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화 - 이게 다 퍼플 때문
늦은 밤, 메타게이머의 메인페이지에는 한 기사가 올라왔다.
[‘엘든제일검’의 세대교체! (With 뉴턴좌의 비밀)]
떠오르는 신예 스트리머 퍼플과 프롬 스튜디오 게임 터줏대감인 이클립스와의 대결을 다룬 특집.
거기에 뉴턴좌까지 거론되니 기사의 조회수는 천정부지로 솟구쳤다.
[-엥? 퍼플은 거그 스트리머 아니었음?]
[ㄴㄹㅇㅋㅋ 퍼플 FPS 원툴 아님?]
[ㄴ원툴 ㅇㅈㄹ 퍼펙트 야미 모르누?]
[ㄴ아 ㅋㅋ 그래도 엘든이랑은 차원이 다르지]
이번 대결에는 관심이 없었던 이들은 두 스트리머의 격차에 황당함을 표출했다. 하지만 그건 너무나 짧은 생각이었다.
[-무친 바로 올라왔네]
[-이건 풀영상으로 봐야 진국인디]
[-세계최강자의 대결 웅장이 가슴해진다.]
[-제목부터 세대교체인데 갓플 무시하는 놈들은 대체 뭐임?]
[-이래서 문해력이 떨어진다는 기사가 자꾸 나오는 거 아니냐구]
[-아 ㅋㅋ 제발 영상 좀 보고 써라]
[-선댓글 후감상한 놈들 이제 댓삭튀하쥬?]
이미 결과를 아는 이들은 그런 댓글들을 비웃었다. 그들과 달리 먼저 영상을 확인한 이들의 댓글은 조금 뒤에 추가되었다.
[-와 ㅅㅂ 엘든소울이 원래 이런 겜임?]
[ㄴ네 맞워요!(아님)]
[ㄴ엘린이도 할 수 있다!]
[ㄴ엘린이(플탐 1200시간 돌파)]
[ㄴ가짜뉴스 퍼뜨리지 말라고 좀 ㅋㅋㅋㅋㅋ]
[-엘든소울이 진짜 간지 하나는 작살난다 ㅋㅋㅋㅋ]
[ㄴ갓플 플레이가 화려하긴 하지 ㅋㅋㅋㅋ]
[ㄴ이와 비슷한 것으로 ‘연출된 조리예’가 있다]
[ㄴ무친ㅋㅋㅋㅋ 맞말춬ㅋㅋㅋ]
[ㄴ킹반인들이 하면 바닥만 겁나 구름ㅋㅋㅋㅋ]
[-이클립스 짬바 개쩐다 ㅎㄷㄷ]
[ㄴ어허! 뒤에 ‘경’을 붙이거라!]
[ㄴ이거 보고 진짜 존경심 갖게 됨 ㅋㅋㅋㅋ]
[ㄴ이클 경이 대단하긴 해]
[ㄴ괜히 ‘엘든제일검’이 아니었음 ㅋㅋㅋ]
[-해설 다 드립인줄 알았는데 이왜진?]
[ㄴㄹㅇㅋㅋ 싸우면서 성장한다구!]
[ㄴ아아, 이게 바로 ‘천재’라는 것이다.]
[ㄴ이클립스 공인 천재임 ㅋㅋㅋ]
[ㄴ갓플이 또 갓플 해버렸다 이말이야.]
[-않이;;; 퍼플은 지친 기색이 하나도 없누.]
[ㄴ진짜 ㅋㅋ 아무리 몸은 안 지쳐도 저렇게 싸우면 완전 녹초가 될 텐데]
[ㄴ마지막에 숨만 딱 뱉고 마는 거 개간지 ㅋㅋㅋ]
[ㄴ그게 바로 ‘퍼펙트’니까(끄덕)]
퍼플과 이클립스의 대결에 관한 댓글은 양쪽 모두 칭찬 일색이었다. 물론 그중에서도 승리자인 퍼플을 칭찬하는 비중이 높았다.
그러나 댓글창 분위기는 그리 훈훈하지만은 않았다.
[-뉴턴좌가 여자였다고?]
[-눈나ㅏㅏㅏㅏㅏㅏ!]
[-왘ㅋㅋㅋㅋ 몸매 미쳤고]
[-오늘부터 사과단 한다 ㅋㅋㅋ]
[-아 나도 저격 받고 싶다!]
[-눈나였으면 솔직히 죽어도 개이득인 부분 아니냐?]
[-왜 숨기고 다님? 캠방하면 인기 개쩔 거 같은데 ㅋㅋㅋ]
바로 뉴턴좌의 성별을 언급하는 댓글들이었다. 그냥 언급이면 지나가겠지만 개중에는 성희롱과 같이 선을 넘는 댓글들도 있었다.
[-아씨 육수쉑들 또 ㅈㄹ났네]
[-느그들 좋아하는 세렝게티로 꺼져!]
[-꼭 뭣도 없는 것들이 물 흐리고 다님ㅋㅋㅋ]
[-육수는 과학이지 ㅋㅋㅋㅋㅋ]
[-방송 보다가 저격 받아서 맥 끊기면 개빡치는데 개이득 ㅇㅈㄹ하고 있네]
[-ㄹㅇㅋㅋ 여캠방이나 가서 천원 도네로 찝적거릴 것이지]
[-혹시 몰라서 아카이브 따드렸습니다^^]
물론 그런 댓글들은 곧바로 뭇매를 맞았다. 무수한 반대와 함께 댓글이 블라인드 처리되거나 작성자가 댓글을 삭제한 것이다.
[-뉴턴좌도 실력이 대단하긴 하네]
[ㄴ그것도 갓플이 코칭해 줌 ㅋㅋㅋ]
[ㄴ원 포인트 레슨 100만원!]
[ㄴ갓직히 돈 있으면 한번 받아보고 싶다 ㅋㅋㅋ]
[ㄴ님들 뽑기만 참아도 되지 않음?]
[ㄴ아 ㅋㅋ 한정픽업은 못 참지]
[-와 평가금 200? 2배로 떡상해 버리누]
[ㄴ근데 싸운 거 보면 부족한 감이 없지 않아 있음ㅋㅋㅋㅋ]
[ㄴ퍼플코인 아직 안 산 흑우 없제?]
[ㄴ퍼플 코인은 탔는데 왜 내 주식창은 새파랗죠?]
[ㄴ아아, 모르는가? 이게 바로 오올블루다]
[ㄴ모든 보물이 거기 있다더니 ㅋㅋㅋㅋ 알고 보니 내 돈이 파묻혀 있었누]
이클립스와의 대결이 주였지만 퍼플과 뉴턴좌의 경합도 나름 비중을 차지했다.
그렇게 댓글들이 늘어나는 와중이었다.
[-미친ㅋㅋㅋ 엘든제일검 때문에 엘소메타 미쳐 날뛰는 중]
[-엘붕이들 단체로 돌았넼ㅋㅋㅋ]
[-님들! 기사 다봤으면 엘소메타 ㄱㄱ!]
갑자기 엘든소울 커뮤니티를 언급하는 댓글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기사를 읽은 사람들은 호기심을 못 이기고 커뮤니티에 접속해 보았다.
[“점소이, 주문 좀 받게나.”]
[한 검사가 객잔에 들어와 말했다.
“몸이 허하니 회복에 요긴한 것을 갖다 주게.”
노란 머리의 점소이가 넙죽 몸을 굽히며 답했다.
“알겠습니다요 대협! 여기 애태루(愛太淚) 한 병!”]
[-에테르가 애태루 ㅅㅂㅋㅋㅋ]
[-한자표기 킹받네 ㅋㅋㅋㅋㅋ]
[-노란머리 점소이는 뭔뎈ㅋㅋ]
[-엘소에 객잔이 어딨냐고!]
[강시토인 공략법을 알려 주십시오]
[파자지묘(破者之墓)를 막 탈출한 무림 초출이 선배님을 뵙습니다.
회무림(灰霧林)에 당도한 것까지는 좋았으나 강시토인을 상대하기가 너무 까다롭습니다.
선배님들의 고견을 부탁드리겠습니다.]
[-강시토인ㅋㅋㅋㅋ 원령골렘 말하는 거?]
[-파자지묘가 뭔가 했는데 ㅅㅂㅋㅋㅋ 파자가 부서진 자였누 ㅋㅋㅋㅋ]
[-그럼 회무림은 안개숲이넼ㅋㅋ]
[-꾸짖을 갈! 어찌 협객이 사이한 마녀와 거래를 한단 말이냐! 네놈은 사파가 분명하렸다!]
[-무친ㅋㅋㅋ 댓글도 슬슬 무림풍으로 변하네]
엘든소울 커뮤니티인지 눈이 의심 갈 게시글이었다. 그 외에도 커뮤니티와 성격이 맞지 않는 글들이 많았다.
[마술과 주술을 이용하는 건 사파나 할 짓이외다!]
[엘든제일검은 정해졌으나 엘든제일창의 자리는 비어 있다. 본좌가 그 자리에 서겠다!]
[나려타곤을 부끄러워 마시오! 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소!]
[<비무대회개최> 엘든제일궁은 과연 누구인가! 많은 무림 동도들의 참여를 바라오!]
[엘든소울이 무협이 아니라고? 갈! 무(武)와 협(俠)만 있다면 그곳이 무협이니라!]
무협 게임에서나 볼 법한, 아니 무협 게임 커뮤니티에서도 잘 쓰지 않을 제목들이 게시판을 가득 채웠다. 기사의 제목에 쓰였던 것처럼 ‘엘든제일검’이라는 호칭의 파급력 때문이었다.
그리 커뮤니티 내에 폭풍처럼 무협의 바람이 부는 와중 새로운 소식이 전해졌다.
[엘든제일검 서역인 반응]
[아앀ㅋㅋㅋ 나도 컨셉 잡고 써 볼려고 했는데 무협 지식이 없어서 걍 제목만 씀
리딧에서 이번 결투 반응 나왔기에 함 번역해왔다.
이번에 기사 올라온 거 자막 달려 있었던 덕분에 수출이 빨리 된 듯?
급하게 하긴 했는데 대충 맞을 거임
귀찮으니까 반박 안 받음
(미친, 이클립스가 더 이상 챔피언이 아니야!)
(씨발뭐임? 이 자식 누구야? 퍼플?)
(난 이런 개똥같은 거 못 믿어. 이클립스는 검술의 대가라고!)
(세상에. 님들, 이거 되게 추해. 그냥 받아들이고 새로운 챔피언을 환영하라고)
(진짜임. 그는 새로운 챔피언이고 증명까지 했어. 너희들은 이걸 왜 부정하는데?)
(허? 퍼펙트 플레이가 이 우승자의 이름이야. 꽤 거만한데 맞말이네.)
(개쩐다!)
(쌉지리네 ㅋㅋㅋ)
(오! 나 이 사람 알아! 바크 진엔딩 보여준 사람이잖아!)
(맞네! 그 사람이네!)
(링크 좀 줄 수 있음?)
(큐튜브 찾음. 하루 종일도 볼 수 있겠는데! ㅋㅋㅋ)
(‘엘든제일검’이라는 게 대체 뭔 소리야?)
(엘든소울 최고의 검사라는 뜻이지. 완전 맞말이네 ㅋㅋㅋㅋ)
(찐 한국인이네 ㅋㅋㅋㅋㅋㅋ)
현실 부정하는 놈들도 많은데 영상보고 다 아닥한 듯 ㅋㅋㅋ
반응 더 보고 싶으면 리딧에서 이클립스 검색해 봐라 ㅋㅋㅋㅋㅋ]
이클립스는 제작사가 주최한 대회의 우승자였던 만큼 일본뿐만 아니라 영미권에도 이름이 알려져 있었다. 그런 그가 패배했다는 소식에 해외 게이머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그 덕분에 해외 게이머의 뇌리에도 퍼펙트플레이라는 이름이 알려지게 됐다.
[-고생추 ㅋㅋㅋㅋㅋ]
[-lol보다는 역시 ㅋㅋㅋ가 맛이지]
[-코쟁이쉑들 이악물고 부정하는 거 보소 ㅋㅋㅋ]
[-점마들 토너먼트에서 이클한테 진 놈들일 듯 ㅋㅋㅋㅋ]
[-천외천 보고 현실도피ㅋㅋㅋ]
[-갓플 바크 업적도 다시 나오누]
[-엘붕이 겸 바붕이인데 괜히 뿌듯하네]
[-모든 한국인이 다 게임 잘하는 건 아닌데 또 고정관념 단단히 박혀 버렸누 ㅋㅋㅋㅋ]
[-갓플은 한국인 중에서도 어나더 레벨이다 이놈들아!]
[-이 정도면 한국제일검이지ㅋㅋ]
해외 게이머들 사이에서 퍼플의 이름이 오르내린다는 건, 팬들 입장에서는 꽤나 흡족한 일이었다.
* * *
한편, 걸그룹 ‘스위티즈’의 숙소.
“얘들아, 관리사님 오셨어.”
매니저가 멤버들의 방을 돌아다니며 소식을 전했다. 모바일 콘서트를 마치고 지친 멤버들을 위해 에스테틱 서비스를 불러 놓았던 것이다.
“으으…… 한창 치킨 먹고 있었는데.”
“난 떡볶이.”
“둘 다 같이 먹는 게 국룰아냐?”
복도로 나온 멤버들이 웃으며 나왔다. 가상현실에서 음식을 섭취하면 살은 안찌고 ‘맛’만 느낄 수 있었기에 이런 식으로 스트레스를 풀곤 했다.
“어? 근데 나라 언니는?”
스위티즈는 4인조 걸그룹이었고, 그중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은 ‘윤나라’였다. 하지만 가장 인기가 많은 멤버이기도 했다.
“아직 캡슐에 접속해 있나?”
“아, 내가 불러올게.”
한 멤버가 윤나라의 방을 찾았다. 가볍게 노크한 그녀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언니?”
예상과 달리 윤나라는 침대에 누워 있었다.
“어? 왜?”
“관리사님 오셨다는데.”
“아.”
윤나라는 잠시 눈을 굴리다가 손을 내저었다.
“오늘은 그냥 쉴래. 얘기는 내가 직접 할 거니까 신경 쓰지 말고.”
“또? 하긴…… 언니는 관리할 필요 없어서 좋겠다.”
그녀는 슬쩍 윤나라를 위아래로 훑었다. 가벼운 티셔츠에 돌핀팬츠, 그러나 그 간편한 차림에도 외모는 빛을 발했다.
같은 아이돌이지만 연예인을 보는 느낌이었다.
“야, 나도 관리 빡세게 하거든?”
“에이, 당연히 알지. 그럼 쉬어!”
윤나라는 문을 닫고 나가는 동생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내 그녀는 몸을 일으켜 자세를 잡았다.
가부좌를 틀고 천천히 눈을 감은 그녀. 명상과 함께 조금씩 감각이 둔해지며 그녀는 내면으로 침잠했다. 그러나 마음의 평안을 얻기 위함은 아니었다.
‘제대로 붙어 보죠.’
그녀는 ‘윤나라’가 아니라 ‘뉴턴좌’다. 상대, 퍼플의 목소리와 함께 결투가 시작됐다.
방송이 끝난 뒤에도 몇 번이고 복기한 전투였다.
‘실수는 없었어.’
공격과 방어는 물론 매 순간마다 최선의 선택을 했다. 그렇기에 매 복기마다 패배 이유는 하나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상대가 나보다 강했을 뿐이지.’
그녀는 뉴턴좌로 활동하면서 목표들을 사냥했다. 그들은 이른바 ‘재능’을 내세우며 거들먹거리던 이들이었다.
그러나 그녀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대부분은 허세였으며 최악은 대리를 내세운 이였다. 그런 놈들을 정복해 나가는 건 연예계 생활하면서 쌓인 스트레스의 해소법으로 탁월했다.
‘퍼플도 이길 수 있을 거야.’
그녀는 천천히 눈을 떴다.
승패는 갈렸지만 그것이 영원한 패배를 의미하는 건 아니었다.
‘마지막 승자가 웃는 거지.’
고작 한 번의 좌절로 무너질 멘탈이면 연예계에 발을 들이지 못한다. 윤나라는 스스로를 다독였다.
‘게다가 이번에는 홈그라운드가 아닌 것도 있었잖아? 원래 어웨이가 페널티를 안고 시작하는 거니까.’
전투의 복기는 끝났지만 그녀의 머릿속에는 당시 상황이 떠나질 않았다.
윤나라는 스마트 링크를 조작했다. 그녀 앞에 메타게이머의 메인페이지가 나타났다.
“이거, 이 정도면 나보다 인기 좋은 거 아냐?”
그녀는 기사의 조회수와 쌓인 댓글을 보고 입술을 샐쭉였다. 뉴턴좌로 활동하면서 쌓은 악명도 나름 명성의 일부라 여겼다.
그녀는 먼저 댓글을 훑고는 혀를 찼다.
“진짜 개극혐이네…….”
그녀도 사람인지라 자신을 언급하는 댓글에 먼저 눈이 갔다. 모두의 비난을 받은 댓글이 고운 아미를 찌푸리게 했다.
그녀는 스위티즈의 팬 중에 이런 인물들이 없기만을 바랐다. 이윽고 그녀는 이클립스와 퍼플의 대결을 다시금 눈에 담았다.
‘내가 흉내 낼 수는 없지만 대응하려면 알아야지.’
그녀는 퍼플의 모습 하나하나를 세심하게 파고들었다. 그리고 새삼 느꼈다.
‘예술이긴 하네.’
그 이름 그대로 ‘완벽’하다.
하지만 그럴수록 그녀는 전의를 불태웠다. 그렇게 시간가는 줄 모르고 영상에 빠져 있던 와중이었다.
“언니?”
“어? 어어?”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그녀는 화들짝 놀라 홀로그램을 치웠다. 조금 전 자신을 찾아왔던 멤버가 그녀를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뭘 그렇게 정신없이 봐?”
“어? 아, 그게 그, 안무 영상.”
다행히 프라이빗 모드로 보고 있었기에 홀로그램이라도 시청 각도가 다르면 내용은 보이지 않았다.
멤버는 다시금 물끄러미 그녀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안무? 흠…… 뭐, 알았어.”
“어어, 근데 왜?”
“우리는 관리 다 받았다고 전해 주러 왔지. 이제 관리사님 가신다고 해서 마지막으로 확인해 달라고 그러시더라고.”
윤나라는 눈을 크게 떴다.
벌써 그렇게 시간이 지났단 말인가.
“아, 그럼 내가 직접 말씀드릴게.”
“알았어.”
멤버는 간단히 대답하고는 문을 닫았다. 이에 그녀가 안도의 한숨을 내쉰 순간이었다.
문이 빼꼼 열리더니 멤버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근데 언니.”
“어?”
“거짓말, 너무 티 나는 거 알지?”
“어……?”
“누가 안무 영상을 소리 끄고 봐?”
“아, 그…….”
말이 궁색해졌다.
신체적인 순발력은 좋지만 이런 쪽의 임기응변은 달랐다.
“우리가 연애 금지라서 그런 건 알겠는…….”
“아, 그런 거 아니야!”
“알았어, 알았어. 잘 자!”
멤버는 음흉한 웃음을 흘리며 문을 닫았다. 남겨진 윤나라는 약간 붉어진 얼굴로 이마를 짚었다.
“아씨 진짜…….”
오늘은 스트레스를 잘 해소하지 못해서일까, 갑자기 단 게 땡겼다. 그녀는 방에 비치된 미니 냉장고를 열었다.
손에 쥔 건 아끼고 아껴둔 간식인 토마토 슬라이스. 그 위에 설탕까지 뿌리면 금상첨화겠지만 차마 아이돌로서는 못 할 짓이었다.
평소의 그녀라면 당연히 참을 수 있었다.
“……오늘은 그냥 먹자!”
하지만 오늘은 그 선을 넘어야 할 때였다. 그녀는 새하얀 설탕이 뿌려진 토마토 슬라이스 하나를 베어 물었다.
“으음……!”
가상현실에서 맛볼 수 있는 단맛과는 결이 달랐다. 한동안 단 것을 끊고 살았던 터라 그 자극이 배가 되었다.
그렇게 순식간에 한 접시를 채운 후.
“아…….”
그녀는 허망한 눈으로 빈 접시를 바라보다 일어섰다. 그리고 방에 비치된 사이클에 올랐다.
책임 없는 쾌락은 없었다.
“해야지… 아이돌인데…….”
그녀는 이를 악물며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조금 전 먹은 열량을 태우려면 전력으로 밟아야 할 터였다.
“이게 다 퍼플 때문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