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화 – 약한 녀석의 명령은 듣지 않는다 (2)
게임이 아닌 현실의 대련.
당연하게도 아무런 준비 없이 치를 수 있는 건 아니었기에 세 사람은 이클립스의 안내에 따라 장소를 옮겼다.
“여기는?”
“동호회에서 운영하는 도장입니다.”
“동호회요?”
“예. 정식으로 서양 검술을 연구하는 단체도 있긴 한데, 여기는 그냥 검술을 즐기는 사람끼리 모여서 운영하고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일반 상가 건물과 다를 게 없었다. 그러나 지하로 내려가니 널찍한 장소가 드러났다.
미리 온 사람들이 있는지 문 너머로 기합 소리가 들려왔다.
이클립스는 문을 열기 전 아차 싶은 얼굴로 시선을 돌렸다.
“아, 다른 회원님들은 제가 방송을 하는 걸 몰라서요. 이 이야기는……”
“아유, 걱정하지 마세요. 저희 모두 얼굴 공개는 안 하는 스트리머잖습니까.”
지놈이 뭘 걱정하냐는 듯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이경복도 고개를 끄덕이자 이클립스가 문을 열었다.
“핫! 아, 사범님!”
“사범님 오셨습니까!”
문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린 회원들은 이클립스를 보자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사범님이셨어요?”
“오오, 이클립스 님의 검술을 실제로?”
그 명칭에 이경복과 지놈이 놀라자 이클립스는 멋쩍은 웃음을 흘렸다.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건 아닙니다. 미흡하지만 회원분들께 도움을 좀 드리고 있죠.”
“그래도 사범이라고 불러 주시는 걸 보니 큰 도움이 된 거겠죠.”
“따로 직위가 있는 건 아닌데 다들 그렇게 부르시더라고요. 어우, 평소에는 익숙했는데 퍼플 님 앞에서 들으니 민망하네요.”
세 사람이 말하는 사이 회원 한 명이 다가왔다.
“오늘은 좀 일찍 나오셨네요? 이분들은……”
“아, 제 지인입니다. 도장 좀 구경시켜드리고 대련을 좀 할까 해서요.”
“대련이요? 손님 두 분이?”
“아뇨, 이 분이랑 저랑 할 겁니다.”
그 말에 회원은 눈을 부릅떴다.
이클립스와 대련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었고, 그 역시 ‘대련’이라는 용어를 아무렇게나 쓰지 않았다.
어느 정도 실력을 갖추지 않으면 대련이 아니라 교육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었다.
“다른 회원분들께 방해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예? 아, 아니 방해라니요. 사범님 대련을 견식할 수 있는 걸 싫어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아하하, 말씀 감사합니다. 그럼, 이쪽으로 오시죠.”
이클립스는 허허롭게 웃으며 두 사람을 안내했다.
[병기고(Armory)]
이경복과 지놈은 문에 붙은 이름표를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병기고라니 너무 거창하지 않나?
그러나 문을 열자 그 생각은 이내 달라졌다.
“와……”
“아니, 이게 다 뭐야? 미쳤다 미쳤어.”
이경복은 작게 탄사를 흘렸고 지놈은 관광이라도 온 것처럼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이클립스는 그런 둘의 반응이 마음에 드는지 웃음을 흘렸다.
“즐겨도 제대로 즐기는 사람들만 모였거든요.”
방 안에는 병기고라는 말 그대로 갖가지 장비가 말끔하게 전시되어 있었다.
글라디우스, 레이피어, 커틀라스 등등 다양한 종류의 한손 검은 물론이고 양손 검까지 세워져 있었다.
그 옆에는 각기 다른 크기의 방패와 여러 사이즈로 구비되어 있는 갑옷도 비치되어 있었다.
“제 방송 수익도 대부분 이쪽으로 투자하고 있습니다.”
이경복은 새삼 박주호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이게 진짜 혼모노구나.’
덕후 중에서도 진짜를 의미했던 그 말. 이클립스의 검술과 기사도에 대한 애착이 컨셉이 아니라 진심이라는 게 느껴졌다.
“원하시는 장비를 고르시면 됩니다. 갑옷도 전문 업체에 위탁해서 청결을 유지하고 있으니 걱정은 마시고요.”
“네? 갑옷까지 입고 싸운다고요?”
지놈이 놀라 되물었다.
그러자 이클립스는 물론 이경복도 의아한 눈초리로 그를 돌아봤다.
“형, 안전을 생각하면 당연한 거잖아?”
“본 실력을 다하려면 만전을 기해야지요.”
두 사람의 대답에 지놈은 눈을 껌뻑였다.
‘……내가 이상한 건가?’
뭔가 상식을 부정당하는 기분이었다.
* * *
“사범님이랑 대련을 한다고?”
“협회 쪽에서 수련한 분일지도 모르겠는데.”
이클립스가 대련을 준비한다는 소식에 회원들은 각자의 수련을 마다하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럼 적어도 프리 스콜라겠지?”
“그렇겠지. 스콜라 어뎁트 급으로는 상대도 안 될 테니까.”
그들은 이경복의 수준을 협회에서 인정하는 등급으로 추측했다. 스콜라 어뎁트는 약 1년에서 3년의 경험을 쌓은 이였고, 프리 스콜라는 어뎁트 중 시험을 통과한 자에게 주어지는 등급이었다.
이윽고 장비를 갖춘 두 사람이 밖으로 나왔다. 이경복은 경갑, 이클립스는 중갑을 착용했다.
그 차림새는 게임, 엘든 소울 속 모습과 큰 차이가 없었다. 두 사람 모두 익숙한 장비를 선택한 것이다.
“……사범님이 중갑을?”
“아니, 그 정도로 까다로운 상대라는 건가?”
하지만 회원들에게는 익숙지 않은 모습이었다. 지금까지 이클립스는 가벼운 차림으로 회원들을 상대해 왔기 때문이었다.
술렁이는 회원들 중 한 사람이 조심스럽게 이경복에게 다가갔다.
“저……”
“네?”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경력이 어느 정도 되시는지 말씀 부탁드려도 될까요?”
이경복은 잠시 눈을 굴렸다.
이내 계산을 마친 그가 대답했다.
“아마 이제 한 4일 정도 됐겠네요.”
“……예?”
낮게 소곤거리던 목소리마저 일순간 지워졌다.
‘4일? 4일이라고?’
‘4년을 잘못 말한 거 아닌가?’
‘표정을 보니까 농담이 아니라 진담 같은데?’
‘아니, 무슨……? 4일이면 제대로 검을 쥐는 법도 모를 텐데?’
순식간에 내려앉은 침묵과 쏟아지는 시선에 이경복은 눈을 껌뻑였다.
뭔가 실수라도 한 걸까?
“사실입니다. 그럼 준비하시죠.”
다행히 이클립스가 그들의 불신을 잠재워 주었다. 물론 그렇다고 술렁임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진짜라고?”
“4일? 4일 차가 대련을?”
“아니……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야?”
회원들 반응에 지놈이 허허롭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현실에서도 퍼기만이라니……”
그 사이 이경복과 이클립스는 각자 자리에 위치했다. 시작 전 가볍게 검을 휘두르며 몸을 푼 이경복은 이내 고개를 기울였다.
“이거 느낌이 좀 다르네요?”
“역시 알아보시는군요.”
이클립스는 활짝 웃으며 설명했다.
“진짜 도검을 살 수는 없으니까요. 날을 죽이고 끝을 뭉툭하게 만든 레플리카 제품이라 밸런스가 좀 다를 겁니다.”
사소하다면 사소한 차이였다.
그러나 이경복은 그 사소한 차이마저 느낄 수 있는 감각을 타고났다. 그리고 그에 대한 적응 능력 또한 있었다.
“음, 대강 알겠습니다. 저는 준비됐습니다.”
“좋습니다.”
이경복의 선언에 이클립스는 투구 덮개를 내렸다. 철컥하는 소리와 함께 그는 검을 가슴께로 올렸다.
이경복 또한 그를 따라 예를 취했다. 두 사람의 동작에 회원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태도를 가다듬었다.
‘이거 완전 이세계구만.’
지놈만이 낯선 분위기 속에서 어색함을 느낄 따름이었다.
그렇게 무거운 정적이 내려앉았다. 이경복과 이클립스 어느 한쪽도 섣불리 먼저 움직이지 않았다.
‘확실히 게임이랑은 달라.’
활용할 수 있는 신기의 양이 적어졌으니 그만큼 감각 또한 제한되어 있었다. 게다가 가상현실 속과 달리 장비의 무게를 지탱하면서 육체가 피로감을 느꼈다.
이는 줄곧 수련을 해 왔던 이클립스와 달리 이경복에게는 생소한 경험이었다.
그러한 악조건을 읽어 낸 것일까.
선공은 이클립스가 시작했다.
캉하는 쇳소리가 울리며 두 사람의 검이 맞붙었다.
“사범님이 선공을?!
“저 사람이 사범님 보다 고수라는 거야?”
“적어도 사범님은 그렇게 생각하신다는 거겠지.”
회원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본래 선공은 약자에게 양보하는 것이 관례였다.
그러나 그러한 잡답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고 회원들은 두 사람의 경합에 홀린 듯 빠져들었다.
“세상에……”
“저분이 정말 4일 차라고?”
“어떻게 저걸 다 받아낼 수가 있지?”
“사범님이 우세처럼 보이기는 하는데……”
이클립스는 특유의 검술로 우세를 잡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우세를 점한 그가 더 긴장한 것처럼 보였다.
반면 이경복의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재미있네.’
처음에는 어색함이 느껴졌으나 합을 나눌수록 몸에 배어든 기억이 깨어났다.
‘이런 식으로도 되는구나.’
또한 제한되어있다곤 하나 신기는 발현이 됐다. 콕콕 찌르듯 전해지는 경고에 몸이 즉각 대응했다.
필요한 순간에 송곳처럼 신기가 튀어나오는 느낌.
신기를 다루는 걸 익히면서 효율적인 사용이 가능해진 덕분이었다.
“으음……!”
이클립스의 투구 속에서 침음이 흘러나왔다. 피로를 느끼는 건 비단 이경복만이 아니었다.
중갑을 입어 더 공격적인 태세를 취할 수 있었지만 그만큼의 피로를 감당해야 했다.
‘속전속결은 역시 무리였나.’
이클립스 또한 가상현실과 현실의 괴리감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경복이 그 차이에 적응하기 전을 노렸지만 그의 적응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사범님이……!”
“설마 밀린다고?”
“일부러 봐주시는 것도 아닌데?!”
회원들은 충격에서 쉽게 헤어 나올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지놈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이길 줄이야 알았는데. 현실에서도 이 정도로 잘한다고?’
회원들과는 약간 다른 이유였다.
이경복의 천재성을 알았기에 당연히 승리를 점쳤지만 이렇게 압도할 줄은 몰랐다.
“흐아압!”
이클립스는 패색을 뒤집으려는 듯 기합과 함께 공세를 펼쳤다. 중갑을 믿고 방어를 도외시한 채 이루어진 검격.
하지만 이경복은 날아든 검을 받아 흘리고는 그대로 칼날을 잡아 검을 거꾸로 쥐고 손잡이로 투구를 강타했다.
“크헉……!”
캉하는 쇳소리와 함께 이클립스의 머리가 홱 돌아갔다.
이경복은 그가 휘청거리는 사이 그대로 양쪽 크로스 가드를 교차시켰다. 이어 그가 검을 잡아당기자 이클립스의 손아귀에서 검이 떨어져 나왔다.
순식간에 벌어진 묘기에 모두가 멍한 표정으로 눈만 껌뻑거리다 검이 바닥에 떨어지며 쇳소리가 도장에 울리자 그제서야 최면에서 깨어나듯 눈을 부릅떴다.
“……졌습니다.”
자세를 추스른 이클립스는 패배를 시인했다. 검을 놓쳤으니 할 말이 없지 않나.
이내 그는 숨을 고르며 투구 덮개를 열었다.
“헌데 머더 스트로크는 대체 어디서 배우셨습니까? 따로 연습이라도 하신 건가요?”
이경복이 마지막에 보여준 기술로 손잡이가 아닌 칼날을 손으로 쥔 채 손잡이 부분과 크로스가드를 이용해 마치 검을 둔기처럼 활용하는 기술이었다.
이클립스처럼 중갑을 걸친 적을 상대하는 데 적절한 기술이었다.
그 물음에 이경복은 가볍게 숨을 뱉고는 대답했다.
“머더 스트로크요? 그게 뭐죠?”
오히려 그가 되묻자 마치 음소거 버튼을 누른 듯 소리가 지워졌다. 이윽고 이클립스가 웃음을 터트렸다.
“아, 죄송합니다. 그 상황에서 가장 효과적인 대응을 하신 거로군요?”
“네. 그렇게 하는 게 가장 좋을 것 같아서요.”
“과연…… 이런 게 천재라는 거로군요.”
이클립스는 후련한 표정으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지놈이 그에게 다가갔다.
“진짜 이 정도면 전혀 억울하지도 않다니까요. 저도 그랬습니다.”
지놈은 이내 박수와 함께 큰 소리로 외쳤다.
“이야, 정말 대단한 승부였습니다!”
그 소리에 이끌리듯 회원들도 갈채를 보냈다.
“와, 진짜 미쳤다.”
“멋진 승부였습니다!”
“4일 만에 저런 수준이라니.”
“천재라는 게 진짜 있구나……”
이경복은 이에 가볍게 고개 숙여 인사하고 이클립스를 돌아봤다.
“조건은 충족된 거죠?”
“예, 물론입니다.”
그의 대답에 이경복은 환한 미소와 함께 손을 내밀었다.
“합류를 환영합니다.”
“초대해 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이로써 이클립스의 이벤트 참가가 확정됐다.
대련을 마친 두 사람은 다시 원래 복장으로 갈아입었다. 그렇게 도장을 떠나려니 회원들이 모여들었다.
“혹시 앞으로도 나오시나요?”
“저희 진짜 강제하는 거 하나도 없습니다.”
“회비도 안 내셔도 됩니다!”
바로 이경복의 동호회 가입을 권유하기 위해서였다. 이에 이클립스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가 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이경복이 먼저 대답했다.
“아쉽게도 당장은 일이 좀 바빠서요. 나중에 여유가 생기면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그 대답에 회원들은 아쉬움을 내비쳤지만 이내 고개를 주억거렸다.
“예, 언제든 방문하셔도 됩니다.”
“오늘 와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견문을 넓힐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조심해서 들어가세요!”
세 사람은 회원들의 배웅을 받으며 도장을 나섰다. 이클립스가 둘에게 물었다.
“4인 1팀이라고 하셨는데, 그럼 나머지 한 분은 누구십니까?”
“아, 그건 지놈 형이 결정할 거예요.”
“응? 내가?”
이경복의 대답에 지놈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언제 그렇게 결정하기로 했던가?
“이클립스 님은 내가 픽했으니까 다른 한 사람은 형이 고르는 게 맞지.”
“음, 지놈 님 안목이라면 믿을 수 있죠.”
이클립스도 수긍하자 지놈은 웃으며 턱을 치켜들었다.
“뭐, 제가 사람을 잘 보긴 합니다. 맡겨 주셨으니 좋은 인재 하나 데려오죠.”
“그럼 그 때 다시 모이는 걸로 하죠.”
이경복이 그만 자리를 파하려 했다. 그때 이클립스가 깜빡했다는 듯 돌아서며 물었다.
“아, 근데 혹시 거너 그라운드에도 기사 복장이 있습니까?”
“……기사 복장이요?”
이경복이 이를 어쩌나 싶었는데 지놈이 흔쾌히 대답했다.
“그럼요, 있습니다.”
“있다고?”
“어, 예전에 이벤트 모드로 ‘판타지 그라운드’를 진행한 적 있었거든. 그때 스킨 제가 선물로 드릴게요.”
“아, 감사합니다.”
이클립스가 넙죽 고개를 숙이자 지놈이 웃음 지었다.
“아유, 아닙니다. 컨셉은 중대사항이죠.”
그 대화에 이경복은 탄환이 난무하는 전장에 홀로 선 기사를 떠올렸다.
‘확실히 재미는 있겠네.’
의외로 이클립스는 예능 스트리머의 자질을 갖춘 인물이었다.
* * *
최병훈의 오피스텔.
[>이클님 합류 확정됐다.]
[>다행이네. 혹시 몰라서 섭외 목록을 작성하고 있었는데.]
[>그래? 일단 나머지 한 명은 지놈 형한테 맡기기로 했는데.]
[>괜찮아. 나중에 필요하면 전달하지.]
최병훈은 팀 퍼펙트 단톡방을 확인하고는 웃음을 흘렸다.
“와…… 이게 진짜 되네. 그 이클립스가 다른 게임을 하다니.”
예전이었다면 아무도 믿지 않을 이야기였다. 하지만 이경복은 여느 때처럼 말도 안 되는 일을 가능케 했다.
‘근데 내가 카페인에 절어 살긴 했네.’
최병훈은 일단 하던 일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이스케이퍼스 영상은 액션이 적어 옛적에 편집을 끝내고 업로드를 걸어두었기에 모처럼 생긴 여유에 최병훈은 집안을 청소하고 있었다.
그 결과 에너지 음료와 커피, 그리고 야식의 흔적들이 쓰레기봉투로 다섯 개나 나왔다.
“어우, 운동 좀 해야 되는데.”
스스로도 지키지 않을 걸 알고 있는 말을 내뱉으며 청소하던 그때 진동이 전해져왔다.
단톡인가 싶어 확인해 보니 이번에는 다른 사람이었다.
[>님]
[>퍼플 거그 복귀 트루임?]
거너 그라운드 영상 채널, 매드 거너의 운영자 매드맨이었다. 가끔 보조편집자로 기용했었지만 최근에는 혼자서 할 수 있었기에 연락이 뜸했었다.
[>(사진)]
[>지놈 피셜로 커뮤니티 짤 돌아다니는 중임]
[>진짜 퍼지조합으로 거그 이벤트 맞음?]
최병훈은 매드맨이 보내준 내용을 보고 탄사를 흘렸다.
“캬…… 이러니까 다들 지놈을 찾지. 티저 마케팅 효과 확실하네.”
지놈이 방송에서 한 이야기가 커뮤니티에 퍼지면서 자연스럽게 거너그라운드 이벤트에 대한 예측이 무성해졌다.
알아서 이슈를 만들고 광고를 해주니 기업 쪽에서는 지놈을 싫어할 리가 없었다.
최병훈은 이내 답장을 작성했다.
[>노 코멘트 ㅋㅋㅋ]
[>근데 그건 님이 왜 물어봄?]
그 답장에 스마트 링크가 연달아 진동하기 시작했다.
[>헐? 당연히 물어봐야 되는 거 아님?]
[>거그 하면 당연히 나한테 맡겨야 되는 거 아님?]
[>퍼플 영상이면 무조건 0순위임!]
[>페이도 부르는 대로 받겠음!]
매드맨이 적극 의욕을 펼치자 최병훈은 헛웃음을 흘렸다.
[>일단 알았음 ㅋㅋㅋㅋ]
[>그래도 페이는 제대로 줄 거]
[>우리가 진짜 블랙기업인 줄 아냐고 ㅋㅋㅋㅋ]
매드맨과 대화를 마무리 짓고 정리해둔 쓰레기를 치우려 할 때 그 사이로 최병훈은 한 상자를 발견했다.
“아, 맞다. 이거 줘야 되는데.”
모니터 헤드 굿즈가 담긴 상자.
이스케이퍼스 개발사로부터 받은 선물이었다.
박주호는 필요 없다고 거절했고 이경복은 나중에 나눠달라고 맡겨 두었다.
‘가져가려나…?’
그래도 언제 개발사 쪽과 다시 연이 생길지 모르니 전해 주는 편이 좋을 터였다. 기껏 선물했는데 없으면 실망하지 않겠나.
상자를 뒤적거리던 최병훈은 이내 앨범을 꺼냈다.
“아, 이것도 있었지.”
걸그룹 ‘스위티즈’의 신보.
무심코 앨범을 여니 작은 종이가 떨어졌다.
“응모권?”
스위티즈의 사인회 응모권이었다. 그에게는 별 필요 없는 물건이었기에 쓰레기봉투에 넣으려는 찰나.
‘……근데 경복이가 스위티즈 좋아하지 않았나?’
뇌리에 문득 떠오른 장면들이 있었다.
‘예전에 갑자기 방송 일정도 물어봤었고, 앨범도 먼저 챙겼지?’
최병훈의 입가에 미소가 흘러나왔다.
‘이 자식 이거, 우리가 괜히 놀릴까봐 덕심을 숨기고 있는 거 아냐?’
그는 응모권을 빠르게 훑어보았다. 사인회 날짜도 마침 휴방 요일이었다.
문제는 응모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점.
“흠…… 금마도 쉴 때는 쉬어야지.”
안 그래도 방송 시작한 이후로 부쩍 일만 하지 않았나. 제 딴에는 방송이 쉬는 거라고는 했지만 그래도 마음 편히 휴식하는 것과는 결이 달랐다.
“샤이 스위티즈 팬을 위해 푸쉬를 좀 해 줘야겠구만.”
최병훈은 친구를 위해 나서기로 했다. 자신의 부탁으로 사인회에 가자고 하면 못이기는 척 따라오지 않겠나.
‘뭐, 그것도 당첨이 되어야 하는 거겠지만.’
최병훈은 응모권을 따로 챙겨두고 다시 청소에 열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