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의 신들린 게임방송-111화 (111/491)

111화 - 팬사인회? (1)

거너 그라운드의 개발사, GGG의 본사.

직원들은 평소에도 바빴지만 최근에는 유독 더 바빠져 있었는데 가을 업데이트와 이벤트 모드 진행 준비 때문이었다.

하지만 개발실과 사업실의 분위기는 상반됐다. 개발실은 준비가 마무리됨에 따라 조금씩 여유를 되찾았지만 사업실의 분위기는 어두웠다.

그중에서도 특히 어두운 건 바로 마케팅팀.

“세렝게티 BJ들 혐의가 확정 됐답니다.”

“아오, 진짜 미치겠네……”

세렝게티 BJ 섭외 문제 일정에 차질이 생겼다. 실질적으로 마케팅팀 쪽이 잘못한 건 아니었지만 담당자로서 책임을 짊어질 수밖에 없었다.

“지금 빈자리 얼마나 채워졌어?”

“아직 절반도 못 채웠습니다……”

마케팅 팀장의 얼굴은 그간의 스트레스로 말이 아니었다.

“후…… 일단 각 팀장 스트리머들한테 다시 독촉해. 우리 쪽에서도 검증할 시간이 있어야 하니까 최대한 빨리 좀 목록 보내달라고.”

“예.”

“정중하게 전해! 문제 소지 없게!”

“넵!”

직원이 나가자마자 팀장은 위장약을 꺼내 먹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다 먹지 못했다.

들려오는 노크 소리에 그는 반절쯤 먹은 위장약을 내려놓으며 대답했다.

“들어와.”

“팀장님, 지놈 팀에서 팀원 섭외로 연락이 왔습니다.”

지놈이라는 이름에 팀장은 한결 편해진 표정으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지놈이면 믿을만하지.’

문제 소지도 적고 자체적으로 이슈를 만들어 관심까지 끌어 주었다. 덕분에 마케팅팀으로서는 부담을 덜 수 있었고 말이다.

롱런하는 스트리머는 이유가 다 있는 법이다.

“지놈 팀은 기초적인 것만 체크하고 넘겨.”

세렝게티 BJ와 같은 문제가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섭외가 완료된 스트리머는 팀장이 직접 확인하고 있었다.

그가 손을 내저었지만 직원은 나가지 않았다. 뭔가 싶었는데 직원이 눈을 굴리다가 입을 열었다.

“어, 그래도 확인은 해 주셔야 될 것 같습니다.”

“확인? 왜? 누군데?”

“그게…… 이클립스입니다.”

“이클립스?”

팀장은 눈이 휘둥그레져 물었다.

그가 아는 거너 그라운드 스트리머 중에 이클립스라는 이름은 없다.

그러나 마케팅을 담당하는 사람으로서 커뮤니티 이슈 체크는 기본이었기에.

“……엘든 소울의 이클립스?”

그는 물론이고 마케팅 팀원들도 이클립스가 누구인지 잘 알고 있었다.

“저도 재차 확인해 봤는데 그 이클립스가 맞습니다.”

“아니, 이클립스가 왜? 15년 동안 프롬 게임만 하던 양반이?”

“그래서 본인에게 확인해 봤는데, 퍼플 님 추천으로 참가하게 됐다는 말밖에는……”

직원도 이 상황이 얼떨떨한지 말끝을 흐렸다.

뜬금없이 퍼플이라는 이름이 튀어나오자 팀장은 움찔 몸을 떨었다.

‘으음, 안 좋은 기억이……’

이전 퍼플과 데이터 계약 당시 비용절감을 하려다 계약 자체가 무산될 뻔한 적이 있었다.

그때 개발실장에게 불려가서 한 소리 듣지 않았나. 때문에 그에게 퍼플은 그리 좋은 기억으로 남지 않았다.

‘퍼플? 그 사람이 이클립스를 섭외했다고?’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는 상황이 달랐다.

‘15년간 한 우물만 판 스트리머가 새로 선택한 게임이 거너 그라운드다?’

생각만 해도 관심을 끌만한 이슈가 아닌가. 퍼플이 만들어 준 이 상황은 그에게는 더 없는 호재였다.

팀장의 머리는 맹렬히 회전했다.

“일정 공개 방식을 바꿔야겠다.”

“네?”

“일괄 공지 말고 순차 공개로 바꿔야겠어.”

팀장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직원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순차 공개요? 아직 섭외가 다 완료된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해야지.”

팀장은 흐트러진 옷매무시를 가다듬으며 대답했다.

“순차 공개로 일정을 잡아 두면 데드라인이 생기잖아. 그러면 팀장을 맡은 스트리머들도 섭외에 신경을 쓰겠지.”

아쉬운 소리 없이 스트리머들을 독촉할 수도 있고 이벤트 진행 전까지 커뮤니티의 이슈 생산도 가능하다.

이전까지는 그 효과가 얼마나 될지 미지수였지만 지금은 달랐다.

“실장님한테는 내가 바로 보고할 테니까 준비해.”

다 죽어가던 그의 얼굴에 활기가 돌아왔다.

‘정말 퍼플 코인이라는 게 있는 건가?’

팀장은 커뮤니티에서 사용하는 밈을 떠올리며 웃음 지었다.

* * *

이경복의 집.

팀 퍼펙트 회의에 앞서 최병훈이 먼저 집에 도착했다.

“뭐야? 왜 이렇게 빨리 왔어?”

이경복은 의아함을 숨길 수 없었다. 이 친구가 그렇게 부지런한 성격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나, 자식이. 일단 이것부터 좀 받아라.”

최병훈은 들고 온 박스를 내밀었다. 모니터 헤드 굿즈가 들어있는 박스였다.

이경복은 이에 실소를 흘렸다.

“아, 맞다. 이거 깜빡하고 있었네.”

“일단 캡슐 방에 놔둬라. 저번 캡슐 언박싱 영상처럼 방 공개 됐을 때 보이게.”

“그래, 알았다. 회의 끝나고 놔둘게.”

“그리고 이거 하나만 좀 부탁하자.”

최병훈은 헛기침을 하며 작은 종이 3장을 내밀었다. 이경복이 뭔가 싶어 받아 보니.

“……스위티즈 사인회 응모권?”

음반에 동봉된 사인회 응모권이었다.

이경복이 눈을 돌렸다.

이걸로 뭘 어쩌란 말인가.

‘이 자식 이거 표정 관리 보소.’

그 퉁명스러운 얼굴에 최병훈은 속으로 웃음 지었다. 이경복이 제 덕심을 숨기려는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최병훈은 이내 헛기침하며 턱짓했다.

“보니까 휴방일에 하더라고. 한 번 가 보고 싶었는데 네가 응모하면 뽑힐 것 같아서. 좋은 기운 좀 나눠 줘라.”

“아니, 이런 거랑은 전혀 상관없다니까.”

이경복은 손을 내저었다.

그의 신기는 이런 식으로 작동하지 않았다.

“아, 상관없어도 그냥 해 줘라. 어려운 부탁도 아니잖아. 응? 그냥 쓱쓱 쓰기만 하면 되는데.”

하지만 그럼에도 최병훈은 거듭 부탁했다. 이에 오히려 이경복은 의아해했다.

‘이 자식이 원래 스위티즈 팬이었나?’

최병훈이 그러했듯 이경복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저번에 보니까 집에서 넷플렉스만 봤다고 했지. 모처럼 밖에 나가고 싶다는데 도와주는 게 낫겠지.’

그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짧게 한숨을 내쉬고 응모권을 작성해 주었다.

“안 뽑혀도 원망하지 마라?”

“절대 안 하지.”

“자.”

“오케이! 땡큐!”

최병훈은 응모권을 챙기며 웃음을 흘렸다.

“뭐 좋은 일이라도 있는 거냐?”

그때 들려오는 목소리에 두 사람은 흠칫하며 눈을 돌렸다. 어느새 들어온 박주호가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최병훈과 이경복은 동시에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숨덕이니까 들키면 안 되겠지? 나만 아는 게 좋겠어.’

‘주호한테는 알리고 싶지 않은 건가? 하긴 또 잔소리를 들을지도.’

서로의 착각에도 불구하고 합의점을 찾은 두 사람.

그들은 빠르게 손을 내저으며 대답했다.

“아니, 아무 일도 아닌데?”

“어어. 이 굿즈들 어디다 둘지 얘기하고 있었어.”

이경복이 주의를 돌리기 위해 박스를 가리켰다. 박주호도 그제야 박스를 확인하고 안을 살폈다.

“전부 다 있네.”

“다 있지, 그럼.”

이내 박주호는 스위티즈 음반을 꺼내 열었다. 그리고 이내 눈을 부릅떴다.

“최병훈.”

“왜?”

“음반 안에 사인회 응모권이 있는 걸로 아는데, 왜 없는 거지?”

그의 눈초리에 최병훈은 빠르게 눈을 굴렸다.

“설마 판 건 아니겠지?”

“아니, 팔긴 왜 팔아?”

“그럼?”

“그, 어제 대청소하다가 버렸어.”

“버렸다고?”

“그게 실수로 박스를 쏟았거든.”

박주호는 잠시 그를 바라보다가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다면 다행이고.”

“야야, 우리가 그렇게 궁한 것도 아닌데 그걸 왜 팔겠냐?”

“……나중에라도 구설수 잡힐 일은 안 하는 게 좋다.”

박주호가 그리 말하며 외투를 벗으러 가자 남은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안도했다.

그 때문에 서로의 착각에 더 확신을 가졌지만 어쨌든.

“GGG에서 연락이 왔다.”

이내 회의 시작과 함께 박주호가 입을 열었다.

“일정 공개 방식을 순차 공개로 변경했어. 각 팀의 팀장이랑 첫 멤버가 오늘 공개 될 거다. 우리는 지놈 님이랑 경복이가 공개 되겠지.”

“오? 그럼 이제 대외비는 아닌 거네?”

“방송시간 전에 공개니까 방송 시간 중에는 상관없을 거다.”

최병훈이 이에 웃음을 흘렸다.

“딱이다야. 이벤트 공지 되면 바로 주목도 올라갈 거고, 시청자도 유입될 거고. 개꿀인데?”

“그럼 시청자들도 다 거그를 원하겠네.”

이경복도 이 사실을 반겼다.

“이벤트 전까지 짧게 할 게임 고르려고 했는데, 이러면 당분간 거그만 해도 되겠어.”

“안 그래도 요즘 커뮤니티에 거그 복귀로 이슈가 됐었어. 트나잇 팬페이지에 거그 해달라는 요청도 많아졌고.”

커뮤니티 동향 파악을 해왔던 박주호도 이에 동의했다.

“대신 아쉽게도 이클 님이랑 합방은 불가능해. 이벤트가 공개된 시점에서 합방해 버리면 스포일러가 되니까.”

“그거야 어쩔 수 없지. 따로 연습하는 수밖에.”

“에이 뭐, 이클 님이야 어련히 잘 알아서 하시지 않겠음?”

최병훈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웃었다. 그보다 그들이 관심을 가져야 하는 쪽은 따로 있었다.

“아직 마지막 멤버는 결정 안 됐지?”

“어, 형이 아직 섭외 중인 모양이던데.”

“과연 누가 될지 궁금하군.”

이번 이벤트를 함께할 마지막 팀원은 과연 누가 될 것인가.

“재미있는 사람이면 좋겠는데.”

이경복은 다가올 이벤트를 기대하며 웃었다.

* * *

그날 저녁.

걸그룹 스위티즈의 숙소.

윤나라는 캡슐 속에 있었다.

그녀가 플레이 하는 게임은 다름 아닌 이스케이퍼스.

<당신은 무사히 스페이스 콜로니를 떠났습니다. 새로운 행성과 새로운 삶이 당신을 기다립니다. 하지만 다시 우주에 나오고 싶지는 않을 것 같네요.>

[You Are Escaper!]

이번에 새로 업데이트 된 테마를 클리어했다. 그것도 경쟁모드에서 1등으로 말이다.

심지어 벌써 이번이 7번째 1등이었다.

하지만 윤나라는 흡족하지 않았다.

“……대체 어떻게 한 거야?”

큐튜브 영상 속 퍼플이 보여 준 역량에 비하면 역부족이었다. 스케줄 때문에 이벤트에 참가 신청은 하지 못했지만 만약 참가했어도 패배했을 게 분명했다.

그녀의 실력은 준수했지만 퍼플을 넘어설 수 없다는 건 스스로가 가장 잘 알았다.

‘다시……!’

그럼에도 포기는 하지 않았다.

그녀가 경쟁심을 불태우며 다시 매칭을 잡으려 할 때였다.

[>방송 20분 전입니다!]

게임 내 메시지가 아닌 외부에서 들어온 메시지. 스위티즈 매니저의 호출이었다.

‘시간이 벌써 그렇게 됐나?’

그녀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게임을 종료했다. 이내 현실로 돌아온 그녀는 캡슐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이윽고 노크 소리와 함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언니! 메시지 봤지?”

“어, 나왔어. 걱정하지 마.”

이윽고 슬쩍 문이 열리며 멤버의 얼굴이 들어왔다.

“또 캡슐 들어가 있었어?”

“응.”

“으음…… 머리 좀 만져야 될 거 같은데?”

“그래? 난 괜찮은 거 같은데?”

윤나라는 거울을 돌아보며 말했다. 캡슐에 누워 있느라 약간 머리가 헝클어져 있었지만 크게 흠잡을 부분은 없어 보였다.

“하긴 언니 얼굴이면 뭔들 어떻겠어. 진짜 헤완얼이라니까.”

“패완얼도 아니고 헤완얼은 또 뭐야.”

“오? 패완얼은 인정한다는 거?”

“뭐래.”

윤나라는 멤버의 장난기에 실소를 흘렸다.

“헤어의 완성도 얼굴이라니까? 일단 의상 입고 바로 나와. 쌤한테는 내가 얘기 해 놓을게.”

“응, 고마워.”

“언니가 그 금손으로 잘 뽑으라고 해 주는 거야. 알지?”

멤버가 장난스럽게 웃으며 사라지자 그녀도 미소 지었다.

“그냥 내키는 대로 뽑는 건데 무슨 금손이야.”

다음 방송은 바로 사인회 응모권 추첨.

스위티즈는 공정하게 추첨한다는 걸 알려 주기 위해 응모권 추첨을 라이브 방송으로 진행했다.

그녀는 의상으로 갈아입으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퍼플을 상대할 기회는 언제든 올 거야.’

스위티즈의 리더, 윤나라가 개인방송계에서 유명한 저격러인 ‘뉴턴좌’라는 사실을 아는 이들은 많지 않다.

그만큼 그녀는 둘을 철저히 구분할 줄 알았다.

‘내 본분에 충실하자.’

그녀는 거울을 보며 화사한 웃음을 지었다.

지금은 팬들이 원하는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할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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