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화 - 분명 A/S를 맡겼는데? (1)
방송이 종료되고 얼마 후.
이경복의 집에 박주호가 찾아왔다.
“몸은?”
“음, 뭐 이상한 건 없는데.”
문을 열자마자 들어온 친구의 안부에 이경복은 어깨를 으쓱였다.
“안정 취한 거 맞지? 방송 일찍 끝났다고 운동한 것도 아니고?”
“……넌 대체 날 뭐로 보고 있는 거냐. 침대에서 가만히 누워 있다가 잠들 뻔했다.”
“그럼 다행이고. 병훈이한테도 연락 받았지?”
“그 자식도 온다고 하는 거 편집이나 하라고 말렸지. 시청자들이 알면 또 블랙기업이라고 했을 듯.”
이경복이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박주호는 실소를 흘리고는 이내 캡슐을 살폈다.
“그거 보면 뭐 아냐?”
“오면서 매뉴얼 확인했지.”
“……그 짧은 시간에 다 파악했다고?”
“데이터 관련 부분만.”
박주호는 돌아보지도 않고 스마트 링크를 조작하며 대답했다. 이경복은 그런 친구를 보며 혀를 내둘렀다.
‘하여간 이런 쪽으로는 머리가 잘 돌아가는 놈이니까.’
자신과 최병훈이 예체능 계열이라면 박주호는 영락없는 문이과 계통이었다.
“됐다.”
잠시 후 박주호는 자리에서 일어나 거실로 돌아왔다. 그가 스마트 링크를 조작하자 홀로그램 도표와 그래프가 나타났다.
“어…… 이게 다 뭔데?”
이경복은 숫자와 도형투성이인 홀로그램에 기가 질린 듯 턱을 뒤로 뺐다.
“이게 캡슐이 측정한 로우 데이터야.”
“로우?”
“날 것 그대로라고. 이걸 게임별로 구분하면 이렇게 되지.”
뒤섞여 있던 그래프가 박주호의 손짓에 따라 가지런히 정렬되었다. 이경복은 탄사를 내뱉으며 친구의 어깨를 가볍게 쳤다.
“이야, 좀 쩌는데?”
“어려운 건 아니다. 아무튼, 이게 메시지에서 말한 연산량이거든. 여기 그래프 튀어 오른 부분 보이지?”
“어, 그러네.”
“이때 기록된 영상을 재생해 보면……”
박주호의 조작에 따라 해당 부분의 플레이 영상이 재생됐다.
<이거…… 이번에는 진짜 실패할 수도 있겠는데요.>
<집중 좀 할게요.>
선명한 이경복의 음성이 들려왔다. 박주호는 묵묵히 다른 게임에서 같은 부분을 찾아냈다.
그 결과.
“말을 할 때도 있고 안 할 때도 있긴 한데.”
“내가 집중할 때 연산량이 증가했다는 거네.”
“그렇지.”
“흠……”
이경복은 코끝을 찡그렸다.
‘신기를 발휘할 때마다 이런 변화가 일어났다는 건데.’
다른 게임에서도 그런 경우가 있었는데 경고 메시지는 나타나지 않았다. 왜 이번에는 나타난 것일까.
그는 그 차이점을 쉽게 유추할 수 있었다.
‘에이든과의 보스전에서는 유독 그래프가 튄 부분이 많아.’
전례가 없는 위협에 신기의 발현이 길어졌다. 그만큼 연산량이 높은 상태가 유지가 됐다.
“으음…… 이거 해결책은 있나?”
“그게, 검색해 봐도 나오는 건 없더라.”
“없다니?”
“아예 이런 메시지가 떴다는 사례가 없었어. 물론 간단하게 훑은 정도라서 확신은 못 하겠지만.”
“아예 하나도 안 나왔다고?”
이경복은 어리둥절한 눈으로 친구를 돌아봤다. 하지만 박주호의 표정에는 장난기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애당초 장난을 잘 치는 성격도 아니긴 했다.
“지금 쓰는 리얼리티 모델은 물론이고 타사 제품에서도 그런 경우가 없었어.”
“으음, 그럼 어쩐다……”
“일단 더 찾아보면서 캡슐 관련 논문 쪽도 뒤져 봐야지.”
“논문?”
박주호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경복은 가볍게 손을 내저었다.
“야야, 뭔 논문까지 찾냐. 그러지 말고 그냥 AS 맡기면 되지. 만드는 사람이 가장 잘 알 거 아냐?”
“그렇기야 하겠지. 오늘은 시간이 늦었으니 내일 서비스 센터 영업시간 맞춰서 연락해 볼게.”
“어? 네가 하게?”
“이런 일은 매니저가 해야지.”
박주호는 그렇게 말하고 홀로그램을 치웠다.
“그리고 휴방 공지도 준비해 둘 거다.”
“휴방? 왜?”
“왜냐니, 아직 정확한 상황 파악도 안 됐는데 방송을 할 수는 없잖아.”
“그래도 엔딩만 보는 건 괜찮지 않을까?”
“애매하게 하면 오히려 안 하느니만 못하지. 시청자들도 이해할 거다. 이해하지 않아도 매니저로서 그렇게 놔두지 않을 거고.”
이경복은 잠시 눈을 굴리다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달리 불길한 느낌도 안 들고.’
그의 신기에 걸리는 건 없었다.
어쩌면 문제가 일찍 해결될 징조일지도 몰랐다.
“알았어, 그럼 내일 서비스 센터 답변 들어보고 결정하자고.”
“그래. 그럼 난 논문 좀 찾아보러 가야겠다.”
“아니, 그럴 필요…… 됐다. 네 마음대로 해라.”
“쉬어라.”
“그래. 가라.”
용건이 끝나자 박주호는 주저 없이 집으로 돌아갔다. 만약 최병훈이었다면 맥주라도 한잔하고 갔을 터였다.
둘 다 개성이 확실한 친구들이었다.
“하아……”
이경복은 침대에 누워 짧게 한숨을 뱉었다.
평소와는 달리 이른 시간에 끝나버린 방송에 뭔가 어색함이 느껴졌다.
‘참나, 나도 스트리머 다 됐네.’
그는 자조적인 웃음을 흘렸다.
지금 느끼는 건 사실 어색함이 아니라는 걸 깨달은 덕이었다.
‘방송, 하고 싶다.’
그것은 일종의 허기와도 같았다.
아예 입을 대지 않았다면 모를까, 맛만 보고 음식을 치운 기분이었다.
‘그럼 이제 앞으로는 좀 자제해야 되는 건가?’
잠들기 전까지 이경복은 답을 궁리했다.
* * *
엘든 소울 커뮤니티의 중심, 엘소메타.
여느 때와 같이 방송이 끝난 후 시청자들은 커뮤니티를 찾았다.
[엘든제일검은 죽었다 (812)]
[퍼갈량의 천하삼분지계란? (671)]
[짧고 굵은 갓플방송, 나쁘지 않을지도?(472)]
[캡슐 오류 뭐냐? (271)]
이제는 당연해져 버린 인기글 점령. 방송을 놓친 사람들은 그 글들을 통해 대략적인 방송 내용을 알 수 있었다.
[엘든제일검의 시대는 끝났다.
이제는 엘든유일검의 시대다!
(클립 영상)
(클립 영상)
(클립 영상)
(클립 영상)
(클립 영상)
(클립 영상)
(클립 영상)
…]
[-제목 보고 식겁했다가 영상보고 더 놀람ㅋㅋㅋㅋ]
[ㄴㄹㅇㅋㅋ 결국 갓플도 죽었나 했음]
[ㄴ제목 어그로 좀 치누 ㅋㅋㅋ]
[-저격러들 여기 네임드들 아녀?]
[ㄴ어 ㅋㅋㅋ 진짜네 ㅋㅋㅋㅋ]
[ㄴ저기 몰려가 있었누 ㅋㅋㅋ]
[ㄴ갓플이 고인물 기강 씨게 잡았음]
[ㄴ퍼갈량 ㅋㅋㅋㅋ 개웃기네]
[ㄴ근데 저격이유 짠하긴 하다]
[ㄴ무림초출은 반성하라!]
[-와씨 ㅋㅋㅋ 저걸 어떻게 흘림?]
[ㄴ그러니까 유일검이지!]
[ㄴ와…… 진짜 유일등급 실력이네]
[ㄴ뭐야? 방송 벌써 끝남?]
[ㄴㅇㅇ 오늘 일찍 끝냄]
[ㄴ아 ㅅㅂ 이럴 줄 알았으면 본방 봤지]
[ㄴ어쩔캡슐?]
[ㄴ엌ㅋㅋ 지가 안 봐놓고 왜 썽내누 ㅋㅋㅋ]
[-야이 미친ㅋㅋㅋㅋ 영상이 몇 개냐 ㅋㅋㅋ]
[ㄴㄹㅇㅋㅋ 이럴 거면 그냥 다시보기 링크만 올리던가]
[ㄴ킹치만…… 매 순간이 레전드인걸?]
[ㄴ말투 짜증나서 신고드렸습니다^^]
[-트리플 크라운 뭔데에에에!]
[ㄴ원래 한 번에 하나씩 도전하는 거 아님?]
[ㄴ남들이 할 수 있는 거 하면 엘든유일검이 아니지 ㅋㅋ]
[ㄴ아 ㅋㅋ 오늘 방송은 분점 가서 봐야겠누]
[ㄴ풀영상 올라옴?]
[ㄴ아직임요]
[ㄴ오늘 건 짧아서 풀영상으로 볼만할 듯]
그러나 그중에서도 유독 관심이 끌린 건 게임 내용이 아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게임 커뮤니티임에도 사람들의 주의는 퍼플이 겪은 ‘경고’에 쏠렸다.
[-과부하? 갑자기 저게 뭔솔?]
[ㄴㄹㅇㅋㅋ 무슨 릭트쇼인줄]
[ㄴ방종하려고 주작한 거 아님?]
[ㄴ주작무새 좀 꺼져!]
[ㄴ하여간 바이럴무새랑 주작무새들 개극혐]
[ㄴ아 ㅋㅋ 과부하 바이럴이네]
[ㄴ하지마라니까 바로 해버리누 ㅋㅋㅋ]
[ㄴ무친ㅋㅋ 과부하는 왜 바이럴 하는데 ㅋㅋㅋㅋ]
[-저런 메시지 한 번도 본 적 없음 ㅋㅋ 커뮤 죽돌이로서 장담함]
[ㄴ찐이네 ㅅㅂ 계정 렙 보소]
[ㄴ제에발 좀 나가!]
[ㄴ망령님 현생을 살아주세요……]
[ㄴ진지 빨고 이거 엘소 문제는 아님]
[ㄴ그럼 캡슐 문제라는 거?]
[ㄴ대놓고 매니저가 캡슐문제라고 하자너]
[ㄴ이건 난독 수준이 아니라 시력문제 아닌가 ㅋㅋㅋㅋ]
[-딱 보니까 캡슐이 이용자 못 따라는 거네]
[ㄴ엌ㅋㅋ 이거였누 ㅋㅋ]
[ㄴ일 리가…… 있어!]
[ㄴ킹직히 갓플 움직임 구현하려면 빡시긴 할 듯 ㅋㅋㅋㅋ]
[-갓플이 어디 거 쓰는디?]
[ㄴ보나마나 리얼리티 아님?]
[ㄴㄹㅇㅋㅋ 스머 중에 리얼리티 거 아닌 거 본 적 없다]
[ㄴ가난한 하꼬들은 다른 거 씀]
[ㄴㅁㅊ 가난하다는 게 왜 나옴? 다른 브랜드 쓰면 흙수저냐?]
[ㄴ발끈하는 거 보니 HOXY?]
[ㄴ이제는 캡슐 브랜드 가지고도 싸우네 ㅋㅋㅋㅋ]
엘든 시리즈가 나름 역사를 지닌 만큼 커뮤니티 내에는 가상현실 게임 경력이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하지만 그들 중 누구도 이와 같은 메시지를 본 적이 없었다.
[-ㅅㅂ 캡슐 문제면 내일도 휴방인 거 아님?]
[ㄴㅇㅇ 안 하겠지]
[ㄴ리얼리티 무시함? AS 개쩌는 곳인디]
[ㄴ애초에 리얼리티는 AS가 거의 필요 없지 않냐 ㅋㅋㅋ]
[ㄴㄹㅇㅋㅋ 주변에서 리얼리티 거 캡슐 고장 났다는 얘기 못들어봄]
[ㄴ엘붕이 주변에 사람이 있다고?]
[ㄴ친구는 인터넷 친구가 있어요^^]
[ㄴ살살 때려 ㅋㅋ 애 운다고 ㅋㅋㅋ]
[ㄴ넌 왜 웃냐? 네 얘기 아닌 것 같아?]
[-뭘 휴방 걱정을 하고 앉았냐. 달타냥이 우스워?]
[ㄴ갑자기 달타냥 등판 무엇?]
[ㄴ리얼리티 전속 모델이잖슴ㅋㅋㅋ]
[ㄴ달타냥이 밖에서 티내지 말라는데 꼭 이런다니까]
[ㄴ서순보소 ㅋㅋ 리얼리티가 캡슐 점유율 거의 80%임 ㅋㅋ 그래서 달타냥 모델로 쓸 수 있는 거]
[ㄴ헐? 80%나 됨?]
[ㄴ오히려 나머지가 20%라는 게 이해가 안 되는데 ㅋㅋㅋ]
[ㄴ다른 제조사 임직원들이겠지]
[ㄴ그 사람들도 리얼리티 쓸걸? ㅋㅋㅋ]
[-나 AS경험자임. 리얼리티 서비스 센터 개좋음]
[ㄴ왜 고장 남? 물어봐도 됨?]
[ㄴㅅㅂ 커뮤에서 허락받지 마라 빡치니까]
[ㄴ빨랑 썰 풀어 ㅆㅂㄹㅇ!]
[ㄴ아 시원하다 이게 커뮤식 대화법이지]
[ㄴ미친놈들이신가 ㅋㅋㅋㅋ]
[ㄴ시스템 문제는 아님. 내가 실수로 디스플레이 부분 쪼개버림]
[ㄴ그거 겁나 단단하던데 쪼갤 정도면 뭔 짓거리를 한 겨 ㅋㅋ]
[ㄴ내 과실인데 서비스 센터가 걍 공짜로 수리해줌 ㅋㅋ 너무 좋아서 동서남북으로 울부짖었다]
[-갓플 정도 되는 스머면 서비스센터에서 알아서 모셔준다]
[ㄴㄹㅇㅋㅋ 누굴 걱정하고 있누]
[ㄴ엘붕이들은 허접한 자기 실력이나 걱정하라구!]
[ㄴ지는 아닌척 쩌네]
[ㄴ결투 함 뜨실?]
[ㄴ코드 쪽지로 보냈다 덤벼라]
[ㄴ저거 백퍼 다른 엘붕이 코드다 ㅋㅋㅋ]
[ㄴ착한 엘붕이는 갓플의 AS썰이나 기대하라구!]
다행히 제조사 ‘리얼리티’의 서비스 센터에 대한 평은 좋았다. 역시 1위를 하는 기업에는 그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 * *
다음날 이른 아침, ‘리얼리티’ 본사.
일반 사원들과 달리 실장급 인사들은 평소보다 빠르게 출근했다.
준비를 마치고 회의실에 모인 세 사람.
각기 고객관리실, 개발실, 그리고 마케팅실의 책임자들이었다.
“대표님은 시차 때문에 회의에 참석이 어렵다는 점 양해 부탁드린다고 하시네요. 대신 저희에게 권한을 이양하신다고 말씀주셨습니다.”
고객관리실장이 먼저 운을 띄웠다. 이에 다른 두 사람은 순순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마 메일을 보셨겠지만 간단하게 상황을 설명 드리겠습니다.”
개발실장이 말을 이어받았다. 그는 짧게 헛기침을 해 목을 가다듬고 설명을 시작했다.
“어제 보고받은 연산량 초과 경고는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 모두 설정해 둔 사항입니다. 하지만 실상 쓸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는 이어 회의실 중앙에 홀로그램을 띄웠다. 도표와 그래프가 그 위에 나타났다.
“적색 그래프는 현재 저희 캡슐 이용자의 연산량 평균값, 그리고 청색 그래프는 이번 이슈가 된 고객님의 연산량입니다.”
“차이가…… 엄청나네요?”
마케팅실장이 눈을 크게 떴다.
따로 수치를 보지 않아도 그래프의 높이만으로 그 격차가 드러났다.
“예, 단순 수치만으로도 전체 평균의 5배에 달합니다.”
“다, 다섯 배요?”
“저도 이번에 살펴보면서 무척 놀랐습니다. 하지만 이게 전부가 아닙니다. 놀랍긴 해도 이 정도는 저희 캡슐 스펙으로는 커버가 가능합니다.”
“네? 하지만 경고 메시지가 발송됐잖아요?”
개발실장은 다른 두 사람의 얼굴을 번갈아 보고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네, 맞습니다. 과부하 문제는 캡슐 설계상 아주 민감한 문제입니다. 뇌 내 자극을 구현하는 기기이니만큼 자칫하다가는 고객님의 뇌에 어떤 손상이 가해질지 모르니까요. 그래서 평균치를 웃도는 오버 스펙이어야만 허가가 납니다.”
이윽고 그가 손을 움직이자 새로운 녹색 그래프가 나타났다.
“이게 이번 경고 메시지가 발송 됐을 때의 연산량입니다.”
“아니… 이게 무슨……”
“세상에……”
그래프의 전체적인 크기가 조정된 건 아니었기에 전체 이용자의 평균, 적색 그래프는 바닥을 기고 있었다. 반면 녹색 그래프는 천장을 찍고 있었다.
너무나도 명확한 차이.
“처음에는 기기 결함인 줄 알았습니다. 아니면 연산량 측정 소프트웨어에 오류가 생겼거나요.”
“……아니로군요?”
“네, 아닙니다. 제가 직접 원격으로 파악했습니다만 고객님의 캡슐은 멀쩡합니다.”
“아니, 그럼 대체……”
“전체 이용자 평균의 거의 10배, 아니 그 이상입니다. 설정해 둔 한계값을 넘었기에 실제로는 얼마나 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회의실에 잠시 정적이 내려앉았다. 고객관리실장이 머리를 내저으며 말했다.
“자, 잠시만요. 지금 그래프를 보면 오늘만 그런 게 아니잖아요? 예전에도 이런 값이 기록됐는데 왜 경고 메시지는 이번에만 나온 거예요?”
“그게…… 사실 저도 좀 이해가 안 갑니다.”
“네?”
황당해하는 두 사람에게 개발실장은 얼굴을 찡그렸다. 이내 그는 다시금 스마트 링크를 조작해 다른 그래프를 띄웠다.
“방금 전 보신 건 일자별이고 이건 더 세분화한 시간별 지표입니다. 경고 메시지가 송출되지 않았던 날이죠.”
“어?”
“이건 또 뭔……”
개발실장은 두 사람의 얼굴을 보며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실소를 흘렸다.
“두 분도 이상하게 느끼시죠? 연산량이 증폭됐다가 바로 하락했습니다. 이런 경우는 보고가 된 적이 없었어요. 그래서 시스템이 자의적으로 오류라고 판단, 경고를 송출하지 않은 겁니다.”
“하지만 오류가 아니잖아요?”
“네. 이번 경우는 달랐던 거죠. 연산량이 폭증한 게 일정 시간 유지가 돼서 경고가 송출된 겁니다.”
“이게…… 대체 무슨 의미죠?”
개발실장은 그 질문에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미 예상했지만 아직은 답을 구하지 못한 문제였다.
“믿기지는 않지만…… 마치 고객님이 직접 처리할 정보를 선택한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예?”
“선택한다니요?”
“저도 그 이상은 설명할 방법이 없습니다. 아마 이런 데이터는 이 고객님이 유일할 겁니다.”
개발실장은 자신의 몫은 이제 끝이라는 듯 팔짱을 꼈다. 다른 두 사람은 어안이 벙벙해졌지만 이내 정신을 차렸다.
그들은 실장이라는 직급에 맞게 능력이 있었고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지금은 의문의 답보다는 문제 해결이 급선무였다.
“일단 해당 고객님이 온라인으로 AS를 신청해두셨습니다. 내용으로 보아 서비스 센터 영업시간이 되면 다시 연락을 주실 예정입니다. 그때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답변이 필요해요.”
“기기 결함이 아니라서 수리기사를 보내도 소용없습니다. 물론 기기 교체도 마찬가지죠.”
“하…… 이거 곤란하네요.”
마케팅 실장이 입술을 잘근 씹고는 스마트 링크를 조정했다. 그와 함께 그래프가 사라지고 큐튜브 채널이 나타났다.
“보다시피 구독자 60만에 달하는 스트리머입니다. 그것도 방송을 시작한 지 1달도 되지 않았어요.”
“1달 안에 60만이요?”
“네. 게다가 달타냥 님처럼 메타게이머 웹진과 인터뷰까지 할 정도로 인지도가 높아요. 저희 제품 특성상 인플루언서와 부정적인 이슈로 얽히는 건 피해야 한다는 건 알고 계시죠?”
“……무제한 환불로도 해결할 수가 없겠네요.”
마케팅실장의 말에 다른 두 사람은 암담한 표정을 지었다. 실상 사측의 잘못은 없지만 대중은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을 터였다.
“다른 이슈보다 최대한 빠르게, 하지만 고객님이 받아들일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합니다. 답변 시간이야 양해를 구하면 늦출 수 있겠지만 적어도 오늘 안에는 해답을 구해야 해요.”
“돌겠네, 진짜……”
“하이엔드급 모델로도 커버가 불가능한가요?”
얼굴을 쓸어내리는 개발실장에게 고객관리실장이 물었다. 그는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현재 고객님이 사용하시는 고급모델과 하이엔드 급은 스펙상으로 크게 차이가 없어요. 말씀드렸듯 이미 스펙 자체는 오버스펙이라 편의 기능만 달라집니다.”
“그럼……”
다시금 회의실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었다. 1명의 고객이지만 회사의 이미지가 걸린 문제가 될 수도 있었다.
그때 번쩍 고객관리실장이 머리를 들었다.
“연산량……! 연산량만 커버하면 되는 거죠?”
“그렇죠.”
“그럼 혹시 연산 한계만 더 증가하는 식으로 커스텀은 안 되나요?”
“커스텀이요……?”
개발실장이 눈을 굴렸다. 그 사이 마케팅실장이 손뼉을 쳤다.
“제조 문제라면 괜찮아요. 이번에 달타냥 한정 에디션 제작 때문에 공장 라인 하나를 비워뒀어요. 그걸 이용하면 즉시 생산도 가능해요!”
겨우 찾아낸 해답의 실마리. 두 사람은 간절한 눈빛으로 개발실장을 돌아봤다.
그는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았다. 대신 손을 들어 그들을 진정시키고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마침내 그도 고개를 들었다.
“네. 정확히는 시뮬레이션을 해봐야 알겠지만, 하이엔드급을 커스텀하면 될 것 같아요.”
“아, 다행이다.”
“잠깐, 이거 그냥 AS로 끝낼 수 없습니다.”
안도하는 고객관리실장과 달리 마케팅실장이 눈을 빛냈다.
“커스텀 모델, 고객 하나도 소중히 여기는 리얼리티. 느낌 어때요? 좋죠? 이거 기회입니다!”
“네? 커스텀 모델 라인을 만드시려고요?”
“아뇨, 라인을 따로 할당하면 손실이 너무 큽니다. 대신 어디까지나 이번 고객님과 같은 경우가 발생하면 사측에서는 확실하게 책임을 진다는 걸 강조하는 겁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은 퍼플 님이 유일하다면서요?”
개발실장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예. 맞습니다.”
“근데 어떻게 하시려고요? 이미 달타냥 님이 저희 전속모델이시잖아요?”
“모델까지는 아니더라도 방법이야 많죠.”
마케팅 실장은 미소를 지었다.
놀랍게도 이경복은 AS를 문의했지만.
“스트리머 퍼플 전용 커스텀 모델, 언박싱 방송. 이 컨셉으로 협찬 계약을 해 봐야겠어요.”
돌아온 건 광고 계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