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화 - 탈출은 재능순 (4)
이스케이퍼스의 고인물 유저, ‘인디아나 킹스’는 나름의 자부심이 있었다.
‘내가 이런 쪽에 재능이 있었네.’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건 별개다. 하지만 대개 사람들은 자신이 잘하는 걸 좋아하기 마련이었다.
그 역시 그러했다.
몸을 움직이는 것보다는 머리를 쓰는 게 좋았고, 복잡한 퍼즐을 해결했을 때의 카타르시스는 다른 게임에서는 느낄 수 없었다.
그가 이스케이퍼스에 빠진 건 그런 이유였다.
‘이렇게 재미있는데 왜 사람이 없을까……’
혼자서 하는 테마는 이미 전부 맛을 본 지 오래, 같이 하는 협동 모드는 다른 사람들과 수준이 맞지 않아 답답함이 느껴졌다. 이에 그는 자연스럽게 경쟁 모드에 상주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래서 뉴비를 발견했을 때의 기쁨은 더욱 컸다.
‘첫판부터 바로 퍼스트킬이라고?’
잘 보듬어 줘야겠다는 생각으로 임한 게임. 그러나 뉴비의 선전에 그는 생각을 달리했다.
‘이 정도면 재능 있는데?’
경쟁 모드에서 조차 매너리즘에 빠져가던 그에게 이 뉴비는 새로운 자극으로 다가왔다.
오랜만에 열의가 들끓었다.
평소보다 더 퍼즐을 빨리 끝낸 건 그 때문이 아닐까.
공교롭게도 그가 완성한 저주의 대상은 뉴비가 되었다.
‘하지만 승부의 세계는 냉정하지.’
시스템 메시지와 함께 시야가 전환됐다. 검은 갑충에 포위된 그는 탈락할 수밖에 없으리라.
‘그래도 이 정도 재능은 흔치 않지. 잘 키우면 내 수준까지는 될 거야. 일단 친추부터 하고 협동 모드도 좀 하고 커뮤도 소개시켜 줘야겠다.’
그는 이 재능 넘치는 뉴비를 위한 안배를 구상했다.
하지만 그는 미처 알지 못했다.
이 뉴비가 가진 재능은 그뿐만이 아니라는 것을.
“……어?”
처음에는 뉴비의 귀여운 발버둥이라 생각했다. 제단에 올라와 갑충을 상대할 생각을 하다니?
그런데 보다 보니 뭔가 이상했다.
“이게 대체 무슨?”
육성으로 의문이 튀어나왔다.
분명 갑충에게 뒤덮이며 끝나야 할 킬캠이 아직도 이어졌다.
놀랍게도 그 뉴비는 그 수많은 갑충을 처리하고 있었다.
그것도 단 한 번의 빗나감도 없이 정확하게, 그리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아니 어떻게……”
그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대체 이 뉴비의 정체는 무엇인가. 애당초 이런 식의 플레이가 허용된단 말인가.
이스케이퍼스의 터줏대감을 자부하는 그로서도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 * *
파각하는 충격음과 함께 마지막 갑충이 터졌다.
이경복은 훅하고 숨을 뱉으며 이미 불이 꺼진 횃불, 갑충의 점액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 막대기를 양옆으로 던졌다.
“이제 끝이네요.”
그의 한마디에 채팅창은 요동쳤다.
-해버렸어! 해버렸다구웃!
-않이 ㅋㅋㅋ 이걸 진짜 다 처리하눜ㅋㅋㅋ
-메모) 엘든유일검은 쌍수도 잘 다룬다
-저주 건 유저는 어처구니가 없을 듯 ㅋㅋㅋ
-맞넼ㅋㅋㅋ이거 킬캠으로 보고 있었을 텐데
-???: 뭐야 ㅅㅂ? 내 킬 돌려줘요!
-근데 이거 괜찮은 거임?
-ㄹㅇㅋㅋ 버그로 판정되는 거 아님?
-아 ㅋㅋ 퍼펙트-버그 또 나오냐구
시청자들은 흡족해하면서도 의문을 숨기지 않았다. 그래도 퍼즐 게임인데 이런 플레이가 허용되는 것일까.
그 의문에 답하듯 시스템 메시지가 나타났다.
[‘퍼펙트플레이’가 생존했습니다!]
[파라오의 분노는 아직도 타오르고 있습니다!]
오류는 없었다.
오히려 생존이라는 메시지에 이런 상황도 플레이의 일부라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캬 ㅋㅋㅋㅋ 개발진 융통성 있누
-프롬 급은 아니더라도 나름 디테일 하누 ㅋㅋㅋㅋ
-근데 킹직히 이런 방식으로 생존한 걸 예상하지는 않았을 듯
-ㄹㅇㅋㅋ 누가 횃불로 갑충 뚝배기를 깨냐구!
-똥겜인줄 알았는데 갓겜이자너 ㅋㅋㅋ
-이정도면 고티죠?
-아씨 ㅋㅋㅋ 별 관심 없는데 뽐뿌 오네
-혀엉! 이거 혹시 많이 할 거야? 시참도 하면 나도 사려고!
이경복은 웃으며 채팅창을 바라보다 어깨를 으쓱였다.
“음, 저는 시즌 패스까지 받았으니까요. 시참 말씀하시니까 협동 모드로 같이 즐기면 또 괜찮을 것 같기도 하고. 일단 상황을 보겠습니다.”
-아 ㅋㅋㅋ 딱 기다려라 당장 산다
-이스케이퍼스에서도 제로백 버스는 멈추지 않는다구웃!
-근데 이건 진짜 가만히 버스만 탈 듯 ㅋㅋㅋ
-ㄹㅇㅋㅋ 트수들 멍 때리다가 탈출하는 게 벌써 보이누
-근데 방탈출이 재밌긴 해
-시참 아니더라도 사뒀다가 친구들이랑 해도 괜춘할 듯?
-설마 그 친구라는 게 여자사람은 아니겠지?
-친구……? 트수가 친구가 있어?
-제발 인싸들은 아싸 코스프레를 멈춰주세요!
-아 ㅋㅋ 또 나만 진심이었지
우후죽순 올라오던 채팅은 이내 멈추었다. 새로운 시스템 메시지에 시청자들의 관심이 돌아갔기 때문이었다.
[‘황동수염브란’님이 의식을 완성했습니다!]
[‘미라의 저주’가 한 탈출가를 덮칩니다.]
이경복이 갑충에 대응하는 동안 다른 탈출가가 의식을 완성한 것이었다.
-헐? 설마 시간차 공격은 아니겠지?
-아 ㅋㅋㅋ 미라가 오면 어쩔 건데
-미라도 뚝배기 깨지면 끝이라굿!
-미라 : 죽었는데 또 죽은 썰 푼다 ㅋㅋ
-이게 디펜스 겜이야 방탈출 겜이야 ㅋㅋㅋㅋ
그러나 시청자들은 걱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다행히(?) 저주의 대상은 이경복이 아니었다.
[‘인디아나 킹스’의 영혼이 제물이 되었습니다]
-30회 클리어 고인물도 저주에는 못 당하누 ㅎㄷㄷ
-그 어려운 걸 갓플이 해냅니다!
-근데 진짜 개억울할 듯ㅋㅋㅋ
-ㄹㅇㅋㅋ 원래는 갓플 제끼고 1:1 들어갔을 텐데
-하필이면 상대가 갓플이라서…!
-이건 찐으로 명예로운 죽음이다 ㅋㅋㅋㅋ
-그는 좋은 고인물이었읍니다ㅠ
-뇌지컬 특화라 죽었네 ㅋㅋㅋㅋ
-아 ㅋㅋ 미리 퍼지컬을 장착하고 왔어야지
그렇게 이경복은 생존하고 가장 실력이 좋았던 탈출가는 탈락했다.
이로써 상황은 1:1, 남은 탈출가는 둘.
“어?”
갑자기 횃불이 훅하고 꺼졌다. 삽시간에 어두워진 시야, 그러나 곧바로 횃불이 푸르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방의 배치는 다시금 뒤바뀌어 있었다.
“아, 이거 알아요. 아누비스죠?”
어느새 양옆에는 검은 늑대 머리를 한 석상이 세워져 있었다. 이집트의 신 중 하나인 ‘아누비스’였다.
이어 돌아간 시선.
바닥에는 세로 막대기 형태의 상형문자가 새겨진 바위가 흩어져 있었다. 그 맞은편에는 황금 파라오관이 석판과 모래시계를 잡고 서 있었다.
<제물을 받은 파라오는 분노를 가라앉혔습니다. 하지만 죄인들을 이대로 돌려보낼 수는 없었습니다.>
이어 나레이션이 들려왔다.
-오 ㅋㅋㅋ 결승전이라는 느낌적인 느낌
-쉿! 나레이션에 또 힌트가 있을 수 있다구!
-퍼청자들 퍼집중 ON!
-킹직히 우리가 뭘 알겠냐곸ㅋㅋ
<파라오는 죄인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기로 했습니다. 태양, 파라오를 기리는 오벨리스크를 세워 존경을 표하는 이에게는 자비를 베풀기로 한 것이죠.>
나레이션의 설명에 이경복과 시청자들은 깨달았다.
“아, 마지막은 같은 퍼즐을 푸는 건가 보네요.”
-ㅇㅇ 맞음요
-테마가 다르긴 해도 마지막은 거의 이런 식임 ㅋㅋㅋ
-뇌지컬 승부 가즈아!
-스포) 갓플이 이김
-아 ㅋㅋ 어떻게 이길 지가 궁금한 거라구웃!
-저 바위가 오벨리스크 재료인 듯?
상황을 파악한 이경복과 시청자들은 나레이션에 귀를 기울였다.
<오벨리스크는 무거운 것부터 가벼운 순으로 쌓아야 합니다. 만약 순서가 틀리게 되면 바위는 그대로 부서지겠죠. 그렇게 되면 파라오의 분노를 피할 방법이 없습니다.>
-????
-헐 ㅋㅋㅋ 기회 한 번밖에 없음?
-실수하면 바로 아웃이네 ㅋㅋ
-와 ㅋㅋ 이거 쉽지 않네
-오히려 상대 실수를 기다리는 게 전략일 수도?
-그래도 나름 고인물인데 실수 하겠냐고 ㅋㅋㅋ
주어진 기회는 한 번뿐인 단판 승부. 시청자들은 오히려 그 제약에 흥미를 느꼈다.
<과연 당신은 제한 시간 내에 오벨리스크를 무사히 세울 수 있을까요?>
이어 나레이션이 끝나자 파라오가 들고 있던 모래시계가 뒤집어졌다.
[10:00:00]
쏟아지기 시작하는 모래와 함께 타이머가 눈앞에 나타나고, 숫자가 맹렬히 돌아가기 시작했다.
-미친 10분밖에 안 줘!?
-와씨 ㅋㅋㅋ 개쫄리누 ㅋㅋㅋㅋ
-역시 고인물 컨텐츠 답누
-얼른 움직이자구!
-석판! 석판 봅시다!
시청자들의 재촉이 아니더라도 이경복은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그는 순식간에 파라오가 들고 있는 석판을 확인했다.
[■△□□□]
[■□□□△]
[△□□□□]
…
5개의 상형문자와 5개의 빈칸이 있었다. 특이하게도 상형문자의 조합에 따라 빈칸은 색칠되어 있거나 비워져 있었다.
이경복은 미간을 좁혔다.
-이게 뭐임?
-석판 위에 재료랑 똑같은 돌멩이 있음!
-상형문자는 아마 저 바위를 가리키는 거인 듯?
-순서를 맞추는 건데……
-아! 이거 그거네!
시청자들의 채팅이 즉각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경복도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이거 숫자야구네요.”
숫자와 순서 둘 다 맞으면 스트라이크, 숫자만 맞으면 볼, 둘 다 틀리면 아웃으로 표기하는 논리 퍼즐.
그 말에 시청자도 바로 이해했다. 의외로 퍼즐 자체는 대중적인 것이었다.
“이 돌멩이를 석판에 넣어서 확인하는 것 같은데.”
석판 위 돌멩이가 딱 들어갈 만 한 홈이 파여 있었다. 이경복이 돌멩이를 잡자 쿵하는 울림이 들려왔다.
소리가 나는 쪽을 돌아보니 아누비스 석상이 살아난 것처럼 움직였다. 아누비스는 이내 이경복이 든 돌멩이와 같은 바위를 잡았다.
-와씨 ㅋㅋㅋ 뭐임?
-옼ㅋㅋ 연출보소
-아 ㅋㅋㅋ 아누비스가 직접 쌓아주는 건가 보네
-의외로 고퀄인데?
-지금 감탄할 때냐구! 얼른 조합 생각해 보라구!
-집단 지성 ON!
-색칠해진 게 순서랑 상형문자도 맞는 거지?
-일단 처음은 밝혀졌음
시청자들은 감탄과 더불어 퍼즐을 풀려고 했다. 하지만 그에 앞서 이경복이 돌멩이를 모두 쥐었다.
채팅창에는 물음표가 번졌다.
-설마 또?
-엥? 숫자야구는 암산으로 될 게 아닌데?
-ㅇㅇ 문구 보고 단서 추론하는 거랑은 완전 다름
-근데 벌써 답이 나온 거?
-않이;;; 도대체 뇌를 어떻게 쓰는 거냐구욧!
채팅창 반응에 돌멩이를 만져 보던 이경복은 고개를 내저었다.
“아뇨, 이거 숫자야구를 할 필요가 없어요.”
그 발언에 채팅창은 일순간 정지했다.
대체 이건 또 무슨 말인가? 주어진 퍼즐이 숫자야구인데 그걸 부정하다니?
그 비상식적인 발언을 받아들이는 잠깐의 시간 동안 이경복은 홈에 돌멩이를 끼우기 시작했다.
-어? 어어어어!
-혀엉! 침착하라구!
-않이;;; 이러시는 이유가 있을 거 아니에요!
-1트밖에 안 된다는 거 알고는 있는 거지?
-아 ㅋㅋ 정신 나갈 것 같다
-퍼자감에 어질어질한 건 처음이다 ㅋㅋㅋㅋㅋ
시청자들은 당황했다.
기회는 한 번뿐인데 고민하는 기색조차 없지 않나.
그러나 말릴 틈도 없었다.
돌멩이 5개를 끼우는 데 필요한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다.
-저질렀다! 또 저질렀어!
-아누비스 움직인다 ㅎㄷㄷ
-말 그대로 빼박ㅋㅋㅋㅋㅋ
-이 과감함 무엇?
-결과를 떠나서 추진력 하나는 오졌다
이경복이 정한 순서대로 아누비스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석상은 천천히 첫 번째 바위를 올렸다. 그리고 이어 2번째 바위를 들어 올렸다.
시청자들 모두 숨을 죽였다.
“괜찮습니다.”
이경복은 채팅창을 보며 실소를 흘렸다.
그의 말처럼 2번째 바위가 올라갔지만 부서지지는 않았다.
-와씨 ㅋㅋㅋ 간 떨리네 진짜
-진짜 뭘 알고 한 거?
-이게 왜 되는 거냐구!
-혀엉! 막 지른 거 아니지? 퍼펙트 풀이해 줄 거지? 맏찌?
-어뜨케 된겨 어뜨케 된겨!
시청자들의 아우성에 이경복은 장난스럽게 눈웃음을 쳤다.
“알고 싶어요? 그냥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은데?”
-아 ㅋㅋ 장난치지 말라고오오!
-내가, 내가 빡대가리라니!
-이보시오, 이보시오 퍼플 양반!
-해답, 해답 좀 갖다주시오…
-이러다가 죽는다구요!
-트수 단합력 뭔데 ㅋㅋㅋㅋㅋ
-하여간 방송천재라니깐!
이경복은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 사이 아누비스는 3번째 바위를 올렸다.
이번에도 석탑은 무너지지 않았다.
“엄청 간단해요. 사실 머리를 쓴 것도 아니고요.”
아누비스는 이내 4번째 바위를 찾았다. 이경복은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이 돌멩이들, 무게 차이가 느껴졌거든요.”
-?
-ㅔ?
-무게 차이가 느껴졌다고?
-이게, 이게 무슨 소리야!
-저 작은 돌멩이 무게도 가늠이 된다고?
-(게말콘)(게말콘)(게말콘)
-갓플이면 가능할듯ㅋㅋㅋㅋㅋ
-진짜 ㅋㅋㅋ 이거 찐인 거 같은데?
아누비스는 4번째 바위를 올렸다. 역시나 세워진 바위는 굳건했다. 이윽고 마지막 바위까지 아누비스의 손에 들렸다.
이경복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진짜라니까요?”
그 물음에 답하듯 아누비스가 마지막 바위를 올렸다. 5개의 바위로 세워진 탑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아누비스는 대미를 장식하듯 작은 피라미드를 그 위에 올려 오벨리스크를 완성시켰다.
[‘퍼펙트플레이’가 오벨리스크를 완성했습니다!]
[‘아누비스의 심판’이 남은 탐험가를 덮칩니다!]
이어 나타난 시스템 메시지.
이윽고 시야가 전환되며 상대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는 바닥에 흩어진 모래 위에 손가락으로 다양한 조합을 그리고 있었다.
“어?”
이윽고 그도 메시지를 확인했는지 벌떡 고개를 들었다. 그는 이 상황이 믿기지 않는지 얼빠진 표정으로 눈을 돌렸다.
아누비스 석상이 그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벌써? 벌써 답을 찾았다고?”
아연실색(啞然失色).
말 그대로 낯빛이 달라진 그는 최후를 직감한 듯 허탈한 얼굴이었다.
그 모습에 시청자들은 웃음을 흘렸다.
-와 ㅋㅋㅋ 이건 진짜 개 억울하겠다
-ㄹㅇㅋㅋ 설마 이렇게 질 줄은 몰랐겠지
-이 또한 명예로운 죽음……!
-갓플이 상대만 아니었다면!
-???: 게임 X같이 하네!
-이건 진짜 극찬 들어도 할 말 없겠다 ㅋㅋㅋㅋㅋ
아누비스는 번쩍 바위를 들었다. 이후 상황은 보여 주지 않겠다는 듯 곧바로 시야가 달라졌다.
<축하합니다! 당신은 파라오의 분노를 가라앉히고 무사히 피라미드를 탈출했습니다!>
[You Are Escaper!]
이어 나레이션과 함께 클리어 메시지가 나타났다. 동시에 주변 배경이 문으로 빨려 들어가듯 사라지며 닫혔다.
어느새 돌아온 메인 메뉴.
-갓플 우승! 갓플 우승! 갓플 우승! 갓플 우승!
-튜토 끝내고 바로 경쟁 정복ㅋㅋㅋㅋ
-속보) 다비드 카퍼필드 비밀 고백! ‘진짜 마술사는 한국에 있다.’
-퍼지컬은 매지컬! 퍼지컬은 매지컬! 퍼지컬은 매지컬!
-이스케이퍼스 쉬운 겜이네ㅋㅋ 바로 조지고 온다!
-하지만 조져지는 건 언제나 나였고ㅋㅋㅋㅋ
-속보) 세계속담협회, ‘아는 것이 힘이다는 틀렸다. 힘이 있으면 알게 되는 것으로 정정!’
-세계속담협회는 또 뭔뎈ㅋㅋㅋ
-이상하게 틀린 말은 또 아니라 킹받누 ㅋㅋㅋㅋ
-Q.대체 퍼플이 못 하는 게 뭐죠? A.못 하는 거요.
-요약추
시청자들은 기쁨을 숨기지 않았다. 이경복은 채팅을 바라보며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축하 감사드립니다. 누가 보면 무슨 대회 우승이라도 한 줄 알겠어요.”
-아 ㅋㅋ 저 별거 아니라는 태도
-으음! 역시 퍼기만이 빠질 수 없지
-??? : 피지컬도 뇌지컬도 없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아 ㅋㅋ 그래도 드립은 인정 받자너
-ㄹㅇㅋㅋ 퍼청자들은 헛된 노력 말고 드립연구나 하라구!
시청자들의 자조적인 채팅에 이경복이 헛웃음을 흘리는 사이였다.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시스템 메시지가 불쑥 튀어나왔다. 캡슐이 아닌 게임 내에서 제공하는 기능이었다.
이에 시청자들의 주의가 그쪽으로 쏠렸다.
-오 ㅋㅋㅋ 아까 플레이한 고인물들 아님?
-설욕전 가나요?
-ㄴㄴ 저 사람들도 갓플 풀이법 궁금해서 그런 듯
-킹능성있다 ㅋㅋㅋㅋ
-아 ㅋㅋ 방송 찾아보시라구요!
-이참에 한국인 되겠누 ㅋㅋㅋ
-퍼튜브 구독 아직도 안했냐구!
-킹직히 퍼튜브 구독은 귀화 심사에도 넣어야 됨
-귀화 ㅇㅈㄹㅋㅋㅋㅋㅋ
그러나 이경복의 생각은 달랐다.
‘이상하다? 분명 병훈이가 설정에서 메시지는 꺼 놨다고 했는데?’
비록 비주류 게임이긴 하지만 방송 시청자가 있을 수도 있었다. 게임 내에서 메시지를 보내오면 흐름이 끊길 수 있어 메시지를 거부해 두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메시지가 왔으니 생각할 수 있는 경우는 하나였다.
‘역시.’
그는 메시지를 확인하고 자신의 생각이 옳았다는 걸 알았다.
[Imprisoner]
[안녕하세요, 퍼플님!
이스케이퍼스 개발 총괄을 맡은 ‘임프리즈너’입니다!
방송 잘 보고 있습니다.
먼저 클리어를 축하드립니다!]
설정을 무시하고 메시지를 보낼 수 있는 사람은 개발사 쪽 인물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내막을 몰랐던 시청자들은 예상외의 인물에 놀랐다.
-엌ㅋㅋㅋ 개발자 등판
-왜 임프리즈너?
-임프리즈너가 가두는 사람이라는 뜻임
-내가 알기로 본명이 임 씨인 걸로 알고 있음 ㅋㅋㅋ
-찐 고인물이쥬?
-아 ㅋㅋ 하긴 게임 코드 줬는데 당연히 방송 보고 있었겠지
-킹직히 개발자도 놀랄 만한 플레이긴 했다 ㅋㅋㅋ
-아직 스크롤이 남아있다구!
이경복은 메시지의 스크롤을 내렸다.
[그간 방송을 보면서 퍼플 님의 플레이가 경이롭다고 느끼기는 했습니다. 그런데 설마 저희 게임에서도 그럴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근데 사실 저희 게임은 그런 식으로 클리어할 수 있도록 설계한 게 아니거든요……]
-엌ㅋㅋㅋㅋㅋㅋ
-알고 보니 항의 메시지였쥬?
-???: 게임 그렇게 하는 거 아닌데 (진짜아님)
-아앀ㅋㅋㅋ 현웃터졌네 ㅋㅋㅋ
-킹직히 퍼지컬을 누가 예상하고 게임 만들겠냐구!
이경복도 작게 웃음을 흘리며 나머지 스크롤을 내렸다.
[실제로 마지막 오벨리스크 퍼즐에서 사용된 돌멩이는 무게 차이가 0.1g 단위였습니다.
그냥 저울도 아니고 전자저울로 달아봐야 차이를 가늠할 수 있는데…… 진짜 어떻게 하셨지?]
-?
-0.1g 차이라고?
-ㅁㅊ 생각보다 더 쩌는 거였네
-와씨 ㅋㅋㅋ 그걸 느낀다고?
-진짜 퍼지컬은 레전드다……
-개발피셜 탈인간 ㅋㅋㅋㅋ
시청자들은 그 능력에 놀랐지만 이경복은 다른 의미로 놀랐다.
“와, 그럼 개발자님들은 0.1g 차이를 구현한 거네요? 디테일 미쳤다 진짜.”
그의 칭찬에 시청자들도 다들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이경복이 그 미세한 차이를 느낀 것도 대단했지만, 그 미세한 차이를 구현해낸 것도 충분히 인정받을 만했다.
[아무튼 이대로 놔두면 시청자분들께서 저희 게임을 오해하실 수도 있으실 것 같습니다.
괜찮으시면 자리를 마련해서 저희가 해명을 드리고 싶은데 괜찮으실까요?
답변 기다리겠습니다!]
그것으로 메시지는 끝이었다.
채팅창에는 연신 ‘ㅋㅋㅋ’가 올라왔다.
-포브스 선정 개발사를 해명하게 하는 스트리머 1위
-바크 때도 그러지 않았음?
-ㄹㅇㅋㅋ 그때는 컷신 문제 있었자너
-알고 보니 퍼펙트-버그는 오래된 전통이었누ㅋㅋㅋ
-갓플은 존재 자체가 시스템을 벗어났다구!
-당연한 거 아님? 신이 시스템 안에 어케 귀속됨?
이경복은 머쓱한 웃음과 함께 뒤통수를 긁적였다.
“아니, 전 그냥 되니까 이렇게도 깰 수 있나 했죠.”
-그건 님만 된다구옄ㅋㅋㅋㅋ
-이제 앞으로는 주의 문구 붙여야함 ㅋㅋ <이 게임은 ‘일반인’을 기준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이건 QA도 억울하쥬?
-??? : 안 막으면 해도 된다는 거 아닌가?
-이게 바로 천상과 지상의 눈높이?
-트수는 지하 아니냐?
-플랜트위키/퍼플/논란
시청자들이 장난스럽게 비난하자 이경복은 가볍게 손뼉을 쳤다.
“자자, 좋습니다. 그럼 임프리즈너 님 만나서 해명 타임 한 번 진행하죠!”
그 말에 시청자들은 흡족해했다.
-캬 ㅋㅋㅋ 바로 퍼플 코인 각 나오쥬?
-흐름 너무 자연스럽고
-그 머시냐…… 숙제각이네! 숙제각!
-그냥 게임만 해도 숙제가 들어오는 스머가 있다!?
-아 ㅋㅋ 이 기회 못 참지
-사업 모르는 나라도 갓플은 잡는다 ㅋㅋㅋ
자신이 좋아하는 스트리머가 인정받는 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