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화 - 팬사인회? (3)
거너 그라운드의 개발사, GGG의 큐튜브.
매 업데이트 사항은 물론 각종 이벤트 안내 영상이 올라오는 곳이었다. 그런 GGG채널에 새로운 영상이 올라왔다.
하지만 일반 영상이 아닌 최초공개, 프리미어 영상.
-아 ㅋㅋ 최초공개 기능 개발한 사람 누구냐고
-이거 아주 괘씸하그등요?
-그러면서 벌써부터 와있는 건 뭐냐고 ㅋㅋㅋㅋ
-킹직히 이건 GGG를 때려야 된다
-그냥 바로 공개하라구웃!
공개에 앞서 채팅창에는 시청자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무적권 놀라는 멤버는 과연?!
-HOXY 퍼청자?
-너두? 와! 나두!
-퍼플 인증 놀래미는 못참지 ㅋㅋㅋ
개중에는 퍼플 방송의 시청자들도 있었다. 이전 방송에서 언급한 놀랄 만한 멤버를 확인하기 위해 찾아온 것이었다.
이윽고 화면이 뒤바뀌며 카운트다운이 시작됐다.
-드디어 3번째 멤버인가!
-이미 공개된 라인업만 봐도 개쩌는데 ㅋㅋㅋ
-GGG가 돈을 좀 많이 썼네
-이번 업데이트랑 이벤트 투자 좀 많이 한 듯
시청자들의 기대 속에 카운트가 끝나고 화면이 전환되자 말끔한 정장 차림의 여성이 웃으며 인사를 올렸다.
“안녕하세요! 이번 거너 그라운드의 이벤트 매치, ‘타임 워페어’의 캐스터를 맡은 정소윤입니다!”
게임 캐스터, 정소윤.
대부분이 남성인 게임 캐스터 업게의 홍일점이자 40대 나이임에도 게임에 해박해 인기가 많았다.
-정캐! 정캐! 정캐! 정캐!
-소윤이모 최고다!
-GGG의 탁월한 선택추
-정캐는 인정이지 ㅋㅋㅋ
-벌써 귀에 쏙쏙 들어오누 ㅋㅋ
라이브 방송이 아님에도 시청자들은 그녀를 환대했다.
“오늘은 참가 팀의 3번째 멤버가 공개되는데요. 그럼 차례대로 확인해 보겠습니다!”
정소윤은 능숙하게 공개를 이어나갔다. 하나둘씩 공개되는 멤버와 더불어 시청자들의 숫자도 늘어났다.
-엌ㅋㅋ 독수겜방이라고?
-그 똥손을 멤버로?
-이 팀 가가매요! 아주 가가매요!
-가모립ㅋㅋㅋㅋ출전ㅋㅋㅋㅋㅋ
-미친 혼파망이네 ㅋㅋㅋㅋ
-방송사고각이다 ㅋㅋㅋㅋㅋ
시청자들은 저마다 아는 스트리머가 나올 때마다 웃음을 터트렸다.
“네, 다음 팀은 라이징 스타, 신성 스트리머 퍼플 님과 관록이 엿보이는 지놈 님의 팀이죠? 팀 ‘퍼지데이’의 3번째 멤버입니다!”
이윽고 퍼플과 지놈이 속한 팀의 차례가 됐다.
-키따!
-드디어 나왔구나!
-큰 거 옆에 큰 거! 큰 거 옆에 큰 거! 큰 거 옆에 큰 거!
-무적권 놀라는 멤버는 과연?!
퍼플과 지놈의 팬들의 흥분으로 채팅창이 버벅이기 시작했다. 영상 속 정소윤이 큐카드를 넘기다가 눈을 크게 떴다.
“어……?”
그간의 경력에도 불구하고 순간 말문이 막힌 그녀의 모습.
대체 누구이기에?
시청자들의 기대심이 한 것 치솟는 사이 그녀가 입을 열었다.
“정말 예상 밖이네요! 팀 퍼지데이의 3번째 멤버는 바로!”
그녀가 짧게 말을 끊자 영상에 자료화면이 나타났다. 놀랍게도 이전에 공개된 이들과 달리 갑옷과 투구를 쓴 사진이 튀어나왔다.
“스트리머 이클립스 님이십니다!”
-?
-ㅔ?
-이클립스?
-뭐지? 방송사고인가?
-않이;;; 여기 GGG 방송 아님?
-내가 프롬 채널에 잘못 들어왔나?
-경께서 거기서 왜 나오는 것이오?
시청자들은 왜 이클립스가 나왔는지 전혀 이해를 못 했다. 공개와 더불어 폭증하는 물음표와 채팅에 일순간 채팅창이 마비가 됐다.
다행히 라이브 방송이 아니었기에 영상은 계속 진행이 됐다. GGG측도 이런 반응을 예상한 것일까.
“와, 제가 많은 이벤트를 진행 해 왔지만 타 게임을 언급하는 건 처음인 것 같아요. 하지만 설명을 드리지 않을 수가 없죠?”
이클립스의 약력이 화면에 나타났다. 정소윤은 이를 간단히 읊어 주었다.
“이렇게 한 장르에만 매진했던 이클립스 님이 왜 출전을 결정하셨느냐, 그 이유를 말씀해 주셨는데요. 놀랍게도 같은 팀의 퍼플 님 덕분이라고 합니다!”
-퍼플?
-갓플이 여기서 왜 나와?
-대체 무슨 짓을 저지른 거냐고!
-속보) 검찰청, 최근 결성된 ‘엘든 카르텔’ 포착! 엄중 수사 방침!
-뭔 카르텔이야 ㅅㅂㅋㅋㅋㅋ
-아 ㅋㅋ 알겠다! 최면 어플 맏찌?
-않잌ㅋㅋ 미친놈씨!
-퍼청자들 드립 못 참쥬?
퍼플의 이름이 언급되자 채팅창은 더욱 요동쳤다.
“퍼플 님을 본받아 식견을 넓힐 기회라 생각해 받아들였다고 하시네요. 아예 완전히 다른 경험을 해 보려 참전을 결정하셨다고 합니다!”
-캬 ㅋㅋㅋㅋㅋㅋ
-대체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임?
-뭐지? 한국인이 아니신가?
-아 ㅋㅋ 퍼튜브 찾아 보시라구요
-15년 차 스트리머의 장르변경? 이거 완전 대격변 아니냐 ㅋㅋㅋ
-퍼플의 등장 자체가 대격변이었다 이말이야
-정보) 갓플은 이제 2달 차 스트리머다
-으, 응애?
-응애(사자후)
-사자후는 또 뭔데 ㅋㅋㅋㅋ
-갓플은 드래곤본 아가라구욧!
시청자들은 이클립스가 남긴 코멘트에 흥겨워했다.
그러나 모두가 그런 건 아니었다.
-않이;;; 근데 이클립스 총겜 해보긴 했음?
-프롬 사 게임에 총 나오는 거 없지 않나 ㅋㅋㅋㅋ
-메카물 하나 있긴 한데…… 거그랑은 완전 다르지
-코어 아머 말 하는 거? 그건 콘솔 시장 때 작품이잖슴!
-아무리 그래도 방송 안 할 때 거그 한 판 정도는 해보지 않았을까?
-현실에서도 검술 수련하는 양반인데 총은 무슨 ㅋㅋㅋㅋ
이클립스의 장르 변환은 파격적이었지만 그만큼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이런 반응도 예상이 된 모양이었다.
“더불어 이클립스 님이 남겨 주신 포부가 있습니다! 그대로 읽어드릴게요.”
정소윤은 이내 목을 가다듬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이클립스 가라사대, ‘전장이 바뀌어도 기사도는 달라지지 않소. 동료들에 누가 되지 않도록 때가 될 때까지 폐관수련을 하겠소이다.’라고 하셨네요!”
정소윤이 전한 말에 채팅창 분위기는 일변했다.
-가라사댘ㅋㅋㅋㅋ
-목소리 까는 거 뭔뎈ㅋㅋㅋ
-이래서 정캐, 정캐 하는 거라니깐!
-않잌ㅋㅋ 기사 컨셉은 그대로 가냐곸ㅋㅋ
-전장의 기사 무엇?
-중2중2하면서도 끌리긴 함 ㅋ
-어쩐지 최근에 아예 방송을 안하더라니 ㅋㅋㅋㅋ
-갓플 말이 맞았누 ㅋㅋ
-ㄹㅇㅋㅋㅋ 진짜 놀랄 수밖에 없자너
이내 설명이 끝나고 화면은 다른 팀 공개로 넘어갔다. 하지만 채팅창의 주제는 쉽게 바뀌지 않았다.
-퍼지이 조합 다시 보는 거 실화냐?
-이래서 친구를 잘 사귀어야 한다니깐!
-진짜 퍼지데이는 전설이다 ㅋㅋ
-라인업 밸류 완전 미쳤네 ㅋㅋ
-어우퍼는 과학이라는 또 다른 증거 나와버렸고 ㅋㅋㅋ
-아직 4번째 멤버는 모르잖슴?
-아무튼 우승은 퍼플임!
팀 퍼지데이에 대한 채팅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라이브 방송이라면 캐스터가 중재라도 하겠지만 녹화 영상이었기에 그 흐름이 유지된 것이다.
-근데 이 조합에 낄 수 있는 사람이 있긴 함?
-ㄹㅇㅋㅋ 다른 3명이 완전 쩌는데
-4번째 멤버도 개 쩔겠지?
-웬만큼 급 안 맞으면 부담 때문에 돌아버릴 것 같은데ㅋㅋㅋㅋ
이클립스에 이어 공개될 4번째 멤버. 그 기대치는 고공행진 중이었다.
* * *
스위티즈 사인회 당일.
이경복과 최병훈은 박주호의 집을 찾았다.
“……와.”
“미친, 이게 다 뭐냐?”
두 친구는 집에 들어서자마자 경탄했다.
“첫 팬싸인데 아무 준비 없이 갈 수는 없지.”
팬밍아웃(?)을 한 박주호가 그간 숨겨 왔던 스위티즈 굿즈를 모두 꺼내놓은 채 두 사람을 맞이했다.
“여기서부터 1집에서 신보까지 응원봉이고, 이쪽은 순서대로 시즌마다 나온 아이템들. 이거 외에도 수건 있는데 그건 쓴 거라 빌려주기는 좀 그렇고.”
“아니…… 근데 왜 같은 게 여러 개야?”
최병훈이 빠르게 설명하는 그의 입을 막으며 물었다. 이에 박주호는 미간을 찌푸렸다.
“소장용이랑 실사용 굿즈는 당연히 구분해야지.”
“아, 소장용……”
“근데 소장용이라면서 빌려줘도 되는 거야?”
이경복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소장할 정도로 중요시 여기는 물건을 빌려준다니 고맙지만 부담도 느껴졌다.
이에 박주호가 안경을 고쳐 쓰며 웃었다.
“괜찮다. 여기 꺼내 둔 건 분실을 대비해 사둔 스페어니까.”
“……스페어?”
“진짜 소장용은 컨디션이 좋은 특상품으로 보관 중이니 걱정마라.”
그의 대답에 이경복과 최병훈은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박주호, 이 녀석……’
‘혼모노다.’
말로 하지 않아도 의미가 전달됐다. 그런 둘을 바라보던 박주호는 헛기침을 했다.
“흠흠, 팬싸가 처음이면 꼭 챙길 필요는 없다. 대신 필수품은 따로 준비해 뒀지.”
“필수품은 또 뭔데?”
“바로 이거다.”
박주호는 따로 정리해둔 방수 팩을 건넸다.
“포토카드랑 포스트잇? 편지지는 또 뭐고?”
“포토카드에 사인을 받는 게 가장 기본이지. 포스트잇에는 멤버들이 널 부를 호칭과 사인으로 적어줄 멘트를 부탁하는 용도다. 너희들 따로 조공 선물 같은 건?”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고 고개를 내저었다. 실상 팬도 아닌데 선물을 준비할 이유가 없었다.
“그래, 뭘 줘야 할지 도통 못 고르겠지. 주고 싶은 건 많은데 처음에는 취향이나 선호도를 모르니까. 나도 처음에는 그랬다.”
박주호는 그 이유를 다르게 해석했다. 두 친구는 그 오해를 구태여 풀지 않았다.
“때문에 가장 기본 중에 기본! 팬레터를 쓸 수 있는 편지지를 준비해 뒀지! 방수 팩을 준비한 건 혹시 모를 우천 상황을 대비하기 위함이고!”
그 설명에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랑은 다르게 정말 텐션이 높네.’
‘이건 찐텐이네.’
색다른 친구의 모습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진짜 팬은 아니지만 그 기대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을 정도였다.
“근데 달랑 팬레터만 주기는 좀 그렇지 않나?”
“뭐 간식거리나 음료를 같이 주면 되지 않을까? 스위티즈니까 달달한 거로다가.”
최병훈이 웃으며 말하자 박주호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불가능하다.”
“불가능?”
“가끔 음식에 이상한 짓거리를 해대는 악질들이 있거든. 다행히 스위티즈가 그런 일을 겪은 적은 없지만 다른 아이돌의 사례가 있다.”
“아…… 먹을 건 못 주는구나?”
두 친구는 순순히 동의했다. 지금은 박주호의 가이드를 따를 때였다.
하지만 이내 두 사람은 난관에 봉착했다.
‘팬레터라고 해도……’
‘뭘 써야 되는 거지?’
빈 편지지를 두고 고민에 잠긴 두 사람. 박주호는 그걸 보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쓰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고르기가 힘들겠지. 나도 처음에는 그랬으니까. 하지만 편하게 하고 싶은 말을 적는 게 좋아.”
다행히 착각은 더 깊어지지 않았다. 박주호는 슬쩍 시간을 확인하고는 두 사람을 불렀다.
“쓸 시간은 아직 많으니까 천천히 생각해 보고 슬슬 준비하자.”
“준비?”
“이경복, 너는 이거 받고.”
이경복은 마스크를 받았다.
갑자기 마스크는 왜 준 걸까.
그 의문이 드러나는 시선에 박주호가 설명했다.
“팬싸 가 보면 우리처럼 그냥 가는 눈덕은 많지 않아. 대부분이 사진기로 무장한 찍덕이지.”
“그건 그런데…… 이건 왜?”
“네 얼굴이면 이목이 당연히 끌릴 거다. 자의든 타의든 사진에 찍힐 가능성이 높아.”
휴식을 겸하는 팬 사인회였지만 박주호는 매니저의 본분을 잊지 않았다.
“나중에 얼굴 공개를 감안하면 행적을 최대한 감추는 게 좋다. 마음 같아서는 선글라스까지 씌우고 싶은데 오히려 수상하니까 생략했다.”
“그렇다면야.”
이경복은 순순히 그 의견을 따랐다. 마스크는 콧등부터 하관을 가리고도 남았다.
“내 거는?”
최병훈이 옆에서 묻자 박주호가 그를 흘겨보았다.
“넌 가릴 게 아니라 보여 주는 편이 사진기를 피하는 데 도움이 될 거다.”
“엉?”
최병훈이 뭔 소리가 싶어 눈을 굴리다가 이내 그 의미를 깨달았다.
“아니, 인마! 나도 우리 집에서 잘생겼다는 소리 들어!”
“그럼 집에서 마스크 써라.”
단번에 최병훈을 진압(?)한 박주호는 출발 준비를 마쳤다.
“벌써 가려고?”
“아직 사인회 시작하려면 한참 남았는데?”
사인회 시간까지는 시간이 충분하다 못해 남았다. 그럼에도 박주호는 친구들을 재촉했다.
“현장에서 자리랑 사인 순서를 추첨한다. 어차피 확률이긴 하지만, 늦을수록 선택권이 없어지지. 이미 도착한 팬들도 많을 거다.”
“그 정도야?”
“이거 왜 이렇게 일찍 불렀나 했더니. 팬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네.”
그 설명에 두 사람은 혀를 내둘렀다. 하지만 이내 군소리 없이 박주호를 따랐다.
오늘은 박주호가 ‘퍼펙트’한 날이기 때문이었다.
* * *
스위티즈의 사인회 장소는 도심의 대형 호텔이었다.
호텔 내에 위치한 그랜드 홀, 그곳에는 박주호의 말대로 다른 팬들이 이미 도착해 있었다.
세 사람은 길게 늘어선 줄에 자리를 잡았다.
“햐…… 부지런하다 부지런해. 진짜 덕질도 성실해야 되는구나.”
“거의 절반 넘게 온 것 같은데?”
“쓰읍, 이러면 곤란한데.”
감탄하는 두 사람과 달리 박주호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경복아.”
“왜?”
“이번 뽑기도 잘 부탁한다……!”
박주호가 강렬한 시선을 보냈다.
“순서가 뒤로 밀릴수록 사인회 시간이 촉박해질 가능성이 높아. 제발 후순위만 피해 줘라!”
“아니, 이거 그냥 운이라니까? 내가 뭘 한 게 아니라고.”
“그럼 네 운만 믿는다!”
간절한 친구의 부탁에 이경복은 실소를 흘렸다.
“나 참, 아무튼 잘 안되도 원망만 하지 마라.”
그렇게 시작된 줄서기.
생각보다 줄이 쉽게 빠지지 않았다. 본인 확인 절차는 물론이고 팬들이 추첨을 아주 신중하게 했기 때문이었다.
그리 기다리는 와중이었다.
우웅하는 진동이 전해져 왔다.
“야, 나 잠깐 통화 좀.”
“그려.”
“멀리는 가지 말고.”
두 친구에게 자리를 부탁한 이경복은 한적한 장소에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어, 경복아. 지금 통화 되냐?>
“어어, 되지. 무슨 일 있어?”
통화 너머에서 들려오는 지놈의 목소리가 어두웠다.
<일단…… 미안하다.>
“미안하다니?”
<너랑 이클 님한테 자신 있게 말했는데, 섭외가 좀 어려워졌어. 변명의 여지가 없다……>
“섭외가? 아니, 왜?”
그 말에 이경복은 눈을 크게 떴다. 지놈 정도의 인맥과 평판이라면 거절할 이유가 없을 터였다.
<그게 좀 상황이 아이러니하게 됐다.>
“아이러니? 무슨 말이야?”
<우리 팀 밸류가 너무 높아져서 부담스럽다네.>
“……밸류?”
지놈은 빠르게 설명했다.
퍼플과 지놈 그리고 이번에 공개된 이클립스까지. 각자가 쌓아 온 이름값과 관심도는 이벤트 참여 팀 중에서 최고라 해도 손색이 없다.
그러나 그 설명에 이경복은 오히려 의문만 커졌다.
“아니, 그러면 오히려 상대 쪽에서 들어오고 싶다고 부탁할 정도 아니야?”
<나도 그럴 거라 생각했는데. 이게 그 임계치를 초과한 모양이야.>
“임계치라니?”
<각을 본 거지. 우리 팀에 들어와서 뜰 수 있는지 말이야. 물론 얼굴이랑 이름은 당연히 많이 팔리겠지. 하지만 ‘잘’ 팔리냐는 또 다른 문제거든.>
지놈은 짧게 혀를 차고는 설명을 이어갔다.
<사실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야. 들어왔는데 들러리나 짐덩이 취급 받으면 오히려 마이너스니까. 그런 부담까지 짊어질 사람은 아에 하꼬거나 어느 정도 밸류가 되는 스트리머여야 하는데……>
“전자는 GGG에서 거절할 거고 후자는 이미 다른 팀 팀장이겠네.”
<맞아. 그래서 아무래도 나 혼자는 무리일 것 같아서 연락했다. 미안하다……>
“아니, 미안하기는 뭘. 기한이 언제까지였지?”
<내일 모레야. 일단 이거 통화 끝나면 이클 님한테도 연락할 거야. 셋이 다 섭외해서 상의를 좀 해야 될 것 같다.>
“으음, 급이 맞는 스트리머라……”
이경복은 코끝을 찡그렸다.
웬만한 스트리머들은 다른 팀이 다 섭외했을 터였다. 지금 와서 적절한 사람을 어디서 찾는단 말인가.
‘잠깐……’
미간에 잡힌 주름이 사라졌다. 이경복의 시선은 박주호가 나누어준 포토카드에 닿았다.
‘이거, 괜찮을지도?’
순간 번뜩이며 드는 생각과 함께 입가에 옅은 미소가 지어졌다.
“형.”
<응?>
“이벤트에 참여하는 건 정확히 인플루언서지? 스트리머가 아니라?”
<어…… 그렇지?>
“그럼 시청자들이 알아볼 만한 인지도만 있으면 되는 거지?”
<그렇긴 한데…… 스트리머가 아닌데 시청자들이 알 만한 사람이 있어?>
지놈은 의아함을 숨기지 않았다.
대체 그런 사람이 어디 있단 말인가.
“합류할지는 아직 모르겠는데, 일단 물어보고 결과 알려 줄게.”
<어? 어어, 그래. 고맙다야. 진짜 미안하고.>
“괜찮다니까. 일단 이클 님한테도 연락해 주고.”
<오케이!>
이경복은 그렇게 통화를 마무리하고 방수팩에 든 포토카드를 꺼냈다.
다른 멤버가 아닌 윤나라의 포토카드, 그리고 함께 동봉된 포스트잇과 아직 비어 있는 팬레터까지.
‘쓰고 싶은 말이 바로 생각나네.’
이경복의 입가에는 더욱 짙은 미소가 어렸다.