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화 - 제일검, 그 다음 (1)
다시 찾아온 방송시간.
이경복은 가볍게 손을 들어 올렸다.
“트하!”
어느덧 이제 익숙해진 인사는 여유가 넘쳤다.
-퍼하!
-(퍼하콘)(퍼하콘)(퍼하콘)
-지각없어서 너무 좋고 ㅋㅋㅋ
-방종이 칼 같다면 시작도 칼 같아야 하는 법!
-역시 엘든제일검이다 이 말이야 ㅋㅋㅋ
-최고퍼플아, 고맙다!
시청자들도 밝게 화답했다.
이어 기다렸다는 듯 후원이 쏟아졌다.
[‘월클인가요?’님이 ‘1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혀엉! 아나토미가 퍼튜브에 쓴 댓글 봤냐구! 이제 월클이냐구!]
[‘매드맨채용하신?’님이 ‘5,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퍼튜브에 제작지원 매드맨 써 있던데 어떻게 된 거임?]
[‘엘든무쌍인가요?’님이 ‘5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무쌍이 아니면 쌍꺼풀 있다는 뜻? 엌ㅋㅋㅋㅋㅋㅋ]
방송의 특성 상 후원 기회는 많지 않았기에 주로 게임 시작 전에 후원을 하는 게 불문율이 되었다.
-아나토미?
-퍼튜브 안 보고 왔냐구! 지금 머하는 거냐구!
-뭐지? 한국인이 아니신가?
-매드맨 블랙기업 들감?
-요즘 매드거너 잘 안 올라오긴 하던디 ㅋㅋㅋ
-매니저님 무쌍 드립친 애 밴 좀
-아 ㅋㅋ 그래도 5만원이면 봐줘야지 ㅋㅋ
시청자들도 즉각 후원에 반응했다. 이경복은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에이, 무슨 월클입니까. 매드맨 님은 채용이 아니라 프리랜서로 가끔 도와주시고 계세요. 적들이 약하면 무쌍이 되겠죠?”
그렇게 시작된 후원과 감사 시간. 어차피 시청자들이 모일 때까지는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했기에 이경복은 흔쾌히 반응해 주었다.
그렇게 간단히 대화를 이어나가는 중이었다.
[‘아나토미근황’님이 ‘5,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아나토미 퍼튜브에 댓글 쓴 뒤로 지금 17시간 연속 제작 방송 중 ㅋㅋㅋ]
새로이 들어온 후원에 이경복은 눈을 크게 떴다.
“17시간이나요? 와, 장비 종류 전부 제작하시나 보네.”
-?
-ㅔ?
-시방 이게 뭔 소리여ㅋㅋㅋㅋ
-전부 제작을 어케 하냐구 ㅋㅋ
-유일등급은커녕 전설도 아직 하나도 못 만듦ㅋㅋㅋ
이경복의 반응에 채팅창의 주의는 곧바로 기울어졌다. 그는 도통 이해가 안 간다는 얼굴로 물었다.
“진짜요? 이상하네…… 저처럼 기사단 동맹 루트로 하시는 것도 아닐 텐데. 그럼 묘지기랑 원령골렘만 잡으면 설산 열리잖아요?”
제작에만 열중할 거라면 정교회 루트로 가는 게 더 빠를 터였다.
“각성 묘지기나 원령골렘도 아니고, 스토리 컷신 스킵하면 2시간에 한 번은 할 수 있으실 텐데.”
이경복은 최소 8번은 도전했을 거라 생각했다. 더욱이 자신처럼 운 수치가 최악인 배경을 선택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중에 전설도 하나 안 뜨다니 의문이 들 수밖에.
-퍼기만 ON!
-아 ㅋㅋ 시작부터 기만들어가쥬?
-오늘은 좀 배급이 빠르네
-배급은 또 뭔데 ㅅㅂ ㅋㅋㅋ
-않이;;; 아나토미는 님처럼 초인이 아니라구욧!
-ㄹㅇㅋㅋ 소울파밍이랑 장비 맞추면 대충 5시간은 걸릴 듯
-ㅇㅇ 이제 3번째 도전임
시청자들은 즉각 정보를 물어다왔다. 이경복은 채팅창을 읽고 살짝 미간을 좁혔다.
“5시간이요? 아니, 기만이 아니라 파밍 시간까지 고려해서 2시간 잡은 건데.”
-???????
-뭐지? 시간의 단위가 다른가?
-갓플은 블랙홀 같은 남자라 시간이 느리게 가는 것
-ㄹㅇㅋㅋ 방송 보다보면 빠져 들자너
-보는 우리는 시간이 순삭인데요?
-아 ㅋㅋ 시간의 상대성 모르냐고(모른다)
-간신들 쳐내!
[‘대신질문해드림’님이 ‘1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님은 1트 제작에 몇 시간 예상하심?]
이경복은 후원 메시지에 눈을 굴렸다. 계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음, 이미 한 번 깼으니까 공략법도 알고 있잖아요? 스토리 스킵하면 아마 1시간도 안 걸릴 것 같은데.”
-(퍼도장콘)(퍼도장콘)
-1시간 ㅅㅂㅋㅋㅋㅋㅋㅋ
-시작부터 설산비룡 컷까지 1시간이라고?
-아 ㅋㅋ 근데 이거 될 것 같아서 킹받네
-ㄹㅇㅋㅋ 갓플이면 노업글, 노파밍으로 스피드런 쌉가능일 듯
-1시간이 뭐임 ㅋㅋㅋ 잡몹 무시하고 보스컷만 하면 30분 충분할 듯
-ㄹㅇㅋㅋ 정교회 루트로 갔으면 30분이면 씹어먹지.
-30분 만에 유일등급 장비가 나오는 스머가 있다?
-무친 ㅋㅋㅋㅋ 배달음식 시켜도 30분 이상은 걸리겠다 ㅋㅋㅋ
채팅창은 황당해하면서도 웃음으로 가득해졌다. 다른 스트리머라면 허황된 말일지 몰라도 이경복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자, 그럼 잡담은 이정도로 하고 후원은 마치겠습니다. 더 방송 길어지면 편집자 친구가 힘들어져요.”
이경복은 슬쩍 시청자 숫자를 확인했다. 어느덧 1만이 넘었으니 슬슬 게임을 시작할 타이밍이었다.
-편집자님 업로드 완전 칼이던데 ㅋㅋㅋㅋ
-엘든제일검 성격 보면 킹쩔수 없음 ㅋㅋㅋ
-이렇게 걱정해주는 척 하면서 사실 뒤로는……
-블랙기업특) 사장은 이미지관리 잘함 ㅋㅋㅋ
-편집자님 진실을 밝히시려면 당근을 흔드세요!
시청자들은 먹이를 발견한 것처럼 곧바로 장난을 쳤다.
“아, 이렇게 프레임을 또 씌우시네. 오늘 고생했다고 삼계탕까지 먹였다니까요?”
-오 ㅋㅋㅋ 삼계탕
-닭 한 마리 맞나? 반계탕 아녀?
-레토르트 준 거 아님? ㅋㅋㅋ
-삼계탕에 닭이 들어갔다고 생각하는 건 선입견이 아닐까?
-ㅁㅊ 그럼 뭐가 들어가냐구 ㅋㅋㅋㅋ
-트수들ㅋㅋㅋ 이 악물고 어떻게든 몰아가려는 거 보소
-뇌절 그마내!
이경복은 실소를 흘리며 곧바로 그들의 주의를 돌렸다.
“자자, 오늘은 엘든소울 엔딩까지 볼 생각입니다. 그럼 바로 시작할게요!”
-오 ㅋㅋㅋ 클리어 각 나왔누
-와씨 ㅋㅋ 바로 치킨 주문간다!
-이럴 줄 알고 내가 저녁을 안 먹었지!
-아 ㅋㅋ 야식 다 뒤졌다 ㅋㅋㅋ
-밥보다 방송 챙기는 진성트수들 뭐냐구 ㅋㅋㅋㅋ
-아아, 이것이 바로 퍼청자라는 것이다
이경복의 클리어 선언에 시청자들은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이윽고 배경이 뒤바뀌며 엘든 소울이 실행되었다.
“어제 종료한 곳 그대로네요.”
이경복은 자신의 위치를 확인했다. 이전 방송에서 마친 왕성 입구에 그대로 서 있었다.
그의 앞에는 미로처럼 변해 버린 왕실정원이 보였다.
“이건 뭐, 사실상 벽이라고 봐도 되겠는데요.”
이경복은 살짝 고개를 젖혀 위를 바라보았다. 높다란 내성벽에 햇빛이 별로 들지 않아서일까, 정원의 식물은 벽처럼 수직으로 높이 솟았다.
-두께로 보나 높이로 보나 벽이 맏찌 ㅋㅋㅋㅋ
-여기가 의외로 까다로운 구역임
-아 ㅋㅋ 첨할 때는 진짜 좀 빡쳤는데
-스포 ㄴㄴ요
-스포면 갓파고님이 잡아주신다구!
-난 마녀 눈나랑 첨 동행하는 장소라서 좋았는디 ㅋㅋㅋ
-갓직히 눈나를 위해 만든 장소기도 함 ㅋㅋ
시청자들 반응에 이경복은 고개를 기울였다.
‘문제될 건 없어 보이는데.’
그의 신기와 육감이 주변 정보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위협이라고는 느껴지지 않았다.
‘미로 같은 구조라서? 그래도 그렇게 복잡하지는 않은데.’
눈앞에 보이는 건 거대한 벽과 통로뿐이지만 이경복은 미로의 구조를 전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수집된 정보가 마치 조감도처럼 그의 머릿속에 지도를 그려준 덕이었다.
“일단 빠져나가 볼게요.”
이경복은 거침없이 걸음을 내디뎠다. 갈림길을 앞에 두고도 단 1초도 고민하지 않았다. 길을 알고 있는데 고민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시청자들로서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어째 한 번도 멈추질 않누 ㅋㅋㅋ
-행동력 뭔데!
-뭐임? 공략이라도 보고 옴?
-공략ㅋㅋㅋㅋㅋ 엘알못 티나쥬?
-ㄹㅇㅋㅋ 미로는 랜덤 구성인디
-뭐 믿고 저렇게 막 감?
-막 가는 거 치고는 길이 완전 프리패스자너 ㅋㅋㅋ
-한 번을 안 막히네? 확률적으로 이게 말이 되나?
-1해분의 1은… 말이…… 돼서 떴고?
-또 남들이 못 보는 뭔가가 있는 거 아님?
시청자들은 제각기 감탄과 추측을 내세웠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이경복은 덜컥 멈출 수밖에 없었다.
“어?”
사라락하며 잎사귀들이 흔들리더니 갑자기 양옆에서 덩굴이 거미줄처럼 얽혔다. 덕분에 순식간에 눈앞의 통로가 벽으로 변해 버렸다.
이경복은 황당함에 눈을 크게 떴다.
-엌ㅋㅋㅋㅋㅋㅋㅋㅋ
-어이가 없다 그쟈?
-ㄹㅇㅋㅋ 모르고 당하면 저렇게 될 수밖에 없음
-놀란 갓플의 표정, 이건 무척 귀하네요.
-짜잔! 사실 이 정원은 살아있었답니다!
-깜짝 릭트쇼에 당해버렸쥬? ㅋㅋㅋㅋ
-이거 계속 변해서 잘못 걸리면 ㄹㅇ 빡침 ㅋㅋㅋㅋ
시청자들은 황당해하는 이경복을 보며 즐거워하며 설명했다. 그러나 이경복에게는 사실 따로 설명이 필요치 않았다.
‘여기뿐만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구조가 바뀌어 버리네.’
그의 머릿속에 그려진 지도가 실시간으로 갱신되고 있던 덕이었다. 당연하게도 계속 헤매는 게 해결책은 아니었다.
“정원이 움직이고 있어요. 주술의 기운이 느껴지는데…… 아무래도 토템이 설치되어 있는 것 같아요.”
어깨 위에 앉아 있던 알리샤가 속삭였다. 이경복이 돌아보자 그녀는 양손을 머리에 올린 채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며 집중했다.
“으음…… 그 토템을 찾아서 파괴하면 활동을 멈출 수 있을 거예요. 가까워지면 제가 알려드릴게요.”
-캬…… 미니미 버전은 더 커엽누
-ㄹㅇㅋㅋ 실체화 버전도 괜찮긴 한데 이게 더 커엽긴 해
-앙증맞다는 게 이런 느낌이구나
-여기서부터는 눈나 말을 잘 들으면 된다 이 말이야.
정석은 알리샤의 가이드에 의존해 토템을 파괴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경복은 다른 시도를 해 보기로 했다.
‘어차피 식물 아닌가?’
그는 검을 빼 들며 속으로 주술을 읊자 검신을 따라 푸른 화염이 치솟았다.
그는 곧바로 벽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화르륵하는 소리와 함께 벽이 불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이후는 예상과 달랐다.
-아ㅋㅋ 이거 안 하면 섭섭하지
-ㄹㅇㅋㅋ 무적권 하게 됨
-갓직히 헤매는 거 귀찮아서 시도는 한다
-문제는 프롬도 이미 파악했다는 거 ㅋㅋㅋㅋ
화염에 휩싸인 벽 위로 새로운 덩굴이 뻗어 왔다. 순식간에 불길을 덮어 버리자 잠깐이나마 뚫렸던 공간은 바로 수복되어 버렸다.
“토템의 주술이 너무 강해요. 토템을 찾아서 파괴하는 편이 더 빠를 거예요.”
알리샤의 대사에 시청자들도 즉각 동의했다.
-알리샤 대사 = 프롬 속마음
-어차피 헛수고다 이 말이야
-마수리 마법으로 전체를 한 번에 태우려고 했는데도 안 됐다구!
-알리샤랑 데이트나 하라는 프롬의 의지!
-이게 뭔 데이트냐고 ㅋㅋㅋㅋ
-데이트를… 해 봤어야 알지……
-그만 때려! 울어버린다?!
-근데 이거 진짜 수복 속도가 너무 빨라서 불가능함 ㅋㅋ
시청자 반응에 이경복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빠르긴 하네요.”
그러나 그가 동의한 건 거기까지였다.
“그래도 이거 뚫고 갈 수 있겠는데요?”
채팅창에는 물음표가 번졌다. 이경복은 대답 대신 검을 다시 잡았다.
푸른 화염이 궤적을 그리며 벽을 파고들었다. 다시금 벌어진 틈과 그 사이를 메우려는 넝쿨들.
이전과 같은 상황이었지만 이경복의 대응은 달랐다.
‘엮이지만 않으면 되는 거니까.’
그의 몸에서 치솟은 화염줄기는 순식간에 서로 연결되려는 덩굴들을 덮쳤다.
-?????????
-헐?
-무친!
-또 또 눈 돌아간다!
-눈! 저 눈!
-저걸 맞춰서 끊어 버린다고?
이경복은 화염줄기를 컨트롤해 덩굴과 덩굴을 태웠다. 서로 얽히지 못하니 수복도 되지 않았다. 이경복은 그가 만들어 낸 길로 벽을 통과했다.
“되죠?”
이윽고 그의 입에서 나온 짧은 물음. 그러나 채팅창의 반응은 짧지 않았다.
-ㅔ?
-이게 된다고?!
-와씨 ㅋㅋㅋㅋ 저걸 핀포인트로 맞추네
-정보) 갓플은 거그에서 실제로 수류탄 핀을 쏴 맞췄다.
-않이 ㅋㅋㅋ 그거랑 이거랑 같냐구 ㅋㅋㅋ
-이거 시스템 상으로 막힌 걸 텐데?
-ㅇㅇ 맞음 저 덩굴은 무적권 서로 연결되게 되어 있음
-진짜 ㅋㅋㅋ 이거 영상도 있는데 그거 보면 불 같은 건 알아서 피함
시청자들은 충격을 감출 수 없었다. 시스템 상으로 불가능한 일이 벌어지지 않았나.
-그럼 버그네 ㅅㅂ
-시스템 버그가 아니라 갓플 존재 자체가 버그임
-ㄹㅇㅋㅋ 시스템으로 막아둔 걸 저렇게 요격해 버렸자너
-이러면 시스템도 못 막지 ㅋㅋ
-이게 바로 ‘퍼펙트 버그’입니다만?
-퍼펙트 버그 ㅇㅈㄹ ㅋㅋㅋㅋ
-버그마저도 퍼펙트 해버렸다
-??? : 이 정도로 해두면 되겠죠?
-??? : ㅇㅇ 사람이면 이거 못 뚫어
-하지만 사람이 아니었고 ㅋㅋㅋ
-프롬 개발진 오열ㅋㅋㅋㅋ
시청자들이 흡족해하는 사이 이경복은 유유히 벽을 뚫었다. 한 번 해내고 나니 다음은 더 쉬웠기에 돌파 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아, 나왔네요.”
그렇게 결국 정원을 빠져나오자 어깨 위에서 뭔가가 꼼지락 대는 게 느껴졌다.
돌아보니 알리샤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주저앉아 있었다.
“제가…… 도움이 되지 못했군요.”
이런 상황은 예상치 못했던 터라 이경복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
-엌ㅋㅋ 대사가 있었누
-이거 ㅋㅋㅋ 토템 안 뿌시고 나오면 하는 대사일 듯
-하긴 프롬도 자기 게임 고인물들 생각하면 대비는 해뒀겠지 ㅋㅋㅋㅋ
-ㄹㅇㅋㅋ 어떻게든 틈 찾아내는 게 썩은물 망자들이자너
-역시 디테일의 프롬이다 이 말이야 ㅋㅋㅋㅋ
-근데 갓플은 1회차잖슴!
-아 ㅋㅋ 아무튼 고인물이라니깐!
-미니 눈나 시무룩한 거 어쩔 거냐굿!
다행히 그것도 잠시였다.
알리샤는 양 주먹을 굳게 쥐며 일어섰다.
“그래도 다른 곳에서는 제가 도움이 될 거예요. 부서진 자여, 나아가죠!”
이경복은 실소를 흘리며 시선을 돌렸다. 웅장한 왕성과 그에 어울리듯 거대한 문.
그는 천천히 문을 밀었다.
오래도록 열리지 않았던 것일까. 왕성의 문은 신음을 흘리듯 큰 소리를 내며 밀려났다.
“오……”
열린 틈 사이로 내부를 확인한 이경복은 작게 탄사를 내뱉었다.
그의 앞에 나타난 건 널따란 회랑.
“거울이네요?”
-여기서 안 놀라는 사람이 없음 ㅋㅋㅋ
-분위기가 먹어주자너
-프롬이 참 이런 걸 잘 해
특이하게도 회랑의 양옆 벽은 모두 거울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경복은 두리번거리며 거울 속을 바라보았다.
마주 본 거울 때문에 마치 무한한 공간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어 한 걸음 더 내디딘 순간 통제권이 사라졌다. 왕성진입과 더불어 컷신이 시작된 것이다.
“여기는?”
주인공의 반응도 이경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는 거울의 존재에 의문을 감추지 않았다.
“왕성에 발을 디디는 자, 스스로를 되돌아보라. 결정자께서 내리신 방침이에요.”
“확실히 안 볼 수가 없겠군.”
주인공은 거울 속 자신을 바라보았다. 무한히 반사되는 거울 속에는 주인공과 알리샤 또한 무수히 존재했다.
하지만 바로 그때.
“……뭐지?”
끝없이 이어지는 거울 속 어느 한 부분에 두 사람 외에 누군가 있었다.
하지만 거리가 멀어 자세한 정체는 확인할 수 없었다.
-저거 뭐임?
-갑자기 분위기 호러
-곰보 겜으로 장르 전환 뭔데!
-엘든 소울이 원래는 좀 무서운 게임이긴 하지 ㅋㅋㅋㅋ
-엘붕이한테는 무서운데 갓플은 엘든무쌍을 찍어버려서 그만……
-드디어 이 타이밍이 와버렸고!
시청자들의 반응은 미경험자와 경험자로 극명하게 나누어졌다.
컷신 속 두 사람은 전자였다.
“이게 대체……?”
“잠시, 잠시만요. 제게 시간을 주세요.”
알리샤는 주인공의 어깨 위에서 폴짝 뛰어내려 거울에 몸을 붙였다. 그녀는 눈을 감은 채 머리를 벽에 붙이고 양손을 펼쳤다.
“거울, 거울 안에 영혼이 느껴져요.”
“영혼이라니?”
“아주 미약하지만…… 느껴져요. 아무래도 거울 속을 헤매는 것 같아요. 하지만 저라면, 그들을 인도할 수 있어요.”
알리샤는 서서히 눈을 뜨며 주인공을 돌아봤다.
“저희처럼 결정자를 만나러 왔다가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요? 어쩌면 도움이 될지도 몰라요.”
“도움이라……”
“어떻게 할까요, 부서진 자여? 저는 당신의 뜻을 따르겠어요.”
알리샤의 물음과 함께 컷신이 끝났다. 통제권을 되찾은 이경복 앞에 메시지가 나타났다.
[‘성령’(다른 플레이어)을 초대하시겠습니까?]
[최대 10명까지 초대할 수 있습니다.]
이미 친구들에게 귀띔을 받았던 터라 놀라지는 않았다.
“아, 이제부터 협력플레이 구간인가 보네요.”
-ㅇㅇ 맞음요
-여기서부터 난이도 진짜 개빡세짐 ㅋㅋ
-하지만 갓플이라면?
-아 ㅋㅋㅋ 솔플 가야지
-ㄴㄴ 솔플하면 안됨. 아무튼 안됨!
-ㄹㅇㅋㅋ 그럼 방송 바로 나락행
-무적권 코옵해!
-이클립스 님이나 지놈 님 부른 거 맞죠? 그쵸?
-제발 코옵해주세유ㅠㅠㅠ
-아씨 스포라서 말을 못하겠누
-솔플하면 진짜 후회함
채팅창이 격렬하게 반응했다. 배드 엔딩과 연관된 만큼 솔로 플레이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거셌다.
‘이런 분위기면 배드 엔딩 안다는 건 굳이 얘기 안 해도 되겠는데.’
이경복은 생긋 웃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알겠습니다. 솔플은 안 하고 대신 시참으로 가죠.”
그 한 마디에 일순간 채팅창이 멈춘 것처럼 보였다. 이경복은 가볍게 손을 펴며 말을 이었다.
“선착순 10분만 모시겠습니다. 음, 준비시간은…… 1분, 1분 뒤에 확인 누를게요.”
[00:60:00]
그가 말을 맺자 화면 좌상단에 타이머가 나타났다. 모니터링하던 매니저, 박주호가 띄운 것이었다.
타이머가 돌아가기 시작하자.
-이걸 시참으로 한다고?
-즉석 시참 뭔데!
-5분! 제발 5분만!
-아씨 ㅋㅋ 내 캡슐 구형이라 켜는 데만 1분 걸리는데
-ㅅㅂ 치킨 아직 안 왔는데! 그래도 간다!
-이거 낄 수 있으면 레전드 ㅋㅋㅋ
-아 ㅋㅋ 다 뒤졌다! (내가)
-갓플 옆에서 붕쯔붕쯔하기 vs 야식 먹으면서 방송보기
-갓플이랑 코옵이면 쪽팔려도 할 만 하지 않나?
-ㄹㅇㅋㅋ 이거 전자가 좀 센데?
-의외로 황밸 ㅋㅋㅋㅋㅋㅋ
-ㅅㅂ 후자는 아무 때나 할 수 있자너
-제로백 버스 승차권 단 10장!
-맞네! 이건 무적권 닥전 이지 ㅋㅋㅋ 어차피 갓플이 캐리할 텐데
-누가 될지 몰라도 개부럽누 ㅋㅋ
채팅창은 열광과 흥분으로 시끄러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