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화 - 기사의 결투 (1)
메타게이머 본사.
인플루언서 팀의 사무실 공기는 무겁게 가라앉았다.
“신 기자, 팀장님이 부르신다.”
“아, 넵.”
기자 신혜림을 슬쩍 눈치를 보다가 팀장을 찾았다. 들어가 보니 팀장이 키보드를 신경질적으로 누르고 있었다.
“팀장님?”
“어? 어어. 앉아, 앉아. 이클립스 쪽이랑은 얘기 끝났지?”
“네, 끝났습니다.”
이클립스는 방송 중계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그는 이번 결투의 권한은 전적으로 퍼플에게 있다며 그 의견에 따르겠다는 답을 보냈다.
“하…… 이제 그럼 퍼플 쪽만 오케이 하면 되는데…….”
팀장은 잘근잘근 손톱을 씹으며 눈을 굴렸다. 신혜림은 조심스럽게 눈치를 살피며 입을 열었다.
“그, 역시 좀 부담스러운 제안이 아니었을까요?”
“부담?”
“그게, 정황상 두 사람이 가볍게 실력을 겨루는 건데 저희가 끼어서 판을 키운 모양새니까요.”
팀장은 잠시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숨을 훅 뱉었다.
“후, 신 기자. 중요한 건 결투 자체가 아니야.”
“네?”
“우리 팀 이름이 뭐야? 인플루언서잖아, 인플루언서. 사람이 중요하다고. 응? 일의 규모는 작아도 그걸 하는 사람의 스케일이 남다르다고.”
그는 눈이 휘둥그레진 그녀 앞에 홀로그램을 띄웠다. 이전 퍼플이 진행했던 라이브 인터뷰 기사가 보였다.
“지금 달린 댓글만 300이 넘었어, 300이. 달타냥도 200 정도였는데 300이라고. 그것도 일주일도 안 지났고 메인페이지에서 내려갔는데도!”
“아…….”
“신 기자, 기사 작성하고 땡이야? 모니터링 안 해? 아니, 지금 금동아줄 잡아 놓고 그걸 모르네.”
“금동아줄이요?”
“그래! 썩은 동아줄, 멀쩡한 동아줄도 아니고 금! 그것도 24K 순금 동아줄!”
팀장은 헛웃음을 뱉으며 그래프를 보여 주었다.
“이거 보이지? 어제 결투 이슈 나오자마자 조회수 또 뛰어오른 거?”
“아, 네네.”
“신 기자, 아니 혜림 씨. 지금 편집부에서 우리 팀 엄청 좋게 보고 있다고. 응? 퍼플 그리고 뉴턴좌. 이 키워드가 얼마나 사람들을 끌어모으고 있는데.”
팀장의 열띤 설명에 신혜림의 눈에도 차츰 활기가 돌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클립스까지 낀 거네요?”
“그렇지! 이제 좀 알아먹네! 이거 단순히 연말 보너스로 끝날 게 아니에요. 신 기자랑 나랑 커리어 하이를 찍을 수 있는 기회라고!”
이 정도로 주목받는 신예가 나오는 건 아주 드문 일이었다. 그만큼 인플루언서 팀에게는 흔치 않은 기회였다.
열정적으로 설명하던 팀장은 이내 털썩 의자에 등을 기댔다.
“그러니까 우리 기도합시다. 응? 퍼플이 제발, 제에발 좀 중계권 넘겨주기를 빌자고.”
“……팀장님 무교시잖아요?”
신혜림이 넌지시 묻자 팀장은 양손을 맞잡으며 답했다.
“지금은 퍼플이 내 신이야.”
* * *
“그런 이유로 아마 메타게이머 측은 기도까지 하고 있을 거다.”
박주호는 가볍게 안경을 고쳐 쓰며 설명을 끝냈다. 이경복은 눈을 껌뻑였다.
“이번 결투가 그 정도로 큰일이야? 그냥 재미있을 것 같아서 한 건데.”
“결국 스트리머나 웹진이나 사람들의 관심으로 먹고 사는 거지. 그리고 지금은 네가 그 중심에 서 있는 거고.”
“그건 맞말이지. 원래 사람 모이는 곳에는 다 돈이 모이기 마련이거든. 근데 넌 지금 아주 그냥 사람들 멱살을 잡아끌고 당기고 있다고.”
최병훈도 웃음을 흘리며 박주호에게 동의를 표했다.
“흠, 그래서 메타 쪽에서는 뭘 주겠다는데?”
“기본 500만 원, 그리고 메타게이머 중계 채널에 들어온 시청자 후원금 전액 지급이다. 트라이 수수료 제하지 않고 원금으로.”
“수수료까지 대신 내주겠다고? 이야, 메타가 아주 작정을 했네.”
최병훈은 감탄을 숨기지 않았다.
이경복은 게임에 집중하기 위해 플레이 도중에는 후원을 받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시청자들도 자유롭게 후원할 기회가 생긴 것이다.
더욱이 수수료까지 지불하지 않고, 정산을 기다릴 필요도 없었다.
“조건 괜찮네.”
“인마,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개이득이지!”
“동감이다.”
“단순히 수익적인 측면만 괜찮은 게 아니야.”
이경복은 웃으며 한 마디를 덧붙였다. 두 친구 얼굴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저번에 이클립스 님이 어떤지 물어보려고 지놈 형이랑 통화했을 때 들은 게 있거든.”
“들은 거?”
“어, PVP 열리면 별의별 사람들이 다 들어올 거라고.”
지놈은 이경복에게 이클립스를 추천하며 이유를 설명했다. 악질 저격러들과 관종 스트리머들이 난입 기회를 노리고 있을 거라는 충고.
“메타게이머가 중계하면 알아서 필터링이 되지 않겠어?”
“그렇군. 저번 인터뷰 때 사과단을 막은 것처럼 말이지.”
“아, 트수들이 메타 쉴드 좋다고 좋아했지. 그런데 이번에는 우리가 돈까지 받네? 와, 이거 진짜 개꿀 아니냐?”
최병훈의 입가가 실룩실룩거렸다. 이경복은 그 모습에 피식 웃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달리 불길한 예감도 느껴지지 않고.’
신기는 잠잠했고 손해 볼 것 없는 제안이었다.
“따로 이견 없는 거 같으니까 진행하자.”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 * *
그날 저녁.
고대하던 퍼플의 방송시간이 다가왔다. 아직 방송이 열리지도 않았는데 모인 시청자의 숫자는 이미 9천을 넘어섰다.
이윽고 방송시간이 정각이 되자 화면이 전환됐다.
-큰 거 왔다!
-5555555!
-가즈아아아아!
-(퍼하콘) 퍼하!
-큐하!
시청자들은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하지만 그 인사를 받은 사람은 이경복이 아니었다.
“네! 안녕하세요!”
화면 중앙에 자리 잡은 사람은 가벼운 경갑을 걸친 신혜림이었다. 채팅창에 물음표가 쏙쏙 올라왔다.
-??????
-누구세요?
-우리 갓플 어디 있어!
-뭐지? 버근가?
-우리 형 버튜버로 전향한 거야?
-버튜버 ㅇㅈㄹㅋㅋㅋㅋㅋ
-방송 하이잭킹?!
하지만 그런 반응은 얼마 가지 않았다.
-오늘 메타게이머 중계하는 거 모름?
-기자 눈나! 잘 부탁해요!
-아 ㅋㅋ 유입들 공지도 안 읽는 거 보소
-ㄹㅇㅋㅋ 라이브 인터뷰도 안 본 듯
-어디 가서 퍼청자라고 하지 마라 진짜
착실하게 공지를 확인한 팬들이 상황을 알려 주었기 때문이었다.
“네, 오늘 결투! 저희 메타게이머에서 중계를 맡았습니다. 저는 메타게이머의 신혜림 기자입니다.”
신혜림은 인사를 하며 허리를 숙였다. 그리고 가볍게 심호흡을 했다.
‘와…… 인터뷰 때보다 사람이 더 많아졌네.’
시청자 숫자는 이미 만대를 넘어섰다. 그렇게 많은 이들 앞에서 말해 본 경험을 가진 사람은 흔치 않았다.
신혜림 역시 그러했기에 떨리는 심장을 가다듬을 필요가 있었다.
‘진짜 섭외하길 잘했어.’
다행히 이번 중계를 맡은 건 그녀 혼자가 아니었다. 신혜림은 밝은 표정을 유지하며 입을 열었다.
“또한 보다 전문적인 진행과 해설을 위해 훌륭한 해설가분을 모셨습니다. 나와 주세요!”
그 말과 함께 화면이 살짝 줌아웃 되었다. 그녀 옆으로 다가오는 중무장한 기사.
그는 화면을 응시하며 헬멧을 벗었다.
그는 바로.
“트하! 유전자 레벨로 게임을 잘하는 남자, 지놈입니다!”
스트리머, 지놈이었다.
-혀엉?
-형이 거기서 왜 나와 짤
-아 ㅋㅋㅋ 내 이랄 줄 알았다.
-어쩐지 오늘 갑자기 휴방 때리더라니 ㅋㅋㅋ
-ㄴㅇㄱ 이미 상상한 정체!
-역시 해설과 진행은 트최입 지놈이지!
-트최피 내려놓자마자 빠른 전향 미쳤고 ㅋㅋㅋㅋㅋ
이경복의 방송 시청자 중에는 지놈의 팬들도 많았던 터라 즉각 반응이 나왔다.
신혜림은 주의가 분산되자 조금 더 편해진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네, 지놈 님은 이번 퍼플 님과 이클립스 님 양쪽 모두 인연이 있으시죠?”
“예, 제가 진행하는 장인해부학 컨텐츠에서 모셨었죠. 혹시 안 보신 분이 있다면 방송 끝나고 지튜브로 보셔도 좋을 겁니다.”
-광고 뭔뎈ㅋㅋㅋㅋㅋ
-아 ㅋㅋ 틈새광고 못 참지
-어딜 내놓아도 부끄러운 우리 형 ㅠ
-남의 방송 와서 뭐하는 거냐구!
-작정하고 빨대 꼽누 ㅋㅋㅋㅋ
시청자들은 장난스럽게 그를 비난했다. 지놈은 오히려 떳떳하게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리고 제가 또 엘든 소울로 컨텐츠를 많이 했거든요. 인맥으로나 경력으로나 제가 빠질 이유가 없었습니다.”
-자화자찬 무엇?
-무친 ㅋㅋㅋㅋ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럴 거냐구!
-게.놈.등.장.
-게놈 네 이놈! 지놈 몸에서 썩 나가!
-사람이 늙으면 뻔뻔해진다더니 ㅉㅉ
자연스럽게 분위기는 지놈을 중심으로 돌았다. 신혜림은 덕분에 여유를 되찾았다.
“아하하, 흔쾌히 초청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일단 자리를 잡도록 할까요?”
“좋습니다. 자, 지금 많은 분들이 결투를 바라고 있을 텐데요. 기자님, 엘든 소울의 결투에 대해 아십니까?”
지놈의 물음에 신혜림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두 플레이어가 싸우는 거, 아닌가요?”
“네, 맞습니다. 하지만 조금 더 세세하게 볼 필요가 있습니다. 엘든소울의 PVP는 ‘결투’와 ‘습격’ 두 가지로 나누어지거든요.”
“아, 다른 점이 있군요?”
“네, 하지만 오늘은 결투만 하니까 후자는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결투도 설정이 필요합니다.”
“설정이요?”
“네. 엘든소울은 성장요소가 있는 만큼 캐릭터마다 차이가 존재할 수밖에 없거든요.”
-고건 맞지
-ㄹㅇㅋㅋ 갓플이랑 이클립스의 차이면 진짜 아득하지
-3일차 캐릭터 vs 모든 배경 클리어 캐릭터
-능력치가 ㄹㅇ 천지차이일 듯
시청자들도 이에 동의를 표했다. 신혜림은 빠르게 반응을 확인하며 질문을 던졌다.
“아, 그렇네요. 그럼 시간으로 따지면 어느 정도 차이가 날까요?”
“퍼플 님은 오늘이 3일 차, 실상 2일 동안만 플레이를 했습니다. 그것도 시간으로 따지면 얼마냐? 퍼플 님은 6시간 정도죠.”
“그럼 이클립스 님은……?”
“제가 알기로 이클립스 님은 최소 하루에 8시간씩 플레이를 하셨죠. 엘든소울이 나왔을 때가 약 5개월 전이니까 어림잡아 900시간은 플레이하셨네요.”
지놈의 말에 채팅창이 술렁였다.
-6시간 vs 900시간 무엇ㅋㅋㅋㅋ
-갓직히 프롬겜 경력으로 따지면 6시간 대 12년 아니냐?
-2배 차이라고?
-않이 ㅋㅋㅋ 숫자만 보지 말라고! 단위가 다르잖아 단위가!
-이렇게 보니까 진짜 어마어마하누
-스포) 그래도 갓플이 이긴다
-퍼청자 인증 확실하고 ㅋㅋㅋ
폭발하듯 올라오는 채팅창에 지놈은 가볍게 박수를 쳐서 주의를 끌었다.
“자, 그렇기 때문에 이클립스 님이 ‘결투’를 신청하신 겁니다.”
“따로 이유가 있다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결투는 ‘공정’을 추구하는 대결! 양쪽 캐릭터의 능력치는 동일한 수준으로 맞춰지고 사용 가능한 주문 역시 개수와 수준이 한정됩니다. 장비 또한 마찬가지죠.”
“다른 요소를 최대한 배제하고 ‘실력’만을 보겠다는 거네요.”
“바로 그겁니다! 자, 그럼 이쯤에서 이번 결투의 주인공들을 모셔보겠습니다!”
지놈은 설명을 마치며 왼손을 들었다. 동시에 화면이 줌아웃 되며 결투장, ‘검의 무덤’ 전경을 비추었다.
그 이름답게 수없이 많은 검들이 벽처럼 세워져 있었다. 마치 해외 인기 드라마, ‘왕자의 게임’ 속 철왕좌로 벽을 세운 것 같았다.
지놈은 가볍게 목을 가다듬고 소개를 시작했다.
“먼저 이번 결투의 도전자! 완벽한 기사를 꿈꾸며 하루도 빠짐없이 실력을 갈고닦은 노력가! 모두가 인정하는 로맨티스트! 현대의 돈키호테, 이이이이클립스 경!”
-캬ㅋㅋㅋ 소개 문구 좋누 ㅋㅋ
-지놈이 진행을 잘하긴 해 ㅋㅋ
-트최입 제대로 시동걸렸누 ㅋㅋ
-ㄹㅇㅋㅋ 그 와중에 경 붙여주는 디테일 보소
-현대의 돈키호테 ㅋㅋㅋ 이거 완전 찰떡이네
-갓플빠지만 이클립스도 멋지긴 함ㅋㅋㅋ
시청자들의 환호 속에 중갑을 걸친 기사가 등장했다. 그는 십자가 헬멧을 쓴 채 가볍게 바닥에 착지했다.
이클립스는 몸을 바로 세우고 절도 있게 검을 세워 예를 취했다.
-각 보소 ㅋㅋㅋ
-대체 얼마나 연습한 거냐굿!
-이게 진짜 ‘롤 플레이’지
-이러니까 엘든킹덤에서 NPC로 나오지 ㅋㅋㅋ
-저렇게 하나에 미치는 삶이 부럽긴 하다
지놈은 이클립스를 바라보며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 오른팔을 들었다. 화면이 이내 반대쪽을 비추었다.
“오늘 결투의 주인이자 도전을 받아들인 챔피언! 샛별처럼 등장했지만 그 파급력은 아마겟돈 수준! 그 이름답게 완벽한 스트리머! 퍼어펙트, 플레이이이이!”
-엌ㅋㅋㅋ 무슨 메테오냐고
-퍼마겟돈 뭔데!
-(퍼도장콘)(퍼도장콘)(퍼도장콘)
-완벽, 그것이 퍼플이니까(끄덕)
-장오장! 장오장! 장오장!
-갓.플.강.림
시청자들의 흥분은 이내 이경복이 등장하며 최고조에 달했다.
“트하!”
가벼운 경갑을 걸친 채 인사와 함께 착지한 이경복. 그는 스트리머의 정체성을 숨기지 않았다.
“네! 오늘의 주인공, 두 분이 모두 모였습니다! 시청자분들의 열띤 응원에 저도 절로 주먹이 꽉 쥐어지네요!”
“어? 그러면 좀 기다렸다 할까요?”
“네?”
신혜림이 눈을 동그랗게 뜨자 지놈이 방긋 웃었다.
“물론 농담입니다! 바로 볼까요!”
-아 ㅋㅋㅋ 욕할 뻔
-형? 트최입이라고 그렇게 나불대다가 훅 가는 수가 있어?
-(대충 심한욕)
-진행이 너무 매끄러워서 지튜브 구독 2번 눌러드렸읍니다^^
-난 이미 구독 중인데 한 번 더 누름 ㅎㅎ
-구독 취소 뭐냐구 ㅋㅋㅋㅋㅋ
화면은 이내 중계진이 아니라 결투장 중앙으로 향했다.
이경복과 이클립스의 거리가 가까워졌다.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보았다.
“자, 양측 모두 가까워지는데요. 결투에 앞서 인사는 당연한 예의죠!”
지놈의 말처럼 두 사람은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이번 결투에 응해 주셔서 고맙소, 퍼플 경.”
“제가 오히려 고맙죠. 이렇게 방송을 재미있게 해 주시는데.”
시작은 부드러웠다. 그러나 분위기는 금방 일변했다.
“방심은 기사로서의 수치, 전력을 다해 상대하겠소!”
이클립스의 공개 선언에 지놈이 즉각 입을 열었다.
“아! 이클립스 경의 전력투구 선언이 나왔습니다! 보통 엘든소울 플레이어들은 뉴비 애호가들 이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선언했다는 건 그만큼 퍼플 님을 인정한다는 뜻이겠죠!”
“벌써부터 신경전이 팽팽하네요! 퍼플 님의 답변은 과연!?”
지놈을 따라 옆에 있던 신혜림도 덩달아 텐션이 올랐다.
“그것도 좋긴 한데…….”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 와중 이경복은 더욱 짙은 미소를 보였다.
“전력보다 더 힘을 내 주셔야 할 텐데요.”
이어서 나온 한 마디.
“아! 나왔습니다! 나왔어요! 나와 버렸어요! 기만이 터졌습니다!”
“이 자신감! 퍼플 님 방송의 인기요인이죠!”
중계진이 소리를 높였다.
-퍼자감 ON!
-이 맛이야! 이 맛이라고! 다른 방송에서는 볼 수 없는 이 맛!
-꿀맛! 꿀맛! 꿀맛!
-결투 전에 기만 브레스로 선빵을?
-선빵필승은 국룰이지 ㅋㅋ
-갓플이 이겼네 ㅅㄱ
-아 스포 밴좀 ㅋㅋㅋ
-이게…… 플탐 6시간의 패기?
인사만으로도 반응이 뜨거워졌다. 이클립스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한계를 넘어서는 것 역시 기사도의 일부라! 이후의 대화는 검으로 하겠소이다!”
“네, 슬슬 시작할까요.”
두 사람은 돌아서서 거리를 벌렸다.
“자, 비로소 결투의 시작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모두 집중하세요! 양측이 지정된 위치에 서는 순간 시작됩니다!”
“으아, 제가 다 떨리네요!”
이경복과 이클립스가 각기 금빛 원으로 향했다.
그리고 마지막 한 걸음을 남긴 순간.
“음?”
이경복은 순식간에 늘어나는 불쾌함에 멈칫했다. 이클립스로부터 느껴지는 건 아니었다.
“어? 저 붉은 원은 뭔가요?”
“붉은 원이라고요?”
곧바로 귀를 자극하는 중계진의 목소리.
그 말처럼 결투장에 갑자기 붉은 원들이 솟아났다. 이윽고 그 안에서 새빨갛게 물들인 사람들이 튀어나왔다.
숫자는 족히 스물이 넘었다.
그걸 보고 지놈이 벼락처럼 말을 토했다.
“습격!? 기자님, 이거 습격 기능은 안 껐나요!?”
메타게이머가 중계를 맡았기에 게임 관련 기능은 그들의 관리하에 있었다.
-헐 ㅋㅋㅋ 설마 습격 기능 안 껐음?
-않이;;; 이게 지금 뭐하는 거냐굿!
-역대급 매치가 바로 앞이었는데!
-시말서 각 날카롭고 ㅋㅋㅋㅋ
-ㅅㅂ 저격이네
-아 ㅅㅂ 이거 들어온 놈들은 못 뺄 텐데
-찐따쉑들 뭔데!
-빠른 리?
엘든 소울을 아는 시청자들은 즉각 상황을 파악했다. 이에 메타게이머를 비난하려는 분위기가 형성되려는 찰나.
“네! 습격 기능은 활성화 되어 있었습니다!”
오히려 신혜림의 텐션이 높아졌다. 채팅창에는 물음표가 옆에 있던 지놈은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커졌다.
“설마설마 했는데, 두 분이 생각한 대로네요!”
“두 분이요? 그럼 퍼플 님과 이클립스 님이 일부러?”
지놈은 신속히 상황을 파악했다. 실수가 아니라면 의도된 상황이 분명했다.
“네, 혹시 결투를 방해하는 사람이 있다면…….”
신혜림은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직접 처리하시겠다고 하셨거든요!”
해프닝은 해결하지 못해야 문제가 된다. 그러나 해결할 수 있다면 그것은 때로 이벤트가 되기도 한다.
-헐ㅋㅋㅋㅋㅋㅋㅋ
-노림수였다고?!
-무쳤냐고 ㅋㅋㅋㅋ
-저격러 유인해서 썰어버리기? 아 ㅋㅋ 이거 못 참지
-이집 에피타이저 잘하네
-사실 저격당한 건 저격러 쪽이었고 ㅋㅋㅋㅋ
-방송천재인 걸 다시 증명!
시청자들도 이내 상황을 파악했다. 그 사이 이클립스는 저격러들을 돌아봤다.
“감히……! 명예로운 결투를 방해하다니!”
그는 분노를 숨기지 않았다.
누구보다도 이 결투를 기대한 사람이 바로 이클립스였다.
“준비운동이라고 생각하죠.”
반면 이경복은 여유롭게 그들을 훑어보며 말했다.
저격러들은 예상치 못한 반응에 오히려 당황했다.
‘이게 아닌데?’
‘왜 이렇게 태평하지?’
‘우릴 기다렸다고?’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