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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의 신들린 게임방송-95화 (95/491)

95화 - 할머니가 보우하사 (2)

이경복은 홀로그램 지도와 눈앞에 있는 건물을 번갈아 보았다.

‘여기가 맞나?’

양규리가 보내온 톡에 포함된 주소라면 여기가 맞았다.

시간도 맞기에 점심을 먹으면서 이야기하자고 했을 때 음식점이라 생각은 했다.

‘엄청 유명한 곳인가 보네.’

널따란 주차장에는 외제차뿐이었다. 그것도 나름 값나간다는 차종뿐이었다.

그것까지는 별로 놀랄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차량의 주인들이 줄을 서는 곳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정말 그냥 들어가도 되나?’

이경복은 약간 멋쩍은 표정으로 걸음을 옮겼다. 설마 이런 곳일 줄은 모르고 편한 복장으로 왔는데 줄 서 있는 사람들은 태가 달랐다.

이경복의 성격상 그런 복장의 차이 때문에 신경이 쓰이는 건 아니었다.

‘어째 예상은 빗나가지를 않아요.’

사람들을 지나칠 때마다 돌아오는 눈길. 그리고 그 저변에 깔려 있는 부정적인 감정을 신기가 잡아냈다.

하지만 누구도 그를 막아 세우지는 않았다. 그들이 나서지 않아도 직원이 알아서 쫓아내리라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 예상대로 직원은 이경복이 다가오기도 전부터 표정을 굳혔다.

“죄송하지만 이곳은 드레스 코드를……”

“양규리 님으로 예약됐습니다.”

이경복은 직원으로부터 풍겨 오는 불쾌감을 읽어냈기에 말을 잘랐다. 양규리의 이름이 거론되자 직원의 표정이 일변했다.

“아, 실례했습니다. 바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그 반응에 줄을 서 있던 사람들도 눈이 휘둥그레졌다.

‘드레스 코드도 안 맞췄는데 입장을 할 수가 있었어?’

‘예약이 됐다고?’

이런 특별대우는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 의문을 해결해 줄 사람은 없었다.

‘좀 낫네.’

직원은 미리 예약된 룸으로 그를 안내했다. 사람이 많은 메인 홀에서 벗어나니 불쾌감도 가라앉았다.

“어, 왔나.”

문을 열자마자 쾌활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경복은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30대 중후반 즈음으로 보이는 미인이 그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녀가 바로 양화보살, 양규리였다. 이경복은 꾸벅 고개를 숙인 후 인사를 건넸다.

“여전히 젊게 사시네요, 이모님.”

겉으로는 30대로 보여도 실제 나이는 40대 중반이었다.

그녀는 타고난 동안이었다.

이경복의 말이 기분 나쁘지는 않은지 그녀는 웃으며 답했다.

“맞나? 작년 신어머니 기일 때 보고 첨이제?”

“네, 그러네요.”

이경복은 그녀의 맞은편에 앉았다. 이내 그는 슬쩍 주변을 돌아보며 말했다.

“근데 이런 곳에서 식사해도 되는 거예요?”

이경복은 의아함을 숨기지 않았다. 할머니는 모시는 신, 몸주신의 심기를 거스를까 서양 음식에는 손도 대지 않으셨다.

“그건 신어머니가 워낙 엄격하신 거제. 그리고 오늘은 니 보니께 여기로 잡은 거다.”

“절 보는 게 왜요?”

“내가 점사 좀 봐준 사모님 중에 요식 업계에서 잘나가는 양반 안사람이 있었거든. 언제 한 번 꼭 대접 해 준다켔는데 기회가 없었다 안카나.”

양규리는 이내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근데 신어머니 말씀대로 평소에는 내도 음식 가린다. 좋아해도 쭉 참아 왔는데 오늘은 니랑 같이 오믄 괜찮다 싶어 온기다.”

“괜찮다는 건 또 뭐예요?”

“경복이, 니 타고난 신기가 잡귀들은 물론이고 몸주신도 억누른다 안 카나. 그래서 신당 말고 여기로 온 거제.”

몸주신의 눈치를 보지 않고 서양음식을 접할 수 있다는 뜻. 이경복은 그 말에 어색하게 웃음을 흘렸다.

“네, 뭐 다행이네요.”

“그래도 혹시 몰라서 마늘 알리올리오 파스타랑 스테이크만 미리 주문 했제. 요상시럽게 우유는 되도 치즈나 크림은 꺼리신다니께.”

“아하하……”

“그래도 여기서 추천하는 메뉴니께 입맛에는 괜찮을끼다.”

잠시 후, 주문한 음식이 서빙되고 두 사람은 간단히 근황을 나누며 배를 채웠다.

“엄메? 방송이라꼬?”

“네, 게임하는 거 방송해요.”

“글카믄 별일 없는 게 아닌데 왜 그짓말했나?”

“나쁜 일은 아니니까요.”

“맞나. 좀 잘 되는 갑제?”

“네. 생각보다 잘 돼서요.”

“아이고야, 맞나. 잘됐다야! 그럼 신어머니께서 니 축하해 주라고 불렀나?”

할머니 이야기에 이경복은 자세를 고쳤다. 이제 본론을 시작할 때였다.

“그, 할머니가 꿈에서 뭐라고 하셨는데요?”

“그게 내도 자세히는 못 들었다.”

“……네?”

예상외의 답변에 이경복은 눈을 껌뻑였다. 반면 양규리는 태연히 스테이크 한 조각을 씹어 삼켰다.

“아마 천기누설 때문에 그를기다.”

“천기누설이라면……”

“원래 저쪽 이야기는 아무리 사소한 거라도 금기라 안 카나. 그래도 꿈에서 보니께 신어머니 얼굴이 정말 피셨다. 입고 계셨던 옷으로 봐서 아마 선녀님들이랑 어울리지 싶다.”

그녀의 설명에 이경복은 웃음을 흘리다가도 이내 코끝을 찡그렸다.

“제 꿈에는 안 오시던데…… 할머니도 그렇고 부모님도 그렇고요.”

그 역시 신기를 지녔지만 돌아가신 부모님이나 할머니가 찾아오는 경우는 없었다.

양규리는 그 말에 손사래를 쳤다.

“그것도 다 신기 때문인기라.”

“네?”

“내 아까 말했제? 니 신기는 몸주신까지 억누른다니께. 근데 저승에 발을 디딘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영령이 어찌 찾아오겠나?”

이경복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대신에 내가 그 역할을 맡게 된 기지. 근데 아무래도 니 축하할 자리는 아니다. 신어머니가 네가 곤란하니께 찾아가라 말씀하셨다 안 카나. 맞제? 니 지금 고민 있제? 그걸 얘기해 줘야 된다.”

그녀의 말에 이경복은 잠시 뜸을 들였다. 하지만 이내 그는 자신의 사정을 설명했다.

그와 함께 양규리의 태도도 일변했다. 조금 전까지 수다스러웠던 사람과는 다르게 그녀는 순식간에 진중한 무당이 되어 있었다.

그녀는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이경복의 이야기를 오롯이 귀에 담은 뒤에야 입을 열었다.

“경복아, 니 내 이야기는 들어봤나?”

“아뇨, 자세히는……”

“내는 신어머니, 니 할머님 만나기 전에도 무당이었다.”

“네?”

이경복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분명 양규리가 신내림을 받은 건 할머니를 통해서였는데 어떻게 그 전에 무당이었단 말인가.

“니 허주라고 들어봤나?”

“허주…… 그거 가짜신이잖아요?”

“맞다. 잡귀가 몸주신인 척 흉내내믄서 신기 있는 사람에게 들러붙는 경우제.”

“설마 이모님도?”

양규리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 허주라는 게 말이다. 완전 욕망에 미쳐 있다 안 카나. 거기에 씐 사람은 그 욕망을 채우는 도구가 되는기라.”

그녀는 신어머니를 만나기 전까지 온갖 욕망을 채우기 위해 살아왔다.

말 그대로 걸신들린 것처럼 음식을 먹었고, 재물에 미쳐 복채를 뜯어내기를 서슴지 않았다. 때로는 며칠 동안 잠에 빠진 적도 있었다.

“근데 내가 진짜 몸주신을 받고 깨달은 게 뭔지 아나? 바로 신은 ‘고통’을 주지 않는다는 기다.”

“고통이요?”

“맞다. 잡귀들은 지 욕망이 우선이라 인간들이 고통 받건 말건 신경을 안 쓰제. 하지만 진짜 제대로 된 신을 받아들이면 무당은 ‘알 만큼’만 알게 된다.”

“하지만 신병은요?”

“경복이 니도 겪어 봐서 알지 않니? 신병은 신기를 제대로 쓰지도 못 하니께 몸이 고통 받는 기다.”

이경복은 미간을 찡그렸다.

“그럼 어떻게 합니까? 지금 신내림이라도 받아야 되나요?”

“아이고, 아서라. 신어머니 말씀 기억 안 나니? 니 신기면 금방 잡아먹힌다. 무당이 되면 절대로 안 된다.”

“그러면요?”

“먼저 니 한계부터 깨달아야제.”

양규리는 물로 목을 축이고 말을 이어갔다.

“사람들이 착각하는 게 뭔지 아니? 자기한테 정해진 운명이 있다고 믿는 기다.”

“네? 하지만 사주랑 팔자가 있잖아요?”

이경복은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할머니도 많은 사람들의 팔자를 고쳐 주지 않았나.

의외로 양규리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주랑 팔자가 틀렸다는 기 아이다. 근데 그건 쓰임이 다르다 안 카나.”

“쓰임이요?”

“정해진 운명은 없지만 잘못된 운명이 있제. 무당은 그런 그릇된 운명을 바로잡아주는 게 일이다.”

그녀는 그리 말하며 미간을 찌푸렸다.

“사이비랑 예전의 내처럼 잡귀 들린 무당이 하는 말이 뭔 줄 아나? 내 말만 잘 들으면 모두 잘 될 거라고 꼬드기는 기다. 경복이, 니는 ‘길흉화복’중에 뭐가 제일 좋드나?”

“그야…… 길이랑 복이죠?”

“맞제? 다른 사람들 다 똑같다. 근데 중요한 건 그기 아이거든. 아무리 길하고 복이 있어도 흉이랑 화가 따라붙으면 소용없는 기라. 가장 우선시해야 되는 건 화와 흉을 피하는 게야.”

양규리는 그리 말하고는 불쑥 질문을 던졌다.

“경복아 니 지금 어떴나? 회사 관두고 방송 시작하니까 행복하드나?”

“네.”

“그래, 계속하고 싶제? 이런 행복 누리고 싶제?”

“그렇죠.”

“근데 니 신기가 고꾸라져서 다 없어질까 걱정된다, 맞제?”

“……네.”

그 질문과 답으로 이경복은 양규리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경복아, 네가 하는 일이 행복하면 옳은 길이 맞다카이. 근데 흉과 화가 뭔지도 모르니까 걱정이 앞서는 기다. 그래서 한계를 알아야 된다는 말이고.”

“한계……”

이경복의 표정이 굳었다.

생각할 시간을 주려는 듯 양규리도 입을 다물었다.

“경복아, 신어머니가 한 말씀을 너무 과하게 받아들이지 마라.”

“네?”

“신에게 잡아먹힌다, 이게 뭔 뜻인지는 제대로 알고 있나?”

이경복은 눈을 굴렸다.

할머니는 엄중하게 경고만 하셨지 부가적인 설명은 하지 않았다.

“그건 신기에 휘둘려서 자기 생각과 판단을 버리게 된다는 뜻이다. 물론 허주에게 먹히느냐 진짜 신에게 먹히느냐는 차이가 있제.”

“차이요?”

“허주는 제 욕망 때문에 인간을 조종하려고 한다켔제? 하지만 니는 그런 게 아이다. 애당초 허주가 니 신기를 감당할 수도 없으니 몸주신이 오실 게야. 그런데 그 신기가 너무 강하니 언제나 ‘옳은’ 방향으로만 가게 되는 기다.”

“그건 나쁜 게 아니지 않아요?”

“나쁘지는 않제. 전자는 ‘강탈’이고 후자는 ‘순종’이라 생각하면 된다. 하지만 둘 다 자유의지를 잃게 되는 건 마찬가지 아니겠니?”

양규리는 이경복을 위아래로 훑으며 말했다.

“신어머니는 네가 어린 나이에 잘못된 선택을 할까 봐 강하게 말씀하신기다. 근데 이제는 니도 얼라가 아니제. 스스로 돌아볼 깜냥은 되지 않겠니?”

“무슨 뜻인지는…… 알 것 같아요. 근데 한계라는 건 도통 이해가 잘 안 되네요.”

이경복은 머리를 긁적였다.

그 모습에 양규리가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하이고야, 경복아. 니는 가장 훌륭한 무당을 봐왔으면서 어째 모르니?”

“할머니요?”

“맞지. 신어머니가 얼마나 영험했는데? 미래도 엿보고 사람들 속내까지 들춰보는 경우가 허다했다 안카나. 내도 옆에서 보고 어찌나 놀랬…… 아, 맞네. 니는 없었제.”

양규리는 과거를 곱씹다가 아차 싶었는지 손뼉을 쳤다.

이경복의 할머니 역시 신기를 알아본 바, 점사를 볼 때는 이경복이 신당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했던 터였다.

“그럼 예지력이나 독심술 뭐 그런 건가요?”

“그 정도야 당연히 될 거다. 경복이 니는 신기가 신어머니보다 강하니께, 그 이상도 되지 않겠니?”

“그 이상이라면……”

“내는 그 수준이 안 되니까 알려 주고 싶어도 몰라서 알려 줄 수가 없다.”

이경복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가상현실에서 신기를 발휘했을 때 느꼈던 감각은 어느 무당이라도 쉽게 이해할 수 없을 터였다.

“음…… 그래도 이모님이랑 이야기를 나누니까 한결 마음이 놓이네요.”

“맞나?”

“네. 뭐, 갑자기 돌연사하거나 객사한다는 건 아니잖아요?”

“엄메야. 그런 건 잡귀들이 이용가치가 떨어진 인간들 몸 떠날 때나 벌어지는 일이지. 니는 그럴 걱정 하나도 없다.”

이경복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이내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양규리가 뭔가 싶어 보니 그가 테이블 위에 봉투 하나를 꺼냈다.

“이건 뭐니?”

“복채에요.”

“복채? 어이구야, 니 잘 된다더니 정말이었구나.”

양규리는 사양하지 않고 안을 확인하더니 환하게 웃었다.

“참말로 우리 경복이가 으른이 됐네, 으른이 됐어.”

“할머니한테 배웠죠. 복채는 액수가 아니라 담긴 마음이랑 정성이 중요하다고요.”

“맞다, 맞다. 감사를 모르는 사람은 천벌을 받는다 안 카나. 제대로 배웠다야.”

같은 액수라도 가난한 이가 내미는 것과 부유한 이가 내미는 경우는 다르다. 이경복은 돈 몇 푼 아끼려다가 할머니의 불호령에 쫓겨난 손님들을 본 기억이 많았다.

“경복이, 니 앞으로도 이런 고민 있으면 언제든 이야기해야 된다?”

“양식이 드시고 싶으셔서요?”

이경복이 장난스럽게 묻자 양규리의 표정이 다시금 변했다.

“그기 아이라, 니도 내 가족이라 안 카나.”

따뜻한 그리고 약간은 아련한 얼굴이었다.

“비록 피는 안 이어졌다케도, 내가 가장 힘들 때 거두어 주신 신어머니가 진짜 가족이다. 그 손자인 너도 마찬가지고. 적어도 내는, 그렇게 생각한다.”

신기가 없어도 그 말이 진심이라는 건 쉽게 알 수 있었다.

“네, 알았어요.”

이경복은 이에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이모님.”

진심에는 진심으로.

이경복은 감사를 전했다.

* * *

다시 집으로 돌아오니 이른 저녁이었다.

이경복은 그대로 침대에 몸을 던졌다.

“신은 고통을 원하지 않는다라……”

그는 양규리의 말을 다시금 곱씹었다.

‘그럼 내가 겪은 반동과 신병은 일종의 경고인가? 그 선을 넘지 말라는?’

이경복은 천천히 몸을 일으켜 방 안에 놓인 캡슐을 돌아봤다.

‘캡슐의 경고메시지도 마찬가지겠지. 연산 한계치가 넘어서면 과부하가 일어난다고.’

한계선.

그것을 넘지만 않는다면 안전은 보장된다. 그 전에 겁을 집어먹을 필요는 없었다.

보다 신기를 유용하게 쓰려면 그 한계치를 알아둘 필요가 있었다.

그저 막연하게만 느껴졌던 불안감은 기준이 확립되자 바로 가라앉았다.

‘부모님도, 할머니도 지켜보고 계시는 거구나.’

그리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하지만 이내 그의 주의는 다른 곳으로 쏠렸다.

우웅하는 짧은 진동과 함께 떠오른 메시지.

[‘GENOME’님이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바로 지놈의 분석 방송 알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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