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의 신들린 게임방송-72화 (72/491)

72화 - 기사의 결투 (2)

이경복은 습격자들을 훑어보았다.

‘웬만하면 그냥 넘어가겠지만…….’

스트리머 입장에서 저격은 짜증나는 일이긴 하지만 달리 보면 방송 컨텐츠로 삼을 기회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번 상황은 달랐다.

‘정도가 지나쳤어.’

온라인 게임도 아니고 스토리가 주인 패키지 게임이었고, 중계방송임을 사전에 공지했으며 시작과 함께 직접 중계진이 설명까지 해 줬다.

그토록 명확하게 밝혔음에도 저격을 해 왔다는 건 이들이 악질 중에서도 최악이라는 의미였다.

‘미리 싹을 쳐낸다.’

발본색원(拔本塞源).

이경복은 향후 플레이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저격러들을 처리하기 위해 이 자리를 준비했다.

“밀어붙여!”

“어차피 능력치는 우리 쪽이 높다!”

“죽여!”

일순간 당황했던 저격러들은 악을 내지르며 덤벼들었다.

“아! 난투가 시작됐습니다! 숫자로 보나 능력치로 보나 불리한 형국! 과연 이 난관을 어떻게 통과할지이이이!”

지놈은 자신의 본분을 잊지 않았다. 그의 말마따나 결투와 달리 습격은 능력치의 보정을 받지 않았기에 저격러들의 능력치는 분명 월등했다.

하지만 그것이 승리를 담보하지는 않았다.

“이건 뭐, 따로 집중할 필요도 없네요.”

이경복이 실소를 흘렸다.

채팅창에 물음표가 채워지기도 전에 그는 주술을 발현했다. 이윽고 그가 손을 움직이자.

“우앗!”

“컥!”

“어, 어어!”

“뭐 하는 거야!?”

동시 다발적으로 저격러들의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그들의 모습은 말 그대로 가관이었다.

달려오다가 스텝이 꼬여 바닥을 구르고, 갑자기 목을 움켜잡고 뒷걸음질 치기도 했으며, 갑자기 옆에 있던 동료를 향해 무기를 휘두르기도 했다.

“아, 이게 무슨 일인가요! 요즘 저격러들은 연습도 안 하나요? 이거 완전 오합지졸인데요!”

지놈은 신난 목소리로 크게 소리쳤다. 그 역시 방송을 하면서 저격러에게 시달려 왔던 만큼 이 상황이 충분히 즐거웠다.

-진짜 ㅋㅋㅋ 쟤들 뭐하냐 ㅋㅋ

-개웃기누 ㅋㅋㅋㅋㅋ

-ㄹㅇㅋㅋ 저격러인줄 알았더니 광대들이었네

-이게 그 플래시몹인가 그거냐?

-아 ㅋㅋㅋ 결투 축하공연 하러 온 거자너

시청자들도 조소를 숨기지 않았다. 그러나 저격러들은 근접무기만 들고 온 게 아니었다.

“병신들아! 뭐해!”

“쏴!”

날카로운 얼음 결정들이 쏘아지고 겨누어진 석궁이 발사됐다. 세찬 파공성과 함께 이경복을 향해 날아드는 투사체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그를 한 걸음도 움직이게 만들 수 없었다. 그의 손에서 뻗어져 나온 붉은 궤적이 순식간에 투사체들을 요격했다.

“아! 주술, 마녀의 주술로 정확히 요격했습니다! 아니, 근데 저걸 동시에 다 조종하다니?! 시청자 여러분! 지금이 게말콘, 게말콘 타이밍입니다!”

지놈이 다급히 말을 쏟아냈다. 마치 그에 응하듯 채팅창이 반응했다.

-(게말콘)(게말콘)(게말콘)

-뭐임? 왜 주술 개수가 늘어남?

-능력치 보정으로 늘어났네!

-동시에 6개 조종 실화?

-쿼드코어가 아니라 헥사 코어였던 거임ㅋㅋㅋㅋ

-와앀ㅋㅋㅋㅋ 근데 저걸 바로 컨트롤한다고?

-적응속도 뭔데!

결투로 인한 능력치 보정으로 증가된 줄기의 개수, 그러나 그보다 놀라운 건 제각기 의지를 가진 것처럼 서로 다른 움직임을 보였다는 사실이었다.

“무, 무슨…….”

“말도 안 돼…….”

이경복은 얼이 빠진 저격러들을 보며 생긋 미소를 지었다.

“님들, 영구 밴 처리할게요.”

그와 함께 신형이 튀어나갔다.

“퍼플 님의 반격이 시작됐습니다!”

“와! 이게 대체 뭔가요! 순식간에 저격러들이 갈려 나갑니다. 마치 붉은 폭풍, 주술의 이름대로 ‘용오름’이 휘몰아치는 것 같아요!”

이경복이 휘두르는 검과 6개의 붉은 궤적이 저격러들을 유린하기 시작했다.

저격러들은 다급히 방어태세로 전환했지만 그리 오래 버티지는 못했다.

-나왔다! 살인미소!

-살인(예고)미소 뭔데!

-무친;; 주술 컨트롤하면서 근접전을 한다고?

-헥사코어가 아니라 옥타코어였누 ㅎㄷㄷ

-아 ㅋㅋ 저격러 밴은 국룰이지!

-않이 ㅋㅋㅋ 에피타이저부터 이렇게 배불리 먹이면 어떡하냐구!

-이클립스 어케 이김?

채팅창 반응에 신혜림이 화들짝 놀라며 눈을 돌렸다.

“아! 이클립스 님 쪽 상황은 어떤가요!”

이경복의 전투가 너무 화려해 시선을 사로잡은 통에 전혀 신경을 쓰지 못했다.

다행히 중계진은 어느 쪽을 볼지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이경복이 순식간에 저격러들을 퇴장시켰기 때문이었다.

그는 검과 주술을 갈무리하고 눈을 돌렸다.

“오…….”

이클립스 쪽을 확인한 이경복은 작게 탄사를 흘렸다.

“끄아악……!”

“이런 미친!”

저격대상이었던 이경복에게 대부분이 몰렸지만 이클립스 쪽에 붙은 인원도 상당했다.

그러나 이미 그 주변에는 6구의 시체가 쓰러져 있었고, 이클립스는 4명을 동시에 상대하고 있었다.

“아! 놀랍습니다! 이클립스으으으! 검술만으로 다수를 압도하고 있어요!”

지놈의 설명대로 이클립스는 주문의 도움을 받지 않았다. 그는 정확히 저격러들의 공격을 패링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방금! 방금 보셨습니까!?”

“네? 왜, 왜 그러시죠!?”

“시스템상 패링 판정이 안 났는데 공격을 흘렸어요! 순수하게 검술로 빈틈을 만들어 냈습니다!”

이클립스는 시스템이 아니라 자신의 실력만으로 저격러들을 베어 나갔다. 축적된 경험과 단련된 감각, 그리고 쌓아 온 검술은 그를 배신하지 않았다.

-와;; 무쳤다 무쳤어

-이게 기사지!

-와 ㅋㅋㅋ 저격러들 무기 끌려가는 거 보소

-갓플은 화려하고 호쾌한데 이클은 묵직한 맛이 있네

-다굴 앞에 장사 있었누 ㅋㅋㅋㅋ

시청자들 역시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클립스 쪽 역시 저격러들의 패색이 짙어졌다.

”아, 지금 말씀드린 순간 또 하나의 찐따, 아니 습격자가 쓰러졌습니다!”

-찐따 ㅋㅋㅋㅋㅋㅋ

-본심 뭐냐구!

-혀엉!? 이거 방송이야!

-정확한 해설인데 무슨 문제라도?

-찐따 박제 지렸고 ㅋㅋㅋㅋ

지놈의 조롱과 이미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는 승부. 이에 아직 목숨을 부지한 저격러들이 할 수 있는 선택은 하나뿐이었다.

“이런 씹…….”

“개 같네 진짜.”

“게임 X같이 하네.”

그들은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사라졌다. 습격은 도중에 그만둘 수 없는데 어떻게 된 것일까.

“아! 강종, 강종 나왔어요! 더럽고 추하게 빤스런! 더추빤 엔딩인가요!”

-강제종룤ㅋㅋㅋㅋ개웃기넼ㅋㅋㅋ

-덬ㅋㅋㅋㅋ춬ㅋㅋㅋ빤ㅋㅋㅋ

-찐따계의 화룡정점!

-캬 ㅋㅋㅋ 수미상관 확실하누

-응~ 이미 박제됐어~

-가기 전에 극찬까지 남겨 줌ㅋㅋ

이클립스는 적들이 사라지자 절도 있게 납검했다. 끝까지 흐트러짐 없는 자세였다.

“망자만도 못한 비루한 것들.”

그의 단평에 채팅창은 웃음으로 가득해졌다. 그렇게 상황이 일단락되자 신혜림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만에 하나라도 두 사람이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면 방송사고가 됐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말 그대로 기우.

이제는 그녀가 나설 차례였다.

“자! 결투에 앞서 잠시 소란이 있었는데요.”

그녀가 목소리를 내자 주의가 집중됐다. 신혜림은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또렷한 발음으로 말했다.

“소란을 일으키신 불청객 여러분들, 아마 저희 쪽에서 습격 기능을 허용해 뒀으니 문제가 되지 않을 거라 생각하신 것 같습니다.”

“말씀하시는 걸 보니 아무래도 그건 오산이었나 보군요?”

“그렇습니다. 퍼플 님과 이클립스 님, 그리고 저희 메타게이머 모두 사전에 중계방송임을 고지했음에도 이벤트 도중 난입했다는 건 방해 의도가 명백합니다. 이에 저희 법무팀이 대응을 검토할 방침입니다.”

지놈은 환하게 웃었다.

메타게이머가 이 소란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아, 이거 업무방해가 적용되겠네요. 문 열려 있다고 마음대로 들어오면 주거침입인 것처럼 말이죠.”

-엌ㅋㅋㅋ 비유 찰떡이네

-악질은 금융교육이 국룰이지

-에피타이저에 사이다 서비스 지렸다 ㅋㅋㅋㅋ

-???: 형사님. 그, 그게요. 습격 기능이라는 게 있는데요. 제 잘못이 아니라…… 네? 빨간 줄이요?

-???: 어어, 엄마. 갑자기 웬 전화냐고? 혹시 돈 좀 있어? 그, 내가 고, 고소를 당했…… 아, 아니 울지 말고……

-찐따쉑들 미래가 다 보이누 ㅋㅋㅋ

-나만 아니면 돼에에에에!

시청자들은 흡족함을 숨기지 않았다. 신혜림과 지놈은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좋습니다! 자, 그럼 다시 본 이벤트에 집중해 보도록 하죠.”

“퍼플 님, 이클립스 님 결투 속행 괜찮으실까요? 아니면 잠깐 쉬는 시간이라도?”

이경복과 이클립스에게 던져진 물음에 주의는 다시 두 주인공에게 돌아갔다.

“문제는 없소! 퍼플 경께서만 괜찮다면 바로 시작하고 싶소이다.”

이클립스는 투지를 내비쳤다. 이경복은 옅은 미소와 함께 어깨를 으쓱인다.

“이거 곤란하네요.”

그 말에 중계진의 눈이 크게 뜨였다. 이클립스도 흠칫하며 시선을 돌렸다.

“저격러들 수준이 너무 떨어져서 몸이 풀리다 만 기분이라.”

-엌ㅋㅋㅋㅋ 끝까지 찐따들 능욕

-지독하다! 지독해!

-혼자서 거의 15명은 처리하지 않았음?

-아 ㅋㅋㅋ 그 정도는 몸풀기도 안 된다고

-근데 맞말이긴 함 ㅋㅋㅋ

-ㄹㅇㅋㅋ 순식간에 쓸어버렸잖슴!

이경복이 장난스럽게 말하자 채팅창에도 웃음이 가득해졌다. 신혜림도 밝게 미소 지으며 멘트를 이어 나갔다.

“다행이네요! 자, 그럼 시작에 앞서 시청자분들이 더욱 즐길 수 있도록. 지금부터 포인트 배팅을 시작하겠습니다!”

[결투의 승리자는?]

[1. 퍼플] [2.이클립스]

[1:00 후에 제출이 마감됩니다.]

채팅창 하단에 투표창이 형성됐다. 투표까지 주어진 시간은 1분이었다.

-오 ㅋㅋㅋ 베팅!

-아 이건 무적권 퍼플이지 ㅋㅋㅋ

-갓플과 쌓은 추억 올인 가즈아!

-이건 정배각임 ㅋㅋㅋ

-포인트가 복사가 된다고!

-그래도 이클도 쩔었는데?

-이건 약간 고민되는데……

-검술 직접 보니까 흔들림 ㅋㅋ

-역배로 대박 노리쉴?

쏟아지는 채팅과 함께 순식간에 투표가 시작됐다.

“아, 이게 원래는 결투 시작한 뒤에 예정된 건데 앞당겨졌네요?”

“네네! 이번 난투로 실력을 선보이셨으니까요! 과연 시청자 여러분의 예측은 어떨지……!”

이경복과 이클립스 둘 모두 눈을 돌렸다. 투표 결과에 관심이 없을 수가 없었다.

이윽고 투표가 마감되며 결과가 나타났다.

[1. 퍼플 – 62%]

[2. 이클립스 – 38%]

과반수 이상이 이경복의 승리를 점쳤다. 난투에서의 화려한 전투가 인상적인 덕이었다.

-와 ㅋㅋㅋㅋ 역배가 30%를 넘는다고?

-덕분에 추억 잘 쌓고 갑니다^^

-77ㅓ억 포인트 달달하고

-역배는 엘딱들이 분명함 ㅋㅋㅋ

-갓플 싸우는 거 보면 답이 딱 나오는 데 ㅋㅋㅋㅋ

-근데 이것도 많이 오른 거임 ㅋㅋㅋ 엘소메타에서는 거의 5:5였는데

-정배들 신났누 ㅋㅋㅋㅋ

-이클립스 검술만 봐도 개쩔자너

-낭만이 승리하길 바랄 뿐임 ㅋㅋ

-폭풍전야…… 누가 틀렸는지는 결과가 말해 줄 것이다

채팅창이 과열되기 전에 지놈이 빠르게 나섰다.

“좋습니다! 더 기다릴 이유가 없네요! 그럼 양측 모두 다시 지정된 위치로 이동해 주세요!”

“퍼플과 이클립스, 이클립스와 퍼플! 과연 승자는 누구일까요!”

이경복과 이클립스는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금빛 원으로 향했다.

양쪽 모두 원에 발을 디딘 순간.

“자, 결투 시작됐습니다!”

“선공은 누구죠!?”

먼저 움직인 쪽은 이클립스였다.

그의 손에서 스파크가 튀더니 샛노란 번개의 창이 만들어졌다. 이클립스는 돌진과 더불어 창을 내던졌다.

“아! 손하분! 손하분입니다!”

“손하분이요!?”

지놈은 곧바로 그 주문을 알아보았다. 성직자 배경의 캐릭터가 사용하는 주문, ‘손에 쥔 하늘의 분노’였다.

하지만 그 이름보다는 효용을 설명하는 게 옳았다.

“위력은 약하지만 가장 빠른 주문! 이걸 숨기려고 난투에서도 검술로만 싸운 건가요!? 보통사람이라면 적중하겠지만 퍼플에게 과연?!”

그 설명답게 번개창은 순식간에 거리를 좁혔다. 그러나 이클립스는 퍼플이라면 당연히 그 주문을 피할 거라 예상했다.

‘회피 이후를 노린다!’

번개창은 상대의 행동을 유인하기 위한 매개체에 불과하다. 이클립스는 이경복의 방향을 잡기 위해 집중했다.

‘……피하지 않아?’

그런데 이경복의 몸은 그 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설마 맞고 버틸 생각일까.

아니, 그렇지 않았다.

이경복은 그저 가볍게 손을 들어 펼쳤다.

그 간단한 동작에 파직하는 소리와 함께 번개창이 흩어졌다.

“아! 주술! 주술로 상쇄시켰군요!”

“주술이요?”

“예! 난투에서 투사체를 쳐낸 것처럼 손하분도 잘라 낸 거죠! 정말 미치, 아니 엄청난 실력입니다!”

“난투에서 보여 준 거랑 같지 않나요?”

“다릅니다! 손하분은 겉보기에는 커 보여도 그게 다 이펙트 빨이거든요! 히트박스, 공격이 적용되는 타격점은 창끝처럼 미세한데 그걸 정확히 상쇄시킨 겁니다!”

지놈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시청자들도 이에 놀라움을 표출했다.

-무친 ㅋㅋㅋ 손하분 히트박스 완전 점 하나 수준인데

-그걸 노리고 쳤다고?

-(퍼도장콘)

-그저 퍼펙트 해버렸다!

모두가 감탄한 사이 이클립스는 주의를 흩트리지 않았다. 그는 번개창이 사라지자 즉시 바닥을 굴렀다. 이어 그가 있던 자리가 팍하는 소리와 함께 패였다.

“오, 감이 좋으시네요. 역시 고인물은 다르시네.”

이경복은 눈을 크게 뜨며 미소 지었다. 이클립스는 기쁨을 숨기지 않았다.

“과연 도전할 가치가 충분하외다!”

그는 전의를 더욱 불태웠다.

이경복은 그런 이클립스의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그는 바로 돌진했다. 손을 움직이며 채찍을 날리고 후속타로 검을 내질렀다. 이클립스의 몸을 묶고 결정타를 먹일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클립스는 신속히 몸을 던지며 회피했다.

“아, 주술을 경계한 걸까요!? 먼저 굴렀습니다!”

“역시 위협적이네요!”

-나라도 일단 구를 듯 ㅋㅋㅋ

-ㄹㅇㅋㅋ 어디서 날아올지 모르는데

-무적 판정이 희망이지

이경복의 판단은 중계진과 시청자들과 좀 달랐다.

‘좌우도 아니고 뒤로 굴렀다는 건 우연이 아닌 것 같은데.’

그 역시 이클립스가 회피할 곳을 향해 미리 채찍을 날려 두었다. 하지만 그는 안전한 곳으로 몸을 날렸다.

“아무래도 보이시나 봅니다?”

이경복은 직설적으로 물었다. 이클립스는 자세를 고치며 대답했다.

“물론이오. 경과의 결투를 고대하며 특훈을 했으니.”

“특훈?”

“가신들은 모를 것이오. 내 특별히 마술을 조작하여 영혼채찍을 투명하게 만들었소이다.”

이클립스는 이경복이 습득한 주술을 확인하고 대응을 고심했다. 그 방안으로 떠오른 것이 비슷한 주문 ‘영혼채찍’에 투명화 모드를 설치하는 것이었다.

“아! 이클립스 경! 일부러 투명채찍까지 만들어서 연습했나요?! 대단한 열정이 아닐 수 없습니다!”

“놀랍네요!”

-와 ㅋㅋㅋ 따로 훈련까지 했다고?

-설마 어제 휴방이 그것 때문임?

-역시 노력가 ㅎㄷㄷ

-집념 무쳤누

-결투에 진심인 남자 ㅋㅋㅋ

중계진도 시청자들도 놀람을 감추지 않았다. 이경복은 이에 웃으며 답했다.

“그럼 딱히 숨길 이유도 없겠네요.”

그 말과 동시에 붉게 달아오르는 채찍들. 이클립스가 방향을 읽어 낼 수 있다면 차라리 위력을 높이는 편이 옳았다.

이경복은 재차 이클립스를 향해 쇄도했다.

“웃……!”

이클립스는 신속히 번개창을 날렸지만 붉은 궤적에 상쇄됐다. 이윽고 다시 그를 향해 날아드는 5개의 화염채찍.

“아! 엄청난 압박입니다! 각 채찍이 별개로 움직이고 있어요! 마치 5:1의 상황입니다! 그런데 그 5가 다 퍼플이에요!”

지놈이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냈다. 그 말처럼 파고들 빈틈이 보이지 않았다.

‘기회는 온다……!’

이클립스는 재차 활로를 찾아 몸을 굴렸다. 그리고 다시금 자세를 추스르는 순간이었다.

그의 눈앞에 분명히 피했을 화염채찍 하나가 날아들고 있었다.

-뭐임?

-채찍 6개 아님?

-아까 하나 쳐내고 지금 5개 피했는데?

-헐ㅋㅋㅋㅋ 설마?

물음표가 가득해지는 채팅창에 지놈이 답을 던졌다.

“와! 줄기가 하나 더! 하나 더 있었습니다! 퍼플도 숨긴 한 수가 있었어요!”

“혹시 일부러 난투에서 주술을 보여 주고 착각을 유도했다는 건가요!?”

능력치 보정으로 조종 가능해진 줄기의 숫자는 6개 아니라 7개였다. 이경복은 결투 상대 앞에서 전력을 전부 노출할 생각이 없었다.

“제가 아는 퍼플 님이라면 그렇습니다! 속임수는 진실 속에 숨겨야 퍼펙트 하거든요! 퍼펙트 캐치! 성공하나요!?”

무적판정이 있는 만큼 회피 직후에는 일순간의 경직이 걸렸다. ‘캐치’는 그렇게 경직된 상대를 노리는 공격을 일컫는 용어였다.

붉은 채찍이 말 그대로 지척에 닿은 순간.

“아!”

“이건!?”

이클립스의 몸에서 광채가 터져 나왔다. 그 강렬한 빛에 이경복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광휘, 광휘의 세례입니다! 시전자 주변에 충격파를 발산하는 주무우우운! 비장의 생존기, 2번째 주문이 드러났습니다!”

이클립스는 그렇게 쉽게 쓰러질 상대가 아니었다. 이경복이 사용하는 주술이 2개인 것처럼 그가 준비한 주문도 2개였다.

“퍼플 님의 주문이 상쇄된 건가요?”

“그렇습니다! 이 또한 대단하네요! 충격파가 발산하는 시간은 찰나라서 타이밍이 관건이었거든요!”

-이게 진짜 결투? 그럼 내가 봤던 건 대체?

-아 ㅋㅋㅋ 그냥 붕쯔붕쯔하는 거랑 차원이 다르다고!

-짬바 진짜 어디 안 가네

-카운터 다 준비했누 ㅎㄷㄷ

-고인물 결투 수준 실화냐? 가슴이 웅장해진다……

-플탐 6시간(고인물)

중계석과 채팅창 모두 경탄이 흘러 나왔다. 이경복은 굳은 표정으로 이클립스를 바라봤다.

긴장한 것일까?

아니, 그렇지 않았다.

‘이렇게 되면 결투 양상이 좀 루즈해지겠는데…….’

이경복은 방송을 생각했다.

자신도 이클립스도 주문에 대응책이 존재하는 상황. 자칫 의미 없는 공방이 지리멸렬하게 늘어질 수 있었다.

‘한번 해 볼까.’

이경복은 신속히 이클립스와 거리를 벌리고 손을 들었다.

“아! 지금 퍼플 님이 손을 들었습니다! 무슨 일이죠!?”

“뭔가 문제가 있는 걸까요?”

태세를 갖추던 이클립스도 멈칫했다. 모두의 주의가 이경복에게 쏠렸다.

“먼저 사과드리겠습니다.”

사과라는 말에 모두가 의뭉스러운 얼굴이 되었다. 갑자기 무슨 사과란 말인가.

“저는 이번 결투를 가벼운 이벤트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클립스 경께서 보여 주신 노력에 제 태도가 안일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경복은 그리 말하며 주술을 거두었다.

“명예로운 결투란 양쪽 모두 최고의 수를 선보이는 것.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이클립스 경의 고명한 검술을 견식할 기회를 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 물음에 잠시 정적이 찾아왔다.

“아, 지금…….”

“주문이 아니라 검술만으로 결투를 진행하자는 뜻인 것 같은데요?”

중계진이 그 침묵을 지워 냈다.

-헐?

-않이;;; 이클립스랑 검술로?

-아무리 갓플이라도 이건 좀;;

-아까 저격러 처리하는 거 보니까 미쳤던데 ㅎㄷㄷ

-정배들 정신이 들어?

-여기서 역배각이 나온다고?

채팅창은 우려 섞인 말로 가득해졌다.

바로 그때.

캉, 캉, 캉 하는 쇳소리가 연달아 울렸다. 이클립스가 건틀릿을 낀 손으로 박수를 치며 낸 소리였다.

“멋지구려! 아주 멋진 제안이오!”

그는 호쾌하게 웃음까지 터트렸다.

“본인은 그간 많은 결투를 치러 왔소. 지금까지 내가 만난 건 승리를 위해 모든 수단을 강구하는 이들뿐이었소이다. 허나, 오늘은 진정한 명예를 아는 이를 만났구려.”

“아, 지금 분위기가 묘하게 돌아갑니다.”

지놈은 눈치껏 목소리를 낮추며 상황을 살폈다.

“마술과 주술, 그리고 권능. 이 또한 이 세계를 살아가는 힘이지만 기사도는 무릇 자기 수양을 뜻하오. 본인은 시간이 지날수록 자기 수양보다 힘에 의지하는 세태가 안타까웠소.”

이클립스는 다시금 검을 세워 예를 취했다.

“그러나 지금! 진정한 기사도를 선보일 기회가 왔음에 감사를 표하니! 본인은 퍼플 경의 제안을 기꺼이 받아들이리다!”

“많은 가르침을 부탁드립니다.”

이경복은 웃으며 이클립스를 따라 했다. 그와의 검술 승부라면 방송은 지루할 틈이 없을 터였다.

그리고 하나 더.

‘확인해 봐야겠어.’

이경복은 시험해 보고 싶은 게 있었다.

이전 묘지기를 상대했을 때 그가 기사였던 걸 알아차렸던 것처럼, 이경복은 자신이 의식하지도 못한 사이에 대검을 쓰는 법을 익혔다.

‘어쩌면…….’

그 이유로 떠오르는 건 하나.

그가 가진 육감의 정보 수집력뿐이었다.

‘이번에도 배울 수 있겠지.’

이클립스가 12년 동안 축적한 경험을 습득할 기회가 될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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