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화 - 제일검, 그 다음 (3)
전례가 없는 최종 보스전.
그러나 그것은 바로 시작되지 않았다. 최종 보스전에 앞서 시작된 컷신 때문이었다.
“여기가……”
“결정자께서 거주하시는 알현실이에요.”
거대한 문이 열리며 주인공이 들어섰다. 기사단 본영에 있는 연무장보다도 넓은 공간이 시야에 들어왔다.
알현실이라고 하지만 내부가 휘황찬란하지는 않았다. 번쩍이는 장식품이라고는 하나도 없었고 바닥은 은빛 금속으로 되어 있어 오히려 황량하고 차가운 느낌이 강했다.
중앙에 놓인 붉은 카페트와 그 끝에 놓인 철의 왕좌가 아니었다면 알현실이라고 생각하지도 못할 터였다.
“과연 그렇게 넓은 것도 아니었나.”
주인공은 왕좌를 바라보며 말했다. 왕좌 뒤, 벽의 절반을 차지하는 창으로 비치는 햇살 때문에 생긴 그림자.
그러나 그 크기는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와, 저게 에이든이에요?”
이경복은 놀라움을 숨기지 않았다. 시청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와씨…… 뭐 저렇게 크누 ㅎㄷㄷ
-헐? 에이든이 거인이었음?
-ㅁㅊㄷㅁㅊㅇ
-최종보스는 역시 커야 제맛이지!
-비룡보다 큰 게 말이 되냐구웃!
-아 ㅋㅋ 알고 보니 겨울잠 자는 거네
-겨울잠 ㅇㅈㄹ ㅋㅋㅋㅋ
왕좌 위에는 한 거인이 갑주를 걸친 채 앉아 있었다. 하지만 그는 두 사람이 들어왔음에도 미동도 하지 않았다.
“결정자시여, 저예요. 당신의 딸 알리샤가 왔어요.”
주인공이 나아가자 알리샤가 아련한 목소리로 말했다. 크게 소리치지 않았음에도 그 음성은 알현실을 가득 메우는 것만 같았다.
“오……”
이경복은 다시금 작게 탄사를 내뱉었다. 에이든의 갑주 내부에서부터 황금빛이 서서히 물들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에이든이 깨어났다.
“……알리샤.”
중후한 음성이 청각을 메웠다.
그 진동에 반응하듯 가려진 투구 사이로 황금빛 오러가 넘실거렸다.
-캬 ㅋㅋ 간지 작살나네
-위엄보소 ㅋㅋㅋㅋㅋ
-프롬이 기괴한 것도 잘하지만 이런 간지나는 것도 잘한단 말이지
-난 저 약간 해진 망토가 좋드라 ㅋㅋㅋ
-ㄹㅇㅋㅋ 분위기 있자너
-망국의 왕은 언제나 옳다
시청자들은 흡족해했지만 컷신 속 분위기는 심각했다.
알리샤는 주인공의 어깨에서 폴짝 뛰어내려 에이든에게 달려갔다.
“대체 무슨 일이 있으셨던 건가요? 괜찮으신……”
“그만.”
에이든의 말에 알리샤는 우뚝 멈추어 섰다.
“추방자의 룬이 희미하도다. 그만큼 오랜 세월이 지난 것인가……”
-뭐임?
-자기 딸 추방시켰다고?
-뭐래 ㅋㅋㅋ 이미 전에 나온 설명이잖슴
-ㄹㅇㅋㅋ 차기 결정자 될까봐 쫓아냈다니깐!
-퍼집중 하라굿!
-계속 레전드만 나오니까 까먹을 수도 있지!
에이든의 말에 알리샤는 힘겹게 목소리를 냈다.
“그렇습니다. 결정자시여, 인간들이 고통 받고 있어요. 침묵을 깨고 나서야 할 때예요!”
“인간들이 고통 받고 있다라……”
에이든이 어깨를 들썩였다.
이윽고 귀가 먹먹할 정도의 광소가 터져 나왔다. 주인공과 알리샤는 서둘러 귀를 틀어막았다.
“옳지 않도다. 나의 침묵이 바로 인간을 위한 것이노니.”
“대체 무슨……? 아!”
알리샤는 말을 더 잇지 못했다. 에이든이 손을 펼치자 반투명한 구체가 그녀를 가두었다.
“알리샤!”
주인공이 놀라 다가갔지만 알리샤를 가둔 구체는 곧바로 에이든의 손으로 돌아왔다.
-과보호 부모 뭔데!
-에이든 : 너 통금!
-3글자만으로 바로 격떨어지누 ㅋㅋㅋㅋ
-얼른 킹은영 선생님 불러!
-ㅁㅊ 여기서 그 쌤이 왜 나오냐고 ㅋㅋㅋㅋ
-하여간 드립 욕심 그득한 거 보소 ㅋㅋㅋ
-우리 눈나 괴롭히지 마라!
놀란 알리샤가 무어라 말했지만 소리는 새어 나오지 않았다.
“너, 부서진 자여. 엘든 소울을 찾아온 것이던가.”
에이든의 시선은 이내 주인공에게 향했다. 주인공은 굳은 표정으로 검을 잡았다.
“순순히 알려 줄 것 같지는 않군.”
“너는 물론, 어느 누구에게도.”
느릿하게 끊어지는 말투.
그와 함께 이경복은 통제권이 돌아오는 걸 느꼈다.
“허락하지 않는다.”
마지막 한 마디와 함께 컷신이 끝났다. 동시에 소환된 10인의 성령들.
“이게 대체 뭔……!”
“이런 건 계획에 없었는데?”
어리둥절해하는 성령들의 모습에 시청자들은 웃음을 터트렸다.
-어서와! 에이든이랑 팀업은 처음이지?
-무친ㅋㅋㅋ 직접 보니까 더 어질어질하누
-사실상 팀업은 아니라 3파전임 ㅋㅋㅋ
-성령 vs 에이든 vs 퍼플 구도 뭔데 ㅋㅋ
-퍼갈량의 천하삼분지계!
-퍼갈량 ㅇㅈㄹ ㅋㅋㅋㅋ
그 사이 리더가 소리쳤다.
“일단 먼저 퍼플 님부터 잡으세요!”
이에 정신을 차린 그들은 신속하게 이경복을 포위하려 했다.
“에이, 같은 수에 또 안 당하죠.”
하지만 그 잠깐의 틈은 이경복에게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는 가장 먼저 리더를 노렸다.
“어딜!”
“제가 오른쪽!”
“방송 잘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들은 쉽게 길을 허락하지 않았다. 세 명이 동시에 경로를 차단하며 달라붙었다.
이경복은 일단 날아드는 공격부터 받아내야 했다.
-와씨 그래도 역시 고인물들이네
-방송 잘 보고 있다는 놈은 뭔데 ㅋㅋㅋ
-아 ㅋㅋㅋ 저격이랑 팬심은 따로라니깐?
-개웃기누 ㅋㅋㅋㅋㅋ
-저세상 차원의 저격 ㅎㄷㄷ
-ㅁㅊ 3대 1로도 안 꿀리네
-용줄기 때문에 사실 1인분이 아님 ㅋㅋㅋㅋ
-혼자서 몇인 분을 하는 거냐구웃!
-여윽시 갓플이다 이말이야!
다른 성령들도 황급히 움직였지만 그 잠깐 동안 이경복의 검은 멈추지 않았다.
“우앗……!”
외마디 비명과 함께 성령 하나가 빛의 결정으로 변해 사라졌다. 이경복은 나머지도 압박하려다가 느껴지는 섬뜩함에 신속히 거리를 벌렸다.
“결정. ‘죽음’이 찾아오리니.”
그와 함께 에이든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한마디에 성령들도 추격을 멈추었다.
“1패턴 옵니다!”
“피해요!”
외침과 동시에 알현실 곳곳에 검붉은 원형의 룬이 떠올랐다.
“즉사영역인가 보네요.”
에이든의 첫 번째 공격패턴, ‘죽음’.
이경복은 대번에 그 정체를 눈치챘다. 룬에서 전해져 오는 위협이 뇌리에 꽂힌 덕이었다.
-즉사? 그냥 죽음? -ㅇㅇ 저기 닿기만 하면 죽음
-않이;; 처음부터 밸런스 뭔데!
-이게 바로 프롬식 최종보스입니다만?
-무친 ㅋㅋㅋ 저격러들이 안전구역 미리 확보하면 게임 끝 아님?
-그냥 바로 에이든 치면 안 되나?
-패턴 다 버티기 전까지 에이든 무적임 ㅋㅋㅋㅋ
-ㅅㅂ 이걸 어케 깨냐고!
-스포) 갓플은 깬다
시청자들은 난이도에 혀를 내둘렀다. 고인물 중 고인물들인 성령들도 확장하는 영역을 피하는 데 정신을 쏟고 있지 않나.
그러나 이경복의 표정에는 위기감이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흠, 이렇게 흩어져 주시면 처리가 너무 쉬워지는데.”
이경복의 말에 채팅창이 물음표로 물들었다. 그는 용오름의 줄기로 안전구역에 안착한 성령을 붙잡았다.
“뭣……!”
“갑니다!”
당연하게도 성령은 즉사영역에 들어가지 않으려 버텼다. 이경복은 해맑게 웃으며 그쪽으로 뛰었다.
“아, 아니! 이러면 둘 다 죽는다고요!”
안전구역이라고 해도 방심할 수는 없었다. 즉사영역이 계속 확장됐기에 까딱하면 바로 사망이었다.
그런 좁은 공간에 선 두 사람.
같은 편이었다면 상관없겠지만 지금은 적이었다.
“아뇨. 전 안 죽어요.”
이경복은 싱긋 웃으며 상대를 압박했다.
-엌ㅋㅋㅋㅋㅋ 퍼자감 무쳤고
-외나무다리 메타 뭔데!
-이 정도면 오히려 저격러가 불쌍할 지경
-ㄹㅇㅋㅋ 어디 도망갈 곳도 없쥬?
-고인물도 당황시키는 당신은 도덕책……
이경복의 맹공에 상대는 허둥지둥 방어에 나섰다. 하지만 그 승패가 갈리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우아……!”
이경복과 검을 맞댄 순간 자석에 이끌리듯 휘둘린 탓이었다. 이클립스에게 배운 검술이 톡톡히 효과를 본 것이다.
그는 거기서 만족하지 않고 다른 사냥감을 물색했다.
“마술, 마술로 요격해요!”
당황한 리더가 소리쳤다.
설마하니 이런 위험천만한 상황에서 움직일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터였다.
이에 몇몇 성령들이 얼음과 화염, 전격 등 갖가지 투사체를 쏘았다.
“엘든 소울에서는 리드샷 같은 건 잘 안 하나 보네요?”
하지만 이경복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애당초 궤적을 미리 꿰뚫어 보고 있으니 적중될 리가 없었다.
-않이 ㅋㅋㅋㅋ 누가 엘소에서 리드샷을 쓰냐구!
-혀엉! 이거 거너 그라운드 아니야!
-ㅅㅂ ㅋㅋㅋ 살다살다 엘소에서 리드샷 안 배우냐는 소리를 듣네
-진짜 실력 개지리네 ㅋㅋㅋ
-11:1이라서 개같이 멸망할 줄 알았더니 ㅋㅋㅋㅋ
-멸망한 건 트수들 예측이었고 ㅋㅋㅋ
-아아, 위험한 건 ‘11’ 쪽입니다만?
시청자들은 모든 공격을 피해내는 광경에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이윽고 확장된 즉사영역이 다시 축소되며 첫 번째 패턴이 끝나기까지.
“세상에……”
“네 명이나 죽었다고?”
이경복은 좁디좁은 안전구역으로 침입해 둘을 더 처리했다. 그 결과 남은 성령의 숫자는 어느덧 6명이 되어버렸다.
그나마 그들에게 다행이라면 리더가 살아 있다는 점이었다.
“2패턴 대비하세요! 거기서 승부를 봅시다!”
에이든의 공격 패턴은 하나가 아니다. 그리고 악랄하기로 유명한 엘든 시리즈인 만큼 패턴 사이에 휴식 시간도 없었다.
“어리석도다. 편안한 죽음을 거부하다니.”
다시금 들려오는 에이든의 음성. 여전히 그는 왕좌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너와 같은 자들은 언제든지 대체할 수 있다. 이만 침묵하여라.”
에이든의 말이 끝나자마자 이경복과 성령들 앞에 불쑥 거울이 솟아났다.
“아하.”
이경복은 감지되는 위협에 코웃음을 쳤다. 거울 속 반사된 상이 튀어나오며 순식간에 검을 내질렀다.
“난전을 유도하는 패턴이네요.”
기습을 읽어낸 이경복은 가볍게 회피하며 말했다.
-헐?
-뭐임? 복제임? -엘든제일검이 둘!?
-ㄴㄴ 장비만 똑같고 AI가 조종하는 거
-아 ㅋㅋㅋ 그럼 쉽지
-난전? 오히려 좋아!
-이거 정석대로 하면 개빡신데 ㅋㅋㅋ 3파전이라 개이득이누
이경복은 주저 없이 자신의 거울상을 베었다. 와장창하는 소리와 함께 형상이 유리 조각으로 변해 흩어졌다.
곧바로 주변을 돌아보자 성령들과 거울상들이 전투를 치르고 있었다.
“어? 수신호를 쓰네요? 그냥 말로 하면 되는 거 아닌가?”
그들은 피아를 구분하기 위해서인지 미리 수신호를 정해 두었다. 이경복으로서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또또 야한 냄새!
-아 ㅋㅋㅋ 뉴비티 내지 마시라구욧!
-킹치만 뉴비가 맞는걸?
-ㄹㅇㅋㅋ 우리 갓플은 1회차구웃!
-원래 목소리도 안 나옴요 ㅋㅋ
-님은 스트리밍이라 방송 마이크가 켜진 거 ㅋㅋㅋ
-에이든 대사 중에 ‘대체’랑 ‘침묵’이 키워드임
채팅창을 확인한 이경복은 활짝 미소 지었다.
“아, 그래요? 그럼 그냥 죽여야겠네.”
-나왔다! 살인미소!
-와 ㅋㅋ 원래 이 패턴은 개고구마인데
-ㄹㅇㅋㅋ 트롤이 가장 많이 나오는 구간인데
-진짜 여기서 팀킬 당하면 개빡침 ㅋㅋㅋ
-그게 바로 프롬의 노림수입니다만?
-지금은 오히려 좋아!
-엘든 무쌍 일발 장전!
그는 곧바로 난전에 뛰어들었다. 자신 외에는 전부 적이니 주의할 필요도 없었다. 푸른 화염이 일렁이며 그의 주변에 있는 성령들을 태워 나갔다.
말 그대로 무쌍.
진짜든 가짜든 상관없이 그의 공격을 버텨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무의미한 발버둥이거늘.”
이어 다시금 들려오는 에이든의 음성. 그와 함께 깨진 거울 조각들이 뭉그러지기 시작했다.
“그 많은 성령을 전부……!”
“어, 어떡하죠?”
침묵 상태도 깨진 것인지 성령들이 목소리를 냈다. 난전에서 살아남은 성령은 모두 셋.
클리어 횟수가 많은 고인물들만이 남았다. 다른 둘의 물음에 리더는 침통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건…… 못 이기겠네요.”
경험이 풍부한 만큼 파악도 빨랐다. 리더는 이경복에게 고개를 숙였다.
“상상 이상이었습니다. 방송을 방해한 점 다시 사과드리겠습니다.”
-예의 바른 저격러 무냐고 ㅋㅋㅋ
-내가 지금까지 본 저격은 대체?
-완전 찐따들만 보다가 정중한 저격러 보니까 새롭누 ㅋㅋㅋ
-이런 저격…… 나쁘지 않을지도?
-그래도 저격은 좀 그렇지 ㅅㅂ
시청자들은 이제 저격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어지는 성령의 행동은 그들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누구도 따라 하지 못할 솜씨를 꼭 보여주시길.”
리더는 그리 말하며 자결했다. 이경복이 눈을 동그랗게 뜬 사이 다른 두 성령도 작게 탄사를 내며 자결했다.
-뭐임? 갑자기 뭐임? -할복으로 사죄한 거?
-않이 ㅋㅋㅋ 무슨 사무라이냐고 ㅋㅋㅋ
-와 ㅋㅋㅋ 이렇게까지 하네
-어떻게든 난이도 높이고 가버리누
-이러면 진짜 빡세지겠는디 ㅎㄷㄷ
채팅창은 그들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의문을 표했다. 하지만 그 답은 금방 알 수 있었다.
“그리 삶을 버릴 수 없다면 다시 내어주마. 아니, 죽음조차 허락하지 않겠노라.”
에이든의 음성이 다시금 알현실을 가득 채웠다. 그와 함께 죽은 성령들과 그 거울상이 재차 형체를 구축했다.
물론 자결한 성령들도 그 안에 포함되어 있었다.
이경복은 곧바로 다시 일어선 성령 하나를 베어냈지만.
“이건 좀 걸리적거리긴 하겠네요.”
쓰러진 성령은 잠시 ‘정지’하기만 했을 뿐 다시 일어섰다.
-뭐여? 부활이여?
-ㅁㅊ 개같이부활 뭔데!
-와 이래서 일부러 죽은 거?
-엌ㅋㅋㅋ삼파전 포기하고 진짜 1:11 구도로 바꾼 거였누 ㅋㅋㅋ
-복제들까지 있어서 1:22가 되어 버렸자너 ㅋㅋㅋㅋ
-이거 진짜 안 죽는 거임?
-ㅇㅇ 안 죽음
-이제 21명 견제 속에서 에이든이랑 싸우는 거
-와씨 ㅋㅋㅋ 최종보스전에서 나올 수 있는 최악의 경우네
-ㅁㅊ 깨라고 만든 거?
-프롬 : 않이;;; 리트하시라고요
-엌ㅋㅋㅋ 고건 맏찌 ㅋㅋ 원래는 리트각이지 ㅋㅋ
시청자들은 그 상황에 격한 반응을 내비쳤다. 하지만 이경복은 여전히 미소를 보였다.
그러나 이전과는 조금 다른 이유였다.
‘와, 이건 뭐지?’
되살아난 성령들이 문제가 아니었다.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위협 따위는 애들 장난처럼 느껴질 정도의 아찔함이 전신을 타고 느껴졌다.
온몸을 짓누르는 듯한 위협, 그 출처는 명확했다.
“이거…… 이번에는 진짜 실패할 수도 있겠는데요.”
지금껏 게임을 하면서 느껴보지 못했던 수준의 경고가 머릿속을 가득 메웠다.
-헐?
-와 ㅋㅋㅋ 나 갓플이 이렇게 말한 거 처음 봄
-않이 ㅋㅋㅋ 방송 얼마나 했다고
-ㄹㅇㅋㅋ 누가 보면 한 5년 한 줄
-퍼, 퍼자감 OFF?
-나는 믿어! 퍼플 믿어!
-퍼펙트 펀치! 퍼펙트 펀치! 퍼펙트 펀치!
-하나둘셋! 퍼플 빠이팅!
시청자들은 처음 보는 그의 모습에 황당함과 응원을 표출했다.
“부서진 자여.”
공기가 울리고 바닥이 떨려왔다. 지금껏 움직이지 않았던 거인, 에이든이 왕좌에서 일어났다. 그는 커다란 손으로 옆에 있던 육각형의 기둥을 붙잡았다.
아니, 그것은 기둥이 아니라 대검이었다.
-???????
-뭐야? 저거 기둥 아니었어?
-미친 ㅋㅋㅋㅋ 저게 검이라고?
-???: 그것은 검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컸다
-갓츠 센세……!
-않이! 이건 진짜 크잖아요!
-엌ㅋㅋ 엘린이들 놀라는 거 보소
-근데 이건 무적권 놀랄 수밖에 없음 ㅋㅋㅋㅋㅋ
채팅창은 대번에 충격에 빠졌다.
그 사이 에이든은 이경복을 내려다보며 말을 맺었다.
“네게 남은 영혼의 마지막 조각조차 부서질지니!”
그 대사와 함께 에이든의 몸에서 황금빛 오러가 터져 나오자 마치 태양을 마주한 듯 시야가 빛으로 가득해졌다.
-ㅌㅌㅌㅌㅌㅌㅌ!
-굴러! 지금 굴러!
-큰 거 온다!
-드디어 죽나 ㅋㅋㅋㅋ
유경험자들이 다급히 채팅을 쳤다. 이경복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진짜 무지막지하네.’
빛으로 시야가 가려졌지만 에이든에게서 위협을 감지했을 때부터 집중 상태에 돌입했던 그는 느낄 수 있었다.
시간이 느리게 느껴지는 상황에서 대검이 그를 향해 떨어지는 것을 말이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이 상황에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을 터였다. 하지만 이경복은 달랐다.
‘재밌네!’
그의 마음을 채워준 것은 스릴이었다. 아찔함과 더불어 전해져 오는 전율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경복은 피하지 않았다. 대신 더욱 집중을 끌어올리며 검을 들었다.
섬광이 조금씩 잦아들자 그 사이로 이경복의 모습이 시청자들에게 노출됐다.
-???????
-저걸 안 피해?
-설마 패링?
-ㄴㄴ 패링 불가임!
-가드 불가라고!
-구르기로밖에 대응 못 하는데
-망했누
에이든의 공격은 시스템상으로 ‘패링’과 ‘가드’가 통하지 않는다. 일순간의 채팅을 뒤로하고 대검과 용비늘 검이 격돌했다.
쿠르릉하는 굉음과 함께 주변에 있던 성령들도 바닥을 나뒹굴었다.
-노데스 깨졌누 ㅠ
-모르면 죽어야지 뭐
-바로 리트 가면 됨!
-갓직히 이 정도 레전드면 1데스 정도는 ㅇㅈ이지
시청자들은 모두 이경복이 사망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화면은 어두워지지 않았다.
-어……?
-유다희양 안 나오는데?
-설마?
-살아 있다고?
엘든 시리즈를 상징하는 메시지 ‘You Died’ 역시 나타나지 않았다.
이어 피어오르던 먼지가 가라앉으며 대검이 만들어낸 거대한 균열.
그리고 그 옆에 서 있는 이경복의 모습이 드러났다.
-살았어? 진짜 살았어?
-ㅅㅂ 어케 살았누!
-패링이랑 가드 불가라면서!?
-않이;;; 이게 사네?
-또 퍼펙트 버그냐구 ㅋㅋㅋㅋㅋ
-프롬 : 뭐야 이거 무서워……
시청자들은 그의 생존에 기뻤지만 그보다 의문이 더 컸다. 대체 어떻게 살아 있을 수 있는 걸까.
놀랍게도.
“내 검을 흘렸는가.”
그 답을 말해 준 건 에이든이었다. 채팅창은 다시 충격에 빠졌다.
-흘려? 뭘? 저 기둥 같은걸?
-그게 말이 됨?
-(게말콘)(게말콘)(게말콘)
-여기서 나오는 대사가 있다고?
-와 ㅋㅋㅋ 혹시 이거 하는 사람 있을까 봐 프롬이 또 넣어놨누 ㅋㅋㅋ
-리빙포인트) 패링도 가드도 안 되면 흘리면 된다.
-아 ㅋㅋ 너무 간단하고 ㅋㅋ
그 사이 이경복은 거리를 벌리며 숨을 골랐다.
“와, 아슬아슬했습니다. 이클 님한테 배운 검술이랑 용비늘 검 아니었으면 실패했을 거예요.”
에이든의 말이 옳다는 것과 다름없는 멘트. 이에 채팅창 분위기가 다시 일변했다.
-진짜 흘린 거라고? 버그가 아니라?
-왘ㅋㅋ맞넼ㅋㅋㅋ 용비늘 검 아니라 다른 무기면 박살났을 듯
-님;;; 이클 님이 수련한 건 대인용 검술이라구욧!
-아 ㅋㅋ 거인도 사람이야 사람!
-너 그거 거인 혐오야!
-대인이 사실 큰 사람이라는 뜻 아님? ㅋㅋㅋㅋㅋ
-대인(對人)용이 아니라 대인(大人)용이었누 ㅋㅋㅋ
-이클립스 : ㅔ?
-미친ㅋㅋㅋ 개웃기네 진짜 ㅋㅋ
이경복이 건재하다는 사실에 안도함도 잠시 시청자들은 찬사를 잊지 않았다.
-오늘이야말로 갓플이 엘든제일검인 이유가 명확해졌다.
-저격러들 소원성취했누 ㅋㅋㅋ
-ㄹㅇㅋㅋ 진짜 누구도 따라 못할 업적을 해 버렸고
-뱁새쉑들 이거까지 따라해보던가 ㅋㅋㅋ
-이제부터 ‘킹플은 갓던데요’ 검지검지~
-고인물이 아니라 그냥 엘든제일검임 ㅋㅋㅋㅋ
아무도 이루어 내지 못할 업적.
그만큼 이경복의 칭호 또한 달라졌다.
-이정도면 엘든제일검도 약하짘ㅋㅋㅋ
-ㅇㅇ 이제 엘든유일검이 맏따
-오 ㅋㅋ 엘든유일검ㅋㅋㅋ
-유일검 ㅅㅂ ㅋㅋㅋ 착 감기네
-유일검! 유일검! 유일검! 유일검!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다.
제일(第一)을 넘어 유일(有一).
이경복이 ‘엘든유일검’이 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