳤다.
마녀의 주술은 공개된 적이 없는 컨텐츠인 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