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화 - 흐릿한 마녀 (4)
기사단으로 향하는 방향은 쉽게 알 수 있었다. 이경복은 징집관과 처형인이 사라졌던 거리로 걸음을 옮겼다.
“와…… 이거 처참하네요.”
더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마을의 참상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무너진 건물은 물론이고 뼈다귀가 쓰레기처럼 널브러져 있었다.
생김새로 보아 가축의 것과 함께 인간의 뼈로 보이는 종류도 있었다.
-진짜 ㅋㅋㅋ 을씨년스럽다는 게 뭔 느낌인지 여기 보니까 딱 와 닿자너
-아트팀 열일한 증거임 ㅋㅋㅋ
-난 약간 이런 세기말 감성이 좋던디
-프롬빠면 대부분 그렇지 않나?
시청자들도 그의 감상에 동감을 표했다. 그렇게 나아가기를 잠깐.
‘……망자인가?’
이경복의 육감이 익숙한 불쾌감을 감지해 냈다. 하지만 약간 거리가 있었기에 그를 향한 위협은 아니었다.
이경복은 갈림길에서 주저 없이 망자가 있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뭐, 뭐든지 하겠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들려오는 목소리. 그와 함께 통제권이 사라지며 컷신으로 돌입했다.
-뭐지?
-누구임?
-다른 희생자인가 ㅠ
-굳건쉑 또 행패부리고 있누
주인공은 조심스럽게 모퉁이에 몸을 붙였다. 그가 고개를 내밀어 확인한 광경은 시청자들의 예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징집관과 처형인, 그리고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는 남자가 보였다.
-다행히 이번에는 선빵 안쳤네 ㅋㅋ
-ㄹㅇㅋㅋ 부상자 징집하려는 거 보고 얼척이 없었음
-뭐? 아픈 사람도 데려간다고? 이거 완전……
-논란 주제 금지금지~
-자~ 잠시 소란이 있었어요
-아 ㅋㅋ 내가 돈이 없어서 참는다
징집관은 그런 남자에게 다가가 말했다.
“올바른 결정이다. 더 이상 망자가 될 두려움에 떨지 않아도 좋아.”
“예……! 감사합니다!”
남자는 기뻐하며 머리를 숙였다. 처형인도 쥐고 있던 도끼를 느슨하게 내렸다.
-입대하는데 왜 저리 좋아허누 ㅋㅋ
-이런 난리통이면 군대 들어가는 게 안정적이긴 할 듯
-엥? 군대는 뺄 수 있으면 빼는 게 맞지
-ㄹㅇㅋㅋ 차라리 기사정교회로 가고 말지
-근데 정교회는 무력이 약하잖슴
-엘붕이들 또 과몰입한다 ㅋㅋㅋ
시청자들이 장난스럽게 옥신각신하는 동안 이경복은 얼굴을 굳혔다.
‘망자들이다……!’
지속적으로 감지되던 위협이 빠르게 접근해 왔다. 그 위치는 바로 위쪽, 무너진 건물의 지붕이었다.
그와 함께 컷신 속 상황이 일변했다.
“조심해서 따라오…… 크악!”
시민을 일으키려던 징집관의 위로 뭔가가 떨어졌다. 놀란 처형인이 도끼를 잡았지만 그 역시 같은 상황을 맞이했다.
“캬하하하학!”
갈라지는 웃음소리와 함께 나타난 일련의 습격자들. 그들은 넝마 같은 옷으로 제 몸을 칭칭 감고 있었고, 손에는 녹슨 날붙이를 쥐고 있었다.
-???????
-뭐임? 어케 된 거?
-<관리 봇이 삭제한 메시지입니다 (경고 1회)>
-스포다! 스포가 낙타낳다!
-저 둘이 저렇게 쉽게 죽는다고?
-않이;; 내가 상대할 때는 겁나 잘 싸우던데
-기습과 다구리는 못 당하지 ㅋㅋㅋ
-갓플은 될걸?
-사람 기준이라굿!
시청자들은 당황을 숨기지 않았다. 그들은 징집관과 처형인이 본래 쉽게 죽을 캐릭터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뭔가 이상하군.”
컷신 속 주인공도 심상치 않은 기색을 느꼈다. 하지만 그의 시선이 닿은 곳은 유린당하는 둘이 아니라 조금 전까지 입대를 요청했던 남자 쪽으로 향했다.
눈앞에서 두 사람이 죽어 가는데 그는 도망칠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래도 기사단 소속이라는 것일까. 징집관과 처형인은 거칠게 저항하며 습격자에게 상처를 입혔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결국 둘은 유언조차 남기지 못하고 절명했다.
“캬학, 퉷! 빌어먹을……!”
상처 입은 습격자가 핏물을 뱉으며 시체를 향해 걸어갔다. 이윽고 습격자가 손을 뻗자 빛무리가 스며들었다.
“조금만 가져가! 맛이 없어진다고!”
“그 정도는 알고 있으니까 닥쳐.”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다투던 습격자들은 죽은 시체를 질질 끌고 가기 시작했다. 그중 하나가 남자 쪽을 돌아봤다.
“시험에 통과한 걸 축하하지. 아주 잘해 줬어.”
“그, 그럼…….”
“그래, ‘식량’을 나눠 주도록 하지. 따라오라고.”
그 말에 남자의 입가가 경련했다. 그 위에 떠오른 건 섬찟한 미소였다.
“이제, 이제 더 이상 굶주리지 않아도 되는 거야……!”
그는 정신 나간 사람처럼 웃으며 습격자들을 따라 사라졌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찾아온 정적. 하지만 습격자들이 시체를 끌면서 생겨난 핏자국은 명백하게 흔적을 남겼다.
“아귀들이로군요.”
“아귀?”
마녀의 목소리에 주인공이 되물었다. 그녀는 참담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배고픔을 이기지 못하고 금기에 손을 댄 거죠. 아까 그 사람도 아마 망자가 되는 중일 거예요.”
“그런가…….”
습격자들의 정체가 밝혀지자 채팅창이 술렁였다.
-허미;;;
-시민들이 망자가 된다고?
-ㅇㅇ 설정상 그건 맞음
-이렇게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건 처음 아님?
-원래는 시민이랑 망자는 완전 구분 돼서 나오는디 ㅎㄷㄷ
-와…… 이래서 기사단이 강경 진압한 거네.
-전개 완전 틀어지누
이경복은 시청자 반응을 확인하고 잠시 고민했다. 이미 컷신은 끝나고 통제권은 돌아온 상황.
‘이대로 지나쳐도 되긴 하겠지만.’
바닥에 생겨난 핏자국으로 추적이 가능했다. 제작진은 노골적으로 아귀들을 쫓는 선택지를 제공해 주었다.
이경복은 결정을 내렸다.
“뒤탈이 없도록 아귀들은 잡고 가겠습니다.”
-고럼고럼 당연하지!
-아귀쉑들 참교육 가야지!
-이거 보고 그냥 지나치면 퍼펙트가 아니지 ㅋㅋㅋㅋㅋ
-(퍼도장콘) 미리 드립니다^^
이견은 없었다.
이경복은 핏자국을 따라 골목으로 들어섰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혈향이 코를 찔렀다.
잠시 후, 흔적의 종착지가 보였다. 다른 곳에 비해 비교적 멀쩡한 건물이었다.
‘다섯인가.’
육감을 통해 아귀의 숫자를 파악할 수 있었다. 이경복은 가볍게 숨을 고르고 주술을 발현했다.
양손에서 뻗어져 나온 4개의 붉은 채찍. 그는 곧장 문을 걷어차며 진입했다.
쾅하는 굉음과 함께 문이 열렸다.
-FBI! 오픈 업!
-프리즈! 핸즈 업!
-꼼짝 말고 손들어!
-가불기 나왔누 ㅋㅋㅋㅋ
-손 들면 죽고, 손 안 들어도 죽음 ㅋㅋㅋ
시청자들은 그 시원스러운 행동에 웃었다. 하지만 이내 채팅창의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캬학?!”
“누구냐!?”
신경을 거스르는 목소리와 함께 드러난 내부. 그곳은 아귀들이 사용하는 도축장이었다.
사방이 피범벅이었고 정체를 알 수 없는 고깃덩이가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조금 전 미끼 역할을 했던 남자는 머리를 처박고 정체불명의 고기를 게걸스럽게 먹고 있었다.
-어우, 미리 알고 있었는데도 끔찍하누
-와…… 진짜 타락해 버렸네
-망자쉑들 극혐인 건 알아줘야지.
남자의 모습은 더 이상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마치 멍이든 것처럼 피부는 시퍼렇게 변색됐고, 머리는 벗겨져 추한 몰골이 되었다.
“캬하학! 후식인가?”
“잡아!”
그사이 다른 아귀들이 이경복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는 아귀들을 바라보며 경멸을 숨기지 않았다.
“빠르게 갈게요.”
4개의 붉은 줄기가 팽팽해지며 쏘아졌다. 그것들은 순식간에 아귀가 쥐고 있던 날붙이를 휘감아 틀었다.
“끄르륵!”
“꺽!”
이경복은 곧바로 그 무기를 이용해 아귀들의 숨을 끊었다. 바닥에 널브러져 움찔거리던 놈들은 이내 축 늘어졌다.
-지렸다 ㅅㅂ
-와 ㅋㅋㅋ 이걸 이렇게 쓴다고?
-4개를 동시에 잡은 것도 미쳤는데 그걸 제각기 다른 방향으로? 이게 말이 됨?
-(게말콘)(게말콘)(게말콘)
-이게 바로 신의 컨트롤?
-퍼카콜라 청량감 미쳤고 ㅋㅋㅋ
시청자들이 감탄하는 사이, 이경복은 동강난 장검을 빼 들었다.
이제 남은 건 미끼가 됐던 아귀뿐. 놈은 전의를 상실했는지 피범벅이 된 얼굴을 땅에 박았다.
“사, 살려 주십쇼! 배가, 배가 너무 고파서……!”
아귀는 애처롭게 목숨을 구걸했다. 그러나 이경복의 표정은 냉담했다.
여전히 그의 육감이 놈으로부터 위협을 감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경복이 한 걸음을 더 내딛는 순간, 엎드렸던 아귀가 일어서며 날붙이를 휘둘렀다.
“허접하기는.”
캉하는 쇳소리와 함께 이경복이 반격했다. 당연히 이경복에게는 훤히 보이는 수였기에 패링은 어렵지 않았다.
-마무리도 깔끔하누 ㅋㅋㅋ
-대충 손도 깔끔 짤
-이제 막 망자가 된 놈이 어딜 감히!
-ㄹㅇㅋㅋ 더 타락하고 오라 이말이야
-허접하다는 게 딱 맞네 ㅋㅋㅋ
시청자들은 만족을 표했다. 그 사이 이경복은 죽은 아귀의 몸에서 소울을 거두었다.
“부서진 자여, 저들의 시신을 살펴봐 주시겠어요?”
그때 마녀가 입을 열었다. 이경복은 그녀가 가리킨 시신을 살폈다. 아귀들이 끌고 왔던 징집관과 처형인이었다.
“아직, 징집관의 소울은 온전해요. 부서진 자여, 이 소울을 기사단에게 돌려주시겠어요?”
-오? 뭔가 또 있나?
-마녀 눈나 조언이면 당연히 따라야지!
-아무튼 소울 챙겨서 나쁠 거 없음 ㅋㅋㅋ
시청자 말대로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이경복이 손을 뻗자 시신에서 빛무리가 스며들었다.
[‘징집관의 소울’을 획득했다.]
처형인의 것과는 다르게 표시되는 메시지. 이경복은 다시금 육감을 점검해 보고 일어섰다.
“그럼 다시 가 보죠.”
* * *
왕국기사단의 영역은 쉽게 구분할 수 있었다.
폐허가 된 곳들과 달리 멀쩡한 건물들이 보였고 무장한 병사들이 경계를 서고 있던 덕이었다.
그들에게 다가가자 바로 컷신이 진행됐다.
“정지! 정체를 밝혀라!”
병사들이 무기를 겨누었다. 그들은 낯선 주인공을 반기지 않았다.
-오늘 암구호 뭐냐?
-화랑! 담배!
-언젯적 문어랑 답어냐구 ㅋㅋㅋ -할배요… ㅠ
-???: 어~ 수고한다
-ㄹㅇㅋㅋ 간부들은 걍 프리패스자너
주인공이 무어라 말할지 고민하는 와중 마녀가 옆에서 속삭였다.
“그들에게 소울을 보여 주세요. 그러면 적대하지는 않을 거예요.”
그는 마녀의 조언을 따랐다. 주인공 앞에 떠오른 소울을 본 병사들은 흠칫하더니 무기를 조심스럽게 내렸다.
“이건……?!”
“보고하고 오겠습니다!”
병사 하나가 급히 자리를 떠났다.
“……소울을 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곧 답변이 돌아올 테니 기다려 주십시오.”
남은 병사들은 누그러진 기세로 주인공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역시 마녀 눈나가 최고야!
-괜히 붙여 준 게 아니었네 ㅋㅋㅋ
-ㄹㅇㅋㅋ 눈나 없었으면 바로 전투각이었을 듯
-커여운데 능력까지 좋아? 아 ㅋㅋ 이건 못 참지
시청자들이 흡족해하는 사이 병사가 바로 돌아왔다. 그가 선임병사로 보이는 이에게 무어라 속삭였다.
“실례했습니다. 절 따라오십시오.”
주인공이 그 뒤를 따라가며 시야가 전환됐다. 이윽고 도착한 곳은 기사단 병영.
“단장님께서 직접 뵙고자 하십니다.”
이어 들려온 병사의 말에 채팅창이 요동쳤다.
-헐?
-바로 단장실로 간다고?
-이거 기사단 동맹루트인가?
-기사단이랑 원래 동맹 못 맺음?
-ㅇㅇ 기존 루트는 교회랑 손잡고 기사단 제압해야 됨
-어쩌면 숏컷으로 보스전 가는 걸 수도?
-헐? 바로 단장이랑 싸운다고?
-아 ㅋㅋ 일단 좀 보라굿!
시청자들이 제각기 추측하는 와중 단장실의 문이 열렸다. 갈색의 장발과 덥수룩한 수염이 인상적인 기사가 그곳에 서 있었다.
기사단장은 주인공을 보더니 이내 눈가를 움찔거렸다. 그는 가볍게 손짓해 병사들을 물렸다.
문이 닫히자 단장이 입을 열었다.
“왕국기사단장, 블론도라고 하네.”
“나는…….”
“부서진 자겠지.”
주인공이 말을 맺기도 전에 블론도가 끼어들었다.
“징집관의 소울을 되찾아 줬다는 걸 보고 망자는 아닐 거라 생각했지만…… 설마, 부서진 자였을 줄이야.”
“그게 문제가 되나?”
“아니, 그럴 리가. 오히려 그대가 베푼 자비에 감사할 따름일세. 원한다면 그 소울을 취할 수 있지 않았나.”
블론도는 정중히 허리를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이윽고 그는 제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물었다.
“헌데 이곳을 찾아왔다는 건, 우리와 뜻을 함께할 의향이 있다는 뜻인가?”
-단장이 먼저 합류를 제안한다고?
-옼ㅋㅋㅋㅋ 진짜 기사단 동맹루트인갑네
-이거 무적권 마녀 눈나 조언 덕이다
-ㄹㅇㅋㅋ 징집관 소울 안 챙겼음 이벤트 발생 안 할 듯
-여윽시 으른 말씀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 이말이야
시청자들이 제각기 상황을 파악하는 사이 주인공이 입을 열었다.
“아니, 그럴 생각은 없다.”
“역시 그런가. 아쉽게 됐군.”
“……역시?”
“자네가 원하는 건 ‘엘든 소울’을 찾는 것. 그 이유겠지.”
“그걸 어떻게 알고 있지?”
블론도는 대답 대신 씁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어깨 위에 있던 마녀가 조심스레 목소리를 냈다.
“부서진 자여, 그 역시 당신과 같았어요.”
그 한 마디에 채팅방 분위기가 뒤바뀌었다.
-??????
-단장도 부서진 자라고?
-헐ㅋㅋㅋ 미친ㅋㅋㅋㅋㅋㅋㅋㅋ
-않이;;; 깜빡이도 안 키고 들어오네
-엌ㅋㅋ 갓플방송 독점 공개 무냐고!
-늘 새로워! 짜릿해! 갓플이 최고야!
시청자들은 새로 밝혀진 설정에 기쁨을 숨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아직 컷신은 진행되는 와중이었다.
“흠, 내 출신을 아는 이들은 그렇게 많지 않은데……? 뭐, 상관없겠지.”
블론도는 마녀의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짙은 한숨을 내쉬었다.
“분명, 나 역시 자네와 같은 ‘부서진 자’였어. 엘든 소울을 찾으려고 ‘결정자’를 찾았지.”
“에이든을?”
“그래, 그 반응을 보아하니 몰랐던 모양이군. 엘든 소울의 소재는 오직 ‘결정자’만이 알고 있다네.”
“하지만 에이든이 알려 주지 않았다는 건가?”
“그것보다는…… 내게 그럴 자격이 없었다는 게 정확하겠지. 대신 결정자께서는 내 이름과 사명을 ‘결정’해 주었네.”
블론도는 과거를 헤집듯 아련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이내 자부심을 느낀 듯 또렷한 눈으로 주인공을 직시했다.
“그분의 인도 아래 나는 ‘블론도’가 되었고 ‘왕국 수호’라는 사명을 얻었지. 결정자를 지키는 것 또한 나의 임무라, 더 이상 부서진 자가 나오지 않게끔 조치를 취했거늘…… 아무래도 자네를 막기엔 부족했던 모양이군.”
그 대사에 이경복은 짧게 탄사를 내뱉었다.
“아, 그래서 묘지기가 있었구나.”
-묘지기 기사 출신 맞네
-단장피셜 묘지기 기사 확정!
-와ㅋㅋㅋ 이제 좀 아다리가 맞아 떨어지네 ㅋㅋㅋ
-그래도 뉴비들 거름망으로 임무 착실히 수행했누
-묘지기는 좋은 기사였읍니다ㅠㅠ
시청자들도 바로 상황을 이해했다. 한편 컷신 속 주인공은 그 말에 얼굴을 굳혔다.
“……날 막을 셈인가?”
“본래는 그것이 마땅하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어.”
“상황이라니?”
“결정자께서 침묵한 지 너무나도 오랜 시간이 흘렀네.”
블론도는 몸을 돌렸다. 그는 단장실 창밖으로 보이는 높다란 내성벽을 바라보았다.
“지금은 결정자께서 존재하는지조차 의문이야. 때문에 나의, 왕국기사단의 사명은 불분명해졌어. 지금은 지켜야 할 남은 것, 사람들이 망자가 되지 않는 데 집중하고 있지.”
이내 그의 시선은 다시 주인공을 향했다.
“오히려 나는 자네가 나타나 줘서 안도하고 있어.”
“부서진 자인 내가? 어째서지?”
“말했듯, 나와 왕국기사단을 지탱하는 건 지고한 사명이야. 그러나 만약 결정자께서 존재하지 않는다면……?”
“신념을 잃은 기사단은 망자가 된다…….”
조용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마녀가 중얼거렸다.
“마녀의 말이 옳네. 오히려 결정자의 존재가 불분명하기에 기사단이 유지가 되고 있어. 혹 망자가 될까, 나를 포함해 누구도 왕성의 상황을 확인하지 못했지.”
“하지만 나는 상관없다?”
“그래! 자네라면 우리를 대신해 결정자의 안위를 확인할 수 있지 않겠나. 자네 역시 결정자를 찾아야 할 이유가 있고.”
블론도의 말에 주인공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와…… 이런 식으로 동맹이 형성되는구나.
-이거 완전 슈뢰딩거의 고양이 아님?
-여기서 양자역학이?
-에이든은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녀 ㅋㅋㅋㅋ
-아 ㅋㅋ 완전히 이해했음(못함)
-기사단 놈들 왜 잠자코 있나 했더니 이런 배경이 있었누
그 막간의 틈을 타 시청자들이 감상을 표출했다.
“좋다. 구태여 적을 만들 이유는 없지.”
“고맙네. 하나 아직 문제가 남아 있어.”
“문제?”
“내성벽을 통과하려면 2개의 열쇠가 필요하네. 하나는 내가 사사받은 이 ‘훈장’이지.”
블론도는 금빛 훈장을 꺼내 보이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기사정교회의 성녀, 소피아가 지닌 ‘성옥’이야.”
“기사정교회라면…….”
“아직 망자를 인간으로 되돌릴 수 있다고 믿는 이들이지. 만약 자네가 ‘성옥’을 얻게 된다면 이 훈장을 건네주겠네.”
“지금 내게 줘도 되지 않나?”
“말하지 않았나. 부끄럽게도 우리들은 겁쟁이일세. 훈장이 정교회에 넘어간다면 소피아는 우릴 좌지우지할 권력을 손에 얻게 되네. 그리고 우리는 인간이 아닌 ‘망자’를 보호하게 되겠지.”
“그 역시 사명에 반하는 일이라는 건가. 그렇다면 어쩔 수 없군.”
“이해해 줘서 고맙네. 부하들에게는 이곳에서 지내는 동안 시설을 편히 이용할 수 있도록 말해 두지.”
주인공은 수긍하며 단장실을 나왔다. 컷신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헐 ㅋㅋㅋㅋㅋㅋㅋ
-바로 시설 이용 가능하게 됐누
-오? 이렇게 되면 교회에서 정비 안 해도 되네
-진짜 전개가 아예 다름 ㅋㅋㅋ
-원래는 어케 됨?
-교회 부탁 받고 쥔공이 기사단 제압해서 교회 영역으로 바뀜
-어? 그럼 PVP도 열린 듯?
채팅창을 확인하던 이경복이 눈을 크게 떴다.
“어? PVP를 여기서 해요?”
그 말에 채팅창의 흐름이 바뀌었다.
-ㅇㅇ 맞음요
-정확히는 피빕 모드 중에 ‘결투’가 열림
-시설 중에 ‘검의 무덤’이라는 곳 가면 됩니다!
-엘붕이들 득달같이 달려드누 ㅋㅋㅋ
-근데 갓플한테 누가 결투 신청하긴 하나? ㅋㅋㅋㅋㅋ
-ㄹㅇㅋㅋ 찌발릴 거 뻔히 알텐데
시청자들의 제보에 이경복은 머리가 복잡해졌다.
‘지놈 형은 세 번째 스테이지가 끝나야 된다고 하지 않았나?’
일전에 들었던 지놈의 말과 다른 상황이었다. 그러나 곧 그는 이유를 알아차렸다.
‘아, 원래 루트에서는 단장이 보스니까 기사단 점령하고 열리겠구나.’
지놈이 말한 기준은 기존 루트의 전개였다. 이에 이경복은 결정을 내렸다.
“자, 그러면 오늘 방송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급작스러운 방송 종료 선언.
채팅창은 당연하게도 격한 반응을 표출했다.
-여기서 방종을 한다고?
-아 ㅋㅋ 박수 소리에 노이로제 걸릴 듯
-나는 갓플이 자~ 하면 긴장하게 됨 ㅋㅋㅋㅋㅋ
-않이;;; PVP환영이라며!
-결투 맛 좀 보고 가지!
-혀엉! 형 모르는 외국 플레이어는 덤빌 수도 있어!
-랜덤매칭으로 좀 썰어 보자굿!
-설마 쫄? 쫄?
-트수 조련 그마내! 이미 못 참는 몸이 되어 버렸다구!
-이러시는 이유가 있을 거 아니에요;;;
격화된 반응에도 이경복은 웃음을 잃지 않았다.
“네, 딱 그 말대로입니다. 이유가 있거든요.”
그 한 마디에 채팅창에 물음표가 솟구쳤다.
“엘든 소울 하시는 분들이라면 다 아실 그분, 이클립스 님과 결투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레알참트루?
-헐ㅋㅋㅋ 미친ㅋㅋㅋㅋㅋ
-큰 거 왔다! 큰 거 왔다! 큰 거 왔다! 큰 거 왔다!
-퍼플 vs 이클 매치라고!?
-와 ㅋㅋㅋㅋ 나 소름 돋음
-(퍼도장콘) (퍼도장콘) (퍼도장콘)
-섭외력 뭔데! 섭외력 뭔데! 섭외력 뭔데!
-대체 어디까지 성장하는 거냐구웃!
-빅 띵 이즈 커밍! 빅 띵 이즈 커밍! 빅 띵 이즈 커밍!
-매치업 개쩐닼ㅋㅋㅋㅋ
-언제! 언제 하는데! 연차 빨리 내야 된다구!
엘든 소울에 관심이 있다면 모를 리가 없는 그 이름, 이클립스가 언급되자 채팅창은 뜨거워졌다.
“제가 따로 섭외한 건 아니고 이클립스 님께서 먼저 제안해 주셨습니다. PVP기능 열리면 바로 시간 내 주신다고 하셨으니까…… 지금도 괜찮을 것 같긴 한데.”
이경복은 살짝 뜸을 들였다. 채팅창은 더욱 애타는 채팅으로 가득해졌다.
-지금? 지금 한다고!?
-무친 ㅋㅋㅋㅋ 좀만 기달려! 바로 화장실 갔다 온다!
-이참에 기저귀 좀 갈아야겠누 ㅋㅋㅋ
-이클립스 방송 켰음?
-ㄴㄴ 아직임
-지금 허겁지겁 준비 중일듯ㅋㅋㅋㅋ
그 반응에 이경복은 손을 내저었다.
“아, 그렇다고 지금 하겠다는 건 아니에요. 시간도 시간이고, 이왕 자리 잡고 하는 건데, 저나 이클립스 님이나 최상의 컨디션으로 해야 후회가 없지 않겠어요?”
-아 ㅋㅋㅋ 또 당했네
-조련 미쳤다 진짜 ㅋㅋㅋ
-아주 그냥 내 맘이 롤러코스터여
-이클립스 : 아씨! 캡슐 켰는데!
-근데 맞말이긴 해 ㅋㅋㅋㅋ
-ㄹㅇㅋㅋ 딴 소리 안 나오려면 이게 맏따
-퍼청자나 가신들이나 인정하는 부분이구연
-이런 이유면 방종해야지 ㅋㅋㅋㅋ
극구 반대하던 분위기는 단숨에 뒤집혔다. 이에 이경복은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일정 결정되는 대로 알려 드릴게요. 그럼 트바!”
-(퍼바콘)(퍼바콘)
-퍼바~큐바~
-편집자님! 여기서 끊으시면 됩니다!
-빠이욧!
-언제나 좋지만 오늘도 최고였어!
-아 ㅋㅋㅋ 이걸 어케 기다리누
-개재밌겠다 진짜 ㅋㅋㅋㅋ
방송이 끝나며 까맣게 변해 버린 화면. 하지만 대부분의 시청자들은 여운을 즐기듯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누가 이기려나?
-그래도 짬바가 있는데 이클 쪽이 더 낫지 않음?
-퍼지컬 보면 모름? ㅋㅋㅋㅋ
-갓플이 잘하긴 하지 ㅋㅋㅋㅋ
-결투는 또 모르는 일임
-와 ㅋㅋㅋ 내일 시청자 미어터지겠네
-근데 그럼 내일 뉴턴좌도 오는 거 아님?
-금마는 코칭 받고 연습하고 있지 않을까?
-또 모르지 ㅋㅋ 일단 들이박고 다시 코칭 받으려고 할 수도
-혹시 지금 이 채팅 보고 있는 거 아녀?
-킹능성 있다 ㅋㅋㅋㅋㅋㅋ
-아! 내일 언제 오냐!
깊은 밤이었지만 시청자들은 쉽게 잠들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