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화 - 탈출은 재능순 (2)
이경복의 퀘스트 수락에 시청자들은 우려를 표했다.
-진짜 하이라이트 없이 깬다고?
-피지컬 겜도 아닌데 괜찮나ㅎㄷㄷ
-아 ㅋㅋ 갓플이 알아서 한다고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이말이야
-큐다리쉑 악랄하다 악랄해!
하지만 이미 퀘스트를 수락했으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이경복은 그런 반응에 실소를 흘리며 일어섰다.
“자, 일단 먼저 이 족쇄부터 해결을 해야겠네요.”
발목에 채워진 족쇄.
이걸 풀지 않으면 아무리 신기가 있어도 별도리가 없었다.
‘근데 어느 게 족쇄를 푸는 물건인지는 알 수가 없네.’
그의 신기는 탈출에 필요한 물품들의 위치를 알려 주고 있었다. 하지만 그 쓰임까지 명확하게 알려 주지는 않았다.
‘물건을 얻으면 알아낼 수 있으려나.’
이경복은 다시금 주변을 살폈다. 하지만 그 주위에는 해묵은 먼지만이 쌓여 있었다.
“영화에서는 톱이라도 주던데 아무것도 없네요.”
-쇠톱 ㅎㄷㄷ
-방탈출이지 스릴러는 아니니까 ㅋㅋㅋ
-갓플은 톱 있으면 쇠사슬 어떻게든 잘라낼 것 같음
-ㄹㅇㅋㅋ 퍼펙트-톱질 나옴
-않이 ㅋㅋ 퍼펙트 톱질은 또 뭔데 ㅋㅋㅋ
이경복은 걸음을 옮겼다.
몇 걸음도 채 되지 않아 쇠사슬이 팽팽해지며 절그럭 소리를 냈다.
“흠, 이거 시체 조사하는 건 엎드려도 어렵겠네요.”
지하실 중앙에 놓인 시체와 구석에 위치한 이경복 사이의 거리는 상당했다. 최대한 쇠사슬을 당겨 엎드려도 손이 닿지 않을 터였다.
-키 작으면 탈출도 못하냐!
-키 작은 사람 혐오를 멈춰주세요!
-혐오 ㅇㅈㄹ ㅋㅋㅋ
-딱 봐도 다른 방법 찾으라는 거자너
-ㄹㅇㅋㅋ 갓플 키 정도인데 안 되면 안 되는 거임 ㅋㅋㅋ
-딱 봐도 180 넘음 ㅋㅋㅋ
-머리 크기도 그렇고 키도 그렇고 모델 스펙인데?
-설마 얼굴까지 잘 생겼겠냐구!
시청자들이 재잘대는 사이 이경복은 족쇄 쪽으로 눈을 돌렸다.
“아, 족쇄가 고정된 건 아니네요.”
족쇄는 한쪽은 그의 발목에 다른 한쪽은 벽면에 있는 파이프에 매달려 있었다.
이경복이 족쇄를 옆으로 끌어보니 파이프에 매달린 것도 따라왔다.
“이렇게 하면 중앙으로는 못 가도 벽으로 갈 수 있습니다.”
-오 ㅋㅋㅋ 바로 찾았누
-역시 적응력 만렙
-이게 바로 퍼펙트-적응입니다만?
-갓직히 이것만으로도 상위 20%안에는 든다 ㅋㅋㅋ
-이게 뭔 20%? 간신 쳐내!
-ㄴㄴ 자기가 무슨 연체동물인 것처럼 발목 빼려는 사람 개 많음ㅋㅋㅋ
-이게 가상현실이라 안 아파서 그런 거 ㅋㅋ
-진짜였으면 아파서 1트에 관둠 ㅋㅋㅋㅋ
이경복은 벽을 따라 시체와 가장 가까운 자리에 위치했다. 여기서 엎드리면 시체를 확인할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이경복의 시선은 시체가 아닌 다른 곳을 향했다.
“음? 여기 파이프는 다른 것 보다 좀 많이 녹슬었네요?”
이경복은 가볍게 쇠사슬을 잡았다.
“이거…… 힘주면 빠질 것도 같네요.”
-오? 그런 듯?
-<관리 봇이 삭제한 메시지입니다 (경고 1회)>
-않이;;; 이게 왜 스포임!?
-아 ㅋㅋㅋ 바로 스포 나와버리쥬?
-킹파고 : 조용히 하세욧! (깡!)
-괜히 훈수 말고 구경이나 하라
구웃!
잠시 채팅창에 소란이 일어나는 사이 이경복은 쇠사슬을 잡아당겼다. 기기긱하는 쇳소리와 함께 파이프가 부러졌다.
덕분에 족쇄는 풀린 것과 다름없었지만, 부러진 파이프에서 바람 새는 소리가 들려왔다.
[가스가 누출되었습니다.]
[남은시간 – 30:00]
[Tip. 여러분의 행동에 따라 방의 상태가 변화할 수 있습니다. 언제나 신중히 행동하세요!]
그와 함께 나타난 시스템 메시지. 이경복은 미간을 찌푸렸다.
‘뭐지? 별다른 위협 같은 건 느껴지지 않았는데?’
그 의문의 해답은 금방 나왔다.
-와 ㅋㅋㅋ 여기서 그냥 멀쩡한 사람 처음 봄
-진짜 ㅋㅋ 어떻게든 시체에 닿으려고 하다가 파이프 부러져서 앞구르기가 국룰인데 ㅋㅋㅋ
-이게 전부 퍼펙트-눈썰미 덕분이라는 거!
-역시 갓플은 튜토리얼도 좀 다르누
-와씨 난 코 깨지는 줄 알았는데 ㅋㅋ 안 아파서 망정이지 바로 환불할 뻔
-이 과정 필수로 넣는 건 좀 노이해임
이 역시 필수적인 튜토리얼의 일부였다는 시청자들의 증언이었다. 달리 막을 수 없는 일이었으니 위협으로 판단되지 않은 게 분명했다.
“30분이면 뭐, 엄청 널널하네요.”
이경복은 곧바로 쓰러진 시체를 뒤집었다. 시체는 주머니가 많이 달린 조끼를 입고 있었고, 그 주머니에는 드라이버와 펜치, 망치 등 각종 공구가 놓여 있었다.
-오! 탈출 물품 발견!
-퍼펙트 파밍 ON!
-ㅅㅂ 뭔 파밍이야ㅋㅋㅋㅋ
-군침이 싹 돌아버리쥬?
-아 ㅋㅋ 어디다 쓸지 모르니까 일단 챙기라고
-튜토리얼이라 그런가? 첨부터 템 많이 주네
시청자들은 이경복을 재촉했다. 하지만 그는 공구 쪽에는 손도 대지 않았다.
‘이건 일종의 미끼 같은 건가?’
시청자 의견은 언뜻 옳은 것 같았지만 그의 신기는 다른 답을 내놓았다.
공구 중 어느 하나도 긍정적인 기운을 발산하지 않았다. 분명 탈출 방법을 헷갈리게 하기 위해 넣어둔 교란책일 터였다.
그는 시신의 안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이건?”
신기가 가리키는 물품을 잡아 꺼냈다. 그의 양손에는 파란색 카드와 가죽 지갑이 들려 있었다.
-오? 카드키인가?
-옼ㅋㅋㅋ 바로 찾아버렸쥬?
-뭐야? 벌써 끝임?
-큐다리 지금 눈 시뻘게졌을 듯
-큐다리쉑ㅋㅋㅋ 이스케이퍼즈 안 해봤나 봄ㅋㅋㅋ
-??? : 뭐야? 어렵다며!? 날 속였어!
-100만원 77ㅓ억!
시청자들은 이미 게임이 끝난 것처럼 기뻐했다. 이경복은 그 모습에 실소를 흘렸다.
“에이, 설마 그렇게 쉽게 끝나겠어요? 일단 카드는 챙겨 두고 지갑도 좀 볼게요.”
이경복은 지갑을 열었다.
지폐 다발과 신용카드, 그리고 운전면허증이 보였다. 겉보기에는 탈출과는 무관한 물품들이었다.
‘안쪽이네.’
그는 지폐 다발을 잡아 꺼내고 지갑을 내려놓았다.
-탈출 게임에서도 돈 욕심을?!
-무슨 아리랑치기냐고 ㅋㅋㅋㅋ
-뼛속까지 자본주의자 ㅎㄷㄷ
-속보) 애덤 스미스 충격 고백! ‘보이지 않는 손’은 바로 퍼플의 돈을 챙기는 손놀림!
-뭔ㅋㅋㅋ 그 사람이 왜 나와
-정신 나갔나 진짜 ㅋㅋㅋㅋ
시청자들은 이때다 싶어 그를 놀렸다. 하지만 그 생각과 달리 이경복의 관심사는 지폐가 아니었다.
“명함?”
지폐 사이에 끼어 있는 건 명함이었다.
[설비에 문제가 생겼습니까? 지금 연락주세요. ‘ANDY’는 언제나 답을 찾아냅니다!]
이름과 연락처 아래 적힌 문구.
이경복은 고개를 기울였다.
‘이게 왜 탈출 용품이 되는 거지?’
신기는 그것이 필요한 물건이라 가리켰다. 파란색 카드와 명함, 그 외에 달리 챙겨야 할 물건은 없었다.
이에 이경복은 일어서며 말했다.
“면허증에 적힌 이름도 앤디였죠? 아무래도 설비관리 일을 하시는 분인가 보네.”
-오 그래서 공구를 들고 다닌 듯?
-앤디가 답 알려준다는데?
-답 알면 어쩔 건데 ㅋㅋㅋㅋ
-ㄹㅇㅋㅋ 이미 죽었잖슴!
-아 ㅋㅋ 알았다! 답은 바로 강령술이었던 거임!
-강령술 ㅇㅈㄹ ㅋㅋㅋㅋ
-갑자기 분위기 네크로맨서
시청자들이 농담을 하는 사이 그는 출입구 쪽으로 향했다. 굳게 닫힌 철문은 눈으로 봐도 단단해 보였다.
“일단 카드키부터 써 볼게요.”
철문 옆에는 잠금장치와 패널이 있었다. 시체에서 찾은 카드를 대자 삑하는 신호음과 함께 초록불이 들어왔다.
-오! 됐다!
-아 ㅋㅋ 넘모 쉽고?
-역시 튜토는 튜토구먼
-큐다리 오열 ㅋㅋㅋㅋ
그러나 시청자들의 기대와 달리 문은 열리지 않았다. 대신 패널에 들어온 초록불이 노란불로 전환되며 화면이 바뀌었다.
[□□□□□□]
6개의 빈칸과 그 아래에 놓인 키패드.
그 의미는 명확했다.
“흠, 이 카드가 메인이 아니라 비밀번호를 찾는 게 메인이네요.”
-헐?
-6자리나 된다고?
-숫자 관련된 게 뭐 있었지?
-또 뭘 찾아야 할 게 있음?
-않이;;; 여기 시체밖에 없는디
-당황 ㄴㄴ 시간 아직 많음
-25분이면 충분하다!
-일단 다시 시체로 돌아가 봐야 할 듯
정확히 남은 시간은 이제 26분 31초, 제한시간 내에 6자리 비밀번호를 찾아야 했다.
시청자들은 마치 자신이 탈출을 해야 되는 것처럼 이경복을 독촉했다.
“아뇨, 시체는 이미 전부 뒤졌습니다. 공구랑 지금 쓴 카드, 그리고 아까 봤던 지갑이 전부였어요.”
그의 설명에 채팅창이 더욱 활발해졌다.
-혹시 숨겨진 출구가 있는 거 아님?
-엌ㅋㅋ 알고 보니 출구가 페이크였던 거임
-뭔 ㅋㅋ 튜토인데 그렇게 꼬아뒀을 리가
-비밀번호가 페이크 아님? 공구로 일단 패널 뜯어 봐야 될 듯!
-ㄴㄴ 그거 불가능함
-해보기도 전에 안 된다고 하누
-일자 나사에 십자드라이버 가능?
-아 ㅋㅋ 그럼 ㅇㅈ이지
-걍 망치로 뽀개는 거네 ㅎㅎ
-시간도 많은데 000000부터 눌러보자
-ㄴㄴ 그러면 안 됨
-ㄹㅇㅋㅋ 앞이랑 뒤에서 한 번씩 번갈아 하는 게 국룰임
-국룰 ㅇㅈㄹ 하고 있누 ㅋㅋㅋ
-않이 ㅋㅋㅋ 노가다 말고 추리를 하라고 좀!
-이런 게 집단 지성?
시청자들은 제각기 추리를 내세웠다. 하지만 대부분 진지한 의견이 아니라 가벼운 농담에 불과했다.
때문에 이경복은 채팅창에 신경을 쓰는 대신 그는 스스로에게 집중했다.
신기를 발휘하려 하자 이전과는 다른 감각이 느껴졌다.
‘예전에는 감각이 더 곤두서는 기분이었는데……’
함정과 기습, 적들의 공격은 모두 날카로운 예기처럼 그를 엄습해왔다. 이에 앞서 대처하기 위해 감각이 세밀해졌고 서로 뒤엉켜 육감으로 활성화됐다.
그러나 지금 이경복은 위협을 느끼는 상태가 아니었다. 그러니 감각이 세밀해질 이유가 없었다.
‘답을 알고 싶다.’
이경복의 의지 또한 달랐다.
그동안 그는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해, 눈앞의 적을 처리하고자 했다.
그러나 지금 그가 원하는 건 문제의 해답이었다. 목적도 상황도 달라졌으니 신기 역시 다른 방향으로 정보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몸이……?’
평소에는 예민했던 감각은 오히려 둔하게 느껴졌다.
시야는 번지듯 흐릿해졌고, 먼지 냄새도 어느샌가 사라졌다. 지직거리는 전등의 소리 또한 멀어졌고 몸은 마취를 한 것처럼 뻣뻣했다.
그러나 시간 감각은 이전과 같이 느려졌고 정신은 그 어느 때보다 또렷했다.
그렇게 마치 오감에서 유리(遊離)된 상태에 머물게 되자.
<비밀번호는 어떻게 정할까요?>
갑자기 정적을 뚫고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경복은 놀랐지만 이 생경한 경험에 집중했다. 그가 원했던 신기의 새로운 활용 국면이 틀림없었다.
<튜토리얼이니까 너무 어려우면 안 되겠지.>
<기본은 역시 알파벳과 숫자가 낫겠죠?>
<그러지. 재미있게 해 주면 좋겠는데.>
그것은 누군가의 대화였다.
전후가 잘린 파편에 불과했지만 맥락을 파악하기란 어렵지 않았다.
‘개발자들인가? 지금 그 사람들 대화가 들리는 거야?’
이 게임, 이스케이퍼즈의 개발진이 나눈 대화가 분명했다. 하지만 자신이 어떻게 그런 대화를 들을 수 있단 말인가.
그것에 대한 해답마저 알려 주려는 것일까. 이경복의 뇌리에는 하나의 기억이 떠올랐다.
‘할머니, 몸도 안 좋으신데 청소 정도는 이모님이 해도 괜찮지 않아요?’
할머니는 무당이 되신 이후로 신당을 누구의 손에도 맡기지 않았다. 단 하루도 빠짐없이, 정성을 다해 신당을 닦고 살펴왔다.
이경복은 그런 할머니를 돕고 싶었지만 신당에 가까이 하지 말라는 할머니의 엄포에 언제나 물러서야 했다.
‘경복아, 이것도 다 할미가 편하려고 하는 일이다.’
혹시라도 이경복이 몰래 신당에 들어갈까 할머니는 그 이유를 설명했다.
‘모름지기 생물의 넋은 영과 혼, 그리고 백으로 이루어진단다. 그중에서도 혼은 오직 사람만의 것이지. 왜 그런 줄 아느냐?’
신기가 넘친다고 해도 그 뜻을 알리는 없었다.
‘동물에게도 영과 백은 있어도 혼이 없는 것은 그들이 제 본능을 이기지 못하기 때문이란다. 반면 사람은 그 본능을 이겨낼 혼을 지녔단다. 신념이라는 말은 들어봤지?’
신념(信念).
믿음과 생각을 의미하는 단어였다. 할머니는 이경복의 대답에 미소를 지었다.
‘사람이 소중히 다루는 것에는 그 신념이 깃든단다. 자신의 혼을 그 대상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지. 우리 경복이가 보기에 이 할미가 힘들고 괜한 일을 하는 것처럼 보여도 그렇지가 않아요.’
할머니는 기특하다는 표정으로 이경복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무당이 신당을 가꾸는 것은 그곳에 제 믿음과 념을 깃들게 하는 것이란다. 그리하면 신께서도 오시기 편해지니까.’
당시에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지금은 이해가 아니라 경험을 하고 있었다.
‘개발진이 남겨 둔 사념 같은 걸…… 읽을 수 있는 건가?’
그가 들은 대화가 지금 개발진들이 나누는 대화는 아닐 터였다. 튜토리얼을 개발하고 있을 때 나눈 대화의 일부가 분명했다.
이경복의 신기가 그것을 읽을 수 있다는 건 그들이 이 게임 개발에 공을 들였다는 의미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알파벳과 숫자.’
정보가 취합되자 이경복의 머리가 맹렬히 돌아갔다. 그와 동시에 시간 감각이 다시 돌아오며 오감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이경복은 머리에 번뜩이며 떠오른 숫자를 패드에 옮겼다.
그와 함께 삑하는 알림과 함께 노란불은 다시 초록불로, 그리고 덜컹하는 소리와 함께 철문이 열렸다.
-?????
-뭐임? 갑자기 뭐임?
-풀었어? 어떻게!?
-갑자게 뭔데에에에에에!
-어뜨케 된겨 어뜨케 된겨!
-않이;;; 설마 진짜 뇌지컬이라고?
열띤 토론을 빙자하며 주목받을 만한 채팅을 치는 데 열중했던 시청자들은 놀라움을 숨길 수 없었다.
믿기지는 않지만 이경복은 순식간에 문제를 해결했다. 열린 문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어지는 의문은 하나였다.
어떻게 그런 답이 나왔는가?
-단서 뭐 있었음?
-설마 찍은 건 아니쥬?
-1해분의 1 확률 생각하면 어렵지는 않을 듯 ㅎㅎ
-ㄹㅇㅋㅋ 만해 생각하면 킹능성있자너
-아니 ㅋㅋ 그건 제작할 때 뭐 보였다면서!
-갓플 센세! 얼른 풀이 좀!
시청자들의 아우성에 이경복은 가볍게 숨을 골랐다. 그리고 여유롭게 미소 지으며 입을 열었다.
“해법은 알파벳, 그리고 숫자입니다.”
그의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실려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개발진으로부터 직접 풀이법을 들은 것이나 마찬가지가 아닌가.
그는 명함을 꺼내 보였다.
“6자리 비밀번호를 보자마자 이 문구가 생각났어요. ‘ANDY’는 답을 찾아낸다? 혹시 여기서 말하는 답이 비밀번호가 아닐까. 그래서 알파벳 순서를 숫자로 바꿔 봤죠.”
술술 나오는 설명에 시청자들이 오히려 분주해졌다.
-그래서 저게 왜 답이 되는 건데에!
-오 ㅅㅂ 6자리 나오네
-A=1 N=16 D=4 Y=25, 116425
-무친 ㅋㅋㅋㅋㅋ 진짜네
-난 알파벳이 4개인데 왜 6자리가 되지 하고 있었는데 ㅋㅋㅋ
-지렸다 ㅅㅂ
-퍼지컬에는 뇌지컬이 포함된다는 걸 알고 계셨나요?
몇몇 시청자들이 직접 검증을 해 주자 채팅창은 더욱 요동쳤다.
-거기까지 자연스럽게 연상이 됐다고?
-않이 ㅋㅋ 트수들은 그럼 무냐구!
-뭐긴 뭐야 ㅋㅋㅋ 그냥 드립만 가득 찬 빡통이지
-진짜 퍼펙트 브레인이었고ㅋㅋ
-와 진짜 다 가졌네 다 가졌어
-아 ㅋㅋ 지구 운영자 쉑 밸패 제대로 안 하네
-진짜 여기에 얼굴까지 잘생겼으면 가만 안 놔둔다
-트수가 가만 안 놔두면 어쩔 건데? ㅋㅋㅋㅋㅋ
-신고할 거임 ㅎㅎ 혼인신고!
-트순이였누 ㅎㄷㄷ
격렬하게 솟구치는 채팅창에 이경복은 웃음을 흘렸다.
“별로 힘든 건 아니잖아요? 그냥 튜토리얼 깬 건데.”
-않이;;; 튜토리얼을 5분 컷 하는 사람이 어딨냐구!
-아 ㅋㅋㅋ 방탈출 와도 퍼기만은 못 참지
-파이프에서 새는 게 가스가 아니라 기만이었네
-매운맛인 줄 알았는데 너무 단내 나버리고 ㅋㅋㅋ
-아무리 매운 겜이라도 응애 난이도로 만드는 당신은 대체!?
-아! 응애에요!
시청자들이 흡족해하는 사이 주위 배경이 뒤바뀌며 수없이 많은 문으로 가득한 벽이 눈앞에 나타났다.
튜토리얼이 종료되고 돌아온 메인 메뉴의 모습이었다.
“자, 그럼 다음 게임에 앞서 잠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죠?”
이경복은 가볍게 손뼉을 쳐서 주의를 환기시켰다. 시청자들은 금방 그 의미를 알아차렸다.
-아 ㅋㅋㅋ 퀘스트 정산 가야지
-5분 만에 100만원을 태우는 트수가 있다!?
-1분 20만원 컷 무엇 ㅋㅋㅋㅋ
-시급도 아니고 분급 뭐냐고 ㅋㅋㅋㅋ
-가성비 개같이 멸망ㅋㅋㅋㅋ
-킹직히 20분 정도는 할 거라 생각했을 텐데
시청자들은 또 한 번 패배를 당한 큐다리를 놀렸다. 꼼짝없이 100만 원을 헌납하게 생긴 상황이 아닌가.
그런데.
“아, 잠시만요. 큐다리 님? 정산은 잠깐 이야기를 듣고 해 주세요.”
이경복이 불쑥 말을 꺼내자 채팅창에 물음표가 번졌다.
“이게 제 생각보다 게임이 쉬워서요. 이거 한 번으로 100만 원이나 받는 건 아무래도 도리가 아니지 싶거든요.”
-????????
-뭐야! 당신 누구야!
-자본주의 파동에 눈 뜬 우리 갓플 어디 갔어!?
-공시) 퍼플, 블랙기업에서 그레이 기업 전환
-그레이 기업은 또 뭔데 ㅋㅋㅋ
-아 ㅋㅋ 화이트 기업까지는 안되는 거냐고
-그 와중에 난이도 쉽다고 기만 섞는 거 무엇 ㅋㅋㅋ
-기만숨결은 말 그대로 호흡입니다만?
-근데 맞말이긴 해 ㅋㅋ
-ㄹㅇㅋㅋ 본격적으로 들가면 찾아야 되는 물건도 더 많고 퍼즐도 많아짐
-큐다리도 영상으로 그런 거 보고 걸었을 텐데 ㅋㅋㅋ
이경복은 시청자들 반응에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생각해 봤는데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시청자들의 주의가 바로 쏠렸다. 당연하게도 그는 상금을 거절할 생각은 없었다.
“제가 실패했을 때 조건 아시죠? ‘하이라이트 기능 허락해달라고 애원하기’라고 쓰셨는데. 반대로 퀘스트 정산 미뤄달라고 애원하시면 넘어가는 걸로 하죠. 싫다면 바로 정산해 주시면 됩니다.”
이경복의 역제안에 시청자들은 흥겨움을 숨기지 못했다. 하지만 큐다리, ‘Agent Q’는 바로 채팅을 치지 않았다.
-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ㅋㅋ 부탁하면 봐준다고
-공시) 퍼플, 그레이 기업 전환은 오보
-바로 블랙기업으로 돌아가냐궄ㅋㅋㅋ
-근데 이건 킹직히 갓플이 봐주는 거지 ㅋㅋㅋ
-ㄹㅇㅋㅋ 애원 한 번에 100만원 보상? 무적권 하지 ㅋㅋㅋ
-진짜 나였으면 바로 한다
-뭘 망설이냐구!
-너희들이 더 나빴엌ㅋㅋㅋ
그럼에도 100만 원은 큰돈이었다.
-Agent Q : 퍼플님 부탁드립니다 ㅠ
-Agent Q : 다음 게임에서 퀘스트 적용 해 주세요!
-Agent Q : 트게더에 그랜절 사진 올리느라 늦었습니다!
이어 올라온 큐다리의 채팅에 시청자들은 더욱 큰 웃음을 터트렸다.
-엌ㅋㅋㅋㅋ 진짜올림ㅋㅋㅋㅋ
-와 진짜네 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랜절 한 번에 100만원 ㅋㅋ
-개웃기눜ㅋㅋㅋ
-큐다리 몸값 미쳤누 ㅋㅋㅋㅋ
-역시 퍼플 코인 타면 떡상한다니깐!
-그 떡상이 아니잖슴ㅋㅋㅋㅋ
시청자들 반응으로 보아 거짓말은 아닐 터였다. 이경복은 구태여 직접 확인하지 않았다.
“이렇게까지 부탁하시니까 어쩔 수 없네요. 제가 큐다리 님께 받은 게 많아서 특별대우해드리는 겁니다?”
그는 그리 장난스럽게 말하고는 이내 메뉴를 선택했다.
“좋습니다!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탈출해 보죠!”
이내 그가 선택한 모드를 본 시청자들은 곧바로 웃음을 멈추었다.
-형? 잘못 누른 거 같은데?
-경쟁? 경쟁모드로 한다고?
-튜토 끝나고 바로 경쟁? 실화?
-혀엉! 거기는 진짜 탈출에 미친 놈들만 모인 곳이야!
-ㄹㅇㅋㅋ 오죽 할 게 없으면 탈출을 경쟁으로 하겠냐고
-이 방송 맵기 조절이 왜 이러냐구!
-아 ㅋㅋ 진짜 방송 천재네
시청자들 반응에도 이경복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다들 아시잖아요?”
오히려 그는 해맑게 웃으며 답했다.
“제가 어려운 게임을 좋아한다는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