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의 신들린 게임방송-96화 (96/491)

96화 - 몰래 온 손님 (1)

방송이 켜지자 지놈은 환하게 웃으며 인사했다.

“트하! 유전자 레벨로 게임을 잘하는 남자, 지놈입니다!”

-지하!

-게하!

-혀엉! 이제 인사 멘트 바꿔야 되는 거 아니냐구 ㅋㅋㅋ

-ㄹㅇㅋㅋ 트최입 된 지 거의 한 달인데

시청자들은 시작과 동시에 장난스럽게 채팅을 쳤다. 지놈은 코웃음을 치며 손을 내저었다.

“나 참, 얘들아. 나 유전자 레벨로 잘하는 건 맞거든? 그 이상으로 잘하는 사람들이 나타난 거지. 갑자기 내 게임 실력이 떨어진 게 아니라니까? 안 그래?”

-고건맏찌

-아 ㅋㅋ 바로 입지컬 나오쥬?

-유전자 레벨이 천상계인 줄 알았더니 그 위가 있었자너 ㅋㅋㅋ

-ㅁㅇㅁㅇ 왜 오늘 방송 일찍 켬?

-이제 피크 시간대 피하기로 한 거야?

-새벽 방송 못 버티게 된 거 아님?

-늙고 병든 우리 형 ㅠㅠㅠ

-않이 ㅋㅋㅋ 게놈들 공지 안 보냐굿!

시청자들이 유입되며 빠르게 채팅이 올라왔다. 지놈은 평소처럼 손뼉을 치며 주의를 환기시켰다.

“이 자식들이 들어오자마자 극딜이네. 자자, 집중! 오늘은 특별히 게스트를 모셨으니까 알지? 톤 앤 매너 지켜주고.”

-갑분게스트?

-누군데 방제도 안 바꾸는 곀ㅋㅋㅋ

-HOXY?

-요즘 핫한 그분?

-엥? 오늘 휴방인디?

-아 ㅋㅋ 저번에도 휴방이라 그러고 나왔다구!

-자기 방송은 안 켰으니 휴방이라는 블랙기업 마인드

시청자들의 기대감에 지놈은 신속히 입을 열었다. 괜히 이 상황을 끌었다가는 게스트에게 실례가 될 터였다.

“자, 바로 모셔 보겠습니다! 이 시대 살아있는 기사의 표본, 이클립스 님 입니다!”

“안녕하시오!”

박수갈채 소리와 함께 이클립스가 등장했다. 게임이 아닌 스튜디오임에도 그는 기사답게 갑옷을 걸치고 있었다.

-엌ㅋㅋㅋㅋㅋㅋㅋ

-이클립스가 갑자기 왜 나와?

-아 ㅋㅋ 감 잡았으

-이 시기에 이클립스? 이건 무적권이지 ㅋㅋㅋㅋ

-캬 ㅋㅋㅋ 역시 우리 형 흐름 타는 건 미쳤다니까

-분석 방송이네 ㅋㅋㅋ

몇몇 시청자들은 벌써부터 방송 내용을 짐작해 냈다. 지놈의 방송경력만큼이나 시청자들의 시청 경력도 무시할 수준이 아니었다.

“자! 오늘은 이클립스 경과 함께 최근 가장 이슈가 된 그 스트리머, 퍼플 님의 엘든 소울 최종보스전 분석을 진행합니다!”

-아 ㅋㅋ 여기서 퍼손실이 채워지누

-뭔가 레스토랑 가는 대신 밀키트 사서 먹는 느낌인데

-밀키트 ㅇㅈㄹ ㅋㅋㅋㅋ

-게놈들 배가 불렀누 ㅋㅋㅋ

-이클 님 정도면 초호화 캐스팅 아니냐?

-그래서 안 먹음?

-당연히 닥치고 먹지!

시청자들은 흔쾌히 방송을 반겼다. 지놈의 팬층과 이경복의 팬층이 많이 겹친 덕이었다.

“시작에 앞서 요즘 게임 좀 한다 하는 사람들 치고 모르는 사람이 없긴 하겠지만, 간단히 설명부터 들어가겠습니다.”

그리 말하며 지놈은 이클립스를 자리로 안내했다. 이어 그가 가볍게 손가락을 튕기자 스튜디오의 배경이 중세풍으로 바뀌었다.

-캬 ㅋㅋ 지놈이 이런 건 잘해 ㅋㅋ

-바로 복장도 바꾸는 거 보소 ㅋㅋ

-포브스 선정 게스트 맞춤 스트리머 1위!

-이클 님 두리번거리는 거 커엽누 ㅋㅋㅋ

배경과 지놈의 복장까지 바뀌자 이클립스의 모습도 위화감이 사라졌다. 지놈은 싱긋 웃으며 가볍게 헛기침을 했다.

“흠흠, 이클립스 경도 소식을 들었을 겁니다. 바로 어제죠. 퍼플님의 방송을 통해 엘든 소울, 정확히 말하면 엘든 시리즈가 이전 다크 룬의 프리퀄이라는 게 밝혀졌습니다.”

“그렇소. 내가 기사도에 발을 딛게 해 준 계기가 되었던 그 작품이지.”

이클립스가 들뜬 목소리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지놈은 이어 손가락을 움직여 자료화면을 띄웠다.

“예, 맞습니다. 이에 프롬 스튜디오는 그 공개 시점에 맞추어 다크 룬의 가상현실 리마스터 버전 제작 소식을 밝혔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죠.”

화면에는 해외 게임 웹진들의 헤드라인이 떠올랐다. 채팅창은 감탄 일색이었다.

-나 실시간으로 이거 보고 잠 다 깸ㅋㅋㅋㅋ

-퍼플의 월클 데뷔 ㅋㅋㅋㅋ

-데뷔는 뭔ㅋㅋㅋ 이미 바크 때 알 사람은 다 알았음

-그랬음?

-근데 막 방송 시작할 때라 크게 주목 못 받았었지

-막 방송 시작이랑 월클 데뷔가 같이 붙어있는 게 안 이상하냐고 ㅋㅋ

지놈은 이내 다른 화면을 하나 더 띄웠다. 개발사 대표의 발표 영상 중 완벽의 기사 소개 부분이었다.

“그와 더불어 프롬은 이 일을 기념해 퍼플 님을 본뜬 NPC 캐릭터, ‘완벽의 기사’를 소개했습니다. 이클립스 경도 이런 경우가 있으셨죠?”

“음음, 그렇소. 그것도 나름 시간이 지났구려.”

“맞습니다. 여기 이클립스 경도 결투대회 세계 1위를 2연속으로 석권하며 ‘일식의 기사’로서 추앙받았습니다.”

지놈은 그리 말하며 ‘일식의 기사’ 캐릭터 화면도 추가해 게스트를 대접해 주는 것도 잊지 않아야 했다.

-캬 ㅋㅋㅋ 2연속 한국 게이머 기념

-진짜 웅장이 가슴해진다

-아 ㅋㅋ 문화 승리 해버렸쥬?

-김구 선생님, 보고 계십니까 ㅠ

-다시는 한국 게이머를 무시하지 마라!

-누가 무시했냐고 ㅋㅋ

“자! 여기서 우리가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과연 이런 결과를 만들어 낸 퍼플의 플레이! 대체 어떻게 이루어진 것일까? 그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바로 오늘! 저 지놈과 일식의 기사, 이클립스 경이 함께합니다!”

지놈이 방송의 텐션을 올리기 시작했다. 채팅창도 덩달아 흥겨워했다.

-바로 퍼플 코인 타버리기~

-빨대 바로 꼽아버리쥬?

-이건 못 참지 ㅋㅋㅋㅋ

-둘이 처음 만났을 때 생각하면 진짜 상상도 못할 일이다 ㅋㅋㅋ

-다시 생각해도 우리 형이 바로 도게자 박은 건 신의 한수였음

-퍼플 코인 지금이니?!

-센세, 퍼플 코인은 ‘지금’이 아닌 적이 없습니다

-엌ㅋㅋ 고건 맏찌

시청자들은 과거 퍼플과의 첫 만남부터 들추며 지놈을 놀렸다. 하지만 그런 놀림에 당황할 정도로 지놈은 어수룩하지 않았다.

“아니, 님들. 당연한 거 아닙니까? 스트리머 중에 가장 먼저 퍼플 님 만난 게 누구야? 나야, 나! 당연히 내가 먼저 타야지!”

그가 오히려 역정을 내자 채팅창은 웃음바다가 되었다.

“이건 안 타는 게 오히려 이상한 거야. 한국 게임사들 지금 뭐합니까? 퍼플 잡기만 하면 떡상하는 거 몰라요?! 지금 숙제 넣어둬야지! 나중에는 몇 달은 기본으로 밀립니다?”

-아 ㅋㅋ 숙제는 밀리는 게 국룰이지

-밀린 숙제는 몰아 풀어야 제 맛!

-않이 ㅋㅋㅋ 보통 숙제 내는 쪽에서 밀리진 않잖아

-킹직히 똥겜이어도 갓플이 하면 평타는 될 듯 ㅋㅋㅋ

-오히려 갓플을 놓쳤다고 핑계 대려는 거 아님?

-??? : 크윽…… 하필이면 갓플과 광고를 못해서 망하다니

-명예로운 죽음이냐고 ㅋㅋㅋㅋ

지놈은 슬쩍 채팅창을 살피며 눈썹을 들어 올렸다.

“저, 진짜 값진 충고를 무료로 해드리는 겁니다? 뭐, 덕 좀 보셨다 싶으면 저도 같이 끼워 주시면 좋고.”

-본심 바로 나와버리기 ㅋㅋㅋ

-아 ㅋㅋ 제대로 빨대 꼽누

-우리형 이제 끼워 팔기까지 ㅠㅠ

-덤이라도 갓플에 붙으면 다르지 ㅋㅋㅋㅋ

-ㄹㅇㅋㅋ 오히려 평가 상승이쥬?

-킹직히 퍼지데이 재밌었다 ㅇㅈ?

-고건 쌉인정이구연 ㅋㅋㅋ

지놈은 빠르게 눈을 굴렸다. 시청자들과 티키타카는 이 정도면 충분할 터였다.

“말 나온 김에 이 자리를 빌어 분석을 허락해 준 퍼플 님께 다시 감사드립니다. 오늘 방송, 무단 렉카들과 달리 절차 다 밟고 하는 겁니다? 그럼 본격적으로 시작해보겠습니다!”

그는 멘트를 던지며 신속히 화면을 조작했다. 가장 먼저 준비된 화면은 바로 최종보스전의 시작 부분.

전례가 없던 3파전이었다.

“이야, 다시 봐도 놀랍네요. 어떻게 이런 구도가 나오지? 이건 진짜 방송의 신이 찍어준 거라고 밖에 볼 수 없습니다.”

지놈은 방송이 아니라 진심을 담아 감탄했다.

“이게 노리고 한 거든, 그냥 무심코 한 거든 방송 각을 제대로 본 거거든. 이런 장면이 이전까지는 한 번도 없었잖아요?”

-진짜 여기서 저격이 들어 올 줄 누가 알았겠냐고ㅋㅋㅋㅋ

-게다가 그걸 무시하고 바로 알현실로 돌격하는 패기 ㅋㅋㅋ

-방송만 생각하는 바보!

-퍼갈량의 천하삼분지계는 ㄹㅇ 전설이다

-네? 3분찌개요?

-무근본 드립 뭐냐고 ㅋㅋㅋㅋㅋ

-근데 킹직히 갓플이면 3분 안에 저격러 다 끝낼 듯 ㅋㅋㅋ

-엌ㅋㅋ 그런 의미였눜ㅋㅋ

그리 쾌활한 지놈과 시청자들과 달리 이클립스는 팔짱을 끼며 고개를 내저었다.

“본인은 이걸 보고 무척이나 불쾌했소.”

“불쾌요?”

“그렇소. 기습, 그것도 다수가 한 사람을 억압하다니! 이런 건 기사로서의 수치요!”

이클립스의 목소리에는 노기가 실려 있었다. 이에 시청자들도 새삼 공감했다.

-하긴 맞말이지

-ㄹㅇㅋㅋ 퍼플이 이겼으니까 다행이지 방송 말아먹을 뻔

-그냥 저격도 아니고 단체저격 개극혐

-점마들 커뮤에서 활동하는 고인물들이라던데

지놈의 눈이 순식간에 채팅창을 훑었다. 여론이 과열되기 전에 손을 써야 했다.

“오히려 퍼플 님이니까 이런 상황이 벌어진 점도 있습니다. 사실 다른 사람이었다면 단체로 올 필요도 없잖아요?”

그의 말에 이클립스가 시선을 돌렸다.

“저격을 옹호하려는 건 아닙니다만, 내막을 보니 정상 참작할 여지도 있긴 하더라고요. 솔직히 저격을 많이 받아본 입장에서 이렇게 공손한 저격은 본 적이 없습니다.”

-그것도 맏찌

-갓플 따라하려던 뱁새들이 문제였지 ㅋㅋㅋ

-엘소는 19세 게임인데 그걸 파악할 능지가 안 되나?

-ㄹㅇㅋㅋ 얼라도 아닌데

-그럼 호드인가요?

-틈새 드립 뭐냐고 ㅋㅋㅋㅋ

채팅창 반응이 부드러워지자 지놈은 안심하고 말을 이었다.

“더욱이 당사자인 퍼플 님도 달리 문제시 여기지 않았잖아요? 제 3자인 저희들이 왈가왈부하는 건 오히려 실례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음…… 지놈 경 말이 맞소. 내가 감정이 좀 앞선 것 같구려.”

이클립스도 동의하자 채팅창 분위기도 가라앉았다

-하긴 갓플이 가만히 있는데 우리가 뭐라고 ㅋㅋㅋㅋ

-역시 트최입이다 ㅋㅋㅋ

-맞는 말인데 괜히 킹 받는 건 왜 때문?

-그건 게놈들이 심술쟁이기 때문이 아닐까?

-지는 아닌척 ㅋㅋㅋㅋ

-아 ㅋㅋ 톤 앤 매너 지키라고

지놈은 분위기 전환을 위해 곧바로 화면을 넘겼다.

“자, 우리가 집중해야 하는 건 바로 이거죠. 퍼플 님의 활약상! 이클립스 경께서는 만약 이런 상황이라면 어떻게 대응하시겠습니까?”

“흠, 본인이라면……”

이클립스는 잠시 주저하다가 입을 열었다.

“배신자 10인과 즉사영역을 견뎌내는 건 할 수 있을 것이오.”

“오, 이 정도는 괜찮다는 뜻일까요?”

지놈과 더불어 채팅창에도 물음표가 떠올랐다. 이에 이클립스는 급히 손을 내저었다.

“아니, 그렇지는 않소. 퍼플 경처럼 배신자들을 처단하는 건 힘들지. 본인이 말하는 건 이 안전구역에서 버티고, 영역이 겹쳤을 때 1;1 승부 정도는 이길 수 있다는 뜻이었소.”

“아하, 확실히 그렇죠. 이클립스 경이라면 1:1의 대가시니까요.”

-ㅇㅈ 또 ㅇㅈ이지

-세계 대회 1등은 아무나 따냐 이 말이야

-오히려 다른 성령들이 개입을 못해서 쉬울듯ㅋㅋㅋㅋ

-아무리 커뮤 고인물이어도 이클립스랑 1:1은 못 이기지 ㅋㅋㅋ

-??? : 이겼는데요?

-갓플은 커뮤 고인물이 아니잖슴~

-어나더 레벨이라고 ㅋㅋㅋ

시청자들도 순순히 의견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이에 지놈은 바로 다음 패턴으로 넘어갔다.

거울상의 등장과 침묵 속의 난전.

지놈이 질문하기도 전에 이클립스는 깊이 한숨을 내쉬었다.

“기사로서는 부끄럽소만, 만약 본인이었다면 퍼플 경처럼 맞서기보다 도주를 택했을 것이오.”

“도주요?”

“그렇소. 설령 눈앞의 적을 처리한다 한들 다음에 다시 불사자로 되살아나지 않소? 승리를 위해서라면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를 택할 수밖에.”

“확실히 그러면 뭔가 술래잡기처럼 보이겠네요.”

-이클립스와 술래잡기? 이건 못참지 ㅋㅋㅋㅋ

-않이 ㅋㅋ 그래도 기사 컨셉러인데 술래잡기는 너무하자너

-상상하니까 웃기긴 하네 ㅋㅋㅋ

-빤스런 뭐냐구!

채팅창에 웃음이 터졌지만 지놈은 입꼬리 하나 실룩이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엄격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얘들아, 이거 이클립스 경이나 되시니까 술래잡기가 되는 거야. 너희들이 이 상황 되잖아? 바로 끔살이야, 끔살. 주제 파악은 좀 하자?”

농담과 진담이 섞인 반응이었다. 게스트를 놀리는 듯한 시청자들에게 주의를 준 것이었다.

시청자들도 이에 타겟을 바꾸었다.

-형은 아닌 것처럼 말하네?

-아 ㅋㅋ 스리슬쩍 넘어가 버리쥬?

-선긋기 뭔데!

-킹직히 끔살은 아니어도 형도 죽잖엌ㅋㅋㅋ

지놈은 이내 평소처럼 코웃음을 쳤다. 분위기를 주도하는 건 그의 특기 중 하나였다.

“너희들은 아직도 날 몰라? 나였으면 이미 1패턴 끝날 즈음에 저격러들한테 입 털었지.”

채팅창에 물음표가 올라오자 지놈은 히죽 웃으며 말을 쏟아냈다.

“원하는 게 뭐야? 나 없이 공략? 오케이, 접수. 근데 2패턴 들어갈 때 됐네? 그래도 방송이니까 이것까지만 좀 버티자. 내 가오 좀 살려 주라 응? 3패턴에서 바로 죽어줄게. 딱 던지고 끝나면 뭐다? 그걸 믿었음? 지놈킥!”

-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입지컬 활용 미쳤쥬?

-이게 그 배놈인가 그거냐?

-배(신)놈ㅋㅋㅋㅋㅋ

-저거 안 들어주면 계속 입 털 듯 ㅋㅋㅋㅋ

-역시 우리 형은 비열하다니깐!

-바로 지놈킥하고 티배깅 할 듯 ㅋㅋㅋㅋ

-ㄹㅇㅋㅋ 에이든 깨는 거보다 티배깅이 더 중요함

경직된 분위기가 곧바로 풀어졌다. 지놈은 실소를 흘리며 바로 다음 화면으로 넘어갔다.

“자자, 가장 중요한 파트! 여기가 바로 하이라이트죠. 진짜 최종 보스, 에이든과의 전투입니다! 무려 22:1의 전투, 과연 가능할까요?”

“불가능하오.”

이클립스는 일말의 고민도 없이 즉답했다. 그 반응속도에 순간 지놈도 시청자도 말을 잊었다.

“네? 하지만 이클립스 경도 1인 클리어를 하시지 않았습니까?”

“본인이 한 것은 에이든과의 1:1승부였소. 퍼플 경처럼 21인의 불사자들과 같이 상대하라는 건 어불성설이지.”

이어지는 질문에도 이클립스는 단호했다.

-이게 맏찤ㅋㅋㅋ

-아는 만큼 보인다 이말이야

-보자마자 딱 각이 나오는 게 진짜 짬바지 ㅋㅋㅋ

-ㄹㅇㅋㅋ 오히려 뭣도 모르는 놈들이 자기도 할 수 있다고 나댐

-전형적인 뱁새들이쥬?

시청자들은 이에 수긍했다.

채팅창 분위기를 살핀 지놈은 이내 미소를 지었다.

“맞습니다! 바로 그게 오늘 방송의 핵심! 역시 이클립스 경이시네요!”

그는 경쾌하게 목소리를 높이며 방송의 텐션을 끌어올렸다.

“무려 이클립스 경조차 불가능한, 아무도 못 한 일을 대체 퍼플 님은 어떻게 해냈는가? 그것을 분석하기 위해 오늘 이 자리에 모인 게 아니겠습니까!”

-크 ㅋㅋㅋ 이제 본론이쥬?

-메인디쉬 나오누 ㅋㅋㅋ

-아 ㅋㅋ 군침이 싹 돌아버리기

-된다는 건 보여줬는데 어떻게 이게 되냐고!

-알아도 못 따라하는 건 확실한데 ㅋㅋㅋㅋ

-아 그래도 궁금한 건 못 참지 ㅋㅋ

지놈은 빠르게 올라오는 채팅들을 보며 미소 지었다.

“일 대 다수의 전투는 이미 퍼플님이 숱하게 증명하셨죠? 그러니 불사자들 공략은 생략하고 바로 핵심으로 가 봅시다. 자, 누가 뭐라고 해도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이 장면이죠?”

그의 손짓과 함께 재생되는 화면. 에이든의 대검을 흘려낸 이경복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패링 불가! 가드 불가! 지금까지 살기 위해서는 오로지 바닥을 구르거나 쉴 새 없이 뛰어야만 피해낼 수 있었던 이 일격! 하지만 퍼플 님은 달랐습니다. 그야말로 ‘퍼펙트 흘리기’가 아닐 수 없죠! 시스템이 아닌 순수 실력의 증명!”

지놈은 멘트와 더불어 음소거 해두었던 화면의 목소리를 키웠다.

<이클 님한테 배운 검술이랑 용비늘 검 아니었으면 실패했을 거예요.>

에이든의 검격을 흘려낸 뒤에 나온 멘트. 지놈은 곧바로 이클립스 쪽으로 눈을 돌렸다.

“퍼플 님이 직접 밝힌 비결! 이클립스 경, 당사자로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클립스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팔짱을 낀 채 한차례 심호흡하더니 입을 열었다.

“사실, 본인도 가신들 모르게 퍼플 경의 이 업적을 따라잡기 위해 도전했소.”

그 말에 지놈은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채팅창의 반응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옼ㅋㅋㅋㅋ대박이눜ㅋㅋㅋㅋ

-어쩐지 방송을 안 키더라

-와씨 ㅋㅋㅋ 개꿀잼각

-설마 성공한 거?

-어뜨케 된 겨 어뜨케 된 겨!

지놈이 달리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시청자들은 그의 대답을 재촉했다.

그러나 이클립스는 서두르지 않았다.

“본인은 그동안 에이든과 많은 전투를 치렀지만 그의 검을 받아내겠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소. 그저 떨어지는 대검을 피하는 데 급급했었지. 패링과 가드가 불가하니 회피만이 답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오.”

“누구나 그렇게 생각했을 겁니다. 저 역시 그랬죠.”

지놈은 재촉하지 않았다. 적절히 애를 태우는 건 시청자들의 몰입도를 높여 주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퍼플 경은 달랐소. 그는 두려움 없이 에이든의 검과 마주했지. 나도 그러고 싶었소. 그래서 가장 먼저 그 검을 ‘보는’ 것부터 시작했소이다.”

“봤다? 더 자세한 설명, 부탁드리겠습니다.”

“그것은 검격이라기보다는 건물이 무너지는, 혹은 자연재해를 맞닥뜨린 것과 같았소. 그걸 보면서도 도망치지 않는 건 꽤 많은 노력이 필요했지.”

-확실히 그럴 듯 ㅎㄷㄷ

-웬 기둥이 덮쳐오는 거 자너 ㅋㅋㅋ

-맞네 ㅋㅋ 방송 볼 때는 순식간이라서 생각도 못 했는데

-난 도망 안 침!

-우리 게놈은 안과 못의 차이를 모르니?

-얼타거나 쫄아서 굳어버린 거면서 ㅋㅋㅋ

-아 ㅋㅋㅋ 아무튼 도망 안 친 거라고

시청자들은 상황에 자신을 대입하면서 공감을 표했다.

“그래도 결국 익숙해졌소. 죽음, 또 죽음을 반복하니 버텨낼 수 있었지. 그 결과 그 검에도 ‘날’이 있다는 걸 알게 됐소.”

“그렇다면?”

“본인 역시 에이든의 대검을 맞대는 건 성공했소. 허나, 단 한 번도 흘리지는 못했소이다.”

“혹시 무기의 차이 때문은 아니었을까요? 퍼플 님은 무려 유일등급의 용비늘 검이니까 차이가 있었을 것 같은데.”

지놈은 자신의 역할을 수행했다. 시청자들이 궁금해 하는 점을 대신 짚어 주는 건 그의 몫이었다.

이클립스는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오. 검을 흘리는 건 결국 검의 형태가 유지되면 가능한 일. 내구도만 튼튼하다면 등급은 상관이 없소.”

그리 말하며 이클립스는 서서 검을 빼들었다. 그리고 지놈에게 손짓했다.

지놈은 눈치껏 일어서서 마주 검을 뽑았다.

“검을 휘둘러 보시겠소?”

“흠흠, 알겠습니다. 여러분 이건 시연을 위한 겁니다? 알죠?”

-아 ㅋㅋㅋ 미리 떡밥 뿌리지 말라고

-응~ 진심으로 해도 당할 거 다 알아

-보인다 보여!

-추놈아 게하다……

지놈은 가볍게 검을 휘둘렀다.

이클립스는 날아드는 검을 가뿐하게 흘려보냈다.

“어우.”

“다시, 이번에는 천천히.”

“알겠습니다.”

지놈은 이번에는 느릿하게 검을 움직였다. 이클립스도 그에 맞추어 천천히 검을 맞댔다.

“흘린다는 개념의 요지는 결국 가해지는 힘을 분산시키는 것이오. 이를 위해서는 이처럼 날과 날이 맞닿는 부분, 최적의 점과 각도를 파악하는 게 중요하오.”

“그냥 일반적인 검으로도 어려워 보이네요.”

“그렇소이다. 게다가 이게 끝이 아니오. 검이 맞닿는 순간 양측의 힘은 시시각각 변화하니 그 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완급조절도 중요하외다.”

-ᅟᅦᆨ?

-선생님? 진도가 너무 빠릅니다!

-아 ㅋㅋ 이것도 모르냐고(모른다)

-교수님 아시겠어요? 저는 검을 든 감자라구요!

-야야! 얼른 바보인 척해! 그래야 덜 쪽팔리지!

-헤, 트수 바보 아이다!

-트수들이 흘리는 건 검이 아니라 침이었고 ㅋㅋㅋㅋ

-귀한 분 모셔 놓고 이게 뭐냐구!

채팅창 반응에 지놈은 헛기침을 하며 시연을 중지했다.

“흠흠, 엄청 어렵다. 그것만 알면 됩니다. 근데 이클립스 경, 일반적인 검도 아니고 기둥만한 대검이 아닙니까? 여기에도 적용이 될까요?”

“본인의 경험으로 미루어 보아 포기하지 않고 도전한다면 성공은 할 수 있소.”

그의 말에 분위기가 일변했다.

지놈은 눈을 번쩍 뜨며 물었다.

“그 말씀은 ‘누구도 따라하지 못할 업적’까지는 아니라는 뜻이신가요?”

“아니, 그건 아니오.”

“네?”

“본인이 말한 성공은 요행을 뜻하오. 적어도 확률이 0이 아닌 이상 무수한 도전 끝에 그 확률을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외다. 하지만 2번은?”

이클립스는 자문하듯 질문을 던지고 머리를 흔들었다.

“그나마 첫 번째 일격은 같은 조건이니 될 것이오. 하지만 그 이후는? 다른 상황, 다른 각도, 다른 힘에 대한 대응은?”

“그건…… 불가능에 가깝겠군요.”

“그렇소. 하지만 퍼플 경은 어땠소이까?”

지놈은 그 물음에 신속히 손을 움직였다. 이내 자료화면은 철의 왕좌 위, 에이든의 공격을 다시 받아낸 이경복의 모습으로 변했다.

<처음만 어렵지. 2번은 쉽거든.>

재생된 이경복의 목소리가 그 대답이 되었다.

“이게 진짜 실력인 거요. 심지어 마지막에는 용비늘검이 아니라 동강난 장검으로 막지 않았소? 말했듯, 무기의 차이가 아니라는 건 이미 퍼플 경이 증명을 했소이다.”

-아! 맞네 ㅋㅋㅋㅋ

-운이나 확률 따위에 의존하지 않는다 이 말이야

-심지어 첫트ㅋㅋㅋㅋ 반복해서 숙련한 것도 아님

-캬! 분석해보니 어마어마하누

-역시 엘든유일검!

-진짜 ‘퍼펙트 흘리기’였자너 ㅋㅋㅋㅋ

-결론) Dont try this at home

-레슬링이냐곸ㅋㅋㅋ

-유일검!유일검!유일검!유일검!

-유일검의 스승 이클립스 ㅎㄷㄷ

-개간지나누 ㅋㅋㅋㅋㅋㅋ

-이게 바로 K-검술이다

-ㅅㅂ 그놈의 K ㅋㅋㅋㅋ

이클립스가 내린 결론에 시청자들은 퍼플은 물론 이클립스에게도 찬사를 보냈다.

지놈은 그 반응에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손뼉을 쳤다.

“역시 검술의 대가 이클립스 경이십니다! 명쾌하고 확실한 분석 감사드립니다. 자, 그런데 저는 여기서 조금 다른 관점에서 분석을 시작해 볼 건데요.”

그의 말에 시청자는 물론 이클립스의 주의도 돌아갔다. 이내 그가 손을 움직이자 화면이 뒤바뀌었다.

“아마 퍼플 님을 좋아하신다면 이 방송도 보셨을 겁니다. 리얼리티 사에서 이번에 퍼플 님을 위해 캡슐을 커스텀 모델로 교체해드렸었거든요?”

화면에 나온 건 이경복의 캡슐 언박싱 영상 장면이었다. 이윽고 화면이 줌인 되며 연산량 그래프 쪽을 확대했다.

“혹시 지난번 장인해부학에서 제가 했던 말 기억하십니까?”

대답을 기다린 건 아닌 듯 지놈은 그래프 옆에 장인해부학에서 썼던 활성화된 뇌영역 자료를 띄웠다.

“제가 그때 뭐라고 했었죠? 퍼플 님은 일반인들과 달리 뇌를 사용하는 게 다르다고 했었죠? 당시에는 많은 사람들이 무시하거나 저를 비웃었습니다. 지금 큐튜브 가보면 비아냥거리는 악플도 많아요. 제가 노골적인 악플을 지웠는데도 그렇습니다.”

-소인배 ON!

-우리 형이 뒤끝이 좀 있어요!

-근데 진짜 심하기는 했음 ㅋㅋ

-ㄹㅇㅋㅋ 큐튜브 올린 거 아마 신고 먹어서 노딱 붙었을 듯

-지구 평평설은 놔두면서 이 대처는 무엇?

-나라도 빡친다 ㅋㅋㅋㅋ

-큐튜브도 저격이 들어오는 남자

시청자들은 이에 동감하면서도 놀림을 멈추지 않았다. 지놈은 아랑곳하지 않고 당당히 가슴을 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떻습니까!? 제 예상이 증명이 됐죠? 일반인들의 평균치보다 월등한 이 연산량을 보세요! 아니, 무려 캡슐에서 경고 메시지가 뜰 정도야. 난 그런 게 있는지도 몰랐어.”

그는 더욱 텐션을 올렸다.

방송을 위해서기도 했지만 그 보다는 진심의 비중이 더 컸다.

“실제 사례도 있잖아요? 제가 구독권 선물한 슬롯 뽑기, 이번에 유일등급 용비늘 검 제작할 때도 그냥 한 게 아니라 퍼플 님은 뭔가 본 거라니까? 우리 같은 범인들은 못 보는 거 다 볼 수 있다 이겁니다!”

이클립스는 이에 동의하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채팅창도 마찬가지로 모두가 그 사실을 인정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 오로지 퍼플 님만 볼 수 있는 시야가 있던 거예요. 이게 뭐다? 완벽한 시야, ‘퍼펙트 비전’이다! 퍼플 님은 이 ‘퍼펙트 비전’의 소유자라는 거예요. 이제 좀 믿기십니까?”

-역시 초능력자였누 ㅋㅋㅋㅋ

-아 ㅋㅋ 이 형 또 신조어 만드네

-나도 그런 거 하나만 있었으면 ㅠ

-분석결과) 퍼플이 퍼플한 거다

-요약 너무 완벽하고 ㅋㅋㅋ

-우리 형 찐텐이라 더 웃기네 ㅋㅋㅋㅋ

-억울함 해소 방송인가요?

-와 근데 진짜 세상 보는 게 다른 건가

-(게말콘)

-어떤 느낌일지 상상도 안 가누

-????

-어?

-뭐야?

시청자들이 그 말에 반응하는 와중 한 이모티콘을 계기로 갑자기 상황이 뒤바뀌었다.

-뭐야?

-내가 뭘 잘 못 봤나?

-어씨 ㅋㅋㅋㅋㅋㅋ

-형! 형! 챗창! 챗창!

그 이모티콘을 쓴 시청자의 아이디 때문이었다. 지놈과 이클립스도 그것을 알아차렸다.

그것은 지놈의 구독자가 사용하는 이모티콘이 아니었다.

“어? 뭐야? 왜 여깄어?”

지놈은 헛웃음을 흘렸다.

-퍼펙트플레이 : 트하! 분석 재밌네요 ㅎㅎ

이경복이 직접 방송에 채팅을 친 덕분이었다.

-뭐야? 찐이야?

-헐ㅋㅋㅋ 찐이네

-분석대상ㅋㅋㅋㅋ 등판ㅋㅋㅋㅋ

-않이 ㅋㅋㅋ 님이 그 임티를 왜쓰냐고!

-몰래 온 손님 뭔데!

그의 등장에 시청자들은 흥분을 숨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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