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화 - 제 2회 OTP 준비 (1)
방송은 끝났지만 이경복의 일은 끝나지 않았다.
“지금 회의 괜찮나? 방송 편집은?”
스트리머 퍼플이 아니라 팀 퍼펙트의 사장으로서 업무였다.
이스케이퍼스 광고 계약과 관련한 회의. 이경복의 물음에 최병훈이 손을 내저었다.
<완전 여유지. 그 갑충 때 빼고는 액션도 많지 않아서 널널하다야.>
정확히 말하면 최병훈의 홀로그램이었다. 늦은 밤이었기에 직접 만나기보다는 홀로그램 미팅으로 대신한 것이다.
<그럼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자. 이게 우리 쪽으로 온 제안서야.>
박주호가 중앙에 메일을 띄웠다. 이경복은 슬쩍 훑어보고는 친구를 돌아봤다.
박주호라면 이미 내용을 요약해서 머릿속에 넣어 뒀을 터였다.
<아마 게임 코드를 보낼 때부터 준비를 했던 모양이야. 그런데 생각보다 이벤트 규모가 작아.>
“작다니?”
<그 개발총괄이 설명한 거랑 크게 다르지 않아. 신규 테마를 시청자들과 플레이하고 소감을 나누는 게 전부야.>
이경복은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확실히 이벤트라고 하기에는 너무 조촐했다.
<물론 이게 확정은 아니야. 협의가 가능한 부분이라고 적혀 있는데, 아무래도 우리 쪽 컨텐츠 제작권을 보장해 주려는 것 같아.>
<아마, 그게 맞을걸?>
최병훈이 그 말을 받았다.
<원래 게임 만드는 거랑 방송 진행은 또 다르니까. 실상 광고주가 정해준 대본으로 진행하는 경우는 많지 않아.>
“아, 그래?”
<우리도 그랬잖아? 해서 안 된다는 것만 있지 뭘 하라는 건 많지 않았잖아.>
그 말에 이경복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지금까지 한 광고 중 그나마 제약처럼 느껴진 건 캡슐 언박싱 방송에서 제품 스펙을 설명해야 했던 게 다였다.
그것도 동선과 진행방식은 모두 자율적으로 결정하지 않았나.
<이게 광고주가 짜 놓은 그림대로 진행하면 솔직히 방송이 경직될 수밖에 없어요. 그러면 텐션도 죽고 오히려 역효과가 나거든.>
“흠, 그러면 일단 우리 쪽에서 조율할 여지가 충분하다는 거네.”
이경복은 가볍게 방송을 되짚어보고 입을 열었다.
“채팅창 반응 보면 다들 ‘참여’를 꽤 기대하고 있었어. 그런데 기존 경쟁 모드로는 4명밖에 안 되잖아? 나 빼면 시청자는 셋뿐인데 이대로 진행하면 좀 실망이 크겠지.”
<그건 나도 확인했어. OTP 정도를 기대하는 시청자도 있었고.>
<근데 거너 그라운드랑은 아무래도 게임 자체가 다르니 그 정도 규모까지는 버거울 것 같은데.>
박주호와 최병훈의 표정이 진중해졌다. 평소에는 장난스럽더라도 일 얘기는 가볍게 나눌 것이 아니었다.
“그래도 최대한 인원을 늘려야지.”
<그건 맞는 말이야. 단순히 방송 재미 때문만이 아니라 채널 성장도 직결되는 부분이니까.>
<주호 말이 맞는 게, 특히 지금은 방송 한 달 차라 재구독률을 신경 써야 되는 시점이거든.>
이경복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방송의 재미만 생각했던 터라 뜻밖의 주제였기 때문이었다.
“재구독률?”
<구독자들이 다시 구독을 하느냐 마느냐 결정되는 시점이라는 거지. 뭐, 당장은 충성층이 두터워서 괜찮긴 한데…… 이게 계속 유지되리라는 보장은 또 없거든.>
<확실히 그 말대로야. 애초 시청자들이 구독하는 이유는 중간 광고 제거 같은 편의성도 있지만 무엇보다 차별화가 우선일 테니.>
박주호는 안경을 고쳐 쓰며 말을 이어나갔다.
<첫 달은 이모티콘이 새로 나왔던 때라 그 차별화가 확실했지. 게다가 첫 OTP 이벤트를 구독자 전용 컨텐츠로 잡아서 구독률에도 견인했지만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
“달라진 게 있나?”
<이제는 이모티콘의 사용이 흔해졌어. 구독자도 늘면서 그 사용빈도가 잦아진 만큼 시청자들에게 이모티콘이 친숙해졌지.>
<그만큼 이모티콘이 차별화의 상징이 될 수 없다는 거지. 다들 쓰는데 무슨 차별화가 되겠어?>
최병훈의 첨언에 이경복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그는 지난 채팅을 되짚어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요즘에는 채팅창에 이모티콘이 그렇게 많지는 않네.”
처음 이모티콘이 나왔을 때와 비교하면 현저한 차이가 있었다. 이경복은 그 사실에 놀라고 친구들이 그것까지 파악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또 놀랐다.
<그렇다고 당장 새로운 이모티콘을 만들 수도 없는 노릇이거든. 그러면 구독자들이 어떻게 생각하느냐. 당장 구독을 끊지는 않아. 왜냐? 팬심이 남아있거든.>
<대신 티어를 낮추는 선택을 할 거야.>
이경복은 친구들의 설명에 상황을 이해했다.
“구독은 유지하지만 굳이 더 많은 돈을 내지는 하지 않을 거다. 이 말이네. 하긴, 나라도 그러겠다.”
방송 진행은 스트리머, 컨텐츠 제작자의 관점이지만 채널 운영은 비즈니스였다.
그 둘은 밀접하지만 적용해야 할 전략은 달랐다.
“높은 티어를 구독할 가치, 다른 시청자들과 다르게 대접받는 걸 실감해야 된다는 건데.”
<그렇지. 이모티콘이 없는 이상 우리가 보여 줄 수 있는 건……>
“구독자 전용 이벤트.”
남들은 잡지 못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충분치 않다.
경쟁을 뚫고 얻어낸 기회가 허접하다면 오히려 실망만 커질 터였다.
“미팅에서 조율을 많이 해 봐야겠는데?”
이번 이벤트는 조촐해서는 안 된다. 세 사람은 미팅에서 이 점을 어필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 * *
다음날.
이경복과 친구들은 약속된 미팅 시간에 맞추어 개발사를 찾았다.
“여기 맞아?”
“맞아.”
최병훈이 눈살을 찌푸리며 건물을 올려다보며 묻자 박주호가 퉁명스레 답했다.
“아, 저기 있긴 하네. 아이엠프리즌.”
가늘어진 눈으로 층 안내를 살펴보던 최병훈이 손가락으로 한 곳을 가리켰다.
[9F – I.M.PRISON]
개발사, ‘I.M.PRISON’의 사무실은 건물 하나를 전부 쓰지 않았다.
이전 광고 계약했던 회사들은 다들 알아주는 대기업이었지만 이곳은 강소기업과 중견기업 사이에 해당하는 규모였기 때문이었다.
“이것 참, 어느 정도 예상은 했는데 직접 보니까 좀 맥 빠지네.”
“그래도 기업 평가 자체는 나쁘지 않아. 아마 이쪽 장르에서는 인지도가 높기 때문이겠지.”
“그거야 그렇긴 한데……”
생각보다 작은 회사 규모.
최병훈은 대놓고 실망하는 기색을 보였고 박주호는 담담히 사실을 받아들이려 노력했다.
그러나 이경복의 반응은 사뭇 달랐다.
“야, 괜찮아. 여기 좋은 곳이야.”
그는 환한 미소와 함께 친구들의 어깨를 두드렸다. 친구들은 어리둥절했지만 이내 고개를 주억거렸다.
“뭐, 네가 말하면 그런 거겠지.”
“동의한다.”
세 사람은 엘리베이터를 잡았다. 이경복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꽤 기운이 좋은 터에 자리를 잡았네.’
도착할 때부터 기분이 좋았다. 흔히들 말하는 ‘명당’이라 부르는 자리가 분명했다.
‘게다가……’
9층에 멈춘 엘리베이터.
바로 사무실을 찾아가자 이경복은 더욱 확신했다.
‘회사 자체가 순탄하다.’
매니저인 박주호가 나서서 개발사 직원과 얘기를 나누는 사이 이경복은 사무실을 둘러보았다.
‘직원들 얼굴에 활기가 돌아. 분위기 자체도 생기가 넘치고.’
그는 깊이 호흡했다.
직원들의 열정과 애착, 할머니께서 말씀하셨던 ‘혼’과 ‘신념’이 깃든 공간.
게임 속에서 사념을 읽어내는 방법을 익힌 덕분에 알 수 있었다. 이경복은 충만한 기운을 만끽했다.
‘대부분 그대로 직장을 다니고 있는 모양이네.’
사념 속 목소리 중 대다수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런 입지에 이 정도 조건이라면 재액(災厄)도 쉽게 닥치지 않겠지. 이건 오히려 내 쪽에서 운이 좋은 걸지도.’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예감이 좋았다.
“뭘 그렇게 웃냐?”
최병훈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이경복은 대답 대신 그저 웃었다.
“둘 다 뭐해? 안 오고.”
박주호가 멀뚱히 선 두 사람에게 말했다. 안내를 맡은 직원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세 사람은 회의실로 안내를 받았다.
“아, 어서 오십시오!”
“환영합니다!”
문을 열자 안에 있던 두 사람이 그들을 반겼다. 마주 인사하려던 박주호와 최병훈은 그대로 움찔했다.
“뭐……”
“크흡.”
박주호는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고 최병훈은 터져 나오는 웃음을 애써 참아냈다.
그 원인은 바로 개발총괄, 임프리즈너 때문이었다. 그는 게임 속에서처럼 모니터 3D 가면을 쓰고 있었다.
“오프라인에서는 처음 뵙네요. 퍼플입니다.”
하지만 이경복은 아무렇지 않게 인사를 건넸다.
“이야, 역시 방송천재시네요. 다들 이 가면을 보면 놀라시던데.”
“아뇨, 오히려 이럴 줄 알았으면 저도 가면을 챙겨왔을 텐데 아쉽네요.”
이경복의 여유에 경직된 분위기는 곧바로 부드럽게 흘러갔다. 개발 총괄 곁에 있는 남자는 자신을 사업팀장이라 소개했다.
가볍게 대화를 마치고 미팅은 본론으로 진입했다.
“이게 이번 광고 계약 상세 제안서입니다.”
사업팀장이 홀로그램 문서를 띄웠다. 세 사람은 빠르게 문서를 살폈다.
“……이 금액이 맞습니까?”
박주호가 눈을 가늘게 떴다.
최병훈은 최대한 표정을 유지하려 했지만 커진 동공은 말을 듣지 않았다.
‘60만 큐튜버 기준으로 평균 1,300만 원이라고 했었는데?’
이경복은 의아함을 숨길 수 없었다. 제안서에 적힌 금액은 평균과는 거리가 멀었다.
“네, 맞습니다. 광고 대금으로 2천만 원.”
임프리즈너는 망설임 없이 답했다.
무려 2천만 원.
평균보다 700만 원이나 높은 금액이었다.
‘어떻게 된 거지? 뭔가 추가 사항이 붙었나?’
‘아니, 이 정도면 100만 큐튜버 몸값인데!?’
예상치 못한 금액에 두 친구는 상반된 반응을 보였다. 박주호는 빠르게 제안서를 다시 훑었고 최병훈은 좋아하는 티를 숨기기 위해 손으로 입을 감쌌다.
정작 당사자인 이경복은 놀란 기색 하나 없이 미소와 함께 입을 열었다.
“흥미롭네요. 이 금액으로 산정하신 이유를 들을 수 있을까요?”
“아, 그건……”
“내가 설명하지.”
임프리즈너가 손을 들어 사업팀장을 제지했다.
“원래 처음에는 1,500 선 안팎으로 조정할 예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생각이 바뀌었죠.”
현실이었기에 모니터 가면에 이모지가 나타나는 일은 없었다.
“지금까지 저희 회사가 성장할 수 있었던 건 투자를 아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어제 퍼플 님이 보여 주신 플레이를 보고 깨달았죠.”
하지만 이경복은 왠지 그 가면 위로 느낌표가 점멸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퍼플 님의 가치는 ‘평균’으로 계산될 종류가 아니구나! 이 생각이 바로 머리에 박혔습니다.”
“그렇게 생각해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아닙니다. 당연한 일이죠. 저희가 만드는 방탈출 게임처럼, 보는 것과 직접 경험한 건 다르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렇게까지 말씀해 주시니 편하게 이야기를 드릴 수 있겠네요.”
이경복의 말에 모두가 그에게 눈을 돌렸다.
“솔직히 보내주신 메일 내용으로는 만족스럽지가 않았습니다. 이번 이벤트도 ‘평균’ 이상으로 기획을 해 보고 싶거든요.”
“오!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신 것 같네요. 설명을 부탁드려도 괜찮을까요?”
이경복은 친구들과 상의했던 내용을 밝혔다. 물론 채널 성장과 관련된 부분은 제외하고 이벤트 기획에 관한 내용만이었다.
“OTP라면 시청자 포함 100인이 참가했던 이벤트를 말씀하시는……?”
“네, 맞습니다.”
사업팀장은 경직된 표정으로 개발총괄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나 가면으로 얼굴이 가려졌으니 무슨 생각인지 알 도리가 없었다.
이에 결국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하지만 저희 게임은 장르가 다릅니다. 그렇게까지 많은 인원을 감당하기는……”
“아니, 잠깐.”
사업팀장이 바로 입을 다물었다.
“저희 게임의 장르적 특성상 모두가 한자리에 모일 필요는 없습니다. 참여자 숫자를 늘리시고 싶은 거지 모여 있자는 뜻은 아니신 거죠?”
“그렇죠.”
“그렇다면…… 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리 말하던 임프리즈너는 이내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아니, 가능하게 만들겠습니다. 별도로 이벤트 서버를 할당해서 환경을 구축해 보죠!”
그의 확언에 이경복이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무리한 요구일 수도 있었는데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저희가 더 감사하죠!”
임프리즈너가 손을 맞잡았다.
그렇게 계약을 성사시키고 미팅이 마무리 될 시점이었다.
이경복이 한 마디를 덧붙였다.
“아, 이번에는 이벤트 참여자 선정을 다른 방식으로 하려는데 도움을 좀 주셨으면 합니다.”
“도움이요?”
“예.”
그는 의아해하는 두 사람에게 웃으며 말했다.
“무작위 추첨이 아니라 테스트를 보려고요.”
운이 아니라 실력으로 쟁취한 기회. 구독자들은 그것을 더 값지게 여길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