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의 신들린 게임방송-68화 (68/491)

68화 - 흐릿한 마녀 (3)

전례가 없는 융합 주술의 등장에 채팅창은 열광으로 가득했다.

그러나 이경복은 차근차근 그 반응을 살필 시간이 없었다. 보스, 원령골렘이 재차 시체를 집어던졌기 때문이었다.

“같은 수에 두 번은 안 당하지!”

이경복은 양손을 휘둘러 채찍을 날렸다. 붉은 열풍이 날아오는 채찍을 휘감았다. 그는 곧장 허리를 틀며 부풀어 오르는 시체를 원령골렘에게 되돌려 보냈다.

-캬 ㅋㅋㅋㅋ 겁나 화려하누

-이거 엘든소울 맞음? ㅋㅋㅋ 완전 당신의 아들이 돌아왔소인데

-ㄹㅇㅋㅋ 갓오브워페어자너

-여윽시 쥐불놀이 민족답다!

팽창한 시체는 불까지 붙어 골렘의 휘석을 향해 쇄도했다. 하지만 골렘의 방어는 그리 무르지 않았다.

골렘은 두터운 팔로 날아드는 시체를 쳐냈다. 쾅하는 굉음과 함께 뼛조각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역시 저 팔부터 좀 어떻게 해야겠네요.”

-ㅇㅇ 맞음

-근데 어케 공격함?

-저 화염채찍으로 준내 치면 되는 거 아님?

-근데 상대가 골렘이라;;

-대검이나 둔기류가 필요헌디

-이거 시간 좀 걸리지 싶다

약점을 공략하라면 방어수단인 팔을 처리하는 게 올바른 수순. 그러나 시청자들은 마땅한 공격수단을 떠올리지 못했다.

“다 생각이 있죠.”

이경복의 말에 채팅창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하지만 이어지는 설명은 없었다.

골렘이 재차 시체를 떼어내 던지려 했다. 이경복은 한발 앞서 손을 움직였다.

이번에는 한 손에서 3개의 붉은 줄기가 뻗어졌다. 그 주술은 순식간에 골렘의 손을 휘감아 묶었다.

그 모습에 시청자들도 이경복이 무엇을 노렸는지 눈치챘다.

-오 ㅋㅋㅋㅋㅋ

-이런 식으로 쓸 수도 있누 ㅋㅋ

-응~ 이제 못 던져~

-자기 무기에 자기가 당해 버리쥬?

골렘 손아귀에서 팽창하기 시작하는 시체. 이대로라면 골렘의 손안에서 폭발이 일어날 터였다.

그러나 골렘도 가만히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거체가 신속히 움직이며 팔을 휘둘렀다.

이경복의 근력으로는 그 힘에 저항할 수 없었다. 주술을 유지해야 했기에 그의 몸이 그대로 붕 떠올랐다.

-으어어어어어어!

-나무! 나무!

-꼬라박는다아아아악!

골렘은 그대로 이경복을 처리하려는 듯 장애물을 향해 팔을 휘둘렀다.

큼직한 나무와 바위가 순식간에 눈앞까지 다가왔다. 시청자들은 기겁하며 난리를 피웠지만.

“오, 이거 재미있네.”

이경복은 오히려 생긋 웃으며 멘트를 쳤다. 그에게는 그럴 여유가 충분했다.

아직 남은 한 줄기의 붉은 채찍. 이경복은 그것으로 공중에서 방향을 조정했다.

-이걸 피한다고?!

-멀미 온다……

-이게 거미맨의 시점?

-???: 저 속이 이상해요……

-그게 그 의미가 아니잖앜ㅋㅋㅋ

-ㄹㅇ 어질어질하누 ㅎㄷㄷ

-반응속도 미쳤다ㅋㅋㅋㅋㅋ

시청자들이 경탄을 터트리는 와중 쾅하는 굉음이 들려왔다. 결국 먼저 시체가 폭발한 것이었다.

이경복은 재빠르게 채찍을 회수해 착지하며 골렘의 상태를 살폈다.

골렘의 손아귀에는 무수한 뼛조각이 박혀 있었고 손목에는 작은 균열이 일어났다.

-쪼꼼 아쉽다잉

-소리만 요란했누;;

-골렘쉑 개 딴딴하네

-그게 골렘이니까(끄덕)

-한 네다섯 번은 더 해야 할 듯?

위험을 감수한 것 치고는 미미한 피해. 시청자들은 이에 아쉬움을 표출했다.

하지만 이경복의 생각은 달랐다.

“됐네요.”

시청자들이 무어라 반응하기도 전이었다. 이경복은 허리춤에 매두었던 동강난 장검을 튕기듯 뽑았다.

이윽고 4개의 붉은 줄기가 손잡이를 휘감았다. 이경복은 자신 있는 미소와 함께 손을 휘둘렀다.

쏜살처럼 빠르고 길게 뻗어지는 붉은 궤적.

그것은 정확히 골렘 손목에 생겨난 균열을 파고들었다. 쩍하는 소리와 함께 균열이 벌어졌다.

-무친……!

-이걸 맞췄다고!?

-정확도 대체 뭔데!

-않이 ㅋㅋㅋ 주술 쓴지 얼마나 됐다고

-주수리 슈프림! 주수리 슈프림! 주수리 슈프림! 주수리 슈프림!

-골렘 : 게임 X같이 하네!

-최고의 칭찬 나와버렸누 ㅋㅋㅋ

확산된 균열과 함께 골렘의 손이 무너져 떨어졌다. 대부분의 시청자들은 이경복의 승리를 예상했다.

하지만 엘든소울을 플레이해 본 이들은 생각이 달랐다.

-2페이즈 온다!

-마수리로 할 때도 바닥 구르면서 한 30분은 싸웠는데

-공략 개 빠르네 진짜 ㅋㅋㅋㅋ

-아무리 갓플이라도 2페이즈는 쉽지 않음ㅋㅋ

-ㄹㅇㅋㅋ 잡몹들 다굴 피하면서 싸우면 1시간 뚝딱

시체를 수류탄 삼아 던지는 건 어디까지나 기본, 원령골렘에게는 다른 공격패턴이 있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상황은 그들의 예상과 달랐다.

골렘의 검붉은 휘석이 공명하듯 떨리기 시작했다. 놈은 남은 한 손으로 제 몸에 붙은 시체를 바닥에 일렬로 흩뿌렸다.

“오…….”

이경복은 작게 탄사를 흘렸다.

휘석의 색과 같은 검붉은 오라가 흩뿌려진 시체들을 휘감았다. 이어 급격히 증식한 시체의 뼈들은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서로를 얽어맸다.

-?????

-어?

-뭐지? 이게 아닌데?

-뭐야, 왜 안 살아나?

-패턴이 다른데?

-어뜨케 된겨 어뜨케 된겨!?

시청자들은 당황했다.

자신들이 알고 있던 원령골렘의 2페이즈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 나왔기 때문.

그사이 완성된 거대한 뼈창이 골렘의 손에 쥐어졌다. 오라는 마치 검은 불꽃이 타오르는 듯 일렁였다.

그와 함께 찢어지는 듯한 바이올린 소리가 들려왔다. 이윽고 점차 고조된 음악이 뚝 멈추며 골렘이 크게 창을 휘둘렀다.

일순간의 정적.

그러나 고요의 공백은 순식간에 메워졌다.

우지직하는 소리와 함께 나무들이 무너졌다. 연이은 굉음이 청각을 가득 메웠다. 하늘까지 가렸던 높은 나무들이 도미노처럼 쓰러지며 밤하늘이 드러났다.

새하얀 달빛이 숲의 장막을 뚫고 골렘과 이경복을 비추었다. 마치 그곳이 무대인 양, 스포트라이트를 켠 것만 같았다.

“지금부터가 본격적이라는 느낌이네요.”

그에 응답하듯 골렘의 휘석이 공명하며 울림을 뱉었다.

-압박감 지렸다 ㅎㄷㄷ

-않이;;; 패턴이 왜 바뀐 거?

-이런 연출 없었는데 어케 된 거?

-ㅅㅂ 원래 잡몹들 잡으면서 소울 줄이는 건디?

-새 루트라서 바뀐 듯?

-선택형 보스로 바뀌면서 난이도도 변경된 거네 ㅋㅋㅋㅋ

-맞네! 이거 원래 나중에 잡아도 되는 거니까!

-ㄹㅇㅋㅋ 이걸 지금 어케 잡냐고

-리트각 날카롭고

-킹직히 이건 죽어도 갓플 잘못 아님 ㅋㅋㅋ

채팅창은 흥분과 걱정으로 가득했다. 다들 죽음을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이경복은 죽을 생각도 포기할 마음도 없었다.

“집중 좀 할게요.”

예민해진 육감이 주변 상황을 파악했다. 그의 머릿속에 밀려드는 정보는 신속하게 분류됐다.

‘되겠어.’

해결책은 순식간에 떠올랐다.

그 사이 골렘의 거창이 그를 향해 날아들었다. 이경복은 신속히 채찍을 휘둘러 자리를 벗어났다.

-와 ㅅㅂ 위력 보소

-한 방만 맞아도 끔살 확정 ㅎㄷㄷ

-주수리는 원래 그랬는디?

-아 ㅋㅋ 생각해 보니 그렇누

-혀엉! 빠른 리하고 렙업하고 오자!

-이걸 이길 방법이 있다고?

창이 지나간 자리는 완전히 초토화가 되어 있었다. 무너진 나무는 완전히 조각조각 흩어졌다.

시청자들은 가망성이 없다고 판단. 그러나 이경복은 묵묵히 골렘의 공격을 회피해 나갔다.

-이거 왜 계속 하는 거임?

-그렇다고 골렘한테 공격하는 것도 아니고 ㅋㅋㅋ

-이렇게 질질 끄는 거 방송 컨셉이랑 안 맞는데……

-않이 ㅋㅋㅋ 얼마나 지났다고 바로 불편충들 튀어나오누

-컨셉 걱정 해 주는 거 뭐임? ㅋㅋㅋ

-퍼알못 쉑들은 좀 싸물자 ㅋㅋ

-ㄹㅇㅋㅋ 갓플 방송 봤으면 저딴 말 못 하지

채팅창 분위기도 그닥 좋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경복은 꿋꿋하게 회피를 지속했다.

그가 멈춘 건 약간 시간이 지난 후였다.

-이제야 포기하나?

-결국 아무것도 없었누 ㅋㅋㅋㅋ

-생각보다 실망인데?

-갓직히 깔끔하게 포기할 줄 알아야 하는 게 퍼펙트 한 거지

그 행동을 포기라고 생각한 시청자들이 기회다 싶어 채팅을 쳤다.

하지만 이경복은 웃고 있었다.

“이제 화력 좀 높여 볼게요.”

그 말에 채팅창에 물음표가 가득해졌다. 이경복은 양손 위로 붉은 채찍을 쥐었다.

다시금 날아드는 거창에 맞추어 이경복은 골렘의 몸을 이용해 회피기동을 선보였다.

거기까지는 이전과 같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른 두 줄기의 화염채찍이 바닥을 흩뿌렸다.

그 궤적을 따라 불길이 치솟았다.

-????

-불, 불이야!

-퐈이아!

-뭐임? 어케 된 거임!?

-무친ㅋㅋㅋㅋㅋㅋ

이경복의 움직임은 더욱 현란해졌다. 채찍이 날아들 때마다 불길이 솟구쳤다. 삽시간에 불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본 몇몇은 이경복의 전략을 알아차렸다.

-와 ㅋㅋㅋ 설마 계속 공격 피한 게 이걸 노린 거?

-골렘이 나무를 다 쪼개놔서 불이 더 잘 붙누

-보스를 잡으려고 산불을 내는 스머가 있다?!

-이 영상을 산림청이 싫어합니다

-뭔 산림청이야 ㅅㅂ ㅋㅋㅋ

점점 격렬해지는 화염.

골렘의 몸에 붙어 있던 시체들이 후두둑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거창에 서렸던 오라의 크기 역시 줄어들기 시작했다.

‘역시 맞았어.’

이경복은 자신의 예상이 옳았음을 깨달았다.

원래 패턴에서 잡몹들을 제거하면 줄어든다는 소울, 초토화된 주변 환경, 그리고 그가 가진 주술까지.

주어진 환경과 정보, 그리고 능력을 취합하여 만들어 낸 결과였다.

-근데 이러면 갓플도 당하는 거 아님?

-화상 댐지 때문에 먼저 죽을 텐데;;

-듣고 보니 그렇네ㅎㄷㄷ

이대로라면 이경복도 위험한 건 마찬가지가 아닌가. 하지만 이경복은 그 의문을 싹부터 뿌리 뽑듯 불길 속으로 착지했다.

채팅창에는 물음표가 떠올랐다. 시청자들의 의문을 해결해 준 건 엘븐소울 플레이어들이었다.

-엌ㅋㅋㅋ 엘알못들 많누

-그냥 불이면 죽는데 이건 좀 다름

-ㄹㅇㅋㅋ 주술로 만든 불이자너

-자기 주술에는 피해 안 받지 ㅋㅋㅋ

-아무리 프롬이 악랄해도 선은 있다구웃!

지금 주변을 뒤덮은 모든 불은 이경복의 주술이 근원이었다. 만약 피해를 입었다면 주술을 융합했을 때부터 느꼈을 터였다.

그러나 아직 보스전이 끝난 건 아니었다.

불길에 휩싸인 골렘이 이경복을 향해 몸을 돌렸다. 놈은 그를 향해 거창을 힘껏 내리쳤다.

쾅하는 굉음이 울렸다. 거센 풍압에 화염이 양옆으로 갈라졌다. 그 안에서 자욱하게 먼지와 재가 뒤섞여 피어올랐다.

-헐!?

-갓플이 못 피했음?

-화염 안이라서 안 보였나봄 ㅠ

-아…… 이거 다 이긴걸……

-아모른직다!

-사망메시지 안떳자너 ㅋㅋㅋ

-아 ㅋㅋ 유다희 양 안 나왔다고

마지막 채팅을 증명하듯 이경복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성이 없으면 역시 상대하기가 쉽네요.”

그와 함께 먼지 구름 속에서 채찍에 휘감긴 동강 난 장검이 튀어나왔다. 작은 날붙이는 그대로 거창을 향해 날아들었다.

쩌적하는 소리와 함께 균열이 벌어졌다.

-????????

-저게 왜 부서짐?

-뭐야 ㅅㅂ?

-내가 아는 동강난 장검이 아닌가?

-상식 무너지는 소리가 들린다 ㅋㅋㅋㅋ

재와 먼지가 가라앉으며 이경복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는 동강난 장검을 회수하며 입을 열었다.

“골렘이 내구도 생각하면서 공격하지는 않잖아요?”

-아! 맞네 ㅋㅋㅋ

-엌ㅋㅋㅋ 오러 없어져서 내구도 오링 난 거?

-하긴 저렇게 무식하게 휘두르면 박살나는 게 맞지

-???: 어이쿠 손이 미끄러졌네

-퍼거스니?

시청자들은 곧바로 이해했다. 이경복은 웃으며 주술을 거두었다.

그와 함께 걷잡을 수 없을 것 같았던 화염이 금방 수그러들었다.

새까맣게 그을린 대지와 골렘 위로 시퍼런 달빛이 비추어졌다.

원령골렘은 그대로 정지한 채 움직이지 않았다. 몸통 중앙에 있던 휘석이 힘없이 굴러떨어졌다. 이상하게도 검붉은 색이었던 휘석은 녹색 빛을 머금고 있었다.

보스전의 끝이었다.

-이걸 클리어하네 ㅋㅋㅋㅋㅋ

-와…… 그 짧은 순간에 전부 다 계산했다고?

-진짜 이건 보고도 믿기지가 않누 ㅋㅋㅋㅋ

-ㄹㅇㅋㅋ 누가 이렇게 깰 거라고 상상이나 했겠냐구!

-아까 포기충들 다 어디 갔쥬? 싹 다 버로우 해 버렸쥬?

-속보) 쥐구멍에 때아닌 인산인해. 쫓겨난 쥐들 “고심 끝에 피리부는 사나이 따라가기로.”

-않이 ㅋㅋㅋ 피리부는 사나이는 따라가면 죽잖엌ㅋㅋㅋㅋ

-피지컬? 뇌지컬? 퍼지컬 미만잡ㅋㅋㅋㅋ

-우리는 퍼펙트의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는 퍼펙트의 시대에 살고 있다!

시청자들의 반응이 즉각 터져 나왔다. 채팅창이 환호로 가득한 와중 이경복은 통제권이 사라졌음을 느꼈다.

“아아…….”

불어온 바람과 함께 탄식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이번에는 흩어진 재들이 흐릿한 마녀의 형상을 이루는 재료가 됐다.

“이건…… 거인이 아니었군요.”

그녀는 녹색 휘석을 들고 주인공에게 돌아왔다.

“그건?”

“숲지기 골렘의 휘석이에요. 본래는 왕국에서 숲을 가꿀 목적으로 만들어졌죠. 뼈를 성장시키는 힘도 원래는 식물의 생장을 돕기 위한 것이었을 텐데…….”

주인공은 그녀가 건넨 휘석을 받았다. 마치 박동하는 심장처럼 녹색 빛이 점멸했다.

“분명 그 안에 담긴 소울을 망자들이 노렸겠죠. 골렘은 숲과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망자를 처리했을 테죠. 그런 일이 반복되면서…… 결국 망자의 원념이 휘석을 오염시킨 거예요.”

마녀는 씁쓸함을 감추지 않았다.

-원래 이런 설명 없지 않았음?

-ㅇㅇ 그냥 휘석 받고 땡임 ㅋㅋ

-난 식인 골렘 뭐 그런 건 줄 알았는데 ㅋㅋㅋㅋ

-여기 마녀 눈나는 왜케 친절하냐굿!

-이게 다 망자 탓이다!

시청자들은 새로 밝혀진 이야기에 흡족함을 숨기지 않았다.

그 사이 컷신 속 주인공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왕국에서 만들었다면 왜 이렇게 된 거지? 관리하는 사람이 있었을 텐데?”

“……숲을 벗어나면 알게 될 거에요.”

마녀는 고개를 내저었다. 이윽고 그녀는 휘석에 손을 올리며 말을 이었다.

“부서진 자여. 당신 덕분에 저는 육체를, 그리고 자유를 찾을 수 있게 됐어요. 그대가 죽음을 무릅쓰고 은혜를 베풀었으니, 그에 보답해 주고 싶어요.”

“보답?”

“네. 그 전에, 이 골렘의 소울을 일부를 받을 수 있을까요?”

그 물음에 주인공은 휘석을 돌아봤다. 그러나 곧 고개를 주억거렸다.

“감사해요.”

미소와 함께 그녀의 몸이 흩어졌다.

-눈나 어디가! 눈나 어디가!

-보상해 준다며!

-않이;;; 먹튀하시면 어떡해요!

-아 ㅋㅋ 이러면 캐럿시장 온도 떡락 못 참지

-중고거래였냐고 ㅋㅋㅋㅋㅋ

시청자들의 반응이 더 이어지려는 찰나, 녹색 휘석이 쪼개지며 빛무리가 흩어지며 주인공의 몸으로 스며들었다.

[‘숲지기 골렘의 소울’을 획득했다.]

이윽고 나타난 메시지. 하지만 그럼에도 빛무리는 아직 남아 있었다.

이내 바닥에서 소용돌이치듯 진흙이 솟아나 빛무리를 휘감았다. 진흙은 그대로 뭉쳐지더니 한 여인의 형상이 되었다.

그 모습은 조금 전 사라진 흐릿한 마녀와 판박이었다.

“음, 주술이 제대로 적용된 모양이네요.”

그 작은 흙인형의 입에서 마녀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눈나? 마녀 눈나 맞아?

-이건 또 무냐구!

-눈나가 미니미가 되어 버렸어!?

-미니 눈나가 나왔다고!?

시청자들의 반응에 대답하듯 흙인형, 마녀 골렘은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건?”

“제 영혼과 연결된 골렘을 만들었어요. 진짜 육체를 만들기까지는 아무래도 시간이 필요해서요.”

“나와 같이 가겠다는 건가?”

“삶을 빚졌으니 그 보답으로 삶을 드려야지요. 기억을 잃으셨으니 제 조언이 나름 도움이 되지 않겠어요? 아, 그리고 적정량의 소울을 주시면 주술을 알려 드릴게요.”

“……그냥 알려 주는 게 아니라?”

“으음…… 이 몸으로 주술을 발현하면 소울이 소모되니까요. 그렇게 되면 연결이 끊겨 버리거든요.”

마녀골렘의 대답에 채팅창은 다시금 술렁였다.

-헐 ㅋㅋㅋㅋ 주술 상점이네

-다회차 전용 편의기능인 듯?

-오 ㅋㅋ 아까 전처럼 해설도 해줄 듯

-다 필요 없고 눈나랑 같이 다닌다? 이게 최고의 메리트지 ㅋㅋㅋ

-ㄹㅇㅋㅋ 안그래도 삭막한데 눈나가 곁에 있어 준다? ㅁㅊㄷㅁㅊㅇ

-미니미 버전 개커엽네 ㅋㅋㅋㅋ

-나도, 나도 미니눈나 가질 거야!

-제작진 놈들 이런 걸 왜 숨겨 놨냐구!

-개 부럽네 ㅅㅂ

-피지컬 뇌지컬 있으면 됐지! 눈나도 가져간다고!?

-꼭… 그렇게… 다 가져야만… 속이 시원했… 냐!

-꼬우면ㅋㅋㅋㅋ님들도 하시든지 ㅋㅋㅋㅋㅋ

-어림도 없지 ㅋㅋㅋ 구사일생에서 바로 광탈 해 버리기~

시청자들의 격렬한 반응에 이경복은 절로 웃음이 나왔다.

“좋아. 일단 숲을 나가는 게 좋겠군.”

“앞으로 잘 부탁해요.”

컷신 속 주인공은 마녀 골렘을 어깨에 올려놓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시야가 조금씩 암전되었다.

“아, 이제 안개숲은 끝인가 보네요.”

그 예상대로 전환된 화면은 숲 바깥이었다. 주인공은 가도를 발견하고 그 길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저곳이 왕국 수도인가?”

“네…….”

주인공은 미간을 찌푸렸다.

수도의 모습은 이상하게도 일반적인 양상과 달랐다. 왕성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외성벽보다 내성벽이 높았다.

-구조가 왜 저따구여?

-뭐지? 무엇을 암시하는 것이지?

-쉿! 아무 말도 하지마!

-착한 엘붕이들은 그냥 봅니다

시청자들처럼 의아해하던 주인공은 이내 걸음을 재촉했다.

“일단 가 보는 수밖에 없겠군.”

곧바로 시야가 전환되며 수도 인근의 마을이 나왔다.

“완전 폐허나 다름이 없어. 사람이 살고 있긴 한 건가?”

“……결국 이렇게 됐네요.”

마녀는 안타까워했다. 주인공이 무어라 더 물으려는 순간이었다.

“끄아아아아악!”

갑자기 들려온 비명.

주인공은 굳은 얼굴로 소리가 나는 쪽으로 움직였다. 그곳에는 기이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헐! 뭐여?

-기사인가? 저 두건 쓴 놈은 뭐임?

-기사가 왜 사람을 잡누;;

-생긴 건 겁나 몬스터삘 나는디

중무장한 기사와 검은 두건을 쓴 채 양손 도끼를 쥐고 있는 남자, 그리고 다리에 피를 흘리며 쓰러진 부상자가 보였다.

하지만 다리에 박혀 있는 검은 기사의 것이었다.

“헛된 저항은 관두고 징집령에 따르도록.”

기사가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부상자에게 말했다. 부상자는 벌벌 떨면서 눈물과 신음만을 내뱉었다.

“명령 거부인가?”

“사, 살려…….”

부상자가 무어라 답하기도 전이었다. 기사가 검을 빼내며 몸을 돌리자 옆에 있던 검은 두건이 도끼를 휘둘렀다.

철퍽하는 소리와 함께 검붉은 핏물과 머리가 떨어졌다.

-헐???????

-적 맞네 ㅅㅂ

-끔살 ㅎㄷㄷ 하누

-기사랑 처형인이라니 이게 뭔 조합임;;

-징집 거부하면 죽는다고?

-강제징병… 으윽… 머리가……

-중세 굳건이 살벌하누 ㅎㄷㄷ

-굳건이 ㅇㅈㄹㅋㅋㅋ

시청자들의 반응은 대조적이었다. 주인공은 그와 달리 묵묵히 상황을 관조했다.

“조금 더 찾아보고 복귀하도록 하지.”

기사, 징집관의 말에 처형인은 조용히 고개만 끄덕였다. 둘은 시체를 놔두고 유유히 사라졌다.

“왜 저항도 하지 않은 시민을?”

주인공은 의문을 숨기지 않았다. 어깨에 앉아 있던 마녀가 깊이 숨을 내쉬었다.

“상황이 더 악화됐네요.”

“악화? 이전부터 그랬다는 건가?”

-오 ㅋㅋㅋㅋㅋㅋㅋ

-컷신이 더 있네?

-미니눈나 합류해서 그런 거자넠ㅋㅋ

-눈나 해설 시작합니다잉

기존 루트에서는 끝나야 할 컷신이 계속 이어지자 시청자들은 호기심을 숨기지 않았다.

“모두 ‘결정자’ 에이든이 침묵해서 벌어진 일이에요.”

“결정자?”

“인간들의 지도자를 일컫는 말이에요. 모두를 대신해 ‘결정’의 책임을 짊어진 사람…… 하지만 에이든은 돌연 그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어요.”

마녀는 씁쓸한 표정으로 머리를 내저었다.

“결국 남은 인간들은 길을 잃었죠. 망자가 되지 않기 위해 사람들은 자신만의 신념을 추구했어요. 하지만 그 결과는 분열이었죠.”

“분열이라.”

“사람들은 크게 두 세력으로 나누어졌어요. 하나는 조금 전 본 ‘왕국기사단’, 그리고 다른 하나는 ‘기사정교회’에요.”

“그들이 왕국의 기사단이었다고?”

“네. 왕국기사단은 인간이 망자가 되지 않는 길은 엄격한 규율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이미 망자가 된 사람들을 무력으로 몰아내려고 했죠.”

“기사정교회의 방식은 그와는 다르다는 건가.”

“정교회는 망자도 아직 인간이라고 생각해요. 망자들을 인간으로 되돌릴 방법을 찾겠다고 선언했어요.”

마녀는 주인공을 올려보며 물었다.

“부서진 자여, 당신의 생각은 어떻죠? 어느 쪽이 옳다고 여기시나요?”

그 물음에 주인공은 잠시 동안 마녀를 바라보았다. 이윽고 주인공이 입을 열었다.

“직접 보고 느끼기 전에는 판단을 보류하지.”

그 대사와 함께 컷신이 마무리되며 통제권이 돌아왔다.

-역시 주수리답다 ㅋㅋㅋ

-크…… 이게 탐구자 마인드지

-마녀 대사 좀 묘하지 않슴?

-기존 루트에서는 바로 정교회 가자너 ㅋㅋㅋㅋ

-저 짓거리 보면 정교회 가는 게 맏찌!

-근데 눈나가 어느 쪽이냐고 묻는 거 보면 이것도 갈림길일 수도?

-ㅇㅇ 킹능성 이따.

이경복은 채팅창 반응을 보고 눈을 굴렸다.

‘그 기사들, 묘지기랑 비슷한 느낌이었는데.’

망자처럼 불쾌한 감각보다는 살기만을 품고 있는 캐릭터였다. 그는 잠시 고민하다 결정을 내렸다.

“확실히 새로운 루트일 수도 있으니까 기사단 쪽으로 먼저 가 보겠습니다.”

-??????

-ㅔ?

-않이;;;

-교회로 가서 장비랑 소울 파밍 좀 하고 가!

-새로운 루트일 킹능성 좋긴 한데 기사들 상대 빡심요!

시청자들은 당황을 숨기지 않았다. 보통 수도에 도착하기 전 플레이어의 상태는 거지나 다름이 없었다.

묘지에서 얻은 장비류는 망자의 것이기에 낡은 게 대부분이었고, 안개숲을 거치면서 그 장비마저도 멀쩡한 상태가 아니었다.

때문에 교회에 먼저 들려 준비를 갖추는 게 정석이었다.

하지만 이경복의 기준은 좀 달랐다.

“아직 템빨 부족해서 힘든 적은 없었잖아요?”

-갑자기 할 말이 없어지네

-진짜 ㅋㅋㅋㅋ 기본템으로 각성묘지기 잡고 업글 골렘도 박살냈는데 ㅋㅋㅋ

-아 ㅋㅋ 누가 누구한테 걱정을 하냐구!

-안일하게 생각한 건 트수들이었고 ㅋㅋㅋ

-이래서 역지사지가 중요하다 이말이야

-이게 바로 신의 관점?

-갓플 하고 싶은 대로 다해!

한 마디에 흐름은 곧바로 뒤바뀌었다. 그 반응에 이경복은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정 필요하면 장비는 털어서 챙기면 되죠. 기사단이라는데 무기고 같은 곳도 있을 테니까.”

-??????

-역시 [블랙기업]다운 발상 ㅋㅋㅋ

-사장님 제발 비품 좀 사 주세요 ㅠ

-신의 관점이 아니라 악덕사장의 관점이었고 ㅋㅋㅋ

-인게임에서도 자본주의의 파동이 ㅎㄷㄷ

-아 ㅋㅋ 장비를 왜 사서 씀?

-기사단 : 퍼펙트 강도가 나타났다! 얼른 신고해!

-않잌ㅋㅋㅋ 기사단이 누구한테 신고하냐고

덕분에 시청자들은 금방 걱정을 잊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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