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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의 신들린 게임방송-77화 (77/491)

77화 - 설산 비룡 토벌 (2)

기사정교회가 관리하는 영역, 성역의 안쪽은 왕국기사단의 영역처럼 멀쩡했다.

하지만 그 내부의 분위기는 전혀 달랐다.

“아아, 사제님들이…….”

“언제까지 이런 삶이 지속되는 건지…….”

“이대로는 우리도…….”

시민들이 수군거렸다.

대성당으로 향하는 도중 들려오는 목소리에는 불안이 가득했다.

타락기사에게 희생당한 사제들을 옮기는 와중이기에 더 그럴 터였다.

-기사단은 좀 빡세긴 해도 사람들이 이렇지는 않았는데

-힘이 있냐 없냐 차이 아니겠음?

-무.력.차.이

-보호막 없으면 바로 망자 될 사람들이 널렸누 ㅎㄷㄷ

-이렇게 보면 또 기사단이 잘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시청자들 역시 그런 느낌을 고스란히 받았다. 그렇게 거리를 벗어나 대성당 건물에 다다르자 통제권이 사라졌다.

“오오! 영웅이시여!”

주름이 자글자글한 사제가 한 걸음에 뛰어나와 넙죽 허리를 숙였다.

-헐ㅋㅋㅋㅋㅋ 바로 숙여버리네

-고위사제 양반 이런 캐릭터 아니지 않나?

-ㄹㅇㅋㅋ 원래 무게 잡으면서 쥔공 위로하는 캐릭터인데

-희생자 없으니까 바로 저자세로 나오누 ㅋㅋㅋㅋ

시청자들은 달라진 고위 사제의 태도에 만족감을 표출했다. 고위사제는 연신 허리를 숙여 감사를 전했다.

“영웅께서 오시지 않았다면 더 많은 피가 흘렀을 것입니다. 감사, 다시 또 감사드립니다.”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그보다 성녀를 뵙고자 하는데.”

“아아, 물론입니다. 성녀님께서도 소식을 듣고 영웅께 감사를 표하고자 하셨습니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주인공의 말에 고위사제는 바로 안내를 자처했다. 이에 그 뒤를 따라 대성당에 진입하려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공기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어깨 위에 있던 마녀골렘이 뒤로 튕겨 나갔다.

“엇?”

-?????

-뭐임?

-헐? 어케 된 거?

-미니 눈나ㅏㅏㅏㅏ!

이경복도 시청자들도 당황했다. 주인공이 다급히 튕겨 나간 마녀 골렘을 수습했다.

골렘의 몸통 위로 기하학적인 룬문자가 그려져 있었다.

“괜찮나? 어떻게 된 거지?”

“무, 무슨 일이십니까!?”

고위사제도 대경해 급히 따라왔다. 이내 그의 얼굴이 돌처럼 굳었다.

“여, 영웅이시여. 송구스럽지만 그것은 대성당에 들어올 수 없습니다.”

“그게 무슨…….”

주인공이 그 연유를 되묻기 전에 마녀 골렘이 일어섰다.

“아니, 괜찮아요. 고위사제의 말대로에요…….”

그녀의 말에 주인공의 시선이 다시금 돌아온다. 손바닥 위에서 조심스럽게 내려온 마녀 골렘이 그를 올려 봤다.

“이 룬은 제 영혼에 새겨진 것이에요.”

“영혼에 룬을?”

“네. 이 룬의 의미는 ‘추방자’를 뜻해요. 이제는 괜찮지 않을까 했는데…….”

마녀는 씁쓸한 목소리로 말끝을 흐렸다. 그녀의 말에 채팅창이 술렁였다.

-헐? 뭐임? 마녀 눈나 추방자임?

-어뜨케 된겨 어뜨케 된겨

-새로운 떡밥인가!

-엘붕이들 얼른 프롬뇌 가동하라구!

-사실 마녀가 흑막인 거 아님?

-눈나가 최종보스라고?

-스포 멈춰!

-갓파고님이 안 잡았으니까 틀린 추리일듯 ㅋㅋㅋㅋ

이경복도 그런 추리에는 동의할 수 없었다.

‘악역들한테서 느껴지는 불쾌감은 없었어. 마녀는 분명 조력자 캐릭터야.’

그렇다면 어떤 연유로 추방된 것일까. 아직은 알 도리가 없었기에 이경복은 컷신에 집중했다.

“부서진 자여, 일부러 숨긴 건 아니에요. 하지만…… 이제는 변명으로밖에 들리지 않겠죠.”

마녀는 적극 항변하려는 듯하다가 체념하며 고개를 숙였다. 주인공은 그런 그녀를 잠시 내려 보다가 조심스럽게 손을 뻗었다.

“나는 내가 본 것만 믿는다.”

숙여졌던 마녀의 얼굴이 그의 손에 다시금 들렸다.

“당신이 말하지 않았나. 이름은 존재의 편린에 불과하다고. 추방자라는 낙인 역시 그렇겠지.”

“그 말씀은……?”

“누군지도 모를 이가 찍은 낙인보다 나는 내가 본 당신의 모습을 믿겠다.”

마녀의 얼굴에 미소가 그려졌다. 그녀는 주인공의 손가락을 굳게 잡으며 손바닥에 얼굴을 묻었다.

“……고마워요.”

다시금 채팅창의 분위기가 일변했다.

-이 타이밍에 염장질이?

-미니 눈나 커여운 거 뭔데!

-않이 ㅋㅋㅋ 이런 커여운 눈나가 흑막이겠냐곸ㅋㅋㅋ

-이게 바로 보호본능?

-1가정 1미니눈나 보급이 시급하다

-아 ㅋㅋ 트수집에 가면 눈나가 셀프 추방하는 거 아님?

-??? : 으윽, 이게 부서진 자? 얼굴만 집중적으로 부서졌나?

-매니저님 팩력배 밴 좀!

시청자들이 아우성치는 사이 마녀는 조심스럽게 주인공의 손에서 물러섰다.

“다녀오세요. 저는…… 여기서 당신을 기다릴게요.”

“……금방 오도록 하지.”

주인공은 이내 돌아섰다. 고위사제는 슬쩍 눈치를 살피다가 다시 앞장섰다.

“오…….”

대성당에 들어서자 이경복은 자기도 모르게 탄사를 내뱉었다. 입구로 들어서자마자 커다란 복도가 눈에 들어왔다.

고딕 양식과 바로크 양식을 참고한 듯 웅장한 내부 인테리어, 그리고 복도의 벽면에는 화려한 벽화가 채워져 있었다.

-감탄참기 lv999

-아 ㅋㅋㅋ 여긴 무적권이지

-괜히 간지하면 프롬이 나오는 게 아니라 이말이야

-이런 게 예술이지

시청자들은 이경복의 감탄에 흡족함을 숨기지 않았다. 고위사제는 복도를 걸으며 고개를 돌렸다.

“이 벽화에는 저희, 기사정교회의 역사가 담겨 있습니다.”

“역사라?”

“예. 또한 인간의 역사이기도 하지요.”

고위사제는 자부심을 내비치면서도 경건한 태도로 벽화를 올려 보았다.

“태초, 인간은 그저 다른 존재들을 위한 먹이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죽음과 공포로 점철된, 삶이되 삶이 아니었지요.”

주인공의 시선도 그를 따라 움직였다. 벽화 속 인간들이 괴물에게 잡혀 먹는 모습이 들어왔다.

“하지만 그 억압의 굴레를 벗어나게 해 준 구세주께서 나타나셨으니, 그는 바로 태고의 기사 ‘엘든 나이츠’였습니다. 그분은 인간들을 위해 괴물과 맞섰고, 인간의 시대를 열어 주셨지요.”

벽화에는 찬란한 금빛으로 물든 기사의 형상이 새겨져 있었다.

-이거 엘든 시리즈 1편 스토리임 ㅋㅋㅋ

-ㄹㅇㅋㅋ 프롬이 이런 전작 뽕을 잘 넣어줌

-하지만 그 속을 까고 보니 엘붕이였자너 ㅋㅋㅋㅋ

-게임에 현실 대입하지 말라구웃!

전작을 플레이 해 본 시청자들 덕분에 채팅창은 웃음으로 가득했다.

“허나 인간의 시대가 열렸음에도 여전히 우리는 유약했습니다.”

고위사제는 고개를 내저으며 다른 벽화를 바라보았다.

“그분의 도움으로 인간들이 번성하기는 했으나 여전히 위협은 도사리고 있었죠. 아무리 구세주라 하더라도 동시에 여러 곳에 존재할 수는 없는 법이었습니다.”

태양처럼 금빛을 발하는 기사 곁에서 기뻐하는 사람들과 그 빛이 닿지 않는 그림자 속에서 죽어 가는 사람들의 대비.

이경복은 벽화의 디테일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그분께서는 숭고한 결단을 내리셨습니다.”

“결단?”

“예. 인간들을 위해, 그분께서는 자신의 소울을 희생하였습니다. ‘불사’의 힘을 가진 그 귀중한 소울을.”

다음 벽화에서 기사는 더 이상 금빛을 발하지 않았다. 그 대신 기사처럼 찬란하지는 않더라도 빛을 발하는 인간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덕분에 엘든나이츠의 영혼을 나누어 받은 이들이 태어났습니다. 비록 그분처럼 강대하지는 않았으나 죽음을 거듭하며 괴물을 몰아내는 ‘인류의 구원자’들이었습니다.”

어느덧 마지막 벽화였다.

금빛을 발하는 기사들이 높다란 왕성 앞에 도열해 있는 모습이었다.

“완연한 인간의 시대가 도래하고 인간들의 왕국 ‘엘든 킹덤’이 세워진 것이지요.”

이경복은 곧바로 눈치챌 수 있었다.

“이게 2편 스토리겠네요?”

-ㅇㅇ 맞음요

-그래서 그런지 엘든 킹덤은 협동 컨텐츠가 많긴 했음

-근데 속은 엘붕이라 트롤들도 많았지 ㅋㅋㅋㅋㅋ

-ㄹㅇㅋㅋ 협동인데 배신맨들 개많았자너

-프롬은 인간을 너무 믿었어……

-그래서 지금 3편에서는 왕국이 망한 거 아님? ㅋㅋㅋㅋ

-아 ㅋㅋ 프롬이 깨달아버린거였누

시청자들은 기다렸다는 듯 전작의 추억을 쏟아냈다. 하지만 그마저도 오래가지 않았다.

“예배당입니다. 성녀님께서는 안에 계실 것입니다. 그럼 저는 이만…….”

고위사제가 넙죽 허리를 숙이며 안내를 마쳤다. 주인공이 안으로 들어서자 은은한 향기가 느껴졌다.

그 이유는 금방 알 수 있었다.

널따란 예배당에는 수많은 향초가 피워져 있었다. 그 가운데 한 여성이 있었다.

순백의 바탕에 금실을 수놓아진 의복, 그 위로 금실보다 더 밝은 황금빛 머릿결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아, 오셨군요. 저는 소피아, 기사정교회의 성녀를 맡고 있습니다.”

청아한 목소리와 함께 그녀가 몸을 돌렸다. 새하얀 피부에 누가 봐도 미녀라고 칭할 정도로 아름다운 여성이었다.

-교회눈나ㅏㅏㅏㅏㅏ

-교회눈나 어서 오고 ㅋㅋㅋ

-교회눈나가 킹쁘긴 해

-기사정교회는 외모로 성녀를 선출하는 게 틀림없다

-갓직히 스토리 비중만 좀 더 있어도 마녀 눈나보다 인기 많았을 텐데

-하지만 미니 눈나가 나선다면?

-ㄹㅇㅋㅋ 이번에는 미니 눈나 나와서 필패임

시청자들은 소피아의 등장에 환호와 찬사를 보냈다. 하지만 이경복은 그럴 수 없었다.

‘이건 뭐지?’

게임 속 캐릭터들에게는 다양한 느낌이 전달된다. 이경복은 육감과 신기가 전달해 준 그 느낌을 토대로 피아를 구분했다.

그런데 성녀는 달랐다.

‘왜 아무것도 안 느껴지지?’

긍정도 부정도 아니었다.

마치 무생물을 대하는 기분이었다.

“아, 이건…… 희생자들을 기리는 중이었습니다. 더 늘어나지 않기를 바랐는데 어느덧 이렇게 가득해져 버렸네요.”

소피아는 예배당을 둘러보고는 깊이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도 그러했죠. 하지만 덕분에 더 큰 희생을 막을 수 있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를 표합니다.”

그녀가 다소곳이 손을 올리며 예를 취했다. 주인공은 담담히 고개만 끄덕였다.

“감사는 이미 많이 받았다. 당신을 찾아온 이유는 따로 있어.”

“이유요?”

“그래.”

주인공의 말과 함께 시야가 잠깐 암전되었다가 밝아졌다.

“왕성 상황을 살피기 위해 성옥을 내어 달라…….”

소피아가 굳은 얼굴로 중얼거렸다. 이경복은 짧게 멘트를 덧붙였다.

“아, 상황을 설명한 모양이네요.”

기사단장 블론도와의 이야기를 전한 게 분명했다. 소피아는 천천히 고개를 내저었다.

“상황은 이해하지만 성옥은 내어 드릴 수 없습니다.”

“기사단과의 대립 때문인가?”

“아뇨, 블론도 단장의 뜻을 의심하는 건 아닙니다. 다른 문제가 있죠.”

“다른 문제……?”

소피아는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켰다.

“성역을 지키는 보호막, 그 힘은 성옥으로부터 나오고 있습니다. 지금 성옥을 내어 드리면…… 성역의 주민들을 보호할 수가 없습니다.”

그녀의 말에 채팅창이 반응했다.

-아! 이거 미니눈나가 말해둔 떡밥이네

-ㅇㅇ 성녀 깜냥으로는 이 정도 보호막 못 만든다고 했음

-성옥 파워로 보호막을 만들어뒀다는 거네 ㅋㅋㅋㅋ

채팅창 반응을 살피던 이경복은 다시금 위화감을 느꼈다.

‘이상하네. 그 정도 기능을 가진 아이템이라면 뭔가 느껴져야 되는데…….’

도움이 되는 아이템은 육감이 잡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성녀에게서는 여전히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성옥이 다른 곳에 있는 건가?’

어쩌면 감지범위 바깥에 위치한 것일지도 몰랐다.

-헐? 그럼 어케함?

-원래는 성옥 내주는 대가로 쥔공이 기사단 영역 점령함.

-아 사람들 데리고 아예 이주를 했던 거네

-근데 이번에는 다를 듯?

-ㄹㅇㅋㅋ 기사단 동맹루트라 백퍼 다르게 간다

-교회랑 기사단 화해루트인가?

시청자들의 의문에 대한 답은 금방 나왔다.

“불가능하다?”

“……아주 불가능한 건 아닙니다.”

“무슨 뜻이지?”

“성역에 보호막을 드리운 이유는 단순히 기사단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보다는 더 큰 이유가 있습니다.”

“더 크다? 다른 위협이 있다는 건가?”

“예. 이곳 뒤편에 설산이 하나 있습니다. 그 꼭대기에는 비룡이 살고 있습니다.”

주인공이 미간을 찌푸렸다.

“비룡이라고?”

소피아는 새파란 보주(寶珠)를 꺼냈다. 푸른 구체 위에 작은 검이 십자가처럼 박혀 있는 형태였다.

‘저게 성옥이라고?’

이경복은 재차 이상함을 느꼈다.

그녀가 꺼낸 성옥에서는 아무것도 감지되지 않았다.

“예. 만약…… 비룡을 토벌해 주신다면 성옥을 내어 드려도 안전하겠지요.”

그 사이 소피아는 말을 이었다.

기사단 대신에 내건 조건은 바로 비룡토벌이었다. 그 사실에 채팅창에 물음표가 가득해졌다.

-ㅔ?

-않이;; 이게 이렇게 되네

-설산비룡 원래 선택형 보스인디?

-이번 전개에서는 필수 보스로 바뀌어 버렸누

-원령골렘은 선택으로 바꾸더니 설산비룡은 필수로 만드네 ㅋㅋ

-진짜 난이도 무쳤네 ㅋㅋㅋ

시청자들은 뒤바뀐 전개에 놀라움을 숨기지 않았다. 이경복은 그 반응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채팅창은 비룡만 언급하네. 그럼 성옥이 맞긴 한 건가?’

그 사이 주인공은 몸을 돌렸다.

“일이 끝나고 다시 오겠다.”

“네, 기다리겠습니다. 그대의 전투에 엘든나이츠의 가호가 함께하기를.”

소피아가 예배당을 떠나자 통제권이 돌아왔다.

컷신의 끝이었다.

이대로 대성당을 나가면 되겠지만.

‘……뭔가 좀 꺼림칙하단 말이지.’

이경복은 쉽사리 발을 떼지 못했다. 소피아와의 대화에서 가슴이 턱턱 막히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느낌을 지나쳐서 좋은 일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방송 중에 점을 쳐 볼 수도 없는 노릇이고.’

어떻게 할까 고민하는 와중이었다. 한 물건이 그의 눈을 사로잡았다.

‘이거…….’

예배당에 가득한 가느다란 향초가 담긴 통이었다. 이경복이 눈을 빛냈다.

‘산통점을 볼 수 있겠는데?’

산통점(算筒占).

주로 맹인들이 사용하는 점법 중에 하나로 산통에 담긴 산목을 뽑아 적혀 있는 눈금으로 점을 치는 방법이었다. 소위 ‘산통을 깬다’는 표현이 이 산통점에서 나왔다.

이경복은 향초를 서너 개 뽑았다. 향초를 산목으로 삼고, 눈금 대신 향초 표면의 결을 가늠했다.

‘으흠……?’

소피아의 제안대로 비룡을 처리하는 것에 대한 점괘.

그 결과는 ‘소흉(小凶)’이었다. 하지만 그것 하나만이 아니었다.

‘양화구복(禳禍求福)인가.’

화를 물리치고 복을 구한다는 결과가 덧붙여졌다. 그렇게 구한 복은 ‘대길(大吉)’이었다.

점괘 확인을 마친 이경복은 향초 하나를 뽑아 불을 붙였다.

-???

-갑자기 향초는 왜 붙임?

-무냐구!

-아 ㅋㅋ 갓플 몰입하는데 방해하지 말라굿!

시청자들은 그 행동에 의문을 표했다. 이경복은 가볍게 웃으며 대답했다.

“성옥을 위해 희생해 준 비룡의 몫입니다.”

-나왔다! 살인미소!

-엌ㅋㅋ 이번에는 살룡미소임ㅋㅋㅋ

-아 ㅋㅋ 하긴 그것도 희생은 희생이지

-희생(강제)

-인간이 미아내!

-유다희 : 다른 사람 소개시켜주겠다고요? 사람이 아니라 비룡이요?

-아 ㅋㅋ 유다희 소개팅 주선자로 포지션 바꿨눜ㅋㅋㅋ

이경복은 자연스럽게 애드립으로 상황을 넘겼다. 시청자들 중 누구도 그가 점을 쳤으리라 생각하는 이는 없었다.

“그럼 가 볼까요.”

* * *

이경복은 마녀 골렘과 함께 설산에 도착했다.

“이야, 진짜 분위기 하나는 확실하네요.”

하얗게 내려앉은 만년설과 간헐적인 계곡 풍으로 눈보라가 휘몰아친다. 추위 때문인지 초목이 거의 자라지 않는 돌산의 모습이 시야를 가득 메웠다.

“진짜 추위였으면 싸우기도 전에 얼어 죽겠는데요.”

이경복은 짐짓 진저리를 치며 너스레를 떨었다.

-진짜 추위 느껴지면 아무도 여기 공략 안함 ㅋㅋㅋ

-ㄹㅇㅋㅋ 망자들도 롱패딩 입고 다니지

-망자 롱패딩 뭐냐곸ㅋㅋㅋㅋ

-엘든구스 나오나요?

다행히 실제로 느껴지는 추위는 약간 선선한 날씨 정도였다.

“그나저나 이거 꼭대기까지 올라가려면 시간 좀 잡아먹을 것 같은데…….”

이경복은 고개를 젖혀 꼭대기를 확인했다. 까마득한 높이와 가파른 경사 때문에 등산길은 산을 빙글빙글 감싸는 형태였다.

-ㅇㅇ 적들이 길목 지키고 있어서 피하기도 빡셈

-게다가 까딱하면 돌풍에 밀려서 바로 낙사함 ㅋㅋㅋㅋ

-설산 둘레길이 좀 길긴 해

-둘레길 ㅇㅈㄹㅋㅋㅋㅋㅋ

-괜히 설산비룡이 선택형 보스가 아니라굿!

-근데 지금은 필수잖슴 ㅋㅋㅋ

-방송이 길어진다? 오히려 좋아!

시청자들도 그 의견에 동의했다. 이경복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음…… 이건 지름길 좀 타야겠네요.”

그 말에 채팅창에 물음표가 빠르게 솟구쳤다. 설산에 무슨 지름길이 있단 말인가.

이경복은 설명 대신 답을 보여 주었다.

“1인칭으로 보시면 좀 어지러울 수 있어요!”

그가 손을 뻗자 순식간에 몸이 솟아올랐다. 시청자들은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

-뭐임? 지금 뭐한 거임?

-여기 버그있음?

-엌ㅋㅋㅋ 이걸 주술로 올라간다고?

-무친 ㅋㅋㅋ 용줄기로 돌부리 잡아서 올라가누

-저 작은 게 잡힌다고?

-이거 조금만 조준 빗나가도 바로 낙사일텐데?

-절벽 쪽은 돌풍 겁나 자주 부는데 컨트롤이 된다고?

절벽이라고 해도 평평하지는 않다. 이경복은 군데군데 튀어나온 돌부리를 주술로 휘감아 당기며 올라갔다.

거센 돌풍에 몸이 거칠게 흔들리며 떨어질 듯 말 듯 아찔한 장면이 튀어나왔다.

시청자들은 그 아슬아슬한 모습에 놀랐지만 이내 깨달았다.

그들이 보는 방송이 누구의 방송이던가.

“이거, 시원하고 좋네요!”

쾌활하게 웃으며 멘트를 치는 그는 바로 ‘퍼펙트플레이’다.

-누가 보면 휴양 컨텐츠인줄ㅋㅋㅋㅋ

-걱정은 안 되고 왠지 킹받네 ㅋㅋㅋ

-설산을 이렇게 올라가는 건 당신밖에 없어!

-이 정도면 정상에서 막걸리 마시고 내려와도 될 듯

-엘든소울에 막걸리가 어딨냐곸ㅋㅋ

시청자들은 안심했다.

이경복에게 실수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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